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 되팔이 대책
[이건 미쳤다(Insane)는 표현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HC 101을 통해, PTW는 이미 불가능을 현실로 구현해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의 경악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또 다른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었다.]
[정신 나간 게임 개발사의 정신 나간 신작예고.]
[미쳤다. 나는 이 게임의 소개 페이지를 이미 수백 번 반복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려는 것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의 그 어떤 게임도, 이 게임이 나에게 가져줄 만큼의 충분한 만족감을 주지 못할 테니까.]
[세상엔 멋진 게임을 만드는 게임사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 누구도 감히 이토록 진지한 태도로 ‘한 번쯤은 게이머의 인생을 걸어볼 만한 게임.’을 만들겠다고 선언하지는 못했다.
사람의 인생이 가지는 무게란, 그만큼 무거운 것이기에.
그러나 PTW는, 당당하게 소개 페이지에서 말하고 있다.
게이머가 이 게임에서 ‘끝’을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낚시를 해야 하나? 농사를 지을까? 아니면 나무꾼? 상인? 석공? 마법사의 제자가 될까? 아니면 떠돌이 용병이 될까?
범죄자들이 득시글거리는 도적 길드의 일원이 되어볼까?
검 한 자루에 목숨을 걸고 나만의 길을 걷는 낭인(浪人)이 되어볼까?
게임의 소개 페이지에는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라고 적혀 있었다.
다른 회사라면 몰라도 그게 PTW의 약속이라면, 믿어볼 만한 약속이 아닐까?]
[난 이미 대장-목공-연금-마법을 합쳐서 ‘마도 공학’ 트리 만들어보려고 계획 중임.
언젠가 수천 명이 모여 있는 전장에 내가 직접 만든 스팀펑크 거대 로봇을 타고 주먹으로 성벽을 때려 부술 거다.]
[무기 중에 사슬낫도 있던데]
YAS를 공개하면서, 상혁이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YAS가 오로지 PRD에서만 돌아가는 PRD 전용 게임이라는 부분이었다.
물론 가격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게임인 만큼, 게이머들이 관대하게 이해해줄 거라는 기대도 있긴 했지만, 그런데도 3천만 원이라는 가격은 유저들에게 엄청난 압박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러나 다행히도 대부분의 유저들은 PRD의 가격보다는, PRD를 구동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새 인터넷’의 보급 문제와 PRD의 수량 부족 문제를 더 집중적으로 지적하고 있었다.
애당초 현재의 PRD는 돈이 있어도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가에만 살 수 있으면 솔직히 3천만 원이라도 PRD가 비싼 건 아니지.]
↳ 내 친구는 HC 101 플레이한 지 일주일 만에 인 게임 아이템 팔아서 PRD값 뽑음.
↳ 그 방법도 있었네.
YAS는 노동력이 중요한 게임이니까, 분명히 안에서 엄청난 재화가 움직일 텐데, 그거 팔면 순식간에 3천만 원은 그냥 뽑을 듯.
↳ PTW도 그 사실을 알 텐데 이번엔 부분 유료화 가지 않을까?
솔직히 자원 팩만 팔아도 떼돈 벌 텐데?
↳ 적어도 PTW에 있어서만큼은 그런 생각은 바보 같은 걱정이라 할 수 있다.
회사 이름부터 ‘Play To Win’임.
‘Pay To Win’이 아니라.
↳ 모르지. 새 인터넷 때부터 PRD와 PRS까지.
지금의 PTW는 거의 회사 기둥뿌리를 걸었다고 봐야 할 만큼 가상현실 구축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들이붓고 있으니까.
성능 대비 터무니없는 가격의 하드웨어를 시장에 충분히 공급하고, 그걸 기반으로 자체적으로 매출을 뽑을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는 건 합리적인 추측 아닐까?
↳ 애당초 PTW는 합리성은 엿 바꿔먹은 게임회사다.
기업 논리로 돌아가지 않는 회사를 기업논리로 해석하려고 하는 건 바보짓이지.
↳ 그리고 우린 그 바보짓에 중독돼서 매일 되팔이들에게 5천만 원에 PRD를 구매해야 하나 고민하는 바보들이고.
↳ 젠장 진짜로 되팔이 문제는 어떻게든 해줘야 하는데.
3천만 원이 성능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2천, 3천만 원을 얹어서 사고 싶지는 않다고.
차라리 그게 정가였으면 어차피 PTW가 벌어서 다시 게이머에게 투자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살지도 모르지만, 그게 되팔이 1년 연봉이 된다고 생각하면 절대 사고 싶지 않아.
↳ 스트리머들은 눈물을 머금고 사야 하는 상황이던데.
지금 HC 101 방송은 시청율 자체가 달라.
PRD를 가지고 싶지만 살 돈은 없는 시청자들이 무더기로 와서 바라보니까.
거의 하꼬가 메이저 스트리머로 가는 급행 티켓 취급받는 중.
“의외로 되팔이 관련 지적이 가장 많네요?”
“정가가 비싼 물건은 아니니까.”
자신에게 정리되어 올라온 커뮤니티 반응들을 보며 상혁이 말하자, 현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녀도 어떻게든 해 주고 싶은 문제이긴 했지만, 방법이 없는 문제이기도 했기에.
사실 고질적인 물량 부족 문제는 상혁이 처음부터 5천만 대의 선공급을 조건으로 걸었던 딥 다이버 시절에도 발생했던 문제였기에, 현주는 CEO로서 갑갑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쓸데없는 오해를 사는 것 같아서 조금 억울하긴 해.”
“쓸데없는 오해요?”
“우리가 일부러 물량을 제한적으로 풀어서 희소성을 늘리려고 한다는 오해.”
“아······.”
“무슨 명품 제조사도 아니고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지.”
“저희가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죠. 코넥트 때부터 소매점 차원에서의 되팔이는 철저히 막고 있잖아요?
게다가 딥 다이버때는 일부러 산업용 딥 다이버 생산 조건에 게이머용 딥 다이버 5천 만대 선 공급 제한도 걸었고요.”
“그 상당수를 되팔이들이 사 가면서 물량 공급이 원활하게 되지가 않은 거지.
결국은 계속 풀리는 물량에 손들고 대부분의 되팔이들이 원가에 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필요 수요 이상으로 PRD를 만들어서 마구 뿌릴 수도 없죠.
그 정도 부담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싼 장비가 아니니까.
하지만 좀 의외네요.
개인적으로 되팔이하는 판매자가 사재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장비라, 이번에는 실수요자 위주로 판매가 될 거로 생각했거든요.”
“비싼 만큼 이윤이 많이 남으니까 위험을 감수하고 들어가는 거지.
수요에 비해서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니 1대만 팔아도 이윤이 엄청 남기도 하고.
그리고 지금 PRD의 되팔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되팔이들은 기업형 되팔이들이야. 걔들은 돈이 많아.”
“흠···.”
잠시 고민하던 상혁은 다른 피드백에 앞서 되팔이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게이머를 위해 일부러 원가에 제공하고 있는 물건을 가지고 되팔이들이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상혁은 PTW 홈페이지에 되팔이 대응 3개 조를 발표함으로써 되팔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생산되는 PRD의 우선 구매권은 통신사의 새 인터넷 약정 계약에 서비스 형태로 제공됩니다.
가장 먼저 3년 약정 이상 계약한 고객님들을 우선으로 1계약당 1장의 대기표가 지급됩니다.
이후 생산 수량에 따라 순번에 맞춰 구매 기회가 돌아가며, 자신의 순번임에도 구매를 미루시면 해당 장비는 다음 유저에게 돌아갑니다.
그와 더불어, 기존의 새 인터넷 가입 고객들에게는 기존 계약을 PRD 선 구매권이 포함된 3년 약정 계약으로 위약금 없이 갱신할 기회가 제공될 예정입니다.]
상혁은 아예 RPD의 구매 권한 자체를 새 인터넷 서비스와 묶어버렸다.
어차피 새 인터넷 서비스 자체가 1개의 주소지에 단 1회선만 가능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PTW의 제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PTW에서 발매되는 모든 게이밍 기어는 실수요자를 위한 막대한 할인이 적용되어있는 상태로 발매됩니다.
저희가 시장에 PRD를 공급하는 정가는, 이미 원가 혹은 그 이하로 공급되는 가격이며 그 모든 것은 게이머를 위해서 설정된 가격입니다.
이런 호의를 되팔이의 기회로 사용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이기에, 저희는 PTW의 게이밍 기어에 웃돈을 얹어 파는 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판매되는 모든 PRD는 구매와 구동 내용은 추적될 것입니다.
만약 저희의 자체 조사나 신고에 따라 저희가 공시한 가격 이상의 가격에 PRD를 판매한 판매자가 있다면, 해당 판매자에게 판매된 것으로 파악된 모든 PRD는 계정 접속이 막힌 상태로 전환됩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개인 간의 장비 판매를 완전히 틀어막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중고인 물건을 웃돈을 얹어서 팔지 말라고 경고하는 거죠.
현재 PRD를 구매해서 쌓아놓은 기업형 되팔이 분들껜 앞으로 일주일간의 여유 기간을 드립니다.
그 안에 본인이 보유한 모든 PRD를 정가로 처분하십시오.
안 그러면 구매 내역을 추적해서 당신들이 보유한 모든 PRD를 깡통으로 만들어버릴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웃돈을 얹어 비싼 가격에 PRD를 이미 구매하신 분들의 계정까지는 막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공지가 발표된 이후에 발생하는 웃돈 거래에 대해서는 구매자의 PRD까지 전부 막아버릴 예정이니 절.대.로 되팔이들에게 PRD를 구매하지 마십시오.]
상혁이 발표한 3개 조의 마지막 항목은, 처벌이 아닌 보상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것은 물건이 없어서 되팔이들에게 웃돈을 주고 PRD를 구매해야 하나 고민하던 수많은 유저들을 위한 발표였다.
[마지막으로, 저희는 테슬러와 합의하여 현재 PRD를 생산하는 공장의 규모를 3배로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공장이 완성될 때까지, 원래 미군에 우선 납품하기로 되어있던 군용 PRD의 생산량을 게임용으로 돌리기로 미 정부와 합의했습니다.
이로써 조금이나마 물량 부족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 국방성이 맨입으로 공급 지연에 합의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PTW는 이번 조건을 끌어내기 위해 군용 PRD의 일부 수량에 대한 공급 가격을 상당히 할인해 주어야 했다.
그것은 PRD의 판매에서 유일하게 이윤이 남는 부분의 이득을 포기하는 것이었지만, 상혁은 그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믿었다.
애당초 PRD란 장비는, 군인이 아닌 게이머를 위해 개발된 장비였으니까.
PTW 홈페이지를 통해 생방송 스트리밍으로 진행된 상혁의 발표는, 게이머들에게는 엄청난 지지의 대상이, 되팔렘들에겐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PTW의 이번 발표가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비난부터, 내돈 주고 내가 산 물건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PTW가 무슨 권리로 되팔이를 막느냐는 비난까지.
그러나 그러한 비난의 목소리는 게시판에 등장하자마자 분노한 게이머들의 집중포화를 맞고 곧바로 삭제되었다.
코넥트 시절부터 끊임없이 이어진, PTW팬들과 되팔렘들의 악연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론이 자신들의 편이 아닌 이상, 되팔렘들이 기댈만한 곳은 법원뿐이었지만, 그들은 소송조차 걸지 못했다.
PTW가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걸려온 법정 소송에서 무패의 전적을 자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게다가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되팔이로 얻을 수 있었던 조그만 수익이 전부인 상황이었기에, 되팔렘들은 소송을 포기했다.
괜스레 자극했다가 PTW에서 기존에 판매했던 분량의 계정까지 전부 틀어막아 버리면, 그때부터는 자신들 역시 줄소송에 직면해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국, 발표가 나온 그 날 중고 시장에 1000대 이상의 PRD가 ‘정가에’ 추가로 풀리면서 1000명의 게이머들은 기쁜 마음으로 HC101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되팔이 문제를 해결한 상혁을 기다리는 것은 아직도 산더미 같이 쌓여있는 다른 문제들이었다.
겨우 되팔이 문제 하나를 해결한 것으로는 전혀 티도 나지 않을 만큼, YAS의 발표가 게이머들에게 전해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기에.
상혁은 게이머들이 쏟아내는 ‘베타 테스트 요청’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했다.
[3천만 원이나 주고 PRD를 구매했는데 할 수 있는 전용 게임이 하나도 없다는 건 좀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 HC 101 있잖아.
↳ 그건 PRS만 있어도 플레이 가능한 게임임.
이번에 PTW LAB에서 나온 게임들도 전부 PRS 지원 게임들이고.
진정한 의미의, 오로지 PRD만을 위한 전용 게임은 YAS뿐이지.
↳ 허허, 재촉한다고 죽이 밥이 되나. 그렇다고 완성도 안 된 게임을 오픈하라고 하는 건 뭔 심보임?
↳ 공개된 게임 소개 페이지 안 봤음? 이미 지금 개발 완료된 부분만 가지고도 다른 MMORPG 완성도쯤은 다 씹어먹는다.
그리고 누가 완전히 오픈해달라고 주장하는 건가?
남들보다 먼저 비싼 돈 주고 PRD를 구매한 만큼, 그 값을 몸으로 체험하게 해달라는 거지.
오픈 베타 정도는 열어줘도 되는 거 아니냐?
↳ HC 101도 엔딩 본 유저가 지금 한 명도 없는데, 벌써부터 yes 타령이네.
PRD 샀으면 그냥 HC 101이나 해라.
때 되면 풀어주겠지.
↳ 넌 PRD가 없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거다.
PRD유저라면 전부 내 말에 공감할거라고.
이 세계로 가는 티켓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못 들어가는 이 느낌을 너희가 아냐?
PRD를 구매한 유저들이 늘어남에 따라, 오픈 베타를 요구하는 유저들의 목소리도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민준은 그런 유저들의 목소리가, 안타깝게도 상혁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민준이 아는 상혁은, 그런 부분에서는 한없이 원칙주의자 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민준의 예상대로, 상혁은 다시 올라온 커뮤니티 보고서를 읽으며 조용히 혀를 차고 있었다.
“씁. 오픈 베타 요구하는 유저들의 게시물이 나날이 다이나믹해지네?”
“다이나믹하다면 어떻게?”
“처음엔 PRD를 산 값을 해달라고 하다가 지금은 개발에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렇다고 방향을 틀었네.
PTW가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상 세계를 구현할 수 있도록, 게이머의 한 사람으로써 의견을 제시할 창구를 열어달라는데?”
“그래서, 오픈 해줄 거야?”
“아니. 아직 산재한 문제가 너무 많은 데다, 게이머들은 지나치게 예측 불허의 존재들이고, 그 모든 변수를 커버하기엔 아직 YAS완성도가 떨어지니까.”
“오픈하고 차츰 고쳐나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않나?”
“누군가는 마음에 들었던 시스템이 누군가의 마음엔 들지 않을 수도 있어.
그리고 게이머는 줬다 뺏는 것에 극히 민감한 존재들이고.
예를 들어 우리가 현재 허용되어 있는 자유로운 NPC 공격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서 NPC를 공격하지 못하게 패치한다면, 처음부터 그랬다면 이해했을 유저들조차 크게 반발할 수 있지.
그러니 이건 발매되는 시점부터 ‘원래 이 세계는 이런 거구나’라는 느낌으로 출시 되어야 해.
그렇게 못하고 중간에 세계의 규칙을 자주 변경하게 되면 그건 게이머들의 집중포화를 받게 될 원인이 될 거야.”
“하지만 유저들이 이토록 오픈 베타를 요구하는 이유가 단 한 가지라는 건 상혁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그들은 그냥 새로 공개된 YAS라는 세계를 실제로 만져보고 싶은 것일 뿐이라고.
말하자면 호기심이지.
어떤 것이 가능할까.
어디까지 가능할까.
그게 알고 싶으니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게임 소개 페이지를 뒤지면서 온갖 추측 글을 내놓는 거잖아?
게다가 이미 토론 게시판의 의견들은 추측을 넘어서 망상의 수준에 접어들었다고.
오픈된 게임이 그들의 망상에 미치지 못하면 게이머들은 실망하게 되겠지.”
“그럼 민준이 너는 오픈 베타에 찬성한다는 거야?”
“아니, 그건 아니야. 나도 너와 같은 이유로 아직 YAS의 정식 공개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니까.
다만 현재 소개 페이지에 우리가 공개한 정보보다는 조금 더 정보를 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커지다 못해 망상이 되어가는 추측성 글들의 남발을 종식하고, 구체적으로 이 게임에서 유저가 얻을 수 있는 게 뭔지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는 거지.”
민준의 의견도 일리가 있었기에, 상혁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게임에 접속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게임 속 세계의 정보는 가감 없이 전달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고민하던 상혁의 시야에,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한 영상이 잡혔다.
그것은 현재 PRD 안에서 YAS를 플레이 중인 한 직원의 플레이 영상이었다.
그때, 상혁이 그 영상을 말없이 바라보는 것을 본 민준이 상혁의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뭐야?”
“스컹크 웍스에서 만들어준 YAS의 모니터링 프로그램.”
“아, ‘YAS CAM’말이군.”
현재 YAS를 하고 있는 모든 PTW 직원들의 게임 플레이는, 이 YAS CAM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PTW의 직원 누구나 지켜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전달하고 싶은 피드백이 있다면, 그 즉시 게임 속 유저에게 말을 걸어 해당 요청을 전달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영상을 말없이 바라보던 상혁은 책상에 놓여있는 마이크의 스위치를 켰다.
그리고는 게임 안에서 열심히 버섯을 채취하고 있는 직원의 아바타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거, 독버섯인지 어떻게 구분합니까?”
갑자기 허공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아바타는 갑자기 허공을 바라보더니 마구 손을 흔들었다.
카메라가 지켜보고 있는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을 보면서.
그리고 잠시 후, 그렇게 한참을 점프하며 허공에 인사하던 그가 상혁의 질문에 대답했다.
-YAS CAM으로 받는 외부 피드백은 처음이네요.
마치 신이 말을 거는 느낌이라 재미있어요.-
그러자 상혁이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향해 말했다.
“아아, 미천한 신의 종복이여. 신의 부름에 답하라.
지금 네가 캐고 있는 버섯은 색이 화려한 것을 보아 독버섯이 분명한데, 왜 그것을 캐는 것인지 대답하라.”
-흔히 알려진 그 상식은 잘못된 상식입니다.
의외로 화려한 외형을 가진 버섯 중에도 식용버섯이 많고, 투박한 외형을 가진 버섯 중에도 독버섯이 많죠.
보통은 냄새나 맛으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는데, PRD는 냄새나 맛을 지원하는 장비는 아니니까요.
저는 시약을 사용합니다.-
“시약?”
-연금술로 만드는 일종의 테스트 약인데, 이걸 버섯에 떨어트려서 색의 변화를 보고 독의 종류를 판단하죠.
보라색은 신경독, 초록색은 세포독, 노란색은 부식독, 붉은색은 혈액독을 의미합니다.
색이 변하지 않고 투명한 상태로 있으면, 그건 독이 없는 거죠.
맛은 알 수 없지만요.-
“너의 답변에 감사한다. 나중에 주머니에 돈 있으면 매점에서 빵이라도 사 먹거라.”
-오오 신이시여 오오!-
“잘들 논다.”
직원과 장난치는 상혁을 본 민준이 웃으며 말하자, 상혁이 씩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민준을 향해 말했다.
“좋아. 문제는 그거지. 우리는 게임 안의 문제점들을 최대한 보이지 않게 통제하면서, 유저들의 호기심을 풀어줘야 해.
그러니까 말하자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초보가 아닌, 이미 게임에 익숙한 전문가들이 보여주는 게임 내 시연을 공개할 필요가 있는거고.
그리고 그 전문가들이 적절하게 유저들의 피드백을 받아서 게임의 개선점을 찾을 수 있어야 하지.
문제는 지금부터 전문 스트리머들을 고용해서 YAS에 익숙해질 때까지 훈련한다고 해도 시간이 꽤 걸릴거라는 거야.
YAS라는 게임 자체가 워낙 스케일이 크고 방대한 게임이니까.
50명의 스트리머를 고용했는데 50명이 죄다 모험가만 플레이하고 있으면 그건 의미가 없는 행동이 될 거고.
게임 안에서 온갖 직업을 다양하게 플레이하는 스트리머 집단을 구해야하는데, 그걸 어떻게 구하겠어?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상혁의 말을 들으며, 민준은 웃음을 터트렸다.
상혁의 눈앞에, 바로 그런 존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혁이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신선한 기분이었기 때문에.
민준은 웃고 있는 자신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는 상혁에게 말했다.
“훈련받은 스트리머가 왜 필요해?
이미 YAS에 익숙할 대로 익숙한 전문가들이 수백 명인데.”
“그건 무슨 소리야?”
“방금 네가 보여줬잖아. 지켜보는 유저와 게임 안의 게이머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상혁은 잠시 민준이 한 말의 의미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입을 쩍 벌리며 모니터에 떠 있는 YAS CAM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상혁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숙련된 YAS 플레이어’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X발, 진짜네? 눈앞에 두고도 전혀 몰랐네?”
“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으니까.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스트리밍에 익숙한 YAS 플레이어를 구하기 힘들다면, 이미 YAS에 익숙한 플레이어에게 스트리밍을 가르치는 방법도 있는 거 아닐까?”
민준의 말을 들은 상혁이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워크 패스트를 열어 공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렇네. 바로 시작해야겠어.”
“뭘?”
“공지로 알려야지. 직원 중에 혹시 실시간으로 YAS 플레이를 스트리밍하며 유저들과 소통하고 싶은 직원이 있는지.
공지를 올려서 지원자를 상대로 먼저 시작해보자고.”
“보안은 괜찮아?”
“이번 경우는 괜찮아. 오히려 보안을 지키다가 너무 황당한 기대감을 부추기는 게 문제가 될 뿐이니까.
솔직하게 까자고.
우리 게임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재미있고 뛰어난지.
그리고 어떤 부분은 지원하지 않는 건지.
실망할 유저들도 있겠지만, 분명 대부분은 좋아할 거야.
YAS는 그만큼 좋은 게임이니까.”
상혁은 급하게 작성한 공지를 전사 알람으로 송출했다.
그러자 부실 내의 컴퓨터에서 일제히 신호음이 울리며 워크패스트 메시지가 호출되었다.
YAS 안에 접속해 게임을 즐기고 있던, 모든 직원들과 함께.
누군가는 컴퓨터로, 누군가는 딥 다이버로, 누군가는 휴대전화로.
그것은 PTW의 직원이라면 부서와 관계없이 일제히 받게 되는 전사적 공지였다.
[YAS 플레이를 공개 스트리밍으로 진행하며 유저들과 소통하고 싶은 직원들은 회사 자료실 메인에 있는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세요.]
그리고 잠시 후, 상혁이 앉아있는 컴퓨터의 스피커에서 미친 듯이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검성 플레이어 칼 구스타프가 스트리밍 참여를 신청합니다.]
[원화팀 김서연입니다. 스트리밍이라니! 저도 할래요!]
[기획팀 서지수입니다. 오늘부터 스트리머 시작합니다!]
[이거 QA 팀도 신청 되는거 맞죠? QA팀 소속 직원 전원. 단체로 이번 스트리밍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상혁이 생각하던 것의 몇 배는 되는, 거의 전 직원이 보낸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스트리밍 신청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