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호접지몽
사람들이 PTW에 대해 알고 있는 수많은 사실 중에서도 잘 알려진 하나의 사실이 바로 ‘PTW는 기술적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알려진 것처럼, PTW에서는 매번 게임을 개발할 때마다 기존의 게임 개발과정과는 다른, 새로운 실험적 전제를 바탕에 깔아둔 채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번 프로젝트의 실험적 도전과제는 ‘협업 과정’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그 밑바탕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PRD와 직접 연결된 연산 센터의 강력한 클라우드 처리 능력을 사용하여, 프로젝트에 참여한 수백 명의 개발자가 하나의 거대한 가상 공간에서 작업하는 것.
PTW에서 시도하고 있는 ‘새 실험’은, 마치 거대한 영화 스튜디오에서 모여 동시에 작업을 진행하는 것 같은 진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끔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하곤 해요.
내가 지금 게임을 만드는 건가, 아니면 꿈속에서 일하는 건가 하고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추격 액션’에 해당하는 어트렉션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개발자 에이미가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떤가요? 꿈속에서 하는 일은 마음에 듭니까?”
“최고죠. 뭐랄까, 의욕이 샘솟는다고 해야 할까요?
수백 명이 한 장소에 모여서 하나의 게임을 동시에 작업하는 모습을 본다는 건, 실제로 매우 멋진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게임제작이란 작업은, 수백 명이 참가하는 작업치고는 굉장히 외로운 작업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일반적인 게임 개발과정에서는 담당 파트에서 자신이 맡은 일만을 담당하고, 다른 파트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어떻게 작업 진도가 나가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 개발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리얼 엔진의 협력 개발 기능을 150% 활용하여, 마치 광산 크래프트의 대형 서버 같은 느낌으로 가상의 개발 스튜디오를 만들어냈다.
한 개발자가 도시를 가로지를 멋진 마차의 디자인을 작업하는 도중에도, 저 멀리서 다른 개발자가 작업 중인 범선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도록.
그런 독특한 개발과정을 통해, 상혁은 모두의 인식 속에 ‘나 말고도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다.’라는 일종의 기묘한 유대감을 형성해 냈는데, 그 유대감이 바로 이번 프로젝트의 거대한 개발 목표를 무시무시한 속도로 채워내는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었다.
“흡연자들은 버츄얼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게 불편하다고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요.”
“하긴, PRD 안에서는 담배를 못 피우니까.”
전신에 와이어가 연결된 상태로 밀폐된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었기에, 흡연하는 작업자들은 매번 담배를 피울 때마다 입고 있는 PRS에 연결된 PRD의 와이어를 풀고, PRS를 입은 그대로 근처에 있는 흡연 장소로 이동하여 흡연을 하곤 했다.
그것은 매우 불편한 과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따지면 PRD에 연결된 상태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긴 해요.
모드를 AR 상태로 돌려서 현실 에서의 시야를 확보한 다음 환기가 잘 되는 상태에서 피우면 되는 거니까.
조만간에 흡연하는 작업자들을 위한 PRD 룸을 따로 만들어야겠네요.”
“장비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요? PRD는 엄청 섬세한 장비잖아요.”
“군용으로도 쓰이는 물건이라 그렇게 내구도가 낮게 설계되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매번 연결을 해제하고 흡연장으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 담배를 피우는 시간, 복귀해서 다시 접속하는데 들어가는 시간을 합치면 그냥 PRD에 탄 상태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게 해 주는 게 회사 차원에서는 출혈이 더 적습니다.
냄새 문제는 지금 PTW 흡연실에 설치되어 있는 환기 장치를 쓰면 되는거고요.”
“아, 그거 상혁 씨가 직접 설계했다는 그 장비 말이죠?”
에이미의 말대로, PTW의 흡연실에 설치된 공기정화장치는 상혁이 직접 설계한 물건이었다.
점성이 매우 강해 일반적인 헤파필터형 공기 청정기를 사용하면 필터의 수명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가기 때문에, 상혁은 일부러 두루마리 형태의 전용 필터를 사용하여 시간의 경과에 따라 천천히 필터가 계속 새 필터로 교체되는 형태의 새로운 공기 청정기를 PTW에 설치했다.
그것을 사용하면, 언제나 필터의 상태를 새것으로 유지할 수 있기에 흡연실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담배 연기에도 불구하고 늘 신선한 공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것을 설치하면, 밀폐된 공간에서 PRD에 탑승한 채 담배를 피우더라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 상혁은 눈앞에 있는 세트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해적 영화에나 나올법한 기다란 중세 맨션을 배경으로, 몇 대의 마차와 말들이 도로를 질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 게임 영상의 촬영입니까?”
상혁이 묻자 에이미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세트를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영상이 아니라 저것도 어트렉션입니다.”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 물건이죠?”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래쪽에 있는 화물 때문에 마차를 타고 도주하던 플레이어가 마차를 버리고 위쪽에 있는 건물 창문으로 뛰어드는데, 그 상태에서 쭉 달려서 반대편 창문으로 뛰쳐나가서 그쪽에 타이밍 좋게 지나가는 중인 새 마차 위로 멋지게 착륙하는 씬이죠.”
“오, 해적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본 것 같아요.
근데 겉으로 보기엔 세트 자체는 전부 준비된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뭘 테스트 중이신 건가요?”
상혁의 질문에 에이미가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한쪽에서 마차를 탄 생태로 대기 중인 다른 개발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마무리 테스트 중이니 한번 보시죠.
아마도 몇 번 더 조정해야 하긴 하겠지만, 지금도 플레이는 가능한 상태니까요.
해리스 씨!”
“옙!”
“시작하세요!”
그러자 에이미의 신호를 받은 해리스가 상혁의 눈앞에서 놀라운 퍼포먼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마부석에 앉은 상태로, 해군 복장을 한 NPC의 추적을 따돌리며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마차를 몰고 있는 해리스를 향해 무려 ‘대포알’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재 있는 장소가 가상 세계 안이라는 사실을 깜빡하는 순간, 진짜로 해리스를 죽이려고 시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포격이었다.
-콰아아아앙!-
“으아아아악! 미친 해군 새끼들이 도시를 포격한다아아!!”
“꺄아아아악!”
철로 된 포탄에 맞는 순간 마치 폭죽처럼 터져나가는 목제 구조물들.
산산이 조각난 채로 과육을 흩뿌리는 불행한 노점상의 수박들과, 비명을 지르며 대피하는 NPC들의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포격의 한 가운데를, 해리스가 모는 마차가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었고.
상혁은 곧 그 화려한 장면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해리스는, 그런 상혁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마차에 점프하여 올라탄 해군 NPC들과 몸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주먹을 날리고, 발차기하며, 해군과 몸싸움을 하던 해리스는 갑자기 마차에 올라탄 해군들이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고는 정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마차가 지나갈 수 없도록 길을 막고 있는 거대한 나무 상자 더미를 발견했다.
‘저 시점에서 보이는 건 딱 점프해서 붙잡기 좋은 지점에 있는 저 창문이겠군.’
상혁이 속으로 생각한 대로, 해리스는 마치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력을 다해 창문으로 점프했다.
그 순간, 해리스의 발밑에서는 무식한 속도로 나무상자와 충돌한 마차가 공중으로 회전하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저기부터가 마무리 작업 중인 구간입니다.
잠시 작업용 카메라로 전환할게요.”
에이미가 특정 에리어에 있는 작업자들의 카메라 시야를 임의로 통일 시키는 기능을 활성화했다.
그러자 상혁은 건물 내부를 뛰어다니고 있는 해리스의 시야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이후에 게임이 발매 되었을 때, 실제로 게이머들이 게임 안에서 보게 될 카메라 시점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파쿠르네?’
당연한 이야기지만, 건물 내부의 구조는 누군가가 건물을 달려서 통과할 수 있도록 편의주의적으로 구현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플레이어는, 자신의 경로를 가로막는 책상과 의자들, 비명을 지르는 NPC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건물 속을 ‘달려서’ 통과해야 했는데, 이번 작업의 핵심이 바로 그 건물 안의 구조를 미세 조정하는 작업이었다.
적절한 수준의 액션을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면서도, 중간에 발걸음이 멈추게 될 정도의 장애물을 도주 경로에서 치워 놓는 것.
그리고 개발자가 의도한 방향대로 플레이어가 건물 반대편으로 뛰쳐나가게 유도하는 것.
자유도가 높은 PRD 안에서, 그 모든 과정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장치가 들어가야 했기에, 개발팀에서는 수십 번의 조정을 거쳐 거의 완벽하게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플레이어에게 체험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어트렉션을 개발하고 있었다.
진짜로 끝내주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단 한 번의 질주를 위해서.
“잘 보시면 메인 루트 외의 모든 지역엔 NPC나 테이블, 책장과 상자가 배치되어 있어요.
창문을 제외한 다른 문 앞에는 모두 NPC가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문을 틀어막고 있죠.
도주 중인 플레이어가, 자연스럽게 ‘저쪽으로 달려야겠다.’라는 생각만을 할 수 있도록.”
“그런 것 치고는 발에 걸리는 장애물이 좀 많은데요?”
“그냥 일직선으로 뛰면 재미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달리는 도중에 볼거리도 좀 제공해야 하고요.”
에이미의 말대로, 해리스가 뛰쳐들어간 건물 안은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지역임에도 엄청나게 많은 디테일이 들어가 있었다.
욕조에 들어가 기분 좋게 거품 샤워를 즐기는 도중에 주인공의 난입으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 가리는 배불뚝이 중년 남성의 모습이라던가, 귀가 먹었는지 바로 옆에서 대포알이 터지는 데도 실눈을 뜬 채 바느질에만 전념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
그리고 뭔 고양이를 그리 많이 기르는지 창문으로 뛰쳐들어가자마자 사방으로 흩어지는 수십 마리의 고양이까지.
건물 내부의 안은 자세히 살펴볼수록 감탄이 나오는 다양한 디테일이 가득 차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안을, 해리스가 테이블을 뛰어넘고, 가방을 발로 차고, 문을 박살 내며 미친 듯이 달려나가고 있었다.
진짜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혁은, 심지어 쏟아지는 대포알마저도 유저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유저가 고개를 숙이게 하고 싶으면 머리 위쪽에 대포알이 맞게 맞들고, 유저가 앞으로 달려나가게 하고 싶으면 유저의 등 뒤에서 점점 다가오는 포격을 연출하며, 유저가 중간에 빠져나갈 만한 곳에 일부러 포격을 가해 다른 루트를 선택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개발자들은 거의 반강제적으로 유저를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창밖으로 보이는 넓은 하늘이 건물 건너편의 끝까지 달려나간 해리스의 시야에 잡혔다.
그것은 이 기다란 건물 안에서의, 겨우 2분 남짓밖에 되지 않는 긴장감 넘치는 추격 장면이 종료되었음을 의미하는 심볼이었다.
그때 창밖으로 과감하게 점프하려는 해리스를 보며, 상혁이 속으로 생각했다.
저 시점에서 플레이어는 창문 아래 마차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텐데, 어떻게 창밖으로 뛰어나가는 위험을 감수하게 할 건지.
그리고 창문에 점점 다가가는 해리스의 시야를 보며,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모르고 점프하게 만들었구나!’
창문 밖에 있는, 딱 붙잡기 좋은 위치에 배치된 기다란 깃발.
액션 영화를 조금이라도 본 유저라면 그 깃발을 보는 순간 생각할 것이었다.
‘저걸 붙잡고 아래로 내려가자.’라고.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속임수였다.
깃발을 붙잡는 순간 깃대가 부러지며 해리스가 아래로 추락했고, 그렇게 떨어진 자리에는 정확하게 다음 마차의 마부석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묘하게 억지스러운 그런 연출은 마치 성룡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상혁은 그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
이 게임에서 상혁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현실성이 아닌 ‘로망’ 그 자체였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의 어트렉션은, 그런 로망을 충실함을 넘어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겨우 2분이라는 플레이 타임을 위해서 만들어진 컨텐츠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좋아요! 완벽한 느낌이에요!”
그때,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오며 에이미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조금 전 멋진 액션 장면을 선보였던 해리스라는 남자가, 상혁 일행을 향해 다가오며 투덜거렸다.
“5번째 방바닥에 있는 여행 가방은 치우는 게 좋겠어요.
밟자마자 폭삭 부서지는 바람에 거의 넘어질 뻔했다고요.”
“흠, 그 뒤뚱거릴 때 나오는 긴장감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너무 심했나요?”
“가끔 계단을 걷다 보면 발 잘못 디뎌서 심장이 철렁할 때가 있죠?
대충 그런 느낌이라 보시면 됩니다.
저야 스턴트맨 출신이니 겨우 균형을 잡을 수 있었지만, 일반인이라면 100% 거기서 넘어졌을 거라고요.”
“그럼 비슷한 느낌은 주되 강도를 좀 조정해야겠네요.
넘어지지는 않을 정도지만, 그래도 심장은 살짝 두근거릴 정도로요.”
“그리고 전부터 이야기하는데 7번째 방의 샤워하는 배불뚝이 아저씨 좀 어떻게 안 됩니까?
남산만 한 배에 털이 가득한 모습으로 말로의 비너스 자세를 취하면서 저를 볼 때마다 멘탈에 충격을 받는다고요.”
“전에도 말했지만, 그 아저씨는 개그 요소로 들어간 거예요.
해리스 씨야 같은 코스를 수십 번 돌았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처음 7번 방에 뛰어들었을 때는 해리스 씨도 도망치는 걸 멈추고 배를 잡고 웃었잖아요?”
“그렇긴 한데….”
“개발자가 개발과정에서 수도 없이 반복해서 보는 느낌이랑, 유저가 게임 속에서 단 한 번 보는 느낌은 완전히 달라요.
저희는 작업 중에 수없이 반복해서 컨텐츠를 보지만, 만들 때는 그컨텐츠를 처음 보는 유저의 경험을 기준으로 개발을 해야 하고요.
게다가 Mr.배 아저씨는 우리가 만든 어트렉션의 마스코트라고요.”
“마스코트?”
옆에서 듣고 있던 상혁이 묻자, 에이미가 말했다.
“아까 그 샤워실에서 목욕하던 배불뚝이 아저씨를 말하는 거예요.
사실 그 아저씨는 단역이 아니라 게임 내내 자주 등장하는데, 주로 매우 행복한 상태에서 뭔가를 즐기려는 타이밍에 주인공에게 방해를 받는 포지션이죠.
기본 설정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삶을 즐기고 있는 고위 귀족인데, 묘하게 주인공이랑 모험 경로가 겹쳐서 계속 괴롭힘 당하는 캐릭터예요.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는 순간에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주인공이 테이블 위에 낙하한다던가, 아니면 조금 전처럼 기분 좋게 샤워하고 있는데 욕실 문이 터져나가면서 주인공이 샤워실에 뛰쳐 들어온다던가.”
“액션 씬의 배경에 숨겨진 감초 같은 역할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런 캐릭터를 게임 도중에 발견하는 것도, 나름 게임의 재미가 될 수 있겠죠.
좋은 아이디어네요.”
그러나 상혁의 칭찬을 들은 후에도, 해리스의 불평은 멈추지 않았다.
전문 스턴트맨 출신의 개발자인 그가 생각하기에, 현재 개발팀에서 밀어붙이고 있는 액션 시퀀스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왕 마스터 상혁이 온 자리이니만큼 전에 논의하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해보죠.”
“문제요?”
“에이미 씨. 지금 저희 팀에서 작업한 게임 파트의 플레이 타임이 얼마 정도죠?”
“도시마다 들어가고 그중에는 좀 길게 잡혀있는 추격 장면도 있으니 전체적으로는 20시간 정도네요.”
“전에도 말했지만, 밀도가 너무 높아요.
아무리 동작 지원 시스템과 스테이터스 시스템의 보조를 받더라도,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액션의 종류엔 한계가 있습니다.
아마 게이머의 80% 이상은 다리도 못 찢는 사람이 대부분일 걸요?
그런 사람들에게 스턴트맨을 기준으로 잡은 액션 시퀀스는 너무 가혹하죠.
물론 화려한 건 보기에 매우 좋지만, 추격시간 전부를 개성 있는 액션으로 채울 필요는 없어요.
결국 이 파트에서도 게이머의 기억에 남는 가장 중요한 장면은, 마지막에 깃발을 잡으려다가 깃대가 부러져서 마차에 올라타게 되는, 바로 그 장면일 테니까요.
그러니 장면마다 ‘와 방금 나 진짜 개 쩔었다.’라고 생각할 만한 메인 액션을 정해두고, 나머지는 적당히 긴장감만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충돌을 피하려고 마차에서 건물 창문으로 뛰어든 다음, 미친 듯이 건물 속을 달려 반대편 창문으로 탈출에 성공했다.’라는 추억만이 기억에 깊게 남을 수 있도록요.”
그러자 에이미가 해리스의 의견에 반박했다.
그녀가 보기에, 매 추격 이벤트 전부를 액션 영화의 클라이막스처럼 만들겠다는 개발팀의 목표는 말 그대로 ‘로망’ 그 자체였기 때문에.
유저의 체력 조건을 생각해서 액션의 밀도를 줄여야 한다는 해리스의 생각에, 그녀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PTW의 모토는, 현재 개발팀에서 할 수 있는 전력으로 게임을 만드는 거예요.
단순히 유저의 체력이 달린다는 이유로 훨씬 멋져질 수 있는 액션 시퀀스를 밋밋하게 고치는 건 일종의 타협이죠.
저희가 해리스 씨에게 저희 팀에 합류할 것을 부탁한 이유는, 말 그대로 플레이어가 ‘스턴트를 하는 기분’으로 추격 시퀀스를 플레이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일반인이 휙휙 깰 수 있을 정도의 액션 시퀀스를 구성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해리스 씨에게 합류를 요청하지도 않았을 거라고요.”
때때로 자신들이 개발하는 게임을 너무나 사랑하는 개발자들의 모임은, 이러한 식으로 서로의 가치관에 의한 의견 충돌을 낳곤 했다.
그리고 상혁은 이 프로젝트의 리드 기획자로서 그런 충돌을 중재할 책임도 지고 있었기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서로의 주장을 꺾지 않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합의안을 제시했다.
“뭐, 두 분 다 하시는 말씀에 온당한 근거가 있긴 하죠.
생애 최고의 액션 씬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겠다는 에이미 씨의 의도도 개발자로서 가질 수 있는 멋진 자세 중의 하나이고, 반면에 게임을 플레이하는 게이머의 체력이나 신체 조건을 케어해야 한다는 해리스 씨의 의견도 개발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배려이기도 하고요.
사실 두 의견이 상반되는 의견이기 때문에 조율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서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러자 에이미가 상혁을 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집에서 게임만 하는 게이머들은 상대적으로 체력 조건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인데, 거기에 맞춰서 액션 시퀀스를 구성하면 게임이 한없이 밋밋해질 겁니다.
지금도 개발팀에서는 매일 같이 성룡의 액션 영화를 돌려보면서 어떤 식으로 멋진 액션 시퀀스를 만들지 열정적으로 논의하고 있어요.
방금 보신 멋진 추격 장면도, 바로 그런 노력의 산물이고요.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어떤 의견도,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것이 설사 저희 프로젝트에 핵심적인 도움을 주셨던 해리스 씨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그러자 해리스도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추격 장면에 들어가는 순간 거의 10분 가까운 시간을 숨돌릴 틈도 없이 달리고 뛰고 차고 점프하게 하면 유저들은 그걸 스트레스로 받아들일 겁니다.
저야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니 괜찮지만, 게이머들은 그렇지 않을 거란 말이죠.
영화의 액션 씬이 멋지고 화려한 이유는, 카메라가 전환되는 사이 사이에 스턴트맨들과 배우가 충분한 휴식을 가진 채로 촬영에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액션 배우도 원테이크로 이 정도의 액션을 한번에 소화할 순 없어요.
영화같은 장면을 만들겠다는 의도는 저도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영화는 씬 하나 촬영하는데 몇십, 몇백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에이미 씨가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서로가 한 치도 물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상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미소지으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좋아요. 지금 발생한 문제는 액션 연출을 화려하게 만들면 플레이어의 몸에 무리가 가고, 반대로 그럭저럭 할 만하게 만들면 장면이 밋밋해진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럼 그 문제는 충분히 해결 가능합니다.”
“어떻게요?”
“스턴트맨 정도는 되어야 소화가 가능한 액션 시퀀스라면, 플레이어의 신체 능력 수준을 스턴트맨 수준으로 올려주면 되죠.
해리스 씨. 너무 현실감이 높아서 잊어버리신 것 같은데, 저희가 있는 이곳은 PRD로 구현한 가상 세계입니다.
이곳에서 저희는 근력부터 점프력까지, 플레이어에게 적용된 모든 신체 스텟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죠.
그 말은, 점프 한 번에 몇 십 미터를 뛰어넘게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고요.”
그렇게 말한 상혁은 AI 어시스트를 호출해 일련의 작업을 지시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지시를 받아 AI가 구성한 새 스테이터스 창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제가 방금 임시로 구성한 ‘신체 스펙 조정’ 화면입니다.
여기 보시면 건너뛰기가 필요한 구간에서 체공 시간을 올려주는 기능이라던가, 아니면 벽에 붙었을 때 접지력을 올려주는 스킬, 플레이어가 질주 중에 쳐낼 수 있는 물건의 무게 한계를 올려주는 스킬.
그리고 돌진 중에 플레이어의 몸에 닿는 오브젝트를 저항 없이 파괴하거나 밀칠 수 있는 스킬 등이 있는데, 세부적인 스킬 종류는 좀 더 협의가 필요하겠지만, 일단은 이런 식으로 유저가 스킬을 찍어서 액션 씬의 난이도를 스스로 조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죠.
테이블을 뛰어넘는 게 어렵다면, 살짝만 힘을 줘도 엄청나게 크게 점프 되도록 점프력을 올리거나, 아니면 아무리 무거운 테이블이라도 그냥 밀고 지나갈 수 있게 하는 겁니다.
혹은 특정 상황에서 시동 자세를 취했을 때 PRD가 알아서 멋진 파쿠르 자세를 만들어 주는 일종의 ‘스턴트 스킬’도 도입할 수 있겠죠.
그런 식으로 플레이어의 신체 능력을 보조할 수 있다면, 아무리 화려한 액션 장면도 스트레스가 아닌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 요소로 받아들일 수 있을테니까요.”
“아예 액션 시퀀스만을 위한 스킬트리를 따로 만든다고요?”
“스킬 트리 형태는 아니지만, 예전에 올드스크롤 4편에서도 캐릭터 스테이터스 중에 달리기 속도와 점프력을 조정하는 수치가 있었어요.
그리고 농구 게임인 NBA 4K 시리즈에서는 돈을 주고 특정 선수의 슛폼을 사서 캐릭터에 장착할 수 있었죠.
거기 들어가는 베이스 시스템은 리얼엔진에 전부 탑재되어 있으니, 저희는 적절히 조합해서 이 게임에 맞는 새 시스템을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현재 지원하는 리얼엔진의 기능 확장이 필요하다면, 그 부분은 엔진 개발팀에서 바로 지원해줄 테고요.”
“이거, 지금 바로 테스트 됩니까?”
“당연히 리얼 엔진에서 이미 지원하는 시스템을 사용해서 구축한 기능이니 테스트가 가능하죠.”
“좋아요. 그럼 다음 테스트는 이걸로 신체 스펙을 올려서 에이미 씨가 직접 테스트 해 주시죠.
그렇게 해서 저 장면을 소화하실 수 있다면, 저도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좋아요. 저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서 해보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그 도전, 얼마든지 받아드리죠.”
그렇게 말한 에이미는 콘솔 창을 호출해 망가진 세트를 원래대로 복원시켰다.
그리고는 디즈니랜드에 처음 방문한 어린애 같은 표정으로, 해리스가 마차를 타고 출발한 위치를 향해 폴짝거리며 뛰어갔다.
그러자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해리스가, 씨익 웃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아무리 신체 스펙을 조정했다 하더라도, 에이미 씨는 한번에 건너편에 도착하지 못할 겁니다.”
“왜죠?”
“저 코스는 파쿠르에 웬만큼 익숙해야 어디로 가야 할지 판단할 수 있는 코스니까요.
게다가 건너편에 있는 군함에서 계속 포격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
아마도 그녀는 열심히 달리다 중간에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멈추게 되겠죠.
그리고 대포알에 맞아 날아갈 겁니다.”
그러자 상혁이 해리스에게 말했다.
“그럼 내기할까요?”
“내기요?”
“현재 에이미 씨의 신체 스펙을 조정할 수 있는 스킬 패널이 제 앞에 있죠.
제가 그녀의 스펙을 조정할 테니, 그녀가 건너편에 도착할 수 있을지 없을지 내기하자는 거죠.”
그러자 해리스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표정으로 상혁의 제안에 응했다.
“좋습니다. 내기하죠. 근데 대가로는 뭘 걸죠?”
“만약 제가 이기면, 해리스 씨는 유적 파트를 개발하고 있는 개발팀에 가서 그쪽에서 부탁하는 부탁을 하나 들어주셔야 합니다.
스턴트에 능한 사람이 필요한데, 계획을 듣자마자 모두가 도망갔다고 하더라고요.”
“좋습니다. 그럼 제가 이기면 다음 달에 있을 제 아들 생일 파티에 상혁 씨가 직접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종일 놀아주시죠.”
“제 연봉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비싼 대가네요.
좋습니다. 받죠.”
그러자 해리스가 헤실해실 웃는 표정으로 상혁에게 말했다.
“말했지만, 저 코스는 파쿠르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은 절대로 뚫을 수 없는···.”
“그럼 파쿠르를 안 하면 되죠. 아, 제가 말씀 안 드렸나요?
이건 테스트용으로 만든 스킬 패널이라, 스킬 레벨의 상한이 없어요.
그 말은, 충돌 시 오브젝트를 튕겨내거나 박살 내는 무게 제한을 무제한으로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죠.”
그렇게 말한 상혁은, 눈앞에 있는 홀로그램에 있는 스킬 하나를 미친 듯이 연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해리스는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보며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머리 두 개는 작은 키를 가진 에이미가,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대포알처럼 건물 벽을 통째로 ‘관통’하며 건너편으로 돌진했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중세 해적 영화에 원더우먼이 뛰쳐들어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내기는 제가 이겼네요. 러니 부탁을 들어주셔야겠습니다.”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상혁을 보며, 해리스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상혁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유적 팀에서 하려는 게 뭐길래 PTW안에 있는 스턴트 맨 출신 개발자들이 전부 고개를 저으며 도망갔습니까?
여기는 무술 전문가부터 헐리우드 출신 스턴트맨까지 말 그대로 액션에 미친 놈들이 한가득한데요?”
“인간 대포요.”
“예?!”
되묻는 해리스를 보며, 상혁이 말했다.
그가 제대로 들었는지 되물어야 할 정도로, 황당한 단어를 상혁이 언급했기 때문에.
“50m 정도 되는 절벽을 대포 안에 들어간 인간이 뛰어넘을 수 있는지 테스트해본다고 하더군요.
발리스타랑 투석기, 대포 중에 어느 게 가장 적합한지 테스트한다고 하던데, 가서 대포알 역할 좀 해 주시죠.
괜찮아요.
어차피 가상 환경이라 죽지는 않을 테니까.
대신 조준이 얼추 맞을 때까지 미친 듯이 돌벽에 처박혀야 하긴 하겠지만.”
상혁은 마치 저승사자처럼 해리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리고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이야, 덕분에 다른 팀 문제도 하나 해결했네요.
완성될 게임이 점점 기대되기 시작하는데요?”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얼굴엔, 조금 전 마법처럼 멋지게 분쟁을 해결한 천재 개발자의 표정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오로지 장난기만 가득 차 있는 사악한 미소가 가득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