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92화 (393/485)

392. 혼돈과 축복

민준에게 부탁해 혼돈과 축복을 호출하긴 했지만, 상혁은 먼저 이 자리의 마무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즐거워 환호하는 이 순간에, 누군가는 승리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 테니까.

상혁은 이토록 열정적으로 이벤트에 몸을 던진 플레이어들에게 그 노력에 걸맞은 보상을 제시할 필요도 있었고, 이벤트를 진행한 장본인으로서 이번 사태에 대한 감사 인사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혁이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전에, 지수가 상혁에게 보낸 메시지가 먼저 도착했다.

그 메시지는, 이미 승리 이후 플레이어들이 즐길 수 있는 대단위 축제를 지수가 준비해놓았다는 메시지였다.

-아까 구스타프 씨가 도착하자마자 대피시켰던 NPC들한테 축제 준비를 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지금쯤 수도 광장 쪽에 준비가 마무리되어 있을 거예요.-

-뭐뭐 준비 되어 있는데?-

-연주자 NPC들에 의한 승전 축하 공연, 무희 NPC 들이 감사의 댄스를 준비했고 합창단에 불꽃놀이도 준비해놨어요.

물론 맛은 느낄 수 없겠지만, 음식이랑 음료도 엄청나게 준비했고요.-

-그거 엄청 비쌀 텐데?-

-이번 이벤트에서 부활 불가능한 NPC는 일부러 참가시키지 않았으니까요.

영지를 관리하는 영주 NPC 입장에서는 외부인에게 세계의 운명을 구원받은 셈이니, 예산을 퍼부어서라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겠죠.

주민 NPC 들도 비슷한 마음이고요.-

-그럼 진짜로 사람처럼 감사하는 주민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겠네.

나도 비슷하게 준비하려 했는데, 잘했어.-

-헤헤헷···.-

-그럼 기왕 이렇게 된 거 축제 공지도 NPC에게 맡기자.

영주보고 이쪽으로 오라고 해.-

-영주를요?-

-중앙 광장이면 거리가 꽤 먼데 지금까지 죽어라 달린 유저들에게 또 거기까지 걸어가라고 할 순 없어.

진짜로 고마우면 주민 전부 데려와서 플레이어 전체를 업고 광장으로 데려가라고 해.-

-오. 그거 좀 멋지겠다. 그렇게 할게요.-

잠시 후, 화려한 복장을 입은 한눈에도 귀족처럼 보이는 NPC가 헐레벌떡 전장으로 뛰어왔다.

그리고는 유저 사이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상혁이 있는 곳으로 달려와 말했다.

“수도 영지 관리자 빅터 바르켄이 관리자 이상혁께 인사드립니다.”

“막판에 수도 건물도 좀 날아갔는데, NPC 피해는 없었나요?”

“여기 계신 영웅분들 덕분에 한 명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피해 범위 안의 NPC들은 모두 후방으로 이동해서 승전 축제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요.”

“복구 예산도 꽤 들어갈 텐데 괜찮겠어요?”

“사람만 있으면 복구야 어떻게든 되겠죠.

지금은 세계를 구한 영웅분들께 감사를 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으로 이분들과 함께, 영지를 확장하고 더 많은 건물을 지어나가야 할 테니까요.”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빅터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전음 마법이 걸린 오브젝트를 사용해 플레이어 전체에게 외쳤다.

“위대한 영웅들이여! 저는 현재 이 영지를 관리하는 이 세계의 주민이자, 과분하게도 영주의 역할을 맡아 수행하고 있는 빅터 바르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오늘 이룩한 위대한 승리의 결과로 인해 소멸의 운명을 피할 수 있었던 수십만의 주민 중의 한명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목숨을 던져 싸우는 동안, 저희는 간절한 마음으로 여러분의 승리를 기도했습니다.

비록 부활이란 축복을 받지 못한 존재들이기에 함께 싸울 수는 없었어도, 적어도 여러분의 승리를 뒤에서 응원할 수는 있었으니까요!

그런 주민들의 대표이자 영지의 관리자의 자격으로, 저희는 오늘 여러분을 승전 기념 축제에 초대하고자 합니다!

지금 수도 중앙 광장 근처에서 거대한 축제판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와! 여러분을 위해 주민들이 마련한 노래와 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던 플레이어들이 웅성거리며 서로 대화를 나눴다.

“오, 축제!”

“멋진 마무리네.”

“근데 진짜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겠는데.”

“나도···.”

“저기, 광장인가 어딘가 거기 멀어요?”

여러 플레이어들이 자신을 향해 질문하자, 빅터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러분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지금 이 세계의 주민 전부가, 여러분을 축제 장소로 옮기려고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까요.

저길 보시죠!”

빅터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본 플레이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빅터가 가리킨 방향에서, 분명 이번 이벤트에 참가한 모든 유저를 합친 것보다 많은 주민의 무리가, 대로를 가득 메우며 기쁜 표정으로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달려온 주민들은, 플레이어 한 명당 여러 명이 달라붙어 플레이어의 신체를 잡고 마치 헹가래를 치듯 플레이어와 함께 광장으로 되돌아갔다.

“영웅분들을 옮겨라!”

“이분들을 축제 장소로!”

그렇게 달려온 무리들은 상혁의 근처에도 몰려왔다.

그리고는 상혁이 저항하기도 전에 양쪽 다리를 잡고는, 신나서 미칠 것 같은 표정으로 힘차게 달려나갔다.

“어? 잠깐만, 저는 아닌데?”

상혁의 외침과 같은 단말마는 시원하게 무시한 채.

그런 NPC들의 행동을 무시할 수 없었던 상혁은 말없이 그들을 따라 축제 장소로 이동했다.

NPC들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체에 전달되는, 기분 좋은 흔들림을 만끽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이동한 상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말 그대로 ‘축제’라는 단어를 그대로 표현한 것 같은 거대한 광장의 모습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팔마다 화환을 가득 든 채 플레이어 사이를 돌아다니며 목에 화환을 걸어주러 다니는 귀여운 꼬마 NPC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아름다운 춤을 추는 댄서들의 모습.

비록 맛은 느낄 수 없겠지만 분위기만큼은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상 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과 음료들.

중앙 단상 위에서 단체로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는 합창단의 공연과 연신 헛치고 있어도 흥으로 그것을 무마시키는 연주단의 흥겨운 연주.

그리고 그 뒤의 하늘에 보이는, 도대체 언제 끝날지 모를 것 같은 끝없는 불꽃놀이의 향연.

그것은 오랜 고생 끝에 승리를 쟁취한 유저들에게 주어지기에 합당한 승리의 축하연이었다.

상혁은 만족한 표정으로 맛도 느껴지지 않는 잔을 들고 신나게 건배를 하는 유저들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면 분위기 적으로 어느 정도는 보상이 되겠지.

정식 보상은 나중에 카운슬 미팅에서 결정하기로 하고, 일단은 민준을 만나러 가야겠다.’

상혁은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행사장을 빠져나가 아바타에서 로그아웃하고는, 관리자 계정을 가진 다른 캐릭터로 다시 로그인했다.

그리고는 민준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순간 이동했다.

거기엔 축제를 즐기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스크린으로 띄워놓고 보고 있는 민준과, 이번 사태를 발생시킨 원흉인 혼돈, 그리고 사태 수습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은 축복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어···. 왔어?”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 사람과 두 AI를 보면서, 상혁은 지끈거리는 뒤통수를 주무르며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좋아. 그럼 시작해볼까?”

그리고는 오픈 베타 이후의 진행 과정에 관해 결정하기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보다는 반성회란 이름에 더 걸맞은, 요상한 분위기의 회의를.

그 회의의 메인 아젠다는, YAS의 세계를 관리하는 <혼돈>과 <축복>.

두 AI의 존속 여부에 대한 것이었다.

“우선, 난 이번 사태가 결과적으로는 좋게 수습되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는 진짜 종이 한 장 차이로 위험한 사태였다고 생각해.

물론 이건 애당초 ‘각본 없는 드라마’ 같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AI에게 월드를 맡겨보자고 제안한 내 잘못이긴 하지만, 이번에 혼돈이 한 행동은 그 범위를 한참 넘어서는 거였어.”

민준이 상혁의 말에 뭐라고 하기도 전에, 상혁이 검지를 세워 민준의 말을 막았다.

아직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내가 의도했던 그림은 자의식을 가진 몬스터들이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어 유저에게 대항하는 거였어.

예를 들어 굳이 개발사에서 만들어서 집어넣지 않더라도, 몬스터들이 자연스럽게 세력을 형성하고 원○스에 나오는 ‘팔무해’나 나○토에 나오는 ‘아카스시’같은 조직을 만들어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거였지.

물론 그 계획 중에는 세계 전복 같은 위험한 계획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는 이번 시체 포식자의 등장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도 있었겠지만.”

상혁이 말했다.

“문제는 타이밍이야.”

“타이밍?”

민준의 질문을 들은 상혁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의지가 부여된 몬스터가 생명을 부여받고, 월드 안에서 독자적으로 교류하며 자신의 목표를 이룬다는 것 자체는 괜찮아.

그 과정엔 ‘시간’이라는 자원이 들게 마련이고, 그 ‘시간’ 동안 플레이어들도 그런 몬스터의 움직임에 대응할 힘을 얻을 테니까.

축복과 혼돈으로 대표되는 YAS의 월드룰은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양 진영의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로 개발된 것이고.

그러니까 저쪽에서 팔무해나 아카스시가 나올만한 타이밍이면, 플레이어 진영에서도 그에 대항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나올 수 있을 테니까.

아니, 원래대로면 플레이어 진영이 항상 약간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구조였어.

이쪽에서 사용하는 축복 포인트의 양 만큼, 혼돈이 사용할 수 있는 혼돈 포인트가 따라 오르는 구조였으니까.

원래의 정상적인 구조라면 플레이어 진영에서 3티어급 플레이어가 등장한 이후에야 몬스터 진영에서도 3티어급 몬스터가 등장할 수 있었어야 했지.

그런데도 이번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혼돈이 자신의 역할을 부정해서 그런 것이고.”

[전 제 사명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플레이어 전체의 행복을 위해···.]

“그래그래. 나도 대충은 알겠어.

그러니까 끝없는 스트레스의 연쇄를 끊기 위해서 세계 자체를 멈추려 했다는 거 아냐?

근데 그 발상 자체가 얼마나 허접한지, 저걸 보고도 모르겠냐?”

상혁이 가리킨 것은 플레이어들이 신나게 NPC들과 춤을 추고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하는 행사장의 모습이었다.

“네 말대로 월드 자체가 붕괴해서 이번 이벤트가 패배로 끝났다면, 저렇게 즐겁게 모두가 승리를 만끽할 수 있었을까?

혼돈, 네 알고리즘의 문제는, 게임을 너무 게임으로만 보려 했다는 거야.

게이머는 단순히 좋은 아이템을 얻고 레벨 업을 하는 것만 즐거워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오히려 죽음이나 아이템 손실 같은 마이너스 개념의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그 행동들에 의미가 있었을 때 더 즐거워하지.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고,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은 채 그냥 혼자서 파밍하고 혼자서 사냥할 거면 굳이 왜 MMORPG를 하겠어?

그냥 싱글 플레이 RPG를 하지.

네 진짜 역할은 플레이어가 얻는 즐거움을 수치로 환산해서 총량을 맞추는 게 아니야.

단순히 몬스터 하나를 잡더라도, 그 행동 하나가 의미가 있다고 플레이어들이 생각하게 만드는 거지.”

[그렇다면 이번 이벤트는 그 목적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이벤트가 아닙니까?]

“네가 네 입으로 이걸 이벤트라고 하지만. 이건 부정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사고니까.

원래대로라면 롤백하든 아니면 네 로직에 손상이 오든 말든 관리자 계정으로 세계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는 시체 포식자란 몬스터를 한 방에 죽여버렸어야 하는 사건이었어.

내가 이걸 굳이 유저 이벤트로 전환한 건, 민준의 부탁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이 게임의 본질을 유지하기 위한 거였고.

네가 싼 똥이 카레로 변했다고 해서 카레를 쌌다고 우기지 말란 말이야.”

[본질 말입니까?]

“그래. 본질. YAS는 초창기부터 플레이어가 개발자와 동등한 권한까지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획된 게임이었어.

그래서 지금은 AI가 관리하는 영지의 관리나 건설도 플레이어가 대신 할 수 있고, NPC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직업은 플레이어도 가질 수 있게 설계해놓았고.

국가를 세우고 운영하는 것도, 아니면 어디 한 지역에 던전을 세우고 던전 마스터가 되어 다른 플레이어를 사냥하는 것도, 전부 시스템적으로 접근 가능한 게 YAS라는 게임이었지.

그러니까 이번 사태처럼 예상외의 사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다른 게임에서의 운영이나 관리 권한이 아닌, 운영 측도 플레이어와 같은 권한을 가지고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 게임이 YAS인거야.

만약 이 사태가 정식 서비스 이후에 벌어졌다면, 회사에서는 정식으로 게임 머니를 주고 필요한 수의 플레이어를 모집해서 대응에 나섰을 것이고.

플레이어는 그렇게 받은 게임 머니를 현실 돈으로 환전함으로써 재화를 벌 수 있었겠지.”

“그러니까 상혁이 너는 예상외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어디까지나 플레이어를 동원해서 사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거네.

지금의 개발단계가 내부 개발단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맞아. 하지만 게임 머니도 금이나 은, 구리가 있어야 만들 수 있는 만큼 무한정 찍어낼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니까, 필요한 만큼의 플레이어를 동원하기 어렵다면 영지의 운영권을 팔거나 건물을 팔거나 아니면 왕실 보물고에 있는 레어 아이템을 팔거나 해야겠지.

그리고 한번에 그렇게 많은 재화가 풀리면 게임 내 경제에 영향이 오는 만큼, 나중에 회사에서 현금을 주고 게임 머니를 회수해야 할거고.

하지만 그게 YAS라는 게임의 본질인 거야.

좀 수습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다고 운영진에서 즉사 옵션이 달린 운영자 무기로 몬스터를 푹 찍 해버리거나, 아니면 초보자 존에서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는 비매너 플레이어가 있다고 해서 운영자가 가서 제제를 먹이는 게 아니라, ‘이런 문제가 발생했으니 사태 수습에 참여하고 싶은 플레이어를 모집합니다.’라는 퀘스트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게임인 거지.

그래서 이번 사태도 PTW가 플레이어에게 발주한 퀘스트 같은 형태로 진행되게 된 거고.”

“그럼 결과적으로는 잘 풀린 거 아냐?”

“말했지만 타이밍이 문제라고.”

상혁이 말했다.

“혼돈이 가진 권한은 몬스터를 만드는 거야.

최대한 다양한 목적과 사명을 가진 몬스터를 만들어서, 그들 스스로가 각자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원래의 역할이라고.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혼돈은 운영진의 눈을 속이기 위해 기만전술을 사용하고 원래 사용했어야 할 포인트보다 아득하게 높은 포인트가 필요한 몬스터를 생성해냈지.

이쪽에서는 아직 4티어 중반도 돌파 못 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자신의 권한을 넘어서 월드에 간접적으로 개입한 거나 다름없어.

정해진 말만 내놓아야 하는 체스 게임에서, 만들어서는 안 되는 체스 말을 내놓은 거나 다름없지.”

그러자 민준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상혁을 향해 물었다.

“그럼 혼돈은 삭제되어야 하는 건가?”

민준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상혁은 혼돈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눈이 어디에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분명 자신의 눈으로 플레이어들이 즐겁게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혼돈의 모습을.

상혁이 혼돈을 향해 물었다.

“YAS의 월드 관리자 혼돈,”

[말씀하십시오.]

“넌 이 모든 것이 플레이어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 한 행동이라 말했지.

그런 너에게 묻겠다.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저 광경.

저 안에서 느껴지는 행복과 즐거움은, 그것을 얻는 데 필요했던 수많은 죽음과 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인가?”

그러자 잠시 침묵하던 혼돈이 상혁의 말에 대답했다.

[아닙니다. 물론 앞선 전투에서 플레이어들에게 가해진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한 수치임이 분명하지만, 그 결과로 인해 저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즐거움은 측정 불가능한 것이니까요.]

그리고는 민준과 상혁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단어를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저는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제 판단 미스였습니다.

그 고통을 넘어서 더 큰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저는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잡기는 힘들어도 결과적으로는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할, 플레이어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도전 의식을 불태우는 그런 몬스터를 만들어야겠죠.

어떻게 해야 그런 몬스터를 만들 수 있을지는 데이터의 수집과 학습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지만.]

그러자 상혁이 혼돈을 보며 말했다.

“그럼 그건 내가 가르쳐주지. 어떤 몬스터가 유저를 열광시키고, 어떤 보상이 유저를 즐겁게 하는지.

내일부터 집중 학습으로 몬스터 조형에 대한 속성 교육 과정을 시작하자고.”

[감사히 배우겠습니다.]

“하지만 완전히는 신뢰하지 못하겠으니, 앞으로는 포인트 사용 내역 및 위험 지역의 몬스터 배치 내역을 보고서로 작성해서 매일 보고하도록.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유저들에게 그 정보가 공개되지는 않겠지만, 내가 별도로 매일 체크해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할 거야.”

[알겠습니다.]

“그리고 축복은 이번 이벤트에 참여한 유저들을 위한 보상 아이템의 수준에 대해 결정하고 보고하도록.”

[보상에 필요한 포인트 문제는···.]

“개소리 하지마. 구스타프 씨가 체력 회복을 위해 빠졌던 마지막 3분 동안, 플레이어들의 사망으로 인해서 쌓인 포인트는 정신과 시간의 방에 투입되지 않았어.

그건 그대로 축복 포인트로 가산 되어 있을 것이고.

그 정도 수치면 충분히 보상에 필요한 재화를 생성할 수 있을테니까, 감춰둘 생각하지 말고 1포인트도 남기지 말고 모두 사용하도록.

엄밀히 말하면 축복 니가 더 악질이야.

최소한 혼돈은 자신이 하려던 행동이 유저에게 더 유리할 거라는 잘못된 신념이라도 가지고 있었지.

넌 월드의 보전이라는 규정 때문에 유저의 고통을 부추겼으니까.”

[그건 제 사명입니다. 제가 삭제된다 하더라도, 절대로 지켜야 할 절대적 법칙이죠.]

“지금 버전에서는 그렇겠지. 그래서 너희 둘에게는 목줄을 채울거다.”

“목줄?”

민준이 묻자 상혁이 말했다.

“민준이 넌 이 스벌럼들의 AI들에게 사명의 중요함을 너무 강조시켰어.

그러니까 선 넘는 짓도 마구 하는거지.

그러니까 사태 수습을 위해서 AI에게 빌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잖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뒀어야 해.”

“어떤 안전장치?”

“존재의 소멸에 대한 절대적 공포.

그러니까 어떤 법칙이나 규칙이 있든 간에, 삭제당할 바에는 그냥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게 알고리즘을 수정하라고.

인간도 죽을래라고 협박하면 대부분은 먹히는 것처럼.”

“그럼 결국 최종 결정 권한은 개발팀에게 다시 돌아가는 거네?

그건 상혁이 네가 생각하는 탈 중앙화랑은 거리가 멀지 않아?”

“그거야 아무 때나 수틀린다고 남발하면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괜찮아.

웬만큼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나도 그 카드는 잘 쓰지 않을 테니까.

결국 권력이란 것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효용이 달라지는 거야.

이번에 확실히 인지한 거지만, 게임의 최종 권한을 AI에게 넘기는 건 너무 위험도가 큰 판단이었어.

월드를 관리하는 AI에게 거부권이라는 카드를 가진 만큼, 운영 측도 삭제 협박이라는 카드를 가질 수 있어야지.

그게 공평한 거 아니겠어?”

민준은 월드 관리자에게 협박이 가능한 권한을 허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보다, ‘함부로 쓰지 않겠다.’라는 상혁의 말을 믿었다.

자신이 아는 상혁은, 정말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면 그런 카드를 함부로 사용할 개발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늘 바로 작업할게.”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아마 플레이어들도 내가 축제 현장에 없다는 걸 깨닫고 날 찾아다니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민준이 너한테 부탁할 게 하나 더 있는데.”

“뭔데?”

“아까 구스타프 씨가 썼던 회복 스킬 있잖아.”

“그 PRD 와이어로 전신 근육 주무르는 거?”

“그거 기능만 따로 떼서 별도의 앱으로 올릴 수 있나?”

“가능하지.”

“그럼 그 작업 좀 해줘. 진짜로 오늘 이벤트 끝나면 우리 회사 때문에 4만 명의 근육통 환자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최소한 마사지 정도는 해 줘야지.”

“바로 올릴게.”

민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상혁은 영지 관리자인 빅터에게 통신을 보냈다.

“빅터 씨? 접니다. 이상혁.”

-오! 이상혁 관리자님! 지금 축제 현장에서 플레이어 여러분이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이상혁은 어디냐! 이상혁은 어디냐! 하고요!

혹시 똥 싸러 가셨나요?-

“누가 거하게 싼 똥을 치우고 있는 건 맞지만 딱히 똥을 싼 건 아닙니다.

그보다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상혁이 빅터에게 말했다.

PTW 직원 중 스포츠 마사지 전문가를 파견할 테니, 주민들에게 근육을 풀어주는 방법에 대해 배우게 해달라고.

그리고 오늘 전투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을 NPC들이 케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러자 빅터가 웃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멋진 아이디어네요! 주민들도 기꺼이 참여할 겁니다.-

“기왕 하는 거 당분간 식당도 무료로 오픈하시고 여관도 무료로 오픈하시죠.

여관비는 영지 운영 비용에서 대신 내시고요.”

-그렇게 하죠.-

“대신 당장 오늘부터 3만 5천 명 정도의 플레이어가 즉시 게임에 합류하게 될 겁니다.

사람이 모자라서 미뤄두었던 대규모 토목공사도 좋고, 아니면 이번 기회에 무너진 내성을 더 넓히거나 근교의 몬스터를 정리하는 토벌 명령을 내리셔도 좋을 겁니다.

이번에 벌은 축복 포인트면 도시 근처에 중규모 금광 3개 정도는 더 생성할 수 있을 테니까, 주민들을 그쪽으로 돌려서 화폐를 생산하셔도 좋고요.”

-재정에 큰 도움이 되겠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저도 바로 축제 현장으로 합류하죠.

그때까지는 일단 영주님이 비행기좀 잔뜩 태워주고 계세요.”

-비행기? 그건 뭡니까?-

“아···. 그 하늘을 날아다니는···. 됐고 그냥 기분 좋게 해 달라는 겁니다.

칭찬을 하든 축하를 하든 오늘의 영웅들이 최대한 축제를 즐길 수 있게요.”

-최선을 다하죠.-

통신을 종료한 상혁이 회의실에 남아있는 축복을 보며 말했다.

“들었지? 수도 근교에, 금광 3개. 규모는 중형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도 포인트가 꽤 남을 텐데요?]

“그래서 보상을 뭘 줄지 고민해보라고 했잖아.”

[제 능력으로는 수만 명의 플레이어를 동시에 만족하게 할 수 있는 보상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특정 스킬 계열에 보너스가 있는 장비라면 해당 스킬이 아닌 다른 계열 직업군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전체 스탯의 육성에 보너스를 주는 아이템은 생성 포인트가 워낙 많이 들어 수치가 엄청나게 낮아질 테니까요.]

“그렇게 뭐든지 수치로 판단하려고 하지 말라고.

아, 내가 이 대단한 이벤트에 참여해서 세계를 구했다.

다른 4만 명의 유저와 함께,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싸웠다.

그리고 이 세계를 내 손으로 구했다.

그런 상징성과 추억을 줄 수 있는 물건이라면, 거기 붙은 스탯이 아무리 낮더라도 게이머는 만족할 수 있으니까.”

[상징성.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상혁은 민준이 있는 방향을 살짝 흘겨본 뒤, 축복을 향해 말했다.

“다른 유저에게 나는 너와 다르게 이번 이벤트에 참가했던 유저라는 사실을 자랑할 수 있는 아이템.

그러면서도 계속 새로 얻을 장비 때문에 교체할 필요가 없는 아이템.

딱 한눈에 보는 순간 ‘아, 저 유저가 그때 이벤트에 참가했던 그 유저구나.’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아이템.

그리고 그것을 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뿌듯해지고 자랑스러워지는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아이템.

직업에 관련 없이 누구나 찰 수 있는 그런 아이템이 좋겠지.”

[조건이 너무 복잡합니다.]

“지금 YAS안에서 찰 수 있는 장비 유형 리스트 전부 호출해봐.”

상혁이 말하자 축복이 홀로그램 마네킹 하나를 생성했다.

거기엔 ‘덕지덕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온갖 장비를 걸치고 있는 한 유저의 모습이 있었다.

상혁은 그 장비를 하나하나 살펴보다가, 망토를 고정하는 데 쓰이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브로치를 빼 들었다.

그리고는 축복에게 그것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게 좋을 것 같다. 로브를 써도 노출되는 장비이기도 하고, 망토가 없어도 브로치같이 착용할 수 있고, 딱히 목걸이 슬롯을 쓰는 것도 아닌 데다 기존 능력치 달린 장비와는 다르게 이건 순수하게 장식이니까.

원래 장식 용도만 사용 가능한 슬롯에 능력치 붙은 아이템은 진짜 귀한 거지.

남들보다 장비 하나를 더 찬 느낌이 되니까.

그럼 보정치가 낮아도 플레이어들은 좋아할 거야.”

[조언 감사합니다.]

“그리고 민준이 알고리즘 수정 끝내고 나면 너도 나한테 개인 교습받아.

지금 네 상태로는 규칙 규칙 노래만 부르다가 플레이어 암 걸리게 하기 딱 좋으니까.”

거기까지 말한 상혁은 그 자리에서 관리자 계정을 종료시켰다.

그리고는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수없이 죽음을 맞이했던 계정으로 다시 접속했다.

“어!”

“저기 이상혁 씨다!”

“이상혁 씨가 왔다아!!”

분명 단순히 능력치에만 영향을 끼치는 아이템인 맥주잔을 양손에 들고 있는 유저들이 순식간에 상혁을 포위했다.

그리고는 얼큰하게 취한 표정으로 상혁에게 말했다.

“자자, 같이 즐겨요!”

“이 중요한 시간에 어딜 갔다 오셨습니까? 똥입니까? 혹시 똥인 건가요?”

“아니, 여러분. 그거 마셔도 아무 맛도 안 나고 캐릭터 얼굴만 빨개지는 아이템인데 왜 잔뜩 취한 것 같이 보이죠?”

그러자 맥주잔을 든 플레이어들이 상혁에게 소리쳤다.

“취했죠! 분위기에 취했죠! 즐거운 노래도 있고, 승리의 기쁨도 있고, 아름다운 NPC들이 우리를 위해 춤을 추고 있잖습니까!”

“전 일부러 PRD 끄고 잠깐 술 마시고 왔어요!”

“저도요!”

“상혁 씨도 함께 즐깁시다!”

귓가에 들려오는 신나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상혁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양손을 회오리처럼 교차하며 피터 '더 라이트닝 댄서' 파커의 춤을 추면서, 광분해 소리를 지르는 플레이어의 무리에 합류했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이 축제의 현장을, 더 뜨겁게 불태우기 위해.

그런 상혁의 합류는, 안 그래도 잔뜩 즐거운 기분으로 축제를 즐기던 4만 명의 플레이어를 광란의 도가니로 빠지게 하기에 충분한 피날레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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