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 외계인 침공
한국 게임 업계의 메카라 부를 수 있는 판교에 위치한 모 대형 게임사 회의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사람들이 전방을 주시하는 가운데, 한 남자가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준비된 대형 모니터 앞에 섰다.
“그럼 지금부터 리얼 엔진에 대한 분석 및 향후 게임 업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사내 TF의 분석에 대해 보고드리겠습니다.”
핵심 임원들이 전부 게임 개발자 출신인 PTW와는 다르게, 변호사나 경영 전문가 출신의 임원도 상당수 포함된 회의였기에, 보고를 담당한 김성윤은 최대한 쉽게 설명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을 느끼며 보고회를 시작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번 회의의 메인 아젠다는 PTW에서 3일 전 발표한 ‘리얼 엔진’의 업계 반응과 엔진 자체의 기술력 및 효용성, 그리고 그에 대한 회사의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이번 회의를 위해, 저희 TF에서는 총 6대의 PRD를 구입.
기획팀 소속 2명, 프로그래밍 팀 소속 2명, 그래픽 소속 2명, 사운드 팀 소속 2명, QA 팀 소속 2명과 사업부 소속 2명의 전담 분석팀을 꾸려 하루에 각 12시간씩 교대로 리얼 엔진을 분석하며 총 2일간 자료를 수집하였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각 부서의 리얼 엔진에 대한 총평을 먼저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가 프레젠터의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전환되며 작은 영상이 흘러나오는 사각 박스 옆에 굵은 텍스트가 출력되었다.
“먼저 기획팀 소속 담당자들의 총평입니다.
‘진입 장벽은 초등학생도 게임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낮춘 엔진이지만,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엔진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엔진.’
‘개발자의 기를 빨아먹는 저주받은 엔진.’
어찌 보면 상반되어 보이는, 쉬우면서도 어렵다는 이 분석 결과가 나온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담당자는 가장 먼저, 이 엔진엔 ‘디테일의 상한’이 없다는 점을 손에 꼽았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현재 주력 중인 모바일 MMORPG의 경우, 모바일 콘솔이라는 플랫폼 특성상 개발엔 반드시 상한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그래픽이든 이펙트든 아니면 한 화면에 출력되는 유저수의 한계이든, 개발사 입장에서는 절대로 최신폰에서만 겨우 돌아가는 게임을 출시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는 1~2년 전에 발매되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가장 대중적인 머신을 대상으로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지나친 발열이나 배터리 소모가 발생하지 않도록 퍼포먼스를 조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PRD는 애당초 딥 다이버의 최대 해상도인 양안 8K 해상도에 144프레임의 해상도 성능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상위 게임 콘솔이며, 이전 4차 NE 컨벤션에서 밝혀졌듯 한 시야 안에 거의 5천 명에 가까운 유저와 같은 수의 몬스터를 랙 없이 구현하는 거의 신기에 가까운 머신입니다.
게다가 전신에 배치되어있는 와이어와 온도 센서, 압력판을 이용해서 현실과 유사한 체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햅틱형 VR 장비이기도 합니다.
이는 기존의 게임이 가진 디테일의 장벽 자체를 무너트려버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 디테일의 장벽이라는 게 뭐지?”
한 임원이 마이크의 버튼을 누르며 묻자, 성윤이 대답했다.
“일반적인 게임은, 아무리 그래픽이 좋더라도 일단 모니터나 스마트폰, TV라는 평면 매체를 통해 전달됩니다.
그리고 그 매체를 통해 발생한 자극은, 오로지 시각과 청각, 그리고 컨트롤러에 포함된 진동 같은 단순한 피드백을 통해 유저에게 전달됩니다.
다음 장면을 보시면 조금 이해가 쉬울 겁니다.
여기 보이는 화면은 유저가 조종하는 캐릭터가 적 몬스터를 주먹으로 공격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여기서 저희가 구현 할 수 있는 디테일의 한계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텍스쳐의 해상도 상승.
애니메이션의 리얼리티 강화.
사운드 이펙트의 강화.
쉐이더 등의 후처리 이펙트의 강화.
물리 엔진에 기반한 피격 당하는 몬스터의 애니메이션 구현.
피격되어 파손되거나 일그러지는 부위의 표현 강화.
주먹이 몬스터에 닿는 순간 컨트롤러를 통한 진동으로 타격감을 표현.
폴리곤 수의 증가.
폭력적인 장면에 어울리는 화려하고 신나는 음악의 삽입 및 싱크로 작업.
좀 더 찾아보면 찾을 수 있겠지만 이 정도가 저희가 이 장면에서 넣을 수 있는 디테일의 한계입니다.
그 대부분은 말씀드린 대로 화면, 음향, 진동을 통한 피드백이 전부고요.
PRD를 보시겠습니다.
기존의 모든요소와 더불어, PRD에서는 이런 디테일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상대 몬스터의 무게와 플레이어의 힘 스텟을 계산하여 적절한 타격감과 물리적 반발력을 플레이어의 몸에 전달.
돌진하는 플레이어의 몸에 닿는 바람의 흐름을 온도 센서와 압력 센서를 통해 신체로 전달.
주먹에 닿는 몬스터의 피부 재질에 따른 단단함을 느낄 수 있도록 피드백 수준을 조정.
플레이어의 체력 수준에 따라 자유로운 움직임에 제약을 걸어 플레이어의 지친 상태를 표현,
이 모든 기술적인 구현을, 별 어려움 없이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만 봐도, 리얼 엔진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기존 게임에서 퍼포먼스를 고려하여 수많은 전문가가 몇날 며칠을 다듬어야 겨우 하나 완성할 수 있는 디테일을, 리얼 엔진은 개발자가 말 몇마디 하는 것으로 너무나 쉽게 만들게 해줍니다.
그렇게 리얼 엔진은 유저가 매우 쉽게 디테일의 ‘깊이’를 구현하게 해 주기에, 개발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디테일의 ‘넓이’에 집중하게 만드는 게임엔진입니다.
개발자의 기를 빨아먹는 저주 받은 엔진이라는 표현은, 바로 그것 때문에 나온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주받았다?”
“너무나도 쉽게 디테일의 구현이 가능하기에, 리얼 엔진을 다루는 개발자는 게임을 만들면 만들수록 그 디테일을 다듬는데 중독되게 됩니다.
기존 게임 개발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개발자가 혼자서 몬스터 한 마리를 구현합니다.
그 개발자는 한정된 시간 동안 자신이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서 해당 몬스터를 작업했습니다.
컨셉 아트를 그리고, 모델링을 만들고, 본을 심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이펙트를 넣겠죠.
전체 작업 공정 시간의 절반 이상이 그 과정에 투입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이 나오면, 그때부터는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디테일의 강화에 들어갈지, 아니면 그대로 결과물을 개발팀에 보낼지.
예를 들어 개발자는 원한다면 더운 곳과 추운 곳에서의 기후에 따른 몬스터 피부의 변화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메마른 사막에 배치된 몬스터이기에, 말라서 갈라진 피부를 보여주거나 혹은 습지에서 살기에 온몸에 붙어있는 불어터진 주름 같은 것을 표현할 수 있겠죠.
하지만 보통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런데 써야 할 시간을, 모두 앞의 ‘기본적인 작업’에 소모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건 기획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얼 엔진을 사용하면, 그 전까지는 회사 양식에 맞춰서 생각을 문서로 정리하고 참고 자료를 찾아 삽입하고 기획 회의를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득시키는 모든 과정이 필요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냥 너무나도 쉽게 프로토 타입을 만들고, 자기 생각대로 만들어질 때까지 계속 다듬은 뒤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여주면 그만이죠.
심지어 그 프로토 타입의 플레이를 다른 사람에게 시킬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프로토 타입은, 흔히 테스트를 위해 만들어지는 그런 원시적인 느낌의 게임 프로그램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세계에서 가장 능력좋은 AD들의 도움을 받아, 당장 발매해도 문제가 없을 수준의 셈플 그래픽을 사용해서 만든 프로토 타입이니까요.”
그러자 심각한 표정으로 성윤의 보고를 받고 있던 대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하게.”
성윤의 보고가 계속되었다.
그래픽적인 부분에서 리얼 엔진의 진입 장벽이 얼마나 낮은지, 원래 대로라면 수십 시간이 걸릴 작업을 어떻게 쉽게 처리하게 해주는지.
안에 들어있는 AD의 AI가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특히 AI를 스타일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눠서 제공하는 것은 실로 기발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의 AI로 그 모든 과정을 지원한다면 결과물도 다 비슷하게 나왔을 테니까요.
하지만 리얼 엔진에 탑재된 AI는 진짜 원본 인격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한 듯, 모델링을 보정하는 과정이나 셈플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스타일에 맞는 추천을 해 줍니다.
리얼 엔진에 들어있는 그 방대한 라이브러리 자료를 전부 뒤질 필요 없이, 내 취향에 맞는 AD의 AI를 선택함으로써 전체 작업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하게 해 주는 AD 시스템은 기존의 ‘SARI’처럼 하나의 AI만을 제공하는 시스템에 비하면 거의 혁명에 가까운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얼 엔진에 내장된 3D 모델링 툴은 마치 지점토를 만지듯 가볍게 모델링을 만져서 수정할 수 있게 해줍니다.
심지어 한 부분을 만지며 ‘이 부분을 좀 더 날카로운 느낌으로 다듬어달라.’라는 부탁에도 바로 반응하죠.
가장 충격적인 건, 기본적으로 디자이너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문장인 ‘어딘가가 마음에 안 드는데, 그게 어디인지 모르겠다.’라는 말에도 반응한다는 겁니다.
어떤 알고리즘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리얼 엔진은 현재 작업된 전체 모델링을 이전에 마음에 들어 했던 작업물들과 비교한 후, 스타일 적으로 차이점이 있는 부분들을 통일감 있게 수정한 셈플을 제시하는 식으로 해당 문제에 대처하려 합니다.
순식간에 4~5개의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각각을 설명하며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을 수정했는지 알려주고 해결책을 제시해줍니다.”
사운드 역시, 이번 회의의 주요 아젠다 중의 하나였다.
“PTW의 딥 다이버에서 가장 공포를 자아낸다고 평가받은 중요 요소는 그 환상적인 그래픽이 아니라 사운드였습니다.
그때 쓰인 기술은 단순히 애니메이션에 맞춰서 음향을 재생하는 것이 아닌, 실제 음향이 발생하는 지점에서 해당 음원이 공간의 형태에 따라 반사되는 형태를 시뮬레이션 해 플레이어의 귀에 전달하는 사운드 엔진이라는 기술이었죠.
리얼 엔진에는 해당 기술을 100% 지원합니다.
게다가 수천 곡이 넘는, 각 분위기에 맞는 셈플링 곡들도 지원하고요.
심지어 입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악기 구성을 선택하면 자동으로 곡을 만들어주는 기능도 있습니다.
물론 현재 버전에서는 그렇게 곡을 만들려면 엄청나게 조정해야 하는 부분이 많이 생기긴 하지만, 그대로 아마추어가 작곡이라는 영역에 손을 댈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선 엄청난 위업을 달성했다고 봐야 할 겁니다.”
들을수록 말조차 나오지 않는 리얼 엔진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성윤은 연신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계속 닦아내야 했다.
설명을 하는 자신의 앞에서, 수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게임 회사의 대표가 무서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성윤은 빠르게 다음 파트로 설명을 넘겼다.
“다음은 프로그래밍입니다. 처음 저희 프로그래머들이 리얼 엔진을 접했을 때, 그들은 절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한 프로그래머는 ‘이건 코더라는 직업의 종말’이라고 표현했으며, 다른 프로그래머는 ‘앞으로 콘솔 게임 업계에서 프로그래머란 직업은 PTW 안에만 남을 것’이라고 표현했죠.
하지만 리얼 엔진 안에서 지속해서 프로그래밍 관련 부분의 수정을 시도하면서, 그 견해는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건 ‘엔진에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시스템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게임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아직 코더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라는 평가였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리얼 엔진에는 어떤 종류의 랜덤 박스 시스템도 채용되어 있지 않은데, 저희의 프로그래머는 처음 게임을 생성할 때 유저에게 제공되는 기본 가이드 외의, 완전히 다른 시스템을 개발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불가능하지 않았고요.
물론 지원하지 않는 UI와 시스템을 사용해야 했기에 처음 설계할 때 지원되는 쓰기 편한 UI는 쓸 수 없었지만, 저희 프로그래머는 리얼엔진 안에서 지원되는 드로잉 툴을 이용해 UI를 만들고, 만들려는 시스템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통해 프로토 타입의 제작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결과적으로는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처음 프로그램을 구축할 때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버그가 발생한 것이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그 프로그래머는 해당 신규 시스템의 소스코드 공개를 요청했고, 리얼 엔진의 AI가 그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프로그래머는, 엔진 안에 기본 템플렛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한 신규 시스템을 처음부터 AI가 구성한 코드를 살펴볼 수 있게 되었죠.”
“어떻다고 하던가?”
“자신이 전달한 정보만 가지고 가장 숙련된 개발자가 코드를 짜더라도 이토록 남이 보기 쉽도록 잘 짜인 코드를 만들 수는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성윤이 말했다.
“리얼 엔진은, 자신이 원한다면 대부분의 세부 사항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그 모든 것을 자동으로 채워주는 엔진이지만, 원한다면 게임 안의 어떤 것에도 개입할 수 있는 엔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함수명을 정하는 규칙부터 게임 안의 리소스 파일 명을 정하거나 심지어 AI가 작성한 코드의 주석 스타일을 정하는 것까지, 모든 영역에 걸쳐서 지원되는 기능이죠.
현실에서, 어떤 기획자는 자료를 꼼꼼히 남겨두고 어떤 프로그래머는 주석을 엄청나게 자세하게 적어두지만, 안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리얼 엔진은 타인이 대충 만든 코드도 다른 작업자가 보기 쉽도록 AI가 깔끔하게 해당 기능을 분석하여 기능에 관해 설명한 통일된 스타일의 주석과 코드를 볼 수 있게 해주죠.
그리고 신규 시스템의 코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프로그래밍의 기본 지식이 있으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코드 템플릿을 지원합니다.”
“코드 템플릿?”
“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코드의 구현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리얼 엔진은 그 중에 자신이 이해하기 쉽고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코딩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하는 거고요.
코더가 할 일은, 매우 읽기 쉽게 잘 정리된 여러 코드 중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코드를 선택하는 것뿐입니다.”
거기까지 설명을 들은 회사의 대표가 마이크의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말 그대로 외계인이나 만들 법한 기술이군. 우리도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들은 있지 않나? 어째서 PTW만 그런 걸 만들 수 있는 거지?”
“지금 세계 10대 프로그래머로 꼽히는 사람 중에 무려 6명이 PTW 소속입니다.
그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괴물이 무려 3명이고요.
김민준과 존 카믹, 존 스캇의 존재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을 가능하게 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스컹크 웍스의 멤버 구성은, 여타 회사들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르다는 건가?”
“일반적인 회사에서 팀을 구성할 때는 가장 실력 있는 사람을 헤드로 지정한 후 그보다 떨어지는 사람을 아래에 배정합니다.
일종의 피라미드 구조처럼, 받는 연봉에 따라 자연스레 실력도 갈리게 되죠.
그래서 일반적인 개발팀은 극소수의 천재들과 소수의 실력자, 그리고 대다수의 일반인과 다시 소수의 초보들로 구성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스컹크 웍스는 다르죠.
거기는 구성원 하나하나가 어느 회사로 가든 헤드 치프를 맡을 수 있는 괴물들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극소수의 괴물이 이끄는 집단과 전체 집단이 괴물로만 이루어진 집단.
그 둘의 전투력은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건 마치 부대원 전부가 여포로만 구성된 특수부대 같은 겁니다.
만약 저희 회사에서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무언가에 도전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럼 가장 실력있는 리드 프로그래머에게 그 요청이 접수되고, 리드 프로그래머는 그 작업이 가능한 다른 프로그래머에게 일을 할당하겠죠.
그럼 그 프로그래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작업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설계하고 견적을 잡는 겁니다.
때로는 깃 허브나 스택 오버플로우에서 비슷한 코드를 찾기도 하고, 엔진 개발사에 연락을 해 기술지원을 받기도 하면서요.
하지만 스컹크 웍스에선 그럴 필요가 없죠.
그냥 ‘이것 좀 해주실래요?’라고 부탁하는 것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그래머가 착착 결과물을 만들어 가져올 테니까요.
게다가 알려진 소문에 따르면, PTW 입사 후에 안 그래도 높던 멤버들의 실력이 거의 몇 배 이상 높아졌다는 이야기도 들리고요.
그 배경엔, 아마도 STC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하고 있겠지요.”
“스컹크 웍스 전체 멤버들의 연봉은 우리도 지급할 수 있는 수준 아닌가?
우리도 그런 팀을 만들면 어떤가?”
“애당초 그 정도 실력자들은 돈을 보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인간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만든 건, 그들보다 한 차원 높은 경지에 있다고 평가받는 민준의 능력이죠.
그리고 그들의 능력을 100% 활용하면 구현이 힘들기는 해도, 불가능하지는 않은 수준의 적절한 과제를 제공하는 PTW의 경영능력도 있고요.
남들이 듣기엔 말도 안 되는 짓거리만 반복하고 있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면 완성이 되어있는, 그리고 그 결과물로 항상 세상을 경악시키는, 그런 짓만 반복하는 회사가 PTW입니다.
그 안에서도 가장 핵심이라 불리는 스컹크 웍스의 멤버라는 그들의 프라이드는, 절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자 대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좋아. 그럼 우리가 스컹크 웍스 같은 팀을 굴리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 같군.
그럼 지금 우리가 취해야 할 가장 좋은 포지션은 뭐지?
다른 대형 게임사에서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고?”
“그것에 대해서는 사업부의 보고 내용 발표 이후에 설명해 드릴 예정이었지만, 대표님이 궁금해하시니 그 부분을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성윤은 슬라이드를 몇장 앞으로 넘긴 뒤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극 초반의 업계 반응은 ‘리얼 엔진이 발매되면 대형 게임사들에게 종말이 올 것이다’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게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열정과 상상력만 있으면 DA나 UDI소프트 급의 대형 게임사에 뒤지지 않는 퀄리티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공개 이벤트가 진행되면서, 조금 전 프로그래머들의 생각이 바뀌어가던 것처럼 게임 업계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어째서지?”
“그건 생각보다 리얼 엔진이 손이 엄청나게 많이 가는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성윤이 말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리얼 엔진이 요구하는 것은 상상력의 ‘깊이’가 아닌 ‘넓이’입니다.
몬스터 하나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전반적으로 다듬을 수 있는 일관된 디테일을 요구하는 게 리얼 엔진이기 때문입니다.
HC 101이 출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 게임안에 있던 디테일에 경악했습니다.
플레이어가 원한다면, 근처에 있는 체스판을 가져와 NPC와 체스를 할 수도 있고, 게임 안의 모든 차량은 리얼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수준으로 마음껏 탑승 가능하며, 자신이 활약한 내용이 담긴 신문을 보거나 새 빌런의 출연을 알리는 TV 뉴스를 볼 수도 있죠.
HC 101은 게임 안의 모든 오브젝트에 상호작용이 가능하며 게임 안의 모든 구조물이 파괴 가능한 말도 안 되는 스펙을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유저들이 볼 때, 그건 마치 이 능력이 적용된 23세기 판 GTA 같은 느낌의 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호작용 가능한 오브젝트들을, 유저는 간단히 자신의 게임에 불러올 수 있습니다.
HC 101의 체스판과 자동차들, TV뉴스들, 신문 발행 시스템과 편의점 좌판들.
그러나 유저가 모든 오브젝트를 전부 가져다 자신의 게임에 넣을 수는 있지만, HC 101보다 뛰어난 게임을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류작 정도나 가능하겠지요.”
“어째서지?”
“그건 애당초 그 상호작용들이 HC 101을 위해서 제작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락스타 게임즈 정도의 회사라면 자신들의 GTA 신작을 리얼엔진으로 출시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지금까지의 GTA보다 훨씬 뛰어난 상호작용, 그리고 더 디테일한 세계를 보여주겠죠.
하지만 그건 전혀 의미가 없는 행동입니다.
HC 101의 다트 보드를 가져와 GTA에 배치하더라도, 그 다트는 완벽하게 동작하는 다트가 되겠지만, 그건 이미 HC 101에서 지겹도록 플레이 해 본 다트 정도로 인식되겠죠.
굳이 HC 101에서 얼마나 리얼한지 전부 체험했는데, GTA에서 다트 게임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쯤 되면 리얼 엔진에서 기본 지원하는 오브젝트를 아무리 가져다 넣더라도 그냥 자리 채우려고 집어넣은 그래픽 덩어리로밖에 안 보일 겁니다.
반대로, 다른 디테일을 채워 넣으면 그건 매우 신선한 게임이 될 수 있겠죠.”
성윤의 말에 대표가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어떤 식으로?”
“HC 101에서 구현된 다트를 가져오되, 아예 다트 대회 자체를 표현한 게임을 만드는 겁니다.
대회에 참여할 NPC를 만들고, 대회의 스토리를 구성하고, 동료와 라이벌을 만들고, 다양한 형태의 커스텀 다트를 추가하는 거죠.
물리 엔진 자체는 완벽한 물건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 극적인 다트 챔피언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심지어 그건 체스 챔피언의 이야기도, 바둑챔피언의 이야기도, 혹은 NBA 농구 선수의 이야기도 될 수 있겠죠.
그 과정에서, 리얼 엔진이 제공하는 것은 완성된 도시의 모습과 NPC들, 그리고 완벽하게 동작하는 농구공과 골대의 물리 엔진뿐입니다.
나머지 모든 요소는, 개발자가 하나하나 채워 넣어야 하고요.
대형 개발사들은 그 부분에서 큰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리얼 엔진 이전에 대형 개발팀의 역할이 게임을 만드는 것이었다면, 이후의 대형 개발팀의 역할은 디테일을 만드는 역할이 될 것이라고요.
그리고 그건 한사람이 만들 수 있는 디테일보다 훨씬 뛰어나고 깊이 있는 디테일이 되겠죠.”
“그래픽적인 부분이나 퀄리티적인 부분이 강제로 상향 평준화되면서, 개발사의 역할도 변화한다는 거군?”
“저희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나머지 대형 개발사의 개발자들도 그렇게 보고 있고요.
반대로 인디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원해도 할 수 없었던 과감한 스케일의 게임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에 흥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좋아. 만약 그렇게 트랜드가 변화한다고 가정하고, 우리도 리얼 엔진을 이용해서 게임을 만든다고 가정하지.
그럼 지금 우리가 주력하고 있는 모바일 부분 유료화 게임도 구현할 수 있나?”
“기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리얼 엔진으로 제작된 게임은 3대 콘솔을 제외하더라도 딥 다이버 전용이나 PRS, PRD 전용 및 PC와 모바일로도 포팅 가능하다는 내용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으니까요.
물론 부분 유료화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PTW에서 해당 기능이 포함된 게임의 출시를 막을 수도 있겠지만, 업계에서는 그렇게까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모바일 게임 시장에 대해서는 완전히 방관하고 있기도 하고요.
다만 자신들이 전권을 통제하고 있는 PRD의 앱 마켓에서는 부분 유료화 게임의 통제를 시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타 플랫폼에서는 괜찮다는 건가?”
“애당초 그 조건으로 SANY와 MS를 설득했겠죠.
어차피 PRD가 출시된 시점에서 양사의 콘솔 성능은 더 이상 필요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현재는 양사가 힘을 합쳐도 PRD를 능가하는 성능의 VR 기기를 만들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PS와 X-BOX 계열 콘솔을 PRD에 연결하면, HC 101안에서 자유롭게 해당 콘솔을 불러와 ‘게임 안에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상태고요.”
“그게 수요가 있나?”
“의외로 있습니다. PRD 자체가 체력을 엄청 소모하는 장비이기도 하고, VR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은 이전부터 딥 다이버의 게이밍 룸 기능을 활용해서 콘솔 게임을 즐기곤 했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리얼 엔진이란 새로운 엔진의 등장으로 대량의 콘솔 게임이 등장할 수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유저 유입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거라 판단한 거겠죠.
어차피 PTW와 테슬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기기 가격만 3천만원인 PRD의 보급 속도는 콘솔보다 턱없이 느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마도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아직 보급이 덜 된 PRD 전용 게임보다는, 좀 더 많은 판매량을 기대할 수 있는 콘솔 게임의 출시에 더 큰 유혹을 느끼게 되겠죠.
게다가 PRD가 있는 유저라면, 대부분 PTW가 아닌 다른 회사의 게임보다 PTW에서 만든 게임을 선호하기도 할 테고요.”
“결국 게임 시장이 PRD를 가진 유저와 못 가진 유저로 양분될 거라는 이야기군.”
“PTW가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연달아 세웠어도, PTW의 게임은 직장에서 짬짬히 하는 종류의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길을 걸어 다니며 플레이하는 접근성 있는 게임도 아니었고요.
아마 리얼 엔진을 중심으로 게임 시장이 재개편 된다 하더라도, 기존의 콘솔 개발사와 모바일 개발사들의 위치는 견고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다만 유니티나 언리얼 같은 기존의 게임 엔진들은 아마 사업 철수를 고려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기존 엔진으로 몇십 시간이 걸리는 일을, 리얼 엔진은 몇 분 만에 처리해버리니까요.”
“그럼 문제는 리얼 엔진의 공식 서비스 시기와, 라이선스 비용문제겠군.
어떤 방식이 될 것 같은가?
게임 규모에 따라 한 번에 몇 백만에서 몇 십억까지 지불하는 방식?
아니면 수익의 일정 %를 떼가려나?
PTW는 예전부터 게이머 친화적인 기업이라고 이름이 높았는데, 게이머들에게 더 좋은 양질의 게임을 제공하기 위해 공짜로 제공하지는 않겠나?”
대표의 질문을 들은 성윤은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대표의 질문에 답했다.
“사실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사업부 담당자의 보고 파트에 들어있었습니다만, 보고를 드리는 저도 이게 어떻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좀 곤란합니다.”
“라이선스 정책이 비공개였나?”
“아뇨, 확정된 사항이 아니라는 안내가 붙어있긴 했지만,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제도 자체는 리얼 엔진 내의 도우미에게 물어보면 쉽게 답변을 얻어낼 수 있게 되어있었습니다.
다만 그 내용이, 기존의 엔진 라이선스와는 전혀 다른 해괴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해괴한 구조?”
“분석을 담당한 두 명의 사업부 직원 중 한 명은 이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이 라이선스 정책을 설계한 사람은, 악마가 분명하다.’
반대로 다른 한 명은 이렇게 답했죠.
‘이 라이선스 정책을 만든 사람은 천재가 틀림없다.’
그런 엇갈린 평가가 나올 정도로,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정책은 엄청나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세히 보고해보도록.”
대표의 지시를 들은 성윤은 프레젠테이션을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자신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임원들을 향해 깊게 심호흡을 하고는, 조용히 입을 열어 설명을 시작했다.
“조금 충격적인 내용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설명을 끝까지 들어보고 판단 부탁드립니다.
우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리얼 엔진을 이용한 개발자가 PTW에 지불해야 하는 최대 라이선스 비용은, 판매 수익의 100%입니다.”
“100%?!?!”
“PTW가 미쳤나? 누가 그런 조건으로 엔진을 사용한다고!!?”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반응이었기에, 성윤은 침착하게 나머지 설명을 이어나갔다.
“물론 무조건 판매 수익의 전부를 PTW에 지불해야하는 건 아닙니다.
그럼 아무도 리얼 엔진을 사용하지 않겠죠.
이 100%엔 조건이 붙어있습니다.
엔진을 사용해서, 유저가 선택한 기본 템플릿을 전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게임을 출시했을 때의 라이선스 비용이죠.
그 과정에서, 유저는 그냥 PTW가 준비한 미리 만들어진 게임 템플릿을 선택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아마 한 2분에서 3분 정도 걸리는 과정이겠죠.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은 100% PTW의 저작물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게임이기에, PTW는 그런 게임에 대해 100%의 판매 수익을 요구합니다.”
“그럼 어떻게 그걸 낮출 수 있지?”
대표가 질문하자, 성윤이 미소지었다.
성윤은 PTW가 리얼 엔진에 부여한 라이선스 정책이, 말 그대로 악마적이면서도 천재적인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처음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정책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의 충격을, 눈앞의 임원들이 똑같이 느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를 상상하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힘찬 목소리로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정책에 대해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럼 지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기본 템플릿 상태에서 100%의 판매 수익을 요구하는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 비용을, 최대 0%, 아니 0%를 넘어 추가 수익까지 얻어 낼 수 있는 획기적인 라이선스 시스템에 대해.”
그것은 게임 업계가 만들어진 이래 어떤 엔진 개발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말 그대로 ‘황당한’ 라이선스 정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