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65화 (366/485)

365. 새로운 현실 창조

“질문하는 당사자인 허먼 씨도 본인이 제게 던진 그 질문이 얼마나 황당한 질문인지 잘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하지만, 공식적으로 답변드리자면 대답은 ‘No’입니다.”

허먼은 자신이 직접 고른 1개의 질문을 제외한 나머지 4개의 질문을 선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취재팀에서는 예상 시나리오가 실제로 진행 중일 경우 협력사로 예상되는 모든 기업에 문의 전화를 돌렸고, 분석팀에서는 각 기업의 최근 몇 년간의 재무 재표를 분석하여 자금 흐름에 이상기후가 있지는 않은가를 조사했다.

심지어 공장을 촬영한 위성 사진까지 분석하면서, 최대한 가능성이 없는 예측을 제외하고 남은 시나리오는 총 10개.

모두가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였기에 허먼은 최후의 선택을 유저 커뮤니티에 맡겼다.

팬들의 손으로 직접, 해당 리스트 중 가장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런 과정을 거쳐, PTW의 팬들이 꼽은 첫 번째 질문은, 바로 PTW의 성인 산업 진출 여부에 대한 질문이었다.

상혁은 허먼의 ‘그’질문에 대해, 작게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그 기능에 꽤 많은 유저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저희 PTW도 커뮤니티 조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PRD의 성인 게임 지원 여부는 민감한 주제가 될 수 있겠죠.

현재 저희가 공개한 모든 게임은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싱글 기반 게임들이고, 그 말은 한 플레이어의 행동이 다른 플레이어의 캐릭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류는 아직 가상 현실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지금은 한 스텝 한 스텝씩 계단을 밟아 올라가야 하는 시기죠.

오로지 ‘가상 현실’이기에 가능한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게 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가상 현실이라도 현실 기반의 윤리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요.

PTW내부에도 해당 문제의 가이드를 설립하기 위한 외부 인사가 포함된 사내 윤리위원회가 존재하며, 가상 세계 안에서의 합리적인 행동 윤리를 결정하기 위한 많은 논의를 펼치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논의들이 이루어지죠?”

“저희가 예상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대응책과, 저희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법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 4차 NE 컨벤션에서 유저들은 서로의 몸을 만지거나 타격할 수 없도록 설정되었는데, 그것은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불쾌한 접촉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HC 101의 멀티플레이는 워크패스트 계정에 등록된 지인만 제 월드에 접속할 수 있기에 상호작용 기능이 활성화되지만, 그나마도 옵션에서 끌 수 있게 되어있죠.

그렇기에 가상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악의적인 플레이어가 타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거고요.

하지만 저희가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미스러운 사태는 발생하고야 말았습니다.

저희는 컨벤션 기간에 변태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한 플레이어가 다른 플레이어의 아바타 앞에서 성적인 행위를 시도했다는 사실을 신고를 통해 파악했고, 즉각 그 유저의 워크 패스트 계정을 PRD 네트워크에서 차단했죠.

그 유저는 자신이 벌인 행동의 대가로 인해, 3천만 원짜리 PRD를 구매하고서도 앞으로 영원히 PRD를 통한 가상 현실 체험을 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물론 싱글 플레이 기반의 게임은 플레이할 수 있겠지만, 영원히 다른 유저와는 함께 게임을 할 수 없게 되겠죠.”

“어라? 그게 가능한가요?”

“PRD 판매 약관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멀티플레이 환경에서의 윤리적 기준을 위반할 경우, PTW에서 멀티플레이 접속 기능을 차단할 수 있다는 약관이 있죠.

현재는 해당 유저가 저희에게 제기한 소송을 법무팀에서 처리 중입니다.”

“그러면 앞으로도, 심지어는 서로의 합의가 있다 하더라도 PRD로 구현된 가상환경에서의 성적 행위는 금지되는 겁니까?”

“그것 역시 어려운 문제입니다.

기본적으로 가상환경에서의 활동은 아바타를 기반으로 이루어지게 되니까요.

부모님의 캐릭터를 조작하여 접속한, 성인의 형태를 띤 아바타를 조작하는 미성년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혹은 여성 아바타를 사용하는 남성 유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서로의 합의가 있더라도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방법은 무수히 많습니다.

현실에서는 처벌 때문에 하지 못했던 수많은 행위들을, 단순히 가상 세계라는 이유로 시도하려 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많고요.

심지어 싱글 플레이 속에서, NPC를 상대로 그런 짓을 시도하는 플레이어의 숫자는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통제하실 건가요?”

“안 합니다. 저희는 원칙상 싱글플레이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유저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니까요.

그건 성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저희가 직접 개발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분명 PRD를 이용한 성인용 게임이 등장할 겁니다.

어쩌면 멀티플레이 기능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겠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그 세계를 창조한 개발사에 있는 겁니다.

저희는 HC 101의 개발사로서 저희가 만든 세계에 저희가 만든 규칙을 적용한 것뿐이고요.”

“그러니까 직접 구현하지는 않아도, 남이 구현하는 것을 막지는 않겠다는 말이죠?”

“맞습니다. 그리고 그건 주변기기에 대한 정책도 마찬가지죠.

저희는 외부 업체가 PRD와 연동되는 주변기기를 개발하는 것을 막을 생각이 없으니까요.

단지 그 주변기기들을 PTW의 게임이 지원하느냐는 별개의 문제가 되겠죠.”

“그럼 희망을 좀 가져봐도 되겠네요.

다음 질문입니다.

이번 4차 NE 컨벤션과 모든 게임을 통틀어서, 현실의 성별과 아바타의 성별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화제가 되었는데, 그 이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위 말하는 ‘넷카마’문제에 대해서 말이죠.”

“4차 NE 컨벤션 때는 아무 부담 없이 자유롭게 성별을 변경할 수 있도록 제한을 걸지 않았었죠.

하지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눈 앞의 아름다운 엘프 여성 캐릭터의 정체가 거실에서 PRD를 즐기고 있는 남성이라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 문제는 유저의 선택에 맡길 생각입니다.

전부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PRS엔 나사의 우주복보다 많은 생체 감지 센서가 달려있죠.

저희는 필요하다면 유저의 체형이나 몸무게, 체온, 성별, 건강 상태등을 파악할 수 있는 센서들을 PRS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을 밝히길 원하는 유저에 한해서, 성별 인증을 마친 유저는 워크패스트 아이디 앞에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에 대한 아이콘을 띄울 수 있습니다.

그 아이콘이 있다면, 그 사람이 슈뢰딩거의 성별 상태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겠죠.

만약 그 아이콘이 없는 유저라면, 확률은 반반일 테고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아이콘이 없는 유저는 무조건 남성 유저 취급을 받지 않겠습니까?”

“그건 상대적인 거죠. 반대로 여성 유저가 남성 아바타를 사용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허먼은 이후로도 유저들이 가장 민감해하며 궁금해하는 주제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이어나갔다.

“많은 유저들이 PTW가 지금의 패키지 판매 방식을 버리고 월정액 모델이나 부분 유료화 모델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비록 타이틀당 수천만 카피의 판매량을 올리고 있는 회사긴 하지만, PTW가 원하기만 한다면 PTW를 위해 지갑을 열 유저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물론 상혁 씨는 지금까지 꾸준히 부분 유료화 모델을 사용하지 않을거라고 주장해오시긴 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이전과는 다르게, PRD는 그 존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유지비가 들어가는 상황이니까요.

그러니 다시 묻겠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나요?”

“글쎄요. 물론 유저들의 우려가 이해는 갑니다.

사실 6만 8천 원의 패키지 가격만 받아서는 그 판매량이 얼마가 되든 간에 HC 101에 들어간 비용을 건지기 어려우니까요.

하다못해 억 단위로 팔리면 손익분기점은 넘길 수 있겠지만, 딥 다이버의 판매량을 생각하면 그건 무리고요.

게다가 PRD도 생산 원가 수준에 공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희 쪽에 떨어지는 수익은 제로죠.

그래도 저희 정책을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이 복장이든 캐릭터든, 게임 안의 아이템을 얻는 과정 자체가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엔 정말 많은 부분 유료화 게임들이 있죠.

하지만 그 게임들의 대부분은, 게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건들을 랜덤 박스로 사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플레이를 통해서 그것을 얻는 기쁨 대신, 돈과 확률을 통해서 그것을 얻는 기쁨을 제공하죠.

복장 DLC도 마찬가지고요.

여기 100개의 복장 DLC를 파는 게임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 게임이 가지는 게임성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가정하에서, 게임 안에 유저가 입을 수 있는 인 게임 복장을 100개 수집할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면 그건 그거대로 엄청난 재미를 주게 될 겁니다.

유저는 복장 모으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 속 세계를 탐구하겠죠.

여기 또 하나의 게임이 있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가득한, 게임 자체도 매우 멋진 게임이죠.

그러나 그 멋지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오직 랜덤 박스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운 좋게 돈을 써서 그 캐릭을 얻은 유저에게, 그 게임은 말 그대로 ‘갓 겜’일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유저들에겐 제대로 게임을 즐기지 못하게 설계한 똥겜이 되겠죠.

반대로 그 컨텐츠를 게임 속의 컨텐츠로 삽입한다면, 근본적으로 유저가 받을 수 있는 재미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숨겨진 퀘스트를 찾아, 해당 캐릭터가 겪고 있는 곤란한 문제를 해결해주고, 그 과정에서 우정을 쌓아서 동료로 합류하는 과정을 그리는 거죠.

매력적인 동료 100명을 ‘뽑을’ 수 있는 게임과, 매력적인 동료 100명을 ‘얻을’ 수 있는 게임의 격차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겁니다.

전자가 평범한 부분 유료화 게임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말 그대로 월드 전체가 동료로 맞이할 수 있는 NPC로 가득한 갓겜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컨텐츠를 만드는 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까?

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게임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개발사는 돈을 벌어야 하죠.

모두가 PTW처럼 수천만 카피씩 게임을 팔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컨텐츠 제작의 허들을 낮추는 데 집중해왔고요.

다른 게임에선 인게임 영상 하나를 만드는데 엄청난 비용과 전문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지만, 저희는 다릅니다.

필요한 캐릭터의 디자인을 설정하고, 영상의 배경을 선택하여 그 안에서 PRD를 사용하여 개발자가 연기를 펼치면, 리얼 엔진이 그 모든 것을 완벽한 그래픽의 인게임영상으로 만들죠.

실제로 저희 직원 중에는 리얼 엔진을 이용해 취미로 판타지 풍의 드라마를 제작 중인 직원도 있습니다.

저도 가끔 보는데, 가끔 유치할 때도 있지만 정말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원래라면 유료로 팔아야 할 수준의 고품질 컨텐츠를, 쉽게 만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게임안에 삽입하는 게 PTW가 구현하려 하는 방향성이라는 거군요.”

“맞습니다.”

“그렇다면 인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크게 끼치지 않는 광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부 유저들은 가상 세계 안에서의 PPL을 통해서 추가 수익을 만들어내는 것이 PTW가 노리는 진정한 목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페이트 북이 원하는 VR 환경처럼요.

사실 확인을 위해 몇몇 광고사에 연락을 해보니, 그쪽에서는 PTW와 협의를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더군요.

그래서 이번 질문을 선택했습니다.

원래라면 배제했을 질문이었지만, 헤르메스 같은 명품 제작사 측에서도 VR 환경에서의 명품 판매에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몇몇 명품 브랜드, 그리고 일부 자동차 브랜드나 음료 브랜드, 의류회사에서 콜라보 제의를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사의 제품들을 HC 101 같은 VR 환경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였죠.

심지어 판매도 가능하도록요.

제안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고 기발했습니다.

어떤 자동차 회사는 자사 차량을 구입하는 유저에게 같은 기종의 VR 자동차를 공짜로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차 판매 수익의 일부를 저희에게 나눠주겠다는 제안도 했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계신가요?”

“아뇨.”

상혁이 말했다.

“저희는 패키지 판매 가격을 제외한 그 어떤 현실의 돈도 가상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

유저간의 아이템 거래를 제외한 모든 외부적 자본으로부터 VR 환경을 격리하는 거죠.

그리고 그건 저희가 나중에 서드파티들과 함께 일을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하지만 돈이 많은 일부 유저들은 헤르메스 같은 명품 브랜드의 코스튬을 가상환경에서 입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가상환경에서의 재화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새로운 산업과 직업이 탄생할 수도 있을 거고요.”

“만약 그들이 그것을 원한다면, 제휴 브랜드가 아닌 게이머로서 게임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구축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판타지 배경의 게임에서 유저들에게 약초를 사들인 뒤, 그것을 조합하여 병에 넣고 코카콜라라는 이름으로 팔면 되겠죠.

물론 거기에 들어가는 인게임 재화는 자신들이 알아서 구해야 할 테고요.

명품 브랜드 복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원한다면 가상 세계 안에 점포를 열고, 인게임 시스템을 이용해서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가진 장비들을 만들면 됩니다.

그리고 그걸 얼마에 팔든, 그건 그 브랜드에서 결정할 일이 되겠죠.

그건 브랜드가 아닌 게이머의 활동이 될 거고요.

저희가 만드는 가상세계 안에서의 브랜드 활동이란, 그런 형태가 될 것입니다.

회사에서 가죽 공예 스킬이 만렙인 플레이어를 고용하거나 의뢰를 해서, 플레이어들에게 최고의 품질을 가진 가죽을 구매하여, 최고의 재료를 써서 좋은 능력치와 디자인을 가진 갑옷을 만드는 거죠.

거기에 헤르메스라는 이름을 붙이든 루이비뚱이라는 이름을 붙이든 그건 그 브랜드의 자유입니다.

저희는 그런 활동이 가능한 시스템을 이미 갖추고 있고, 그런 활동이 자연스럽게 보일만한 게임을 제작하려 하고 있죠.

하지만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게임 내 NPC 상점에서 수천만 원짜리 브랜드 가방을 툭 하고 팔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게이머에게 좋지 않은 일이 될 테니까요.”

“그럼 아예 그런 걸 전문으로 하는 직업도 생겨날 수 있겠네요.”

“그 ‘가능성’이야말로, VR이 가지는 가장 멋진 요소니까요.”

상혁의 대답을 들으며, 허먼은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던 퍼즐이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고른 마지막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그가 생각하기에, 상혁이 그리고 있는 ‘원대한 그림’은, 단순히 리얼엔진을 무료 공개하는 것 이상의 스케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허먼은 급하게 생각을 정리한 뒤, 상혁에게 자신이 준비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그가 원래 질문하려고 했었던, ‘PTW가 4차 NE컨벤션에서 하려던 중대발표가, 혹시 리얼엔진의 무료 공개에 대한 발표입니까?’라는 질문이 아니었다.

“먼저 중간에 부수적으로 이어진 추가 질문에 대해 답변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미 저희에게 허용된 5개의 질문 이상으로 많은 답변을 받은 것 같네요.

하지만 추가 질문을 제외하면, 저에게 아직 하나의 질문 기회가 더 남아있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게 맞습니까?”

“그렇다고 치죠.”

“그럼 염치불구하고 마지막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4차 NE 컨벤션 도중에, 저는 한 어트렉션 구역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공간의 이름은 ‘시연 세션’이었죠.

대부분의 유저들은 거기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저는 그 공간이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기엔 가상 현실에서의 근력 강화 모델에 대한 테스트 장비도 있었고, 대장장이나 가죽 성형, 요리에 대한 테스트 장비도 준비되어 있었죠.

전 지금까지 그것이 단순히 PRD로 구현한 VR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한 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상혁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이게 또 다른 게임을 위한 거대한 밑그림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상혁 씨는 분명 현실에 있는 브랜드들이 가상 세계에서 제품을 팔기 위해선, 그것을 제작하기 위한 재화를 유저들에게 직접 얻을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이 동작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지원하는 ‘또 하나의 세계’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질문드립니다.

혹시 4차 NE 컨벤션이 피날레 이후에 공개하려고 하셨던 ‘중대 발표’.

그것의 정체는 HC 101보다 더 큰 스케일의, 그러니까 컨벤션 회장에서 공개되었던 ‘테스트 존’에서의 모든 기능을 포함한, 또 다른 게임에 대한 것입니까?”

허먼이 질문을 들은 상혁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또 다른 게임이라면?”

“말씀하신 모든 기능이 들어있는 게임 말입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유저들이 게임 내 모든 사물을 자신의 스킬로 제작하고, 그 안에서 사냥이나 농사를 통해 재화를 만들어내며, 그것을 통해 일종의 경제활동을 이루어낼 수 있는 MMORPG말이죠.”

HC 101이 액션과 연출의 극에 달한 게임이라면, 허먼이 지금 말하는 게임은 ‘플레이’가 추구할 수 있는 궁극에 도전하는 게임이었다.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화려한 스토리와 의도된 연출에 의한 감동이 아니라, 유저 스스로가 수많은 다른 유저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축해 나가는 게임.

유저가 원한다면 농사꾼도, 장사꾼도, 사냥꾼도, 군인도, 가죽 세공사도, 대장장이도, 영주나 국왕도 될 수 있는 게임.

완벽하게 현실적으로 구현된 가상 세계에서, 유저 스스로가 ‘또 한 명의 자신’이 되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

그것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MMORPG가 추구하려 했던 이상인, ‘새로운 현실의 창조’에 대한 질문이었다.

‘PTW가 만드는 MMORPG.’

허먼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건 리얼 엔진의 공개보다 더 멋진 답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허먼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조용히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그리고는 허먼이 가장 바라고 있던 답변이자 듣고 싶지 않았던 답변을 해 주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노코멘트로 처리하겠습니다.”

상혁의 대답을 듣는 순간, 허먼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상혁의 노코멘트는, 지금 상황에서는 긍정의 의미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허먼은 PTW가 만들어 내려는 MMORPG가 어떤 형태의 게임일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담겨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짐작할 뿐.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마도 오늘 방송을 시청한 모든 팬들 역시 상혁 씨의 답변에 만족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허먼은 만족감으로 가득찬 미소를 지으며, 상혁의 아바타를 향해 악수를 청했다.

가상 현실 속임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촉감을 전달해주는 가상의 악수를.

그리고 그 순간, TV와 모니터 앞에 서 있던 수많은 유저들은 상혁과 허먼이 나누는 악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상혁이 말한 ‘답변할 수 없다’는 대답.

그것은 100 마디 말보다 더 많은 뜻을 담고 있는 한 마디의 침묵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방송 시청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수많은 유저들은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금은 PTW의 새 게임.

그것도 MMORPG라는 장르를 가진 게임이 어떤 형태를 가졌을지에 대해 격한 토론을 하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유저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상혁의 발표와 동시에 PTW 홈페이지의 메인 페이지에 공개된 한편의 동영상이었다.

[The real world is coming.]

‘진짜 세계가 온다.’라는 타이틀 텍스트와 함께 시작된 영상은, 말 그대로 유저들의 마음을 격하게 헤집어놓을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