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94화 (395/485)

394. 체험 이벤트 결과

“이번 달은 게임 업계를 뒤집어놓을 정도의 많은 이슈가 있었던 한 달이었습니다만, 그 대부분의 이슈가 PTW와 관련되었던 기이한 한 달이었습니다.

제작 중인 게임의 제작 과정 전부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전대미문의 스트리밍 이벤트를 시작으로, 게이머들 전부가 게임 세계의 명운을 걸고 각본 없는 드라마를 찍었던 YAS의 월드 이벤트부터, 게임 제작에 전혀 관심 없던 사람들을 무더기로 게임 제작에 뛰어들게 만들었던 리얼 엔진의 체험이벤트까지.

정말 많은 이슈가 있었던 한 달이었습니다만 다사다난했던 이번 달도 이제 마무리를 맞이하고 있군요.

그러나 PTW가 불러일으킨 뜨거운 불꽃은 아직 식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현재 게임 업계 초유의 관심사는 누가 뭐래도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연장 이슈죠.

PTW에서는 이번 리얼 엔진의 체험 이벤트를 시작하면서, 이벤트가 끝난 시점에 마켓에 올라온 게임을 기준으로 유저 투표를 받아 최상위 3개 작품에 대해 이벤트가 끝난 이후에도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연장을 해주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유저 입장에서는 이번 이벤트를 통해 3개의 PRD 전용 게임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셈인데요, 지금부터 그 게임들이 어떤 게임들이 될지, 저 허먼과 함께 하나하나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PTW 전문 게임쇼’라는 명성에 걸맞게, 허먼은 평소보다 한 시간 더 긴 두 시간짜리 특집 방송을 편성하여 리얼 엔진의 체험이벤트에 관한 내용을 다루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그 방송이 있는 날이었기에, 허먼은 철저히 준비한 자료를 스크린에 띄우며 시청자들에게 앞으로 리얼 엔진을 이용해 발매될 게임 중 어떤 프로젝트가 유력한 후보인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주목받고 있는 게임은 바로 ‘삼국지 무장전’입니다.

PTW 본사가 위치한 나라, 한국의 삼국지 관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수백 명의 삼국지 팬들이 동시에 개발 중인 프로젝트로도 유명한데요, PTW에서 이 프로젝트를 위해 원래는 예정에 없던 승마 컨텐츠 관련 모듈을 추가로 업데이트하게 만든 프로젝트로도 유명하죠.

우선 영상을 보시면서 게임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들으시겠습니다.”

스크린에 비춘 영상은 중국 삼국시대의 낙양의 거리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돌아다니는 거리와 시장의 모습, 궁궐 속 황제 앞에서 예를 표하는 수많은 신하들의 모습을.

그것은 마치 삼국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이윽고 낙양의 도시 이곳저곳을 비추던 영상은 장안과 허창, 업의 모습을 비추며 풍토와 기후에 따른 다양한 건축 및 생활 양식을 보여주었다.

그 장면을 앞에 두고, 허먼은 충격적인 말로 게임 소개의 포문을 열었다.

“이 프로젝트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 말도 안 되는 영상이, 그냥 영상이 아니라 게임 화면 그 자체이기 때문이죠.

‘삼국지 무장전’에서, 플레이어는 삼국시대의 일반 농민을 시작으로 조금씩 계단을 밟아나가 시대의 영웅들과 함께 천하 통일을 도모하게 됩니다.

원한다면 역사에 기록된 유명한 무장으로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그 방대한 게임 플레이를 구현하기 위해, 무장전의 개발팀은 2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최대한 고증에 걸맞은 중국의 도시들을 건설했습니다.

물론 그 건물 데이터의 대부분이 이미 리얼 엔진이 제공하는 라이브러리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게나 시장, 민가등의 세부적인 디테일을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제대로 구현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개발이 완료된 지역은 낙양, 장안, 허창, 업의 4개 도시 지역이지만 개발팀에서는 게임 출시 전까지 삼국지에 나오는 모든 거점을 실제 게임 필드로 구현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입니다.

거기에 원작에 나오는 무장들의 성격을 그대로 구현한 AI 무장들도 등장할 예정이죠.

삼국지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홀리듯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디테일보다, 게이머를 더 열광시키는 것은 바로 이 게임의 UI였습니다.”

허먼이 말을 하는 사이, 스크린에 비친 화면이 자연스럽게 내정 회의를 진행하는 장면으로 전환되었다.

거기에는 탁자 위에 쌓여있는 죽간을 열어 안에 써진 내용을 확인하는 플레이어의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HC 101을 플레이해보신 분들은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풀 다이브 게임으로서 HC101의 가장 뛰어난 강점은, 게임 내의 모든 UI를 PTW가 기가 막히게 숨겨 놓았다는 점이었죠.

HC 101에서, 플레이어는 히어로 활동을 위해 전용 디바이스나 스마트폰, 블루투스 이어폰 등의 다양한 기기를 사용합니다.

실제 현실에서 그러하듯, 아군에게 연락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고, 범죄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경찰 무전기를 해킹하고 보안망을 무력화시키곤 하죠.

구출 작전에 대한 브리핑도, 플레이어가 구축한 히어로 본부의 장비 수준에 따라 홀로그램부터 타블렛 PC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해당 정보를 전달합니다.

‘이건 게임이다.’

‘나는 지금 게임을 하고 있다.’

라는 생각이 최대한 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PTW의 UX 설계 원칙이니까요.

삼국지 무장전의 개발팀은, 그런 PTW의 UX 원칙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 게임에서는, 게임 안의 어떤 과정도 ‘버튼’을 눌러 수행되지 않죠.

실제 모든 결정 과정은 장수들과의 회의를 통해 결정되고, 모든 정보는 잘 정리된 보고서를 통해 파악됩니다.

영지의 수확량이 얼마이며, 역병이 돌아 몇 명의 주민이 사망했는지, 그리고 현재 군량과 군마의 비축 상태가 어떠한지에 대한 모든 정보가 죽간이나 상소를 통해 보고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플레이어는 진짜 장수가 된 느낌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게 되죠.

현재 비축된 군량의 상태가 보고된 양과 정확히 맞을까?

혹시 누군가 빼돌린 건 아닐까?

지금 내게 적의 위치를 보고하는 장수의 보고를,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누굴 신뢰해야 하는지, 누가 역심을 품고 있는지,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에 대해 항상 의심하고 꿰뚫어 봐야 하는 게임.

그것이 바로 삼국지 무장전이죠.

게다가 개발팀에서는 단순히 현실적인 게임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습니다.

장수들의 충성도를 몸에 감도는 오라로 표시해주는 스킬이라던가, 말을 오래 타도 말이 지치지 않게 해주는 스킬, 무거운 창을 휘둘러도 무게가 덜 느껴지게 하는 스킬, 멀리서 활을 쏘아도 목표한 타겟에 정확하게 꽂히게 하는 스킬 등 삼국지 무장전의 세계는 게임성을 살리기 위한 수많은 스킬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스킬들을 가지고 나만의 장수를 만들어나갈 수 있죠.

현실성과 게임성의 절묘한 조화.

그것이 삼국지 무장전을 현재 투표수 1위로 꼽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건 삼국지 버전의 YAS라고 봐도 무리가 아니겠지요.

현재 이 게임에서 주로 거론되고 있는 이슈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죽간이란 매체 자체가 세로쓰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권 사용자들이 보기에 불편하다는 점이 주로 지적되고 있는데, 개발팀에서는 이후 패치를 통해 영미권 유저가 게임을 할 때만 조금 어색하더라도 위아래로 펼치는 죽간을 사용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나머지 하나의 이슈는 게임이 발매되었을 때, 현재 참여 중인 수백 명의 아마추어 개발자들의 수익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만, 개발팀에서는 이미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리얼 엔진에서 제공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죠.

화면 보시겠습니다.”

허먼은 삼국지 무장전의 개발팀이 공개한 리얼 엔진의 스크린샷을 띄웠다.

거기엔 프로젝트에 참여한 수많은 개발자들의 닉네임과 함께, 각자가 게임안에서 작업한 작업 분량이 포인트 형태로 자세히 표현되어 있었다.

“리얼 엔진의 특징 중 하나가 게임 안의 모든 요소에 포인트가 할당되어있다는 점이죠.

그건 기본적으로는 PTW에 지불해야하는 라이선스 비용의 계산을 위한 시스템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각자의 업무 기여도를 평가하는데도 쓰일 수 있습니다.

리얼 엔진은 누가 얼마나 많은 작업을 해서 포인트를 적립했는지, 그리고 누가 어떤 작업을 해서 게임의 완성도를 높였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서 보여줍니다.

이런 시스템이 있기에, 개발자들은 서로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사이라도 서로의 기여도를 확인하여 공정하게 수익 분배를 받을 수 있죠.

이 시스템 역시 수많은 아마추어 개발자들에게 호평받는 시스템 중 하나입니다.”

이어서 허먼은 2위를 기록하고 있는 다른 게임도 소개했다.

“두 번째 게임은 한국에 이어 현재 PRD 보급률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저희 미국 유저들이 만들고 있는 게임입니다.

아마 이 게임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라도, 워크 패스트를 사용해보신 분들이라면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을 본떠서 만든 것인지 바로 알아차리실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영상부터 보시죠.”

다음으로 나온 영상은, 마치 메이저리그를 주제로 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게임 영상이었다.

리얼 엔진 특유의 압도적인 그래픽을 바탕으로, 관중석을 채운 수만 명의 관객의 함성을 들으며 포수석에 앉아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

그런 형태의 화면은 스포츠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에게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영상이었지만, 거기엔 시청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특별한 요소가 하나 더 들어가 있었다.

-지난 타석에서 삼진당한 걸 타자가 엄청 벼르고 있는 것 같다.

속으로 엄청나게 욕하고 있군.-

‘뭐라고 하고 있는데?’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싸이코 패스 같은 포수를 상대로 타석에 서야 하는거지?-

‘심한 욕은 아닌 것 같은데.’

-뒤에 부모 욕이 더 붙어있는데 검열한 거다.-

“야. 너 지금 마음속으로 내 부모님 욕했냐?”

“뭔 개소리야? 그런적 없거든?!”

-거짓말이다. 녀석은 지금 어떻게 알았지? 이 미친 포수 X끼가 관심법이라도 쓰는 건가? 라고 생각하고 있다.-

포수의 머리 주위를 붕붕 날아다니는 요정의 존재와, 그 요정과 대화하는 주인공의 모습.

그것은 방송을 보고 있는 모든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한가지 게임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이건 PTW에서 워크 패스트를 위해 텍스트 전용 게임으로 내놓았던 전설의 야구 게임.

‘포수가 회귀를 숨김.’의 PRD 버전이죠.

원본 게임 자체가 텍스트 기반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세이버 매트릭스를 적용한 게임으로 평가받는 게임이니만큼, PRD 버전도 미국에서 유명한 판타지 베이스볼 개발자들과 세이버 매트리션이 다수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이 처음 공개 되었을 때, PTW가 가진 원본 게임의 저작권이 문제가 되지 않겠냐는 논란이 일었습니다만, 개발팀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의외로 PTW에서는 쿨하게 허락했다고 합니다.

‘재미있을 것 같으니 열심히 만들어주세요.’라는 답장과 함께요.

물론 베이직 시스템부터 전부 PTW의 라이브러리에 있는 것들을 사용해서 만든 게임이다 보니 분배 비율이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개발팀에서는 야구 외적인 부분, 그러니까 계약이나 매니지먼트, 팬 사인회나 TV 쇼 출연 등의 다양한 서브 컨텐츠를 추가하여 분배 비율 문제를 조정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입니다.

현재 ‘슈퍼 판타스틱 베이스볼’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에는, 직장에서 몰래 ‘포수 회귀’를 즐겼던 수많은 게이머들이 표를 몰아주고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포수 회귀’를 즐겁게 했던 사람으로서, 그 게임이 PRD 버전으로 나온다는 것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군요.”

허먼은 ‘포수가 회귀를 숨김’에 대해 잘 모르는 유저들을 위해 해당 게임을 간단히 소개하고 마지막 게임의 소개에 들어갔다.

자신도 플레이하며 경탄을 금치 못했던, 아직 PRD 서비스가 진출도 하기도 전인 일본의 동인 개발자가 제출한 게임에 대한 소개를.

“그럼 마지막으로 현재 인기투표 3위이자, 마켓에 등록된 지 3일 만에 3위 자리를 차지한 마지막 게임을 함께 보시죠.”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허먼의 TV 쇼를 지켜보고 있던 코우지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이제 곧, 자신과 희정이 함께 만든 게임이 TV쇼를 통해 전 세계로 방영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만든 게임의 메인 타이틀이 허먼의 TV쇼에 등장하자, 코우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앗싸아아아!!!”

“기뻐하는 건 좋지만 뛰지는 말아요. 층간 소음 때문에 아랫집에서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희정의 제지를 받은 코우지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쇼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TV를 주시하며 허먼이 자신의 게임을 소개하기를 기다렸다.

‘혹평? 아니면 호평? PTW의 골수 팬인 허먼 씨는 내 게임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을까?’

침도 삼키지 못할 것 같은 긴장 속에서, 설마 그 게임을 개발한 당사자가 자신의 방송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허먼은 힘찬 목소리로 코우지와 희정이 공동 개발한 게임, ‘임펄스(Impulse)’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 게임을 논하려면, 먼저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겠네요.

이 게임의 개발자분께서는 자신이 개발한 이 프로젝트에 임펄스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게임의 장르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미소녀 연애 서바이벌’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장르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죠.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임펄스라는 단어는 여러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그건 물리적 충격이나 외부 자극, 충동이나 일시적 감정, 욕구 등의 다양한 의미가 있는 단어죠.

하지만 이 게임을 플레이해보신 유저분들이라면, 개발자가 어째서 이 게임에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이해하고 계실 겁니다.

이 게임에서 느껴지는 모든 요소가, 임펄스라는 단어가 가지는 넓은 의미를 모두 커버하고 있으니까요.

재앙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도덕성, 살기 위해서 어린아이가 가진 빵마저 빼앗는 잔혹함.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발악하는 인간들을 공격하는 좀비 같은 감염자들.

이 게임은, 대지진으로 무너진 도시에서 생존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고등학생 정도밖에 되지 않은, 어린 커플이죠.

아니, 사실 게임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두 사람은 커플조차 아닙니다.

단순히 지진 첫날 무너진 돌에 맞고 기절한 주인공과, 곁에서 주인공이 깨어날 때까지 자리를 지킨 동급생의 관계부터, 이 게임의 플레이가 시작됩니다.

고등학생이면서도 어린 시절 기자인 아버지를 따라 내전 지역에서 생존한 경험을 가진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생존주의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난 상황에서의 생존에 필요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미리 준비해놓은 탈출 경로를 통해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하죠.

그에 반해 히로인은 연약하고 불평이 많은 존재입니다.

힘들게 끓여서 건넨 물에서 소변 냄새가 난다고 불평하고, 마실 물도 부족한 상황에서 목욕하고 싶다고 투덜대기도 하죠.

유저들은 게임 초반에, 이런 히로인의 투정을 들으며 짜증 속에서 플레이하게 됩니다.

물론 히로인의 디자인이나 목소리 연기가 역대급으로 귀여워서 나름 참을만한 수준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이 게임의 진짜 가치는, 이어지는 관계의 변화에 있습니다.

불평만 하는 자신을 위해 묵묵히 희생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히로인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천천히 변하는 과정을, 이 게임은 완벽에 가까운 템포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록 주인공과 히로인이 걸친 옷이나 겉모습은 게임이 진행될수록 점점 헤지고 더러워질지 몰라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신뢰와 애정은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나게 되죠.

초반에는 주인공이 건네주는 음식을 온갖 불평을 쏟아내며 먹던 히로인이, 후반에 게임 내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그 귀한 초콜릿을 자신보다 먼저 주인공에게 양보하는 장면에서, 저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이미 결혼해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는 저조차도, 히로인의 태도 변화에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만큼 이 게임의 히로인은 매력적입니다.

AI를 담당한 개발자가, 진짜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서 개발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고요.

개인적으로는 이 프로젝트가 3위를 지키거나, 아니면 1위로 올라가 반드시 라이선스 연장 권한을 따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생존게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현실성이 조금 부족하고,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히로인의 숫자가 턱없이 모자라지만, 둘을 합친 관점에서 본다면 이 게임은 완벽한 드라마를 게이머에게 전달해주고 있으니까요.

한 가지 걸리는 점이라면, 이 게임의 개발자가 일본인이라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PRD는 일본에서 정식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으므로, 해당 개발자는 한국의 지인에게 PRD를 빌려 이번 이벤트에 참가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개발자도, 프로젝트 코멘트에서 이 부분을 밝히고 있습니다.

만약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를 연장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자신이 사는 일본에서 PRD의 서비스가 개시되기 전까지는 개발을 재개할 수 없을 거라고요.

그 문제에 대해 PTW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이번 이벤트의 결과 발표에 있어서 주목할만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먼의 방송은 그 이후로 대형 개발사 출신의 전문가 패널과 함께 리얼 엔진이 게임 업계에 끼칠 영향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중심으로 쇼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DA 소속 개발자 중 한명이라 밝힌 패널은 음성 변조가 적용된 전화 연결을 통해 충격적인 내용을 추가로 공개했다.

사실 이번 이벤트에 대형 개발사 소속의 개발팀이 여럿 뛰어들었으며, 자신도 그런 팀의 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 아는 대형 개발사에서 참여한 여러 프로젝트가, 이벤트 기간 중 단 하나도 10위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고백이었다.

그것은 허먼이 듣기에도 충격적인 내용이었기에, 허먼은 전화로 대화 중인 게스트에게 다시 한번 사실 여부에 관해 물어보았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A 씨가 말한 정보에 따르면, 이번 PTW의 리얼 엔진 체험 프로젝트에 내놓으라 하는 대형 개발사의 프로젝트 팀도 여럿 참가했다는 거죠?”

-맞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단 한 개 팀도 10위 안에 들어가지 못했고요.”

-그것도 맞습니다.-

“어째서죠? 기간이 짧아서 그렇다고 보기엔, 오히려 그쪽이 전문가들이니 단시간에 더 좋은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희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문제는 리얼 엔진이 저희가 말하는 ‘전문성’과는 전혀 다른 ‘전문성’을 요구하는 엔진이라는데 있었습니다.-

“자세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말하는 소위 ‘게임 개발 전문가’들이란, 기본적으로 과거의 개발프로세스에 익숙한 인력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기획에서 제작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느냐가 전문성의 척도라고 할 수 있었죠.

예를들어 게임 안에서 몬스터를 하나 만든다고 가정해보죠.

기획에서 몬스터의 컨셉을 정하면 그 컨셉은 그래픽팀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만들어진 리소스에 애니메이션과 이펙트, 사운드를 부여하고 게임 엔진을 통해 게임 안에 배치하죠.

해당 몬스터 만을 위해 만들어야 하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면, 스크립터나 프로그래머가 별도로 코드를 작업하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의 전문성이란 이런 겁니다.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을 얼마나 빠르고 에러 없이 효율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가.’

하지만 리얼 엔진에서 요구하는 ‘전문성’은 그 방향이 완전히 다르죠.

원래는 ‘전문가’들이 해야 하는 수많은 작업을, 리얼 엔진은 너무나 쉽게 대체해버립니다.

그리고 개발자에게 또 다른 종류의 전문성을 요구하죠.

‘너는 이 게임이 표현하려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가.’

이번에 순위권에 오른 게임들을 보면, 그 부분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문적인 모델러나 프로그래머, 기획자가 포함된 팀이 만든 프로젝트보다, 오히려 게임 개발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해당 게임이 표현하려는 장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아마추어 개발자 집단이 만든 게임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죠.

과거의 게임 개발 과정에서, 개발팀은 아이디어가 가진 비중을 10 정도로 두고 그걸 게임으로 만들 수 있는 전문성을 90 수준으로 맞춰야 했습니다.

작업 인원으로 따지면 10명 정도가 내는 아이디어를 위해, 90명의 전문가가 열심히 그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리얼 엔진을 통한 게임 개발 과정은 기존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100명의 개발자가 100개, 1000개의 아이디어를 더해서 완성하는 게임.

그것이 리얼 엔진으로 만들어지는 게임의 진짜 실체니까요.-

그러자 허먼이 게스트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런 게임 엔진의 존재가, 게임 업계를 크게 바꿔놓을 수 있을까요?”

허먼의 질문을 들은 게스트는 잠시 대답을 멈췄다.

마치 미래를 떠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잠시 후 허먼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리얼 엔진의 성능이 지금의 수준이라고 밝혀진 이상,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전문성은 큰 의미가 없게 되었으니까요.

지금까지의 개발력이 얼마나 게임을 잘 ‘만들 수’ 있는가?를 의미하고 있었다면, 앞으로의 개발력이란 개념은 얼마나 게임을 ‘잘’ 만들 수 있는가의 개념이 될 테니까요.

그렇기에 저희 회사를 비롯한 대형 개발사 여러 곳에서는, 현재 PTW와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조기 계약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입니다.

비록 이번 체험이벤트에서는 순위권에 들지 못했더라도, 별도 계약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리얼 엔진을 개발과정에 도입하기 위해서 말이죠.-

“조기 도입이라···. PTW에서 허락할까요?”

-PRD 전용 게임들의 빠른 보급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게다가 저희 회사의 경우는, 조금 더 일찍 라이선스를 얻을 수 있다면 대량의 출혈도 감수할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아마도 다른 대형 개발사들도 마찬가지겠죠.-

“대량의 출혈이라면, 라이선스 비용의 이야기겠군요.

대략이라도 얼마 정도인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저도 밝힐 수 없습니다.

보안 문제를 떠나서, 저도 정확한 금액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니까요.

지나가는 이야기로 엄청난 비용을 제시할 거란 이야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아마도 그 금액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PTW와 저희 회사의 일부 임원들만 알고 있겠죠.-

***

“뭐, 맞는 말이긴 하네. 이 정도면 엄청난 금액이긴 하니까.”

그 시각,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누군지 모를 패널A의 말처럼, 자신과 PTW의 임원들은 그 금액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상혁은 그런 대형 개발사들의 제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내놓으라 하는 대형 게임 개발사들이 PTW에 제안한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비용.

그것은 개발사 입장에서는 ‘대량의 출혈’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었지만, PTW 입장에서는 푼돈에 불과한 비용이기 때문이었다.

“프로젝트당 50억? 이놈들이 미쳤나?”

서류를 손에 들고 투덜거리는 상혁을 보며 현주가 물었다.

“그 정도면 게임 엔진 라이선스 비용치고는 엄청 많이 주는 거 아니야?”

“그거야 다른 게임 엔진은 거기서부터 엄청나게 살을 붙여나가야 하니까 그런 거고요.

얘네는 지금 수익 분배 없이 50억에 저희가 제공하는 라이브러리를 마음대로 다 쓰고 싶다고 제안하는 건데, 그 조건엔 절대 못 해주죠.

리얼 엔진의 수익 분배는 철저하게 저희가 제공하는 라이브러리 리소스의 활용 비율에 따라서 결정되는 거예요.

많이 쓰면 많이 쓴 만큼 더 돈을 내라는 거죠.

게임 스케일을 고려하면 리얼 엔진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절감되는 개발비가 얼마인데, 50억은 순 날강도 같은 제안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일단 거절할까?”

“그 가격이 진짜로 합당한 가격인지, 본인들 양심에 손을 얹고 다시 생각하고 제시하라고 답장해주세요.

지금은 그것보다 체험이벤트의 뒷 처리가 우선이니까.”

“그렇네. 결과도 발표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 진행할 거야?”

현주의 질문을 들은 상혁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현주를 향해 말했다.

“아, 그렇네요. 지금 1위랑 3위 개발팀이 한국에 있고 2위 개발팀은 미국에 있죠?”

“응.”

“그럼 오랜만에 오프라인 행사나 한번 하죠.

그쪽이 참가한 개발팀에게 홍보 효과를 더 실어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겸사겸사 3위 개발자인 코우지 씨 문제도 해결하고요.”

“그 일본 개발자분? 하지만 PRD의 일본 서비스는 아직 준비 중이잖아?”

“그렇죠. 근데 그렇다고 일본 서비스 시작할 때까지 라이선스 권한만 가지고 개발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원래 이럴때는 팍팍 쓰는 게 맞죠.”

“팍팍 써?”

현주가 묻자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남는 PRD가 많은 곳이 여기니까요.

일본 서비스가 시작될 때까지, PTW 본사에서 개발하라고 하죠.

사는 곳은 직원 아파트 중에 남는 곳 하나 무상으로 임대하기로 하고요.”

일본에 살기에 PRD를 사용할 수 없어 라이선스를 따더라도 당분간 개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코우지의 프로젝트 코멘트.

그것은 코우지가 게임을 재미있게 플레이한 유저들을 위해 남겨놓은 메시지였지만, 그런 이유로 재미있는 게임의 개발이 멈추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상혁은 그가 한국에서 개발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혁의 그런 생각을 전혀 알 수 없었던 코우지는 워크 패스트 알람을 통해 날아온 오프라인 시상식 초청 메시지를 받고 날아갈 듯 기뻐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 행사에서 받을 선물이 무엇일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

지금은 오직 자신과 희정이 만든 게임이 인기 순위 3위에 올랐다는 사실만이, 코우지를 무한히 기쁘게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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