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95화 (396/485)

395. PTW의 초대장

PTW가 초대장을 발송한 지 일주일 후.

한국, 미국, 그리고 일본에서 온 다양한 국적을 가진 개발자들은 PTW 본사의 대 회의실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상식을 위해서가 아닌, 시상식을 위한 사전 협의를 위해.

개중에는 이 자리에서 서로를 처음 본 개발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들이 친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로를 가로막는 언어의 장벽은 그들이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는 딥 다이버의 실시간 번역 기능 때문에 이미 무너진 상태였고, 그들 모두가 리얼 엔진을 통한 게임 개발이라는 공통적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모인 개발자들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면서도 금세 서로의 게임에 대해 감탄사를 연발하며 각자가 잘 알고 있는 리얼 엔진의 기능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 내용 중에는 단순히 게임 엔진에 대한 내용만이 아닌, 이번 이벤트를 대하는 PTW의 통 큰 태도에 대한 내용도 거론되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저희 팀은 230명이나 되는데 전원을 전부 초대할 줄 몰랐습니다.”

“아, 네이더 씨는 플로리다에서 오셨다고 했죠? 원래 직업도 게임제작자신가요?”

“아뇨. 원래는 취미로 세이버메트릭스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판타지 베이스 볼 유저였습니다.

직업은 공구상 주인이고요.”

“그런데 어쩌다가 이번 이벤트에 참여를?”

“저희 팀 구성원 중 PRD를 가진 구성원은 30명이 채 안 됩니다.

그래서 실제 게임 제작 과정은 그 30명이 담당하고, 나머지 팀원들은 그들이 작업할 다른 자료들에 대한 밑 준비를 하죠.

그리고 때때로 찾아가서 2교대, 혹은 3교대로 작업을 하기도 하고요.

저는 마이애미 말린스의 팬이라 그쪽 관련 데이터 작업을 담당하고 있죠.”

“데이터라···. 단순히 데이터가 필요한 거면 인터넷으로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도 있지 않나요?”

“제가 팀에 합류 제안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역대 말린스 선수들의 타격폼이나 구질, 성격까지 전부 제 블로그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말린스 선수들의 AI 데이터 중 상당수를 제가 작업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희 팀은 대체로 그런 고증 관련 작업을 맡은 직원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죠.”

“어? 실제 선수들을 사용하실 생각이라면 MLB에 별도로 라이선스 비용을 지급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그렇겠죠? 하지만 얼마를 지급하든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저희 팀원 중에는 원래부터 ‘포수 회귀’의 열렬한 팬들이 많아서, 그걸 PRD로 플레이해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즐거운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돈보다는 애정으로 만드시는 거군요.”

“돈도 벌면 좋죠.”

코우지는 ‘포수가 회귀를 숨김 VR’의 개발자인 랄프 네이더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엔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코우지에게 물었다.

“코우지 씨, 맞죠? 이번에 임펄스로 이벤트에 참여하신.”

“맞습니다.”

“PRD가 없는데 빌려서 참가하셨다고요?”

“그건 이쪽의 희정 씨가 도와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죠.

원래 인터넷으로만 알던 사이였는데, 제 이야기를 듣고는 흔쾌히 자신의 집에 있는 PRD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희정 씨가 없었으면 도저히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PRD를 빌려주셨기 때문이 아니라, 저희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히로인의 AI를 작업해주신 분이 바로 여기 계신 희정 씨니까요.”

그러자 희정이 얼굴을 붉히며 코우지에게 말했다.

“같이 만든 거잖아요. 저도 코우지 씨가 아니었으면 이번 이벤트에 참가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나저나, 다들 생업은 어찌하고 여기 오신 거죠?

시상식이면 몰라도, 사전 조율을 위해서 이 많은 인원이 방문하려면 한국까지 비행기 푯값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희정의 질문을 들은 네이더가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자신이 받은 메일의 내용을 보여주었다.

“사실 저희 팀은 다들 에고가 강한 편이라 누가 대표로 방문할 것인가에 대한 격렬한 논의가 있었죠.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넘치는데, 그렇다고 모두가 한국까지 올 수는 없을테니까요.

그렇게 포기하려던 찰나에, 저희 팀원 중 한명이 PTW에 문의를 보냈습니다.

혹시 팀원 전원이 방문하는 것도 가능하냐고요.

이게 그때 PTW에서 온 답변 메일입니다.”

메일 안에는 여러 내용이 적혀 있었지만 희정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곤란한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하는 PTW의 공식 답변이었다.

거기엔 굵은 글씨로 강조까지 된 상태로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OK. 100명이든 1000명이든 환영합니다. 저희 회사는 넓으니까요.]

“나머지 메일 내용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번 사전 방문을 위해 PTW는 프로젝트에 참가한 인원 전원을 위한 체류 비용과 왕복 비행기 비용을 지원해주었죠.

그리고 일주일간 생업에 종사하지 못하는 팀원들을 위해 그 기간 발생하는 금전적 손실도 보상해주었어요.

저 같은 경우도 제가 운영하는 가게의 10일치 매상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상받기로 했고요.

거기에 직장에 다니는 직원들에게는 PTW에서 직접 직장에 연락을 넣어 공식적으로 협조요청을 구했죠.

여기 제 옆에 있는 죠지가 바로 그런 케이스입니다.”

“샘 죠지입니다. 스크랜튼에 있는 작은 사무용품 유통 회사에서 일하고 있죠.”

“PTW에서 그쪽 회사에 업무협조를 요청했다고요?”

“예. 저도 매니저님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는데, 귀사의 직원 중 샘 죠지라는 직원이 차세대 게임 개발의 핵심 인력으로 선정되어 일주일간의 파견 기간을 요청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매니저님은 너무 놀라서 오줌을 쌀뻔했다고 하더군요.

그 작은 마을에 있는 사무실에 PTW 본사에서 연락을 할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게다가 PTW에서는 제가 파견 나간 기간 동안 대체 인력의 투입에 필요한 비용 및 업무 손해에 대한 모든 비용을 PTW에서 지불하겠다고 보장했습니다.

원래부터 바쁜 분위기의 회사도 아니어서, 매니저님은 흔쾌히 허락해주셨고요.”

“오, PTW도 PTW지만 그쪽 매니저님도 대단하네요.”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희정의 말을 들은 죠지가 쓴웃음을 지으며 조끼를 벗었다.

그러자 그가 입은 티셔츠에 앞뒤로 새겨진 ‘Dundal & Michelin’ 이라 적힌 커다란 회사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 방송 탈 일 있으면 무조건 회사 로고가 크게 보이게 자리 잡으라고 명령받고 파견 온 겁니다.

말하자면 걸어 다니는 광고판인 거죠.”

이후에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리얼 엔진과 게임제작에 관한 이야기를 꽃피우던 개발자들은, 대 회의실에 상혁이 들어서자 입을 다물고 상혁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조용히 상혁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자 상혁이 씩 웃으며 단상에 놓인 딥 다이버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거기엔 회의 진행을 위한 마이크가 같이 달려있었기 때문에.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일부러 서로 대화하면서 긴장 푸시라고 늦게 들어온 이유가 없어지잖아요?

혹시 딥 다이버를 안 쓰고 계신 지인분이 있으면 써달라고 이야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번 회의에서는 딥 다이버의 AR 기능을 활용할 생각이니까.”

상혁은 자신이 굳이 말하기 전에 모든 개발자가 딥 다이버를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을 보며 작게 미소지었다.

수백 명의 개발자가 딥 다이버를 쓰고 대회의실에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상혁은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수백 개의 눈동자를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PTW의 CCO를 맡은 개발자 이상혁입니다.

우선, 이번 이벤트에 최선을 다해 참가하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상혁의 말이 끝나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지만, 상혁은 손을 들어 빠르게 소란을 수습한 뒤 바로 본 안건을 꺼내 들었다.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수백 명의 개발자들을 초대한 것은, 단순히 이벤트의 종료를 축하하고 서로에게 박수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곳에 모인 모든 개발자들은 이 자리가 단순히 축하를 위해 모인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상혁은 전혀 다른 목적으로 그들을 부른 것이었다.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저는 우선 여러분들께서 오해하실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정정하고 싶습니다.

다들 PTW에서 이곳에 여러분을 초대한 이유가 단순히 이벤트 참여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고, 겸사겸사 시상식을 통해 PTW의 홍보도 하는 그런 평범한 자리라고 생각하고 계시겠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저희는 딱히 저희 PTW의 홍보를 위해서 여러분을 초대한 것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반대죠. 저희는 여러분들의 게임을 홍보해 드리기 위해서 이 사전 초대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객석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무시한 채, 상혁이 말을 이어나갔다.

“다들 아시겠지만, 단순히 홍보를 위해서라면, 그냥 각 팀의 대표자만 초청해서 기자들을 불러 시상식을 수행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죠.

하지만 그건 저희에게 좋은 방식이지 여러분께 좋은 방식은 아닙니다.

이미 인지도가 천장을 뚫은 상태인 PTW와는 다르게, 세상의 수많은 게이머들은 여러분들이 이처럼 멋진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까요.

그래서 이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리얼 엔진에 있어서는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PTW 직원들의 서포트를 받아, 남은 일주일 안에 여러분들이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자랑할 만한 결과물을 완성하게 하기 위해서죠.

그렇다고 저희가 게임이 100% 완성될 수준까지 제작을 지원해드리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시상식이라는 이벤트를 통해서 여러분들의 게임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처음 공개될 때, 전 세계 게이머들의 마음을 두근거릴 수준으로 현재의 게임 버전을 끌어올려 드릴 수는 있겠죠.

아시다시피 이번 이벤트는 특별한 상금이 걸려있지 않았습니다.

힘들게 게임을 만들어 3위 안에 들어도,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권한 연장 외에는 별다른 상품이 걸려있지 않았죠.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최선을 다해 멋진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저희 PTW는 그런 여러분들의 노력을 응원하고 싶고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적어도 이번 일주일 동안, 리얼 엔진을 개발한 개발자 본인들과 함께 여러분들이 만들고 싶은 게임의 완성도를 올릴 기회를.”

상혁의 말을 들은 객석은 침묵에 잠겼다.

그러나 말은 하지 않아도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대박이다.’

그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PTW가 자신들에게 제안하는 ‘선물’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개발자들을 보며, 상혁이 말했다.

“물론 강제는 아닙니다. 원하신다면, 일주일이란 기간 한국 관광을 즐기시면서 즐겁게 휴식을 취하시는 것도 가능하죠.

관광에 필요한 체류 비용도 저희가 전부 제공할 테니까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만든 게임을 직접 본 저로서는, 지금 제가 드리는 제안이 여러분이 이번 방문을 통해 얻어갈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되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대 회의실로 사용하고 있는 이 강당에는, 총 3개의 문이 있죠.

여러분들이 들어오신 뒤쪽의 문은 보안시설을 지나 로비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제 왼쪽에 있는 문은 PTW 직원들이 업무를 진행하는 개발 구역으로 연결되죠.

제가 들어온 오른쪽 문에는 회의 진행을 위한 준비실이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벗어나 뒤쪽의 문으로 되돌아나가시면, 저희가 준비한 관광 가이드와 투어용 버스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시면, 여러분이 만들려는 게임을 함께 만들어주실 PTW의 개발자분들이 기다리고 있죠.

다만 아셔야 할 게 있다면, PTW 직원들의 작업 페이스는 정말로 하드 하다는 겁니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완성된 게임 트레일러 하나를 만들기에도 너무나 촉박한 시간이니까요.

아마도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신 분들은 일주일간 지옥 같은 개발 페이스를 경험하시게 되겠죠.

선택은 자유입니다.

일주일 동안 푹 쉬시면서 재미있게 즐기다가 가실지, 아니면 지옥의 문을 열고 더 나은 게임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실지.”

상혁이 확신에 찬 눈빛으로 개발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선택하시죠.”

그날 모인 537명의 개발자 중에, 대 강당의 뒷문으로 돌아나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

“과거에 트레일러 영상을 만들 때는 영상 내용을 결정하고 거기 맞는 곡을 작업해서 집어넣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이미 존재하는 곡을 편곡하거나 그대로 써서 트레일러를 만드는 게 유행이죠.

곡 자체를 게임의 분위기를 잘 반영할 수 있는 곡으로 고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영상의 싱크를 맞추기가 좋으니까요.

이건 제가 여러분들이 제작 중인 게임을 보고 여러분들을 위해 미리 선정해놓은 트레일러 배경음악의 리스트입니다.

2개는 제가 직접 작곡한 거고 5개는 시중에 나와있는 곡이죠.

우선 하나씩 재생시켜드릴 테니, 눈을 감고 음악을 들어보세요.

그리고 자신이 만드는 게임의 씬을 음악에 붙여서 상상해보세요.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이 선정되고 나면, 거기에 맞게 트레일러 시퀀스를 잡기 위한 회의를 진행하시면 됩니다.

그때는 PTW의 음악 담당인 제가 아니라 영상 담당인 다른 분이 여러분을 돕게 될 거고요.”

PTW의 사운드 디렉터로 수백 개의 오리지널 곡을 작곡하며, 이제는 게임 음악 전문 작곡가로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음악인인 남성연이 말하자, 그의 앞에 있는 개발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성연이 미소지으며 음악을 재생시켰고, 그 순간 개발자들은 그가 어째서 용과 호랑이가 넘쳐나는 PTW에서도 독보적인 사운드 디렉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바로 알게 되었다.

그가 고른 곡 하나하나가, 듣는 순간부터 자신들이 만드는 게임의 한 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지어 곡의 분위기가 천차만별임에도 모두가 게임 분위기와 너무 잘 맞아떨어져, ‘포수 회귀 VR’의 개발팀은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음악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7개의 트레일러 모두가, 너무나 멋질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포수 회귀 VR의 개발팀이 트레일러 음악을 고르는 사이, 삼국지 무장전의 개발자들은 PTW의 다른 마스터 클래스 직원 서지수와 함께 트레일러의 내용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오프라인 회의가 아닌, 리얼 엔진으로 구현된 ‘삼국지 무장전’의 가상 세계 안에서.

“트레일러엔 꿈과 로망이 담겨있어야해요.

짧은 시간이라도 그걸 보는 것만으로 게이머들이 ‘아, 저 게임을 사면 난 이런 재미와 저런 재미를 즐길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야 하죠.

같은 시스템이라도, 그냥 그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그 시스템이 주는 재미를 보여주는 건 완전히 다른 개념이에요.

그러니 삼국지 무장전의 트레일러는 최대한 이 게임의 강점을 보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연출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흠···. 저희 게임에서 멋져 보이는 시스템이라고 하시면 사실 대규모 전투나 일기토 외에는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평정도 잘 연출하면 멋진 장면을 얼마든지 뽑을 수 있죠.

물론 창을 들고 천하를 평정하고 싶은 게이머가 다수겠지만, 개중에는 제갈량 같은 군사가 되어 세치혀로 천하를 농락하고 싶은 게이머도 있을 거예요.

여러분은 삼국지의 무장 전체를 전부 AI로 구현하려고 하시는 분들이잖아요?

그럼 그 AI들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구현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AI들과 어떤 드라마를 체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좋겠죠.

삼국지라는 컨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삼국지의 역사적 장면들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죠.

장판파에서 장비 대신 조조의 수천 철기병을 막아서는 게 유저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원작에서 조조의 서주 대학살을 막아서는 인물이 유저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이 게임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부분을 잘 보여줄 수 있게 최대한 포인트만 집어서 트레일러를 제작하는 게 어떨까요?”

삼국지 무장전의 개발에 참여한 개발자들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삼국지 덕후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지수의 제안은 그들의 머릿속에 수많은 아이디어를 샘솟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처럼 들렸다.

“유저의 선택으로 원 역사를 고칠 수 있다면, 역시 낙봉파에서 방통을 구하는 장면이 낫지 않을까?”

“아니, 관우죠. 관우. 관우의 죽음이 촉 멸망의 기폭제가 된 장면이나 마찬가진데.”

그렇게 한참을 떠들던 개발자들은 한 개발자가 입을 열자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그가 꺼낸 장면은, 삼국지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발암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면이었기 때문에.

“역사를 바꾸려면 제갈량이 수명 늘리려고 제사 지낼 때 천막으로 뛰어 들어가는 위연의 죽빵을 날릴 수 있게 해줘야지.”

“X발 그건 인정.”

“나는 읍참마속도 발암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제갈량 죽음보다는 아니지.”

그토록 열정적으로 논쟁하던 수백 명의 개발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지수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비록 여기 모인 개발자들은 게임 개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아마추어 개발자들일지 몰라도, 삼국지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어떤 개발자들보다 뛰어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지수가 삼국지 무장 전의 개발자들을 상대하는 동안, 이번 합숙을 기획한 상혁은 코우지와 희정과 함께 임펄스의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코우지의 프로젝트를 돕기 위해 찾아온, 수십명의 마스터급 개발자들과 함께.

그것은 다른 개발팀에 비해 인력이 극도로 부족한 코우지에게 매우 힘이 되는 지원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임펄스 프로젝트의 경우 컨셉이 명확한 편이라 트레일러 자체는 그리 만들기 어렵지 않아요.

다만 트레일러로 눈길을 끌더라도 코우지씨가 구현하려는 월드의 디테일을 단 두 사람이 구현하는 건 무리가 있겠죠.

그러니 임펄스의 경우에는 트레일러에 집중하기보단 이번 기회에 컨텐츠의 볼륨을 늘리고 게임 플레이를 다듬는 게 더 좋을 거로 생각합니다.

여기 불러온 개발자분들은 HC 101에서 네크로멘서 계열 빌런 쪽 작업을 하신 분도 계시고, 센트럴 시티의 건물 디자인을 책임지신 분들도 계시죠.

그리고 코우지 씨가 만든 임펄스의 주인공 아버지처럼, 실제 내전 지역에서 기자로 활동하신 적이 있는 생존 전문가분도 계시고요.

코우지 씨는 최대한 어떤 느낌으로 월드를 완성했으면 좋을 것 같은지, 이분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성에 관해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단순히 느낌이라고 해도 좋고요.

정 머릿속에 있는 느낌을 설명하기 힘들다면,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같이 말씀하셔도 상관없습니다.

PTW의 개발자분들은 그게 누구든 그런 모호한 설명만 듣고서도 개발자의 의도를 귀신같이 파악해서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오는 전문가들이니까요.”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그거만 듣고 개발이 된다고요?”

코우지가 묻자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말하면 좀 어렵긴 하겠지만, 설명 안에 있는 방향성의 흔적만 가지고도 상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개발자들이라는 거죠.”

“아···.”

“자세한 건 같이 작업을 해 보시면 아실 겁니다.

YAS나 MYOM, HC 101같이 미친 디테일과 스케일을 가진 게임을 밥 먹듯이 만들어 본 분들이 바로 이분들이니까요.

일단 같이 작업을 해보면 잘 아실겁니다.”

코우지는 상혁의 말대로 대략적인 게임의 방향성에 관해 설명한 뒤, 자신을 지원하기 위해 찾아온 PTW 직원들에게 현재 완성도가 떨어지는 각 지역에 채울만한 세부 컨텐츠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각자 맡은 지역으로 훑어진 PTW 직원들은, 코우지가 일주일 걸려 만든 컨텐츠를 단 몇 시간 만에 작업해서 가져옴으로써 코우지를 놀라게 만들었다.

“저는 그만한 넓이의 지역에 컨텐츠 채우는 데 일주일 걸렸는데요?”

“그건 리얼 엔진의 기능을 다루시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무슨 기능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호출하는지 알면, 리얼 엔진은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구현하게 해주니까요.”

“그럼 저도 그렇게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죠. 그럼 제가 작업하는 걸 잠시 옆에서 지켜보시겠어요?”

PTW의 직원들은, 마치 코우지가 PTW의 신입사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코우지에게 리얼 엔진을 다루는 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 과정에서 아마추어 개발자가 전문가들과 함께 일할 때 흔히 발생하는 실수에 대해 코우지에게 알려주었다.

“이분들이 가진 경력이 대단하다고 이분들이 가져오는 결과물에 모두 오케이 하지는 마세요.

심지어 그 퀄리티가 아무리 좋더라도,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처음에 잡았던 재미의 방향성입니다.”

상혁은 게임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너무나 멋진 형태의 몬스터를 가져온 개발자를 향해 코우지가 해당 몬스터를 게임에 넣겠다고 말하자, 코우지 에게 말했다.

“물론 개발자는 전부 자기가 만든 작업물에 자부심을 가지고 가져오게 마련이죠.

하지만 그게 아무리 멋지더라도, 혹은 그걸 가져온 사람이 아무리 그걸 만들기 위해 노력을 쏟았더라도 게임의 방향성을 해칠 수 있다면 과감하게 쳐 낼수 있어야합니다.

저희 PTW 직원 중에는 자신이 작업한 작업물이 리젝된다고 앙심을 품거나 코우지씨의 결정이 아마추어답다고 무시할 사람은 단 한명도 없어요.

지금 이 프로젝트의 디렉터는 코우지 씨고, 저희는 그런 코우지 씨를 보조하기 위해 찾아온 거니까요.

그러니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고 결정하세요.

이 몬스터가, 정말로 이 게임에 들어가도 괜찮을지.”

그러자 코우지는 잠시 고민하다 작업자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몬스터이긴 한데, 저희 게임에 들어가면 너무 튈 것 같네요.”

“흠. 저도 약간 그 부분이 걸리긴 했습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지금 몸에 걸쳐져 있는 갑옷 형태의 금속 파츠를, 현대물품으로 대신하는 거죠.

마치 여기저기서 쓰레기를 모아서 몸에 갑옷처럼 걸친 느낌으로요.”

그렇게 말한 작업자가 그 자리에서 라이브러리를 호출하더니 능숙한 움직임으로 원하는 부속을 찾아 몬스터의 디자인을 변경했다.

그러자 마치 혼자서만 중세 판타지에서 온 것 같았던 좀비형 몬스터의 디자인이, 순식간에 현대 배경의 게임에 잘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심지어 기존의 공격 기믹은 그대로 유지하는 형태로.

코우지는 그제서야 작업자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할 수 있었다.

“아, 이건 진짜 좋네요. 보기만해도 위압감이 느껴집니다.”

“제 작업물에 조금이라도 위화감이 있으면 아무리 애매한 느낌이라도 말씀해주세요.

방법은 제가 찾으면 되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코우지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상대가 저렇게 부드러운 태도로 자신을 대한다 하더라도, 업계 최고의 실력자들로 평가받는 사람들과의 작업이 주는 부담은 그에게 있어서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런 코우지를 보고 있던 상혁이 그의 어깨를 짚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부담돼요?”

“엄청요.”

“그냥 편하게 생각하세요.

일주일 한정으로, 연봉만 수억씩 받는 월드클래스 개발자들을 노예처럼 부릴 기회가 온 거라고.

어차피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런 기회가 언제 오겠어요?

뽑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뽑아먹어야죠.”

그러자 코우지도 상혁을 향해 마주 웃으며 말했다.

“뽕이라···. 그렇네요. 진짜로 이런 기회는 절대 오지 않을 기회니까요.”

“그렇죠? 그럼 일단 여기는 코우지씨를 믿고 저는 잠시 자러 가겠습니다.

나중에 돌아와서 문제 될만한 부분이 없는지 전반적으로 점검해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떠나려던 상혁은 코우지가 자신의 어깨를 붙잡는 것을 느끼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조금 전 조언을 2000% 받아들인 나머지 의욕으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코우지의 눈동자가, 상혁을 정면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 왜 그러시죠?”

“조금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뽑아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뽑아먹으라고요.”

“그, 그렇긴 한데···.”

“설마 본인이 그렇게 말해놓고 지금 자러 가시려는 건 아니죠?

100%, 전적으로, 진심으로 도와준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아니 거기까지는 말 안 한 것 같기도···.”

당황하는 상혁을 항해 코우지가 말했다.

그의 평소 성격과는 180도 다른, 단호함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본인이 도와준다는 게임 상태가 이런데, 지금 잠이 오십니까?”

결국 상혁은, 본인이 한 말 때문에 코우지에게 12시간이나 더 붙잡혀 있어야 했다.

상혁을 따라 코우지를 돕기 위해 찾아온, 52명의 다른 PTW 직원들과 함께.

그러나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 스트레스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기발하고 멋진 게임과, 그것에 푹 빠진 열정 덩어리의 개발자.

그런 개발자와 함께 일하는 것은, 게임 개발자에게 있어서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상혁의 사전 초대로 시작된 개발자 537명의 ‘단체 합숙’은, 일주일이란 타임 리미트 속에서 전 세계에 자신들의 게임을 보여주기 위한 치열한 크런치 모드에 돌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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