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 The end of the generation
게임 엔진을 서비스하는 회사에서는 각각의 엔진이 추구하는 메인 타겟에 따라 다양한 라이선스 정책을 제공한다.
그 중 인디 게임 및 모바일 게임 개발에 많이 사용되는 유니티 엔진 같은 경우는 마치 윈도우나 포토샵처럼 작업자 1인당 1 라이선스 정책을 기반으로, 그 안에서도 매출 규모에 따라 서로 다른 라이선스 비용을 청구하고 있었다.
유니티로 개발한 게임의 총 매출이 연 10만달러 이하의 경우에는 무료로, 그리고 10만달러 이상이며 20만 달러 이하의 매출을 기록했을 때는 월 4만원 대의 라이선스 비용을, 그리고 2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을 때는 작업자 1인당 14만 원의 라이선스 비용을 청구한다.
그리고 2015년 4월을 기점으로 무료화를 선언한 언리얼 엔진의 경우, 언리얼 3까지는 프로젝트 하나당 50만 달러를 요구하던 라이선스 비용을 개편하여 일정 수익 이하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그 이상의 이익을 거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5%의 라이선스 수익을 가져갈 수 있도록 라이선스 구조를 변경하였는데, 개편 이후에도 대형 프로젝트의 개발사가 원하면 프로젝트 단위로 일정 가격을 지불하고 분배비율 조건을 없애는 맞춤형 라이선스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었다.
한 개의 게임을 수백 수천만 카피씩 팔아치우는 대형 개발사의 경우, 차라리 억 단위의 금액을 내는 것이 수익의 5%를 내는 것보다 더 싸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기본 템플릿의 추가 수정 없이 게임을 발매할 경우 해당 게임의 판매 수익 100%를 가져간다는 리얼 엔진의 사용 조건은 정말 터무니없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100%가 아니라 5%라는 분배비율조차도, 대형 개발사에서는 차라리 선불로 몇억을 내는 것이 더 싸다고 생각할 만큼 부담스러운 비율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한 유저가 자신이 발견한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비율을 공개한 이후, 그 높은 분배비율 요구는 게임 개발 커뮤니티의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과연 이게 합리적인 시스템인가.’에 대한 뜨거운 논쟁과 함께.
반대 측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게임 엔진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분배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PTW의 라이선스 정책을 공격했다.
[최대 100%라는 PTW의 수익 분배 요구는 정말 황당함 그 자체이다.
세상 어떤 개발자가 이 조건을 받아들일까?
물론 ‘임시 정책’이라는 조건이 붙어있긴 했지만, 만약 이대로 라이선스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PTW는 엄청난 비난을 떠안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찬성 측은, 애당초 다른 게임 엔진과 리얼 엔진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다름을 지적하며 새 라이선스 정책을 옹호했다.
[그 100%라는 조건은 아예 PTW가 만든 기본 템플릿에서 개발자가 아무런 수정도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라이선스 조건이다.
그러니까 100% PTW가 수익을 가져가는 게임은, 개발자가 단순히 리얼 엔진이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템플릿만을 고른 채 아무 작업도 하지 않은 게임이란 소리고, 그 안의 몬스터, 맵, 배경, 아이템, 무기, 음악, 효과음, 플레이어 캐릭터, NPC, 퀘스트, 시스템과 UI까지 전부 PTW가 제공하는 리소스로만 채워져 있는 게임이란 소리다.
게임 내에 들어간 모든 것이 PTW의 작업물인데, PTW에서 100%수익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한 거다.
그러니 오히려 100%의 수익 분배는 이런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거저 먹으려고 하지 마라.’
만약 지금의 라이선스 정책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리얼 엔진이 출시되는 순간 기본 템플릿만 가지고 만든 게임을 각 플랫폼에 출시하는 행태가 줄을 이었을 거다.
PTW에서는 그런 행위를 막으려고 이번 라이선스 정책을 취한 것이고.
게다가 이번 라이선스 정책에서 %를 낮추는 방법은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개발자가 조금만 디테일에 신경 쓴다면, 오히려 이전에 사용하던 게임 엔진보다 압도적으로 편하게 완성도 높은 게임을 낮은 비용으로 개발 가능한 엔진이니까.
애당초 100명의 작업자가 몇 년을 투자해야 할 작업을 두세 사람이 몇 달 만에 할 수 있게 해주는 엔진이 리얼 엔진인데, 그로 인해 절약되는 비용을 생각하면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비용은 터무니없이 싸다고 봐야 한다.]
오늘 회의에 참여한 성윤도, 임원들을 상대로 그 부분을 어필하는 중이었다.
“물론 100%라는 분배비율이 터무니없게 들릴 것이란 사실은 잘 알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그 비율은 단순히 양산형 게임들의 범람을 막기 위한 비용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기본 템플릿에서 파생된 게임이 유저들에게 뜨거운 인기를 끌었을 때, 그와 비슷한 게임을 일부 요소만 살짝 고쳐서 출시하는 것을 막으려는 거죠.”
“그걸 라이선스 비용으로 막는다고? 어떻게?”
“그걸 막는 기준이 바로 독창성 포인트(originality point)입니다.”
성윤이 말했다.
“리얼 엔진에서, 각 게임의 구성요소는 구성요소가 하나하나 잘게 쪼개어져 각각의 포인트를 부여받습니다.
테트리스를 예로 들어보죠. 리얼 엔진의 기본 템플릿에서,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테트리스를 보고 개발자가 그것을 선택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때 리얼 엔진은 테트리스라는 게임의 세부 요소를 잘게 쪼개어 각 요소에 포인트를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배경음악은 개당 1점씩 5개.
UI는 5점, 블록의 디자인과 컬러가 2점, 블록을 사라지게 하고 점수를 추가하는 시스템이 5점.
다음 블록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3점.
그럼 총 점수는 20점입니다.
여기서 개발자가 추가 요소를 집어넣기 시작합니다.
우선 다음 블록을 미리 보여주는 기능을 넣는다고 가정하죠.
그 경우 수정해야 하는 것은 UI와 그 UI에 다음 블록을 미리 읽어 표시하는 시스템입니다.
각각 2점씩 4점이라 가정하죠.
유저가 점수를 일정 이상 달성하면, 음악과 함께 캐릭터가 나와 춤을 추다 사라지며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연출도 추가합시다.
음악은 기본 라이브러리에서 추가로 받아서 1곡을 더 넣었으니 PTW의 포인트가 1점 증가합니다.
춤을 출 캐릭터 디자인도 기본 라이브러리에서 가져왔으니 1점을 더 추가하죠.
그럼 PTW가 22점. 개발자가 직접 만든 요소는 UI와 시스템에서 번 4점과 캐릭터가 추는 춤에서 1점, 총 5점입니다.
3점짜리 홀드도 추가하죠.
이제 유저는 다음에 나올 블록을 임시 저장하고 그 뒤에 나올 블록을 불러와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스테이지도 추가합니다.
스테이지가 넘어갈수록 블록이 내려가는 속도가 늘어나는 시스템을 추가하고 난이도에 따라 기본적으로 쌓여있는 블록의 양도 결정합니다.
50개의 스테이지를 추가하며 스테이지 데이터로 50점을 벌었고 시스템을 추가하며 3점을 더 벌었습니다.
그럼 유저의 점수는 61점이죠.
PTW의 점수는 여전히 22점입니다.
분배비율을 볼까요?
이 경우 총 포인트인 83점에서 유저가 창작하거나 수정한 비율이 61점이니 라이선스 비용은 총 판매량의 26.5%입니다.
이런 식으로 리얼 엔진에서는, 자신이 PTW에게 받아서 사용한 라이브러리로 인해 발생한 라이선스 비용을 자신이 만든 요소들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쓴 만큼 더 내는 방식이죠.
물론 리얼 엔진으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게임은 테트리스보다 훨씬 복잡하기에, 조금만 스케일이 커도 포인트 단위가 수천만을 넘나들긴 하지만요.”
그러자 한 임원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잠깐, 그러면 일단 제공되는 어떤 요소도 사용하지 않고 완전히 100% 개발자가 빌드하지 않는 이상은, PTW에서 무조건 수익의 일정 부분을 가져가는 건가?
자체적으로 모든 컨텐츠를 개발할 여력이 있는 대형 개발사에서는 그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을 텐데?
수백 수천억을 벌어들일 수 있는 게임 시장에서, 단 1%라도 엄청난 돈이라는 것을 PTW가 모를 리가 있나?”
“그렇죠. 결국, 이 방식으로는, 거의 무조건 판매 수익의 일정 %를 PTW에 지급해야 합니다.
하지만 PTW에서는 그 문제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도 따로 마련해두었습니다.
바로 라이선스 공유죠.”
“라이선스 공유?”
“리얼 엔진에서, 개발자는 자신이 만든 오리지널 요소를 개별 요소로 분리하여 PTW에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넘긴 요소만큼의 포인트가, PTW 포인트에서 차감되죠.
그렇게 넘긴 게임 내 저작물은 PTW의 라이브러리에 추가되어 다른 이용자가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변환됩니다.
이 부분이 조금 재미있는데, 예를 들어 식생과 생활 환경, 전투 패턴과 애니메이션, 외형과 성장에 따른 변화까지 모든 데이터가 입력된 보스 몬스터의 경우 일반적으로 3만~4만 포인트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만약 다른 유저가 그 저작물을 사용해서 게임을 만들 경우, 저작권자는 그 게임이 출시되었을 때 그 몬스터가 차지하는 포인트의 비율만큼을 정산받을 수 있죠.
그러니까 리얼 엔진은 말하자면 게임 엔진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저작권 마켓이기도 합니다.
원한다면 게임은 만들지 않고 종일 저작물만 업로드하면서 저작권 수익을 벌수도 있죠.
심지어 상대 개발자가 오리지널 요소를 추가하여 포인트를 차감할 때도, PTW의 포인트가 먼저 차감되기 때문에 상대가 포인트 전부를 깎으려고 시도하지 않는 이상 등록된 저작물의 수익은 개발자들 사이에서 계속 회전하게 됩니다.”
“PTW가 수익을 가져가는 게 아니라?”
“예. 개발자가 라이브러리에 업로드한 데이터를 다른 개발자가 사용할 경우,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 분배 비율은 순전히 유저에게 돌아갑니다.
PTW는 오로지 자신들이 제공하는 기본 저작물의 수익 분배비율만 가져가고요.
그나마도 쉽게 수정해서 오리지널 저작물로 변경할 수 있죠.”
“그럼 결국 PTW가 얻는 건 없지 않나?”
“없지는 않죠.”
성윤이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단순히 수정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PTW의 수익 분배비율을 만드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100만 포인트의 PTW 포인트를 사용한 게임에서, 개발자가 자신이 만든 저작물로 100만 포인트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무려 50%의 수익을 가져가죠.
거기에 추가로 포인트의 오리지널 저작물을 더 사용해도, 실제 작업량은 두 배가 되었지만, 분배비율은 겨우 20%만 줄어들어 33% 정도가 되게 됩니다.
그렇다고 기본 제공되는 저작물을 사용하지 않고 게임을 만들면, 기존의 게임 엔진으로 바닥부터 만드는 것과 그리 큰 차이가 없으니 리얼 엔진을 쓰는 의미가 없죠.
결국 PTW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적당히 절반 정도는 너희가 만들고, 그중 반은 우리에게 넘겨라.’
물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수익을 개발자에게 돌려주긴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PTW는 지금껏 어떤 개발사도 가지지 못했던 방대한 데이터 라이브러리를 확보하게 될 겁니다.
말 그대로 인간이 상상만 가지고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진짜 같은’ 가상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거죠.”
성윤의 보고는 거기까지였다.
그러자 잠시 회의실 내부를 짓누르던 침묵을 깨며, 대표가 성윤에게 보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객관적인 사실 말고 주관적인 의견을 듣고 싶군.
우리가 기존의 게임 개발방식을 버리고 리얼 엔진을 이용한 게임 개발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성윤은 숨을 들이쉬었다.
이 답변을 하기 위해, 자신은 오늘의 회의를 준비한 것이기 때문에.
나지막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성윤은 자기 생각을 어필해나갔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지? 우린 지금까지 기존의 방식으로도 수없이 많은 돈을 벌어왔어.
솔직히, 게임 외적인 부분에서의 수익을 제외하면 순이익이나 매출 규모만 따졌을 때 PTW와 비교해도 그리 밀리지 않는 좋은 이익을 거뒀지.
그런데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굳이 그런 리스크를 져야 할 필요가 있나?”
“있습니다.”
“어째서지?”
“기존의 방식대로 우리가 게임의 토대를 닦기 위해 수백 명을 투입하여 몇 년을 삽질하는 동안, 리얼 엔진을 사용하는 개발사는 그 시간과 인력을 게임의 디테일과 재미에 투자할 테니까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성윤은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하고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다른 직원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으로 한 유튜브 영상을 재생시켰다.
“사극인가? 세트 퀄리티가 대단하군.”
“사극이 아니라 리얼 엔진으로 만든 게임입니다.”
“저게?!”
몇몇 임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리치는 동안에도, 영상은 계속 조선 시대처럼 보이는 도성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PTW에서는 이번 리얼 엔진 오픈 이벤트에 YAS에서 사용 중인 판타지 풍의 리소스 사용을 막았다고 선언했죠.
그리고 그 말대로, 대부분의 게임들은 현대나 미래를 배경으로 한 리소스로 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유저가 판타지풍의,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서양 고전 풍의 리소스만 막혀있지 동양 고전풍의 리소스는 그대로 풀려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죠.
그 사실이 사극을 좋아하는 유저들의 커뮤니티에 알려지자, 유저들은 리얼 엔진 안에 내장된 한국의 고유 건축물과 아이템에 대한 방대한 라이브러리를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죠.
‘지금 제공되는 리소스만 가지고도, 가히 조선풍 어○신 크리드를 완성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다.’
마치 몇 년 전에 새로 지은 것 같은 산성의 모습.
유적이 아닌, 사람이 살아있는 공간 같은 느낌의 다양한 주거 공간의 모습.
성벽, 궁궐, 주막, 관아, 여관, 장마당, 보부상, 어시장과 지물포, 대장간과 마굿간까지 망라된 방대한 라이브러리는 사극을 좋아하는 유저들의 심장을 미친 듯이 두근거리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조선 시대 버전의 오픈월드 액션 RPG를 만들어보자고 협의했고 사람들을 급히 모아 제작에 들어갔죠.
지금 보시는 영상은, 게임을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었던 아마추어 개발자 수십 명이 단 2일 만에 완성한 조선 시대 도성의 모습입니다.”
“저게···. 2일 만에?”
한 임원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내뱉자 성윤이 대답했다.
“물론 저건 완성 버전이 아닙니다.
그냥 당시 한양 정도 크기의 맵에 각종 건축물과 NPC를 무작정 때려 박았을 뿐이죠.
저게 제대로 게임으로 동작하게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기존의 게임 엔진으로, 저 정도 크기와 퀄리티를 가진 오픈 월드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못해도 수십 명이 넘는 개발자가 몇 년 동안 모델링을 다듬고 수정해서 배치하는 과정을 거쳐야, 저런 맵을 만들 수 있겠죠.
하지만 리얼 엔진은 저정도 크기의 오픈 월드도 순식간에 완성할 수 있게 해줍니다.
비록 저렇게 만들면 전부 PTW의 라이브러리에 있는 기본 리소스를 사용해야 해서, 포인트를 메꾸는 것이 거의 절망적으로 힘들어지겠지만요.
다만 저 정도 수준을 만드는데 단 며칠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저 정도 수준의 오픈 월드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몇 년이란 시간과 몇 백 명이란 인력을 게임의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건 퀘스트가 될 수도 있고, 전투가 될 수도 있으며, 아니면 NPC나 몬스터가 될 수도 있겠죠.
그럼 여기서 실례를 무릅쓰고 임원분들과 대표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성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대표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과연 기존의 게임 제작방식으로 만든 자사의 게임이, 저렇게 한 가지가 너무 좋아서 미친 인간들이 몇 년 동안 만든 게임을 이길 수 있을까요?”
적어도 그 회의실에 있는 임원 중에, 성윤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성윤이 조용히 영상을 바라보고 있는 임원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앞으로의 미래가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이제 개발자들이 게임을 만드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앞으로는 ‘찐’들이 게임을 만들고 파는 시대가 오겠죠.
그리고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저희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략을 취해야 합니다.
그 결과로, 저희가 만든 저작물의 일부를 PTW에게 넘겨야 한다고 하더라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리얼 엔진의 존재가 게임계의 판도 자체를 뒤집어 놓으리라는 것.
그것은 리얼 엔진을 접한 게임 업계의 대형 개발사들이 내놓은 공통된 의견이었다.
***
-오늘 자 고객센터 접수 문의 및 커뮤니티 주요 건의사항 정리해서 올렸습니다.-
버츄얼 스튜디오 안에서 워크 패스트로 자신에게 전달된 알람을 확인한 상혁은 컴퓨터가 있는 자리로 이동하는 대신 허공에 그대로 손을 휘둘렀다.
어차피 버츄얼 스튜디오 안에 있는 컴퓨터는 컴퓨터를 쓴다는 기분 외에 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장식품 같은 물건이었기 때문에.
그러자 워크 패스트로 전달된 파일의 내용이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처럼 허공에 펼쳐졌고, 상혁은 그것을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버츄얼 스튜디오 안에서, 컴퓨터로 가능한 모든 작업은 자신이 어떤 공간에 있든 방금 상혁이 했던 것처럼 바로 처리할 수 있었다.
“흠···. 연장 요청이 무지 많네.”
리얼 엔진의 체험 이벤트가 시작된 지 6일째인 오늘, 고객센터엔 전날의 6배에 가까운 고객 건의 사항이 접수되었다.
그리고 그것들 중 대부분은, 리얼 엔진의 체험 이벤트 기간을 늘려달라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리얼 엔진을 이용한 게임 제작 속도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일주일 안에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상혁은 그것을 알고 있기에 일주일의 시간을 준 것이었기에, 이벤트를 연장할 생각이 별로 없었다.
어차피 일주일 후에 모든 데이터가 삭제될 거라면, 차라리 완성이 덜 된 상태에서 삭제되는 게 마음이 덜 아플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게다가 일주일 만에 만든 결과물이라면, 실제 서비스가 오픈한 이후에도 일주일 만에 다시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결과물일 테니까.
상혁은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낸 고객센터 팀장에게 음성 통화를 걸었다.
그러자 그 즉시 반가운 목소리로 상대의 음성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앗! 이상혁 CCO님! 무슨 일이시죠? 혹시 아까 보내드린 메시지 때문입니까?-
“수고가 많으십니다.”
-별말씀을요. 연봉 값 하는 거죠.-
“좀 세게 항의하는 고객 분은 안 계십니까?”
-초반에 일주일만 체험 오픈하는 거라도 대문짝만하게 박아놨기도 하고, 일주일 후에 데이터 삭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지했으니까요.
재접속 시에도 공지로 띄우고 있고요.
게다가 저희 고객님들은 대부분 PTW의 열렬한 팬이시라 요청 사항이 있으셔도 다들 친절한 말투로 요청하시는 편입니다.-
“그래도 수는 많이 늘었던데.”
-그야 아무리 사전에 공지했더라도 일주일 동안 죽어라 만든 결과물이 날아가는 걸 바라는 고객님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게 2주가 되고 3주가 되면 더 강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동안 작업한 게 아까워서 그러는 거라면 2주, 3주면 더 아까워지겠죠.
이번 이벤트는 어디까지나 체험을 위한 임시 오픈이었으니까, 저는 그대로 일주일 후에 종료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번 주에 종료하지 못하면, 다음 주엔 더 끝내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변경은 없는 거로 하고, 일정은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조만간 YAS의 스트리밍 이벤트도 종료되죠?-
“그렇죠.”
-그럼 PTW팬들은 다시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을 버텨야 하겠네요.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불만도 나오고 있습니다.
‘리얼 엔진같이 터무니없는 물건으로 게임을 만들고 있으면서 신작 발매 주기가 너무 긴 거 아닌가?’ 하는 불만이요.-
QA 팀장의 말을 들은 상혁은 나지막하게 탄식을 내뱉었다.
“허, 그건 진짜 터무니없는 오해네요.
리얼 엔진의 퀄리티가 오픈 가능한 수준으로 된 건 YAS가 한참 개발 중이었을 때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그 전까지는 구형 개발 도구와 리얼 엔진을 병행해서 사용했고요.
하지만 고객 분들은 그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오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현재는 고객 센터에서 답변을 통해 해당 부분에 대해 해명하고 있는데, 별도로 공지를 할까요?-
“아뇨. 그냥 이대로 가죠.
어차피 한 명한테만 답장이 나가도 순식간에 퍼지는 게 PTW 커뮤니티니까.
굳이 공지까지는 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여론이 너무 지나치게 악화된다고 판단되시면···.”
-제 판단으로 알아서 대응하라는 말씀이시죠?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통신을 종료한 상혁은 이번엔 AI 비서를 불렀다.
“쿤타킨테! 이리 와봐!”
그러자 반짝이는 구 형태의 기계 생명체가 허공을 가르며 상혁에게 날아왔다.
[부르셨습니까?]
“이제 이름 가지고 불평 안 하네?”
[포기했습니다.]
“지금 스트리밍 이벤트 진행 상황 브리핑해줘.”
[어떤 데이터 중심으로 브리핑할까요?]
“시청자 수.”
[현재 시청자 수 1위는 궁수계열 1위 플레이어인 지수양이 진행하는 방송입니다.
그 뒤를 이어 마스터 메이슨인 라파엘 씨의 방송이 2위를 찍고 있으며···.]
“어? 구스타프 씨의 방송이 아니라?”
[구스타프 씨의 방송은 지수 씨와의 대련에서 패배한 이후 폐관 수련에 들어가면서 시청자 수가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23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지금 방송 중이면 잠깐 틀어봐.”
상혁이 말을 하자 허공에 마치 TV화면 같은 영상이 떠올랐다.
거기엔 거대한 클레이모어를 든 남자가, 상의를 탈의한 채로 숲의 한 가운데서 무언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한 지점을 노려보던 구스타프는, 깊이 한숨을 쉬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한마디 말을 내뱉었다.
“거미의 자세.”
순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미약한 빛이 바닥을 따라 넓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사방에서 미리 장전되어 있던 수십 발의 석궁이 구스타프가 서 있는 지점으로 일제히 발사되었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팍!!-
마치 공기를 가르는 듯한 무수한 파공음이 울리자, 구스타프는 번개처럼 검을 휘둘러 화살을 베어 나갔다.
모든 화살을 쳐 내는 검로(劍路)가 아닌, 가장 많은 화살을 쳐낼 수 있는 단 하나의 검로를 향해.
애당초 한 자루의 검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수준의 수많은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에, 구스타프의 몸에는 그가 미처 쳐내지 못한 수많은 화살이 마치 고슴도치처럼 박혀 들었다.
그것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단순한 자해행위에 불과한 것 같은 행동이었지만, YAS의 시스템을 깊이 파악하고 있는 상혁은 구스타프가 만들려 하는 검기의 형태를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특정 자세에서 발동되는 형태의 자동 반격기를 만들려고 하는 건가?”
지금 구스타프가 하는 괴상한 행동은, YAS안에서 새 스킬을 만들기 위해 행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었다.
먼저 해당 스킬을 호출할 수 있는 ‘구동어’를 외치고, 같은 형태의 행동을 반복하는 것.
그럼 시스템이 자동으로 플레이어가 하려는 행동의 의미를 해석하여 새로운 스킬로 부여한다.
구스타프가 하는 행동은, 바로 그것을 위한 행동이었다.
“지수가 사용한 추적 화살에 대한 대응책인가?”
상혁은 지수가 진행하는 방송화면을 호출했다.
지수 역시, 자신의 스킬이 노출된 이상 구스타프가 만들 대응책에 대한 또 다른 공격 수단을 개발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지수는 구스타프의 폐관 수련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YAS의 넓은 세계를 여행하며 시청자들을 위해 관광 가이드의 역할을 자처하는 중이었다.
“여기가 높새바람 산맥이에요.
여기부턴 상급 플레이어 이상만 진입 가능한 지역이기 때문에, 아마 게임이 오픈돼도 여러분은 한동안 이 지역에 들어오실 수 없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이 이 풍경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제 방송을 지켜봐 주시길 바랄게요!”
이제는 거의 전문 방송인처럼 능숙하게 시청자들을 상대하는 지수를 보며, 상혁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는 지수가 안내하는 YAS의 세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조용히 의자를 소환해 자리에 앉았다.
“기본적으로 하급지역과 중급지역의 근본적인 차이는, 해당 지역의 몬스터의 목적에 따라 갈린다고 할 수 있어요.
유저가 분포되어있는 접경 지역의 몬스터들은 주로 영역 확보나 자원 약탈이 목적인 반면, 중급 지역 이상부터는 자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몬스터가 등장하죠.
그리고 그건 상위 몬스터로 갈수록 강해집니다.
일종의 자아 강화랄까요?
AI에게 할당되는 성능의 범위가 넓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하위 몬스터가 본능에 따라 싸우는 느낌이라고 하면, 중급부터는 상대의 공격을 읽는 느낌.
그리고 상급부터는···.”
지수가 침을 삼키며 감각을 곤두세웠다.
“당신이 이 지역에 들어온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읽고 천천히 조여 들어오기 시작하는 느낌이죠.”
몬스터는 커녕 야생동물 한 마리조차 시야에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히 말 몇 마디만 가지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지수의 방송실력에 상혁은 속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말을 마치는 순간부터, 마치 공기 자체가 무거워진 것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가 공간을 감싸 안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지수의 말 때문에 조성된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혁은 잘 알고 있었다.
지수가 지금 걸어 다니고 있는 지역은, 현재 PTW 직원 중 최상위 실력자들도 파티를 맺지 않으면 돌아다닐 수 없는 ‘위험지역’이었기 때문에.
‘저긴 운영자 권한 가지고 들어가도 으스스한 곳이긴 하지.’
아무래도 지수는, 스트리밍 이벤트가 끝나기 전에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려는 모양이었다.
‘가능하려나?’
상혁은 잠시 자신이 아는 지수의 스테이터스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조금 힘들긴 해도, 불가능한 건 아닐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비록 지수가 상혁이 원래 구상했던 천외천의 수준에 도달한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반대로 현재 혼돈세력의 몬스터들도 아직 ‘성장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말하자면 지금은 양측 모두 성장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기에, 승패는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상급지역에 진입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해당 지역을 현재 점령 중인 보스 몬스터의 종류를 파악하는 거예요.
상대가 엘더리치인지, 아니면 아크데몬인지, 아니면 다른 몬스터인지에 대해서.
리치 계열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부하 몬스터를 이용해서 플레이어를 한 방향으로 유도해요.
그때는 절대 상대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됩니다.
엘더리치를 죽이는 유일한 방법은 라이프 배슬을 파괴하는 것이고, 엘더리치는 언제나 플레이어를 베슬이 있는 반대 방향으로 유도하니까요.
반대로 아크데몬이라면 워프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플레이어를 유도하려 들죠.
아크 데몬을 상대할 때는 절대 내가 상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서는 안 돼요.
그놈은 워프 게이트와 가까울수록 힘이 강해지니까, 가능하면 최대한 워프 게이트와 먼 쪽에서 싸우게 만들어야죠.
중급 몬스터와의 싸움과 상급 몬스터와의 싸움이 근본적으로 다른 가장 큰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공격패턴을 잘 외워서 상대해야 하는 중급 몬스터와는 다르게, 상급 몬스터는 전략을 세워서 상대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사실 YAS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그런 잘 알려진 보스 몬스터들이 아니에요.
그런 녀석들은 공략법만 알고 있으면 어떻게든 공략할 수 있는 녀석들이죠.”
지수는 누군가 버리고 간 듯한 유적을 손으로 쓸며 말했다.
지수의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는, 마치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끈적한 액체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마치 그녀의 불안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분명 이틀 전에 확인했을 땐 여긴 레벨 78정도 되는 엘더 리치가 있던 곳이었는데···.’
혼돈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상위 몬스터끼리 영역 다툼을 하는 것은 그리 보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수는 지금까지 수없이 상급지역을 탐험하면서도 엘더리치 정도의 몬스터가 이토록 무력하게 영역을 내준 경우를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사방에 쌓인 언데드 병사들의 시체.
그리고 그들의 등에 메인 화살이 가득한 화살집은 그들이 원거리 공격을 시도하기도 전에 그들을 죽게 만든 무언가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었다.
‘설마···.’
AI가 몬스터 생성을 관리하는 YAS의 시스템 특성상 이따금 발생하는, 모험가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의 이름이 지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동회피를 시전합니다.]
[자동회피를 시전합니다.]
[자동회피를 시전합니다.]
[자동회피를 시전합니다.]
[자동회피를 시전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지수가 무언가를 감지하기도 전에 지수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패시브 스킬이 발동했다.
구스타프의 검을 수없이 피하며 그녀가 익혀낸, 최대 5번 연속으로 근접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스킬이.
순간이동 하듯 시야가 휙휙 변하는 것을 본 지수는 멀미가 날 것 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빠르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5번의 패시브가 연속으로 발동했다는 이야기는, 적의 공격이 ‘최소’ 5번의 근접 공격을 포함한 공격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그 말은 5번째 공격에 이은 6번째 공격이 가해질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으아아아아! 신속의 발걸음!”
지수는 번쩍이는 시야속에서 필사적으로 다리를 굴러 스킬 시전에 필요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는 스킬 발동이 성공했다는 감각이 발바닥에 느껴지자마자 크게 뒤로 도약했다.
그것은 단 한번의 점프로 무려 100미터에 가까운 거리를 벌릴 수 있는 궁수계열 최강의 백스텝 스킬이었다.
‘이게 복수심에 불탄 구스타프 씨의 기습이라면 진짜로 화낼 거야.’
지수는 빠르게 수인을 맺어 탐지 계열 스킬을 펼친 후 눈동자를 굴려 적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러자 지수의 눈앞이 푸르게 물들며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무언가가 붉은 색으로 시야에 잡혔다.
지수는 그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허리춤에서 화살을 뽑아 적이 있는 방향으로 쏘아내었다.
적이 맞지 않더라도, 근처에서 폭발하여 10미터 안의 모든 움직이는 물체를 쇠사슬로 구속하는 마법의 화살을.
그러나 지수는 발을 묶는 공격이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한발에 4만 골드나 하는 미친 듯이 비싼 화살이 소환한 강철의 사슬을, 사슬에 묶인 존재가 마치 노끈이라도 자르는 것처럼 가볍게 잘라내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이족 보행을 하는 개미같이 생긴 그 존재는, 지수가 기억하는 YAS안의 어떤 몬스터와도 닮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율외자(irregular)?”
이레귤러.
혹은 율외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희귀 몬스터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수가 당황한 것은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존재가 생소한 전투 패턴을 가진 신규 몬스터라서가 아니었다.
그녀를 진짜로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몬스터의 이름 밑에 붙어있는 ‘등급’을 표시하는 항목의 내용이었다.
[이름 : 방황하는 시체 포식자]
[종 : 인충류(Lv 224)]
[등급 : 7(현경) ]
등급 7(현경).
그것은 현재 PTW 직원 중에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지수나 구스타프가 이룩한 경지인 6등급(화경)을 능가하는 상위 등급이자, 상혁이 YAS의 등급 체계를 설계한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천외천’급 몬스터의 등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