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400화 (401/485)

400. 가격인상

패키지 게임처럼 가격이 고정되어있는 시장에서, 공급자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익을 추구한다.

시장을 확장해 새 고객을 확보한다던가, 원가를 절감하여 생산비를 줄인다던가, 혹은 본 상품 외의 다른 수익모델을 찾아 나선다던가.

그러나 원가를 줄이는 방식은 필연적으로 제품의 퀄리티를 떨어트리게 되므로, 장기적으로는 그리 좋은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형 개발사들은 게임의 스케일을 키우고 그래픽을 향상하거나, 막대한 광고비를 지출하는 방식으로 기존 고객의 확대를 꾀하고 있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듯이, 그러한 투자비용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이윤의 감소와 리스크의 확대라는 단점도 함께 가져오게 되었고, 결국 대형 게임사들은 제3의 방식으로 부족한 패키지 판매 수익을 메꿀 방법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게임이 발매되기도 전부터 ‘얼리억세스’라는 이름으로 개발 중인 게임을 팔아먹거나, 혹은 사전 예약이라는 이름으로 몇 달 후에나 나올 게임을 미리 팔기도 하면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개발사들은 사전 구매 특전이나 초회 구매 특전 같은 아이템을 게이머들에게 제공한다.

게임이 할인될 때 사지 않고, 발매되자마자 정가를 주고 구매한 유저들을 위하여, 그 지불에 합당한 대가를 선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정가 판매를 유도한다 하더라도, 콘솔 게임기의 세대가 변할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개발비를 회수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기에, 개발사들은 확장팩과 DLC를 팔기 시작했다.

처음엔 괜찮았다.

재미있게 즐긴 게임의 확장 컨텐츠를 구매하여, 더 오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거나, 또는 완전히 클리어한 게임의 다음 이야기를 확장팩으로 즐길 수 있었으니까.

그것은 유저를 즐겁게 하면서 개발사에게 돈을 안겨주는 정당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영웅으로 죽거나, 끝까지 살아남아 악당이 된 자신을 마주하거나.”라는 하비 덴트의 말처럼, 초기엔 유저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들어지던 확장 컨텐츠들은 말 그대로 돈만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점점 물들어가고 있었다.

말을 빠르게 이어가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게임 리뷰어 ‘제로 펑츄에이션(Zero Punctuation)’은 이런 게임업계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평한 적이 있었다.

[20년 전의 상황은

‘우리 게임의 1/3을 공짜로 하세요.

그리고 그 나머지를 플레이 하기 위해 이 미천한 자에게 20달러를 하사할 것을 고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랬던 것이 오늘날에는

‘풀 프라이스! 당장! 이 천한 것!

로고 보여줬으니까!

6개월 뒤에 줄 거야!

10달러 더 내면 X달린 헬멧도 줄 테니까 가서 X대가리 인증이나 해!’]

비록 그것이 극단적인 비유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게임 시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DLC 가격의 합이 본 게임을 넘어 그 게임을 즐기는 콘솔 게임기의 가격을 넘어서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까.

그러나 PTW는 그러한 게임업계 트랜드의 대척점에 있는 게임 회사였다.

DLC를 팔지 않고, 사전 판매를 하지 않는다.

게임의 발매 이후에도 컨텐츠를 계속 추가하지만, 그 모든 패치는 무료로 진행한다.

그것은 첫 게임을 발매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PTW가 철저하게 지켜온 원칙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PTW가 오로지 패키지 판매 형식의 수익모델만 추구한 것은 아니다.

텍스트 기반 스포츠 시뮬레이션 게임인 ‘포수가 회귀를 숨김’ 같은 게임은 2만자 기준 100원의 과금을 요구하기도 하고, ‘배틀로얄 : 성배의 추적자들’의 경우에는 무료 온라인 게임이라는 장르 특성상 배틀패스 같은 수익모델을 적용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PTW가 수많은 게임을 발매하면서도 철저하게 지켜온 기본 원칙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을 지불한 게이머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상혁의 굳센 개발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발표한 ‘표준 가격’역시, 상혁의 그러한 생각이 강하게 적용된 가격이었다.

그러나 상혁이 간과한 점은, 모든 개발사가 PTW의 개발 모델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모든 개발사의 게임이, PTW의 게임처럼 발매되는 순간 수천만 카피의 판매고를 기록할 수는 없는 법이었기에.

상혁에게 이번 미팅을 요청한 인디 개발자 협회의 가격 조정 제안은, 바로 그런 게임업계의 현실적인 부분을 다루기 위한 제안이었다.

“인디 게임 개발팀부터 시작된 PTW의 창업 멤버이신 만큼, 인디 게임의 개발 환경에 대해서도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10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 인원들을 중심으로, 대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빅 스케일 게임들은 최대한 피하고, 수요는 적더라도 확실한 매니아가 존재하는 작은 시장을 대상으로 게임을 제작하곤 하죠.

그 과정에서, 일부 게임들은 발매 이후에 고작 수천 개의 판매고를 올리는 것이 끝인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인원이 적으니 규모가 큰 게임을 만들기는 어렵고, 게이머들은 게임의 스케일이 작다는 이유로 인디 게임에 풀 프라이스를 지불하려 하지 않죠.

그렇기에 현재 대부분의 인디 게임들은, 본인들이 가진 게임의 스케일에 맞춘 낮은 가격에 서비스 되고 있습니다.

3천 원짜리 퍼즐 게임부터 2만 원짜리 RPG까지.

그렇다고 저희가 200MB 용량의 작은 게임에 풀 프라이스를 받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이윤이 남을 수 있는 장사가 가능해야 시장이 유지되지 않겠습니까?

현재의 PTW는 대형 개발사 중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그래픽과 커다란 스케일, 독창성을 가진 게임들을 시장에 공급하고 있습니다.

다른 대형 개발사들도 그 수준의 퀄리티를 맞추는 걸 어려워하는데, 하물며 저희 같은 소규모 스튜디오들에게 PTW가 제공하는 게임의 퀄리티 허들을 넘어서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죠.

저희가 그런 게임들에게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메리트는, 오직 낮은 가격과 게임의 참신함 뿐입니다.

그 상태에서 PTW가 공급가를 낮춰버리면, 저희는 그것보다 더 낮은 가격에 게임을 판매해야 하겠죠.

PTW는 워낙 팬층이 두텁고 판매실적이 좋으니 그 가격에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저희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형 개발사가 59달러에 게임을 팔면 저희는 39달러에 게임을 팔아야 하고, 49달러에 게임을 팔면 29달러로 가격을 낮춰야 하죠.

그래도 판매량 자체가 터무니없이 낮게 잡히기 때문에, 이윤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게다가 온라인 플레이 같은 별도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힘들어서, 불법 복제에도 엄청나게 취약하고요.”

자신을 소규모 개발 스튜디오의 팀장이라고 밝힌 한 개발자의 하소연을 듣던 상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지금 말씀하신 설명의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만, 저희 측 입장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요.

괜찮으시다면, 저희의 입장도 들어주시겠습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상혁이 말했다.

“가장 먼저 소규모 개발팀이 대형 개발사의 퀄리티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저희가 리얼 엔진을 공개한 순간에, 기술력으로 인한 장벽은 해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리얼 엔진은 기존에 존재하는 장르에서 엄청나게 틀어진 시스템을 추가하지 않는 이상, 현존하는 게임 장르 대부분을 전문가의 도움 없이 아마추어 개발자도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개발되었죠.

저희가 리얼 엔진을 통하여 개발자 여러분들께 제공하는 라이브러리는 매우 방대합니다.

굳이 개발자가 고퀄리티 텍스쳐를 작업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엑사바이트((Exabyte / 100만 테라바이트) 단위의 방대한 실사 수준 텍스쳐 라이브러리도 제공되고, 조금만 주물럭거리면 오리지널 모델링을 쉽게 완성할 수 있는 모델툴도 제공되며, 전문적인 레벨 디자인 기술 없이도 쉽게 원하는 맵을 만들 수 있는 맵 툴도 지원되죠.

전문가가 필요한 대부분의 작업을 AI가 대신 처리해주기도 하고, 최적화도 엔진이 알아서 처리합니다.

실제로 저희가 진행한 리얼 엔진의 체험 이벤트에서 최상위 평가를 받았던 게임들 전부가 아마추어 개발자들의 프로젝트였죠.

심지어 대형 개발사 소속의 전문 개발팀도 상당수 참여했던 이벤트였는데도, 아마추어 개발자 집단이 전문 개발자들의 수준을 넘어서게 된 겁니다.

물론 리얼 엔진은 아직 한참 개선이 필요한 엔진이긴 하지만, 저는 지금의 리얼 엔진으로도 여러분들이 대형 개발사의 AAA급 게임과 좋은 승부를 벌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승부를 위해선 소규모 개발팀이 게임에 사용되는 리소스의 대부분을 PTW 라이브러리에서 가져와 사용해야 합니다.

직접 만드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기술이 필요할 테니까요.

물론 게임에 사용된 리소스가 PTW가 제작한 라이브러리에서 나온 것이니 PTW의 수익 분배 요구는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수익 대부분을 PTW가 가져가게 된다면 저희는 돈을 벌 방법이 없어집니다.

퀄리티가 올라가서 올라간 이윤 대부분을 PTW가 가져가게 될 것이고, 상황은 그 전보다 더 악화하겠죠.

전 세계의 개발자들이 리얼 엔진으로 게임을 만드는 가운데,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여 만든 게임은 더욱 설 자리가 좁아질 테니까요.

저희는 적어도 판매 가격의 현실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리얼 엔진의 영향으로 저희가 견디기 힘든 현실이 다가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실화라.”

상혁이 말했다.

“그러니까, 인디 개발자 연합분들의 요구는 리얼 엔진으로 발매되는 PTW의 게임 가격을 현재보다 인상해달라는 말입니까?”

“정리하자면 그렇습니다.

패키지 게임 가격은 10년 넘게 정체해 있었지만, 인건비와 물가는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올랐고, 그로 인해 들어가는 개발비도 엄청나게 증가했으니까요.

리얼 엔진을 사용하면 개발비가 줄어들 거라는 상혁 씨의 의견도 물론 일리는 있지만, 현재의 구조는 그렇게 줄인 개발비를 PTW에서 도로 가져가는 구조가 아닙니까?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청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자 대형 개발사 측의 개발자도 그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현재 PTW에서 개발 중인 YAS는, MMORPG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게임이죠.

마치 광산 크래프트의 멀티 서버처럼, 월드의 모든 요소를 AI와 플레이어들이 만들게 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분명 멋진 아이디어지만, 분명 게이머들 중에는 기존 형태의 MMORPG를 풀 다이브 환경에서 즐기고 싶은 유저들도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아까 상혁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월드 오브 전쟁크래프트’의 풀 다이브 버전을 해보고 싶은 게이머들도 분명 존재하겠죠.

하지만 저희가 그런 게임들을 서비스하고 싶다 하더라도, 그 가격을 저희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PTW의 YAS가 4만 3천 원이라는 가격에 서비스되고 있는 이상, 그 이상의 가격을 받기 위해서는 YAS보다 뛰어난 수준의 게임을 개발해야 할 테니까요.

물론 유저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면 낮은 가격에 대한 문제는 어느정도 커버가 되겠지만, 현재 시점에서 PRD의 보급률은 매우 낮은 편이라 할 수 있죠.

겨우 10만 명 수준의 마켓에서, 3만 명의 정도의 유저에게 매달 4만 3천 원을 받게 된다면 개발사의 최대 매출은 월 13억 정도가 한계입니다.

거기서 PTW에 지불할 라이선스비를 제외하고 나면, 이윤은 더 떨어지게 되겠죠.

라이선스비를 줄이기 위해서 오리지널 리소스를 많이 만들면 제작단가가 치솟을 거고요.

현재 기준으로 대형 MMORPG의 제작비용은 최소로 잡아도 200억 수준입니다.

매달 13억 정도의 수익으로는 몇 년을 서비스해야 겨우 개발비를 건지게 되겠죠.

상혁 씨도 PTW가 YAS를 서비스하는 건 적자를 감수하고 서비스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PTW는 그런 기형적인 수익구조를 버틸 수 있을 만큼 기초가 탄탄한 기업일지 몰라도, 다른 개발사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한 개발자는, 간절한 눈으로 상혁을 바라보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역시 리얼 엔진을 직접 체험한 순간, ‘이 엔진으로 멋진 게임을 만들고 싶다.’라는 강한 욕망을 느꼈던 개발자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상혁을 향해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PTW에서 독점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이득일 리얼 엔진을 공개한 가장 큰 이유는, 세상에 좀 더 멋진 게임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 아닙니까?

저희도 진정으로 멋진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희도 그런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부디 가격 정책을 조정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상혁은 고민했다.

4만 3천원이라는 서비스 가격은 게이머가 쉽게 여러 게임을 골라서 할 수 있도록 결정된 가격이었지만, 지금 자신을 설득하는 개발자들의 의견도 분명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게임이 수백만, 수천만 장이 팔리지는 않는다.

개중에는 몇만 장만이 꾸준하게 팔려나가지만, 매번 출시할 때마다 팬들을 즐겁게 하는 게임도 있고, 큰 이윤은 벌지 못하지만 순수하게 게임에 대한 애정으로 게임 개발을 이어나가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한 원동력은 돈이긴 하지.’

눈보라 사 같은 대형 개발사가 ‘디아볼로’같은 강력한 IP를 모바일로 출시하려는 이유.

10년 넘게 정액제를 고집하던 게임이 부분 유료화로 과금 정책을 변경하는 이유.

그 모든 것이 돈 때문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 돈의 힘을 가장 강하게 체감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좋습니다.”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상혁을 바라보는 가운데, 상혁이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대로 PTW가 독점하는 것이 가장 이득인 리얼 엔진을 굳이 공개한 이유는, 좀 더 많은 개발자가 멋진 게임을 만드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리얼 엔진이 가지는 낮은 진입장벽과는 별개로, 힘들게 만든 게임이 돈이 되지 않는다면 개발자 분들의 개발 의욕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죠.

그러니 좀 더 다양한 PRD 게임의 라인업 확보를 위해, 서비스 가격에 대해서는 조정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한 개발자가 발언권을 요청해 상혁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얼마 정도의 가격으로 서비스하실 예정입니까?”

“아마 내년, 그러니까 2019년 안에 PRD의 보급 대수는 300만대를 넘어서게 될 겁니다.

일본과 유럽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하게 될 거고요.

만약 여러분이 만든 게임이 300만명의 PRD 유저 가운데 1%에게만 팔린다고 가정한다면, 판매량은 3만 장 정도가 될 겁니다.

그 정도면 빅히트 수준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평균 수준의 인디 게임 판매 수량과 비슷한 수준이죠.

물론 PRD의 보급 대수가 늘어나고 시장이 활성화되면 구매수가 더 늘어나게 되긴 하겠지만, 당장 내년에 기대되는 PRD 게임들의 평균 판매량을 최소로 잡아서 계산해봤을 때, 2만 5천 원짜리 게임 3만 카피를 팔면 7억 5천 정도가 나옵니다.

그걸로는 10명의 개발자가 2년의 개발 기간을 두고 개발하기 조금 빡센 금액이죠.

그러니 인디 게임도 리얼 엔진으로 인해 올라간 퀄리티만큼, 기존 게임의 풀프라이스를 받을 수 있도록 기준 가격을 올리겠습니다.

여러분이 굳이 사전 예약이나 얼리억세스, 과도한 DLC의 판매 없이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앞으로 PRD로 발매되는 PTW의 게임들은 패키지 게임의 경우 12만원, 그리고 YAS같은 월 정액제 게임 역시 매달 10만원 정도의 가격에 서비스하려고 합니다.

그 정도 가격이라면 대형 개발사에서 발매하는 골드 에디션 수준이랑 비슷한 가격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저희 PTW에서는 그 가격에 게임을 팔아도 충분히 팔릴만한 게임을 만들 자신이 있으니까요.”

그러자 대형 개발사 소속의 개발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상혁에게 외쳤다.

“감사합니다!”

“그 정도 가격이면 저희도 적정가에 게임을 개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소규모 스튜디오 소속 개발자들과 인디 개발자들도 상혁을 향해 말했다.

“저희도 PTW에서 그 가격에 게임들을 서비스한다면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게임을 개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이제부터는 PTW 게임보다 압도적으로 볼륨이 작은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비난은 덜 받게 될 테니까요.”

“그 정도면 부분 유료화 모델을 포기해도 해볼 만하죠.”

“그럼 저희는 5만 5천원 정도에 팔아도 괜찮을 것 같네요.

어차피 기존에 만들던 게임에 비해서, 리얼 엔진의 사용으로 퀄리티는 압도적으로 올라갈 테니까.”

PTW의 양보로 모두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상혁은 조용히 미소지었다.

10년 넘게 정체되어있던 패키지 게임 가격 조정의 필요성 자체는 상혁도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6만 8천 원이 기준 가격인 지금도, 대부분의 개발사에서는 ‘골드 에디션’ 이나 ‘프리미엄 에디션’ 같은 우회 수단으로 게이머들에게 1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받아가고 있었다.

그걸로도 모자란 개발이익은, 각종 DLC 등으로 충당하기도 하고.

심지어 상당수의 게임들은 게임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나 경험치를 일부러 낮춰서 스트레스를 유발한 뒤에 경험치 부스터나 지도 마커를 팔아치우기도 했다.

상혁은 어차피 게임에서 필수적인 기능을 사는데 기존 패키지 가격에 더해 3만 원 정도의 금액을 더 지불해야한다면, 차라리 기준 가격 자체를 올려놓고 그 기능을 모두 포함하여 발매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발매할 때부터 이미 게임 안에 들어있는 데이터를 일부러 막아놓고, 단순한 ‘해금’에 돈을 받아먹는 현재의 콘솔 BM은 확실히 문제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결과적으로 모바일로 눈을 돌린 개발사들이 다시 콘솔 쪽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그것도 게이머들에겐 좋은 방향이 되겠지.’

그러나 그러한 결정이 마냥 좋은 것이라고만은 볼 수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구매자들이 장기적인 이득보다는 단기적인 손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었으니까.

비록 그 결정이 타사 개발자들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유저들이 볼 땐 결국 PTW의 주도 하에 콘솔 게임의 기준 가격이 인상된 것으로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에 불만을 품은 유저들은, 분명 PTW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이고.

상혁은 그런 미래를 생각하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눈앞에서 기쁨의 악수를 하는 수많은 게임 개발자들을 위해, 이제는 PTW가 업계의 메인 탱커가 되어 유저들을 상대로 탱킹을 해야 할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남몰래 주먹을 쥐며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현재 전 세계에 있는 게임 개발사 중에서, 유저들에게 콘솔 패키지게임의 기준 가격 인상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가 있다면, 그 회사가 바로 PTW일 것이기 때문에.

13년이 넘게 이어져 온 패키지게임의 ‘기준 가격’ 인상.

그것은 지금까지 유저들을 위한 결정만을 내려온 게임 회사만이 질 수 있는, 진정으로 무거운 짐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PTW같은 회사조차도, 혼자서 지기엔 버거울 정도로 무거운 짐.

그러나 상혁에게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13년 만의 가격 인상에 관해, 유저들을 설득할 수 있는 나름의 계산이.

그것을 떠올린 상혁은 아직도 기쁨에 젖어있는 개발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

갑자기 내려앉는 침묵과 함께 순식간에 자신을 향해 쏠리는 시선을 의식하며, 상혁이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물가 상승과 전반적인 게임들의 스케일 확장, 그리고 개발에 대한 적당한 동기 부여를 위해 가격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회의가 마무리된다면, 유저들의 모든 비난을 가격 인상을 주도한 저희 PTW가 지게 되겠죠.

솔직히 유저들이 볼 때는, 자금에 여유가 넘치는 PTW가 앞장서서 가격 인상을 주도하는 것은 단순히 이윤을 위한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저희는 게임 외적인 부분에서 충분히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에 지금 가격을 유지하거나 심지어 더 싸게 게임을 팔더라도 충분히 회사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의 가격 인상은 온전히 여러분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 되겠죠.

저희가 한발 물러서 양보한 만큼, 여러분도 저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상혁의 말을 들은 개발자들이 상혁에게 물었다.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고 여유가 넘치는 개발사의 책임자가, 그들에게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지 궁금했기 때문에.

“저희가 뭘 도와드리면 됩니까?”

상혁은 고개를 돌려 회의장에 모인 개발자들을 쓱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담합입니다.”

“담합이요?”

“예. 콘솔 패키지 가격의 전체적인 인상을 위해서는, 우리가 모두 함께 지켜야 할 기본적인 약속이 전제되어야 할 테니까요.”

그렇게 말한 상혁은 자신의 계획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개발자와 유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의 ‘가격 인상’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

한국으로 돌아온 상혁은 내부 회의를 거쳐 최종 가격을 결정했고, PTW의 임원들은 상혁이 결정한 가격에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PTW의 게임들은 그 퀄리티나 스케일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에.

특히 HC101에 들어간 천문학적인 개런티와 라이선스 비용, 게임 자체의 개발비와 PRD의 개발에 들어간 비용을 생각한다면 HC 101의 적정 가격은 12만 원이 아니라 20만 원에 팔아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게다가 다른 게임이면 확장팩이란 이름을 붙여서 별도로 판매할 대형 업데이트도 무료로 계속 진행해주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런 모든 부분을 고려한다면 12만 원도 비싼 가격이 아니라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자신감.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 게임의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오르더라도 팬들이 구매해줄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믿음처럼, PTW의 커뮤니티에서도 가격 인상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지금까지가 회사의 존립이 걱정될 정도로 지나치게 싼 가격이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룰 정도였다.

[솔직히 인당 수백만 원 들어간 NE 컨벤션도 2만 원만 받고 팬서비스 차원에서 제공하던 회사인데, 그런 회사 게임이라면 12만원도 비싼건 아니지.

지금까지 발매된 게임 모두 발매 후 업데이트 용량이 본편보다 두세배는 될 정도니까.

그 모든 무료 업데이트를 고려하면, 가격 인상은 충분히 받아들일 만하다.]

[6만 8천 원에 파는 게임이 지금 수준인데, 12만 원에 파는 게임은 더 끝내주겠지?

난 적극 찬성.]

↳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보면 안 된다.

가재가 뛰면 망둥이도 뛴다고, PTW야 가격 인상이 납득가는 퀄리티의 게임들을 내놓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다른 게임사들도 일제히 패키지 가격 인상을 공지했다고.

↳ 윗놈 말이 맞음. 지금 DA나 UDI에서도 신작 가격 인상 공지했는데, 앞으로 콘솔 패키지 기본 가격이 8만 9천 원이 될 거란다.

갑자기 2만 원이나 올랐는데 그럴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겠음?

전부 PTW가 가격 인상 발표하니까 그 뒤에 숨어서 따라 올리는 거지.

↳ 근데 가격은 대체 왜 올리는 거야? 안 그래도 PTW는 돈 많잖아?

게다가 스트리밍 이벤트 때 유저들에게 약속했던 서비스 가격도 올려버리고.

초심 잃은 거 아니냐?

↳ YAS의 가격은 좀 다르게 봐야 함. 어차피 PTW에서 가져가는 돈은 월 16000원 수준이고, 나머지는 유저들에게 환원하는 금액이라고 했었으니까.

그 정책을 고치지 않았다면, 가격이 월 1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그건 다시 유저들에게 돌아가는 돈임.

잘하면 게임으로 월 수천만 원 버는 사람도 나올지 모르지.

↳ 개발자 친구한테 들었는데 자기는 참석 못 했지만 이번에 눈보라 사에서 개발자들이 단체로 모여서 가격 인상에 대한 회의를 벌였다고 함.

이번 가격 인상은 그 담합의 결과고.

↳ PTW와 담합이라. 세상에서 가장 안 어울리는 두 단어의 조합이군.

그러나 논쟁 속에서도 호의적인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는 커뮤니티의 반응과는 다르게, 이슈를 좋아하는 언론의 반응은 매우 공격적이었다.

지금까지 ‘반 기업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던 PTW에서, 이윤 추구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프레임은 높은 조회 수를 벌기에 딱 좋은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PTW에서 가격 인상 공시를 발표한 순간부터, 전 세계의 게임 언론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PTW에 대한 의혹 기사를 마구 쏟아내었다.

[패키지 게임 가격의 급격한 인상.

PTW, 앞으로 발매할 PTW의 패키지게임 가격을 12만 원이라는 초고가로 인상하겠다 밝혀.]

[‘정찰제 유지’로 유명한 PTW에서 갑자기 두 배 가까운 인상 폭을 발표한 이유는?

PTW 위기설에 대해 알아보자.]

[PRD의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회사 경영에 위기가 온 PTW.

공격적인 가격 인상을 통해 돌파구를 물색 중?]

[‘유저 만을 생각한다’던 PTW.

개발사를 대표하여 콘솔 게임의 가격 인상 흐름을 주도하다.]

[‘혜자 기업’으로 유명한 PTW가 갑자기 가격 인상을 주도하는 이유는?]

연일 이어지는 언론의 의혹 기사.

수많은 언론이 PTW의 진의에 대해 파악하고자 PTW에 취재를 시도했지만, PTW에서는 모든 언론의 취재를 거부하며 침묵 모드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가격 인상 공지 이후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상혁은, 결국 인상 공지를 올린 지 두 달이 지나서야 언론 앞에 모습을 비추었다.

혼자가 아닌, 다른 대형 개발사들의 대표와 함께.

PTW 본사가 있는 한국에서 진행된 기자 회견.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말 그대로 현재의 콘솔 게임계를 움직이는 진정한 거물들이었다.

SANY의 대표 요이다 켄이치.

MS의 회장인 윌 게이트.

그리고 Ms-Gaming 사업부의 총괄 책임자인 필 스펜더.

넌텐도의 CEO 우루카와 쥰타로.

DA 게임즈의 앤드류 윌튼과 UDI 소프트의 이브 기예모.

그것은 심지어 눈보라 사와 에픽 게임즈, 스퀘어 에닉스의 관계자까지 참여한 대형 기자 회견이었다.

그리고 한군데 모으기도 힘든 그 쟁쟁한 인원들 가운데 당당히 자리를 차지한 이상혁의 모습은, 현재 콘솔 게임업계, 아니 게임업계 전체에서 PTW가 차지하는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콘솔 게임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홀로 전 세계 콘솔 업계를 이끌어나가는 차세대 거물.

이상혁이 대체 무슨 발표를 하려는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상혁이 조용히 기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침묵하고 있던 2개월간 그가 전 세계의 게임사를 돌아다니며 이루어낸 계획의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가격 인상을 대가로 상혁이 게임업계에 요구한 조건.

그것은 상혁이 회귀하기 전과 회귀한 이후의 게임업계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는, PTW가 일으킨 거대한 변혁의 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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