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 유저의 선택
지수가 멤버를 소집한 회의실은, 한쪽 벽면에 커다란 책장이 놓여있는 유리로 둘러싸인 거대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중앙의 원형 테이블을 중심으로 계란 형태의 의자들이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특이하게도 문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어차피 참가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텔레포트가 가능한 버츄얼 스튜디오 특성상, 구조물에 문이 존재할 필요가 없으므로 가능한 구조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회의실의 모습은 마치 구름에 둘러싸인 아쿠아리움 같은 모습이었고, 그 몽환적인 느낌은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감탄사를 자아내게 하고 있었다.
이따금 기묘한 소리를 내며 구름 사이를 헤엄치는 거대한 하늘 고래와, SF영화에서나 볼 법한 비행 차량들이 회의실 유리 너머로 날아다니는 모습이 마치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바로 그 회의실에서, 지수가 카운슬(평의회:council)이라 부른 개발자들의 미팅이 진행되려 하고 있었다.
“안 좋은 예감이 드는군(I have a bad feeling about this).”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엄청나게 유명한 영화 대사를 읊조리며 공간으로 텔레포트 해온 상혁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상혁을 필두로 평의회 멤버들이 하나둘씩 회의실로 텔레포트 해 오면서, 조용하던 회의실은 순식간에 복작거리는 느낌으로 변화했다.
그때, 가만히 참가 인원들을 바라보던 지수가 자신의 옆에 있는 기계공을 향해 물었다.
“에이스펙스. 호출은 PTW 직원 한정으로 전한 거야?”
[개발관련 미팅이라 판단되어 그렇게 진행했습니다만, 나머지도 부를까요?]
“응. ‘관리자’들도 불러줘.”
[알겠습니다.]
서연이 말을 마치는 순간, 형형색색의 여러 빛의 구슬이 회의실에 등장했다.
그것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공간을 비추며 꿈틀거리는 기묘한 형태의 빛 구슬이었다.
공간에 등장한 빛 구슬들을 본 상혁이 지수를 향해 물었다.
“관리자도 호출했어?”
“뭐 가끔 카운슬 미팅 진행할 때 시범 삼아 부르기는 했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잠금’ 이후에는 관리자들이 평의회의 주인이 될 거기도 하고요.
오빠가 오픈하고 싶은 건 오픈해도 된다고 하셔서 기왕 평의회를 여는 김에 시청자들에게 관리자들도 소개하려고요.”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완성도 자체는 흠잡을 데 없으니 괜찮은 판단이네.
어차피 YAS 안의 NPC들이 보여주는 AI를 통해서 현재 PTW AI기술의 수준이 어느정도인지는 시청자들도 대충 알고 있을 거고.”
지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의자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배제되었던 정령 시스템의 재도입을 위한 평의회를 진행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앉아주세요.”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완전히 몰입한 상태로 지수의 스트리밍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게임 안에서 벌어질 업데이트에 대한 회의를, 게임처럼 표현되어있는 가상현실 속에서 진행한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그 회의에 실제 그 게임 속에서 게임 시스템을 관리하는 AI인 ‘관리자’가 참여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기에.
그렇게 이어진 회의 내용은, 두근거리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부러움으로 터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었다.
“우선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전에 정령 시스템이 배제되었던 이유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상혁 오빠. 예전에 YAS의 테스트 빌드에 존재했던 정령 시스템을 삭제했던 건, 상혁 오빠의 의견에 의해서였죠?
이유를 다시 설명해주시겠어요?”
“방송 때문에?”
지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상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이전 회의에서 자신이 주장했던 바를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청자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여기 있는 평의회 멤버는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이전에 정령이 있었던 시기를요.
그때의 정령술은 거의 사기에 가까운 위력을 가지고 있었죠.
그건 YAS의 다른 스킬 시스템과는 달리, 시전자에게 아무런 패널티 없이 시전 가능한 무한한 힘을 주는 매개체였습니다.
시스템? 4.32버전 이전의 정령 사용자 전투 영상을 틀어줘.”
[재생합니다.]
그러자 회의실 중앙에 있는 원탁 위에 거대한 구름 같은 것이 등장했다.
거기엔 두 플레이어가 각자의 기술로 전투를 하는 전투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상혁은 그 영상을 배경으로 다시 설명을 이어나갔다.
“기본적으로 YAS의 전투 시스템은, 소모되는 체력이나 마나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PRD의 물리적 피드백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마나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해당 주문을 시전하는 캐스팅 자세를 취하려 할 때 물리적인 방해를 받죠.
게다가 마나가 바닥난 상태라면, 시전자가 캐스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주문 자체는 어거지로 전개되지만, 그 이후에 몸에 가해지는 물리력이 배로 증가합니다.
그건 물리와 생산 계열 스킬도 마찬가지고요.
대장장이는 망치를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정확한 위치에 망치를 맞추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느끼고, 목수는 못을 박거나 조각칼을 다루는 것이 점점 힘에 부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정령술은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죠.
정령술은 기본적으로 ‘친화도’라는 자원에 기반한 전투 서포터였습니다.
마치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처럼, 오랜 시간을 투입해서 친화도를 기르고, 내가 공격하는 스킬에 맞춰서 미리 함께 연습한 스킬을 알아서 시전하는 형태로 구현되었죠.
문제는 이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거의 노 패널티였다는 겁니다.
평소에 자신이 시전하는 전투 스킬을 사용하기만 해도, 그 스킬의 위력을 엄청나게 늘려주는 수많은 주문이 추가로 시전되는 방식이었으니까요.
YAS 안에서 정령 시스템이 삭제된 가장 큰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죠.
정령사라는 보조 직업엔 패널티가 없었으니까요.”
말을 마친 상혁이 지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으면 앞으로도 YAS안에서 정령술은 업데이트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지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설명 감사합니다. 대충 정령술이 어떤 방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셨을 것 같으니, 시청자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 제가 추가 설명을 하겠습니다.
지금 상혁 오빠는 정령술 자체의 사기성 때문에 정령을 YAS안에서 제거했다고 설명하셨지만, 거기엔 추가적인 백 스토리가 있습니다.
사실 한 직업이 너무 강해서 생기는 문제는 그 직업에 패널티를 부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죠.
저희는 정령의 삭제를 결정하기 이전에, 수많은 테스트를 통해 정령의 강함을 너프하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정령의 위력을 줄이면 그냥 근처에서 날아다니는 모양 이쁜 날파리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그렇다고 정령에 대한 전투 의존도를 높이면 밸런스 이슈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죠.”
지수의 설명을 들으며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수가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구스타프 씨와 마법과 궁술을 동시에 사용해서 싸우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전문 마법사 클래스가 아닌 궁수 클래스의 낮은 숙련도로 주문을 시전하기 위해 물리적 패널티를 한번 극복하고, 주문을 시전한 이후에 궁술 스킬에 적용되는 물리적 패널티를 또 한번 극복하며 싸워야했죠.
그게 너무 몸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저는 그 기술을 시전하기 위해서 헬스장에서 PT를 따로 받아야 했어요.
뭐 다이어트도 되고 좋긴 했지만, 아무튼!
제가 전투 때 사용한 스킬은 굳이 말하면 두 가지 과정을 혼합한 형태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마법 스킬 시전과 궁술 스킬 시전이요.
하지만 그 전투 방식은, 제가 스킬을 시전할 근력이 있다 하더라도 심각한 문제를 가져옵니다.
바로 두 개의 스킬을 동시에 시전하는 데 필요한 시전 시간의 문제죠.
현재 검술 계열 스킬의 최고 기술인 소드 오러 계열 스킬의 경우, 소드 오러를 사용하기 위해선 별다른 추가 근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냥 미리 수련한 소드 오러계열의 프리샷 루틴(준비자세)를 취하면 자동으로 일반 스킬에 더해 소드 오러의 시전 패널티까지 더한 물리적 피드백이 강하게 전달되죠.
저쪽은 두 가지 효과를 한 동작으로 수행하는데, 궁수는 마궁술을 쓰기 위해서 두 번의 스킬 시전을 해야합니다.
이건 밸런스적으로 문제가 있죠.
그때의 전투도 그랬어요.
아마 구스타프 씨가 제 전투를 지켜보지 않고 처음부터 전력으로 거리를 좁혀 공격해 들어왔다면, 저는 무조건 패배했을겁니다.
심지어 그건 제가 더 상위 경지의 마법궁수가 되었더라도 마찬가지였겠죠.
스킬 두 번과 한 번의 격차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니까요.”
“대신 궁수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 차이는 꽤 큽니다.”
“원거리 공격을 멍청이로 만들어버리는 감지 스킬의 존재가 없다면 그 말이 맞겠지만, 지금은 아예 투사체를 자동으로 튕겨내는 스킬 까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걸 깨부순 게 지수양이 창조한 ‘뒤쫒는 악몽’이었죠. YAS에서, 절대란 없으니까요.”
“아뇨,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건 단지 구스타프 씨가 가지고 있던 투사체 감지의 카운터 스킬이 제 뒤쫒는 악몽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화살을 잘라내는 대신 피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저는 계속 스킬을 시전하며 추적하는 화살의 수를 늘릴 수 있었죠.
반대로 쏘아대는 화살마다 모두 잘라버렸다면, 제 스킬은 그냥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을 겁니다.
현재 수많은 검사들이 익히고 있는 ‘투사체 절단’이 바로 그 그것을 위한 스킬이고요.
현재 궁술 계열에서 투사체 절단에 대응하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위력과 명중률이 보장되지 않는, 한번에 여러 개의 화살을 시위에 걸어 발사하는 ‘멀티플 샷’을 쓰거나 아니면 파티를 모아서 3명 이상의 궁수가 동시에 화살을 쏘는 거죠.
하지만 정령술을 사용하면, 이런게 가능합니다.
에이스펙스?”
지수가 에이스펙스라는 이름을 부르자, 그녀가 버츄얼 스튜디오에 진입한 이후부터 계속 그녀를 따라오던 기계 공이 그녀의 곁으로 날아왔다.
“어제 녹화한 전투 영상을 재생해줘.”
[알겠습니다.]
그러자 상혁이 재생시켰던 영상이 사라지며, 새로운 영상이 원탁 위에 등장했다.
“이 영상은 제가 어제 방송을 종료하고 YAS 안에 관리자 계정으로 접속해 일부 필드의 패치를 구버전 사양으로 되돌린 뒤 테스트한 영상입니다.”
화면 속 지수의 아바타 근처엔, 반투명한 요정 같은 존재들이 계속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지수는, 숨을 고르고는 자신의 곁을 날아다니는 정령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타이밍 샷을 쓸 거야. 6발로 부탁해!”
그러자 화면 속의 정령들이 기쁜 듯 그녀의 곁을 돌며 소리쳤다.
“꺄하하하! 응! 6발이지? 얘들아! 가자아아!”
순간 지수는 화살을 한발 꺼내 시위에 겨누고는, 그녀 앞에 있는 허수아비를 향해 발사했다.
그러나 화살은 시위를 떠나자마자 허수아비를 향해 쏘아지는 대신, 마치 무언가에 붙잡힌 것처럼 공중에 멈췄다.
“2발!”
지수가 빠르게 옆으로 이동하며 화살을 쏘자, 두 번째 화살도 허공에 멈춘 상태로 진동을 시작했다.
지수는 그런 식으로, 6발의 화살이 공중에 고정될 때까지 자리를 옮기며 화살을 계속 쏘아내었다.
그리고 마침내 6발째 화살을 쏘아낸 지수는 숨을 고르며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낑낑대며 화살을 붙잡고 있는 정령들을 향해 외쳤다.
“샷!(Shoot!)”
-타타타타타탁!-
그 순간, 마치 6명의 궁수가 동시에 발사한 것처럼, 화살 6발이 동시에 허수아비의 몸통에 꽂혔고, 지수는 만족한 표정으로 허공에 손바닥을 내밀었다.
“잘했어.”
“꺄하하! 칭찬 받았다!”
어느새 그녀의 곁으로 날아온 정령이 그녀의 손바닥에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을 끝으로, 영상이 종료되었다.
그 모습을 훈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지수는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상혁에게 말했다.
“동시에 다른 속성의 정령 여러 개를 다룰 수 있다면, 저 6발의 화살이 전부 불화살이 될수도, 아니면 바람 정령의 도움을 받아 공중에서 방향을 꺾으며 적을 추적하는 화살이 될 수도 있겠죠.
그리고 그건 제가 정령과 어떤 식으로 훈련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테고요.”
“하지만 저건 밸런스가 더 무너질듯한 느낌의 영상인데?
저런 게 가능하다면, 누가 순수하게 궁술 자체만 배우겠어?
나만 해도 영상을 보자마자 정령 술을 익히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는데?”
“그건 맞아요. 그리고 YAS안의 유저 전부가 정령술을 익혀서 싸우는 건, 게임이 추구하는 다양성과는 맞지 않겠죠.
그래서 몇 가지 패널티를 추가할까 해요.”
“자원의 분산으로 인한 패널티는 먹히지 않는다는 건 전에 테스트해봐서 알잖아?
길드원들이 맘먹고 좋은 음식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캐릭터와 정령 둘 다 극한까지 육성하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맞아요. 근데 그때는 배고픔 스탯이 정령 따로, 유저 따로 있었잖아요?
그래서 실제로는 육성 가능한 스탯이 2배가 된 거나 다름없었고요.
다루는 정령의 수가 늘어나면, 그게 배로 증가하는 방식이었죠.”
YAS의 캐릭터 육성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사’에 의한 성장 보정이었다.
훈련을 하던 전투를 하던 생산을 하던, 게임 내의 모든 활동에 붙는 성장 보정에 음식이 주는 버프가 관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렇다고 유저가 무한정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번 음식을 먹으면, 음식의 양에 따라 배부름 패널티가 적용되어 추가로 먹는 음식이 버프가 적용되지 않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YAS안에서 빠른 육성을 위해서는, 한끼의 식사를 하더라도 자신이 키우려는 능력치에 맞는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렇기에 상위 랭커들은 좋은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냥과 퀘스트를 하며 재료와 돈을 벌어야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부름 패널티의 존재 때문에 유저에게는 어느정도의 돈이 쌓이게 되어 있었는데, 정령술은 정령에게 음식을 제공함으로 인해 스탯 두 개 이상을 한번에 키우는 사기성을 갖춘 기술이었다.
그리고 지금, 지수는 그 부분을 수정하려 하고 있었다.
“유저에게 선택권을 주는 거예요.
정령에게 먹이를 주어 정령의 육성에 집중할지, 아니면 자신이 음식을 먹어 자신의 캐릭터를 성장시킬지.
결국 정령이 밥을 먹어도 자신에게 배부름 패널티가 적용되니까, 둘 중의 하나만 할 수 있겠죠.
다만, 자신의 캐릭터 육성에 대한 버프가 완전히 사라지면 의욕이 떨어질 테니, 그 비율은 8:2정도로 잡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령에게 음식을 먹이면 성장 버프의 80%를 정령이 가져가고 나에게 20%가 온다?
내가 음식을 먹으면 그 반대가 되고?”
“그렇죠. 비율은 실제로 업데이트를 하고 나서 천천히 조정하면 되는거고요.”
“흠···.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런데 그러면 다른 플레이어에 비해서 성장 속도가 너무 느리지 않을까?”
“느리지만 강력한 클래스가 되겠죠.
정령술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만을 다루는 유저라도, 옆에서 볼 때는 이런 느낌을 받게 만드는 거예요.
‘와, 정령 키우기 엄청 힘들던데 저걸 저기까지 키웠네?’ 라고요.
그러니까 누구나 다 도전하는 직업에서, 강력하지만 육성이 어려워 기피하는 직업으로 컨셉이 바뀌는 거죠.”
“그 패널티로 인해 유저가 얻을 수 있는 건?”
“자신이 남들이 도전하지 않는 멋진 직업을 키우고 있다는 긍지겠죠.”
그렇게 말하며, 지수는 상혁을 향해 윙크했다.
“YAS라는 게임 자체가 추구하는 게 바로 그런 거잖아요?”
그것은 상혁의 마음과 함께, 시청자들의 마음도 흔드는 발언이었다.
-그렇지. 키우기 힘들어도 간지나는 직업이 멋지긴 하지.-
-게다가 아까 보여준 것처럼 멋진 전투가 가능하다면 진짜 바랄게 없고.-
-ㅋㅋㅋ어려운 직업 저는 좋스빈다.-
-YAS 오픈하면 내 직업은 정령술사로 결정임.-
-저놈 전에는 구스타프 방송에서 검사 키운다고 도배하던 놈임-
-난 검술에 정령술 도입해보고 싶은데?-
-목수도 정령과 함께 할 수 있나?-
-석공은 돌 옮기는 거 정령한테 시킬 수 있지 않을까?-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청자들의 채팅을 보며, 지수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상혁의 의견을 기다렸다.
“전 일단은 괜찮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우선 비율에 대해서는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적어도 대가 없이 사기성 짙은 클래스가 될 것 같지는 않네요.”
“저도 괜찮아 보입니다.”
“키우기 힘들지만 잘 키우면 강한 클래스라.
그건 로망이죠. 전 찬성입니다.”
카운슬 멤버들이 하나둘씩 동의하는 가운데, 지수는 아까부터 조용히 상황을 관전하던 관리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누가 뭐래도 현재 YAS의 세계를 관리하는 존재들은, 민준이 창조해낸 AI인 관리자들이었기 때문에.
“관리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요청하신 방식으로 업데이트가 수행되었을 때 평균적인 유저의 성장 속도로 어느정도 효율이 나오는지 계산 중입니다.
방금 계산이 완료되었습니다.
8:2로 하면 같은 기간 육성한 다른 계열 전투 클래스와 대전시 83.6% 비율로 패배하는군요.
7:3 정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7:3일때의 승부 비율은요?”
[72.4% 비율로 승리합니다.
그 정도 승률이면 YAS안의 수많은 클래스 중에서도 상위 비율이니 힘들게 키웠는데 약한 캐릭터라는 비난은 받지 않을 것 같습니다.]
“10% 차이인데 엄청나게 바뀌네요.”
[단순히 수치적으로만 수행한 계산입니다.
실제로는 8:2, 아니면 9:1이 맞을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일단은 7:3으로 해보는 걸로 할게요.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떤가요?”
그러자 검은색으로 빛나는 구슬이 일렁이며 메시지를 전했다.
[정령은 몬스터 타입으로 구분됩니까? 아니면 이전처럼 NPC 타입으로 구분됩니까?]
“그 부분은 아예 기초부터 다시 설계해서 들어갈 거에요.
일단 이전에 구현해둔 정령 AI는 그대로 두고, 별도로 정령계라는 차원을 만들어서 정령과의 계약 과정부터 친밀도를 올리는 방법까지 전부 새로 설계해서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럼 혼돈계에는 별 차이가 없겠네요. 전 판단을 보류하겠습니다.]
“백신전의 판단은요?”
[말씀하신 정령계의 구체적인 윤곽이 나오기 전까지는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저희도 판단을 보류하겠습니다.]
그러자 상혁이 말했다.
“좋습니다. 일단 평의회 멤버들은 만장일치로 찬성이고, 관리자들의 의견은 보류인 것 같으니 일단 구체적인 시험 모델을 만들어서 YAS에 병합할지를 판단하도록 하죠.”
“동의합니다.”
“찬성입니다.”
“그렇게 하시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것을 본 지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의 평의회는 이것으로 종료하겠습니다.
혹시 추가로 논의할 사항이 있으신 분?”
“없습니다.”
“없어요.”
“빨리 다시 YAS하러 가게 보내주세요.”
지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회의실에 모인 멤버들은 각자의 서포터를 불러 자신이 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회의실에 있던 빛의 구슬들도 지수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상혁은 자신도 함께 퇴장하려다, 자신이 옷깃을 붙잡는 지수의 움직임을 느끼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
“오빠는 잠깐 나 좀 봐요.”
“방송 중 아니야?”
“방송 때문에 그러는 거니까.”
상혁은 지수의 말대로 다른 멤버들이 모두 퇴장하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단 두 사람만 남은 회의실에서, 지수가 상혁을 보며 물었다.
“시청자분들이 상혁오빠한테 묻고싶은게 많은 것 같아서 잠깐 시간좀 내달라고 하려고요.”
“지금 700명이 넘는 PTW 직원들이 전부 게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스트리밍을 진행하고 있잖아.
질문받을 사람이 700명이 넘는데 왜 굳이 나를···.”
“오빠는 오빠가 나가면 시청자가 전부 자기 방에 붙을 거 같다면서 스트리밍 이벤트에 참여 안 하셨잖아요.
그리고 실제로 PTW에서 가장 비공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인물이 상혁 오빠이기도 하고요.”
“그건 오해다. PTW에서 가장 베일에 휩싸인 인물은 민준이지.
내가 아는 건 걔가 아는 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
그러자 지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민준 오빠가 아는 정보는 아마 한국어로 말해도 아무도 못 알아들을 외계어 모음이니까 그건 넘어가도 되고, 실제로 게임에 대한 부분을 가장 잘 파악하고 계신분은 상혁오빠잖아요?
지금도 제 채팅창엔 엄청나게 많은 질문이, 그것도 도네이션으로 올라오고 있다고요.
그중에 일부에 대한 대답이라도 얻어내지 못하면, 전 이거 환급해줘야 할지도 몰라요.”
애처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수를 보며, 상혁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으며 그녀가 아닌, 그녀의 시야를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질문하세요. 이번 기회에 한정해서, 웬만한 건 다 대답해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지수는 귀가 따가워질 정도의 도네 울림이 자신이 고막을 때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대체 게임회사가 돈이 어디서 나서 이런 미친 짓을 하는 건가요?]
[판교에서 일하는 개발자인데, 제발 PTW에 입사하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젭라 급합니다.]
[결혼은 왜 안 하시죠? 고자신가요?]
[버츄얼 스튜디오도 혹시 오픈 예정입니까?]
[YAS는 왜 오픈 안 하나요? 설명은 이미 들었지만 이상혁 씨의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지수는 한숨을 쉬며 그렇게 한번에 질문하면 전부 대답할 수 없다고 말하고, 손바닥을 접어 도네이션 채팅의 목록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는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하나하나 상혁에게 읽어주었다.
그러자 상혁은 그 질문들을 하나하나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며,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우선 자금에 대해서라면, 이건 저희가 게임회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드릴 수 있겠네요.
저희가 고등학생때 PTW라는 동인팀을 처음 만들고 나서 출시한 최초의 유료 게임은 ‘마리의 눈물’이라는 시뮬레이션 게임이었습니다.
그건 해상도가 720P밖에 안되는 저 사양용 게임이었죠.
그 게임을 만들 당시는 지금 방송을 진행 중인 서지수 양도 없이 겨우 5명의 인원이 있었을 뿐이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판매고가 올라 천 만장 이상 판매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전부 저희 회사의 순이익으로 남았죠.
이후에 발매한 나이츠 어셈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출시 당시엔 100만 정도의 판매고를 기록했던 게임이지만, 이후에 늘어난 PTW의 팬들이 지속적으로 구작을 구매하면서 구작 판매 수익이 전부 순이익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 게임들은 개발 인력이 극도로 적은 상황에서 개발된 게임들이고, 그렇기에 구작 판매로 나오는 수익은 전부 저희 PTW의 순이익으로 들어오게 되었죠.
다들 아시다시피, PTW의 게임들은 그것이 마리의 눈물이든 나이츠 어셈블이든 현재 발매되는 게임에 뒤지지 않는 UI와 게임플레이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미래에서 온 게임처럼 말이죠.
그래서 고전임에도 꾸준히 팔리는 명작이 될 수 있었기에, 저희는 구작 수익으로만 다른 게임의 발매 수익을 가볍게 뛰어넘는 매출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은 여러분들이 보신 PTW의 직원 복지나 이 버츄얼 스튜디오의 개발비에 쓰였고요.
게임은 생산 이후에 들어가는 비용이 극도로 적은 생산품입니다.
굳이 구작 판매를 유지하기 위해 자동차처럼 구형 생산 라인을 돌리려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할 필요도 없고요.
그리고 그건, 패키지 게임이 가지는 강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수익보다 더 큰 수익을 저희에게 안겨주는 것은 역시나 미 국방부와의 군용 PRD 납품 같은 기술 제휴 거래입니다.
최대한 싸게 공급하기 위해 마진을 아예 포기한 게이머용 PRD와는 다르게, 미군에 공급되는 PRD는 군용 사양이라는 이유로 가격이 10배는 더 비싸게 공급되니까요.
하지만 그게 불합리한 거래는 아닙니다.
그 10배란 가격엔, 다른 나라의 군대에서 PRD를 사용한 훈련을 하지 못하게 하는 독점적 사용권리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그건 테슬러에 공급되는 산업용 딥 다이버나, 혹은 다른 업체들에서 사용 중인 산업용 딥 다이버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점이 걸려있으면 그걸로 돈을 받아내고, 안 걸려 있어도 산업용이라는 이유로 돈을 더 받아내죠.
매년 거기서 나오는 라이선스 비만해도 천문학적인 숫자입니다.
게다가 STC를 통해 칩셋 최적화 설계 외주를 받아 버는 돈도 상당하고요.
그러나 저희는 버는 돈에 비해 법인세를 가장 적게 내는 회사로도 유명하죠.
저희는 회사 안에 돈을 쌓아놓지 않으니까요.
전부 투자합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계시는 말도 안 되는 가상 사무실 구축 같은 미친 짓이 가능한 거죠.
이걸 돌리는 데 전기세가 얼마나 드는지 들으신다면, 아마 여러분의 입이 떡하고 벌어지실 겁니다.”
상혁은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도 해 주었다.
입사는 어떻게 지원하는지, 회사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지.
어떤 인재상을 바라고 있는지도.
그러나 그렇게 거침없이 대답을 이어가던 상혁의 답변은, 한 유저가 보낸 도네이션 질문 앞에서 순간적으로 멈춰 서게 되었다.
그 질문 안에, 상혁이 대답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아까 들으니 ‘잠금’ 이후에 관리자들이 평의회의 주인이 될 거라고 하던데, ‘잠금’이 뭔가요?]
지나치듯 언급되었던 단어에 관해 물어보는 질문을 보며, 상혁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시청자에게 대답했다.
“그건 이번 스트리밍 이벤트에서 유일하게 보안이 걸려있는 사항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직 저희도 진행할지 말지 확정이 된 사항이 아니라서요.”
원래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면 더 궁금해지는 법이기에, 지수의 도네이션 창은 무수한 질문 메시지로 다시 도배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더 궁금한데 힌트라도!]
[조금만! 조금이면 되니까 힌트좀!]
[그러니까 더 궁금한데요!?]
[다 보여준다며! 다 보여준다며!]
당황하는 지수를 본 상혁은 한숨을 쉬며 허공을 향해 말했다.
“시스템? 지수와 나의 화면을 시야 공유해줘.”
[공유하겠습니다.]
그러자 지수가 보고 있는 무수한 도네이션 창들과 시끄러운 알람이 상혁의 눈 앞에 펼쳐졌다.
그러자 그것을 본 상혁이 한숨을 쉬며 지수에게 물었다.
“이거 전부 제일 비싼 10만원짜리 도네이션이네?”
“질문이 너무 많아서 제가 오빠한텐 10만 원짜리만 읽어주고 있었거든요.”
“너 이번 방송으로 기본 억대는 벌었겠다.”
그렇게 말하던 상혁의 눈에 화면 구석에 있는 미션창이 들어왔다.
거기엔 스트리머가 해당 미션을 수행하면 받을 수 있는, 일종의 단체 리퀘스트를 위한 금액이 적혀있었다.
[‘잠금’이 무엇인지에 관한 대답을 뜯어내기 : 35,925,000원]
‘아니 미쳤나?’
그러나 이런 데 돈을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혁과 다르게, 지수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보통 PTW에서 숨기는 정보는, 대부분 게이머들을 미치도록 기쁘게 만들만한 정보인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대놓고 모든 정보를 오픈하는데 굳이 숨기려 하는 하나의 비밀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요소라고 할 수 있었다.
“미션···. 취소 할까요?”
어차피 지수에게 3천5백만 원이라는 금액이 큰돈이 아니라는 것은 상혁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혁이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은, 순식간에 그 정도의 금액을 모을 정도로 간절한 ‘시청자들의 마음’이었다.
상혁은 한숨을 쉬고는 지수를 향해 말했다.
“미션은 취소해줘. 대신 답변은 해 줄 테니까.”
“어? 그럼 3천 8백만원은···.”
그사이 늘어난 금액을 지수가 언급하자,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시청자들 대신 내가 따로 줄게. 일단 마음만 받자고.”
고개를 끄덕인 지수가 미션을 취소하자, 상혁은 시야 공유를 취소시켰다.
그리고는 시청자의 눈을 대신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수를 향해 말했다.
“우선, ‘잠금’이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조금은 충격적일지도 모르는 내용을 발표해야할 것 같네요.
YAS는, PTW의 다른 게임과는 다르게 패키지 게임으로 발매되지 않을 겁니다.
뭣보다 장르가 MMORPG이기도 하고, 지속적인 관리와 업데이트가 필요한 게임이니까요.
아무리 PTW라도 무한대로 거기에 자금을 쏟아 부을 수는 없죠.
그런 이유로, YAS가 서비스 되는 시점에 YAS는 월 정액제로 서비스 될 예정입니다.”
그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내용이기에, 상혁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채팅창의 반응은 조용했다.
이 정도 퀄리티의 게임을 끝없이 유지보수하면서 패키지 게임 가격만 받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뭐, 그거야 당연한 거고.-
-부분 유료화보다는 낫지.-
-난 랜덤박스만 없으면 오히려 월정액이 좋아.-
-찬성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상혁의 말은, 그런 PTW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월 정액제의 예상 가격은 월 4만 3천 원입니다.”
기존 게임보다 두 배 이상 비싼 월 정액제 요금.
그것은 지금까지 돈과는 거리가 먼 행보만을 취했던 PTW에서 정한 가격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충격적인 가격이었다.
378. 표준(Standard)
월 4만 3천 원의 정액제 가격.
그것은 PTW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퀄리티를 높게 평가하는 유저들에게는 지나치게 낮게 보이는 가격이었고, 타 게임의 월 정액제 가격에 익숙한 유저에게는 지나치게 높게 보이는 가격이었다.
당연히 상혁이 말을 꺼내는 순간 채팅창엔 거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메시지의 향연이 펼쳐졌고, 지수는 도저히 그것들을 대충이라도 읽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에이스펙스. 채팅에 딜레이를 적용해.”
[적용했습니다.]
“이제 좀 읽을만하네. 다들 알고 있겠지만 현재 기준 제 방송의 동시 시청자 수가 17만이 넘어요.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고요.
게다가 동시 번역 기능으로 접속해서 모국어로 말하고 있는 해외 유저들도 엄청나게 많죠.
그러니 지금부터는 유저 1명 당 10분마다 단 한번의 채팅만 올릴 수 있도록 허용하겠습니다.
도네이션도 연속 도네이션은 못하게 막을 거고요.”
지수가 말을 끝내자 그녀의 서포터가 채팅창의 기능을 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만의 시청자가 쏟아내는 채팅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기에, 그녀는 손목을 미친 듯이 혹사하며 유저의 의견 중 상혁에게 전달할 만한 도네이션 메시지를 선별하여 읽어 주었다.
“한국인 유저 astts4422님의 메시지에요.
‘지금까지 공개된 YAS의 퀄리티에 비해, 월 4만 3천원의 가격은 그 돈만 가지고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할지 걱정될 정도로 낮은 가격이라 생각합니다.
이유를 설명해주십시오.’
라고 하시네요.
또 다른 한국인 유저분 arm1144님은 ‘PTW의 팬으로써, 저희는 PTW가 지금보다 더 많은 이익을 거두어 더 좋은 게임으로 게이머에게 보답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가격을 올릴 생각은 없습니까?’라고 묻고 있고요.”
메시지를 읽으면서, 그녀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유저들이 PTW에게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것을 보며 내심 놀라고 있었다.
자신들이 이용할 서비스를 싸게 제공한다는 것에 반발하는 유저들의 모습은,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게임에 대한 유저들의 취향이 제각각이듯, 상혁이 제시한 가격에 불만을 가지는 유저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유저들의 대부분은, 한국이 아닌 해외의 유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프랑스 유저인 #parfumderose님의 의견도 있어요.
‘4만 3천 원이라는 가격이 게임의 퀄리티에 비해 비싼 가격은 결코 아니지만, 저는 PTW의 팬으로써 걱정하고 있습니다.
PTW가 지금껏 지켜온 원칙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번 가격 인상을 시발점으로 월 정액제에서 부분 유료화로, 결국 랜덤박스로 회사의 지향점이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요?
이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부탁드립니다.’
라고요.”
그녀는 다른 메시지도 읽어주었고, 시청자들은 자발적으로 채팅을 최대한 자제하며 그녀가 상혁에게 유저들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모든 의견을 다 들은 상혁은, 그녀가 읽어준 의견을 두 부류로 정리했다.
“쉽게 말해서, 현재 부분 유료화 모델에 익숙한 한국이나 일본 유저분들은 이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고 느끼고 계시고, 해외의 콘솔 유저분들은 이번 가격 인상이 회사가 게이머 중심 회사에서 이윤 추구를 중심으로 하는 회사로 변화하는 시작점이 아닐까 걱정하신다는 거지?”
“그런 것 같아요.”
“그럼 다음 이야기를 들으면 이 가격이 싸다고 하시는 분들은 기절하시겠네.”
상혁이 말했다.
“사실 저희가 4만 3천 원이란 정액 가격에서 서버운영비 빛 개발비 회수 명목으로 받아가는 금액은 1만 3천 원입니다.
나머지 3만 원은, 유저분들께 도로 돌려드리는 금액이죠.”
채팅창을 가득 메운 무수한 갈고리의 세례를 보며 당황하는 지수를 본 상혁이 미소지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까 말씀드렸던 ‘잠금’이란 개념을 설명해 드리자면, 기본적으로 YAS라는 게임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YAS는 처음부터 탈 중앙화를 지향하는 시스템으로 개발되었고, 그래서 저희가 가장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부분은 인간인 운영진의 개입 없이 살아있는 세계를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관리자 AI’의 존재입니다.
YAS안의 세계에는 여러 권한으로 구분된 다양한 AI들이 있고, 세계속 모든 요소는 그 AI의 관리로 YAS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죠.
그 말은, 개발자인 저희 역시 게임 안에 특별한 권한을 가지고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세계의 성장과 AI의 관리 및 학습을 위해 개발자들이 적극적으로 세계에 개입하여 수정하고 있지만, 관리자 AI들의 패턴과 수준이 저희가 의도한 수준까지 성장하였다고 판단되면 저희는 월드를 잠그고 세계에 대한 개입 권한을 개발팀에서 삭제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게임의 오픈 전에 이루어질 것이고요.
그게 바로 조금 전 언급된 ‘잠금’의 정체입니다.”
“잠금의 정체가 그것이라면, 그게 굳이 숨길만 한 것이었는지에 관해 묻고 있는데요?”
딱히 멋져 보이는 요소가 없어 보이는 잠금이란 시스템을 굳이 숨긴 이유에 관해 묻는 시청자들을 위해, 상혁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제가 게임의 나머지 부분들을 전부 오픈하면서도 굳이 그 부분을 비공개로 남겨둔 이유는, 그게 이 게임의 가장 멋진 부분이어서가 아니라, 개발이 50% 이상 진척되었다고 판단되는 이 시점에서도 저희가 시스템을 잠그게 될 수 있을지를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잠금’ 자체는 게임 내의 아이템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수행하는 운영 전략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게임 내의 세계가 붕괴할 위험이 생긴다면 차라리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지금 시점에서 저희가 게임을 잠긴 상태로 출시할지, 아니면 운영진이 현재 상태로 세계에 대한 접근 권한을 그대로 가진 채 출시할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확신할 수 없으니 약속도 할 수 없고, 약속할 수 없는 사항이니 공개도 할 수 없죠.
‘잠금’이 비공개 정보였던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상혁오빠! 아까 ‘되돌려 준다’라고 한 부분에 관해 설명해달라고 합니다!”
지수가 손을 들며 질문하자 상혁이 말했다.
“일단 한번 시스템을 잠그게 되면, 회사 측에서는 게임 내의 모든 아이템 생성 권한을 상실합니다.
그건 운영자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저희가 가지는 게임 내의 권한은, 게이머 여러분이 가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가 되는 거죠.
물론 운영자로서 저희는 여전히 관리자들이 진행하는 카운슬 미팅에 참여요청을 할 수 있고, AI의 패턴을 수정하거나 새 아이템과 오브젝트를 세계에 업데이트할 수 있습니다.
단지 새로 업데이트 된 그 오브젝트와 자원들을, 테스트 서버가 아닌 본 서버에서 운영자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을 뿐이죠.
말하자면 아이템의 존재 자체는 업데이트 할 수 있지만, 저희 운영측은 그 아이템을 임의로 지급받거나 소환할 수 없습니다.
저희에게 그 아이템이 필요하면, 업데이트 이후에 그것을 습득하거나 만든 유저에게 게임 머니를 주고 사거나, 아니면 저희 직원들이 직접 재료를 구해서 만들어야 하죠.
쉽게 말해서, 잠금 이후의 PTW의 역할은, 게임 내에 존재하는 일종의 정부의 역할을 수행하는 겁니다.
저희는 게임 내의 정보를 최대한 파악하고 유저들이 원활한 게임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 노력하겠지만, 그것은 유저와 같은 권한을 가진 계정으로 수행하는 행동이 될 겁니다.
단지 관리를 위해 시작 시점에서 어느 정도 크기의 넓이를 가진 영지와 수많은 NPC주민들을 데리고 있을 뿐이죠.
심지어 그것도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만약 저희가 운영하는 영지를 빼앗으려고 전쟁을 시도하는 유저가 있으면, 저희도 유저와 똑같이 수성전을 통해 그것을 막아내야 하죠.
만약 유저들이 많이 통행하는 주요 무역로에, 일반 유저들이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마치 버그처럼 보이는 강력한 몬스터가 자리를 잡았다면, 저희는 운영자를 보내 그 몬스터를 잡는 게 아니라 게임 내에서 그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강함을 가진 게이머에게 퀘스트를 발주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비용은, 운영팀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게임 머니로 지급되겠죠.
그건 게임 내의 유저나 NPC들의 생산 활동을 통해 얻은 세금으로 충당되지만, 문제는 시스템이 끊임없이 자원을 생성한다는 겁니다.
어찌 되었건 탄광에 가면 금이나 철을 캘 수 있어야 하고, 채석장에 가면 돌을 캘 수 있어야 하니까요.
현실에서는 그렇게 자원을 캐고 나면 그 장소가 버려지지만, 게임에서는 그런 사이클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수백만의 유저들이 한번에 쓸고 지나간 자리를 계속 버리면서 게임을 유지시킬 순 없으니까요.
물론 맵의 크기를 지구만 하게 만들면 가능은 하겠지만, 그건 각 지역간의 이동거리를 지루할 정도로 길게 만들고, 당장 사용하지도 못할 잉여지역을 엄청나게 놀리게 되며, 유저가 밟지도 못할 지역을 위해 서버의 용량을 어마어마하게 사용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게임에 적합한 비율과 크기로 게임 속 세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죠.
결국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영지 자원에 대한 리스폰이 이루어지고, 그렇게 발생한 추가 자원은 필연적으로 화폐 가치의 하락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저희는, 차원은행이라는 시설을 통해 게이머들에게 자신의 게임 머니를 게이머가 원하는 국가의 화폐로 환전할 기회를 제공할 겁니다.”
이벤트가 진행되던 시점인 2018년은 게임 업계에서 아직 P2E개념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기 전이었기에, 유저들은 게임 머니를 회사에서 현금으로 환전하겠다는 상혁의 발언에 뜨겁게 불타올랐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시청자들에게, 자신이 말한 ‘환전’의 개념이 게임 속 다른 나라의 화폐로의 환전이 아님을 확실히 못 박아 주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각국의 화폐란, 게임 내에 존재하는 다른 왕국의 화폐가 아니라, 진짜 현실에 있는 시청자 여러분이 원하는 화폐를 말하는 겁니다.
적어도 YAS라는 게임에 한해서는, 말 그대로 게임만 플레이해도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게 저희의 목표니까요.
전문 용어로는 P2E, Play to Earn이라고 하고, 한국 유저들에겐 보통 ‘쌀 먹’으로 통하는 바로 그 개념을 구현하려는 거죠.”
상혁은 굳이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았어도, 채팅창에서 뜨거운 불판이 벌어지고 있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조용히 지수가 자신에게 유저의 의견을 정리해서 전달하기를 기다렸고, 지수는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의 도네이션 메시지를 필사적으로 검토하며 상혁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선정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무리 10만 원짜리 도네이션이라도 17만 명, 아니, 방금 19만이 되었네요.
19만 명이 전 세계에서 동시에 보내는 도네이션을 제가 다 읽을 순 없어요!
아마 99.99%는 무시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진짜 꼭 해야 할 말만 질문하세요!
그럼 읽겠습니다.
지금부터는 시간 절약을 위해 아이디 대신 도네이션을 보낸 시청자 분의 국가만 언급하도록 할게요.
캐나다 유저의 질문입니다.
‘PTW와 P2E라는 개념이 잘 연결되지 않기는 하지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게임 내 재화를 계속 현금으로 바꿔준다면, 게임 속 세계에서 사용되는 화폐가 부족해지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라고 질문하셨어요.”
그러자 상혁이 고개를 저으며 유저의 의견에 답변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게임이 오픈되는 시점에서, YAS를 관리 할 저희 PTW 운영진은 상당한 수준의 게임 내 인프라를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완성된 거리와 영지, 영지의 NPC에게 세금을 걷을 권한, 그리고 유저들의 활동에 세금을 부여할 권한이 될 겁니다.
그러니 운영팀 자체에서 회수하는 게임 머니의 양도 상당한 숫자가 되겠죠.
하지만 운영팀에서 회수하는 화폐의 대부분은 다시 퀘스트 발주나 영지의 확장, 성의 건설을 위한 비용으로 유저들에게 다시 돌아갑니다.
게다가 거기서 모자란 금액이 있다면, 그 모자란 금액을 운영진은 유저들에게 현금을 주고 구매할 겁니다.
그리고 그건 PTW가 운영하는 영지가 아닌, 유저가 직접 운영하는 영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게임 속 화폐의 가치가 기준 환율보다 낮으면 유저들은 차원 은행에서 현금과 게임 머니를 교환하고, 반대로 화폐 가치가 현금 가치보다 높다면 현금을 주고 다른 유저에게 게임 머니를 구매할 겁니다.
만약 그런 화폐 회수 알고리즘의 범위를 넘어서 화폐 가치가 지나치게 올라간다면, 그때는 시스템이 자원의 생산량을 조정하게 됩니다.
좀 더 많은 자원을 리스폰 시켜서 물가를 안정화하죠.
그건 화폐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금이나 은, 구리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YAS의 세계는, 변하지 않는 화폐 가치를 가지고 운영되게 되는 겁니다.
차원 은행은, 그렇게 운영팀에서 뜯어낸 현실의 돈을 가지고 유저들에게 게임 머니를 끝없이 소각할 거고요.
그렇게 저희는 게임 내에서 수십 수백만의 유저가 발생시키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화폐 가치를 유지하게 되겠죠.”
상혁은 거기에 단서를 붙였다.
“물론 그건 현재 저희가 개발하고 있는 AI들이 그런 체제에서 세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도입이 가능한 체계입니다.
그래서 현재 PTW에서는 천하대 교수님들이 보유한 학계의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노벨상 수상자 출신 경제학 교수님들과 각계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YAS안의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것 같은 개념을, 현실에서 구축하기 위해서요.
이 정도면 4만 3천 원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사용자분들께는 충분한 대답이 될 것 같군요.”
그러자 지수는 이번엔 가격이 너무 싸다고 주장하는 시청자들의 의견을 전했다.
“그러면 상혁오빠. 그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고 생각하는 유저분들께는 뭐라고 답변하시겠어요?
게임이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기꺼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요.
게다가 방금 오빠의 설명을 들은 시청자분들께서는 안 그래도 싼 가격인데 그나마도 대부분 유저에게 돌려줄 용도라면 가격을 더 올려도 되는 게 아니냐고 묻고 있어요.”
그러자 상혁은 이번엔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시청자들을 위해 설명을 시작했다.
“더 높은 가격을 받아도 게임을 할 유저들이 충분히 많은데도 굳이 게임을 싸게 출시하는 이유라···.”
시청자들은 대답을 망설이는 상혁을 보며 조용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연 상혁은, 지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저희 PTW가, 이 세계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상혁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사람들이 기꺼이 수십만 원을 지불 할 용의가 있다고 하는 것과, 실제로 수십만 원의 요금을 지불하는 것에는 꽤나 큰 격차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PTW는 YAS 이후에도 지속해서 다른 PRD 전용 게임들을 출시할 예정이죠.
그런 상황에서, 수십만 원도 아깝지 않다고 하시는 유저분들이 마음에 드는 저희 회사의 신작을 발견했다고 가정합시다.
그분은 이미 1년 정도 PRD를 하면서 수백 만원을 지출하신 분이고, 계정비 외에도 다른 유저와의 현금 거래를 통해 추가로 수천만원을 더 사용한 헤비 유저라고 해보죠.
그 상황에서 새로운 게임이 등장했을 때, 그 유저는 자신이 게임에 사용한 매몰 비용을 계산하게 됩니다.
‘수천만 원이나 써서 키워온 계정인데, 다른 게임 해보려고 잠시 이 계정의 결제를 끊어도 될까?’
여기서 저희가 제공하는 가격이 4만 3천 원이라는, 비교적 싼 가격이라고 가정하면 그 유저분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일단 계정 결제는 유지하고 다른 게임 좀 잠깐 해봐야지.’
그건 부담 없는 가벼운 결정이죠.
반대로 다른 게임에 시간을 다 써서 이번 달에 YAS에 쓸 시간이 10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면, 수십만 원이라는 계정 비용은 꽤 부담되는 금액이 됩니다.
저희가 우려하는 것은,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해당 유저들이 본전을 뽑기 위해 억지로 YAS라는 게임에 시간을 투자하는 겁니다.
게임은 즐거워야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사람이 한 종류의 음식만 먹으면 물리게 마련입니다.
오늘은 YAS 안에서 검을 휘두르는 게 즐거울지 몰라도, 내일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분위기의 세계에서 좀비와 맞서 싸우고 싶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저희는 게이머들이 자유롭게, 부담 없이 원하는 게임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길 원하지, 오직 YAS라는 게임 하나만 목숨을 걸고 플레이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만들 게임들은, 어쩌면 YAS보다 더 대단한 재미를 주는 게임들일 수도 있으니까요.”
상혁이 그리는 미래는, 수많은 컨셉을 가진 매력적인 게임들이 서로 각축전을 벌이는 미래였다.
물론 단 1개의 게임만 서비스할 목적이라면, 그 게임에 수십만 원을 지불하게 하며 게이머가 본전을 뽑기 위해 게임에 집착하게 만드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었다.
이미 수많은 비용을 들여 잘 키워놓은 캐릭터를 버리고, 다른 게임으로 이동하는 것은 꽤나 리스크를 요구하는 행동이니까.
그러나 상혁이 바라는 것은, 모든 PRD 유저가 YAS 하나만을 붙잡고 플레이하는 미래가 아닌, 유저들이 자유롭게 오늘은 이 게임을 하고 내일은 저 게임을 하며 PRD가 제공하는 즐거운 가상현실의 바다를 누비는 것이었다.
수많은 유저들이 한 달에 대여섯 개의 MMORPG 정액제를 유지하면서, 주로 플레이하는 게임 외에도 새로 나온 게임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게다가 YAS는 공식적으로 전 세계에 공개된 첫 번째 풀다이브 MMORPG였고, 아마도 이후의 게임들도 YAS의 가격 체계를 따라갈 것이기 때문에, 상혁은 가격 산정에 신중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게임이 저마다 수십만 원의 월 이용료를 요구하고, 유저가 그 안에서 이번 달에 어떤 게임을 결제해야 할지 고민하는 미래.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게임의 접속 권한을 유지하면서 마음껏 새 게임의 세계를 탐험하는 미래.
상혁이 원하는 것은 후자에 가까운 미래였기 때문에.
“게다가 조만간 PRD 전용 게임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리얼 엔진의 라이선스도 타 개발사에 오픈하게 될 텐데, 저희가 너무 높은 가격을 잡아버리면 그 회사들의 신작도, 물론 저희 게임 만큼의 퀄리티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가격은 저희보다 좀 낮추게 되겠지만, 결국 매우 비싼 가격에 시장에 공급되게 되겠죠.
그럼 이 바닥의 게임 가격 평균이 전부 올라가게 됩니다.
저희가 수십만 원의 계정비를 받는다면, 리얼 엔진으로 PRD용 MMORPG를 만드는 타사에선 이렇게 생각하게 되겠죠.
‘이건 PC 게임이 아니라 PRD 전용 풀 다이브 게임이니까 비싸게 받아도 돼.
어차피 이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3천만 원짜리 PRD를 구매한 부자들이니까.
그래도 YAS처럼 40만 원씩 받기엔 게임이 좀 허접하니 우린 월 30만 받자.’
적어도 저는 다른 게임사들이 그런 생각으로 이 시장에 접근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풀 다이브 VR MMORPG 시장에선, 저희가 정한 가격이 일종의 ‘기준’이 될 테니까요.
과거 한 모바일 카드 게임이 아무 쓸모도 없는 쓰레기 카드를 10장에 3만 원씩 받고 팔았던 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모바일 랜덤 박스 가격의 표준이 된 것처럼.
해당 시장에 공급되는 제품의 첫 가격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적어도 저희가 4만 3천원이라는 가격에 YAS를 공급한다면, 저희보다 못 만든 게임이 감히 그 가격보다 더 받겠다고 나서지는 못하겠죠.
그것이 저희가 결정한 ‘기준’가격이 월 4만 3천 원이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인 이유입니다.”
현재의 게임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넘어, 그 게임이 만들어갈 시장의 미래까지 고려하여 가격을 결정했다는 상혁의 답변은 가격이 지나치게 싸다고 주장하던 시청자들의 흥분을 상당 부분 누그러트릴 수 있었다.
상혁의 말처럼, 모든 게임이 수십만 원의 금액을 요구하는 세상보다, 부담 없는 가격에 마음껏 원하는 게임을 할 수 있는 미래가 훨씬 매력적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지수는 어느새 전쟁 분위기에서 옹호 분위기로 바뀌어버린 도네이션 메시지들을 보면서, 상혁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그것은 상혁의 설명을 시청자들이 어느정도 이해한 것 같다는 그녀의 제스쳐였다.
만족한 상혁은 다음 질문으로 주제를 옮겼고, 시청자들은 가격에 대해 논쟁하는 대신 빠르게 다음 이슈로 이동하여 상혁에게 궁금한 점에 대해 물어보았다.
“캐릭터 아바타의 도용 문제에 대한 질문인데, 혹시 아바타 디자인의 저작권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이냐고 물으시네요.”
“사실 미형으로 구분되는 캐릭터의 외형적 바리에이션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인기 있는 외형으로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유저들의 마음도 존중해야겠죠.
반면에 마음대로 외형을 꾸밀 수 있는 가상 세계이기에, 유명한 스트리머나 캐릭터의 외형과 닉네임을 선점하여 그 스트리머처럼 행동하는 것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PTW에서는, 독자적인 외형의 캐릭터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스트리머나 개인에게 고유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권한을 부여할 생각입니다.
개인이나 소속사를 통해 저희에게 요청을 주시면, 본인이 보유한 캐릭터의 3D 모델 데이터를 리얼 엔진용으로 컨버젼해 드리거나, 혹은 저희 쪽에서 리얼 엔진용 고 퀄리티 캐릭터로 대신 작업해드릴 예정입니다.
해당 작업을 수행할 모델러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외주 형태로 주문하실 수도 있게 할 생각이며, 물론 회사 업무 시간을 써서 외주 작업을 하는 만큼 회사에서도 일정 비용을 가져가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해당 작업을 담당한 모델러나 디자이너가 외주 비용의 대부분을 가져가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의 디자인은 PTW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비슷한 형태의 캐릭터 생성을 통제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캐릭터와 똑같은 캐릭터를 만들려 시도하면 이런 메시지를 보게 되겠죠.
‘해당 캐릭터의 디자인은 저작권 등록이 완료되어있어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라고요.
물론 이건 여러 사람이 접속하는 온라인 게임에 한정된 이야기고, 멀티플레이 기능이 없는 콘솔 패키지 게임의 커스터마이징은 본인 마음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스트리머나 유명인의 외형을 닮은 캐릭터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유저분들도 있겠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게임 속을 지나가다 주점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캐릭터를 발견한다면, 그건 아마도 그 스트리머 본인일 가능성이 클 겁니다.
어쩌면 그 스트리머와 파티를 맺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함께 퀘스트를 수행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정상적인 게임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쫓아다니는 극성팬에 대한 대책으로, 본인의 닉네임을 다른 이름으로 가리거나, 캐릭터의 외형을 숨길 다른 방법도 제공할 생각입니다.
같은 이유로 이미 유명한 스트리머의 네임을 도용해서 아바타를 생성한다면 그 닉네임을 가진 원저작권자의 요청에 따라 해당 닉네임은 강제로 변경될 것입니다.”
“시장가격의 표준이 될 사례이기 때문에 가격을 낮게 잡으셨다는 건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더 많은 돈을 써서 PTW를 응원하고 싶어하는 팬도 있습니다.
다른 회사라면 몰라도, PTW에 쓰는 돈은 반드시 더 멋진 게임으로 돌아올 테니까요.
혹시 이번 이벤트처럼 별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