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89화 (390/485)

389. 게이머의 근성

“이 버러지 같은 존재들이!”

시체 포식자의 분노에 찬 포효가 울려 퍼질 때마다, 수십 수백의 플레이어가 마른 갈대처럼 픽픽 쓰러져 나갔다.

그러나 죽이는 속도보다 전선에 합류하는 속도가 더 빨랐기에, 시체 포식자는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붙잡혀 분노를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팔 한 번만 휘두르면 하루살이같이 죽을 놈들이!’

그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분노.

단 한 번의 죽음으로 소멸하는 자신과 다르게, 몇 번을 죽어도 부활하는 불합리한 존재에 대한 분노가, 그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게다가 그 수많은 인파의 가운데 숨어서 간간이 그의 신체에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입히고 있는 강자들의 존재가, 그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푸욱!-

정확하게 시체 포식자의 스킬 시전이 끝나는 위치에 날아온 화살이, 개미같이 생긴 그의 외골격을 뚫고 몸에 박혀 들었다.

그것도 뽑으려 드는 순간 살점이 뭉텅이로 날아갈 것 같은 날카로운 미늘이 박힌 화살이.

시체 포식자는 화살을 날린 상대가 있는 방향을 향해 몸을 날리려 했지만, 거기엔 이미 앞을 가로막는 수많은 플레이어의 인파밖에 보이지 않았다.

“지수 양을 지켜라아아아!”

“으아아 날 죽여라! 개자식아아아!!”

“우리는 서서 죽는다아아아!!”

시체 포식자는 이런 유저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다가오면 오히려 기쁜 얼굴로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몇 번이고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다시 달려와 죽음을 자청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그것은 자신이 혼돈에게서 부여받은 지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혼돈이시여. 플레이어란 존재는 패배와 죽음을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었습니까?’

혼돈은 자신에게 끝없이 순환하는 세계에서 플레이어가 받아야 하는 고통의 소용돌이를 끊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강대한 적을 물리치면 더 강대한 적이, 그리고 그 적을 물리치면 또 더 강대한 적이 기다리는 끝없는 싸움의 순환을.

그 과정에서 누적되는 막대한 플레이어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는 혼돈이 알려준 것과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몇 번을 죽이고 죽여도, 자신의 손짓 한번에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이 증발하고 있어도, 죽어가는 플레이어들의 표정은 기쁨에 물들어 있었으니까.

‘어째서?’

태어난 순간부터 혼돈과의 연결이 끊긴 그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의 죽음이 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토록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토록 의미 없는 죽음의 행군을 반복하는지.

자신의 논리 회로를 총동원하여 이유를 찾던 시체 포식자는 결국 생각을 포기해버렸다.

눈앞의 마조히스트들이 죽으면서 기뻐하는 이유를 찾는 것보단,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그는 두꺼운 껍질 사이로 튀어나온 가시 칼날의 속도를 올리며, 눈앞의 1레벨 플레이어들을 죽이는 속도를 더욱 가속시켜 나갔다.

***

‘전황이 안 좋아.’

상혁은 YAS를 개발한 이후 처음으로, YAS를 풀 다이브 VR 게임으로 개발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적어도 마우스 클릭 몇 번이나 아날로그 패드만 살짝 조작해서 이동이 가능한 게임이었다면, 적어도 체력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까.

상혁이 수천 명의 플레이어를 동원하여 돌로 만든 가벽을 세운 것은, 그 벽의 방어력을 통해 시체 포식자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차피 그정도 수준의 석조 구조물이야 시체 포식자가 손 한번 휘두르면 순식간에 부서질 물건이었기 때문에.

대신 상혁은 그 가벽을 시체포식자의 시야각에서 마차가 들어오는 각도를 가리는 가림막의 용도로 설치해 놓았다.

시체포식자의 시야에서 보면 마치 가벽 뒤에서 플레이어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그러나 그 실체는, 수도에서 부활한 유저들을 수레에 실어 미친 듯이 말을 달려 이곳까지 수송하는 초거대 규모의 수송 작전에 의한 인해전술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영지 내의 모든 말과 수레를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량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원래 허용된 무게를 한참 넘어선 막대한 인력을 수송해야하는 말들의 피로도 한계에 달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현재 전황의 상태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점점 플레이어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가는 중이었다.

‘말들이 지쳐가고 있다.’

최전선에서 목숨을 던져가며 반복된 죽음을 맞이하던 상혁은, 자신이 탄 마차를 끌고 있는 말의 상태를 살피고는 작전 본부를 향해 통신을 날렸다.

-전투 지역 변경! 요새 안으로 유인!-

그러자 커다란 뿔 나팔 소리와 함께 요새 꼭대기에서 거대한 붉은 깃발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요새 안이다!”

“다음 리스폰 이후는 요새 안으로!”

즉시 신호를 알아본 유저들이 서로 소리를 지르며 정보를 교환하고, 멀리서 마차를 달리며 부활한 유저들을 싣고가던 마부도 신호를 보고는 말고삐를 틀었다.

미리 쌓아놓은 돌벽의 뒤쪽이 아닌, 요새의 뒷문 방향을 향해.

그러자 자연스레 시체 포식자를 둘러싼 인력의 재보충이 중단되면서, 그의 앞에는 수많은 유저들이 죽으며 바닥에 떨군 수만자루의 검과 갑옷만이 바닥에 굴러다니게 되었다.

“크아아아아아!”

눈앞에서 마지막으로 저항하는 유저를 가볍게 찢어버린 시체 포식자의 포효가 들판에 울려 퍼지자, 성벽 위로 올라온 유저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시체 포식자가 단순히 포효에 풍압을 실어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것만으로도, 마치 사자후(獅子吼)를 들은 것처럼 전신에 있는 PRD의 압력센서가 미친 듯이 요동쳤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강자가 내뿜는 미증유의 ‘압력’마저도 표현 가능한 PRD 특유의 압도적인 현실감을 통해, 살벌하게 피부로 전달되고 있었다.

‘온다.’

온몸을 피로 물들인 채 천천히 걸어오는 대적자의 걸음을 보며, 성벽 위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서 있는 성벽을 내려다보았다.

PTW의 직원인, 4티어 석공 마스터가 건설한 견고한 성벽을.

처음 그 성벽을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그것은 ‘무너지지 않는 요새’라는 이름에 걸맞은 엄청난 위용을 뽐내고 있었지만, 성을 향해 걸어오는 존재의 강력함은 그런 견고함마저도 마치 택배 박스를 모아 만든 종이 성처럼 느껴지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순 없다.

이 성마저 없다면, 그 뒤엔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온다!”

순간, 누군가가 외치자 모두의 시선이 성벽 아래로 쏠렸다.

거기엔 허리를 숙인 채, 마치 대포알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가기 위해 자세를 취하고 있는 시체 포식자의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이 지난 후 말없이 전방의 거대한 요새를 바라보던 시체 포식자가 입을 열었다.

“그딴 모래성 뒤에 숨어봤자….”

그리고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자신이 밟고 있던 대지를 갈기갈기 찢어놓으며 전방을 향해 쇄도했다.

“소용없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육신으로 이루어진 물체가 충돌해서 생긴 소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커다란 굉음과 함께, 어린아이 키만 한 검은색 거석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그리고 그 충돌 지점의 위에 서 있던 수많은 플레이어도, 날아가는 바위들과 함께 공중으로 비산 했다.

[4티어급 구조물의 ‘무너지지 않는 요새’의 일부가 파괴되었습니다.

4,325,337 축복 포인트가 플레이어 진영에 지급되었습니다.]

[플레이어의 사망으로 플레이어 진영에 23포인트가 가산됩니다.]

[플레이어의 사망으로 플레이어 진영에 12포인트가 가산됩니다.]

[플레이어의 사망으로 플레이어 진영에 55포인트가 가산됩니다.]

[플레이어의 사망으로 플레이어 진영에 15포인트가 가산됩니다.]

상혁은 시야 구석에 띄워놓은 상황판에 올라오는 무수한 메시지들을 무시한 채, 성벽 안으로 진입한 시체 포식자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올려 플레이어들에게 외쳤다.

“지금입니다아아아아아!!”

상혁의 지시를 들은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준비된 휘장을 걷자, 휘장 뒤에 준비된 물건을 본 시체 포식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거기엔 자신이 있는 방향을 정확하게 조준하고 있는 수천 대의 ‘발리스타’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수천대의 발리스타들은, 시체 포식자가 뭔가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일제히 그 이빨을 드러내었다.

-파파파파파파팟!-

어른 허벅지만한 굵기의, 화살이라기보다는 기둥에 가까운 두꺼운 목제 구조물이 성벽 안을 가득 메우자, 시체 포식자는 양팔을 벌린채 무릎을 살짝 굽힌 특이한 자세를 취했다.

“소멸세(掃滅勢). 족제비 바람.”

그러자 조금 전의 공세가 무색하게, 시체 포식자를 향해 날아가던 수많은 화살이 마치 보이지 않는 믹서기에 갈린 것처럼 공중에서 분쇄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황당한 장관에 넋을 잃은 한 유저가 중얼거렸다.

“X발 무슨 판타지 게임도 아니고, 저게 말이 돼?”

“이거 게임 맞거든?”

“아! 맞구나? 너무 현실 같아서 잠깐 착각했네.

근데 게임이라 쳐도 저 정도 강함은 너무 비현실적인데?”

“잡담할 시간 없어! 뛰어들어!”

이것이 다른 게임에서의 전투였다면,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최대한 몸을 사리며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주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하는 것은 일반적인 전투가 아니었다.

죽음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광기와 집념의 레이스였을 뿐.

플레이어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한 후, 이를 악물고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끝이 강철로 된 단단한 나무 화살마져 믹서기처럼 갈아버리는, 칼날 같은 바람의 ‘폭풍’속을 향하여.

그러자 스킬을 사용하여 화살을 박살 내던 시체 포식자가 눈을 부릅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진짜 단체로 미친 건가?’

성벽에서 뛰어내려 칼날의 폭풍에 몸을 던지는 수천 명의 유저들이 바닥에 몸이 닿기도 전에 자신의 스킬에 맞아 산산 조각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살의 파도’가 끝나자마자, 다시 한번 자신을 향해 거대한 나무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큭, 소멸세(掃滅勢). 족제비 바람!”

다시 한번 화살의 비를 막아내자, 즉시 시작된 자살 특공.

전신을 거대한 검기로 감싸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스킬을 다시 펼친 시체 포식자와의 전투는, 발리스타와 화살을, 그리고 플레이어의 자살 특공을 이용한 2페이즈로 돌입하고 있었다.

마치 타죽을 것을 알면서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상혁은 그 서글픈 모습을 보며 간절하게 구스타프가 수련 중인 산맥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버틸 수 있는 동안에 빨리···.’

***

[패시브 스킬 ‘검격 회피’의 레벨이 1 상승하였습니다. 해당 스킬의 현재 레벨은 8입니다.]

[패시브 스킬 ‘자동 공격’의 레벨이 1 상승하였습니다. 해당 스킬의 현재 레벨은 9입니다.]

[패시브 스킬 ‘베기 저항’의 레벨이 1 상승하였습니다. 해당 스킬의 현재 레벨은 6입니다.]

날카로운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 속에서 울려 퍼지는 시스템 메시지를 들으며, 구스타프는 들고 있던 검을 힘없이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가쁜 숨을 내쉬며 눈앞의 강철 인형들을 바라보았다.

‘2412···2455···. 2400대가 내 한계인가?’

사실 그 찰나의 순간에 3240개나 되는 공격 목표를 전부 베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거기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수많은 강철 칼날의 공격을 피하면서 타겟을 노리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고.

그러나 불가능해 보이는 수련법 앞에서 구스타프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상혁이 말했던 YAS의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었다.

‘물론 애니메이션 주인공도 아니고 육체를 가진 인간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격을 하는 건 불가능하죠.’

‘그럼 왜 시도하라는 거죠?’

‘애당초 인간의 반사신경으로 피할 수 없는 공격도, 패시브 스킬이 발동되면 회피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수련법은 오토로 발동하는 패시브 스킬의 레벨을 극한까지 올리는 게 핵심입니다.

실제로 한 번의 호흡에 구스타프 씨가 휘두를 수 있는 검격의 한계가 10회 정도라면, 나머지 3230개의 타겟은 패시브 스킬이 베도록 만드는 거죠.

점프를 생각해보세요.

현재 4티어급의 신체 능력을 지닌 구스타프 씨라면, 한 번의 도약으로 20m 정도의 높이는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구스타프 씨가 PRD 안에서 실제로 20미터를 뛸 수 있는 수준의 힘을 다리에 주고 뛰는 건 아니잖아요?

실제로는 평범한 점프를 하는 거지만, 시스템이 구스타프 씨의 자세를 보고 어느정도의 점프를 뛰려 하는지 인식해서 보정을 해 주는 거죠.

YAS의 스킬 시스템은 그런 방식으로 동작합니다.

구스타프 씨가 10개의 타겟을 베면서 3240개의 타겟을 베려고 시도하면, 시스템이 나머지 3230개의 타겟을 베어주는 것.

그것이 평범한 인간의 스펙을 지닌 플레이어가 게임 안에서 인간을 초월한 움직임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보정 시스템이니까요.

몸은 10개의 타겟만 베어도 됩니다.

하지만 의지는 3240개의 타겟을 모두 노려야 하죠.

마음이 바라는 것을 가상의 공간에서 이루어주는 것.

그것이 YAS의 스킬 시스템이니까요.’

상혁과의 대화를 떠올린 구스타프가 투덜거렸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실제로 이루기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에.

“말은 쉽지···. 말은···.”

그러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입에선 단내가 나는데도 구스타프가 수련을 멈출 수 없는 건, 상혁의 그 허황된 말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패시브 스킬을 습득하고, 레벨이 오르면서, 수련을 할 때마다 칼자국이 새겨지는 타겟의 번호가 점점 늘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구스타프 자신의 캐릭터에 새겨지는 칼자국의 숫자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그것은 수련에 의한 강함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다는, YAS의 가장 큰 재미를 그대로 체감하게 해 주는 경험이었기에, 구스타프는 수련 자체에 중독된 것처럼 무아지경의 상태로 수련에 임할 수 있었다.

책임감 때문에도, 사명감 때문에도 아닌, 게임의 시스템 자체가 주는 순수한 재미 때문에.

구스타프는 떨리는 손을 가볍게 주무른 후 바닥에 놓여있던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눈앞의 강철 인형을 전부 박살 내겠다는 염원을 담아, 나지막하게 스킬을 호출하는 ‘자세의 이름’을 외쳤다.

“멸절세(滅絶勢). 몰아치는 검풍.”

그러자 시전자의 의지를 읽은 PRD의 피드백 시스템이, 구스타프의 전신에 달린 와이어를 강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

[4티어급 구조물의 ‘무너지지 않는 요새’의 일부가 파괴되었습니다.

2,325,337 축복 포인트가 플레이어 진영에 지급되었습니다.]

[6티어급 구조물 발리스타가 파괴되었습니다.

123,223 축복 포인트가 플레이어 진영에 지급되었습니다.]

[6티어급 구조물 발리스타가 파괴되었습니다.

147,453 축복 포인트가 플레이어 진영에 지급되었습니다.]

[플레이어의 사망으로 플레이어 진영에 17포인트가 가산됩니다.]

[플레이어의 사망으로 플레이어 진영에 22포인트가 가산됩니다.]

그토록 미친 듯이 몰아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시체 포식자는 엄청난 공세를 막아내며 간간이 자신을 공격하는 발리스타의 개수를 줄여나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공세의 틈이 넓어지면서, 시체 포식자가 운신할 수 있는 움직임의 폭도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더 많은 구조물을 파괴하고, 더 많은 플레이어를 죽일 수 있도록.

그 모습을 보며 상혁은 이 전투의 결말이 막바지에 도달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3번 수송 반의 말들이 전부 탈진했습니다!

플레이어 수송 불가!-

-12번 수송 반의 마차도 바퀴가 부서져서 이동할 수 없습니다.

내구도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이 이상 성벽이 공격당하면 요새 자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미친 듯이 올라오는 상황 보고를 보면서, 상혁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상혁이 탄 마차를 끌던 말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상혁과 함께 타고 있던 플레이어들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컥!”

전신에 강하게 느껴지는 PRD의 물리적 피드백을 느끼면서, 상혁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바닥에 처박혔다.

그곳은 아직 요새에 도달하기엔 500미터가 넘게 남아있는 먼 지점이었다.

“여기까지인가….”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의 먼지를 털었다.

그리고는 몸을 누르고 있는 너덜너덜한 갑옷의 고정쇠를 풀었다.

-터덩텅!-

금속 갑옷이 바닥의 돌과 부딪히며 날카로운 금속음을 들으며, 상혁은 자신의 뒤에 달려오고 있는 다른 마차들의 행렬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달려오던 마차들이 속도를 늦추며 상혁의 근처에 멈춰섰다.

마차마다 수십명의 플레이어를 태운 상태로.

상혁은 자신을 둘러싼 수천 명의 플레이어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짓고는, 그들을 향해 지친 목소리로 전음 마법을 날렸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러자 수천 명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전투는 한창 진행 중인 상태였기 때문에.

그러나 여기서 더 전투를 진행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한 상혁은, 유저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애당초 이번 전투는, 저희가 동원한 말들의 체력이 다할 때까지 차륜전을 진행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번 포인트로 최대한 빠르게 3티어 플레이어를 탄생시켜 3티어급 적을 상대하는 게 목적이었죠.

하지만 이제 모든 말이 빈사 상태에 이르렀고, 저희가 준비한 히든 카드는 아직 3티어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 말은, 저희가 패배했다는 이야기겠죠.

이제 곧, ‘무너지지 않는 요새’ 전체가 무너져내릴 겁니다.

그리고 거기 있는 수천명의 플레이어들도 요새와 함께 운명을 다 하겠죠.

그럼 그 이후엔, 시체 포식자가 저희가 부활하고 있는 리스폰 포인트를 향해 전력으로 돌진할 겁니다.

수도의 열악한 방어 시설로는 그 진격을 막을 수 없을 거고요.”

그러자 한 유저가 상혁이 있는 방향을 향해 소리쳤다.

“아직 안 끝나지 않았습니까!”

“맞아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죠!”

“우리보다 먼저 포기하지 마세요!”

“우린 아직 더 죽을 수 있습니다!”

수십 수백 번을 죽었으면서도 아직도 강한 의지를 담아 외치는 유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상혁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지속적인 충원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더 이상의 전투는 단순한 의지를 넘어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과정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결과를 바라지 않았다.

“현재 가장 가까운 리스폰 포인트와 요새와의 거리는 3㎞가 넘습니다.

그 말은 부활 이후에 전투 합류까지 그 먼 거리를 뛰어서 이동해야 한다는 소리죠.

확실한 승리조차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러분께 그런 부담까지 부탁드릴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요새가 완전히 무너질 때 발생하는 대량의 포인트를 가지고, 구스타프 씨가 3티어의 벽을 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뿐이겠죠.

그게 저희의 마지막 카드입니다.

더 이상은 없고요.

그러니 이번 작전은 여기까지로 하겠습니다.”

어느새 수만 명으로 불어난 인파의 앞에서, 상혁은 90도로 허리를 숙여 플레이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만일 이번 이벤트에서 플레이어 진영이 패배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준비를 더 철저히 하지 못한 저희의 패배이지 여러분의 패배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수없이 목숨을 바치며 저희가 만들어낸 월드를 지키려고 노력하신 영웅들이니까요.

저는 지금 이 순간, 그 영웅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만든 게임을 여러분 같은 게이머들과 함께 즐길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게이머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그리고 오늘 있었던 영웅적인 일화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아마도 이번 전투는 저희의 패배로 끝날 겁니다.

월드는 파괴되고, 아무것도 없는 세계로 다시 돌아가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서버를 내리진 않을 겁니다.

만약 이 게임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여기 있는 여러분들과 함께 이 세계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나무를 베고, 풀을 심고, 집을 짓고, 밥을 나눠 먹으며 다시 한번 이 세계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을, YAS의 월드를, 여러분과 함께 채워나가고 싶습니다.”

어느새 조용해진 수만 명의 플레이어가 지켜보는 가운데, 상혁이 물었다.

“한번 실패한 저희지만, 여러분과 함께 싸웠음에도 패배한 저희이지만, 그래도 여기에, 바로 이 세계에서, 저희와 함께 함께 세계를 완성하고 싶은 플레이어는 계십니까?!”

대답은 없었다.

이 개고생을 하고서도, 결국 몬스터 하나를 막지 못해서 월드가 리셋 되게 된 상황에 섣불리 그 삽질을 함께 하겠다고 외칠만한 플레이어는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은 상혁의 착각이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침묵 속에서 한 게이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치자, 다른 플레이어도 함께 일어나며 외쳤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패배는 아쉽지만! 다음번엔 절대 무너지지 않는 성벽을 짓겠습니다!

제가 만드는 성벽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3티어의 벽 따위는 제가 뚫어드리겠습니다!”

“X발 리셋하려면 하라고 해요! 10번이고 20번이고 만들어드릴 테니까!”

“저는 그 잠깐 사이에 40번은 죽었습니다! 그러니 PTW에 제 목숨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권리 정도는 있겠죠!

전 그 대가로 YAS의 소유권을 요구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여긴 우리 PTW 게이머의 월드라고!

그러니 리셋이 되든, 몬스터에게 멸망하든 내 목숨값만큼은 이 게임에서 받아내야겠습니다!”

“맞다!”

“옳소!”

“YAS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아아!”

“YAS! YAS! YAAAAAS!!!”

수만 명이 동시에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상혁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요새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게이머들에게 소리쳤다.

“좋습니다! 어차피 저희가 만든 세계를 구하려고 수십 번씩 죽음을 각오한 분들에게, 그정도 보상은 당연한 거겠죠!

이제부터 YAS는 플레이어와 PTW가 함께 만들어가는 게임이 될 겁니다!

업데이트도! 패치도!

심지어 관리자 회의도!

모든 결정에 참여할 권한을 플레이어 대표에게도 배정하겠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운, 진짜 게이머들을 위해!!!”

“으아아아아!!!”

“만들자!! 만들자!!”

칼을 흔들며 환호하는 플레이어들을 향해 몸을 돌린 상혁은 허리를 숙여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는 허리에 찬 검을 빼 들고 요새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가장 앞에 서 있던 몇몇 유저들이 상혁을 향해 물었다.

이미 전투가 끝났다면서, 어디로 가려는 거냐고.

상혁은 자신을 바라보는 유저들의 눈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선원은 배를 버려도 선장은 배를 버려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전 이 사건의 책임자이자 이 게임의 개발자로서, 제 발로 달려서라도 적에게 달려가 포인트를 벌 생각입니다.

어쩌면, 진짜 운이 좋다면 결과적으로 이 세계 그대로를 온전한 상태로 여러분께 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자 상혁의 말을 들은 게이머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리고는 몸에 걸친 갑옷의 잠금쇠를 풀며 상혁에게 말했다.

“그 먼 거리를 달리려면 갑옷을 걸치고는 무리겠죠.

포인트는 조금 줄겠지만, 최대한 왕복해야 하니 저희도 갑옷을 벗겠습니다.”

“예?”

“조금 전 말씀하셨죠. 이제 YAS의 월드는 PTW만의 것이 아니라고.

그럼 이제 이곳의 주인은 저희도 되는 겁니다.

그러니 저희도 할 수 있을 만큼은 해야죠.”

그렇게 말한 플레이어가 갑옷을 벗고는 검을 뽑아 들며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외쳤다.

“상혁 씨 말 들으셨죠!?  지금부터! 우리는 말 없이 수 킬로미터를 뛰어서 적에게 돌진해야 합니다!

그 정도까지 하기는 힘드신 분!

달리기에 약하신 분!

임산부와 노약자는 대열에서 빠져 주십시오!

지금부터는 PTW와 같이 끝까지 목숨을 꼬라박을 분들만 남아서 싸웁시다!”

“꼬라박자아아!”

“싸우자아아아!”

“다이어트 하는 셈 치고 꼬라박는다아아!!”

그러자 조금 전 모두를 향해 외치던 플레이어가 상혁을 보며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함성에 묻히지 않는 큰 목소리로 상혁을 향해 외쳤다.

“이게! 저희의! 의지입니다!”

그 순간 상혁은 자신을 바라보면 수만 개의 눈동자를 보면서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아니 게임 업계 전체의 역사를 다 통틀어봐도, 가장 행복한 개발자를 꼽는다면 그건 무조건 자신일 거라고.

그렇게 상혁은 원래의 작전계획에도 없던 ‘3페이즈’를 진행하기 위해 힘차게 외치며 달려나갔다.

“으아아아!! 이 개자식아! 이게 바로 게이머의 근성이다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아아!!!”

그렇게, 갑옷도 없이 기본 지급되는 속옷만 걸친 수만 명의 인파가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후에 한 유명 화가가 ‘속옷단의 진격’이라는 이름의 명화를 완성하게 만든 전설적인 장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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