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 상상 이상의 체험
“2D 게임도 제작 가능하다고요?”
AI 서연이 설명하는 포트폴리오를 보던 코우지가 경악하며 묻자, 서연이 웃으며 말했다.
[정확히는 3D 모델링에 필터링을 씌워서 후처리하는 방식으로 2D 일러스트를 구현하는 거긴 한데 필터 조합만 잘 하면 상용 일러스트와 비슷한 수준으로 구현은 가능해요.]
“아니, 제가 묻는 건 3D모델링을 일러스트로 제작 가능하느냐는 질문이 아니라, 리얼 엔진으로 울프툴 스타일의 동인 게임을 만들 수 있냐는 겁니다.”
[그건 리얼 엔진에서 최종 결과물을 뽑을 때 선택하는 포팅 스타일의 문제라 가능하긴 해요.
자세히 설명해드릴까요?]
코우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미소지으며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의자가 소환되었다.
[앉아서 설명을 듣는 게 빠르시겠죠.
지금 제가 드리는 설명은 제 목소리와 입을 빌어 전해드리는 말이긴 하지만, 내용 자체는 리얼 엔진에 내장된 통합 가이드의 내용을 읽어드리는 것뿐이에요.
그러니 AD인 제가 왜 이렇게 게임 엔진에 해박한지는 궁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연은 다시 손을 휘둘러 허공에 여러 층으로 된 홀로그램을 소환했다.
그것은 리얼 엔진의 프로그램 알고리즘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일종의 구조도였다.
[리얼 엔진의 최종 목적은, 결과적으로 유저가 원하는 VR 세계를 단순히 아이디어만 가지고도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그러나 그 VR 세계 자체는, 기존의 게임이 가져온 시스템의 변화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죠.
처음 사용자님이 보셨던 상상의 샘에서, 사용자님은 자신이 원하는 게임적 요소를 연못에 필요한 만큼 부어 넣으셨죠?]
코우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구성되는 건 세계의 구성 요소를 구현하는 기초 규칙들입니다.
이 세계에는 어떤 것이 존재하며, 어떤 것을 목표로 해야 하고, 어떤 것과 싸우는지에 대한 것들이죠.
그 ‘기본 요소’들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하나의 완성된 규칙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여러 개의 층으로 쌓여있는 홀로그램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카드 뭉치를 꺼냈다.
[이건 저희가 ‘보드 게임 레이어’라고 부르는 영역을 시각화한 겁니다.
사용자님이 설정하신 세계의 기본 규칙은, 모두 이 보드 게임 레이어에 반영되어 하나의 거대한 규칙을 만들어내죠.
그 규칙이 존재하는 차원을 저희는 ‘제로 레벨’ 혹은 ‘개념 차원’이라고 부릅니다.
그래픽도, 조작법도 없이 오로지 게임의 규칙만 존재하는, 사고의 영역 안에서만 동작할 수 있는 형태의 게임이니까요.
그리고 그 규칙은 상위 차원으로 갈수록 살이 붙어 점점 복잡한 게임의 형태가 됩니다.
‘퍼스트 레벨’, 혹은 ‘평면 차원’이라 부르는 단계가 되면, 게임에 처음으로 그래픽이란 요소가 부여되며 마치 고전 RPG를 보는 듯한 탑뷰나 사이드뷰, 쿼터뷰 같은 방식의 게임이 되죠.
그 안에서 유저는 상위 차원에서만 동작하는 기능을 제외한 모든 기능을 UI와 2D 그래픽의 형태로 즐길 수 있습니다.
이 상태로도 원하는 플랫폼에서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으로 포팅은 가능하지만, 맵의 회전이나 시야 변경같은 일부 기능은 제한되죠.
‘세컨드 레벨’ 혹은 ‘입체 차원’이라 부르는 영역에 들어서면 게임의 스타일이 3D로 바뀝니다.
여기서부터는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규칙이 늘어나며, 좀 더 다양하고 역동적인 애니메이션 액션을 제공하게 됩니다.
최종레벨인 ‘서드 레벨’에서, 게임은 딥 다이버와 PRS, PRD 전용 게임으로 구분되며 본격적인 모션 인식 기능과 적극적 물리엔진의 적용이 가능해집니다.
거기에 PRS나 PRD 전용으로 게임을 설정하면, 게임 내에 등장하는 모든 오브젝트에 각각의 물체가 가진 물리적 특성 수치가 적용되고요.
쉽게 말하자면 가장 적용할 수 있는 규칙이 많고 범용성이 높은 레벨이 서드 레벨, 그리고 그 아래로 내려갈수록 사용 가능한 규칙이 줄어드는 구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 말은, 제가 방금 보았던 테스트 맵의 구조를 2D 게임으로도, 3D 게임으로도 볼 수 있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하지만 개발 작업은 서드 레벨에서 해야 하고요?”
[그 말도 맞습니다.]
“대충 이해했습니다.”
[혹시 다른 질문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나중엔 생길 것 같지만···.”
[ 중간에 질문 있으시면 부담없이 질문해주세요.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AD로서의 제 작업 스타일을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그래픽 작업을 하면서 신경 쓰는 것은 주로 ‘밸런스’에 관한 부분입니다.]
그러자 그녀의 옆에 있는 몬스터 형태의 피규어가, 사람 키 정도 되는 크기로 순식간에 커졌다.
그녀는 그 몬스터의 한 부분 한 부분을 가리키며 자신이 왜 그 부분을 그렇게 디자인했는지, 그리고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작업을 했는지 코우지에게 설명해주었다.
그것은 AD의 작업에 대해 알지 못하던 코우지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매우 쉬운 설명이었다.
[공격을 위해 주로 쓰는 부위는 어디인지, 그리고 그 동작을 위해 쓰이는 근육은 어디에 붙어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형태로 인해 신체의 무게 밸런스가 어떤 식으로 흐트러지는지.
그 모든 부분을 고려하여 최대한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도록 작업합니다.]
“흠···. 제가 잘 몰라서 묻는 건데, 그게 원래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거 같이 들리는데요?”
[현실의 사물이야 자연스럽게 그렇게 존재하게 되어있지만, 가상현실의 세계는 다르니까요.
원한다면 멋을 위해 고무처럼 늘어나는 팔을 가진 생물을 만들 수도, 혹은 주로 돌진할 때 사용하는 왼쪽 어깨만 단단한 외골격으로 둘러싸인 고릴라도 만들 수 있죠.
실제로 작업을 시작하시게 되면, 코우지 씨는 생각보다 PTW에서 제공하는 기본 템플릿의 많은 부분을 수정하고 싶어질 겁니다.
이 몬스터는 팔에서 가시가 돋아나왔으면 좋겠어.
이 몬스터는 천장에 붙어 다니는 기믹이 있었으면 좋겠어.
저는 AD 역할을 담당하는 AI로써 그런 요청이 들어왔을 때 해당 몬스터가 정상적인 기믹을 수행할 수 있도록 팔에 내장된 가시의 굵기만큼 팔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천장에 붙어 다닐 수 있도록 발바닥에 빨판을 추가하죠.
거기서 오징어 흡반 형태의 빨판을 추가하는가, 아니면 게코 도마뱀의 발바닥에 달린 그것을 추가하는가.
그것이 이 세계에서의 AD의 스타일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다른 AD분들의 AI들은 같은 몬스터라도 다르게 디자인하시나요?”
[그렇죠. 예를 들어 똑같은 로봇을 디자인하더라도, 저는 곡선과 광택을 선호하는 타입이지만, 무광 베이스에 밀리터리 스타일의 디자인을 선호하시는 AD도 있고, ‘산업용’ 같은 느낌의 디자인을 선호하시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디자인의 최종 결정에 대한 권한은 사용자님께 있습니다.
저희는 사용자님의 수정 요청을 받아 그것을 저희의 스타일로 변경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거고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코우지가 물었다.
“그러면 한 프로젝트에 동시에 여러 명의 AD를 고용하는 것도 가능합니까?
예를 들어 몬스터는 서연 씨에게, 장비는 다른 AD에게 맡기는 식으로요.”
[가능합니다.]
“그럼 나머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AD의 소개를 듣고, 최종적으로 함께 할 AD를 결정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설명을 계속하겠습니다.]
서연의 설명을 다 들은 코우지는 당장이라도 서연과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꾹 참고 다음 AD의 등장을 기다렸다.
그러자 이번엔 GOS에 나온 전설의 기체, ‘DP-045’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차혁진이 두 번째 AD로 등장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밀리터리 스타일의 메카닉 디자인 전문가이며, GOS의 DP-045 디자인과 EOD의 AD 담당을 맡았던 차혁진AD의 AI입니다.]
“반갑습니다. 저 역시 DP-045의 팬이었기에, 비록 AI라 하더라도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 녀석이 제가 가장 아끼는 자식이긴 하죠.
그럼, 제 작업 스타일에 대한 소개를 해 드려도 될까요?]
“부탁드립니다.”
밀리터리와 로봇에 대한 혁진의 열정과 자부심은 엄청난 것이어서, 코우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DP-045의 디자인을 소개하는 파트에서는, 마치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코멘터리 영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으로 설명을 들었다.
[이 부분에 있는 구멍은, 경량화를 위해 철판을 드릴로 깎아낸 겁니다.
공장에서 생산된 이후에 관리자가 직접 깎아낸 것이기에, 이 부분의 페인트 처리는 기존의 도색 면하고 조금 차이가 나죠.]
“오, 확실히 거친 느낌이네요.”
[DP-045에는 전부 120군데가 넘는 구리스 주입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 관절 부위에는, 힘을 지나치게 많이 받기 때문에 강철이 아닌 티타늄 재질의 관절을 사용한 파트가 있죠.
그래서 애니메이션 장면을 보시면 DP-045의 팔이 부서질 때 관절 부위가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관절 근처의 강철이 찢겨나가는 형태로 파손되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오오오! 디테일! 그럼 이 몬스터의 디자인에 달린 이 사슬은 무슨 역할을 하는 건가요?”
[그건 그냥 장식입니다.]
“예?”
[디자인하다가 그 부분이 심심해 보여서 넣은 거지 별 의미는 없습니다.]
코우지는 PTW에서 제공하는 AD들의 AI와 대화하면서, 각자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주로 집중하는 파트에 대해서도.
누가 미소녀 디자인을 목숨 걸고 파고드는지, 누가 가장 건축물의 디자인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그 모든 인물들이 실제 PTW에서 일하는 마스터 클래스의 직원이라는 설명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잘도 이렇게 무언가에 미친 인간들만 쏙쏙 잘 골라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코우지는 다른 개발자들이 어째서 PTW를 ‘천국’이나 ‘별천지’라고 부르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숨을 쉬시다니, 혹시 제 작업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코우지가 한숨을 쉬는 것을 발견한 AI가 코우지에게 묻자, 코우지는 양손으로 사례를 치며 다급하게 말했다.
“설마요! 아무리 AI라도 평소라면 제가 말도 걸어볼 수 없는 뛰어난 실력자분들이신 데요!
전 그래픽에 그 정도로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한숨을 쉰 건, 지금까지 제가 동인 게임을 개발하면서 얼마나 대충 게임을 만들어왔나가 실감 났기 때문입니다.
PTW 직원들이 부럽네요.
이런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만든다는 건, 분명 엄청나게 즐거운 일일 테니까요.”
[그것이 사용자님의 한숨의 원인이라면, 굳이 PTW 직원들을 부러워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의 사용자님은, PTW 직원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엔진으로 동일한 지원을 받으며 개발이 가능한 상황이니까요.]
자신을 ‘미셸 르그랑’이라고 밝힌 AD의 AI가 코우지를 격려하자, 코우지는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말처럼, 자신은 지금 원하기만 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능력있는 AD의 스타일을 그대로 복제한 AI의 지원을 받아 게임을 제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원래대로라면 매년 수십억의 연봉을 낼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PTW는 그것을 아무 조건 없이 무료로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코우지는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직 동인 게임 개발 경험만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 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게임회사의 자원과 인력을 100% 활용할 기회는 절대 흔히 오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코우지는 이 일주일 동안 어떤 수를 써서라도 리얼 엔진이 제공하는 시스템을 최대한 체험하겠다고 결심했다.
“좋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 할 AD를 결정했습니다.”
[오! 드디어! 설마 25명의 자기소개를 전부 들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엄청 기다렸다고요!]
코우지가 구석에서 피규어를 가지고 놀다 자신에게 날아온 코렛트에게 말했다.
“몬스터와 지형 부분은 김서연 AD님의 AI에게, 그리고 장비 디자인 부분은 마지막, 이름이···?”
[미셸 르그랑입니다.]
“장비 디자인은 여기 계신 미셸 그르랑 AD의 AI에게 맡기겠습니다.
캐릭터와 NPC 디자인은 히로세 츠바사 AD님의 AI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그럼 3분의 AI 중에서 전반적인 그래픽 스타일과, 나머지 설정되지 않은 부분의 자동 설정을 수행할 헤드 AD를 결정해주세요.]
“김서연AD로 부탁드립니다.”
[설정 완료되었습니다. 그럼 AD도 결정되었고 하니, 다음은 프로듀서를 결정하면 되겠네요.]
“프로듀서요?”
[게임의 전반적인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가이드 해 줄 기획 보조 AI입니다.
가장 권장되는 세팅은, 현재 사용자님께서 세계에 투입한 구성 요소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설계한 프로듀서를 선택하시거나, 아니면 가장 많은 부분을 설계한 프로듀서를 가이드로 설정하는 겁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설계한 프로듀서로 부탁드립니다. ”
[알겠습니다. 해당 조건에 맞는 마스터 클래스 기획자의 AI를 검색합니다.
검색 키워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주의’ ‘좀비 서바이벌’입니다.
현재 가장 추천되는 AI는 윌리엄 스웬슨 마스터의 AI입니다.]
당연히 이상혁의 이름이 언급될 것으로 생각했던 코우지가 코렛트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야?”
[EOD때부터 개발에 참여하신 분인데, 그때는 고문으로 참여하였고 이후에 정식으로 마스터 클래스로 입사하셔서 서바이벌 계열 시스템의 어드바이저로 활동하고 계신 분입니다.
특수부대 출신의 생존 전문가로, 재난 상황에서 변화하는 인간성의 변화 및 행동 양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진짜로 나한테 딱 필요한 사람이네.’
하지만 코우지는 윌리엄 스웬슨이란 사람이 게임 개발자가 아니라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원래 게임 쪽에서 일하시던 분이 아닌데, 그분으로 해도 괜찮을까요?”
그러자 코렛트가 웃으며 코우지의 질문에 답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AD의 AI든 PD의 AI든, 리얼 엔진의 모든 AI는 하나의 통합형 AI에서 갈라져 나온 거니까요.]
“무슨 말입니까?”
[그러니까 게임 개발에 대한 기초적인 가이드나 리얼 엔진에 대한 숙련도 자체는 모두 동일한 상태라는 겁니다.
아까 김서연 AD의 AI가 리얼 엔진의 구조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었죠?
그건 이 안에서 대화하는 모든 AI들이 공유하는 통합 지식입니다.
사실 저를 포함한 모든 AI는 그 통합 AI의 한 부분일 뿐이죠.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하나의 AI가 여러 가지 인물의 연기를 바꿔가며 대응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일인다역 같은 거라는 거죠?”
[예.]
“그럼 그 윌리엄이란 분도 게임 개발에 대해 어드바이스할 지식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거군요.
그럼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게임 플레이와 리얼 엔진에 대한 어드바이스를 담당하는 메인 PD의 AI가 결정되면서, 코우지는 비로소 리얼 엔진을 통한 본격적인 게임 개발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상혁이 말했던, ‘누구나 AAA급 게임을 만들 수 있다는’ 그 과정을.
코우지는, 그것이 그리 복잡한 작업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조금 전 보았던 것처럼, 게임 플레이에 필요한 대부분의 요소가, 모두 AI에 의해 자동으로 생성되어 월드를 구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은 코우지의 착각이었다.
PTW에서 개발한 리얼 엔진은, 월드의 ‘기본적인’ 구성요소를 전부 미리 준비된 템플릿으로 가득 채워준 대신, 개발자들에게 다른 영역의 작업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리얼 엔진과 기존의 게임 엔진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
-투투투투투투투!-
허공에 있는 표적을 향해 양손에 든 크리스 벡터를 시원하게 쏴 갈긴 코우지가, 옆에 서 있는 윌리엄에게 말했다.
“아직도 반동이 좀 센 거 같습니다.”
[이미 실총 반동의 절반도 안 되게 조정했는데, 여기서 더 줄이시려고요?]
“양손에 하나씩 들고 쏘니 표적에서 죄다 빗나가잖아요.”
[원래 그러라고 있는 총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그 편이 훨씬 신날 것 같으니 조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양손에 하나씩 장비하고 근거리 표적에 쐈을 때, 팔에 힘을 조금 주면 전부 표적에 맞을 정도로요.”
[그럼 반동 수치를 지금의 절반으로 조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코우지는 다시 한번 표적을 향해 총을 쏘았다.
그리고는 만족한 표정으로 총을 내려놓으며 윌리엄에게 말했다.
“딱 이 정도가 좋습니다.”
[전반적으로 매우 라이트한 느낌의 FPS RPG가 되겠네요.]
“제 취향이 그쪽이라서요.”
[하지만 그렇게 할 거라면, 어차피 랜덤 옵션이 있는 시스템이니 반동 제어 옵션의 폭을 더 높이는 편이 좋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기본 크리스 벡터의 반동은 그대로 살리면서, 고급 옵션의 가치는 높일 수 있도록.
그 편이 파밍의 재미도 좀 더 살아나겠죠.]
“하지만 반동 제어 옵션의 폭을 넓히면 원래부터 반동이 약한 일부 총기의 사기성이 너무 짙어지지 않을까요?”
[반동 수치가 50이상인 총들에만 반동제어 옵션이 등장하도록 적용하거나, 혹은 적용 범위의 하한선을 두면 되죠.
지금 조정되어있는 크리스 벡터의 반동 수치는 10 정도입니다.
양손으로 잡는 총기는 그보다는 좀 높아도 괜찮으니 하한을 30정도로 잡고, 한 손 총기의 반동 하한을 10으로 잡으시죠.
아무리 높은 반동제어 옵션이 붙어있더라도, 10 이하로는 줄어들지 않게요.]
“그럼 반동이 높은 총에 붙어 있는 반동제어 옵션이 가치가 올라가겠네요.
[그렇게 적용하겠습니다.
현재 조정된 총기류의 스텟 테이블을 보여드릴까요?]
“아뇨. 나중에 한번에 확인해보죠.
다음은 SR계열 소총을 테스트해보겠습니다.”
그렇게 총기의 기본 스펙과, 붙을 수 있는 옵션의 허용 범위를 모두 테스트한 코우지는 이번엔 장비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미셸을 호출했다.
“현재 적용된 총기 디자인을 변경하고 싶은데요.”
[어떻게 변경하고 싶으십니까?]
“지금 적용된 디자인은 전부 현실 총기 기반의 디자인이죠?
이대로 출시하려면 총기 라이선스비를 지급해야 할 텐데, 저는 돈이 없습니다.
물론 테스트를 위한 이벤트 중이니 출시할 일은 없겠지만, 나중에 실제로 제가 리얼 엔진으로 게임을 제작할 때를 대비해서 라이선스 우회 디자인 방법을 좀 체험해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스타일은 제가 임의로 선정해서 변경해도 될까요?]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한쪽 선반에 있는 총기의 디자인이 한번에 촤르륵 변경되었다.
[현재 일괄적으로 변경된 부분은 총열의 길이와 굵기, 개머리판의 소재 및 바디에 있는 굴곡진 파트의 형태 변경입니다.
전반적으로 원본 총의 디자인 기조는 유지하면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배경에 맞게 러스티하고 DIY스러운 느낌으로 리뉴얼 했습니다.
하나하나 살펴보시고 기존 총기와 너무 유사하다거나 변경 사항이 지나치다 싶은 부분은 말씀해주세요.]
코우지는 900종이 넘는 게임 내 아이템을 일일이 체크하며 각각의 총기에 자신이 원하는 기믹을 부여했다.
“이 총엔 피카티니 레일을 넣어도 좋을 것 같아요.”
“총검을 장착할 수 있는 홈을 넣어주세요.”
“이 총은 서바이벌 건으로 컨셉을 변경할 생각이니 기본적인 서바이벌 키트가 수납될 공간을 넣어주면 좋겠습니다.
총을 얻는 순간, 낚시 바늘 제거 도구와 파이어 스타터, 작은 크기의 멀티 툴을 한번에 얻을 수 있게 하는거죠.”
[그 아이템의 크기라면 개머리판에 넣어야겠네요.
해당 아이템은 아이템 습득 시에 무조건 내장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가끔 비어있을 경우도 있나요?]
“랜덤으로 하죠. 누군가 사용했다는 설정일 수도 있으니까.”
[해당 총기의 개머리판 디자인도 변경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뒤가 열리려면 드라이버를 써야 하는 타입인데, 인벤토리처럼 활용하기엔 불편하겠죠.
6타입의 잠금장치 중에 하나를 골라주시면 그대로 적용하겠습니다.]
“3번째 걸로 할게요.”
[적용했습니다.]
코우지는 현기증을 느꼈다.
처음 리얼엔진이 구축한 세계를 보았을 때만 해도 조금만 손 보면 바로 발매가 가능한 수준인 줄 알았던 ‘게임 속 세계’가, 생각보다 엄청난 디테일을 필요로 하는 세계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세계 속엔 그가 요구한 모든 시스템이 들어있었지만, 단순히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는 것과, 그가 원하는 형태의 게임을 구현하는 데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총기.
기본적으로 리얼 엔진에 들어있는 총기류의 반동이나 소음, 관통력과 사거리 같은 모든 데이터는 실제 사격을 위해 수집한 리얼한 데이터로 구현되어 있었다.
본인이 밀리터리 덕후라면 가상의 세계에서 실총을 사용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고무될지도 모르겠지만, 코우지는 자신이 생각한 세계에서 실총의 사용이라는 것이 의외로 불편함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소음기를 써도 실제 총소리는 크구나.’
처음 코우지가 선택한 해결 방법은 소리 자극에 대한 좀비들의 민감도를 낮추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방법을 택하자, 좀비들이 바로 뒤에서 걸어가는 걸음 소리도 듣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려 긴장감이 크게 떨어지게 되었다.
다음으로 코우지는 좀비들의 전체 소리 자극에 대한 민감도를 원래대로 되돌리고, 이번엔 총기 소음에 대한 민감도만 조정했다.
그러자 이번엔, ‘작은 발소리도 금세 알아차리는 좀비들이 큰 총소리만 기를 쓰고 무시하는 느낌’이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코우지가 선택한 방법은, 대중 매체에 흔히 나오는 느낌의 ‘퓩퓩’소리가 나도록 소음기가 달린 총의 소음 수준을 크게 낮추는 것이었다.
실제 소음기가 달린 총을 사용해본 유저라면 금세 이것이 실제 총 소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만, 게이머들 중 대부분은 현실에서 소음기가 달린 총으로 사격을 해본 적이 없을 테니까.
실총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반동도 문제였다.
영화에서야 주인공이 양손에 기관단총을 들고 미친 듯이 적에게 총알을 퍼붓곤 하지만, 실제의 총기는 그런 느낌으로 다루기 어려웠으니까.
그런 이유로, 코우지는 그런 식으로 게임 안의 전체 총기들을 ‘현실적인’ 느낌이 아닌 ‘미디어에서 흔히 접하는 느낌의’ 총기로 바꾸어나갔다.
그리고 만족할 만한 상태가 되자, 이번엔 맵의 나머지 오브젝트들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현실의 도시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게임 속 세계는, 게임을 플레이하기에 그리 쾌적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 무게로 구현된 가구들을 옮겨서 바리케이트를 치려면 몇 개 옮기지도 못하고 금세 지칠 거에요.
게임이니까 체감되는 가구들의 무게는 현실의 절반 이하로 줄이도록 하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휘리릭! 뿅!]
“절반도 무겁네요. 1/4로 해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휘리릭! 뿅!]
“이제 적당한 것 같습니다. 지금 마트에 물건이 너무 많아서 자원 수급이 너무 쉬운 느낌이에요.
이미 한번 털린듯한 느낌으로 마트에 있는 사용 가능한 오브젝트를 확 줄여봅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휘리릭! 뿅!]
“물은 좀 넉넉하게 뿌리죠. 변기물을 먹어야 하는 상황까지 주고 싶지는 않아요.
실제로 마시는 건 아니지만, 느낌이 불쾌하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휘리릭! 뿅!]
“땔감은 소모품인 데 반해 너무 구할 데가 적어요.
눈에 보이는 대부분 가구를 철제가 아닌 원목 소재로 바꾸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휘리릭! 뿅!]
그렇게 수없이 일괄 수정을 하면서도, 코우지는 끝없이 수정사항을 발견해 적용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신이 게임 안의 모든 동선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장소에 대해 개입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터무니없이 간단하게 만들어진 세계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 세계였지만 게임을 ‘즐기는’ 데는 하자가 많은 세계였기에.
그러나 그 과정은 마치 세계의 신이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코우지는 즐거운 마음으로 끝없이 자신이 만든 세계를 수정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옆에서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귀신의 존재를 파악하기 전까지는.
‘톡톡.’
“아까부터 계속 어깨에 위화감이···.”
[시스템은 사용자님의 PRD에 별다른 물리적 피드백을 전달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외부 자극이 느껴진다면 아마도 오프라인에서 발생한 자극이겠죠.]
“희정 씨구나!”
코우지는 급하게 AI들에게 인사를 한 뒤, 월드를 세이브하고 딥다이버를 벗었다.
그리고 자신의 옆에서 PRS를 입은 채 살짝 화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희정의 모습을 보았다.
“분명 코우지 씨를 한국으로 초대해서 PRD를 빌려주겠다고 한 건 저지만, 일주일 내내 24시간 빌려준다는 소리는 아니었어요.”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된 줄 몰랐네요.”
“그렇게 재미있었어요?”
화가 풀린듯한 그녀의 질문에 코우지가 웃으며 답했다.
“제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최고일 것 같고요.”
“자세한 이야기는 밥이라도 먹으면서 하시죠.
다리에 힘주세요. 아마 피드백이 해제되는 순간 엄청난 피로가 몰려올 거예요.”
“어? 전 아직 멀쩡한···. 허어어억!!!”
코우지는 자신의 전신을 당기고 있던 와이어가 풀리자마자, 몸이 무너질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18시간 가까이 밥도 먹지 않고 전신을 마구 움직이며 PRD를 사용하며 쌓인 육체의 피로 때문이었다.
“부, 분명 아까는 몸이 멀쩡하게 움직였는데?”
당황하는 코우지를 보며 희정이 말했다.
“그건 PRD에 있는 근력 보조 기능 때문에 가능한 거죠.”
“근력 보조?”
“쉽게 말하면 몸 상태가 최상일 때 드는 20Kg이랑, 마라톤을 뛰고 나서 느껴지는 20Kg은 체감 무게가 다르죠?
PRD에는 근육의 피로 상태에 따라 체감되는 물리력을 조정하는 기능이 있어요.
그래서 PRD를 오래 플레이해도, 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은 비슷하게 유지되는 거죠.
그게 게임 속 세계이고, 힘 스텟의 수치를 적용받는다면 아예 움직이기 쉽도록 팔다리를 직접 제어할때도 있고요.”
“전혀 못 느꼈습니다. 당연히 제가 움직이는 줄 알았어요.”
“그걸 못 느낄 정도로 섬세하게 신체를 제어하는 게 PTW의 기술력이라는 거죠.
일단 잠깐 누워서 쉬고 계세요.
밥을 먹으려고 해도 일단 팔다리는 움직여야 수저를 들 수 있을테니까.”
그렇게 말한 희정은 코우지의 몸에 연결되어있는 와이어를 해제한 뒤, 자신의 슈트에 연결했다.
그리고 2시간 정도 HC 101을 플레이하곤 접속을 종료했다.
그렇게 게임을 마친 그녀는 배달 음식을 시킨 뒤, 겨우 체력을 회복한 코우지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에 수저를 가져가고 있는 코우지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땠어요?”
“뭐 말입니까?”
“리얼 엔진이요. 어떤 느낌이었어요?”
“개발엔 관심이 없으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옆에서 코우지 씨가 신나게 휘리릭 뿅이라고 외치는 걸 보고 있으니 엄청 재미있어 보이더라고요.
물론 지난번에 미뤄둔 퀘스트가 있어서 오늘 플레이해 보지는 않았지만, 재미있다고 하면 저도 한 번쯤은 해볼까 해서요.”
순간 코우지는 마음속으로 심각하게 갈등했다.
그녀에게 리얼 엔진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끝내주는 경험이었는지 전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만약 그녀가 자신의 설명을 듣고 자신도 리얼 엔진을 체험하고 싶다고 하면 그만큼 자신의 PRD 사용시간이 줄어들 것이 분명했기에.
사실 PRD의 주인이 그녀이기도 하고, 그녀가 아니었으면 리얼 엔진 자체를 구경도 하지 못했을 것이었기에, 코우지는 금세 자신이 잠깐이라도 갈등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솔직한 자신의 감상을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희정 씨에게 솔직한 제 감상을 말해야하나 고민했습니다.
제가 보고 경험한 것들이 너무 환상적이고 아름다워서, 희정 씨도 한번 해보면 저처럼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른 채 푹 빠질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요.
하지만 리얼 엔진의 체험 이벤트는 겨우 일주일만 약속되어 있고, 희정씨가 PRD를 사용하면 저는 그만큼 PRD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겠죠.
그게 너무 두려울 정도로, 리얼 엔진은 끝내주는 물건이었습니다.
PTW가 그토록 대단하고 멋진 게임들을 만드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요.”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치고는 솔직하게 말씀하셨네요?”
“그 환상적인 경험을 제게 선물한 은인에게 그 경험이 얼마나 환상적인지 숨기는 것 자체가 죄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PTW라는 회사에 대해 분노까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제가 필드 하나, 몬스터 하나 만들려고 개고생하는 동안, PTW의 직원들은 너무나도 재미있고 편한 방법으로 ‘갓겜’을 만들고 있었다는 게 분해서요.
게다가 일본엔 아직 PRD도 제대로 보급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니, 더 화가 나더군요.
마음 같아서는 한국에 이민 오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한국인이라면, PRD를 구할 방법이 없지는 않을테니까.”
“그래요? 그럼 저도 꼭 해봐야겠네요.”
“그, 러셔야겠죠···?”
희정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내려놓는 코우지를 보며 밝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집에 있는 RPD는 코우지씨가 쓰세요.
전, 집 근처에 PRD 센터로 가서 플레이할게요.”
“저, 정말입니까?!”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받은 듯한 얼굴로 코우지가 소리치자, 희정이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대신 오늘은 이만 쉬시고, 내일부터는 저와 함께 게임을 만들어주세요.
전 진짜 아무것도 모르니까.
코우지씨가 만들고 있는 게임에 들어가서 같이 게임 만드는 걸 보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희정 씨!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자신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는 코우지를 보며, 희정은 조용히 식사를 시작했다.
그러자 코우지도 그녀를 따라 함께 식사하기 시작했다.
그런 코우지가 열심히 먹고 있는 반찬들은, 어제는 매워서 못 먹겠다며 그가 손도 대지 않던 음식들이었다.
‘기뻐서 매운맛도 못 느끼는 건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가슴 속에서 점점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을 느끼며, 희정이 작게 중얼거렸다.
‘휘리릭 뿅.’
그것은 어제부터 하루 종일 PRD에 묶여 있던 코우지가 외치고 있었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루어준다는 마법의 주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