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14화 (415/485)

414. 인간대포

바다는 넓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상혁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 사실을, 현재의 프로젝트가 가진 치명적인 단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항해 시간이 너무 짧으면 짧은 대로 한없이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느낌이 안 들고, 그렇다고 진짜로 항해 한 번에 몇 달씩 필요하면 게임이 루즈해 진다.’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상혁은 항해 도중에 즐길 수 있는 여러 컨텐츠를 준비해 놓았다.

배 안에서 검술 실력이 뛰어난 선원에게 검술 수련을 지도받아 능력치를 올리고 스킬을 습득한다던가, 보물 지도에 숨겨진 암호를 해독한다던가, 피스톨이나 라이플, 검 같은 개인 장구류를 정비 및 관리하고 선원들의 멘탈을 케어하며 배에 있는 식량과 물자를 체크하고 선원들의 스케줄을 관리할 수 있도록.

게다가 선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트러블의 중재와 선상 범죄에 대한 재판과 처벌.

그리고 항해 중에 벌어지는 수많은 랜덤 이벤트들까지.

거의 게임 컨텐츠의 삼분의 일 정도를 항해 도중에 접할 수 있도록 많은 컨텐츠를 항해 시스템에 박아넣었지만, 상혁은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넓고, 범선은 느리니까.

상혁은 그 단계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게임 안의 세계잖아요? 굳이 현실의 지구와 똑같을 필요는 없죠.

어차피 항해가 메인인 게임이니 항해만으로도 대부분의 컨텐츠에 접속할 수 있게 대륙을 없애버립시다.”

“대륙을요?”

“물론 아예 없애자는 수준은 아니고 좀 자잘하게 쪼개서 흩어놓자는 거죠.

굳이 한 군데 전부 뭉쳐있을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런 이유로, 새 월드는 가장 넓은 대륙이 호주 정도의 크기를 가진, 수많은 크고 작은 섬과 육지가 쉴새 없이 등장하는, 말 그대로 항해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세계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개발자들은 각 섬마다의 독특한 양식과 문화, 보물과 유적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모든 상상력을 쏟아부었다.

오래전 멸종했어야 할, 공룡처럼 생긴 거대 짐승들이 살아 숨 쉬는 태고의 섬.

인간이 가축을 사육하는 것이 아닌, 진화한 짐승에 의해 인간이 가축처럼 사육되는 도시.

섬에 접근하는 외지인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하다, 외지인이 섬을 밟는 순간 나라라도 잃은 표정으로 저항을 포기한 채 ‘이 땅은 더럽혀졌어’라고 말하며 단체로 다른 섬으로 이사하는 원주민들.

도저히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인공적인 디자인을 가진, 마치 거대한 행성 대포 같은 모양을 한 바위 섬.

어떤 식물이든 미친 듯이 큰 열매를 맺게 해준다는 전설의 광물이 있다는 거대한 동굴에 갔더니, 사실 그 광물은 바위를 먹고 사는 10m 굵기의 거대한 지렁이가 싼 똥이었다던가, 말을 하며 살아 움직이는 나무가 있는 섬을 찾아갔더니 그 정체가 사실 나무껍질을 정교하게 뒤집어쓴 원주민들이었다던가.

40m 높이로 자라는 거대한 버섯 위에 건설된 도시도 있었고, 전 주민이 폭발에 대한 내성이 있어 화약을 밥처럼 씹어먹는 기괴한 마을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상혁이 부탁받은 ‘인간 대포’ 퀘스트는, 각 섬 주민들의 특이한 풍습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독특한 형태의 퀘스트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섬의 주민들은 매년 ‘새 인간 콘테스트’를 한다고요? 그리고 가장 높게 멀리 날아간 사람을 왕으로 추대하고요?”

해리스가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뇨. 정확히는 ‘신부’를 가장 멀리 날려 보내는 사람이 우승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소용돌이치는 해류에 휩싸여 절대 접근할 수 없는 건너편의 암초까지, 마을의 젊은 여성을 가장 멀리 날려 보내는 사람이 왕이 되는거죠.

매년 이 섬 주민 중 성인 여성의 20% 정도가 이 컨테스트를 통해 사망하고요.”

“그렇다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차라리 섬에 가장 가까이 간 사람이 왕이나 여왕이 되는 게 맞지 않나?”

“이것은 일종의 인신 공양 문화와 관련된 퀘스트이기도 하고, 게다가 섬에 가까이 갈수록 소용돌이 때문에 다시 되돌아오지 못할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죽은 사람은 왕이 될 수 없잖아요?”

“그렇다고 왜 젊은 여성을 희생양으로···.”

“저 암초의 이름은 바라스쿠차.

원주민들의 언어로는 ‘외로운 바다의 신’이란 뜻입니다.

인간이 의미가 있는 첫 단어를 내뱉은 순간보다도 훨씬 오래전, 혈기 왕성했던 젊은 신 스쿠차는 바다의 여신인 아내를 두고 마구 바람을 피웠죠.

그러다 분노한 아내의 저주를 받아 바위가 되어 저 암초가 되었고, 여신은 그 어떤 여성도 스쿠차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소용돌이로 그를 봉인했어요.

결국 그는 바라스쿠차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섬의 주민들은 그런 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암초가 있는 방향으로 신부들을 날려 보내는 겁니다.”

“미개하네요.”

“고립된 사회니까요. 그래도 최소한 사람 고기는 안 먹잖아요?”

“그래서, 그 바라스쿠차를 향해 인간 대포는 왜 쏘아야 하는거죠?”

“그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는 일단 이 섬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보물에 관해 설명해야겠네요.”

상혁이 신호를 보내자 한 스텝이 건강하게 그을린 갈색 피부의 미녀 NPC를 데려왔다.

그녀는 새의 깃털을 엮어서 만든 것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날개가 달린 옷을 입고 있었다.

“이 NPC의 이름은 하이샤.

섬 주민 중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는 거대 씨족의 신부 후보죠.

플레이어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그녀 대신 여장을 하고 인간 대포알이 되어 암초로 날아가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해리스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상혁이 아닌 다른 개발자였다.

“전 월드에서 가장 바람을 잘 읽을 수 있는, SSS급 항해사를 얻게 되죠.

제임스 저스틴입니다.

이번 퀘스트의 퀘스트 마스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추격 파트 제작 팀의 스턴트 담당 해리스 어니언입니다.

이 정신 나간 퀘스트를 설계하신 분이 바로 당신이군요?”

“뭐, 그렇죠.”

“그럼 일단 인간 대포알이 되기 전에 묻고 싶습니다.

이 퀘스트에서, 플레이어도 다른 신부들처럼 날개옷을 입고 절벽에서 뛰면 되지 않나요?

왜 굳이 인간 대포를···.”

“그럼 플레이어가 집니다.

이 섬의 ‘신부’들은 어린 시절부터 낮은 절벽에서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바람을 이용하는 법을 배우고, 그에 따른 ‘날개’의 사용법을 익히니까요.

게다가 체공 시간을 늘리기 위해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수행하며 철저한 근력 트레이닝도 받습니다.

그 결과로 얻는 것은, 거의 새 인간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발전한 뛰어난 비행능력이죠.

건장한 일반인인 플레이어는, 같은 방식으로는 절대 신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술의 힘을 빌리는 거고, 그게 인간 대포군요.”

“그렇죠. 암초에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닌, 아예 암초 위에 착륙하는 것으로 절대적인 권력을 받고, 그 권력을 이용해 섬의 악습을 철폐하는 역할이 이번 퀘스트에서 플레이어가 부여받은 역할입니다.”

“그럼 제 역할은 뭡니까?”

“일단 이 퀘스트는 섬 근처를 항해하다 배 근처로 떠밀려온 여성 원주민의 시체들을 발견하면서 시작됩니다.

젊은 여성의 시체 여럿이 한번에 떠내려온 것을 본 플레이어는 섬을 조사할 것을 명령하게 되죠.

그리고 그곳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섬의 야만적인 전통에 관한 이야기와 앞서 발견한 시체가 단순히 ‘연습 비행’에서 발생한 피해자들이라는 이야기를요.

본 행사가 진행되면, 더 많은 소녀들이 목숨을 잃게 되겠죠.

플레이어는 그 과정에 개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엔, 이 하이샤라는 소녀를 통해 ‘날개’를 가지고 비행하는 법을 배우게 되죠.

바람의 흐름을 읽는 방법과 그 바람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요.

괜찮으시다면 인간 대포가 등장하는 파트까지 전체 퀘스트를 시험해보시겠어요?”

해리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상혁도 끼어들었다.

“저도 하죠.”

“그럼 동시 테스트로 진행하겠습니다.

두 분 다 테스트 환경으로 이동시켜드리죠.”

제임스가 손뼉을 치자, 상혁은 순식간에 미리 준비된 게임 속 플레이어의 시점으로 이동되었다.

그것은 저스틴이 말한 대로, 항해하던 도중 젊은 여성들의 시체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벤트였다.

“선장님! 저기 뭔가가 보입니다!”

그러자 상혁의 눈앞에 3개의 선택지가 떠올랐다.

[배의 속도를 늦춘다. 갑판원들은 떠내려온 물체를 건질 준비를 해라.]

[무시하고 간다. 지금은 더 급한 일이 있으니.]

[거기서 무엇인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나?]

체감형 게임인 PRD의 특성상, YAS처럼 완전히 자유 대화를 지원하지 않는 게임에서는 어느정도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대사의 선택지에 제약을 주게 된다.

그것은 HC 101를 통해 이미 플레이어들에게 익숙한 개념의 시스템이었기에, 상혁은 주저 없이 선택지 하나를 골라 연기했다.

“우선 떠내려온 물체가 무엇인지 육안으로 확인하라.”

이 게임에 탑재된 대사 연기 시스템은, HC 101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어가 대사의 내용을 어레인지 하더라도 그 말의 내용만 선택지와 일치한다면 대부분 인식이 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상혁이 대사를 말하기 편하게 살짝 변경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원은 즉각 반응하여 상혁의 명령을 따랐다.

“사람인가? 아니,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혹시 전설로 내려오는 하피가 아닐까요?”

“하피? 그럴 리가. 배의 속도를 늦춘다. 돛을 올리고 물체를 건질 준비를 하도록!”

“Aye aye, captain!”

그 이후의 전개는, 제임스가 말한 것과 똑같이 흘러갔다.

하피의 시체인 줄 알았던 여성의 시체가 날개가 달린 옷을 입은 인간임을 확인하고, 섬에 도착하여 마을 주민들을 만나는 과정까지.

그러나 상혁을 감탄시키는 부분은, 생각보다 NPC하이샤에게 ‘비행’을 배우는 부분의 퀄리티가 꽤 높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바람을 믿고, 자신을 믿으세요.

사람의 능력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위대한 법이랍니다?”

아찔한 높이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기를 주저하는 플레이어를 ‘헤헷’하는 귀여운 미소와 함께 사정없이 밀어버리는 하이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라던가, 착지 방법을 배우는 걸 깜빡해서 나무 가지에 쳐박힌 플레이어를 놀리면서 짓는 그녀의 모습.

그리고 미지의 문명을 가진 섬 주민 소녀와 비행이란 컨텐츠를 통해 천천히 유대감을 쌓아가는 과정은 마치 영화 ‘아바타’속 주인공이 된 느낌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단순히 퀘스트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캐릭터에 정이 들어서 그녀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러나 비행 수련 과정이 상급에 도달한 시점에서, 상혁은 태어날 때부터 신부가 되기 위해 수련한 그녀와 자신의 압도적인 실력차를 체감하게 되었다.

상혁이 ‘바람을 타고’ 있을 때, 그녀는 말 그대로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활공하는 자신의 앞에서 거의 새처럼 보이는 곡예 비행을 선보이는 하이샤를 보며, 상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절벽과 암초와의 거리가 너무 멀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비행 능력으로도 커버가 안 될 정도의 거리로 설정해 둔 거구나.’

결국 자신의 비행 능력으로는 그녀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혁은 원래의 계획을 파기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임스의 팀에서 상혁에게 부탁한 ‘인간 대포’와 관련된 퀘스트였다.

비슷한 타이밍에 퀘스트를 종료한 상혁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스튜디오에 도착한 해리스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해리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운 듯 상혁에게 말했다.

“허허···. 게임 NPC라고 해서 좀 가볍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주 귀엽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플레이어가 자신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바칠 테니 이 끔찍한 풍습을 멈춰달라고 플레이어에게 부탁하는 장면이 좋았던거 같아요.”

“아, ‘당신이 절 하늘로 날려주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이죠!

저도 그 부분이 엄청 좋았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 파트가 인간 대포라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표정은 의욕이 좀 생긴 것 같은 표정이신데요?”

“이렇게 귀여운 소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휴먼 캐논볼이 되는 위험 정도는 감수해야겠죠.

좋습니다. 제임스 씨.

이 퀘스트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이네요.

그럼 제가 뭘 하면 되는 겁니까?”

그러자 제임스가 말했다.

“대포알의 탄속은 인간의 신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죠.

물론 게임이니 실제 대포알 수준의 충격을 플레이어에게 주지는 않을 겁니다.

사실 거의 허구에 가까운 수준으로 조정하긴 할 건데, 그래도 자극이 너무 약하면 인간 대포알의 느낌이 나지 않겠죠.

반대로 자극이 너무 강하거나, 공중에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공기 저항이 세다면 중간에 비행 자세로 전환하기도 전에 당황하며 바다로 추락하게 될 겁니다.

저희는 그 적절한 선을 잡고 싶고요.”

“하지만 인간의 신체는 대포알처럼 둥글지 않습니다.

사람 몸을 그대로 포신에 욱여넣으면 몸 옆으로 가스가 다 샐텐데요?”

“그렇죠. 그래서 저희는 송탄통을 사용할 겁니다.”

“송탄통?”

“정확히는 탄이 아니라 사람을 날려 보내는 거니 송인통이라고 해야겠네요.

바닥이 막혀있는, 안에서 끈을 잡아당겨 열 수 있는 금속 케이스입니다.

그 안에서 통을 개방하는 끈을 붙잡고 대포알이 되어 쏘아지는 거죠.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끈을 당겨 대포알의 케이스를 열고 안에서 날개를 펼쳐 활강합니다.

그럼 절벽에서 스타트 하는 것보다 훨씬 멀고 높은 거리에서 스타트가 가능하죠.”

이미 NPC를 통해 안전 테스트는 수없이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직접 느끼는 감각에 대한 테스트는, 사람이 직접 참여해야 가장 확실하게 테스트할 수 있죠.

게다가 고속 비행 중에 안정적으로 암초에 착지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피지컬적인 감각도 요구되고요.

그 정도면 왜 스턴트 전문가가 필요한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될까요?”

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해보죠.”

“아, 그 전에 하나 말하는 걸 잊었네요.

이 인간 대포 퀘스트는 연퀘의 최종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플레이어는, 캐터펄트 형태의 발사체와 발리스타 형태의 발사체를 먼저 테스트하고, 전부 실패한 후에 최후의 수단으로 인간 대포를 채택하죠.

그러니까 테스트는 먼저 인간 투석기부터 시작해주셔야 합니다.”

제임스의 말을 들은 해리스의 표정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같은 표정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착지 실패네요. 자세를 확실하게 잡으셔야 성공한다니까요?”

“이건 스턴트 맨이 아니라 스턴트맨 할애비가 와도 성공 못 한다고요!

최소한 착지 지점에 충격을 흡수할 뭐라도 설치해줘요!”

“설정상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는 암초인데 뭘 어떻게 설치하라는 말입니까?”

상혁은 이후로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개발자들이 인간 대포알 컨텐츠를 만드는 것을 웃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대부분의 조정 과정을 마치고 착지 문제를 가지고 싸우는 시점에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상혁이 제시한 해결책은, 바로 암초의 형태를 변경하자는 것이었다.

“암초 중간을 파서 바닷물이 들어가게 하죠.”

“중간을 파요?”

“그러니까 대왕암, 아, 한국분이 아니셔서 잘 모르시겠구나. 잠시만요.”

상혁은 이미지 검색 기능을 호출해 경주에 있는 대왕암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한가운데 작은 웅덩이가 있는, 거대한 바위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착지 충격을 흡수하려면 이것보다는 더 깊고 큰 웅덩이가 필요하겠지만, 어찌 되었건 암초 한가운데 착지할 만한 위치를 만들려면 이 방법밖에 없겠죠.

대신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게 만들고요.

말 그대로, 출발하는 시점에서 플레이어는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인간 대포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공중에서 웅덩이를 발견하는 순간, 저기 착지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그러자 해리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상혁의 의견에 동의했다.

“젠장. 그렇게 합시다.

이게 게임 안이 아니었으면 난 벌써 잘게 다진 고깃덩이가 되었을 거라고요.

아니면 바위에 묻어있다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갈 핏자국이 되던가.”

“해보죠.”

제임스는 상혁의 말대로 암초의 형태를 조정했다.

그리고는 해리스를 향해 말했다.

“파이널의 파이널의 파이널의 파이널의 파이널 테스트입니다.

이번엔 한번에 성공해봅시다.”

연속된 테스트로 심신이 지쳐있었음에도, 해리스는 다시 한번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성공으로, 플레이어가 정확히 기분 좋은 성취감을 느끼는 수준으로 퀘스트가 완성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해리스는 다시 좁은 송인통에 몸을 욱여넣으며 제임스에게 말했다.

“게임 안에서 성공하면, 확실히 하이샤가 파티로 들어오는 거 맞죠?”

“맞습니다. 그러니까 기쁘게 인간 대포알이 되어주세요.”

“젠장, 이번엔 반드시 성공합니다.”

다시 한번 굉음과 함께 거대한 대포알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대포알이 최고점에 도착한 시점에서,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대포알이 반으로 갈라지며 날개옷을 입은 해리스가 공중을 활강하기 시작했다.

NPC인 하이샤에게 배웠던, 바람을 이용한 활공 기술을 사용하면서.

기분 좋은 바닷바람이 귓가에서 펄럭이는 소리를 들으며, 해리스는 전신에 느껴지는 기분 좋은 압박감에 정신을 집중했다.

어느 부위가 바람을 제대로 타고 있는지, 어느 부위가 바람의 결을 제대로 ‘어루만지고’ 있는지.

‘최대한 멀리 갈 수 있도록.’

자신의 비행에, 그녀의 목숨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섬에서 희생될, 수많은 소녀들의 목숨도.

활공하는 해리스의 날개 위에는, 그 무의미한 희생을 막고 싶어하는 하이샤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웅덩이가 보인다.’

해리스는 자연스레 몸이 웅덩이를 향하도록 팔을 틀어 날개의 각도를 조정했다.

그리고는 팔을 앞으로 접어 물고기를 향해 뛰어드는 바닷새처럼 웅덩이를 향해 다이빙했다.

그 순간 전신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은 정말로 물 속으로 뛰어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던 해리스는 바닥으로 향했던 몸을 위로 향했다.

그러자 수면 너머로 일렁이는 밝은 빛이 그의 시야로 쏟아져 들어왔다.

“푸하아아아!!”

진짜로 입수한 것처럼 숨을 내뱉는 해리스를 보며, 제임스는 마침내 만세를 내질렀다.

이번 퀘스트 제작의 최대 난관이자 가장 조정하기 힘들었던 ‘인간 대포’ 퀘스트가, 마침내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제임스가 만세를 부르고, 상혁이 옆에서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며, 해리스는 생각했다.

빨리 이 퀘스트를 성공한 이후의, 하이샤의 합류 스토리를 보고 싶다고.

그러나 그런 해리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제임스가 준비한 또 다른 반전이었다.

“전, 섬에 남을게요.”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바닥을 보며 슬프게 말하는 하이샤의 고백.

그것은 모험을 동경하는 소녀이기 이전에 섬을 이끄는 대형 씨족의 후계자로서, 그녀가 선택한 삶이었다.

그런 그녀의 결정을 보며, 해리스는 속으로 욕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합류한다며! 합류할 거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리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최소한 배가 출발하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선원들이 보급을 완료하고 배의 닻을 올릴 때까지, 하이샤는 결국 합류하지 않았다.

‘설마 나한테 인간 대포알을 시키려고 낚시한 건가?’

서서히 시야에서 멀어지는 섬을 보며, 해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돛을 내려라!”

그때, 한 선원이 소리치는 소리가 해리스의 귓가에 들려왔다.

“선장님! 저기 뭔가가 보입니다!”

퀘스트가 시작될 때 들었던 것과, 똑같은 톤의 놀란듯한 외침.

해리스는 설마 아직도 섬의 인신 공양 퀘스트가 해결이 되지 않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선원에게 외쳤다.

“거기서 무엇인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나?!”

그러자 역시 퀘스트 초기와 똑같은 대사가 들려왔다.

마치 반복 버그라도 발생한 것처럼.

“사람인가? 아니,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사의 뒤에는, 이 대사가 버그가 아님을 알려주는 하나의 문장이 더 달려 있었다.

“지금 저희 배를 향해 날아오고 있습니다!”

‘날아와?!’

해리스는 미친 듯이 고개를 돌려 섬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그가 간절히 바라던 ‘그녀’가, 하늘을 날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광경을 보았다.

그것은, ‘날개’와 ‘비행’을 컨셉으로 하는 이 NPC의 합류 퀘스트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합류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아아 제임스 씨.’

자신을 향해 한없이 기쁜 표정으로 두 팔을 벌려 뛰어드는 하이샤의 미소를 보며, 해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이건 갓 게임이었어.’

자신이 오늘 종일 겪었던 인간 대포알이 되기 위한 노력은, 전혀 헛되지 않은 노력이었다고.

그렇게 자신의 품에 안긴 하이샤의 기분 좋은 체온을 느끼며, 해리스가 소리쳤다.

“X발! 이제 진짜 돛을 내려라! 우리의 새로운 1등 항해사가 도착했으니까!”

해리스를 미친 듯이 행복한 기분으로 만들어 준 퀘스트.

그것은 이 게임 속에 준비된, 수백 개가 넘는 ‘서브 퀘스트’ 중의 단 하나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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