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71화 (372/485)

371. 벽보고 웃기

“그럼 오늘의 YAS 기획을 위한 정례 회의를 시작합니다.

각 관리자는 순서대로 금일 직원들의 플레이 특이사항을 보고하세요.”

“농경 관리자 가이아가 보고드립니다.

최근 농경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유저들이 기초 작물에서 상위 작물로 주력 생산 품목을 변경하면서, 신전에 요구하는 축복의 양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제 신격 레벨이 낮은 관계로 제물과 신력의 교환비가 낮아 불만이 나오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신력의 교환비는 해당 신을 모시는 교단이 운영 중인 신전의 규모와 개수, 그리고 보유 중인 성물의 등급과 수량에 따라 결정됩니다.

더 달라고 하셔도 더 드릴 수는 없어요.”

“압니다. 그래서 오늘은 신전을 건축하는데 필요한 자재와 신력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려 합니다.

그리고 교단 관리자에게 신탁을 내릴 수 있는 신탁 카드도 한 장 받으려고요.”

“목적은 새 신전의 건축입니까?”

“그렇습니다.”

“대상 지역은요?”

“허츠 필드의 평야 근처에 세우려 합니다.”

“지수야?”

상혁이 지수를 바라보자, 지수는 뒤쪽에 있는 서재에서 엄청나게 두꺼워 보이는 커다란 책을 가져왔다.

거기엔 각 지역의 자원 분포에 대한 온갖 설정들이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근처에 발굴되지 않은 2등급 채석장이 하나 있네요.

매장량은 2등급이고 재질은 1등급 대리석입니다.”

“미발견 채석장을 사용하여 신전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신전 건축을 위한 신탁 카드 외에 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계시 카드도 한 장 필요합니다.

지수야. 2등급 매장량을 가진 1등급 대리석 채석장의 정보 공유를 위해 필요한 신력이 얼마지?”

“신력(대) 5장이요.”

“가지고 계시는가요?”

“혹시 할부는···.”

“신계엔 할부가 없습니다. 신력이 부족하면 교단 관리자를 독촉해서 신전 건설을 위한 대규모 제물을 요청하세요.”

“알겠습니다.”

“다른 특이사항은?”

“나머지는 제 관리 권한 내의 일입니다.

정산 내역은 따로 보내드렸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다음은 제가 하겠습니다.

오늘, 한 유저가 감자로 전구를 켜려고 시도했습니다.

구리 카드와 아연 카드, 감자 카드를 가져와서 제 앞에 내밀며 만드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하고 그것의 생산을 시도하겠다고 했는데, 제가 가진 생산품 카드 중에는 감자로 구동되는 전구가 없어 일단 관리자 회의에서 논의 후에 생산 성공 여부를 알려주겠다고 전했습니다.

이건 신규로 생산 가능한 품목입니까?”

“전구라···. 지수야?”

상혁이 지수를 바라보자, 지수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하지만 유저가 시도하겠다고 말한 생산 과정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는데요?

유리의 가공부터 필라멘트의 삽입까지.

따로 공부를 해온 것처럼 현재 주어진 자재들을 가지고 완벽하게 전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제게 설명했습니다.”

“그 합리적인 방식이라는 건 우리가 있는 현실 세계에서의 합리성이지, 게임 안에서의 합리성이 아닙니다.

현실 세계에서 물질의 특성을 규정하는 것이 그 물질의 물리 화학적 특성이라면, YAS의 세계에서의 그것은 각 원소를 구성하는 마나의 속성을 중심으로 물체의 성질이 규정됩니다.

그리고 YAS안에서 자라는 감자엔, 전기 속성의 마나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 부분을 유저에게 전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러니까 룰 마스터의 의견에 따르면, 이 세계에서 전구를 키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사용되는 법칙이 아닌, 다른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죠.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신전 회의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아직 게임 속 시대가 전기라는 문명을 받아들일 단계에 도달했는지는, 다음에 논의해야 할 사항이 되겠죠.”

지수의 설명을 들은 직원은 만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수를 향해 말했다.

“계약의 관리자가 룰 마스터에게 질문드립니다.

최근 신전을 통해 들어온 요청인데, 영지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법령을 제정하고 그것을 계약 마법으로 보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일단 제 생각엔 가능한 것 같기는 한데, 룰 마스터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게임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계약의 마법적 보호에 대한 승인 권한은 계약의 관리자에게 있죠.

본인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직접 새 마법을 등록하신 후에 임시 카드를 발급해주시면 됩니다.

이후에 카드 제작팀에 임시 카드를 가져가면 정식 카드로 다시 제작해줄 테니까요.

하지만 기본 규칙은 지키셔야 합니다.

계약 마법의 기본 규칙은···.”

“보호할 계약의 준수 사항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그 패널티의 효력이 줄어드는 거지요.

숙지하고 있습니다.”

“새 주문에 필요한 제물이나 신력의 양은 대도서관에 있는 룰북을 참고하시고, 새 주문을 생성하신 이후엔 반드시 주문 목록에 새 주문의 이름과 자세한 내용, 관련 내용을 기재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다음은 계약 마법을 이중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안건인데···.”

이것이 요즘 매일 저녁 반복되는 PTW의 일상이었다.

여타 보드게임의 한정판 퀄리티 수준의 구성을 가지고 있는 YAS는 PTW 직원들의 흥미를 강하게 끌었고, ‘수백 명이 동시에 진행하는 거대 멀티 플레이 보드게임’이라는 컨셉은 그들을 게임에 순식간에 몰입하게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호평 받는 요소는 ‘오리지널 카드’의 제작 시스템이었다.

기본적으로 YAS는 방대한 자유도를 가진 MMORPG 시스템의 허점을 찾아내려는 의도로 기획된 게임이기 때문에 ‘룰을 벗어난 유저만의 고유 플레이’를 중요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오늘 회의에서 언급된 것처럼, 유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재료카드를 모아 각 직업의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게임 안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장비나 물건의 제작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럼 마스터는 유저의 설명을 듣고 그 합리성을 판단한 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룰북의 내용에 기초하여 해당 물건의 성능과 등급, 효과를 정리하여 ‘임시 카드’라 불리는 내용 없는 카드에 그 내용을 적어서 건네준다.

그럼 그 유저는 그 카드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원한다면 카드 제작팀에 메모를 넘겨주고 정식 카드와 교환할 수 있었다.

그러면 카드 제작팀은 카드 프린터를 사용하여 새 카드에 들어갈 삽화를 결정하고, 임시 카드에 적힌 능력치와 코스트 등을 인쇄하여 정식 카드로 건네주었다.

그런 독특한 시스템이, 게임에 참가한 유저들로 하여금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에 관해 끝없는 연구와 실험을 하도록 종용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자신만의 검술 스킬 카드.

자신의 이름이 붙은 홀로그램이 반짝이는 명검의 카드.

곧 직원들은 자신들이 가진 카드의 거래를 시작했고, 희귀 등급을 넘어 전설 등급의 카드가 등장하면서 유저 중에는 전문적으로 카드 거래만을 전담하는 직원도 생겨났다.

그리고 그 모든 플레이 데이터들은, 주기적으로 갱신되는 최신 버전의 룰 북으로 제작되어 매주 월요일 회사 정문 앞에서 무료로 배포되고 있었다.

덕분에 매주 구버전의 카드들과 룰북들이 무더기로 폐기되고 있긴 했지만, 상혁은 그 모든 비용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매주 멋진 외형의 룰 북을 만들고 카드를 인쇄하는 과정 자체가, 게임에 참여하는 직원들의 의욕 상승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단순히 새 게임의 기획 검증을 위한 테스트를 위한 비용으로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고 있긴 했지만, 상혁은 오히려 다음 프로젝트에도 이 방식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중이었다.

‘뭐, 돈 지랄이라는 건 이럴 때 해봐야지.’

그 어떤 프로그래머나 AI라도 인간의 뇌가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빠르게 규칙을 생성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으니까.

상혁은 그날 정리된 새로운 규칙을 가지고 PTW의 지하로 내려갔다.

“이게 오늘 자 분량이야.”

“어마어마하네. 매일 지치지도 않냐?”

민준은 웃으며 상혁이 건네준 프린트를 옆에 있는 스캐너에 밀어 넣었다.

그러자 특별히 주문 제작된 스캐너가 자동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안의 내용을 데이터로 변환하기 시작했고, 해당 내용은 자동으로 카테고리별로 태그가 붙어 옆에 있는 포스트잇 인쇄기로 출력되었다.

그러자 멀리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존 스캇이 눈을 반짝이며 달려와 포스트잇 뭉치를 들고는 벽으로 달려가더니, 벽의 비어있는 구석에 그것들을 색깔별로 붙여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던 상혁이 민준을 향해 물었다.

“원래는 엑셀 데이터로 한번 변환된 다음 수동으로 카테고리를 입력하지 않았었나?”

“그건 어제까지 그랬고, 이제는 입력받은 텍스트를 자동으로 AI가 해석해서 카테고리를 할당하게 하는 기능을 추가했지.”

“오, 자동화라.”

“좀 아이러니한 모습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어.

지금 위에서는 가장 올드한 스타일로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있는 반면에, 지하에서는 어떻게든 그걸 컴퓨터가 처리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니까.

말하자면 펜과 종이, 그리고 컴퓨터와 키보드의 싸움 같은 거지.”

“그런 싸움이라면 펜과 종이가 졌으면 좋겠네.

그건 사람의 상상력을 완전히 컴퓨터로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가 될 테니까.”

“지금은 좀 버겁지만.”

민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루에 100개의 작업을 해결하면 200개의 새 작업이 밀려오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민준은 주머니에서 검은색 사각형처럼 생긴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덩어리를 내밀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터는 회의와 게임 진행에 이걸 사용해줬으면 좋겠어.”

상혁은 민준이 건네준 물건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것은 작은 LED 램프가 달린 플라스틱 상자로, 측면의 USB 3.0포트 구멍과 상단의 액정 디스플레이가 달린 물건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볼륨 컨트롤러로 보이는 작은 다이얼도 하나 달려 있었다.

“이게 뭐야?”

상혁의 질문을 들은 민준은 씩 웃어 보이며 기기의 액정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기계에 달린 작은 LED 램프에 초록색 불이 들어왔고, 민준은 그대로 작은 플라스틱 박스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라이브. 현재 농경의 관리자가 가지고 있는 카드의 리스트를 불러줘.”

[현재 시각 기준으로 농경 관리자가 가지고 있는 카드 리스트를 안내해드립니다.

신앙(대)36장.

신앙(중)32장.

신앙(소)552장.

과실수의 축복(3등급) 221장.

···.]

갑자기 농경 관리자가 보유 중인 카드의 숫자를 줄줄이 읊어대는 상자를 보고, 상혁은 경악한 표정으로 민준을 바라보며 외쳤다.

“이거! 이거이거이거 뭐야?!!”

“라이브러리안. 속칭 라이브.

스컹크웍스에서 개발한 YAS보조 장비야.

입력받은 모든 음성 데이터를 해석해서 유저와 관리자 전부가 가지고 있는 카드 숫자와 상태를 실시간으로 변경하고,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정보를 불러서 호출하는 장비지.

카드 스캐너도 있으니까 임시 카드든 정식 카드든 여기 카메라 렌즈가 있는 곳에 스캔하면 알아서 전산화시켜줘.

그럼 이제 매일 변동되는 카드 숫자나 회의 기록을 수동으로 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지.

안에는 현재 가장 최신화 된 룰북의 데이터도 들어있어.

그러니까 관리자가 매번 새 요청을 받을 때마다 수백 페이지짜리 룰 북을 뒤질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그것은 수백 명의 플레이 데이터를 전부 수기로 작성하여 관리하고 있던 상혁에게는 매우 필요한 물건이었다.

“···멋지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

사실 이제 슬슬 데이터 관리가 버거워서 어디서 순간 기억 능력자라도 구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거든.”

인간의 뇌는 상상과 해석, 응용에는 컴퓨터보다 압도적인 성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억과 계산에는 그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물론 가끔씩 슈퍼컴퓨터보다 계산을 잘하는 천재들도 나오긴 하지만, 현재의 관리자들이 모두 그런 타입의 천재는 아니었기에, 민준이 만든 라이브러리안은 이미 인간의 손으로 관리하기엔 너무 방대해져 버린 게임의 상태를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만한 장비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컴퓨터라면 계산을 틀리거나 입력받은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을 테니까.

상혁은 웃는 얼굴로 민준이 건네준 장비를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이거, 몇 개나 있어?”

“저쪽에 박스 채로 쌓여있으니까 가져가면 돼.

전 직원이 다 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발주했으니까.”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있다가 직원 내려 보내서 가져오라고 할게.”

“아, 그리고 그 대신이라고는 뭐하지만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뭔데?”

“이거.”

민준이 내민 것은 스컹크웍스 직원 몇 십 명의 이름이 담긴 리스트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현재 YAS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초기 직업들의 이름과 함께 판타지스러운 가명들이 적혀 있었다.

“이건 뭐야?”

“스컹크웍스 멤버 중에 지금 플레이하고 있는 YAS 세션에 참가하고 싶다고 요청한 멤버들.”

그렇게 말하며, 민준은 살짝 미소지었다.

“아니, 옆에서 보니까 너희들만 너무 재미있게 노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사실 이 정도로 수백 명 규모의 인력이 참가하는 보드게임이란 건 흔히 보기 어려운 거잖아?”

상혁은 웃음을 터트렸다.

민준이 건넨 리스트에는, 민준 본인의 이름도 적혀 있었기 때문에.

민준이 YAS의 보드게임 버전에 참가하기 위해 지은 캐릭터의 이름.

거기엔 ‘로드 베이더’라는, 민준의 별명이 적혀 있었다.

***

민준이 AI의 지원을 받는 보조 기기 ‘라이브러리안’을 제공하면서, 개발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PTW의 직원들은 이제 누군가의 지시가 없어도 알아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고, 익숙해진 관리자들은 어떻게든 한 줌의 이득이라도 더 보려는 끝없는 직원들의 도전에 능숙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내용은, 라이브러리안을 통해 실시간으로 PTW지하에 있는 스컹크웍스에게 전달되어 개발되고 있는 게임의 버전을 올리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발이 진행될수록 YAS의 스케일이 끝을 모르고 커져가고 있긴 했지만, 상혁은 그 부분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구현할 수 없을 정도의 스케일이 될 정도라면, 민준이 자신에게 먼저 말을 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오로지 현재의 기획을 빠진 구멍이 없도록 완벽하게 다듬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전사 규모로 진행 중인 YAS의 보드 게임 버전은, 그런 상혁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특정 기후에서 3월에 열매를 맺을 식생의 종류가 너무 한정적이라고 하네요.”

“생태계 자체는 TAW 개발할 때 제대로 잡지 않았었나?”

“그건 게임의 배경이 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잡은 식생이고요, 지금은 TAW에 없었던 냉대 사막 지역과 툰드라 지대도 추가되었으니 거기 맞는 식생을 추가해달라는 거죠.”

“요청자는 또 고창준 씨인가?”

“뭐, 그렇죠.”

“그분은 이 게임을 무슨 농사 시뮬레이터 같은 거로 생각하고 있는 거 아냐?”

“낚시의 최호성, 농사의 고창준 씨가 YAS의 2대 생활계 장인이잖아요.

지금 물고기만 한 400종은 넘게 추가됐을 걸요?”

“그럼 그냥 본인이 원하는 이상적인 식생과 분포 리스트를 리스트로 정리해서 달라고 해.

뭘 먹고 어느 기후에서 크는지, 어떤 지형에서 주로 발견되는지 자세하게 정리해서 주면 알아서 배치해주겠다고 하고.”

“그렇게 할게요.”

“다음은?”

“칼 구스타프 씨가 자가 검술의 계파 등록을 요청하셨습니다.

3시쯤에 무술 자문단을 초대해서 앞에서 시연했는데, 클레이모어급 대검을 사용하는 중검 계열 검술이었어요.”

“결과는?”

“전문가 입장에서는 좀 근육에 무리가 있는 모션이 많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구스타프씨 말로는 YAS안에서는 마나 운공을 통한 근력 보정이 있으니 거기 맞는 운공법을 쓰면 충분히 시전 가능하지 않으냐고 주장하더라고요.

이론상 충분히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했기에 계파 등록을 허가하고 새 검술의 스킬 카드를 임시로 발급했습니다.

등급은 5등급입니다.”

“5등급이라….”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5등급은 처음 아냐?”

“그렇죠. 그런데 이미 구스타브 씨 자체가 4등급 검술의 사용자이기도 했고, 새 검술이 더 효율적인 검술이라는 충분한 근거를 제시했기에 5등급으로 책정했습니다.”

“그래도 5등급은 좀···. 아직 방패술도 3등급이 최고인데….”

그러자 상혁이 어수선한 장내를 정리하는 말을 꺼냈다.

“잠깐 주목하세요.”

그러자 모두가 상혁을 바라보았고, 상혁은 그런 그들에게 이 게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켰다.

“다들 YAS에 과몰입하는 건 알겠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만드는 게임의 기획을 위한 테스트 플레이입니다.

그리고 관리자의 목적은, 세계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의 역할은 게임 안에서 유저들이 창조하고 만들어갈 스킬의 창조 여부를 판단할 AI의 역할을 대신하는 겁니다.

어떤 유저가 자신만의 독특한 수련법을 시도했고, 그것으로 인해 스킬을 부여할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스킬은 부여되어야 합니다.

그건 신의 허락 아래 재료의 물성을 변경하는 YAS의 제작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니까요.

그러니 5등급 검술의 창조에 대한 승인 여부는 해당 기술의 관리자인 검의 여신에게 맡기겠습니다.”

그러자 검의 여신이라 불린 여성 직원이 상혁에게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수련 단계에 대해서는 확실한 검증을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YAS 안에 최초로 5등급 검술이 등장한 거니, 그로 인해 많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머지 관리자분들도 유저들의 동향을 예의주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구스타프 씨는 5등급 검술이 승인되면 뭘 하실 예정이라고 하시던가요?”

“도장 깨기요.”

“한동안 듀얼의 피바람이 불겠네요.

근데, 도장 깨기라. YAS에 그거 관련한 규정이나 시스템이 있던가요?

예를 들어 현실의 도장 깨기처럼 간판을 걸고 이기면 반으로 간판을 부순다던가.”

“아마 없을 건데요.”

“라이브. 도장 깨기, 무사 수행 키워드로 룰북을 검색해줘.”

[0건의 데이터가 검색되었습니다.]

“그럼 새로 등록해야겠네. 검의 여신께서는 YAS 세계관 내에서의 도장 깨기의 절차를 새로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지역별로 도전장은 어떤 식으로 보내는 게 정석이며, 도장 깨기에 당한 도장에 대해 세계관 내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그리고 대련의 수준은 어느 수준까지 허용되는지에 대해 설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규칙이 설정되면 현재 각 도장을 운영 중인 유저들에게 도장깨기 룰에 대해 알리고, 각 도장별로 어떤 식으로 도장 깨기에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정리해서 등록 부탁드립니다.”

YAS의 개발이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직원들이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상상’에 대해 말하면, 각 관리자들이 그것에 대한 규칙이나 설정을 정하고, 유저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쌓은 데이터는 그대로 게임에 적용되고 있었다.

때로는 게임 안에 등장하는 NPC의 형태로, 때로는 유저가 배울 수 있는 스킬이나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의 형태로.

아마도 구스타프란 직원의 도장 깨기가 성공한다면, 그의 업적은 완성된 게임 안에서 전설의 검술가 NPC로 구현될 것이다.

PTW의 직원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최선을 다해 YAS의 플레이에 임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지금 게임에 참가하여 내는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완성될 게임 안의 시스템이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에.

낚시에 미친 인간이 게임 안의 낚시 시스템을 설계하고, 농사에 미친 인간이 게임 안의 농사 시스템에 대해 아이디어를 낸다.

그것이 상혁이 YAS를 보드게임으로 설계한 가장 큰 이유였다.

한 사람의 머리로는 절대 설계할 수 없는 스케일이 게임을, 수백, 수천 명의 욕망과 지식을 빌어 완성하는 것.

그것이 상혁이 바라는 ‘진정한 가상 현실’을 구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상혁의 비전에는, 민준 역시 동의하고 있었다.

자신이 상혁에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할 ‘궁극의 게임.’

그 게임을 완성할 하나의 퍼즐이, 바로 YAS 안에 있었기 때문에.

스컹크웍스가 일하고 있는 지하의 회의실에서, 민준은 벽을 가득 메운 포스트잇을 보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1개의 벽만을 채우고 있었던 포스트잇이, 이제는 4개의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자신이 처리해야 할 작업이 끝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완성된 게임이 커버할 수 있는 플레이의 깊이가 한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민준의 곁에는, 그런 민준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민준 씨가 벽보고 웃는데?”

“작업이 너무 말도 안 돼 게 많아서 정신줄 놓은 거 아냐?”

“아니면 작업이 많아질수록 쾌감을 느끼는 변태라던가?”

존 카믹과 존 스캇.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변태에 한표.”

“나도.”

그리고는 민준과 똑같이 벽에 붙은 포스트잇의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정신 나갈 것 같은 작업리스트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네.”

게임 업계의 거장.

존 카믹의 말을 들은 스캇이 물었다.

“뭐?”

“이게 완성할 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신의 게임이 될 거라는 거.”

“신의 게임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

이 게임이 완성된다면, 절대적인 게임의 룰이 아닌, AI가 게임 속 세계를 통제하는 게임이 될 테니까.

스킬을 만들어주는 것도 AI.

유저에게 축복을 부여하고, 유저를 성장시키는 것도 AI.

어쩌면 우린 새로운 세계의 신을 창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어쩌면 인류는 그 신의 손에 멸망할지도 모르지.

스카이넷이 그랬던 것처럼.”

스캇의 말에 카믹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아는 ‘게임’이란 존재의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었기에.

“아니, 그렇지는 않을 거야.

그 신은, 오로지 인간을 즐겁게 하려고 창조된 신이 될 테니까.

이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정말 눈물을 흘리면서 게임을 즐기게 되겠지….

자신이 하고 싶은, 그 어떤 것이든 가능한 세계 속에서.”

이론적으론 참으로 이상적인 세계라 할 수 있었지만, 그것의 완성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 지, 두 사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선 이 포스트잇의 산을 어떻게든 해결하는 것.

스컹크웍스에게 주어진 업무는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조용히 한숨을 쉬고는 벽으로 다가가 포스트잇을 떼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것은 YAS의 개발이 시작된 이후 매일 같이 이어진 스컹크웍스의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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