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 갑론을박
자신들이 업계의 표준이기에 기준 가격을 낮추어 서비스하겠다는 상혁의 발언은. 안 그래도 PTW에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던 많은 게임 업계 종사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유저들이 자유롭게 게임을 갈아타며 게임을 하게 하고 싶다는 상혁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들에겐 ‘표준’이라는 발언이 ‘남들이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게 우리들이 기준 가격을 결정하겠다.’라는 의미처럼 들렸기 때문에.
게다가 지수가 진행한 VLOG 방송의 내용도 업계엔 충격과 공포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좋은 게임을 만들려 노력하고, 힘든 크런치를 견뎌내며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그것이 불러온 결과가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임이 메가 히트해도 겨우 몇백몇 천만 원의 보너스를 받는 것이 전부인 대다수의 게임 개발자들의 삶과, 아예 가상의 회사를 만들어 그 안에서 즐겁게 게임을 만드는 PTW 직원들의 삶은, 전 세계의 수많은 개발자에게 자신들이 마치 매트릭스 바깥에 사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원해서 붉은 약을 삼킨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유로, 수많은 개발자들이 방송이 끝나자마자 자신들의 사내 커뮤니티나 개인 채팅, 블라인드 등을 통해 자신이 소속된 회사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인간적으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리가 게임을 못 팔았나?
영업이익이 부족한가?
왜 우리는 PTW 직원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나?-
-저런 복지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까 제발 매출 압박 좀 그만했으면 소원이 없겠다.-
-전 세계에서 가장 할 일 없는 부서가 PTW 사업부라는 농담이 있던데, 오늘 방송을 보며 그게 진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방송 내내 우울해 보이는 직원이 한 명도 안보일 수 있지?
저기 게임회사 맞아?-
-오늘 아침, 회사 부장이 내 자리로 찾아와 말하더라.
PTW는 그냥 인간이 갈 수 없는 별천지 같은 곳이니까, 그런 거 부러워하지 말고 내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그렇게 말하는 부장의 입은 아침에 마신 커피와 담배 냄새가 섞여 끔찍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지.
그 말을 들으며, 난 진심으로 생각했다.
진짜로, 우리 회사에도 VR 스튜디오 도입이 절실하다고.-
주로 ‘박탈감’과 ‘의욕 상실’을 호소하는 일반 개발자들과는 다르게, 개발을 주도하는 소수의 상급 개발자들은 다른 형태의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오늘의 웹진, 주요 머릿기사 살펴봅시다.
먼저 VR 게이밍 뉴스입니다.
‘PTW의 신념은, 이미 신념의 영역을 넘어 오만의 영역에 들어섰다.’
이 기고 글에서, 자신이 대기업의 책임 개발자라고 밝힌 글쓴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진행한 이번 스트리밍 이벤트에서, PTW의 CCO 이상혁의 발언은 광오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게임사를 모두 무시한 채, 자신들이 업계의 표준이라 자처하는 그의 말은 방송을 보고 있는 나에게 역겨움을 느끼게 했다.
그는 진정으로 세상에 좋은 게임회사가 오로지 PTW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다른 개발자들은, 전부 지옥에 떨어져야 할 사악한 인간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우리 역시 게임 개발자로서 언제나 유저의 즐거움을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회사의 경영이나 안정적인 운영에 대해서도 생각할 뿐.
세상 모든 회사들이 PTW같이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회사엔 미 국방부에 비싼 값에 팔아먹을 PRD 같은 기술도 없고, 테슬러에 팔아먹을 딥 다이버 같은 기술도 없으니까.
결국 PTW의 행보는 대부분의 업계 종사자들에겐 돈지랄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워낙 팬덤이 강력한 PTW이기에 지금까지는 침묵했지만, 이제부터는 해야 할 말을 하겠다.
현재의 게임 업계를 망치고 있는 장본인은, 우리가 아닌 바로 그들이라고.’
이 게시물은 현재 500개가 넘는 좋아요와 4만 개가 넘는 싫어요를 받고, 신고 누적으로 내려간 상태입니다.
그러나 개발자들의 PTW 비판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는데요, 한 개발자는 자신이 기고하는 언론사의 칼럼을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PTW의 팬들은 너희는 정말로 세상에 PTW의 게임밖에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원하는 것인가?’
내용 보시겠습니다.
‘현재 콘솔 PC 게임 업계 전체를 통틀어 가장 거대한 팬덤으로 성장한 PTW의 팬덤은, 사실 업계 전체적으로 볼 때 매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PTW의 게임만을 플레이하며 다른 게임들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차라리 그것이 전부라면 다행이지만, 그들은 다른 개발사의 게임을 플레이하고는 PTW의 게임과 비교하며 혹평을 늘어놓는다.
어떤 게임이 조금만 좋은 평가를 받으면 단체로 몰려와 평점 테러를 하고, 누군가 PTW의 게임 말고도 좋은 게임이 있다고 하면 단체로 가서 그를 비난한다.
나는 이것이 정상적인 문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PTW가 자신들의 회사를 어떻게 경영할지에 대한 문제는 명백하게 그들이 결정할 문제이긴 하지만, 이번 스트리밍 이벤트처럼 같은 업계 종사자들의 근로 의욕을 앗아가는 테러 행위는 지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늘, 내 동료 한명이 사표를 제출했다.
PTW에 입사 지원을 해서 합격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업계를 떠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이라는 말을 하면서.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 가슴이 아팠다.
이상혁 CCO는 게임 업계를 대표하는 대표자 중 한 사람으로서, 동업 의식이라는 것에 조금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게시글에 대해, 다양한 이용자들이 댓글을 달았으며 마크 트웨인이라는 닉네임의 유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솔직히 나도 20년 이상 업계에서 종사한 베테랑이지만, PTW의 이번 VLOG방송은 내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직이 잦은 게임 업계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온갖 프로젝트를 거쳐 간 경력자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난 그 많은 경력자 중에서 단 한 번도 PTW 출신의 개발자를 본 적이 없었고, 어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누가 저런 회사를 떠나서 지옥 같은 다른 회사로 가고 싶어서 하겠는가.
세계에서 가장 실력 있고 열정 있는 사람들만 모여있는 천국 같은 곳에서, 매일 같이 개발 시한과 매출 압박에 시달리면서 개발하는 곳으로 오고 싶어하는 개발자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엔 PTW의 팬덤보다 더 많은 게이머가 존재하고, 누군가가 만드는 게임은 전 세계를 다 합쳐 단 몇천몇만 명만의 사람이 좋아하는 게임이 되기도 한다.
판매량이 20만인 게임은 판매량이 2천만인 게임보다 100배로 열등한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게임의 개발자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유저를 위한 게임을 개발했을 테니까.
그러니 그들이 만든 게임이 PTW의 게임보다 퀄리티가 낮다고 비난하지 말자.
그들은 천국에서 신들의 도움을 받으며 게임을 만들고, 우리는 지옥에서 악마에게 찔려가며 게임을 만들고 있으니까.’
PTW의 CCO, 이상혁이 발표한 풀 다이브 VR 서비스의 표준 가격에 대한 비난은 이것보다 더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는데요, DA의 개발자, 존 개런드는 자신의 트윗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월 38달러 수준이라는 이상혁 CCO의 가격 산정은 후발주자들의 해당 시장 진입을 틀어막는 악의로 가득 차 있다.’
이어지는 트윗에서, 글쓴이는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개발사들이 PTW처럼 게임 바깥에서 돈을 펑펑 벌어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개발사들은 투자자란 이름의 채권자를 안고서 게임을 개발하며, 실패란 리스크를 안고 개발에 임하고 있다.
그런 개발자들에겐, 자신을 믿고 막대한 개발비를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이윤을 남겨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니 PTW의 38달러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 산정은 다른 후발주자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PTW말고 나머지 회사들은, 우리가 만든 풀 다이브 VR 시장에서 꺼지라고.’
PTW는 아직까지 게임 개발자들의 이러한 비판에 어떠한 대답도 내놓지 않고 있는데요, 심지어 PTW에서 현재 진행 중인 YAS의 스트리밍 이벤트에 참가한 직원들도, 다른 개발자가 도네이션으로 물어보는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대답은, ‘적어도 가격 산정이나 출시일에 대한 권한은 PTW의 임원진에 있으며, 우린 우리의 CCO를 믿는다.’라는 대답이었죠.
PTW의 동업 의식을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PTW가 이 비난 여론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주목되는 한주입니다.]
그날의 주요 게임 뉴스들을 모아서 보여주는 유튜브 영상을 보던 상혁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영상을 종료시켰다.
그리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현주에게 말했다.
“전부 맞는 말이긴 하네요.”
“어떤 점이? 이번 가격 산정에서 후발주자들의 진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잖아?”
현주가 알고 있는 상혁의 원래 의도는, 리얼 엔진의 보급을 통해 풀 다이브 VR 게임의 개발 단가를 극단적으로 낮추고, 굳이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는 대형 개발사뿐이 아닌, 영세 개발사, 심지어 동인팀에서도 AAA급 게임을 출시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현재의 리얼 엔진은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엔진이기에.
현재의 AAA급 게임 개발에 있어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비용은 ‘그래픽’을 구현하는 데 들어가는 인건비였다.
게이머의 눈에 보이는, 밟고, 부수고, 앉고, 손으로 잡거나 눕는 모든 오브젝트 하나하나를 전부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 그래픽 팀의 역할이기에.
그리고 프로그래밍 인력이 그 뒤를 잇는다.
‘부서질’ 물건을 창조하는 것이 그래픽팀의 역할이라면, 그 물건이 ‘부서지게’ 만드는 것은 프로그래밍 팀의 역할이니까.
상혁은 그 과정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을 구현하는 데 지나치게 큰 노력이 투입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새 배틀필드 시리즈가 마음에 들지 않는 유저가 자신만의 배틀필드를 만들려고 시도한다고 할 때, 그 유저는 원래의 배틀필드 개발 인력 수준의 인력을 갖추고 개발을 시작해야 하죠.
그리고 가장 기초적인 부분.
그러니까 캐릭터를 움직이게 만들고 총을 쏘면 총알이 날아가게 만들고 벽에 총알이 맞으면 구멍이 뚫리게 하는.
그런 기초적인 부분부터 하나하나 구축해나가야 해요.
다른 게임에서 가져오면 너무나도 쉽게 구현 가능한 그런 부분들을 개발하는데, 개발 시간과 자금의 절반 이상이 소요되죠.
그러나 방법이 없습니다.
보통 개발사들은 자신들이 힘들여 구축한 기초를 서로 공유하려 하지 않으니까요.
그건 접근성이 낮은 편인 유니티 엔진조차도 마찬가지죠.
엄청나게 단순한, 예를 들면 ‘플러피 버드’ 같은 게임을 만드는 데도 초보 개발자는 상당 시간 책을 붙잡고 씨름해야 합니다.
그런 기초적인 부분들을 몇 초만에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면, 게임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은 압도적으로 줄어들게 되겠죠.
리얼 엔진의 목적은 바로 그 기초가 되는 모든 게임 시스템의 베이스를 압도적으로 간단하게 구축할 수 있게 만드는 거고요.”
리얼 엔진은 3D 툴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이나 노하우가 없는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디자인 센스만 있다면 누구나 간단히 VR환경에서 완벽하게 동작하는 몬스터나 3D 오브젝트를 생성할 수 있는 엔진이었다.
그것은 리얼 엔진이 ‘언리얼’이나 ‘유니티’와는 다른, 오히려 ‘RPG 만들기’나 ‘로블록스’와 같은 방향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혁은 리얼 엔진의 방향성을 구상할 때, 기본적으로 그것이 AAA게임을 만들 수 있는 ‘RPG 만들기’ 같은 툴이 되기를 바랐다.
게임 제작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공부가 없이도, AI의 보조를 받아가며 자유롭게 자신이 살고 싶은 세계를 창조할 수 있도록.
‘스팀으로 동작하는 꽂게같이 생긴 거대한 보행형 머신’이라는 개발자의 음성을 듣고, 엔진이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의 모델링을 스스로 조합하여 즉시 유저에게 제공할 수 있는 엔진.
그리고 버츄얼 공간에서 제공되는 여러 리소스를 직접 만지고 다듬는 것 만으로도 간단히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모델링을 만들 수 있는 엔진.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모델링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살아 움직이는 게임 속 몬스터로 구현해줄 수 있는 엔진.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AI가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게 할 수 있는 방대한 라이브러리의 존재가 필수적이었지만, 민준은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그 데이터들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전 세계에서 게임 보조기구로, 때로는 자율 주행 차량의 센서로, 때로는 감시 장비로 쓰이고 있는 코넥트의 사물 인식 알고리즘 구현을 위해 모인 데이터를, 리얼 엔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는 방식으로.
물론 그 과정에서 3D 스캔 형태로 제공되는 온갖 사물에 ‘신발’, ‘가죽’, ‘나무’, ‘할로윈 호박 코스튬’ 같은 수많은 태그를 일일이 달아야 했던 천하대 알바생들의 피와 땀, 눈물이 들어가긴 했지만, 그 덕에 리얼 엔진의 모델링 라이브러리는 놀라움을 넘어 경악할 수준의 방대한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 모든 것을 개발자들과 게이머들에게 오픈할 생각이었다.
“현재 PTW LAB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 대부분이 그렇지만, 아직 완성도 되지 않은 리얼 엔진만 가지고도 게임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인원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에요.
심지어 시간만 조금 더 들인다고 가정하면, 혼자서도 충분히 AAA급 소리 듣는 풀 다이브 VR 게임을 구현하는 게 가능하죠.
물론 이번에 저희가 개발하고 있는 MMORPG처럼 장르 자체를 통으로 바닥부터 개발하려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하겠지만, 그 데이터도 오픈되기에 결국 YAS 이후의 PRD용 MMORPG는 극소수의 인원으로 충분히 개발이 가능할 겁니다.
지금이라도 저희가 마음만 먹으면 HC 101의 맵 데이터와 빌런, 그리고 현대 배경의 무기와 오브젝트를 활용해서 현대 배경의 MMORPG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일단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데 성공한다면, 적어도 동업 의식이 없는 가격선정이라는 비난은 어느정도 수그러들겠죠.”
“진짜로 그렇게 될까?”
“실제로 사례도 있어요. 물론 AAA게임 시장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에로 게임 시장에서 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DOS 시절부터 이어져 온 ‘RPG 쯔꾸르’의 사례가 좋은 예죠.
일본의 동인 제작자들은 ‘RPG 쯔꾸르’의 버전이 XP를 넘어서자, 그 게임이 가진 에로 게임계에서의 포텐셜에 주목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버전이 올라가면서, 점점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자 RPG 쯔꾸르로 만들어진 에로 게임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죠.
그 사이에 울프툴이나 렌파이, 유니티 같은 다루기 쉬운 다른 게임툴도 많이 등장했고요.
Live2D를 이용해서 에로 씬을 표현하거나, 혹은 3D로 영상이나 일러스트 제작이 가능한 다른 에로 게임을 이용해서 씬을 만들고, 거기서 뽑은 리소스를 다른 툴로 가져와 게임을 만드는 경우도 많이 생겼죠.
RPG 메이커, 울프툴, 기리기리, 일루젼 사의 커스텀 가능한 3D 에로 게임들과 Live2D.
그런 존재들의 공통점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게임 제작에 뛰어들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개발자들은 비록 대형 개발사 같은 퀄리티를 보장하지는 않아도, 적어도 자신들이 제공하는 볼륨에 맞는 합리적인 가격에 게임을 제공하고 있어요.
그건 수백 명의 개발자를 고용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는 대형 개발사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저는 그런 개발자들이, 매번 유저를 기만하는 몇몇 대형 개발사들보다 더 게임 업계를 빛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트레일러로 게이머나 낚고, 후속작 개판 치면 다음 편에서 ‘원점으로의 회귀’ 이 지랄 하면서 원작 팬들 또 한 번 낚는 게 그들이 매번 하는 짓이니까요.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 대형 개발사에게 인디 개발자가 대항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죠.
그들에겐 ‘압도적인 자금’과 ‘퀄리티’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전 그 절대적인 규칙을 바꾸고 싶어요.
저희 게임을 플레이하던 유저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생각하는 멋진 게임을 편하게 만들 수 있고,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게임 가운데서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세상을.
반짝이는 아이디어만 있다면, 수백 명의 개발자를 고용하지 않아도 AAA급의 그래픽을 가진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을, 굳이 대형 게임사에서 월급을 받으며 개발하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만들며 수익을 100% 가져갈 수 있는 세상을.
적어도 그런 세상이, 지금처럼 광원효과를 돈 주고 사는 세상보다는 더 아름다운 세상일 거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상혁의 말을 들은 현주가 물었다.
“너의 꿈으로 인해, 대형 개발사들이 전부 종말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그러나 상혁은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적어도 리얼 엔진이 공개되고 나면, 대형 개발사들도 개발환경이라는 조건만 보면 저희와 같은 조건에서 싸우게 되겠죠.
그리고 그들이 가진 노하우와 열정이 진짜라면, 지금 저희가 하는 것처럼 수백 명을 투입해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시도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세계의 모든 지역을 직접 하나하나 디자인하고, 매력적인 오리지널 몬스터를 창조해 게임 속 세계에 배치하고, YAS가 가지고 있는 성장 시스템보다 더 매력적인 성장 시스템을 만들어서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겠죠.
그게 유저가 보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라면, 유저는 그 가격이 20만 원이든 30만 원이든 자신의 지갑을 열 테고요.
결국 지금 가격에 불만을 표하는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그 가격에 절대 YAS 이상의 게임을 개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만을 표하는 거죠.
그리고 그 문제는 리얼 엔진이 공개되는 순간 해결될 겁니다.
YAS의 가격이 불만이라면, 그 돈보다 더 주고도 기꺼이 할만한 게임을 만들면 그만이고요.
그 가격이 합당한지를 판단하는 건 유저의 몫이겠죠.
비록 지금은 PTW가 PRD용 게임 개발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독점하고 있지만, 리얼 엔진이 공개되는 순간 저희와 타사의 기술적 격차는 제로가 될 겁니다.
공개 예정의 리얼 엔진에는 STC에 대한 접근 권한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그 이후엔 오로지 게임에 대한 열정과 아이디어에 대한 승부만이 남겠죠.”
그런 상혁의 결정은 PTW 직원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는 사항이었다.
지금 이대로 운영을 계속하는 이상, VR 시장에서의 PTW의 입지는 절대적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애당초 PRD는 STC의 보조 없이는 어떤 게임엔진으로도 그 성능을 100% 끌어낼 수 없는 기계였다.
오로지 엔진 안에 STC 기술이 적용되어있는 리얼 엔진으로만 제대로 된 게임 개발이 가능한 머신이 PRD였기에.
그렇기에 지금은, PTW가 마음만 먹으면 타 업체가 풀 다이브 VR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입구를 틀어막고 수십 년 이상 독점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모든 메리트를 포기하면서까지, 굳이 ‘누구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을 열고 싶다는 상혁의 의지는 어찌 보면 너무나 이상만을 추구하는 생각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안건에 대한 상혁의 의지가 너무나도 확고했기에, PTW의 직원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던 CCO에 대한 믿음으로 그의 결정을 지지해주었다.
그 결정엔, 자신들이 개발하는 게임 말고도 더 다양한 개발자들의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게이머로서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멋진 개발자들을 이끄는 CCO로서, 그들이 받는 부당한 비난을 막아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이 모든 문제는 리얼 엔진의 공개가 늦어지면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누군가 5명 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 집에서 뚝딱뚝딱 만든 MMORPG가, 다른 대형 개발사의 게임 퀄리티를 완전히 압도하는 상태로 같은 가격에 서비스된다고 한다면, 그걸로 저희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당분간은 언론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하면서 대응해야겠어요.
제 작업은 잠시 홀드 하고, 언론 인터뷰 위주로 일정을 다시 짤게요.”
그러나 상혁의 말을 들은 현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왜요?”
“이미 네 설명을, 전 세계의 개발자들과 게이머들이 다 들었을 테니까.”
현주가 웃으며 가리키는 방향을 본 상혁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거기엔 지수가 웃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녹화(REC) 램프에 불이 들어온 상태의 딥 다이버를 머리에 뒤집어쓰고서.
“방송 중이었어요?”
“언론인과 진행하는 인터뷰가 아니라, 솔직한 네 심정을 게이머들에게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이제는 다들 알게 되었겠지.
VR 게임 진출의 허들을 높이는 게 아니라, 누구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려는 게 PTW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걸.”
현주의 말을 들은 상혁이 지수를 보며 물었다.
“그럼 반응도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겠네.
뭐라고 하고 있어?”
그러자 지수가 웃으며 상혁의 질문에 답했다.
“일단 리얼 엔진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공개가 되어야 알 수 있겠다고 하네요.
정말로 게임을 그렇게 쉽게 만드는 게 가능한지, 실제로 겪어보기 전에는 알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래? 그 말도 맞는 말이네.”
지수의 말을 들은 상혁은 잠시 고민하더니 허공을 향해 외쳤다.
“움파룸파! 이리와!”
그러자 지수의 VLOG 방송을 통해 이제는 익숙한 존재가 되어버린 기계 공이 상혁의 곁에 날아와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매번 부를 때마다 제 이름을 마음대로 바꿔 부르는 행동을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가끔은 저도 진짜로 절 호출하신 것인가 헷갈릴 때가 있으니까요.]
“알았어. 딸기맛 찹쌀떡. 그래도 90% 정도는 개떡 같은 이름으로 불러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오잖아.”
[용건을 말씀해주십시오.]
“민준이 접속 중이면 버츄얼 스튜디오 부실로 오라고 긴급 호출 넣어줘. 접속 중이 아니면 휴대폰 워크패스트로 알람 보내고.”
[알겠습니다. 호출 이유는 뭐라고 전달할까요?]
“기간 중 유저가 작업한 내용 전부 날리는 조건으로 일주일 정도만 리얼 엔진 임시 오픈 가능한가 물어보려고.”
[알겠습니다.]
잠시 후, 상혁은 팔짱을 낀 채로 부실로 텔레포트 해온 민준과 만날 수 있었다.
마치 ‘내가 뭐랬냐?’라고 말하는 듯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채 상혁을 바라보던 민준은, 입을 열자마자 얼굴에 쓰여있던 그 말을 그대로 토해내었다.
“내가 뭐랬냐?”
“그 말 하려고 텔레포트 하기 전에 팔짱 끼고 텔레포트 요청했을 너를 생각하면 마음이 좀 딱하긴 하지만, 솔직히 할 말이 없긴 하네.”
“그래서 내가 너한테 가격 공개는 리얼 엔진 오픈 이후에 해야 한다고 말했잖아.”
“니가 나한테 그걸 말해준 타이밍이 내가 서비스 가격을 오픈하고 나서라는 게 문제지.”
“나야 니가 그 방송에서 그렇게 가격을 오픈할 줄은 몰랐으니까.”
“나는 그게 이렇게 논란이 될 줄 몰랐고.
어쨌든 지금 상황은 수습이 좀 필요할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리얼 엔진을 일주일 동안 일반 유저에게 오픈하고 싶다고?”
“맞아.”
상혁의 요청에 민준은 조건을 달았다.
“MMORPG 파트는 안돼. 거기는 아직 완성된 라이브러리보다 스컹크 웍스에서 직접 짜고 있는 코드가 더 많거든.
아마 유저가 만들려고 해도 정상적으로 세계가 구축되지 않을 거야.”
“그러면?”
“HC 101파트는 괜찮아. 현대 배경으로 돌아가는 웬만한 게임은 다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오픈 자체는 반대 안 하는 거야?”
상혁의 질문을 들은 민준은 천장을 보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는 상혁을 향해 말했다.
“반대? 왜? 개쩌는 물건을 만들어놓고도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못하는 게 불만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우리가 만든 리얼 엔진이 얼마나 엄청난 물건인지.
그걸 보고 세상이 경악하는 모습을 보는 건 꽤 괜찮은 기분일 테니까.
오픈해.
보여줘.
그리고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어.
코넥트, STC, PRD.
지금까지 우리가 공개한 그 어떤 것보다 가장 뛰어난 물건이, 바로 리얼 엔진이라는 것을 세상이 알 수 있도록.”
“기술적인 문제는 안 생길까?”
상혁의 질문에 민준이 답했다.
“문제? 생기면 더 좋지. 그럼 우리가 아직 덜 고친 부분이 있다는 것 일테니.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HC101같은 AAAA급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마 괜찮을 거야.
겨우 일주일 만에 AAAAA급 게임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미친놈만 없다면.
하지만 명확하게 조건을 걸어줘야 해.
이건 어디까지나 체험을 위한 오픈이니까.
시험 오픈 기간 중에 개발된 모든 월드는 오픈 기간이 끝나면 삭제될 거라고.
이쪽은 아예 학습 서버 기능을 분리해서 유저가 만든 저작물은 데이터 서버에 남기지도 않을 거야.
나중에 우리가 유저가 만든 모델링 데이터를 가지고 리얼 엔진의 AI를 학습시켰다는 개소리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
오픈 이후에는 몰라도, 오픈 시점에서의 리얼 엔진은 100% PTW가 구축한 라이브러리를 기반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
“분리 작업엔 얼마나 필요해?”
“3시간.”
민준의 허가를 받은 상혁이 미소지으며 지수를 향해 말했다.
그것은 지수가 아닌, 지수의 시선으로 자신과 민준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을 시청자들을 향해서 던지는 상혁의 메시지였다.
“들으셨죠? 그럼 한국 시간 기준으로 내일 오전 9시부터, PRD를 보유한 유저들을 대상으로 리얼 엔진을 체험해볼 수 있는 테스트 오픈을 수행하겠습니다.”
‘PTW가 게임 시장을 죽이려 한다.’는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비난.
그 비난에 대해 상혁이 선택한 카드는 ‘리얼 엔진의 공개’라는 핵폭탄급 발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