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81화 (382/485)

382. 대규모 이탈 사태

“시간당 만 원에 무조건 선불입니다.

5시간 이상 한번에 사용 안 되고 중간에 정지 안 되고 외출 안 되고 화장실 가셔도 시간은 카운트합니다.

PRS도 대여 해 드리지만, 안에 있는 슈트 세탁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에 5천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이벤트 기간이라 가격이 오를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희정이 지갑을 꺼내며 묻자, 사설 PRD 센터를 운영하는 사장이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더 받으면 서비스 자격이 취소돼서요.”

“그래요? 5시간 이상 연속 사용 불가는 왜 있는 규정이에요?”

“예약한 고객만 있는 게 아니라 손님처럼 방문해서 기다리는 고객도 있는데, 언제 시간이 날지 모르는 상황이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니 만든 규정입니다.”

“여기요. 제 PRS는 가져왔어요.”

그녀가 카드를 내밀자, 주인은 5만원을 결제한 뒤 영수증과 함께 카드를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번호표를 뽑아 그녀에게 주었다.

‘대기 인원 20명···.’

그녀는 코우지에게 대기 인원이 많아 오래 걸릴 것 같으니 먼저 게임을 하라는 문자를 보낸 뒤, 대기석에 앉아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의자는 마치 비행기 좌석처럼 옆에 접이식 테이블을 꺼낼 수 있는 수납함이 있는 형태의 의자였는데,

휴대폰 충전을 위한 USB포트부터 로비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서 재생되고 있는 게임 화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어폰 잭까지 여러 편의 기능들이 달려있었다.

아마도 몇 시간씩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손님들을 위해 대기석 의자도 좋은 것으로 마련한 것 같았다.

그녀는 자꾸만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을 무시하며,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워크패스트에 내장된 인터넷 브라우저를 이용하여 국제뉴스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딱히 언어의 장벽을 느끼지 않았다.

중국어로 된 뉴스만 아니라면, 워크 패스트는 대부분의 세계 주요 언어들을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번역해주었기 때문에.

하지만 번역기능이 있더라도 광고로 점철되어있는 온갖 해외 언론 사이트를 돌아다니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기에, 그녀는 PTW 게시판의 해외 뉴스 카테고리를 훑어보았다.

거기엔 PTW 관련 주요 뉴스들을 열심히 퍼 나르는 열정적인 게시판 이용자들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게임 제작엔 관심이 없었지만 PTW 관련 뉴스에는 관심이 있던 희정은 게시판에 올라오는 게시글의 제목들을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PTW의 리얼 엔진 공개. 프로그래머의 종말인가?]

[게임 업계에 부는 새로운 바람. 리얼 엔진의 여파로 수백 명 규모의 대형 스튜디오 대신 소수 정예 스튜디오가 대세를 이룰 것.]

[AAA급 게임을 아무나 만들 수 있게 하겠다는 발표는 허언이 아니었다.]

[리얼 엔진 고찰 – 만들기는 쉬우나 잘 만들기는 어려운 엔진]

[이제 그래픽을 돈으로 주고 사는 시대가 끝났다. 앞으로는 아이디어의 승부.]

[대형 게임 업체들. 리얼 엔진 공개 이후로 일제히 직원 내부 단속에 나서.

창업 희망자로 인한 인재 유출 우려]

[인디 게임 업계의 긍정적 반응 – 이제 우리도 대기업 부럽지 않은 퀄리티의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될 것.]

[첫날 오픈 이후 가장 많이 올라온 피드백.

‘정식 오픈은 언제입니까?’]

그중 하나의 기사가 희정의 눈에 띄었다.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이며 비효율적인 엔진-리얼 엔진의 게임 개발 방식이 기존 게임 개발 방법과 완전히 다른 이유]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비효율적인 엔진이라는 문장이 특이하게 느껴졌기에, 희정은 해당 기사를 터치해 읽기 시작했고, 곧 그 글의 작성자가 어째서 그런 평가를 했는지 알 게 되었다.

[거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듯한 그 화려한 UX에 숨겨져 잘 보이지 않지만, 사실 리얼 엔진에서 수행되는 대부분의 작업들은 게임회사에서 온오프라인들로 각 작업자 사이에서 진행되는 과정들이다.

예를 들어 만들고 있던 게임의 신규 필드를 추가한다고 가정해보자.

기존의 게임 업계에서, 해당 작업은 가장 먼저 기획 회의를 통해 시작되게 된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넓이의, 어떤 테마를 가진 필드에, 어떤 몬스터와 어떤 건축물을 배치하고 어떤 퀘스트와 보상 아이템을 집어넣을지.

해당 필드의 적정 레벨은 얼마이며 경험치는 얼마를 주는지.

그렇게 기본 사항이 결정되고 나면, 맵의 기본 형태를 설계하고 기획서를 작성하여 그래픽 팀을 찾아간다.

그럼 그래픽 디자이너는 한숨을 푹푹 쉬며 기획서를 대충 넘겨 본 뒤, 맵과 몬스터, 아이템 등 각 요소를 담당하고 있는 담당자에게 기획서를 넘길 것이다.

모델링 툴이 기동을 시작하고, 디자이너들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3D 모델링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폴리곤을 깎고, 본을 집어넣고, 텍스쳐를 씌운 뒤 애니메이터가 애니메이션을 적용하면, 해당 몬스터의 파일을 자신들이 사용하는 게임 엔진의 포맷에 맞게 변환한 뒤 기획팀에 넘긴다.

그럼 기획팀에서는 그 몬스터가 리스폰 되는 위치를 적절히 배치하고, 고유 번호를 가진 몬스터의 데이터를 게임 내 DB에 추가하고, 필요한 나머지 데이터를 집어넣는다.

리얼 엔진에서는 이 모든 과정을 엔진이 자체적으로 처리하게 되며, 아무것도 없는 공백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엔진이 제공하는 수많은 라이브러리 가운데 개발자가 찾는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결과물을 빠르게 찾아 제공한다.

그럼 개발자는 간단하게 그 결과물을 수정하여 적용하면 될 뿐.

단 하루 만에 전부 다른 형태와 애니메이션을 가진 몬스터 수백 마리를 만들 수도 있고, 대화 몇 번만으로 수 속성 이펙트가 적용되어 있는 몬스터의 효과를 화 속성 이펙트로 바꾸어 전혀 다른 모습의 몬스터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리얼 엔진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게임 엔진에서도 사람과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남이 볼 수 있도록 기획서를 꼼꼼히 작업하고, 그것을 가지고 담당자를 찾아가 설명을 하고, 그가 완성한 결과물을 검토하고 협의하여 수정 과정을 거치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러나 그 ‘생각’을 ‘결과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개발자는 항상 엄청난 기다림을 겪어야 한다.

그 어떤 뛰어난 작업자도, 리얼 엔진이 제공하는 수준으로 빠르게 수정 내역을 결과물에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그런 이미에서, 리얼 엔진은 세상에서 가장 게임을 개발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엔진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 개발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을 잡아먹는 수많은 과정들을, 미친듯한 기술력으로 단숨에 이루어지게 만드는 물건이니까.

반면에 리얼 엔진은 게임 엔진이라는 시점에서 보면 가장 비효율의 극치를 보여주는 엔진이기도 하다.

3D MAX나 포토샵, 언리얼 엔진 같은 툴에는 전부 외우기도 힘들 정도의 수많은 설정 창과 단축키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본적으로 그런 작업 툴들이 사용자의 생각을 ‘들으려고’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니까.

그것들은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 ‘만들어주는’ 물건들이 아니다.

그러나 원하는 효과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 툴들은 대부분 매크로나 플러그인 같은 기능을 지원한다.

원래 대로라면 수많은 설정 창과 씨름하며 인터넷 튜토리얼을 수십번 뒤져서 만들 수 있는 기능을, 간단한 클릭 몇 번만으로 구현할 수 있는 그런 프리셋들을.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리얼 엔진의 정체는, 아예 개발자가 요구할 만한 모든 작업의 프리셋을 만들어 개발자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툴 도우미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내가 원하는 기능을 말만 하면 어떤 기능을 사용해서 구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인간 수준의 AI와 함께.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말 그대로 ‘비효율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들은 기꺼이 그것을 만들어냈다.

상상만으로도 게임을 만들 수 있는, 그들이 바라는 진정한 게임의 유토피아를 열기 위해서.

어쩌면 그들의 그런 결정이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수많은 개발자들의 직업을 잃게 하는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리얼 엔진이 가져올 변화가 긍정적이라고 믿는다.

리얼 엔진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그 아름다운 성능은, 개발자들에게 단순히 고퀄리티의 보스 한 마리를 만들기 위해 몇 주를 소모해야 하는, 지금까지의 비효율적인 과정을 단번에 날려버리게 할 수 있을 테니까.]

게시물을 읽은 희정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로비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리얼 엔진으로 신나게 게임을 만들고 있는 여러 유저의 영상이 교대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픽부터 장르까지 같은 게 하나도 없네?’

실사 그래픽을 기반으로 데스 게임 류의 마피아 게임을 만드는 유저의 영상부터, 게임을 만드는 건지 영상을 만드는 건지 여러 아바타를 번갈아 가며 연기하여 긴장감 넘치는 액션 영화의 한 장면을 만드는 유저까지.

그것은 마치 개발력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자기 생각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한 맺힌 게이머들의 한풀이를 보는 것 같은 영상이었다.

“242번 손님. 23번 룸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때, 로비에서 그녀가 들고 있는 번호를 부르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고, 그녀는 조용히 가방을 들고 23번이라고 쓰여있는 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자신의 PRS를 꺼내 입고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PRD에 PRS를 연결했다.

“다이브 인.”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딥 다이버에 연결된 계정을 인식하고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용자 희정. PRD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는 기간 한정으로 리얼 엔진의 체험 이벤트가 진행 중이며, PTW 직원들의 YAS 스트리밍 이벤트도 진행 중입니다.

현재 설치 되어 있는 PRD의 게임 리스트를 출력하겠습니다.]

“그건 괜찮으니까, 워크 패스트 친구 계정에 코우지라는 이름을 검색 해줘.”

[현재 리얼 엔진의 체험 이벤트를 플레이 하고 있는 ‘코우지’라는 이름의 유저가 1명 존재합니다.

해당 유저에게 멀티 플레이 요청을 보낼까요?]

“아니, 내가 들어갈 거야.”

[해당 유저가 작업 중인 프로젝트에 참가 요청을 보내겠습니다.

요청에 따로 추가하실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저에요. 희정. 대기 인원이 많아서 좀 늦었는데, 지금 바로 합류해도 될까요?”

[해당 메시지를 추가하여 프로젝트 참가 요청을 발송하겠습니다.

답변 대기 중···.

요청을 받은 유저가 사용자 희정씨의 프로젝트 참가 요청을 승인했습니다.

현재 사용자 코우지가 작업 중인  프로젝트 공간으로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순간 눈앞의 풍경이 변하며 그녀의 아바타가 무너져가는 도시의 한 가운데로 전이되었다.

거기엔 반가운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코우지가 있었다.

“희정 씨!”

“오래 기다렸죠?”

“아닙니다. 어차피 이것저것 만지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으니까요.”

“그럼 간단하게 게임 소개 좀 해주세요. 저도 도울 수 있는 게 있나 좀 보게.

왜 무너진 도시가 배경이죠?”

“좀비 아포칼립스로 무너진 도시에서 히로인의 목숨을 지키며 생존하는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어서요.”

“라스트 오브 더트 처럼요?”

“예. 대신 거기서는 의뢰로 맡게 된 여자아이를 보호하는 거고, 이 게임에서는 같은 반 여자아이를 지키면서 플레이 하게 됩니다.”

코우지는 자세한 소개를 시작했다.

생물 병기를 연구하는 연구소가 있던 도시를 초 거대 지진이 덮치면서, 재난 상황과 동시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사람들끼리 서로 죽이는 게임의 간단한 배경에 대해.

그것은 재난 생존물과 좀비 아포칼립스 게임의 중간쯤에 있는 세계의 이야기였다.

“굳이 지진과 좀비를 둘 다 쓰는 이유가 있나요?”

“일단 무너진 도시를 배경으로 플레이하게 하고 싶었고, 총도 쏘게 하고 싶은데 사람이 상대면 너무 껄끄러울 것 같아서요.

리얼 엔진 성능이 너무 좋아서 심지어 좀비인데도 총 쏠 때 기분이 묘한 수준이니까.”

“흠···.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계셨어요?”

“전반적인 플레이 동선에 아이템을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아이템을요?”

“거기에 대해서는 주인공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데, 혹시 생존주의, 혹은 둠스데이 프레퍼스 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잘 모르는데.”

“혹시 모를 인류 종말에 대비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건데, 예를 들면 집 지하실에 장기 보존식을 모아두거나 간단한 생존 키트를 평소에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죠.”

“아, 유튜브에서 슬쩍 본 것 같아요.”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어릴 적 아버지인 기자를 따라갔다가 탈출을 못 해서 보스니아 내전을 겪었던 고등학생이에요.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재난 상황에 익숙하고, 사람들이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 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인물이죠.

겨우 탈출한 이후엔 정상적으로 고등학생 생활을 즐기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가방에 나이프나 스페이스 블랭킷 같은 생존 장비를 넣고 다니다 소지품 검사에서 매일 놀림당하는 그런 아이입니다.”

“혹시 경험담?”

희정의 말에 코우지는 잠시 뜨끔한 표정을 짓다가 무시하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기본적으로 생존주의자라고 해도 항상 보존식이나 장비가 엄청나게 들어간 생존 배낭을 가지고 다니지는 않아요.

보통은 하루 거리에 도착할 수 있는 장소에 3일짜리 생존 배낭을 준비해놓고, 하루 정도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물품만 평소에 가지고 다니죠.”

“그럼 첫 번째 미션은 하루 거리에 배치해 놓은 3일짜리 배낭을 찾는 거겠네요.”

“바로 그겁니다.”

“히로인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히로인은 동급생인데, 첫날 지진이 나면서 천장에서 떨어진 돌에 맞아 주인공이 기절하자, 같은 반 애들이 모두 주인공을 버리고 갔을 때 혼자 남아 주인공을 돌보던 여자아이예요.”

그렇게 말한 코우지가 코렛트를 향해 외쳤다.

“나츠하라 미유키를 소환해줘.”

그러자 금발로 염색한 머리에 반짝이는 손톱을 가진, 흔히 말하는 ‘갸루’라고 불리는 외형을 가진 여성 NPC가 근처에 소환되었다.

“엥? 이게 히로인?”

“별로인가요?”

“너무 날라···. 아니, 좀 가벼워 보이지 않아요?”

“겉은 그래 보여도 속은 따뜻한 아이라는 설정이죠.

안 그랬으면 친구들이 모두 떠나는데 다친 주인공을 이틀이나 돌보고 있지 않았을 테니까요.

초반엔 민폐 수준으로 플레이어한테 의지하고 도움이 되지 않지만, 점점 마음이 열리면서 플레이어를 구해주기도 하고 진지하게 변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오, 좋다.”

희정의 칭찬을 들은 코우지는 더욱 신이 나서 게임에 관해 설명했다.

나중에 자신을 버린 같은 반 친구들과 만나서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권력을 잡기 시작한 사악한 인간들과 어떻게 대립하는지.

그것은 AI와 함께 진행하는 일종의 협동 플레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였다.

“게임 내에서 구할 수 있는 생존 물품의 종류가 여러 개 있지만, 각각의 아이템 등급에 따라 그걸 받는 히로인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제대로 끓이지 않거나 소독되지 않은 물을 먹이면, 히로인이 배탈 나거나 구토를 할 수 있죠.

반대로 필수 영양소가 들어간 음식이라도 맛없는 것만 계속 먹이면 우울증에 빠져요.

게임의 초반엔 아이템이 넉넉한 대신 히로인의 호감도가 낮아 계속 불평을 듣게 되고, 후반엔 호감도가 올라가면서 히로인이 더 적극적으로 생존에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이게 하고 싶어요.”

“결국은 연애 시뮬레이션이네요?”

“뭐···. 일단은 에로 게임 개발자니까요···.”

“그럼 아예 19금 게임을 만드시는 게?”

“본편에서는 어찌 될지 몰라도 이번 체험 이벤트에서는 막혔습니다.

코렛트?”

코우지의 부름을 들은 요정이 근처에 날아와 앉자, 코우지가 질문했다.

“이번 체험 이벤트에서 19금 관련 컨텐츠 만들면 어떻게 된다고?”

[계정이 영구적으로 잠깁니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코우지를 보며, 희정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유교드래곤이 지키는 국가니까요.

19금 컨텐츠에 대해서는 좀 엄격한 편이 있죠.”

“PTW가 일본 회사였으면 좋았을 텐데···.”

“절대 안 줄 건데요?”

“하하하···.”

힘없이 웃는 코우지를 보며, 희정은 밝게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짝하고 두들기며 힘차게 말했다.

“뭐, 19금이 아니어도 충분히 연애적 요소로 재미는 줄 수 있는 게임 같아요.

물론 몇 가지 수정할 건 있어 보이지만.”

“수정할 거라면?”

“히로인이 머리 맞고 기절한 주인공을 이틀 동안 돌본다면서요?”

“예.”

“왜요?”

“어?”

“좋아하는 남자도 아닌데 자기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동정심만 가지고 인사불성이 된 남자를 이틀 동안 지킬 여자는 없어요.

게다가 이런 외모의 히로인이면 사교성도 높을 텐데, 친구들이 여기 버려둘 리도 없고요.”

“흠···. 그래서 마음속이 따뜻하다는 설정을 붙인 건데···.”

“무너진 교실에서, 이틀 만에 눈을 떴는데 이렇게 이쁜 동급생이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

그럼 다들 이렇게 생각하겠죠.

아, 얘가 나한테 호감이 있나 보다.

근데 그런 것 치고는 초반에 엄청 짜증을 부린다면서요?

그럼 앞뒤가 안 맞죠.”

“그, 그렇네요···? 그럼 어떻게 바꾸죠?”

“흠···.”

희정은 마네킹처럼 가만히 서 있는 히로인의 모델을 응시하다 코우지에게 말했다.

“목적이 있다고 하죠.”

“목적이요?”

“주인공은 반에서도 유명한 생존 전문가라면서요? 그 전에도 자주 소지품 검사에서 놀림 받았고.”

“그렇죠.”

“히로인은 그걸 기억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 재난 상황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는 데 가장 유리한 사람을 택한 거예요.

그러니까 초반에 생각보다 주인공을 선택했음에도 불편함이 이어지니까 불만을 표하는 거죠.”

“완전 속물이네요?”

“그 속물이었던 히로인이 주인공을 위해서 목숨을 걸게 된다면, 그만큼 감동적이지 않겠어요?

제가 남자라면, 100% 사랑에 빠지게 될 텐데.”

“흠···. 그렇네요. 하지만 속물에서 히로인으로 변하는 미묘한 상태의 변화를 표현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리얼 엔진에서 필요한 걸 구현하는 데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 AI 작업이거든요.”

“그래요?”

“그냥 정해진 상황에 정해진 대사를 하게 하는 거면 몰라도, 실시간으로 플레이어와 대화하는 AI를 만드는 과정은 엄청나게 손이 많이 갑니다.

일주일 내내 그 작업만 해도 겨우 될까 말까 할 정도로요.”

“어려워서 오래 걸리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그냥 엄청나게 많은 상황별 문항에 답하고, 주어진 상황별 대사에 대해 일일이 연기를 해 주는 것뿐이니까.

질문이 몇 천 개가 넘는 MBTI테스트를 하는 느낌이랄까.

단지 그 양이 장난이 아니라는 게 문제죠.”

“그럼 그건 제가 할게요.”

“희정 씨가요?”

“예. 히로인 AI는, 제가 작업할게요.

코우지 씨는 그동안 게임의 나머지 부분을 완성하시면 돼요.”

재난 상황에서 진짜 여고생처럼 반응하는 히로인이 게임의 핵심이었기에, 코우지는 잠시 희정에게 그 중요한 작업을 맡겨도 좋은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애당초 히로인의 중대한 오류를 지적한 것이 그녀이며, 그녀가 말한 아이디어도 마음에 들었기에, 코우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희정에게 말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맡겨주세요.”

환하게 미소짓는 그녀를 보며, 코우지는 잠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호감에서 나오는 두근거림이 아니라,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완성된 히로인이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두근거림이었다.

“화이팅!”

“아자아자!”

힘차게 구호를 외치며 의욕을 다지는 협력자의 참가로 인해, 코우지가 만드는 게임은 더욱 빠르게 속도를 내어 완성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얼 엔진이 제공하는 경험에 푹 빠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두 사람과는 다르게, 세상에는 리얼 엔진의 공개로 인한 피해자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리얼 엔진을 개발한 PTW와 같은 업종에서 일하는, 게임 개발자들이 대부분이었다.

***

“리얼 엔진이 그렇게 잘났는데, 뭐 어쩌라고?”

한국에서 모바일 게임을 개발 중인 중소기업에 다니는 개발자 권준태는 PTW에 부정적 견해를 가진 수많은 게임 개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애당초 그가 주력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 시장은 PTW와 딱히 겹치는 시장이 아니었고, PTW로 인해 늘어난 게이머들의 수요도 그가 주력하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는 전혀 유입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니 아무리 PTW가 대단한 기술을 만들고 환상적인 물건을 공개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는 리얼 엔진을 개발에 도입하기 위해 대당 3천만 원이나 하는 PRD를 대량으로 구매할만한 회사가 절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힘들게 개발한 게임이 나올 때마다 단체로 몰려와서 PTW의 게임과 비교하며 자신의 게임을 비난하는 PTW 팬덤은 게임 업계에서 엄청나게 악명이 높은 집단이었다.

그래서 준태는 빠가 까를 만든다는 법칙에 따라 자연스레 PTW의 안티가 되어있었고, 그 부정적인 견해는 PTW가 게임 개발자들을 위해 리얼 엔진을 공개한다고 발표한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저쪽에서 리얼 엔진을 발표하든 리얼 엔진 할애비를 발표하든, 자신에겐 기존 게임 엔진을 가지고 만들던 게임을 완성해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제 기획팀에서 넘어온 신규 맵의 기획서를 들고 그래픽 팀장에게 찾아갔다.

“전에 말씀드렸던 맵 기획서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래픽 팀장은 그가 건네준 서류를 대충 훑어보고는 그에게 말했다.

“애니메이션은요?”

“예?”

“전에 신규 몬스터 기획할 때 스킬 리스트만 넘기지 말고 각 스킬 시전할 때 몬스터가 취하는 애니메이션이랑 이펙트 리스트도 같이 달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이번 몬스터는 기존 몬스터에서 크기만 키우고 장식만 붙은 몬스터니까 그 부분은 이전 모델에서 참고해서 적당히 채워주시면 되지 않을까요?”

“저희가 무슨 리얼 엔진에 붙은 AI도 아니고, 매번 이렇게 구멍 숭숭난 기획서를 넘기시면 저희가 작업을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준태가 울컥하며 그래픽 팀장에게 소리쳤다.

“아니, 리얼 엔진인지 뭔지 하는 거기 들은 AI는 전자 두뇌라도 붙어 있지, 뭐 작업하나 요청할 때마다 꼬투리 잡아서 매번 이렇게 시비를 거셔야 합니까?

비어있는 부분이 있으면 그냥 알아서 적당히 채우시면 되죠!”

“매번 그런 식으로 작업했다가 임원 회의에서 사장님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한마디 하는 바람에 재작업한 게 한두 번입니까?

사전에 기획팀에서 사장님께 승인받은 내역만 작업 요청했으면 재작업도 안 하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아니 게임을 만들다 보면 재작업 하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지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같은 작업 가지고 10번 이상 수정해보셨어요?

그렇게 따지면 기획팀에서는 그냥 기획서에 몇 줄 더 적기만 하면 되는 건데 왜 매번 빼먹습니까?”

결국 근본적인 원인은 넣어야 할 내용을 빼먹은 기획 측에 있기에, 준태는 주먹을 부들거리며 그래픽 팀장에게 말했다.

“다음엔 꼭 넣겠습니다.”

“이번 한 번만 봐 드리는 겁니다.

애당초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작업하니까 진도가 안 빠지지 않습니까.

출시 연기만 몇 번쨉니까 지금.

저희도 지쳤어요.

이건 크런치가 아니라 아예 그라인더라고 부르는 게 옳을 지경이라고요.”

사실 이 트러블의 근본적인 원인은 회사의 지나친 업무 강요로 인한 스트레스 누적이었지만, 준태는 굳이 그 부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의 게임 업계에서, 이런류의 혹사는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기에.

그래픽 팀장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더는 준태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준태가 넘겨준 기획서를 들고 자신의 책상 근처에 있는 작업자를 찾아갔다.

“형만 씨. 바빠?”

그러자 모니터에 머리를 박다시피 하고 있던 작업자가, 거의 반쯤 죽어가는 눈빛으로 그래픽 팀장을 바라보았다.

“···뭐···죠?”

“전에 말했던 거, 기획서 와서 작업 좀 해야겠다고.”

“지난번에 시키신 것도 아직 다 안 끝났는데요?”

“그건 급한 작업 아니니까 이거부터 처리해.”

“지난번엔 이게 최우선 작업이니까 야근해서라도 끝내라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최우선 작업이야 밥 먹듯이 바뀌는 게 보통이잖아.

엄청 잘 만들라고는 하지 않을 테니까, 일단 구색 정도만, 돌아가는 정도로만 작업해주면 돼.”

자신을 달래듯 말하는 팀장을 조용히 바라보던 형만은 팀장의 손에 들린 기획서를 넘겨받았다.

그리고는 페이지 한 장 넘기고는 한숨 한번 쉬고, 또 페이지 한 장 넘기고는 한숨을 쉬는 것을 반복했다.

“언제까지 하면 됩니까?”

“맨 앞에 적어놨는데, 2주 정도는 시간이 있습니다.”

“작업은 8주는 걸릴 양인데요?”

“그러니 퀄리티를 낮춰서 대충 있는 거 복사해서 쓰죠.”

“저희 지금 필드마다 색깔만 다른 몹이 몇 마리인지 알고 하는 소리세요?

이러다가 재배맨 온라인 소리 듣겠어요.”

“출시 전에 볼륨은 갖춰야죠. 힘들겠지만 부탁드립니다.”

형만은 조용히 자신을 달래는 준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말없이 마우스를 클릭하기 시작했다.

-딸깍, 딸깍, 딸깍-

딱히 버튼이 위치한 자리가 아닌,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그러던 형만은 갑자기 화면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휘리리이이이익!!!뾰오오옹!!!”

“혀···형만씨?!”

“휘리릭 뾰오옹!! 휘리리리릭! 뿅!!”

“지금 뭐 하는 거야!?”

“휘리릭! X발 휘리릭 X발 뿅뿅뿅!!!”

마치 미친 사람처럼 빈 공간을 향해 주문을 외우며 클릭질을 반복하던 형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준태와 팀장을 향해 말했다.

“저, 퇴사합니다.”

“뭐?!”

“더 못하겠습니다. 전에 맡기신 작업까지만 하고, 갈테니. 새 작업은 다른 사람 뽑아서 시키세요.

전에 맡긴 작업도 야근하면서 하지는 않을 겁니다.”

“형만아, 너 미쳤어?”

“미쳤나고요?! X발 어디서는 지금 꿈속 나라에서 주댕이만 털어서 게임을 만드는데, 저희는 맨날 작업자만 쥐어짜서 맨날 똑같은 몹에 색깔 놀이만 하고 있어요!

어차피 만들어봐야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개싹구린 맵 하나 채우겠다고 맨날 야근하는 짓은 인제 그만두겠습니다!

안 해!

이제 못한다고요!”

지금 상황에서 작업자의 이탈은 매우 뼈아픈 일이었기에, 준태는 급하게 형만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형만은 그런 준태의 손을 거세게 뿌리치고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휘리릭! 뾰오옹! X발아 나도 휘리릭 뾰오옹이다아아!!”

그렇게 형만이 폭풍처럼 뒤집고 나간 사무실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영문도 모른 채 준태의 옷깃을 당기며, 방금 일어난 일이 무슨 일인가를 질문하는 그래픽 팀장의 말을 제외하고.

“아니 미친, ‘휘리릭 뿅’이 대체 뭐야?!”

그것은 리얼 엔진의 공개 이후 전 세계 게임 업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대규모 개발자 이탈 사태의 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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