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청와대 담판
“안녕하십니까. 청와대 정책 실장 곽용철입니다. 청와대 비서동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50대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손을 내밀며 인사하자, 상혁도 악수를 나누며 자신과 함께 온 일행을 소개했다.
“Play To Win의 CCO, 이상혁입니다.
이쪽은 저희 회사의 CEO, 김현주님이고 옆에 있는 사람은 CTO인 김민준이라고 합니다.”
“CEO 김현주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CTO 김민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미팅은 청와대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의 청와대 본관이 아닌, 청와대에서 500m 떨어진 청와대 비서동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에서, 상혁은 자신을 호출한 청와대의 ‘정책 실장’과 함께, 이번 인터넷 검열을 주도하는 방통위 인사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한국 방송통신 위원회 위원장 강재진입니다.”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 김규철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방통위 통신 심의 TF 팀장 김근수입니다.
공문으로는 여러 차례 연락을 나눈 적이 있었지만 만나 뵙는 건 처음이군요.
부디 이번 사태 수습을 위한 원활한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통신 심의 TF 팀원 박세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곽한철 정책실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된 수많은 정부 인사 중 최소한의 인원만을 미팅에 참여시켰다.
그런데도 과장급 직원인 박세준이 미팅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팀장인 김근수가 박세준을 회의에 참여시켜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김근수가 데리고 있는 인원 중에서, PTW라는 기업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인원이 박세준이었기에.
박세준은 평소대로라면 퇴직하는 그 순간까지 평생 만나지 못할만한 인물들이 한 방에 모여있는 모습을 보며, 감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김근수 팀장에게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 PTW를 사랑하는 ‘찐 팬’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그가 PTW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
정부 측에서 일하는 공무원으로서, 이번 사태에서 어떻게든 원만하게 PTW의 양보를 끌어내야 한다.’
여차하면 무례를 무릎쓰고 중간에 개입할 각오를 하면서, 박세준은 다른 일행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마치 노사 협상 자리처럼, 길쭉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정부측과 PTW측이 대치하는 사이,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이 자리를 마련한 청와대의 정책 실장, 곽용철이었다.
“분위기가 좀 가라앉은 느낌이군요.
PTW의 임원 여러분.
너무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저희가 만난 자리가 청와대라는 무게감 있는 장소이긴 하지만, 오늘 저희는 여러분을 책망 하기 위해서가 아닌,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 청와대로 초대한 것이니까요.”
용철은 부드러운 말 안에 은근슬쩍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단어를 섞어 넣었다.
‘무게감 있는 장소’라는 표현과 함께 일부러 비서동이 아닌 청와대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
그리고 ‘책망’이라는 단어를 써서, PTW가 발표한 소송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을 당장 하지는 않겠다는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마치 정부인 자신들이 ‘갑’이고, 기업인 PTW가 ‘을’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강조하려는 것처럼.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상혁은 여유있는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곽용철의 말을 맞받아쳤다.
“긴장이요? 그럴 리가 있나요.
저는 백악관만 3번 가서 3번 모두 도람푸 대통령을 1:1로 면담한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미국의 해지펀드 그룹과의 분쟁 해결을 위해서, 두 번째와 알카트라즈에서 진행된 워 다이버의 시연 행사를 위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도입이 결정된 워 다이버의 AI 설비를 한국과 미국, 어느 쪽에 설치할 것인가에 대한 협의를 위해 도람푸 대통령을 만났었죠.
청와대에 방문한 것은 처음이지만, 그래 봐야 본관도 아니고 비서동 아닙니까?
백악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도 자주 가봤는데, ‘고작’ 청와대 비서동 정도가 주는 무게감에 쫄 정도로 심장이 약하지는 않습니다.”
상혁이 대놓고 대한민국 정부를 미국 정부와 비교하며 곽용철을 도발하자, 곽용철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과연, 말 몇 마디로 페이트 북을 무너트리고 수천억을 우습게 굴린다는 헤지펀드 들을 박살 냈다는 소문은 허언이 아니었군요.
하지만 이건 기억하셔야 할 겁니다.
PTW는 대한민국 법의 적용을 받는 대한민국 기업이고, 백악관의 존재는 이번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될 거라는 사실을요.”
“글쎄요. 그건 좀 두고 봐야 할 일이겠죠.
하지만 사태가 어찌 흘러가든, 이번 협상 테이블은 사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정부가 어떤 제안을 하든 간에, 저희의 대응 방침은 결정되어 있으니까요.”
“소송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는 겁니까?”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게 흘러갈 겁니다.
저희가 보유한 특허의 소송 권한은 미국에 있는 독립 법인인 ‘크라켄’이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번 소송은 크라켄을 통해서 진행되는 국제 소송이 될 테니까요.
독립 법인 크라켄의 목적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들이 대리하고 있는 특허권의 원소유자가 위험에 처했을 때, 특허 소송이라는 수단이 유효하다고 판단되었을 경우 소유자를 대신해서 특허 소송을 제기하는 거죠.
그리고 이번 사태에서, 크라켄은 특허의 원 소유주인 PTW가 위기에 처했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소송은 그 판단에 따른 결과일 뿐이죠.”
“마치 PTW는 그 소송에 개입할 수 없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말 그대로입니다. 사태가 수습되었다는 판단이 들지 않으면, 설사 특허의 소유주인 PTW에서 특허 소송을 취하하라고 해도 크라켄에서 거부할 수 있으니까요.”
상혁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곽용철은 믿지 않았다.
애당초 독립 법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크라켄이라는 기업 역시 어차피 모든 수익을 PTW에 의존하는 자회사일 것이 분명하고, 독립 법인이라는 형태는 순전히 허울에 불과할 뿐이니까.
그리고 그 의도도 매우 명확히 보이고 있었다.
‘자신들은 정부의 의견에 따르고 싶지만, 소송의 주체가 다른 회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어쩔 수 없다는 포지션을 가지고 가려는 거겠지.
영악해.
소문대로 아주 영악한 놈이야.’
대놓고 언론에 소송 사실을 흘린 것도 의도된 행동일 것으로 생각하며, 용철은 근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이번 근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혁을 향해 말했다.
“우선 이번 사태가 발생한 상황에 대한 정부 측 입장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저희 측 설명이 PTW측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면, 서로의 오해를 바로잡고, 사태를 온건하게 해결하기 위해섭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시죠.”
상혁이 말하자 근수가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방통위에서 진행한 소위 ‘통신 검열 사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통신 검열 자체는 그 전에도 존재하긴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북한의 몇몇 불온 사이트들과 불법 사설 도박 사이트, 저작권을 위반하는 몇몇 사이트들이나 음란물을 유포 및 공유하는 특정 해외 사이트들에 대한 차단을 진행해왔죠.
그러나 인터넷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HTTP 기반 체계가 HTTPS체계로 변경되었고, 정부의 기존 차단 방식은 무력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방통위에서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 7항에 의거하여 HTTPS 기반 사이트의 차단을 위한 기능 개발을 민간 업체에 위탁하였습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특허권을 어긴 건 해당 기술을 개발한 민간 업체지, 정부가 아니라는 거죠.”
상혁이 조용히 설명을 듣고 있자, 근수는 설명을 계속 이어나갔다.
“또한, 이번 협조 요청은 온전히 합법적인 법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요청으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 심의위원회의 직무에 관한 규약에 따라 이루어진 요청입니다.
방통위는 법에 따라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 중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보의 심의 및 시정요구를 할 권한이 있고, 불법한 정보에 사용자가 접근할 수 없도록 통신 사업자에게 요청할 수 있는 온당한 권한이 있습니다.
KT나 SK, LG 등의 나머지 통신 사업체들은 모두 저희의 권고를 받아들여 HTTPS 검열을 위한 새로운 기능을 적용하였고, 현재 유일하게 PTW의 기술을 이전받아 ‘새 인터넷’을 제공하는 삼정 통신만이 해당 기능의 적용을 기술적인 이유로 거부하고 있었죠.
그렇기에 저희는 해당 인터넷 장비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PTW에 여러번의 협조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아침, 그 공문에 대한 답장으로 ‘정부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걸겠다.’라는 답변을 받았고요.
저희가 알고 있는 현재 사태의 원인은 이런 상태입니다.
혹시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몇 가지 있죠.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혹시 김근수 팀장님께서는 HTTPS가 어떤 문장의 약자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 정도야 알고 있습니다.
HyperText Transfer Protocol Secure 의 약자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중에 ‘S’는, 보안을 의미하는 Secure라는 단어의 약자죠.
그 체계의 목적은, 사용자의 컴퓨터와 방문한 사이트 간에 전송되는 사용자 데이터의 무결성과 기밀성을 유지하는 겁니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무단으로 도용하여 사용 중인 인터넷 검열 기술은, 그런 HTTPS의 의도를 무시하고 사용자가 보낸 패킷을 통신사에서 강제로 뜯어 어느 사이트에 접속하려 하는 건지 확인하고 그것을 차단하는 방식이죠.
거기에 사용되는 DNS Spoofing기반 기술은, 원래는 해킹에 사용되는 기술입니다.
원래 사용자가 인터넷을 통해 특정 사이트에 접속하려 할 때, 네트워크에서는 자신이 목적지가 아닌 모든 패킷을 무시해야 합니다.
오로지 사용자와 해당 사이트 사이에서만,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져야 하죠.
하지만 DNS Spoofing 과정에서는 자신이 목적지가 아닌 모든 패킷을 다 뜯어서 읽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목표한 패킷이 확인되면,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결과에 개입하죠.
이건 일종의 중간자 공격입니다.
문제는 현재 저희가 사용하는 새 인터넷은, 그런 형태의 중간자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특별한 보안이 적용되어있다는 겁니다.
중간에 사용자가 보낸 패킷이 어떤 상태에서든 목적지가 아닌 다른 사용처에서 오픈된다면, 새 인터넷의 장비들은 그 패킷을 오염된 패킷이라 인식하고 해당 패킷을 폐기하게 되어있죠.
요청하신 통신 검열 체계를 저희가 적용하기 위해서는, 저희가 새 인터넷에 적용한 핵심적인 사용자 보호 기술을 파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법을 지키는 유일한 방식이라면 법을 따르는 것이 대한민국의 기업으로서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어째서 소송을 제기하고 정부 정책을 거스르시는 겁니까?”
“그에 대한 PTW의 공식적인 답변을 드리자면, 저희는 정부 방침을 거스르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답신 드린 공문을 보시면, ‘해당 기술의 적용을 위해 기술적 문제를 해결 중이다.’라고 답변드렸을 겁니다.
기억하시나요?”
근수는 물론 그 답신의 내용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상혁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근수를 향해 말했다.
“그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저희는 저희가 개발한 암호화 체계를 무너트리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한 기술적 해결책을 지속해서 찾고 있었습니다.”
“그냥 대한민국의 사용자에게만 해당 보안 체계를 사용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게 그렇게 쉬운 문제면 바로 해 드렸겠죠.
문제는 이겁니다. 현재 넛플릭스와 구골, 너튜브등 수많은 회사들이 자신들의 데이터 센터에 새 인터넷용 장비를 들여놓고 있죠.
심지어 새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은 국가에서도, 데이터 센터가 있는 국가라면 전용회선을 우선 설치 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사업자들에게 새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패킷은 완벽하게 암호화되어 누구도 보지 않은 상태로 전달되고 있죠.
해외 기업이 사용하는 새 인터넷의 장비도 마찬가지고요.
거기서는 패킷이 도착하면 가장 먼저 그 패킷이 오염되지 않은 패킷인지를 확인한 이후에야 사용자의 접속을 허가합니다.
이 상태에서, 만약 대한민국에서 출발한, 보안이 적용되지 않은 요청이 온다면, 해외 사이트의 장비는 어떻게 대응할까요?”
“그거야 당연히 대한민국에서 오는 패킷에만 예외처리를 하도록···.”
“그럼 해커가 대한민국에서 온 것처럼 패킷을 위장하여 악의가 실린 요청을 보낸다면요?
오로지 대한민국에서만 진행되는 검열 체계를 위하여, 전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에 보안취약점을 두라고 강요하시는 겁니까?”
“그러면, PTW에서는 보안 문제를 이유로, 사용자가 불법 사이트에 마음대로 접속하도록 내버려 두겠다는 겁니까?”
“노력은 하고 있다니까요?”
“그건 그냥 핑곗거리가 아닙니까!”
근수가 소리쳤다.
“세계에서 가장 기술력이 좋아서, 다른 기업보다 몇십 년은 앞서있다고 평가받는 PTW에서, 고작 정부의 간단한 요청 하나조차 들어주지 못할 정도로 기술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그러나 상혁은 여전히 여유로운 목소리로, 근수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기술력이 좋다고 해서, 저희가 맨몸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애당초 새 인터넷은 처음부터 어떠한 중간자 공격도 허용하지 않도록 설계된 기술입니다.
가능한 모든 우회 방법이 완벽하게 통하지 않도록 철저한 검증 하에서 개발되었죠.
그리고 그 기술이 개발되던 당시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DNS Spoofing 같은 해커나 할 법한 요청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요.
전 세계의 어떤 해커도 뚫을 수 없도록 완벽하게 기술을 완성 시킨 상태에서, 저희는 새 인터넷을 세상에 보급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 좀 더 일찍 요청을 주셨더라면, 개발단계에서 일종의 우회루트를 허용할 수 있도록 개발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게 정말 장비의 문제라면, 댈한 민국 정부에서는 PTW의 모든 통신 장비를 회수하고 검열이 가능한 새 장비로 교체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PTW가 지금 하고 있는 서비스는 명백하게 범법행위를 내버려 두는 것이고, 정부의 입장에서는 법을 무시하는 기업의 행위를 간과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겠죠.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장비의 교체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정부가 요구하신다면, 그렇게 해야죠.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 하나만 해결해주시면 바로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문제요?”
“조금 전 저는 새 인터넷이 어떤 중간자 공격도 허용하지 않는 구조로 만들어진 기술을 통해 제공되는 서비스라고 말씀드렸죠.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았는데요.
저희가 거의 히스테릭 수준으로 새 인터넷의 보안 기술을 개발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바로 워 다이버 때문이죠.”
상혁이 언급한 것은, 과거 도람푸 대통령과 협의했던 워 다이버의 AI 센터에 대한 내용이었다.
당시 미군의 보안을 이유로 워 다이버의 전투 데이터가 담긴 AI 센터를 미국에 두고 싶어 했던 미 국방부와, 한국에 해당 센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상혁의 의견은 극명하게 대치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상혁이 끝까지 싸워 얻어낸 AI 센터의 한국 유치가, 지금은 PTW가 가진 가장 강력한 카드가 되어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전 세계의 미군이 사용 중인 워 다이버에서는 실시간으로 엄청난 전투 자료가 수집됩니다.
그리고 반대로, 그렇게 쌓인 방대한 데이터를 사용하여 PTW에서는 각 전투 상황에 가장 적합한 대응 방식을 미군 병사들에게 전달해주고 있죠.
그 중간에서 누군가가 패킷을 가로채 잘못된 작전 정보를 전할 할 수 없도록, 한국의 AI센터에서 전달한 패킷은 철저한 보안 상태로 최종 단말기인 워 다이버까지 전달됩니다.
저희가 그것을 위해 준비한, ‘새 인터넷’이라는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서요.
말씀하신 대로 장비 교체하라고 하시면 새로 개발해서 교체할 수 있겠지만, 교체를 위해서는 미 국방성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워 다이버가 쓰는 데이터 전송 라인은, 일반 사용자가 쓰는 데이터 전송 라인과 완전히 같은 라인을 쓰고 있으니까요.”
“어처구니가 없군요. 그걸 왜 대한민국 정부가 해결해야 합니까?
그건 PTW측에서 미 국방부를 설득하면 되는 문제 아닙니까?”
“뭐 저희가 해도 되긴 하죠. 하지만 저희에게 맡기시면 저희는 미 국방성에 이렇게 전달할겁니다.
한국에서 나가는 워 다이버의 패킷을 한국 정부에서 전부 까서 검열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중간자 공격이 가능한 형태로 워 다이버의 보안 수준을 낮춰야 할 것 같다고 말이죠.”
“그건 그냥 장비 교체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지금 대한민국 정부를 우롱하시는 겁니까?”
“저희 역시 미 국방성의 메인 서플라이어(SUPPLIER)로서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거기엔 장비의 교체 및 관리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도 포함되어있죠!
그래서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겠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에 이런 법이 있어서, 그걸 지키기 위해 보안 레벨을 낮춰야 한다고요.
그 과정에서, 최종 결정 권한을 가진 미국 국방부가 거절하면 저희도 답이 없죠.”
“그래서, 미 국방부를 등에 업고 있으니 대한민국 정부의 요청을 거절하겠다는 겁니까?”
“그게 불만이면 인터넷 사업자 자격도 철회하시던가요.
아 물론 그렇게 될 때는 전 세계의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워 다이버의 서비스가 동시에 정지된다는 사실도 알려드려야겠군요.
국제 분쟁이 될 소지가 분명하고, 게다가 데이터 센터 이전이 완료될 때까지 미군의 사망률이 크게 증가하고, 작전 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겠지만, 그건 미군의 사정이지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은 아니겠죠.
대한민국 정부는 야.동.을.못.보.게.하.는.게, 미군 병사들이 아프간에서 뒈져나가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비서실장님께서는 이 자리가 책망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지금 제 기분은 청문회라도 나온 기분이군요.”
그러자 용철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태를 진정시켰다.
“자신의 업무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 때문에, 근수 팀장의 말이 조금 격하게 나온 것뿐입니다.
진정하시죠. 대한민국 행정부의 누구도 현재의 사태가 상혁 씨가 말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김근수 팀장 자네도 지나치게 흥분하지 말고 저분들에게 사과드리게.”
그러자 근수가 화를 억누르며 상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의 과격한 언행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받아들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냐는 겁니다.
말씀드린 이유로 저희는 정부의 검열 체계를 새 인터넷에 도입할 수 없는 기술적 딜레마를 안고 있고, 정부는 불법 사이트로부터 대한민국의 인터넷 사용자를 보호할 책임을 수행해야 할 테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이 미국 국방성과 얽힌 문제가 된다면, 솔직히 대한민국 정부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대가를 치러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이번 검열 정책의 문제는, 그것이 단순히 성인 동영상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의 인생을 파탄으로 몰고 가는 불법 도박 사이트, 저작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불법 공유 사이트, 리벤지나 아동 포르노 같은 불법 영상을 공유하는 사이트들의 문제도 같이 얽혀 있는 문제니까요.
이 문제의 해결법과 관련해, PTW 분들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접속 차단이라는 형태로 해당 사이트들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형태로 인터넷 사용자를 유해 사이트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제가 해결책이 없으니 그냥 놔두자고 말씀드린다면요?”
“그럼 이번 검열 정책은 포기해야겠죠.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데, 저희가 더 우겨봐야 소용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정부에서 검증을 위해 해당 기술의 소스코드를 넘기라고 명령한다 하더라도, PTW에서는 미군 의 핵심 기술이 적용되어있다는 이유로 기술 제출을 거부하시겠죠?”
“잘 아시는군요.”
“그럼 저희가 쓸 수 있는 수단은 없습니다.
물론 해당 정책에 대한 전권을 가지고 있는 방통위에서 좋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청와대 레벨에서는 해당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웬일로 순순히 포기하시네요?”
“세상엔 협박이 통하는 상대와 아닌 상대가 있죠.
적어도 제가 보기에 PTW는 협박에 넘어갈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죠.
현재 대한민국 정부에서 강요하는 인터넷 검열 체계는, 사실 쓸데없는 방어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냥 귀찮을 뿐이죠.
어차피 VPN 같은 우회수단을 쓰면 대부분 회피가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럼 결국 사용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일단 노력은 해봤어.’ 정도의 의미밖에 없는 거죠.
게다가 사이트가 차단당한다 하더라도, 개발자는 얼마든지 새 사이트로 주소를 옮겨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고요.
이건 매우 소극적인 대응입니다.
게다가 정부의 차단 기준도 굉장히 모호하죠.
운 나쁘면 걸리고 운 좋으면 안 걸리는 식입니다.
악의 원흉을 잡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쓸데없는 귀찮음만 사용자에게 강요하는 식이죠.
말씀드렸던 대로, PTW의 새 인터넷에서는 사용자가 요청한 패킷을 중간에 들여다볼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공급자가 보내는 패킷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암호화되어 전달되죠.
그러니 이번 정책을 철회하면서, 정부에서는 PTW에게 바톤을 넘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부와 PTW 양측에서 최대한 노력을 해보았지만, 새 인터넷의 보안 레벨이 너무 높아 검열 체계가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요.
그리고 형평성을 위해서, 기존 통신 사업자들에게 적용되었던 인터넷 검열도 일괄 해제한다고 발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사용자의 보호는···.”
“고속도로에 오토바이로 진입했으면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위험은 운전자가 감수해야죠.
어차피 검열을 하든 하지 않든 인터넷 도박하는 사람들은 도박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VPN을 쓰든 안 막혀있는 다른 사이트를 이용하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그 짓을 계속하겠죠.
하지만 그런 위험이 있다고 해서 고속도로 전체를 틀어막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원칙의 문제입니다.
인터넷이란 매체를 개인이 어떤 용도로 사용하든, 그 책임은 개인이 져야 한다는 거죠.
‘불법 사이트에 가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이유로 정부가 모든 인터넷 이용자의 패킷을 감시한다는 건, 그 구실로 더 큰 규제를 불러올 겁니다.
지금 중국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요.
쓸데없이 멀쩡한 사용자의 인터넷 패킷을 감시해서 차단할 여유가 있다면, 그 여유는 불법 사이트를 운영하는 범죄자 잡는 데나 투입해주세요.
결국,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전 국민의 인터넷 패킷을 까서 확인하는 사이에도, 범죄자 새끼들은 주머니에 현금을 마구 쑤셔 넣고 있을 테니까.
PTW는 사용자의 패킷을 감시하는 행위에는 반대하지만, 인터넷이라는 수단으로 범법을 자행하는 범죄자에 대한 수사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 과정은 사용자의 패킷을 검사하는 방식이 아닌, 검증된 확인 요청을 범죄자의 인터넷 단말기에 보내는 식으로 이루어지겠지만.”
“그럼 국내에서는 불법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합법인 사이트에 대해서는….”
“그것 역시 홈페이지 주소가 특정된다면 해당 사이트의 패킷이 어느 지역에서 발생하는 것인지, 그 위치는 확인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해외 사업자를 구속할지 말지에 대한 여부는 해당 국가의 법에 따르게 되겠죠.”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결정하기엔 너무 큰 문제인 것 같군요.
우선 내부적으로 회의를 한 이후에, 최종 결정을 통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저희 PTW 역시, 정든 모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지속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요.”
회의는 그대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상혁 일행이 나간 회의실에는, 회의에 참여했던 정부 측 인사들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번 회의를 주도한 곽용철은 분노에 가득한 눈빛으로 김근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조금 전 상혁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내버려 두다니, 지금 제정신인가?”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아무런 강경 대응을 하지 않았기에, 오늘 이렇게 사건이 커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근수가 급하게 변명을 했지만, 용철은 전혀 듣지 않았다.
대신 용철은 근수의 정강이를 힘껏 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퍽!-
“으아악!”
근수가 정강이를 붙잡고 바닥에 쓰러졌지만, 용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소리쳤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일개 기업이, 그것도 겨우 게임회사 따위가 대한민국 정부를 협박하게 만들어?
그리고 패배 선언을 하라고?
이게 대한민국 행정부를 X으로 보고 있다는 소리랑 대체 뭐가 다르지?
자네가 말해봐.
대체 뭐가 다르냐고!”
“죄송합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방통위 위원장 강재진이 곽용철을 말렸다.
“진정하시죠. 이건 김근수 팀장의 잘못이 아니라, PTW라는 회사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거니까요.”
“하아···. X발···, 왜 이런 개 같은 상황을 만들어서….”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마무리는 해야겠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PTW의 요구대로 진행할까요?
아니면 다른 압박 수단을 사용할까요?”
“다른 압박 수단이 뭐가 가능하겠습니까?
저쪽에서는 정부에서 쓸 수 있는 카드를 전부 틀어막아놨어요.
그중에 어느 하나라도 건드리는 순간, 이건 외교분쟁으로 발전할 겁니다.
아마도 미국에서 주장하던 AI 센터의 위치를 강제로 한국으로 잡은 것도, 오늘의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억지로 밀어붙인 거겠죠.”
“설마요···. 저희가 HTTPS규제를 강요할 것이란 사실을 미리 알고 있지 않은 이상, 그건 불가능하죠.”
“그럼 진짜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요?”
“믿기 힘들지만 그렇게 믿어야죠.
워 다이버의 미군 도입. 그리고 AI 센터의 한국 유치.
그리고 새 인터넷의 공급.
그 모든 게 고작 정부가 강요하는 인터넷 검열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각각의 사항에 들어가는 대가가 너무 크니까요.
심지어 미래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겨우 야동 사이트 하나 편하게 보게 하겠다고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런 인간이 있다면, 그건 진짜 미친놈이겠죠.
상대하는 게 손해일정도로요.”
그들이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 상혁은 일행을 태운 차를 몰고 PTW 본사가 있는 천하대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상혁은 충격적인 고백을 민준과 현주에게 하는 중이었다.
“아마 한국에 있는 AI 센터에 그냥 리얼 엔진용 데이터밖에 없다는 걸 알면, 정부가 가만있지 않겠지?”
그러자 현주가 놀란 눈으로 상혁을 보며 말했다.
“그게 진짜야?”
“네.”
“하지만 거기는 무장한 미군 특수부대가 지키고 있잖아?
그리고 전에 도람푸 대통령과 직접 담판해서 한국에 짓기로 한 거기도 하고.”
“아무리 담판을 지었다고 해도 미군 윤용의 핵심이 되는 AI 센터를 지구 반 바퀴 너머의 한국에 허용할 이유가 없잖아요.
저건 가짜에요. 워 다이버의 진짜 데이터가 들어 있는 AI 센터는, 미국의 51구역 지하에 지어져 있어요.”
“그럼 한국엔 왜···.”
“이런 일이 있을 거로 생각해서, 한국에 진짜 데이터 센터가 있는 것처럼 속인 거죠.
지금 그곳을 지키고 있는 미군 특수부대원들도 그렇게 믿고 있고요.
미군으로서는 유지보수 문제 때문에 핵심 타격 대상인 전략자산을 미국이 아닌 한국에 두었다는 식으로 진짜 AI 센터의 위치를 속일 수 있고, 반대로 한국은 미국의 핵심 전략자산이 있으니 최우선 보호 대상이 되었다는 이미지를 받을 수 있고요.
사실 이건 미국 행정부에서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는 극비정보에요.
그러니 대한민국 행정부는 당연히 모르죠.”
“그럼 네 말은, 오늘 협박에 쓴 카드가 전부···.”
“구라핑이었다는 거죠.”
그러자 옆에서 상혁의 말들 듣고 있던 민준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로 야동 하나 편하게 보게 하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미친 짓을 시도한 돌 아이가 자신의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것은 민준의 기분을 한없이 유쾌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으하하하하!! 넌 진짜 내가 아는 놈 중에 제일가는 미친놈이야!!”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그래. 칭찬이지. 이런 미친놈이 아군이라서, 정말 든든하기 그지없구나.
안 그래요. 선생님?”
민준의 말에 현주도 미소 지었다.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이런 말도 안 되는 블러핑을 칠 수 있는 사람은, 현주가 알기에도 상혁 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현주는 운전대를 잡은 상혁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PTW라는 게임회사를 대한민국 정부조차도 건드리지 못하는 ‘언터쳐블’한 존재로 만들어버린, ‘무적의 방패’가 핸들을 잡은 채로 조용히 차를 몰고 있었다.
마치 지옥을 드라이브하는 악마처럼, 사악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그들이 탄 차는 미국 국방성의 최우선 보호 대상인 ‘거짓 전략자산’이 있는, 천하대의 PTW 본사로 조용히 이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