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75화 (376/485)

375. 258전 258패

“허허. 지수 양. 컨셉에 몸을 지배당한 남자라뇨…….

저는 원래 이런 성격입니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치죠. 어차피 가상 현실에서 현실의 성격을 논하는 것도 멋없는 일일 테니까.

오늘 이렇게 당신을 찾아온 건, 당신에게 듀얼을 신청하기 위해서예요.”

“또 지러 오셨습니까?”

원래부터 호승심이 강한 성격의 그녀는 스트리밍이 시작되기 전부터 자신이 키우고 있는 ‘마법 궁수’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구스타프에게 끝없이 도전했던 경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상대 전적은···.

‘258전 258승 0패···.’

단 한 번도 자신을 이긴 적이 없던 지수가, 모든 유저들이 지켜보는 스트리밍 이벤트에서 당당하게 듀얼을 신청하는 모습을 본 구스타프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수백 번을 붙어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지 않습니까.

서지수 양. 안타깝게도 YAS에서는 궁술보다 검술이 더 유효한 기술입니다.

물론 소드 오러를 다루기 전까지의 상황이라면 활의 장력을 보조받는 궁술의 속도와 위력이 더 강하지만, 소드 오러를 각성한 검사에게 활은 그냥 조금 빠른 이쑤시개 같은 존재일 뿐이니까요.

게다가 원거리 저격도 제 감각 보정 덕분에 바로 피할 수 있죠.

이제 슬슬 인정하시는 게 어떨까요?

YAS세계 속에서의 활이, 검보다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그렇죠. 분명 그 말에도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구스타프 씨. 당신이 잊고 있는 사실을 하나 지적해야 할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하며, 지수는 들고 있는 활의 끝을 구스타프에게 겨눴다.

“여긴 현실이 아니라 YAS 안의 세계라는 걸요.”

지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구스타프의 시야에 그녀가 들고 있는 화살촉 근처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이 잡혔다.

그 순간 구스타프는 급하게 발을 굴러, 독특한 발걸음으로 뒤로 점프했다.

그것은 수십 미터 이상의 거리를 벌릴 때 사용하는, 장거리 백스텝을 펼치는 보법이었다.

“늦었어요!”

구스타프는 화살이 활 시위를 떠나기 전 이미 순식간에 20미터가량을 뒤로 점프했지만, 지수는 멀어지는 구스타프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는 그대로 들고 있는 활의 활시위를 놓았다.

그러자 구스타프는 시야가 살짝 붉게 변하는 것을 보고 바로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자신의 머리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는 화살을 지켜보았다.

지수가 자신과의 대결을 위한 비장의 무기가, 어떤 종류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러자 잠시 후, 그는 자신의 두 눈으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콰드드드드드드득!!!-

‘화살이···. 나무를 뚫어!?’

원래라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무에 박혔어야 할 화살이, 마치 전기톱을 나무에 가져다 댄 것처럼 미친 듯이 톱밥을 날리며 나무를 말 그대로 ‘갈아없애고’ 있었다.

그것도 화살의 직경보다 훨씬 큰 구멍을 남기면서.

관통이라기보다는 해체에 가까운 광경을 보며, 구스타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지수를 향해 말했다.

“평범한 화살이 아니군요?”

“주문을 담아 발사한 화살이에요.

말하자면 일종의 속성 화살 같은 느낌의 기술이죠.”

“끝없이 제 소드 오러에 필적하는 위력의 기술을 얻으려 노력한 결과가 이것이군요.

이 기술을 얻기 위해, 지수 양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반복 수련을 겪었을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구스타프가 말했다.

“단순히 화살의 위력이 올라갔다고 해서 절정에 달한 소드 마스터를 무찌를 수는 없는 법입니다.

화살은 언제나 직선으로 나가는 법이고, 제 원거리 공격 감지 스킬은 직선형 원거리 공격 대부분을 상쇄할 수 있으니까요.”

조금 전, 구스타프가 지수의 화살을 피할 때 그의 시야에 잡힌 붉은 빛.

그것은 일정 거리 내에서 자신이 피격당할 가능성이 있는 공격이 다가올 때, 현재 있는 위치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리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구스타프가 그 스킬을 습득하게 해주었던 도우미는, 지금 구스타프를 향해 활을 쏘고 있는 서지수 본인이었다.

매번 구스타프가 눈으로 화살을 보고 회피를 반복한 결과로, 시스템이 만들어서 제공한 스킬이 그가 가진 ‘투사체 감지 스킬’ 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스킬은 정교한 원거리 공격을 피할수록 숙련도가 올라가는 기능이었기에, 지수는 싸움을 반복하면 할수록 구스타프와의 승산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는 중이었다.

자신이 쏘아대는 공격 하나하나가, 상대가 가진 스킬의 숙련도를 올려주는 행동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리고 수백 번의 대련을 거친 지금의 구스타프는, 화살을 통한 공격으로는 거의 답이 없는 수준으로 성장한 상태였다.

지수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한 행동은 묵묵히 다음 화살을 시위에 먹이며 작게 읊조리는 것뿐이었다.

‘이번엔 다른 화살인가?’

공간을 일렁이게 만들던 조금 전의 화살과는 다르게, 구스타프는 붉은 기운이 화살촉을 휘감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쏘아진 화살은, 구스타프의 예상대로 맞은 자리에 불기둥을 피워 올리며 나무 한 그루를 순식간에 숯덩이로 만들었다.

“이번엔 화염 주문이 담긴 화살인가?

바리에이션이 다양하네요?”

맞으면 순식간에 사망할 정도의 화력을 눈으로 지켜보았으면서도, 구스타프의 목소리엔 전혀 긴장감이 실려있지 않았다.

어차피 저 정도 위력은 자신이 가진 소드 오러를 사용하면 충분히 구현할 수 있고, 게다가 속성 화살이 평소 지수가 쓰는 화살 공격보다 시전 속도가 월등하게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스타프는 지수의 공격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 역시 YAS안에서 무술 계열 스킬을 새로 창조하는 과정에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방법이 시스템의 승인을 받을지 받지 못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단순히 ‘될 것이다’라는 믿음만 가지고 같은 행동을 수천수만 번 반복하는 것.

그것만이 YAS안에서 스킬을 창조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좋은 스킬이네요. 지수 양의 속성 화살은, 아마 몬스터 사냥에 있어서만큼은 제 소드오러보다 상위 스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을 바꾸지 않으면 무조건 무속성 피해로 들어가는 제 소드 오러와는 다르게, 몬스터의 약점 속성도 쉽게 노릴 수 있을테니까요.

느린 시전 속도가 문제가 될 것 같기는 하지만, 그건 앞에서 탱킹을 해줄 동료의 존재가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겠죠.

그 스킬의 존재로 인해 YAS안에서의 궁술은, 공성전이나 협동 사냥에서만큼은 최고의 완소 스킬이 되겠네요.”

구스타프는 일부러 ‘에서만큼은’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발음했다.

지수의 새 기술은, 그만큼 한계가 명확한 스킬이었기 때문에.

구스타프는 등에 걸린 클레이모어를 뽑아들며 지수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화살 공격의 특성인 직선형 공격로라는 제한을 벗어던지지 않는 이상, 1:1 대인전에서는 의미가 없는 스킬입니다.

게다가 그 느린 시전 속도는!”

순간 구스타프는 거의 순간이동 수준의 빠른 속도로 지수를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는 그 육중한 검을 가냘픈 지수의 캐릭터를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먼저 가장 방해가 되는 그 활부터 못쓰게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손목 조지기!”

수천 수만 번을 반복한 동작이니만큼, 구스타프의 동작은 중검을 들고 휘두르는 기술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공격을 받는 지수 역시, 수백 번의 대련을 통해 얻은 자신만의 스킬이 있었다.

스킬 이형환위(移形換位).

굳이 시전자가 반응하지 않아도, 확정적으로 공격을 자동 회피하는 지수의 스킬이 발동되자, 그녀의 신체는 그녀가 있던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로 즉시 이동되었다.

조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신체의 자세와 밸런스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그것은 활 공격을 수없이 맞아가며 구스타프가 습득한 ‘투사체 감지’ 와 마찬가지로, 그의 검격을 수없이 피하면서 지수가 습득한 오리지널 스킬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공격을 회피한 지수의 모습을 보았으면서도, 구스타프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말했다.

자신과 지수의 대련은, 어느 순간부터 항상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결국 서지수 양의 마나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제 공격은 대부분 빗나갈 것이고, 서지수 양의 화살이 떨어지면 대련은 제 승리로 끝나겠지요.

슬슬 이쯤에서 대련을 접는게 어떻겠습니까?

수만 명이 넘는 시청자 앞에서 망신을 당하기 전에 말이죠.”

그러자 지수가 화난 듯 화살을 뽑으며 구스타프에게 말했다.

“그래요. 바로 그게 불만이에요!”

“예?”

“절 보세요! 어떻죠?”

“서지수 양이 서지수 양이죠.”

“아니, 저 말고 제 아바타를 보시라고요!

제 아바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그녀의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구스타프가 말했다.

“꽤 잘 만들어진 아바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지수의 아바타가 가진 외형적 매력은 다른 직원들이 사용하는 아바타에 비해 월등하게 뛰어난 편이었다.

그 아바타를 생성하는데 들어간 노력과 시간이 이해가 갈 정도로.

그리고 YAS에서는, 같은 외형으로 만들어진 아바타라도 캐릭터의 육성에 따라 외모가 달라지는 시스템이 있었기에, 현재의 지수가 사용하는 아바타의 수준으로 외모를 가꾸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아는 구스타프는 순순히 그 사실을 지수에게 말해주었다.

“피부 표현도 그렇고 외형도 그렇고, 베이스도 예쁜 캐릭터에 옅은 화장까지 하셨네요.

지금 이곳이 게임 속이라는 것을 가정해도, 꽤 잘 육성한 아바타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을 들은 지수는 가슴을 펴며 자랑스럽게 외쳤다.

“맞아요! 제가 이 아바타를 만드는데 시간을 얼마나 썼는지 아세요?”

“외형 꾸밀 시간에 궁술에 더 매진했으면 승산이 더 높지 않았을까요?”

“이이익!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제 목표는 YAS안에서 궁술의 정점을 찍는 것이기도 하지만! YAS 최고의 미녀 캐릭터가 되는 것이기도 하니까!

이건 제 꿈이 반영된 결과라고요!”

“그렇다면 그 꿈은 둘 다 이루어졌네요.

적어도 PTW직원 사이에서는 가장 강한 궁수이기도 하고, YAS안에서는 지금 지수 양의 아바타보다 이쁜 아바타는 없을테니까요.”

“앗. 칭찬 감사합니다.”

그녀는 구스타프의 직설적인 칭찬에 자신도 모르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활 시위를 당기며 구스타프를 조준했다.

“제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이렇게 열심히 키운 제 아바타가 나오는 방송이 구스타프 씨의 방송보다 시청률이 낮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건 제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었고요.

세계관 내 최고의 초절정 미소녀 엘프가 진행하는 방송보다, 수염이 덕지덕지 난 아저씨의 방송이 더 인기가 높다니!

전 그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죠.

아, ‘내가 YAS안에서 최강의 존재가 아니라서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거구나.’라고.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서로의 시청자를 건 진검 승부를 겨루려고요.”

“시청자를?”

“제가 이기면 시청자 전부를 제 방송으로 호스팅하고 하루 동안 YAS CAM 사용 금지.

제가 지면 저도 반대로 해 드리죠.”

“제 방송의 시청자들은 제 검술이 마음에 들어서 제 방송을 보는 겁니다.

제가 호스팅을 한다고 해서 시청자분들이 지수 양의 방송으로 이동한다는 보장은 없을 텐데요?

게다가 지수 양의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궁술보다 지수 양의 외모에 더 관심이 많을 테니 제가 이겨도 제 방송으로 유입되는 시청자는 적겠죠.”

“으이익! 그건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죠!

YAS 내 최강의 기술이 궁술이라는 걸 증명하면, 최강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제 방송으로 올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제 방송 시청자들도 구스타프 씨의  방송을 보면서 검술에 매력을 느낄수도 있는 거고요!”

“뭐, 지수 양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번 해 보죠.

제가 하루 방송을 쉰다고 해서, 제 시청자들은 그리 쉽게 옮겨가지 않을 테니까.”

구스타프는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돌려 채팅이 올라오고 있는 공간을 슥 흘겨보았다.

그러나 채팅창의 반응은, 구스타프가 생각하던 것과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 이쁘다! 저 정도로 이쁜 캐릭터도 있었네?!-

-그래픽이 현존 최강 수준인 YAS이니 만큼 현실을 초월하는 미모를 보여주는 듯.-

-난 구스타프가 YAS 최강이라고 해서 이 방송을 보고 있는 건데, 만약 궁술이 더 강하다고 결론 나면 난 방송 갈아탐.-

[구스타프 씨. 이거 서지수 양한테 대신 전해주세요.]

구스타프는 한 유저가 보낸 10만 원짜리 도네이션 메시지를 보고는 컨셉을 깨고 소리를 질렀다.

“저쪽으로 도네 할 거면 저쪽 방에 가서 하세요! 저한테 대신 도네하지 마시고!”

-ㅋㅋㅋ 구스타프 삐짐-

-이기면 될 거 아냐 이기면.-

-본인이 매일 최강이라고 하고 다녔으니 지면 쪽팔리겠지.-

사실 채팅창의 반응은 스트리머를 놀리기 좋아하는 시청자들의 농담 섞인 행동이었지만, 진지한 성격의 구스타프는 그 채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랜만에 그가 진지하게 검을 잡게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었다.

‘지면 X된다.’

평소에 자주 취하는 편안한 전투 자세가 아닌, 강적 앞에서만 취하는 정식 준비 자세를 취하며, 구스타프는 지수를 향해 말했다.

“질 수 없는 이유가 생겼으니 진심으로 가겠습니다.”

“좋아요, 저도 방심했다 졌다는 황당한 변명은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

“3합 안에 끝내드리죠.”

“아, 그 전에. 구스타프 씨.

저도 구스타프 씨의 의견에 동의해요.

화살은 언제나 직선으로 날아가기에, 제 공격은 절대로 구스타프 씨의 감지 스킬을 뚫을 수 없다는 사실을요.”

“그건 당연한 일이죠. 어떤 게임이든 상성은 있습니다.

그리고 제 스킬의 상성은 지수 양이 가진 스킬의 우위에 있죠.

단지 그뿐입니다. 현실과 다르게, 게임에서는 스킬이 절대적인 강함의 척도가 되니까요.”

구스타프의 말을 들은 지수는 활을 들어 올리며 그를 조준했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스킬간의 상성.

그리고 스킬이 가진 특성.

그것은 YAS안에서 절대적인 강함의 척도죠.

하지만 구스타프 씨. YAS 플레이어는 절대로 이것을 잊어서는 안 돼요.

당신이 가진 그 스킬도, 당신이 끝없이 반복한 무언가의 행동으로 만들어진 스킬이라는 걸.

그리고 그 스킬의 법칙은, 때로는 절대적인 물리법칙도, 그리고 절대적인 스킬의 상성마저도 무시하게 하죠.”

순간 시야가 붉은 색으로 물드는 것을 본 구스타프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급히 옆으로 한걸음 이동했다.

그리고는 여전히 붉은색의 경고 신호가 유지되는 것을 보며, 속으로 경악했다.

“어? 미친?! 뭐야?!”

그리고 그 순간, 지수의 활에서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들릴 듯 말 듯 한, 그녀의 작은 목소리와 함께.

“쫓아오는 악몽(chasing nightmare)”

그 순간, 구스타프의 눈에 펼쳐진 ‘현실’은, 현실과 YAS를 통틀어, 구스타프가 평생 자신의 눈으로 보았던 모든 광경 중 그를 가장 황당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화, 화살이 휜다!-

-추적하는 화살이네?!-

-확실히 도망가도 쫓아오면 감지 능력은 의미가 없네 ㅋㅋㅋㅋ-

-미친 저거 디아볼로2의 가이디드 애로우 아님?-

-저걸 수련으로 직접 만들었다고? 어떻게?-

구스타프는 자신의 위치를 향해 사방에서 쇄도하는 화살의 무리를 보며,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어디로 이동해도 자신을 노리는 화살 앞에서, 그가 믿고 있던 ‘투사체 감지’ 스킬은 전혀 쓸모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무지막지한 속도로 근접해오는 화살을 반사신경만 가지고 쳐내거나, 몸을 굴려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것뿐이었다.

아니면 최대한 데미지가 없는 부위로 화살을 받아내던가.

그러나 궁수계열 최정점에 있는 지수의 공격은, 그가 맨몸으로 받아내기엔 지나치게 높은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

‘상성 상 이건 투사체 감지의 카운터 스킬이다.

개념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어떻게 수련한 거지?’

그는 다시 한번 몸을 굴려 화살을 피해내면서, 어떻게든 지수의 근처로 접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는데, 지수가 그가 접근하는 경로마다 속성 화살을 쏘아 그의 접근을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직선으로 접근해야 그나마 거리가 좁혀지는데, 접근하는 방향을 읽힌 순간 속성 화살은 최강의 스킬이 된다.’

구스타프는 소드 오러를 익힌 이후로 단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던 패배의 기색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신기하게도, 구스타프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오로지 자신을 상대하기 위하여 창조된 스킬에, 자신이 당한 것일 뿐이었기에.

그 정도 노력을 한 상대라면, 자신을 이길 자격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구스타프는 검을 내리며 바닥에 꽂았고, 그 순간 사방을 비행하던 화살들이 일제히 그의 몸에 박혀 들었다.

그것은 최강을 자처하는 한 검사의 최후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장면이었기에,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채팅조차 치지 않은 채 조용히 그의 패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구스타프는 마치 쌀 포대라도 짊어진 것처럼 자신의 전신을 내리누르는 강한 무게감에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PRD가 그의 몸에 전달하고 있는 물리적인 패배의 신호였다.

그러나 그는 쓰러지지 않고 검을 바닥에 꽂은 채, 검을 지팡이 삼아 자신의 몸을 지탱했다.

몸으로 버티기 힘든 수준의 강한 압력이 전신에서 느껴지고 있었지만, 그에겐 반드시 죽기 전 지수에게 물어야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스킬 이름은?”

“뒤쫓는 악몽(chasing nightmare).

조준한 상대를 추적해서 공격하는 궁수계열 궁극 스킬입니다.”

“숙련도는?”

“5요. 얻은 지 얼마 안 돼서 낮아요.”

“힘, 들었겠군···.”

시청자들은 알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소드 오러를 수련한 구스타프는 숙련도 5짜리 상위 스킬을 펼치는데 얼마나 많은 근력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YAS의 스킬들은, 숙련도가 낮을수록 정확한 자세를 취하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녀는 화살 한 발 한 발을 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어 화살을 쏘았으리라.

온몸을 구속하고 있는, PRD의 와이어가 전달하는 물리력과 싸우며.

그 사실은 구스타프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었다.

“진 사람의 표정이 아니네요.”

“질만 했으니까. 잘도 내 카운터 스킬을 창조했군.”

“대화는 부활하고 나서 하세요.

지금도 버티기 힘드시잖아요.”

“그럼 멋이 안 나잖습니까.”

구스타프의 말을 들은 지수가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구스타프를 향해 말했다.

“죽음 앞에서도 컨셉을 지키시려는 그 의지.

이제부터 제가 잇도록 하죠. YAS 최강이라는 명예도 함께.”

“오래가지는 않을 거야. 나도 그 스킬에 대한 카운터 스킬을 수련할 테니까.”

구스타프는 당연히 그녀도 ‘기대하겠다.’같은 대답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필사적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는 구스타프를 황당함으로 바닥에 쓰러지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때는 안 싸우고 도망쳐야죠.

마지막에 이긴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는 말도 있잖아요?

앞으로 구스타프 씨가 대련하자고 하면, 저는 이렇게 말할 거예요.

수준 떨어져서 더는 못 싸우겠다고.”

“뭐?!”

당황하는 구스타프를 보며, 지수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펼쳐 양 엄지를 볼에 가져다 대고 빙빙 돌리며 그를 놀렸다.

“허~접~허~접~.

붙을 리가 없잖아~♥

화살 하나 못 피하는 허접한 ‘검성’씨~”

순간 황당함에 몸의 균형이 허물어지며, 구스타프는 자신의 신체가 바닥과 충돌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YAS 최강자 두명이 벌인 전투의 끝이었다.

구스타프의 아바타의 전신은 마치 빛나는 유리처럼 깨져나가며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빈 곳엔, 아직도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활을 잡은 지수의 아바타만이 말없이 서 있었다.

‘이겼다···.’

비록 상대를 당황하게 할 정도로 황당한 결말이긴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도발이 258전 258패의 치욕을 갚기엔 한참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검술의 강함을 설파하는 구스타프의 말은, 그녀에겐 그녀가 수련하는 궁수 계열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

그녀는 드디어 그 치욕을 갚을 수 있었다.

YAS의 수많은 궁술 수련자들이, 검술 수련자들에게 들어야 했던 엄청난 치욕을.

그것은 그녀의 심장을 시큰거리게 하기에 충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겼다아아아아!!!”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그녀의 아바타를 보면서, 그녀의 방송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은 그녀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오늘의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힘든 수련을 겪어왔는지 두 눈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에.

그녀가 진행하고 있는 방송의 채팅창은 그녀의 승리를 축하하는 시청자들의 메시지로 도배되고 있었다.

-ㅠㅠ 지수 누나 진짜 인간 승리.-

-근력 키운다고 헬스 트레이너까지 끊었다더니 결국 해냈네.-

-어흐흑 누나 날 가져요. ㅠㅠ-

-이제 궁수가 YAS 최강이다!-

-난 오픈하면 무조건 궁수 키울거다!-

-이제 두 번 다시 안 싸우면 우리가 영원히 최강이다!-

그리고 잠시 후, 구스타프의 방송에서 넘어온 시청자들의 메시지도 지수의 채팅방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와···. ㅋㅋㅋ 화살을 휘게 만드네.-

-어떻게 수련했어요?-

-구스타프 씨가 물어보라고 하던데요? 어떻게 스킬 얻으셨냐고.-

-궁술 어려워요?-

-화살은 비싼가요?-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승리를 만끽하던 지수는 채팅창의 메시지를 보고는 활짝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손을 흔들며 구스타프 방송의 시청자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YAS세계 속 최고 최강의 미소녀!

PTW 기획팀의 마스코트! MYOM의 전(前)마탑주 서지수입니다!

제 방송에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이제 허접한 소드 마스터의 시대는 갔습니다.

이제부터 시대는 보우 마스터의 시대입니다!

활 한 자루로 세상을 평정하는 그 날까지!

우리 함께 즐겁게 YAS의 세계를 누벼보아~YO!!”

밝은 목소리로 외치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흐믓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웃으며 소리치는 그녀의 인사는, 단순히 라이벌을 이겼다는 기쁨의 인사가 아닌, ‘고작’ 게임 속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클래스에 긍지를 가지고 있던 한 게이머의 승리의 환호성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그녀가 벌인 필사의 혈투는, 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시청자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그 전투는 단순히 화려하면서도 현실적인 YAS의 전투 시스템에 대한 것 만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YAS의 시스템을 가장 잘 표현한 전투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독특한 경험은, 그녀의 채널이 아닌 다른 직원들의 스트리밍 채널에서도 수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스킬 습득에 도전하고, 수련을 통해 스킬을 얻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과정.

그것이 상혁이 의도한 YAS라는 게임의 본질이었기 때문에.

직원들을 통해 이루어진 이번 스트리밍 이벤트의 이면엔, ‘수련을 통한 스킬의 창조’라는 YAS의 시스템을 가장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상혁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자신들의 눈으로 지켜본 게이머들은, 하나같이 단 하나의 감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하고 싶다.

나도 저들처럼, 완벽하게 구현된 가상의 세계에서 탐험하고, 발굴하고, 사냥하고, 수련하며 나만의 캐릭터를 키워보고 싶다.

그렇게 그 안에서, 또 하나의 진정한 인생을 만들어가고 싶다.

그렇게 부풀어가는 게이머들의 욕망 속에서, YAS는 자신 이외의 다른 게임들이 지향하던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마치 오징어처럼 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한 임펙트를 어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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