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64화 (365/485)

364. 진실찾기

출연을 부탁받은 5개의 TV 프로그램 녹화를 모두 마친 허먼은, 마침내 이번 주 방송을 위한 회의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PRD를 사용하여 3일간 컨벤션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동료 프로듀서인 제이콥 프라이와 함께.

프라이는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굉장히 들뜬 텐션으로 허먼에게 말했다.

“우선, 이번 주말 방송은 저희 프로그램 사상 최대 시청률을 기록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평일 9시 뉴스 광고 시간부터 방송국에서 계속 저희 프로에 대한 광고를 띄워주었고, 거기에 허먼씨가 받은 패널티 덕분에 다른 프로그램에서 저희 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청자들도 몰리게 되었으니까요.”

그러자 허먼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프라이에게 말했다.

“다 좋은데 왜 나만 패널티를 먹은거지? 프라이 자네도 나와 같이 3일간 결근했잖아.”

“저는 허먼 씨가 쉬기로 결정하는 바람에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어 안타깝게 쇼 진행자의 집에 끌려가 3일간 강제로 게임을 해야 했던 불운한 프로듀서이니까요.

국장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렸고요.”

“야이 씨! 할 때는 너도 그렇게 즐겨놓고, 인제 와서 강제로 플레이 당했다고 보고했다고?”

“허먼 씨랑 다르게 전 연봉이 낮으니까요.

PRD도 최대한 빠르게 사야하는데, 감봉이라도 당하면 치명적이잖아요.”

“하아···. 됐다. 어쨌든 이번 주 방송은 지난주 방송을 쉰 만큼 힘을 빡세게 줘서 진행해야 해.

내용은 어차피 결정되어 있지만.”

“그래서 말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다룰 생각이신가요?”

“글쎄. 일단 NE 컨벤션 특집이니만큼 그 안에서 겪을 수 있었던 놀라운 경험에 관한 이야기는 빠질 수 없겠지.

특히 아이론 맨이 내 필살기를 보고 멋지다고 말한 부분은 꼭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거 그냥 본인 자랑하고 싶은 거 아니에요?”

“시끄러워. 그게 불만이면, 자네도 자네 이름이 붙은 TV 쇼를 하나 하던가.”

“젠장.”

“아무튼, 소재로 쓸 영상이야 자네 영상과 내 영상까지 두 사람의 시점으로 3일 치가 확보되어 있으니 차고 넘치지.

그중에 상당 부분은 슈퍼 히어로 무비 수준으로 멋지고 화려한 영상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제 겨우 NE 컨벤션이 끝난 지 하루 지났을 뿐입니다.

저희 방송이 시작되기 전까지, 게임 영상은 다른 방송에서 지겨울 정도로 틀어줄 거고요.

시청자들은 이미 본 영상과 비슷한 영상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좀 더 새로운 정보를 원하지 않을까요?”

프라이의 말대로, 현재 대부분의 인기 스트리머들이 HC101의 실황 플레이를 중계하는 중이었고, 컨벤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피날레 이벤트 역시 수많은 방송과 유튜브 영상을 통해 엄청난 시청자를 끌어모은 상태였다.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유저들조차, 행사의 내용을 전부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렇기에 프라이는 허먼의 TV 쇼가 다른 방송과는 차별화된 무언가를 가지길 원하고 있었다.

“어차피 다른 TV 프로그램이나 스트리머의 영상에서 4차 NE 컨벤션이 얼마나 화려했는지, 그리고 PRD가 전달해주는 경험이 얼마나 끝내주는지는 시청자들도 충분히 전달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TV 프로그램의 간판은 허먼씨이고, 허먼 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PTW의 전문가죠.

게임 전문가도 아니고, 분석 전문가도 아닌, PTW 전문가요.

그런 허먼 씨에게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저희 방송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정보가 아닐까요?”

“그 특별한 정보라는 걸 얻어내려면 보안이 펜타곤 수준인 PTW에서 뜯어내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지?

아니, 창립 이래로 단 한 번도 메인 서버가 털린 적이 없으니 보안적인 측면만 따지면 펜타곤보다 더 위라고 볼 수도 있겠군.

펜타곤 서버는 가끔 정신 나간 대학생한테도 털리곤 하니까.”

“해킹 같은 비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PTW에서 그 귀한 PRD를 한 대 선물 받을 정도로 특별한 관계를 맺고 계시니, 그 관계를 활용한 무언가를 시도해보자는 거죠.”

“결국은, PTW에 전화해서 뭐라도 얻어내라는 말이지?”

프라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허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알아보지.

만약 어찌어찌 연결된다고 치자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의 정보를 원하는 거지?”

“방향성도 필요한가요?”

“PTW라는 회사는 특성상 자신들이 풀고 싶어서 하는 정보가 아니면 절대 먼저 풀지 않아.

이쪽에서 원하는 정보를 따로 묻기 전에는.”

“물어보면 대답은 다 해주나요?”

“아니. 하지만 적절한 질문을 통해서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게 되겠지.

답변을 얻어낼 수 있다면, 그건 PTW에서 감출만한 사항이 아닌 것이고, 답변을 피하면 그 주제에 대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

그러자 프라이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되도록 팬들이 가장 궁금할만한 이슈에 관해 물어보는 게 좋겠죠.

검색어 순위나 PTW 커뮤니티의 게시글을 기준으로 볼 때, 지금 유저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점은 ‘PRD의 증산 문제’입니다.

현재는 테슬러에서 생산을 전담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니까요.

게다가 이번엔 딥 다이버때처럼 게이머들을 위한 선 공급 계약이 존재하지도 않죠.

생산량의 절반 이상은 미 국방성에 납품되고 있을 겁니다.

그런 상황이기에, 현재 PRD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매물이 없는 거고요.

테슬러가 PRD의 공급 확대를 위해 새 공장을 세울 계획을 하고 있는지, 혹은 독점 생산이 아닌 기술도입 생산으로의 전환 계획이 있는지 확인해주시면 좋겠네요.”

“좋아.”

“그리고 가능하다면, PTW에서 이번 행사의 피날레에서 발표하려 했던 ‘중대 발표’의 내용을 미리 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절대 말 않을걸.”

허먼은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그가 아는 PTW라면, 본인들이 홈페이지에 공시하겠다고 이야기한 ‘중대 발표’라는 사항에 대해, 절대 다른 방식으로는 발표하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러나 프라이는 그것에 대해 나름의 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PTW도 저희 측 제안을 받고 나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저희의 제안은, 주목도는 올리면서 내용 자체는 크게 공개되지 않는 방식이니까요.”

“어? 그런 방법이 있나?”

“있긴 하죠.  다른 방송과는 다르게, 저희 쇼가 PTW 전문가라 불리는 허먼 씨의 프로그램이기에 진행이 가능한 특이한 방식이.”

그렇게 말하는 프라이의 입가엔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예? 허먼 씨의 쇼에 참석해달라고요? 그것도 이번 주 방송에?”

허먼은 상혁의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언론인 중 한 명이었다.

그런 허먼에게서 걸려온 국제전화를 받은 상혁은 황당하다는 투로 허먼의 터무니없는 요구가 무리임을 어필했다.

“지금은 중대 발표를 위해서 작업 중인 중요한 시기라 회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미국은 여기서 너무 멀기도 하고요.

왕복하는 시간을 합치면 24시간 가까이 걸리는 데, 아무리 허먼씨의 부탁이라도 그런 부탁을 들어드릴 수는 없어요.

게다가 제가 그런 종류의 부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계시잖아요?”

게임 기자라면 누구나 알고 싶어하는 것이 상혁의 휴대폰 번호였지만, 상혁은 극히 제한된 인원에게만 자신의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 선택받은 기자들에게 단 한 가지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귀찮게 굴지 말 것.’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어느정도 선을 그어놓지 않으면 이슈가 생길 때마다 전화기에 불이 날 정도로 연락을 해대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만든 제약이었다.

그리고 허먼은, 그런 상혁의 요구사항을 철저하게 지키는 언론인 중의 한 명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 허먼이 평소답지 않은 부탁을, 그것도 바로 이번 주에 진행되는 방송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한 것에 상혁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허먼은, 다급한 목소리로 상혁에게 자신이 연락한 이유가 합리적임을 어필하고 있었다.

-저도 PTW 본사가 있는 한국과 미국의 물리적 거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직접 와 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건 아니고요.

제가 부탁하려는 건, 이번 주에 진행되는 저희 쇼에서 PRD를 통해 출연해주시길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러자 상혁이 흥미롭다는 듯이 허먼에게 답했다.

“PRD로 출연을요?”

-예. TV 쇼 사상 처음으로, 가상의 스튜디오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사람이 앉아 인터뷰를 진행하는 거죠.

PRD가 가진 높은 활용도를 어필하는 데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리얼 엔진의 접근 권한이 없는 이상 그쪽에서 스튜디오 시설을 만들 수는 없을 테니 스튜디오는 저희 쪽에서 만들어드려야겠네요?

근처에 PRD 센터는 있습니까?”

-방송국 근처에 하나 있긴 합니다.

아직 새 인터넷은 연결 안 되어있지만요.-

“그럼 버라이즌 측에 연락해서 이번 주말까지 그쪽에 회선을 연결할 수 있게 조치하겠습니다.

스튜디오도 이쪽에서 준비하고요.”

-방송 출연은 이쪽의 부탁인데, 왠지 PTW측의 일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서 죄송스럽네요.-

“딱히 어려운 부탁은 아닙니다.

애당초 리얼 엔진엔 방송국 스튜디오 형태의 맵도 1분 안에 구현할 수 있도록 리소스가 전부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다만 출연 여부는 방송 내용에 대해 듣고 결정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주제에 대해 방송하고 싶으신 거죠?”

-우선 현재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PRD의 증산 계획에 대한 이슈가 있습니다.-

“아, 그건 좋네요. 안 그래도 PRD 에 붙은 되팔이 프리미엄 때문에 고민이었는데.

구체적인 생산 증대 계획에 대해 발표하면, 되팔이 수요도 조금은 줄어들지도 모르니까요.”

-나머지 하나는 4차 NE 컨벤션의 피날레때 언급하신 중대 발표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건 안 됩니다.”

자신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하는 상혁에게, 허먼은 다시 다급하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잠깐만요. 저희가 부탁드리려는 건 정보를 풀어달라는 부탁이 아닙니다.-

“그럼요?”

-저희가 추론한 정보가 맞는지를 확인해달라는 거죠.

방송은 20고개 형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제가 질문을 하면, 상혁 씨가 대답을 하는 거죠.

저희는 이번 방송을 PTW의 보안과 유저들의 정보력이 맞붙는 일종의 대결 구도로 끌고 가고자 합니다.

제가 PTW 커뮤니티에 모인 유저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가장 유력한 내용에 대해 질문을 드리면, 상혁 씨는 그 추론이 맞는지만 언급하시면 되는거고요.-

“그러니까 허먼 씨의 말은, 지금 인터넷이 가진 집단 지성의 힘으로 저희가 뭘 발표하려고 하는 건지 맞춰보겠다는 건가요?”

-바로 그겁니다.-

상혁은 허먼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재미있겠네요. 단, 정말로 위험한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노코멘트로 처리하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노코멘트 자체도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는 나름의 의미가 있게 들릴 테니까요.-

프라이가 기획한 ‘PTW를 낚기 위한 기획’.

그것은 PRD로 구현한 가상의 스튜디오에서, 상혁과 허먼이 중대 발표의 내용을 두고 벌이는 배틀 형태의 기획이었다.

***

“PTW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허먼이 말하자, 허먼의 사무실에 모인 모든 스텝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프라이는,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허먼을 향해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좋아요! 아주 좋습니다! 이번 방송은 진짜 재미있을 거라고요!”

“하지만 그 재미는 우리가 정확하게 상대의 계획을 파악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만들 수 있는 거야.

지금 PTW 커뮤니티만 가봐도 알겠지만, PTW의 중대 발표에 관해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의 99.99%는 말 그대로 개소리라고.

심지어 일부 유저들은 PTW가 PRD를 통해서 신세계의 신이 되려 한다. 같은 오컬트 틱한 주장을 펴고 있고.

걸려 있는 이슈가 한두 개가 아니야.

가능성의 바다는 한없이 넓은데, 정답은 그중에 단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중에서 정답을 찾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겠지.”

“그래서 미리 정리해왔습니다. 이건 트위지와 유튜브에서 활동 중인 주요 게임 스트리머들과 리뷰어들, 그리고 PTW 커뮤니티에서 지지를 많이 받는 추측 게시물들의 정보를 취합한 자료입니다.

중복되는 부분은 합쳐서 하나로 만들고, 확인이 필요한 부분은 따로 체크해두었죠.”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나게 두꺼워 보이는 자료를 내미는 프라이를 보면서, 허먼이 작게 미소지었다.

PTW가 준비하고 있는 ‘다음 한 수’를 예측하는 이번 준비 과정은, 허먼에게 있어서 굉장히 즐거운 것이었기에.

“옛날 생각나네. 예전에 전문 게스트로 활동할 때는, 나도 이렇게 커뮤니티의 자료를 늘어놓고 PTW의 다음 행보를 맞추려 하곤 했었지.”

“맞추신 적은 있나요?”

“두세 번 정도. 2차 NE 컨벤션 때는 사전에 날짜를 맞추기 위해서 미국 전체에 있는 목공소란 목공소엔 전부 연락한 적도 있었고.”

“목공소에요?”

“NE 컨벤션에 들어가는 세트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걸 한국에서 만들어서 배로 옮겨올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으니까.

다들 비밀유지 각서를 쓰고 작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정보를 캐내는 게 엄청나게 어려웠지만, 그래도 개중엔 입이 싼 목수들도 좀 있었거든.

PTW라는 회사를 파악하려면, 그런 식으로 해야 해.

회사 직원이나 내부에서 정보를 빼내려는 생각은 아예 버리는 게 좋지.

오히려 외부 협력사를 공략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야.”

자료를 훑어보던 허먼이 그중 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부터 시작하지. 사실 체감형 VR이란 기술을 PTW에서 공개한 순간부터, 수많은 유저들이 이것의 가능 여부에 대해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어 했을 테니까.”

허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페이지.

거기엔 작은 글자로 한 유저가 커뮤니티에 올린 추측이 적혀 있었다.

[PTW와 폰 허브의 연계 - PTW는 버츄얼 섹X의 꿈을 꾸고 있는가?]

그러자 그 게시물의 제목을 본 프라이가 고개를 저으며 허먼에게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아닐걸요? PTW의 게임들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들이 전부 미형인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PTW가 성 관념에 개방적인 회사는 아니니까요.”

그러나 허먼은 고개를 저으며 프라이의 의견에 반박했다.

“아냐. 적어도 PTW에 있어서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해서는 안 돼.

사실 이것이야말로 게이머들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면서, 발표되는 순간 세상이 뒤집힐 내용이니까.

물론 가능성은 적지만, 만약 이게 맞다면 대박 중의 대박일 거라고.”

“그럼 그걸 어떻게 확인하죠?”

“취재팀에 연락해서 폰 허브측의 정보를 캐내야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고.”

“그럼 다른 의견은요?”

“이것도 좋아 보이는 군.”

허먼은 그 이후로도, 몇 가지 예상을 더 추려내었다.

수많은 추측성 게시물 중에 허먼이 취재 대상을 고르는 기준은 매우 단순했다.

‘유저가 가장 원할 것 같은 것.’과 ‘PTW라면 할법한 것’들.

그러면서도 허먼은 수익과 관련된 추측성 게시물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로 그것들을 제외하고 있었다.

그것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합당한 형태의 추측이라 하더라도.

“[현실 속 업체와의 광고 계약을 통한 수익 실현] 이거는 제외해도 돼.”

“예? 그럴까요? 사실 페이트 북이 메타버스에 그렇게 목매다는 이유가 바로 그거잖아요?

자신들이 창조한 VR 세계에서, 유저들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지속해서 광고를 노출하는 거요.”

“그건 저커버그의 비전이지 PTW의 비전이 아니야.

내가 아는 PTW라면, 멋지다는 이유로 현실의 상품을 게임 안에 삽입할 수는 있어도, 광고를 이유로 필요 없는 콜라보를 진행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로 인해 벌리는 수익이 어마어마할 텐데도?

잘하면 제 2의 구글이나 제2의 페이트북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자네는 아직 유튜브 광고를 이상혁 CCO가 얼마나 혐오하는지 이야기를 못 해봐서 그래.

아마 게임 안에 광고 하나 삽입한다고 해도 그게 강제로 봐야 하는 광고라면 거의 경기를 일으킬 수준으로 싫어할걸?”

“그럼 이건 어때요?  [VR 세계 안에서의 PPL을 통해 현실 사물의 홍보를 진행할지 모른다.]

게임 안에서 코카콜라를 마시면, 능력치 보너스가 붙고, 그런 식으로 자연스러운 PPL을 유도하는 거죠.

NBA 2K 시리즈에서 게토레이가 지구력을 늘려주는 아이템으로 등장하는 것처럼요.”

“그것도 딱히 좋아하지는 않을 거야.

능력치 때문에 특정 브랜드의 아이템을 선호하게 하는 것도 일종의 구속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엄청나게 깐깐하네요.”

“그 깐깐함이 DLC도 없이 모든 확장팩을 무료로 제공하게 만드는 거지.

PTW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선이 있어.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그 선을 무너트리는 순간이, 회사가 이윤을 위해 원칙을 무너트리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회사가 PTW니까.

처음엔 확장팩을, 나중엔 컨텐츠 DLC를, 그 이후엔 복장 DLC를, 그리고 나중엔 경험치부터 시작 아이템을 팔아먹고 최종적으로는 랜덤박스를 팔게 되는거지.

33달러나 받아 처먹으면서 좋은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는 확률’을 팔게 되는거야.

그건 마치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속에 들어간 개구리처럼 유저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독이고.”

“그 개구리 이야기, 실제로는 안된다던데.”

“비유가 그렇다는 말이지. 아무튼, 그런 이유에서 수익 창출 관련 이슈는 전부 배제하는게 좋아.

원래 이번에 진행하려던 중대발표는, 4차 NE 컨벤션의 피날레에서 발표될 예정이었던 내용일 테니까.

자네라면 이상혁 CCO가, 그 환상적인 이벤트의 끝에서, ‘여러분 덕분에 저희가 돈을 더 챙길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습니다!’라고 발표하는 걸 상상할 수 있겠어?”

프라이는 허먼의 말대로 그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절대 안 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 그러니까 이번 중대 발표의 내용은 무조건 게이머를 위한 무언가일 거야.

대신 NE 컨벤션의 피날레 이벤트처럼, 보는 순간 유저를 열광하게 만드는 발표 내용이 아니라, 간접적이거나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게 만드는 내용일 가능성이 크지.

이전에 Live2D의 무료화를 선언했던 것처럼.

그건 피날레의 막바지에 발표하기엔 조금 힘 빠지는 내용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론 엄청나게 게이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발표였거든.

그 덕에 지금은 웬만한 인디게임도 전부 Live2D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이야기를 하던 허먼의 시선이 자료의 한 페이지에 머물렀다.

그것은 조금 전에 읽어보고 배제했던, 가능성이 너무 낮아 보이는 추측성 기사였다.

“이것도 다시 조사해보자.”

“이거요? 이건 진짜 가능성이 너무 낮아 보이는데요?”

“그건 맞아. 만약 PTW가 하려던 중대발표의 내용이 이것이라면, 그건 말 그대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번식시켜서 공짜로 푸는 꼴이 될 테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게 게이머들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방향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

말 그대로 ‘누구나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일 테니까.”

프라이는 허먼이 내민 자료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거기에 적힌 제목을 소리 내어 읽었다.

“PTW의 진정한 목적이 리얼 엔진 라이선스의 전면 무료화라면?

전 세계 게임 개발자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진정한 통합의 시대가 찾아올 것인가?”

프라이는 한숨을 쉬면서 허먼에게 물었다.

“PTW측에서 약속한, 이쪽에서 할 수 있는 질문의 숫자가 몇 개였죠?”

“5개.”

“지금 저희가 고른 후보는 몇 개고요?”

“120개.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

이 중의 대부분은 펙트 체크 이후에 리스트에서 빠질 질문들이니까.”

“하지만 지금 이건 사실 체크가 불가능한 질문이잖아요?

결국 이게 진짜인지 확인할 방법은 하나겠죠.

5번의 기회 중 하나를 써서 직접 물어보는 거요.

이 질문에 진짜로 그 정도 가치가 있을까요?”

“난 있다고 믿어. PTW 팬으로서의 내 감이, PTW가 그 말도 안 되는 호구 짓을 실제로 시도할 것이라고 외치고 있다.”

“근거는?”

“단 한 개의 게임사가 만드는 1개의 멋진 게임보다, 100만 명의 개발자가 만드는 100만 개의 게임이 세상을 더 멋지게 만들 것 같으니까.”

“좋아요.”

허먼의 확신에 찬 눈을 본 프라이는 들고 있던 종이를 따로 빼놓았다.

그리고는 허먼을 보며 말했다.

“이제 4개 남았네요. 이걸 어떻게 다 확인하죠?”

“회사의 지원을 받아야지. 우리 방송국엔 뉴스팀도 있으니까.

국장님께는 내가 부탁드릴게.

전사적 지원을 받아서라도, 다음 방송까지 이 모든 질문의 가능성을 철저히 확인하게 해 달라고.”

허먼의 말을 들은 프라이는 깊게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바빠 죽겠는데 어디가?”

“스타벅스 기프티콘이라도 사러 갑니다.

단 한 번의 방송을 위해 방송국 전체의 협력을 구하는 건데, 맨입으로 할 수는 없잖아요.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부탁해야죠.”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사무실을 나서는 프라이의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그 역시 이번 기획을 진행하면서, 마치 추리문제를 푸는 듯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120개의 가설.

5개의 질문.

과연 우리가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까?’

방송까지는 아직 3일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프라이의 심장은 벌써부터 기대감으로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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