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 주문
이미 YAS의 공개 이후로 게임 업계가 주목하는 미래 트렌드는 완전히 풀 다이브 VR 시장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다만 지금까지는 리얼 엔진과 STC없이는 진출 자체가 불가능한 시장이기에 침만 흘리고 있었을 뿐.
그런 상황에서, 리얼 엔진에 대한 일주일간의 임시 오픈을 시행하겠다는 상혁의 발표는 게임 업계 전체를 뒤집어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미 분석과 개발을 위해 수십 대의 PRD를 구매한 대형 개발사부터, 풀 다이브 VR 게임 개발에 흥미를 보이는 인디 개발자까지.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이번 이벤트를 통해 공개된 리얼 엔진에 대해 단 하나의 평가 기준을 들이대고 있었다.
과연 ‘얼마나’ 만들기 쉬울 것인가.
상혁이 말한 것은 ‘RPG 만들기’ 수준의 진입장벽이었지만, 누구도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있지는 않았다.
게임 엔진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RPG 만들기라는 툴의 진입장벽이 그토록 낮은 것은, 그 툴 자체가 JRPG라는 장르를 만드는 데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거기서 장르를 살짝 틀어, 기본 육성 시스템 외에 다른 요소를 조금만 넣으려고 해도 스크립트의 개조부터 UI를 새로 만들고 동작하게 하는 일련의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게임 엔진은 특정 장르의 게임을 편하게 만드는 방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범용성’을 추구하고 있었다.
개발자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조금 더 쉽게 이룰 수 있도록.
그리고 엔진의 기능이 원하는 바를 구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그렇기에 많은 개발자들은 범용 엔진을 표방하는 리얼 엔진 역시 말로는 낮은 진입장벽을 표방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기본 장벽 자체는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PRD에서 접속 가능한 PTW 어플리케이션 마켓에 ‘리얼엔진’의 체험판 이 올라왔을 때, 그것을 다운받아 플레이 한 이들은 접속하는 순간부터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그들이 실제로 접하게 된 ‘리얼 엔진’의 진입장벽이, 상혁이 말했던 ‘RPG 쯔꾸르’가 가진 진입장벽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에.
그것은 말 그대로 ‘상상만으로’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엔진의 문턱에 들어선 엔진처럼 보였다.
***
일본에서 주로 울프툴을 사용한 동인 게임을 만들던 개발자인 가네모토 코우지는 원래 풀 다이브 VR 게임 개발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개발자중의 한명이었다.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HC 101을 필두로 PTW와 PTW LAB를 통해 공개된 게임들의 퀄리티는 자신 같은 인디 개발자로서는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사내 인디 레이블을 표방하는 ‘PTW LAB’의 게임들조차, 다른 대형 개발사의 AAA급 게임들의 퀄리티를 압도하는 퀄리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코우지에게 리얼 엔진이나 YAS의 이야기는 ‘나와는 전혀 다른 별세계’의 이야기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상혁이 스트리밍 이벤트를 통해, ‘RPG 쯔꾸르’라는 이름을 언급하기 전까지는.
애당초 그가 주로 사용하는 게임의 툴이 쯔꾸르 개발팀의 개발자가 직적 개발해 무료로 공개한 울프툴인 만큼, 그 역시 쯔꾸르 계열의 툴이 가진 낮은 진입장벽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코우지에게는 그 정도 수준의 진입장벽으로 AAA급 게임을 만들게 해 주겠다는 상혁의 말이 한없이 허황된 말로 들렸다.
자신의 두 눈으로, 그 실체를 반드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하지만 현재의 PRD는 한국을 제외한 첫 번째 국가인 미국에서도 수량이 달려 물건을 구하지 못할만큼 희귀한 물건이었고, 그나마도 해당 국가의 인터넷이 PTW에서 개발한 ‘새 인터넷’이 아니면 사용조차 불가능한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코우지는 리얼 엔진을 체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친구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몇 안 되는 한국인 친구이자, PTW의 열렬한 지지자인 박상충에게.
코우지는 워크패스트를 통해 일본어로 자신의 안타까움을 전했다.
-한국이 부럽다. 콘솔 시장도 일본보다 작은데, PTW 본사가 있다는 이유로 PRD 서비스는 먼저 시작했잖아.-
-대신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가 전 세계 최고 수준이잖아.-
-그것도 부럽고. 안그래도 빠른데 더 빠른 새 인터넷까지 쓸 수 있다는 게 질투 나서 죽을 것 같다.-
-조만간에 일본에서도 서비스 개시할 거고, 그럼 그때 즐기면 되지 않아?-
-그걸로는 해결이 안 돼. 내가 하고 싶은 건 PRD로 출시된 게임이 아니라 이번에 일주일만 공개하기로 약속된 리얼 엔진을 체험하는 거니까.-
그러자 코우지의 말을 들은 박상충은, 잠시 채팅을 멈추더니 코우지가 엄청나게 기뻐할 만한 제안을 던졌다.
-그럼 내일 비행기 타고 한국으로 와라.
우리 집에 PRD가 있으니, 너에게 일주일간 빌려줄게.-
-진짜야?!?!?-
-난 딱히 게임을 만들려고 PRD를 산 게 아니니까 괜찮아.
물론 일주일 동안 HC 101을 못하게 되는 건 좀 치명적이지만, 그건 니가 잘 때 하면 되는거고.
나는 어차피 낮엔 출근해서 집에 없으니 니가 낮에 플레이하고 난 퇴근 이후에 하면 되지 않을까!?-
-넌 진짜 내 은인이다! 내가 만약 다음 게임을 만들면, 스페셜 땡스에 반드시 네 이름을 넣어줄게!-
-너 이 자식 지금 19금 에로 게임에 내 이름을 박제하겠다는 거냐?!-
-비행기표 사러 갑니다! 한국에서 봐요!-
사실 코우지는 인터넷으로 박상충과 친해진 뒤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박상충과 만나본 적이 없었지만, 그에게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PRD를 사용해서 리얼엔진을 시험해볼 수 있다면, 그런 문제는 자신에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혁이 발표한 시간이 오전이었기에, 코우지는 어렵지 않게 늦은 오후에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표를 급하게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항에서 자신을 기다리겠다고 말한 박상충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자신의 섣부른 선택을 조금씩 후회하기 시작했다.
너무 급한 마음에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는데, 정작 박상충의 말이 빈말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한 제안이었는지도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의 관계를 너무 믿었나?’
이대로면 아무 소득 없이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코우지의 마음은 빠르게 우울해졌다.
그러나 그때, 휴대폰의 워크패스트 알람으로 그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박상충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코우지. 어디야?-
-인천 공항. 너는?-
-나도 인천 공항. 3번 터미널 맞아?-
-바로 앞인데? 난 너 안 보여. 여기 있는 건 솔직히 길에서 보면 말 걸어보고 싶은 기분이 드는 이쁘장한 아가씨뿐이라고.-
문자를 보내던 코우지의 시선이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여성과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가 살짝 미소지으며 코우지에게 다가와 일본어로 물었다.
“가네모토 코우지 씨?”
“예···. 예?!”
“반가워요. 제가 박상충이에요.”
가네모토 코우지가 출발 전에 확인하지 않은 것.
거기엔 자신의 오랜 인터넷 지인의 성별도 포함되어 있었다.
***
“저쪽 방은 제가 방송할 때 쓰는 방이고, 이쪽 방에 코우지씨가 쓰고 싶다고 한 PRD가 있어요.
대신 침실이 하나이긴 한데, 거실에 쇼파가 있으니 거기서 교대로 자는 거로 하죠.”
“제가 손님이고 민폐를 끼치는 처지니 그냥 제가 쇼파에서 자면 안 될까요?”
“안됩니다. 한국인은 정이니까.”
“그래도 젊은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게 굉장히 부담되긴 하네요.
물론 가장 부담되는 건 상충 씨, 아니 희정 양 본인이겠지만요.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인터넷이긴 하지만 오래 알아온 사이이기도 하고, 애당초 제가 여성인 걸 알았으면 오지도 않으셨을 거잖아요.
그냥 남자라고 생각하세요. 인터넷에서 친하게 지냈던, 그 털털하고 야한 농담 잘하는 박상충 본인이라고.”
“솔직히 제 친구 박상충이 이렇게 이쁜 여성일 줄 몰랐기 때문에, 어려운 주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괜찮아요.”
그녀가 밝게 웃으며 코우지에게 말했다.
“어차피 PRD 안에 들어가는 순간 저의 존재는 신경도 쓰이지 않을 테니까.
시간이 늦었으니 오늘은 대충 배달음식 시켜 먹고 바로 자도록 하죠.
PRD 유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평소에 잘 먹고 잘 자는거니까요.”
“그건 왜죠?”
“접속하면 아예 나오기가 싫을 정도라 현실에 나와 있을 때 최대한 몸 관리를 열심히 해야해요.
잘못하면 와이어에 매달린 채로 아사한 시체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제 PRS는 여성용이라 제일 먼저 내일 아침 PRS부터 하나 사러 가야겠네요.
돈은 있죠? PRS도 150 만원은 하는 물건이라 거기까지 제가 사드릴 수는 없어요.”
그녀의 말을 들은 코우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밥먹죠. 뭐 먹을까요? 매운거 잘 드세요?”
한국인의 매운맛에 대한 집착은 코우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무서운 기세로 고개를 흔들며 그녀에게 말했다.
“진짜, 정말 하나도 못 먹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걸로 할게요.
이건 진짜 하나도 안 매운 거니까.”
그날 저녁, 코우지는 자신이 알고 있는 한국인에 대한 정보에 한줄을 더 추가하게 되었다.
한국인이 말하는 ‘하나도 안 맵다’라는 말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
“오···. 이것이 PRS···. 정식 명칭이 뭐였죠?”
“물리 현실화 슈트.”
“Physical Realization Suit···분명 PRD의 정식 명칭이 Physical Realization Device였죠? 말 그대로네요.”
몸에 걸친 슈트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코우지를 보며, 희정이 미소지었다.
“신기한 감촉이죠? 처음 입으면 전원을 넣기 전까지는 아주 차갑게 느껴질 거에요.
헐렁한 부분도 느껴질거고.
하지만 이렇게 전원을 넣으면.”
그녀가 전원을 넣자, 마치 전신에 연결된 와이어가 당겨지는 것 같은 기계음과 함께 코우지의 전신이 기분 좋은 압박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온몸에 있는 금속 패널들을 통해 순식간에 상온과 비슷한 체감 온도가 피부에 전달되었다.
그것은 마치 옷을 입고 있음에도 알몸으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온도 때문인지 알몸이 된 기분입니다.”
“그 상태가 디폴트에요. 그리고 거기서 게임 내부에 들어가면, 게임 안의 아바타가 입은 옷의 종류에 따라 무게감과 온도감이 달라지는 거고요.”
“그럼 물속에 들어가면 어찌 됩니까?”
“옷이 젖은 느낌과 온도까지 그대로 전달되죠.
노출된 부위의 감각도 현실과 비슷하게 맞춰지고요.”
“PTW의 기술력이란 대체···.”
“분명 지하에 고문당하는 외계인이 50명쯤 잡혀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코우지 씨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저를 믿고 한국까지 날아온 건, 이미 오픈되어 진행 중인 리얼 엔진의 체험을 위해서니까요.
그러니 바로 PRD 연결 과정을 도와드릴게요.”
“PRD는 희정양이 구매한 장비인데, 리얼 엔진을 처음 체험하는 게 제가 되어도 될까요?”
“전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는 하는 데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서요.
대신 진짜로 리얼 엔진으로 게임을 만들만하다는 계산이 서면, 나중에 코우지씨가 리얼 엔진으로 만든 게임을 플레이하게 해주세요.
이번 PRD 임대의 대가는 그걸로 하죠.”
코우지는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자 어느새 PRD의 와이어를 슈트에 연결한 희정이 그를 향해 말했다.
“그럼,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꿈을 꾸시길.”
그리고는 코우지를 대신해 지금은 PRD의 상징이 되어버린 유명한 구동 메시지를 읊었다.
“다이브 인.”
그것은 앞으로 일주일간, 코우지를 꿈의 세계로 초대할 마법의 문장이었다.
***
[PRD에서 새 PRS를 감지했습니다.
새 사용자의 기본 언어를 설정해주십시오.]
한국어로 시작된 메시지는 주요 서비스 국가들에서 사용 중인 여러 언어로 여러번 반복되었다.
그 중 코우지가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 메시지를 들은 코우지는 일본어 나레이션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본어로 허공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일본어로 부탁드립니다.”
[기본 언어가 일본어로 세팅되었습니다.
새 사용자님.
PRD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현재는 기간 한정으로 리얼 엔진의 체험 이벤트가 진행 중이며, PTW 직원들의 YAS 스트리밍 이벤트도 진행 중입니다.
현재 설치 되어 있는 PRD의 게임 리스트를 출력하겠습니다.]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처럼 수많은 게임들의 홀로그램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을 본 코우지는 거의 기절할 것 같은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매일 PC 앞에 앉아 도트와 2D 이미지들로 게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서는 이렇게 미래에 들어온 듯한 경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역시 인터넷의 게시물이나 방송을 통해 PRD의 UI가 얼마나 미래 지향적인지에 대해서 수없이 보고 들어왔지만, 그것을 단순히 ‘보는’것과 ‘체험하는 것’ 사이에는 거의 안드로메다 수준의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다.
‘게임도 해 보고 싶긴 한데···.’
눈앞에서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게임들은 타이틀 이미지만 보아도 미칠 듯이 매력적인 게임들이었지만, 코우지는 고개를 저으며 시스템에게 말했다.
누구도 그에게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리얼 엔진의 체험 이벤트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시스템이 그가 정확히 원하던 대답을 그에게 되돌려 주었다.
[명령을 인지했습니다.
리얼 엔진의 사전 공개 이벤트에 접속합니다.
접속을 위해, 약 3.5 테라바이트의 데이터 다운로드가 필요합니다.
다운이 완료될 때까지 잠시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미친?! 게임 엔진 용량만 3.5 Tb라고?
내려받는 데 종일 걸리겠네?!’
그러나 그런 그의 예상을 깨고, PTW가 자랑하는 새 인터넷은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그 방대한 데이터를 내려받았다.
그리고는 미칠듯한 속도로 늘어나는 다운로드 게이지를 보며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 있는 코우지에게 말했다.
[다운로드 완료. 실행에 앞서, 체험 기간 동안 유저분이 작성한 게임의 데이터는 로컬 드라이브에 저장되며, 유저분께서는 자유롭게 이벤트 마켓에 자신이 개발한 임시 결과물을 올리거나 타인이 개발한 게임을 내려받아 플레이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데이터는 이벤트가 끝나는 순간 전부 삭제되며, 이번 이벤트를 통해 개발하신 게임을 콘솔이나 PC용으로 포팅하여 소지하실 수 없습니다.
해당 사항에 동의하신다면, ‘동의’라고 외쳐주시기 바랍니다.]
“동의.”
[기본적인 약관 동의가 완료되었습니다.
추가적인 약관은 시스템 명령어 ‘이용약관 호출’로 확인하실 수 있으며, 기본 약관에 동의하신 유저분들은 나머지 약관의 내용에도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해당 내용에 동의하시면 ‘동의’라고 외쳐주십시오.]
“동의.”
[리얼 엔진의 체험 프로그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체험 기간 동안 PTW가 제공하는 꿈같은 세계를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코우지는 눈 앞이 환해지며 자신이 어디론가 텔레포트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코우지는 사방이 교차하는 직선으로 가득 찬 사각형 방에 덩그러니 놓여있게 되었다.
그건 마치 개발 툴을 처음 실행했을 때,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를 것 같은 막막한 느낌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코우지가 ‘뭘 해야 하지?’하고 물어보기도 전에, 빛과 함께 작은 요정같이 생긴 존재가 허공에서 뛰어 들었다.
그리고 그 요정은, 잠시 공중에서 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이리저리 팔을 흔들더니, 코우지가 있는 방향을 향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진행하는 리얼 엔진의 체험 이벤트의 가이드 역할을 맡은 가이드 AI!
코렛트라고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사용자님께서는 리얼엔진의 사용이 처음이시겠죠?]
“어? 네. 맞습니다.”
[그럼 가이드의 수준을 정하기 위해, 기초적인 질문 몇 가지를 드리겠습니다!
혹시 게임 제작 경험이 있으신가요?!]
코우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정이 소리쳤다.
[와! 그럼 조금은 설명하기 편하겠네요!
혹시 주로 사용하는 개발 툴이 있으셨나요?]
당당하게 울프 툴이라고 이야기하려던 코우지는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자신이 개발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유니티나 언리얼 같은 범용 엔진에서 돌아가는 화려한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기본 기능을 약간씩 변경해 자신이 생각하는 에로 게임을 만드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개발의 전부였다.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야 도움도 제대로 나오겠지?’
잠시 고민하던 코우지는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요정에게 말했다.
“울프툴로 게임을 조금 만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오! 울프툴! 저도 알고 있어요! 좋은 게임 제작툴이죠!
진짜 게임 개발자님과 게임을 만들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네요!
그럼 울프툴에 익숙하신 사용자님의 레벨에 맞춰 가이드를 하겠습니다!
혹시 함께 게임을 개발할 다른 사용자가 접속하고 있습니까?
현재 사용자님의 워크패스트 친구 목록에 있는 유저 중엔 5명이 접속 중입니다.]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그럼 독립 개발 모드로 진행하겠습니다.
프로젝트 참가 인원 추가는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원하시면 언제든 저를 호출해주세요.]
“호출은 어떻게하지?”
[시스템! 이나 가이드! 아니면 제 이름인 코렛트!를 외치시면 바로 날아올 겁니다.
개발 과정 내내 제가 곁에 있을 테니, 그냥 절 향해 말씀하셔도 되고요.
그럼 프로젝트의 생성을 위한 기본 설정에 들어가겠습니다.
나와랏! 상상의 샘!]
어느새 요정이 허공에서 소환한 지팡이를 들고 휘두르자, 코우지의 눈앞에 거대한 연못 같은 것이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연못의 안에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신문이나 커피를 들고 돌아다니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이건 ‘상상의 샘’입니다. 여기에 사용자님이 원하는 게임의 기본 요소들을 부어 넣으면, 게임의 기반이 되는 기본 템플릿이 변하게 됩니다.]
“기본 요소라면?”
[좀비를 넣으면 좀비가 등장하는 게임이 되고, 총을 넣으면 총기가 등장하는 게임이 되죠.
실제로 해 보시는 게 빠를 테니, 바로 시험해보도록 하죠.
나와랏! 설정의 책!]
코우지는 공중에서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두꺼운 책 한권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펼치고는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좀비]
[세계관 안에 좀비 요소를 추가합니다.
넣는 비율에 따라 게임 내에서 해당 요소가 차지하는 비율이 변경됩니다.
1번째 눈금까지 투입 : 게임 내에 좀비에 대한 언급이 추가됨.
2번째 눈금까지 투입 : 게임 내에 좀비가 몬스터로 등장함.
3번째 눈금까지 투입 : 게임 안의 주력 몬스터가 좀비가 됩니다.
4번째 눈금까지 투입 : 게임의 세계관 흐름이 좀비를 중심으로 돌아가며, 스토리 플로우도 좀비에 대한 소재를 다루게 됩니다.
5번째 눈금까지 투입 : 게임의 장르가 좀비와 맞서 싸우는 좀비 서바이벌로 변경됩니다.]
“이거 투입은 어떻게 하는거야?”
[페이지를 찢으면 플라스크같은 형태로 변하는데, 그걸 연못에 부으시면 됩니다.
그럼 부은 양에 따라 연못 안의 모습이 변하게 될 거고요.]
코우지가 페이지를 찢자, 그의 손에 잡힌 종이가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며 검은색 액체가 든 플라스크로 변화했다.
코우지는 잠깐 요정을 바라보다가 그것을 연못에 부었고, 그러자 연못 안의 모습이 즉각적으로 변경되기 시작했다.
멀쩡한 도시의 모습에서 좀비에게 사람들이 습격당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폐허가 된 도시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그리고 코우지가 든 병의 내용물이 모두 떨어지자, 코우지의 눈앞에 몇십 개가 넘는 게임 화면이 좌르륵 펼쳐졌다.
[지금 보시는 건 해당 세계에 좀비 요소를 5 눈금만큼 넣었을 때 선택하실 수 있는 게임 시스템의 템플릿입니다.
생각하시는 게임과 가장 근접한 형태의 탬플릿을 고르시면, 생성되는 월드가 그에 맞춰 설정됩니다.]
코우지는 눈앞에 떠 있는 이미지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하나의 이미지를 잡아 연못에 집어던졌다.
그렇게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왠지 돌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현대 무기를 기반으로 도시를 점령한 좀비들과 싸우며 도시 탈출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의 템플릿을 선택하셨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구현된 월드와 가장 유사한 게임은, ‘바이오 해지드 시리즈’입니다.]
그것은 코우지로 하여금 한 세계의 신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재밌다.’
코우지는 즉시 페이지를 넘겨 다른 ‘기본 요소’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요정을 향해 물었다.
“여러 개의 요소를 전부 부으면 어떻게 돼?”
[그럼 투입한 요소의 비중이 서로 비슷한 세계가 됩니다.]
페이지를 넘기던 코우지가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는 펼쳐진 페이지를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크래프트(조합) 게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필요한 장비와 무기를 조합하는 시스템을 세계관에 추가합니다.
넣는 비율에 따라 게임 내에서 해당 요소가 차지하는 비율이 변경됩니다.
1번째 눈금까지 투입 : 사용자가 설정한 몇몇 재료들을 조합하여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추가됩니다.
2번째 눈금까지 투입 : PTW에서 제공하는 기본적인 크래프트 요소들이 추가됩니다.
게이머는 못과 나무를 사용하여 바리케이트를 만들거나, 밧줄과 나무, 돌을 이용하여 돌도끼 등을 만들 수 있습니다.
3번째 눈금까지 투입 : 서바이벌 크래프팅을 넘어, 전문적인 장비 제작 시스템이 추가됩니다.
유저가 게임에서 완성도 높은 갑옷과 무기 등의 장비를 만들 수 있습니다.
4번째 눈금까지 투입 : 조합된 장비에 특별한 추가 능력을 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추가됩니다.
5번째 눈금까지 투입 : 게임의 주요 엔딩 조건으로 특별한 장비를 만드는 조건이 추가되고, 조리나 생필품의 제작 등이 게임의 메인 시스템을 차지하게 됩니다.]
페이지를 읽던 코우지는 주저 없이 페이지를 뜯어 연못에 집어 던졌다.
그리고는 이전에 그가 선택한 요소와 조합되어 나온 새로운 탬플릿을 선택한 뒤, 또 다른 요소를 넣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디아○로 같은 랜덤 능력치가 부여된 파밍 요소도 재미있지.”
“연애 요소도 좀 있으면 좋겠는데”
그가 페이지를 찢어 넣을수록, 플라스크에 담긴 액체를 연못에 부을수록 점점 등장하는 템플릿의 수가 줄어들고 있긴 했지만, 코우지는 상당히 많은 요소를 추가했음에도 여전히 선택지를 제공하는 리얼엔진의 바리에이션에 크게 감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원하는 요소를 모두 넣었을 때, 그의 눈앞엔 그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게임의 스크린 샷만이 덩그러니 띄워져 있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도시에서 재난과 맞서 싸우며 창궐하는 좀비들에 맞서 동료들을 구하고 매력적인 이성들을 구출해 자신만의 진지를 구축하여 최대한 오래 생존하는 게임의 템플릿을 선택하셨습니다.
이 안에서 게임 안의 모든 구출 가능한 동료는 각자의 전문화된 스킬 트리를 가지고 있으며, 플레이어는 자신이 선택한 파티원과 방어전을 치르거나 탐색전을 치르며 몬스터를 사냥하고 무기와 아이템을 수집해 전투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전투시마다 보스에게서 랜덤하게 능력치가 부여된 보상을 얻을 수 있으며, 조합, 생존, 전투, 사격, 교류의 5가지 스킬 트리를 원하는 대로 성장시키며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그나마’ 가장 비슷한 게임은, ‘무인도 이야기’ 3편 및 ‘절대 절명 도시’ ‘바이오 해지드’와 ‘디아○로’입니다.]
“이제 넣을 만한 건 다 넣은 것 같은데?”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코렛트는 코우지의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라며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리고는 힘찬 목소리로 코우지에게 말했다.
[그럼 기본 템플릿이 결정되었으니 실제 월드를 생성하겠습니다!
월드 생성은 PTW의 메인 서버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습니다!
이대로 생성 할까요?]
“어.”
[그럼 월드 생성 과정을 시작합니다! 휘리릭 뿅!]
코우지는 마음속으로 ‘저 휘리릭 뿅!이란 대사가 꼭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굳이 그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욕망이 잔뜩 들어간 세계의 생성을 기다리는 시점에서, 이미 그의 기대치는 천장을 뚫은 상태였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내, 지팡이를 들고 공중에서 열심히 요상한 춤을 추던 코렛트의 댄스가 끝나자, 코우지는 기다리고 있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기본 템플릿에 기반한 게임 생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현재의 게임 내용은 PTW에서 제공하는 AI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생성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테스트를 해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바로 세부 조정으로 넘어갈까요?]
“테스트.”
그것이 비록 기본 템플렛에 기반하여 생성된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이토록 간단한 과정에 의해 게임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코우지는, 먼저 PTW가 말하는 ‘기본’이 어느 수준인지 파악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빌드 테스트를 위해 생성된 프로젝트 안으로 들어갑니다! 휘리릭 뿅!]
순간 코우지는 변화한 주변의 모습을 보고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을 느꼈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
그것은 현존하는 게임 중 가장 뛰어난 그래픽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HC101과 동일한 수준으로 구현된, ‘자신이 선택한 세계’였기 때문에.
녹슨 철골을 갈비뼈처럼 드러낸 채로 무너져가는 건물.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순간 재빠르게 인간의 자리를 차지한 짙푸른 이끼들.
부서진 파이프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가느다란 물줄기를 하염없이 맞고 있는 버려진 자동차들.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AAA급 게임을 누구나 만들 수 있게 하겠다’라고 호언장담했던 상혁의 약속이 허언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지···. 진짜로 이 세계에 내가 아까 선택한 게임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코우지의 곁에서, 코우지를 따라 게임 속 세계로 이동한 요정이 말했다.
[맞습니다. 가장 쉽게 게임 시스템을 파악하는 방법은, 바로 UI를 확인하는 거겠죠?
‘상태창’이라고 외쳐보세요.]
코우지는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요정의 지시에 따랐다.
“상태창!”
그러자 특유의 반 투명한 디스플레이 형태로 그가 주문한 시스템이 완벽하게 적용된 상태창이 그의 앞에 등장했다.
“오···. 오오오오!!!”
스테이터스, 스킬 트리, PRG의 레벨 업 시스템이 적용된 경험치와 장비 슬롯은 마치 전문가가 디자인한 그것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각 버튼의 위치는 자주 누르기에 편한 배치로 완벽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잠깐 그렇게 이세계 물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만끽하던 코우지는 상태창을 닫고 요정에게 물었다.
이제 이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기 위해서.
“대충 원하는 시스템은 들어가 있는 것 같은데, 이제 뭘 하면 되지? 그냥 앞으로 가면 되나?”
[지금 사용자께서 서 있는 세계는 말 그대로 현실 그대로의 그래픽 스타일을 사용한 세계입니다!
저는 여기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그래픽 스타일로 게임을 다듬는 작업을 추천합니다!]
“그건 어떻게 하는 데?”
[그래픽 스타일 세팅을 조정하시면 됩니다.
그 전에, 먼저 앞으로의 그래픽 작업을 도울 가이드 AI를 설정해야겠죠.]
“가이드 AI? 네가 가이드가 아니야?”
[그래픽은 작업자 개개인의 취향을 많이 타는 파트이기에, 같은 디자인을 하더라도 작업장에 따라 결과물이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의 AI가 안내한다면 디자인 결과물이 다들 비슷하게 나오게 되겠죠.
그래서 그래픽 스타일을 정하기 전에, 리얼 엔진 안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그래픽 스타일을 전반적으로 지원해 줄 AD를 뽑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AD?”
[아트 디렉터. 리얼 엔진 안에는 PTW의 간판 AD인 김서연을 비롯한 여러 디자이너들의 작업 및 수정 패턴을 학습시킨 25종의 AI가 존재합니다.
똑같은 결과물을 가지고 각각 다른 스타일로 표현하는 AI들이죠.
그중에 자신의 취향에 가장 맞는 것 같은 인공지능을 골라 가이드로 선정하면, 해당 아티스트의 작업 스타일에 따라 건축물, 몬스터, 장비, NPC와 UI 등 세계를 구성하는 그래픽 요소의 대대적인 수정이 이루어집니다.
그 이후엔, 실제로 그 안에 있는 여러 요소들을 살펴보면서 개별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적용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후에도 그래픽 관련 내용의 수정이 필요할 때마다, 선택한 AD를 호출해 수정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오······. 오오!”
경악을 넘어 말이 나오지 않는 코우지를 보며, 요정인 코렛트는 공중제비를 넘었다.
그리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손에 들린 지팡이를 들며 코우지에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전 AD를 선택하는 이 과정이 제일 즐겁습니다.
그럼 이 세계의 그래픽 스타일을 결정할 아트 디렉터를 설정해볼까요?]
코우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정이 다시 외쳤다.
[그럼 그래픽 가이드 선정 과정을 시작합니다! 에잇! 휘리릭 뿅!]
“휘리릭 뿅!”
그리고 이번엔, 코우지도 신나는 목소리로 요정과 함께 마법의 주문을 외쳤다.
그에게 있어서 요정이 외치는 괴상한 주문은, 더 이상 거슬리는 연출이 아닌, 그가 바라는 마법을 진짜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주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힘차게 마법의 주문을 외친 코우지는, 자신이 있던 게임 속 세계에서 어느새 처음 있었던 사각의 공간으로 전송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같은 공간은 아니었다.
지금 전송된 공간은 처음 자신이 보았던 공간보다 10배는 넓은 공간이었기에.
그리고 그 공간은 수많은 형태의 몬스터와 로봇, 갑옷을 입은 다양한 인물들과 현대 건축물을 축소 시킨 듯한 미니어처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장난감 전시회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 코우지에게, 한 여성이 말을 걸었다.
그것은 수많은 미니어쳐 가운데 유일하게 현실적인 크기를 한 채 조용히 앉아 있던 한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였다.
[저의 포트폴리오에 찾아오신 새 사용자님을 환영합니다.
저는 PTW의 AD를 담당하고 있는 원화가이자 모델러, 김서연의 작업 스타일을 학습한 AI, ‘김서연’입니다.]
“어···. 어?어어?! 김서연?! ‘그’ 김서연?”
지금은 게임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 이름이 코우지를 당황하게 했지만, 당사자인 그녀는 아름다운 미소로 그를 진정시켰다.
[말씀드렸지만 본인이 아닌 본인의 스타일을 토대로 학습한 AI입니다.
하지만 작업 결과물에 있어서는 미세한 부분을 제외하면 99% 비슷한 결과물을 낼 수 있죠.
아마 실제 김서연 본인과 작업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갑자기 월드클래스 AD와 일할 기회가 생긴 코우지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꿈만 같은 일들이었기에.
그러자 그녀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코우지를 향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제 작업 스타일을 소개해도 될까요?]
그런 그녀의 질문에, 코우지가 할 수 있는 건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