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99화 (400/485)

399. 게임업계의 바벨탑

LA 남부의 어바인에 위치한 눈보라 게임사의 본사 건물.

그곳의 대회의실에 수많은 개발자가 모여 있었다.

4K, DA, UDI 소프트 등의 대형 개발사 소속 개발자부터, 소규모 스튜디오 소속의 개발자, 그리고 리얼 엔진의 공개로 처음으로 게임 개발에 발을 들여놓게 된 아마추어 개발자들까지.

회의실의 모습은 흔히 개발자들의 축제라고 알려진 GDC보다 더 많은 개발자가 모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그 구성원들은 본인들이 소속된 그룹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보였는데, 칠레나 아르헨티나 같은 남아메리카 지역의 개발자부터 일본이나 한국 같은 아시아권에서 온 개발자들, 그리고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유럽권에서 온 개발자들까지 한자리에 모여있는 모습이 마치 만국 박람회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들을 하나로 묶는 외형적인 공통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회의에 참가한 사람 중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딥 다이버’를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요즘 국제 회의에서는 딥 다이버의 실시간 번역 및 AR 기능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기에.

각양각색의 복장을 하고 있으면서도 머리에 딥 다이버만은 똑같이 착용하고 있는 그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현재의 PTW가 세계에 끼치고 있는 영향력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었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하늘에 닿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다고 하죠.”

대기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상혁이 말하자, 옆에 있던 직원이 물었다.

“바벨탑이요?”

“인간들이 천국에 닿기 위해 쌓기 시작한 탑인데, 그 모습을 보고 노한 하나님이 작업하고 있는 모든 인간의 언어를 제각각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온 땅으로 훑어졌고, 지금의 사람들이 전부 다른 언어를 쓰는 게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창세기에 쓰여있어요.”

상혁의 말을 들은 PTW 직원은 왠지 모르게 그 말에 뼈가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의 권능에 도전하다 언어가 갈라져 버린 인간들.

그 인간들이 다시 한번 언어의 장벽을 넘을 수 있도록 만든 PTW에서, 이제는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천국이 될지도 모르는, ‘가상세계’의 구축에 가장 앞장서고 있었기 때문에.

상혁을 따라온 PTW의 직원, 이범배는 상혁의 시선을 따라 회의실에 모인 수많은 개발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상혁을 향해 말했다.

“21세기의 바벨탑을 쌓을 인부들은, 바로 저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러자 상혁이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탑을 쌓을 때 가장 중요한 건 기초입니다.

단단한 기초가 있어야, 높게 쌓아도 탑이 무너지지 않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그 탑의 설계를 맡은 존재가 바로 저희, PTW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범배를 향해 말했다.

“아마도 오늘의 회의는, 그 ‘바벨탑’의 구체적인 비전과 설계를 공유할 중요한 회의가 될 겁니다.”

***

“이상혁이다!”

강단으로 들어서는 상혁을 발견한 UDI 소프트의 임원이 소리치자, 각자의 언어로 시끄럽게 대화하던 개발자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상혁은 그 익숙한 시선을 받으며, 조용히 강단으로 걸어가 딥 다이버를 뒤집어 썼다.

신이 만들었다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여기 모인 모든 개발자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상혁은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전 세계의 개발자들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PTW의 CCO, 이상혁입니다.”

강연이나 이벤트를 위해 마련된 자리가 아니었기에, 상혁이 인사를 끝냈어도 박수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평소부터 PTW의 행보를 존경하고 있었거나 상혁에게 동경심을 느끼는 일부 개발자들이 엉덩이를 살짝 들어 상혁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그런 반응을 충분히 예상하였던 상혁은 이런 모임에서 으레 지켜지기 마련인 자기소개 등의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바로 이번 모임의 메인 아젠다를 꺼내 들었다.

어차피 이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 자신이 누군지 모를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소개 같은 건 생략하고 바로 메인안건으로 넘어가죠.

이번에 열린 ‘대 개발자 미팅’은, 저희 PTW가 아닌 대형 게임사들과 인디 개발사들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모임입니다.

그러니 어찌보면 제가 여러분을 모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모여서 저를 불렀다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여러분이 여기 참가하는데 들어간 모든 비용을 저희 PTW가 내긴 했지만요.”

청중석보다 살짝 높은 높이의 연단위를 걷기 시작하며, 상혁이 말을 이어나갔다.

“우선 지금 회의에 참석하신 인원이 2000명을 넘는 관계로, 동시에 모든 인원이 말을 하면 회의가 진행될 수 없는 부분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렇기에 메인 스피커에 연결되는 인원은 매번 단 한 명만 연결되게 될 겁니다.

하지만 보통 이런 회의에서는 발언권을 얻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제자리에서 손을 들고 방방 뛰게 마련이죠.

그래서 이번엔 좀 차분한 분위기로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약간의 준비를 해놨습니다.”

상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딥 다이버의 AR기능을 사용해 만들어진 ‘가상의 버튼’이 청중들의 눈 앞에 등장했다.

푸른색과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버튼’엔, 각자가 사용하는 국가의 언어로 ‘질문’과 ‘의견’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단순한 기능을 앞에 두고서, 상혁은 개발자들에게 말했다.

“질문 하고 싶다고 소리 지를 필요도 없고, 손을 들 필요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푸른 버튼을 누르시고, 질문이 있으시면 붉은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발언권을 얻게 되시면 눈앞에 ‘말씀하세요.’라는 메시지가 뜨게 될 겁니다.

그럼 발언자분께서 미리 입력한 프로필이 청중분들의 눈 앞에 뜨며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딥 다이버를 통해 번역된 말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죠.

그러니 자기소개도 생략하겠습니다.”

거기까지 설명한 상혁이 씩 웃으며 청중들에게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게임의 미래(the future of games)’포럼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포럼의 오프닝은 아무래도 이번 대회의를 요청하신 DA측의 발언자가 맡는 게 좋겠네요.

먼저 발언권을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개발자가 일어나 말했다.

“DA 스포츠 소속 개발자···. 아, 프로필이 뜨니 자기소개는 하지 말라고 하셨죠.

다들 아시고 계시는 사항이긴 하지만, 회의의 방향이 메인 아젠다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 회의의 목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리얼 엔진의 사전 라이선스 부여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건 저희 DA측과 UDI 소프트, 4K 게임즈 같은 대형 개발사 측에서 요청한 주제입니다만, 현재 PTW의 리얼 엔진은 사전 체험 이벤트가 종료되어 최종 당선된 3개의 프로젝트 이외에는 접속이 막혀있습니다.

그러나 저희같이 대형 프로젝트를 다루는 개발사 입장에서는, 게임 하나를 만드는데 몇 년 이상의 투자와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새 엔진을 사용하여 게임을 만드는 것에서도 그 부분을 고려해주셔야 리얼 엔진의 도입이 가능하죠.

게다가 HC101이나 YAS같이 PRD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표준적인 게임의 스케일을 고려해 볼 때, 아마도 수백명의 개발자들이 몇 년을 집중해서 개발에 투입되어야 유저들이 만족한 만한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저희 대형 개발사 측에서는 긴 개발 기간, 그리고 기존의 개발자들이 새 엔진에 적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의 확보를 위해 PTW에서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를 별도의 계약을 통해 풀어주시길 요청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별도의 대가를 지불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죠.

두 번째 회의 주제는 소형 스튜디오 진영에서 발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중간쯤에 앉아 있던 다른 개발자가 일어나 발언을 시작했다.

“저도 자기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저희 인디 개발자 연합의 요청은, 물론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공개 시점 재고에 대한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게임의 서비스 가격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려 합니다.

이전에 PTW에서 YAS의 월 정액 가격에 대해 공지하셨을 때, 솔직히 조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월 4만 3천원이라는 가격은 PTW가 확보하고 있는 팬들의 숫자를 고려하면 PTW 입장에서는 충분한 가격일지 몰라도, 저희 같은 후발주자들에겐 매우 위험한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YAS 수준의 퀄리티를 가진 게임이 월 4만 3천원에 서비스 되는 상황에서, 그보다 퀄리티가 낮을 수밖에 없는 저희 같은 개발사의 게임들은 그보다 낮은 가격에 게임을 팔아야 하는 사태가 올 테니까요.

당시 가격 정책에 대해 발표하시면서, 이상혁 CCO께서는 표준(Standard)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셨습니다.

그것은 게이머들에게는 지극히 이상적인 가격일지 모르나, 게임 개발이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고려하면 지나치게 낮은 가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후 PTW에서 발매할 PRD 전용 게임에 대한 표준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회의에서 진행하려 합니다.

이것이 이번 회의의 두 번째 과제입니다.

물론 이렇게 PTW 같은 주목받는 개발사의 CCO와 대화할 기회가 흔치 않은 건 사실이지만, 오늘 회의의 메인 아젠다는 앞으로의 게임 생태계를 바꿔버릴 수도 있는 중요한 이슈니까요.

그러니 여러분께서는 되도록 이 메인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종류의 질문과 대화를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상혁은 조용히 두 사람의 발언을 경청했다.

그리고는 벽 쪽에 있는 의자를 끌고 와 자리에 앉았다.

일부러 편안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상대가 대화 중에 위압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상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인디 개발자 협회를 대표해서 발언한 개발자를 향해 말했다.

“깔끔한 정리 감사드립니다. 그럼 우선 첫 번째 안건부터 논의하죠.

우선 리얼 엔진의 사전 공개에 대해서는, 당장 새 엔진을 가지고 게임 개발에 뛰어들고 싶은 여러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게임 엔진은 범용형 엔진과 특화형 엔진으로 구분할 수 있죠.

특정 장르의 게임을 만들기 편하도록 제작된 엔진을 특화형 엔진이라고 한다면, 장르와 관계없이 어떤 게임이든 제작할 수 있도록 설계된 엔진을 범용형 엔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굳이 따지면 RPG 장르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 특화된 ‘RPG 만들기’ 같은 게임 툴은 특화형이라 할 수 있겠고, 유니티나 언리얼 엔진같은 엔진은 범용형 엔진이라 할 수 있겠죠.

둘 사이의 차이는 명확합니다.

특화형 엔진은, 그 특화된 장르의 게임을 만들기엔 매우 편한 툴이지만, 그 범위를 조금만 벗어나면 매우 귀찮은 툴이 되죠.

반대로 범용형은 뭐든지 만들 수 있지만 뭐든지 불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리얼 엔진은, 바로 그 두 엔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엔진이고요.”

상혁은 자신의 시야에만 보이는 홀로그램 UI를 이리저리 조작한 뒤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PRG 만들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탑뷰 형식의 맵 제작 화면이 청중들의 앞에 등장했다.

“이건 여러분도 알고 계실 RPG 만들기의 맵 제작화면입니다.

보시다시피 드라군 퀘스트류의 2D RPG를 만드는데 특화된 형태의 맵툴이죠.

만약 이것을 쿼터뷰나 3D 형태의 맵 제작 툴로 바꾸려고 한다면, RPG 만들기의 엔진 자체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엔진을 뜯어고치는 순간, 이 엔진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맵 제작 툴은 완전히 잉여가 되어버리죠.

이건 모든 특화형 엔진의 숙명입니다.

3D FPS를 만드는 데 특화된 엔진으로 2D 탑뷰 형식의 RPG를 만들면,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수많은 기능이 쓰레기가 되어버리죠.

게다가 성능적으로도 엄청나게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렇기에 범용형 엔진을 개발하는 개발사에서는 가급적이면 버려지는 부분을 줄이기 위해 특정 장르에만 편중되는 기능들을 잘 넣어주지 않죠.

그러나 리얼 엔진이 추구하는 방향은 정 반대입니다.

‘버려질 거 각오하고, 그냥 전부 때려 박자.’가 리얼 엔진의 모토니까요.

‘상상의 샘’에서 여러분이 SRPG를 만들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리얼 엔진은 SPRG에 특화된 기능을 제외한 모든 기능을 버려버립니다.

그리고 그런 형태의 제작이 가능하게 하려면, 엔진 자체가 거의 모든 형태의 게임 장르를 소화할 수 있도록 엄청나게 많은 툴과 라이브러리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죠.

개발자가 원하는 것이 어떤 장르일지 모르니, 가능한 모든 장르에 필요한 툴과 데이터를 제공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밖의 범위에 있는 장르의 게임에 대해서는, 아예 새 툴과 라이브러리를 업데이트하는 식으로 처리해야 하죠.

리얼 엔진은 현재 PTW에서도 스컹크 웍스 멤버를 제외하면 마스터 클래스 프로그래머들만 메인 프레임의 코드 수정이 가능할 정도의 프로그램입니다.

워낙 복잡한 기술이 적용된 물건이라 개발사인 저희도 함부로 건들기 꺼려지는 물건이죠.

그런 리얼 엔진을 가지고 여러분이 요구하는 모든 게임을 표현하게 만들려면, 저희에게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번 체험 이벤트의 목적이 바로 그것이기도 하고요.

‘아, 우리는 이 정도까지 구현해놓았는데 개발자분들은 이 정도까지 바라시는구나.’

현재 스컹크 웍스 멤버를 포함한 PTW의 개발자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중이며, 저희의 목표는 리얼 엔진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게임 장르에 특화된 게임 제작 기능을 제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니?! 설마 이런 것까지 가능하다고?!’라는 비명이 절로 나오는 수준의 멋진 게임 엔진을 만들기 위해서요.”

그러자 상혁의 앞에 ‘질문’을 의미하는 수없이 많은 붉은 색 창이 떠올랐다.

상혁이 그중 하나를 터치하자, 발언권을 얻게 된 한 개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상혁 CCO가 하시는 말씀은, 개발사들이 100% 개발하고자 하는 게임을 지원하기 위해서, 리얼 엔진의 개선작업을 하기 위해 라이선스를 닫았다는 의미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이벤트에서 선정된 3개의 게임은 리얼엔진에서 100%지원하는 형태의 게임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게 목적이라면, 그냥 저희가 보고 현재 엔진이 지원할 수 있는 범위 안의 프로젝트를 선정했겠죠.

이번 체험 이벤트의 최종 선정작은 100%유저 투표를 통해 이루어졌기에, 엔진의 지원 여부와는 상관없이 작품들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럼 그 게임들에 필요한 기능이 리얼 엔진에 없다면 어떻게 되나요?”

“그때그때 요청을 받아 필요한 기능을 저희가 만들어서 추가해드릴 겁니다.

현재 3개 팀 모두, 아마추어 개발팀이 주축이라 리얼 엔진을 개선할 만큼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가 없으니까요.”

만족한 표정으로 질문자가 자리에 앉자, 상혁은 다른 개발자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그게 의도라면, 현재 완벽하게 지원하고 있는 게임들에 대한 개발은 풀어주셔도 되지 않을까요?”

“그 범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저희가 여러분이 만들려는 게임에 대해 완벽히 파악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기술 지원 때문에 병목 현상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이 개발하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기능이 있는데, 여러분이 직접 만들기엔 무리인 기능이 있다고 치죠.

여러분은 엔진 개발사인 PTW측에 기술 지원을 요청할 수 있겠지만, 저희가 밀린 일정을 처리하고 해당 기능을 추가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저희의 귀책사유로 개발이 늦어지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한 비난은 저희가 감수해야 하게 되겠죠.

저희야 비난만 감수하면 그만이겠지만, 실제 개발 1선에서 작업하는 여러분들은 시간과 인력, 돈을 손해 보게 될 겁니다.

저희는 그런 사태가 나오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는 거고요.”

“그럼 그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고 하면, 라이선스를 풀어주실 수 있습니까?

대형 개발사 중에는 PTW의 마스터 클래스 수준으로 실력있는 프로그래머를 보유하고 있는 곳도 있죠.

그런 곳이라면 별도의 애드온 추가나 리얼 엔진의 코드 수정 기능을 통해 게임에 필요한 오리지널 코드를 작성하거나 툴을 추가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간단한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처리를 하고, 기술적으로 도저히 처리가 어려운 부분만 PTW에 기술 지원을 요청하는 식으로,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를 풀어주는 것도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조건으로라면, 미리 조건을 협의한 후에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연장을 허가하겠습니다.”

그러자 다른 개발자가 상혁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그럼 아예 기술 지원을 포기하는 조건으로도 엔진 라이선스를 허용해주시죠.

애당초 소규모 스튜디오나 인디 개발팀에서는, 그렇게 획기적이고 복잡한 시스템을 설계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희 팀만 해도, 만들려는 게임이 현재의 리얼 엔진만 가지고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게임이고요.

그러니 지금 현 상태로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입이 벌어질 만한 수준인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를 풀어주신다면, 전 세계의 많은 개발자가 멋진 게임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찌됐건 리얼 엔진이 기존의 게임 엔진보다 월등한 엔진인 것은 사실이니까요.”

“기술 지원에 대한 의무를 저희 PTW에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원하는 개발사는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를 연장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그 경우에도 당분간 저희가 진행하는 라이선스 심사는 받으셔야 합니다.”

“라이선스 심사요?”

“다들 아시다시피 리얼 엔진은 마음만 먹으면 30분 정도만 투자해도 AAA급 게임의 제작이 가능한 엔진입니다.

물론 그 경우 게임의 구성요소 전체가 저희가 제공하는 라이브러리를 사용한 게임이 되기 때문에, 개발자는 1%의 수익도 받아가지 못하게 되겠죠.

하지만 개발사 중에는, 그런 리스크를 감수하고 적당한 수익만을 노린 채 양산형 게임들을 쏟아낼 목적으로 리얼 엔진을 사용하려는 개발사도 나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보유 중인 기존 게임의 리소스를 왕창 불러와서. 퀄리티도 낮은 데다 아무도 쓰지 않을 모델링 쪼가리를 대량으로 게임에 삽입하고, 분배 비율을 강제로 조정해서 20~30% 정도의 수익비율만 받는 게임을 계속 내놓을 수도 있죠.

저희는 리얼 엔진의 개발사이기도 하지만 PRD라는 콘솔 플랫폼의 운영사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마켓이 그런 의미도 없는 쓰레기 게임들로 가득 차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물론 PRD 마켓에 신선하고 재미있는 게임들이 대량으로 확보되고, 유저들에게 충분한 선택의 권한이 확보되었다고 생각하면 심사 없이 누구나 만든 게임을 자유롭게 올리게 할 생각이지만, 아직 자리를 잡는 단계인 상황에서 그런 방식으로 개발사의 꼼수를 용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말씀은 PTW에서 PRD 마켓에 올라갈 게임들의 퀄리티를 심사한다는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플랫폼 제공자 측에서 게임 내용을 심사한다는 건 지나친 억압 아닙니까?”

“리얼 엔진은 PS나 X-BOX, PC와 모바일 포팅도 지원합니다.

원하신다면 그냥 스팀으로 출시하시면 됩니다.

제한되는 건 풀 다이브를 지원하는 PRD 마켓 뿐입니다.

그것도 일시적으로 제한되는 것뿐이고요.”

“그럼 YAS의 경쟁상대가 될 수 있는 MMORPG 장르의 게임이 심사에서 떨어질 수도 있겠네요?”

“말했지만 리얼 엔진을 이용한 심각한 어뷰징 행위에 대해서만 제재를 가하겠다는 겁니다.

하지도 않을, 관심도 없는 완전히 똑같은 게임들의 산에 파묻혀서, 좋은 게임을 찾기 어려운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니까요.

기존 MMORPG IP들의 풀 다이브 시장 진출은 저희도 환영하는 바입니다.

개인적으론 월드 오브 전쟁 크래프트의 PRD 버전도 해보고 싶고요.

진짜로 ‘날로 먹겠다.’라는 심보로 만든 게임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심사에서 거절되지 않을 겁니다.”

“혹시 연작의 경우 전작과 차이가 거의 없으면 심사에서 거절될 수 있습니까?”

[DA 스포츠 소속 개발자]라는 프로필과 함께 질문하는 개발자를 보며, 상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니 설명을 귀가 아니라 똥구멍으로 들었나?’

그러나 상혁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자신에게 질문하는 개발자를 향해 상냥하게 답했다.

“말씀드렸지만 저희가 막으려는 것은 ‘PTW의 자산’을 가지고 벌어지는 어뷰징을 막으려는 겁니다.

만일 전작이 PRD 마켓에 등록된 게임이라면, 그 게임은 해당 개발사의 자산이 적당한 비율로 적용된 게임이라는 거겠죠.

그럼 그 후속작에서 그 회사가 자산을 어떻게 활용하든, 그건 저희가 터치할 부분이 아닙니다.

그러니 전작하고 선수 데이터 빼고는 완전히 똑같은 후속작을 풀 프라이스 받고 파시든 말든, 저희는 그 부분을 딱히 막지는 않을 겁니다.

결국 그 선택의 결과는, 그런 게임을 발매한 개발사가 지는 것이니까요.

저희는 단지 ‘리얼 엔진’ 때문에 껍데기만 다른 양산형 게임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이후로도 라이선스 심사에 대한 긴 질의응답이 이어졌고, 상혁은 그 모든 질문에 대해 충실히 대답했다.

그리고 두 시간 정도를 그렇게 설명에 투자한 후에, 더 이상 영양가 있는 질문이 나오지 않자 능숙하게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오늘 회의의 두 번째 아젠다이자, 라이선스 문제보다 훨씬 복잡한 주제인 ‘서비스 가격’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그것은 2006년에 49.99달러에서 59.99달러로 패키지 게임의 표준 게임 가격이 오른 이후에, 무려 12년 동안 동결되었던 패키지 게임 가격 정책의 미래를 결정하는 회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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