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62화 (363/485)

362. 온 세상을 즐거운 게임으로

“크워어어어어어!”

마지막까지 버티던 최후의 괴물이 구슬픈 괴성을 지르며 쓰러지는 것을 보며, 허먼은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유저들로 하여금 마침내 자신들이 동경하던 영웅들과 함께하던 싸움이 승리로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지만,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경험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첫손가락으로 꼽을만한 멋진 체험의 끝이 다가왔다는 알람 소리이기도 했기에.

‘재미있었다. 진짜로.’

상혁이 이벤트의 피날레를 위해 준비한 마지막 괴수는 정말이지 터무니없이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각 채널에서 전투에 참여 중인 5천 명의 유저들이 충분히 전투의 스릴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정도의 강함을.

그 강함은, 전투에 참여한 업벤져스 멤버들조차 당황하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전력으로 날린 헉크의 펀치를 단지 몸의 균형이 조금 흔들리는 정도로 막아낸다던가, 지금까지 모든 적들의 심장을 단숨에 꿰뚫던 이글 아이의 화살이 두꺼운 비늘에 튕겨 나온다던가.

괴수의 덩치가 너무 커 단번에 밟혀 죽을 위험이 있기에 다크 위도우는 근처에 접근조차 하지 못했고, 아이론 맨이 최고출력으로 발사한 빔 포 역시 괴물에겐 통하지 않았다.

순수한 물리력이나 신체의 능력만 따지면 그 타노트보다 강한 적이었지만, 업벤져스 멤버들은 순식간에 냉정함을 되찾고 대응책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들의 뒤에는, 자신들을 진짜 히어로로 생각하는 수천 명의 유저들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알고 있었다.

지금 그들의 눈에 보이는 유저들의 숫자는 5천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그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유저들의 숫자는 3500만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그것은 업벤져스 멤버들에게 무한한 책임감을 부여하고 있었다.

“좋아요. 이젠 패턴을 알았으니 정해진 루틴대로 공격을 시작하면 됩니다.

우선 아이론 맨이 괴수의 머리 근처를 날아다니며 시선을 끄는 사이, 토르가 스톰 브링어로 적의 사지를 잘라냅니다.

그럼 잘린 신체가 작은 괴수로 변해서 본체에 합류하려 할 텐데, 헉크가 힘으로 합류를 저지하세요.

그사이 이글아이가 관통상을 입히면, 다크 위도우가 내부에 단검을 꽂아 넣으면 됩니다.”

그러자 캡틴의 말을 들은 아이론 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캡. 그 모든 과정을 리허설도 없이 해야 하는 건가?-

“이건 영화가 아니니까요.”

-젠장. 아무리 슈트를 입었더라도 저 입에 물리면 한방에 두 조각이 날 텐데?-

“그래도 해 내야죠. 우린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많은 히어로들이 저희와 함께하고 있으니까.”

캡틴의 마지막 말은 통신을 통해 게임에 접속해있는 모든 유저들에게 전달되었고, 유저들은 그런 캡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주먹을 하늘로 뻗어 열정적인 호응을 돌려주었다.

“으아아아아!!”

“캡틴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아아아아!”

“마지막 괴수를 쳐 죽이자아아아!”

수천 명이 동시에 지르는 함성을 들으며, 캡틴 어메리카가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손에 들린 망치를 빙빙 돌리며 적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마치 상대를 기다리는 것처럼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는 거대한 괴수의 눈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캡틴이 끈을 잡고 빙빙 돌리던 망치를 괴물이 있는 방향으로 던지며 외쳤다.

“승리를 위해!!!!!(For victory!)”

그것은 3500만 명의 유저들이 동시에 함성을 지르며 괴물에게 달려가게 만드는, ‘캡틴’의 명령이었다.

***

“영화보다 낫네요. 물론 영화도 좋았지만, 뭐랄까.

라이브 이벤트 특유의 긴장감? 그런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공중에 떠서 전장을 지켜보고 있던 상혁은 어느새 자신의 곁으로 순간 이동해온 서연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옆으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이씨 깜짝이야! 유저가 말 거는 줄 알았네! 일부러 투명상태로 돌려놨는데.”

“오빠가 투명상태여도 같은 운영자한텐 보이잖아요.

저도 지금 투명상태에요.”

“그렇군. 그래서, 어떨 것 같아?  이번 이벤트는?

전설이 될 수 있을까?”

상혁의 질문에 서연은 괴물을 향해 질주하는 수많은 유저들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상혁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미소로 답했다.

“저게 전설이 되지 못한다면, 세상에 어떤 이야기도 전설이 되지는 못하겠죠.

업벤져스 멤버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이벤트에 참가해주셨어요.

아마 전체 접속자 중의 태반은 어떤 식으로든 업벤져스 멤버와 함께 싸우는 경험을 할 수 있었을걸요?

물론 그중 대부분은 업벤져스 멤버의 AI와 싸운 거겠지만.”

“뭐, 뭐가 진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냥 내가 그걸 진짜라고 믿으면 그게 진짜인 거지.

민준이 구현한 AI는 그 짧은 전투 상황에서 현실 인간과 구분하는 게 불가능하니까.

오늘, 이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3500만 명의 추억이 쌓이게 될 거야.

앞으로 평생 동안 술자리에서 자랑할만한, 멋진 추억이.

그걸 생각하면, 라이선스 비용이랑 출연료로 지불한 1조 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해.”

“뭐 직원들도 비슷한 생각일 거예요.

제비뽑기로 다크 위도우의 가이드를 뽑는 자리에서 혁찬이가 뽑혔을 때, 걔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보셨어요?

거의 날아갈 것처럼 방방 뛰던데요.”

“그러는 너도 크리스 씨의 안내역으로 뽑혔을 때 엄청 좋아하지 않았냐?”

그러자 서연이 얽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 그치만, 토르 씨가 너무 잘생겼는 걸···.”

“괜찮아. 개발자가 그런 기회를 통해서 사심을 채우는 것도 그리 나쁜 건 아니니까.

그런 재미도 없으면 뭣 하러 라이선스 게임을 만들겠어?”

“오빠도 개발하면서 사심을 채울 때가 있어요?”

“사심이라···.”

상혁은 미소 지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괴물과 싸우고 있는 유저들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저게 내 사심이지.”

서연은 상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공교롭게도 괴물에게 물려 처참하게 고깃덩이가 되어가고 있는 유저의 모습이 있었다.

“엥? 유저를 괴롭히는 게 오빠의 사심이라고요?”

“미친, 그게 아니야. 아니 왜 하필 그 타이밍에 죽고 그러냐?

내가 말하고 싶은 사심은 저렇게 진지하게 싸울 수 있는 무대를 게이머들에게 제공하는 게 내 욕망이라는 거야.”

“진지?”

“사람들은 말하지.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고.

그리고 이렇게도 말하지.

왜 고작 게임 따위에 목숨을 거냐고.

그건 게임이란 컨텐츠가 가진 딜레마 같은 거야.

결국 게임이란 건 현실의 자신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매체니까.

아무리 화려한 그래픽과 웅장한 음악으로 포장해도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고 하지.

근데 그게 아니야.

그렇게 따지면, 직장도 운동도 다 마찬가지인 거니까.”

“무슨 의미에요?”

“직장을 그만둔다고 바로 내 인생이 게임 오버 당하는 건 아니잖아.

물론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애로사항이 꽃피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직장에서의 삶이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

반대로 운동도 마찬가지고.

‘왜’ 직장에서의 성공에 목숨을 거는가.

‘왜’ 고작 운동 따위에 그토록 인생을 투자하는가.

‘왜’ 인생에 아무 의미도 없는 게임의 승리에 전력을 다 하는가.

난 그 모든 질문의 대답이 다 같다고 생각해.”

“그게 뭐죠?”

“긍지.”

상혁이 말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이 특별함으로 점철되기를 바라니까.

인간이기 때문에, 우린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인간이기 때문에, 우린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길 원하지.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느낌을 받기 위해선 매우 커다란 고통과 노력을 감내해야 해.

각자가 가진 재능이 모두 다르고, 원하는 것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전부 제각각이니까.

하지만 게임은, 그 제약을 넘어 자신을 특별하게 느끼게 만들어줄 힘을 가지고 있는 매체지.”

아마도 오늘의 전투가 끝나면, 오늘 이벤트에 참가한 모든 유저들은 3일간 이어진 이벤트로 쌓인 피로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침대에 바로 눕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맥주를 마시며, 누군가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며, 누군가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며 자신이 겪은 경험을 공유하려 할 것이다.

PTW가 그들의 손에 쥐여준 것은, 단순히 게임회사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참가했다는 ‘경험’이 아닌, 그 안에서 자신이 뭔가의 역할을 해내었다는 ‘긍지’였기 때문에.

‘게임을 하면서 누군가가 지금이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하게 할 수 있다면, 그 게임이야 말로 그 게이머에게만큼은 진정한 갓겜일테니까.’

상혁은 자신의 아래서 수많은 유저들이 실시간으로 체험하고 있는 ‘갓겜’의 순간을, 흐믓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공교롭게도 허먼의 바로 앞에서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미친! 또 분열했다고?!”

최종전이 개시되기 전부터 PTW에서 강도 높게 유저들을 밀어붙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저들은 최적의 상태가 아닌 너덜너덜한 상태에서 최종전에 임하고 있었다.

3일간 게임을 하며 쌓은 포인트나 아이템, 장비를 모두 소진하고, 자신의 능력을 넘어 이제는 거의 악과 깡으로 싸움에 임해야 하는 상태.

그리고 그것은 허먼도 마찬가지였다.

[잔여 장비 수량 제로.

가장 빠른 장비의 수복까지 31초 남았습니다.

민첩 강화 부스트 해제.

금일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젠장,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단체전의 강점은, 자신이 전투에서 잠시 빠져도 다른 멤버들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허먼 근처에 있는 대부분의 유저들은 거의 걸레짝이 된 상태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며, 허먼은 토르가 등장했을 때의 데자뷰를 느끼고 있었다.

다만 그때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다른 점은, 지금은 히어로처럼 등장하여 자신들을 구해줄 또 다른 영웅이 없다는 것 뿐.

‘지원군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유저들과 업벤져스 멤버들이 전장의 곳곳에 퍼져서 고전 중이었기 때문에.

허먼은 자신을 향해 입을 벌리며 브레스를 준비하는 괴수를 보며 조용히 팔을 늘어트렸다.

‘하긴 이제 움직이려 해도 팔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지.’

사용할 수 있는 장비가 남아있다 하더라도 전투의 지속이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허먼은 조용히 패배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푸른 빛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잠깐, 푸른색?’

괴물의 브레스가 노란색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허먼은 급하게 눈을 떴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히어로를 보며 소리쳤다.

“아이론 맨!!!?!?”

기본적으로 업벤져스 멤버들중에 괴수의 브레스를 데미지 없이 막아낼 수 있는 멤버는 캡틴 어메리카의 방패밖에 없었기에, 아이론 맨이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은 커다란 리스크를 감수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괴수의 브레스는 아이론 맨의 손에 들린 푸른색 에너지 방패를 조금씩 녹여가며 강철의 남자를 뒤로 서서히 밀어내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동경하는 히어로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눈 앞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에, 허먼은 심장이 먹먹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허먼의 머릿 속에서, 전투 능력을 상실한 자신의 목숨은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허먼은 아이론 맨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그건 당신의 힘으론 못 막습니다!

포기하고 이탈하세요!”

그러나 아이론 맨은, 그의 영웅은 자신의 뒤에 있는 후배를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못 이길 것 같다고 지킬 수 있는 누군가를 포기했다면 아이론 맨이란 히어로 네임은 진즉에 버렸겠지!

나도 이 공격을 완전히는 못 막아! 그러니 빨리 다른 장소로 도망쳐!”

허먼은 다급한 표정으로 그러겠다고 대답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다리는 마치 강철의 와이어에 구속당한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스테미나 보정.’

기본적으로 캐릭터의 체력이 다 떨어지면, PRD는 강제로 신체의 움직임에 제약을 준다.

유저의 몸에 힘이 남아있더라도, 캐릭터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리고 지금 허먼의 신체에 PRD가 전달하고 있는 힘은 300KG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젠장. 젠장. 왜 하필 지금.’

허먼은 미친 듯이 손을 내리쳐 자신의 허벅지를 내리쳤다.

그러나 그의 다리는 마치 돌이라도 된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젠장! 더는 못 버텨!”

눈 앞에서 거의 반파된 방패를 아슬아슬하게 들고 있는 아이론 맨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허먼은 허공을 향해 외쳤다.

“X바아아아알! 옵티머스! 어떻게든 해봐아아!”

그러자 허먼의 간절한 외침에 대답하듯, 허먼의 귓가에 옵티머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어로 포인트가 목표 한도에 도달했습니다.

새 장비의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잔여 장비 수량 1개.]

“새 장비?! 어떻게 쓰지?”

[제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당신이 저에게 부여한, 제 이름을.]

옵티머스의 말을 듣자마자, 허먼은 옵티머스가 말한 ‘새 장비’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절제절명의 순간, 지금 타이밍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비는, 단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실험실의 AI에게 ‘그 이름’을 붙인 이유는, 오직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은 감정을 담아, 허먼은 하늘을 향해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지금의 지친 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거대한 외침으로.

“옵티머어어어스으으!”

그 순간 허먼은 볼 수 있었다.

처음 ‘실험실’에 들어간 순간부터,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20미터 짜리 로봇이, 차원을 넘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모습을.

그것은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트리게 하기에 충분한 ‘멋짐’을 가지고 있었다.

“쿠에에에에엑!!!!!”

로봇의 바닥에 깔려 괴성을 지르는 괴수를 보며, 아이론 맨은 천천히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는 뒤에 있는 허먼을 향해 말했다.

“저거, 자네 건가?”

“예.예?아, 예. 제겁니다.”

그러자 아이론 맨이 쓰고 있던 핼멧의 바이저가 위로 올라가며 안쪽의 얼굴이 노출되었다.

그 안에 있는 로벗트의 얼굴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띄고 있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멋지네. 좋은 능력이야.

여긴 맡겨둬도 되겠어.”

아이론 맨은 다시 바이저를 내린 뒤 어디론가 날아갔지만, 허먼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토디 스터크’가 그에게 한 마지막 말이, 그의 귓가에 계속 맴돌았기 때문에.

‘멋지네. 좋은 능력이야.’

무려 ‘아이론 맨’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이, 허먼의 전신을 아드레날린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허먼은 괴수의 사지를 산산 조각내고 자신을 태우기 위해 다가오는 옵티머스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알겠어. 난 오직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사실 허먼의 앞을 가로막은 아이론 맨은 진짜 아이론 맨이 아닌 민준이 만든 AI였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허먼에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에게는, 조금 전 있었던 일이 ‘진짜’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허먼은 서서히 열리는 옵티머스의 탑승석을 바라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몸에는, 어느새 PRD가 제한하고 있던 동작 제한이 완전히 풀려 있었다.

***

자존심. 집념. 분노. 열정.

폭발하는 유저들의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전장 속에서, 이벤트의 최종 보스는 자신의 역할을 다 한 채 최후를 맞이했다.

업벤져스 멤버의 공격이 아닌, 어느 한 이름 없는 유저가 전신 전력으로 쏘아낸 스킬에 맞아.

심장이 꿰뚫린 거수는 구슬픈 포효와 함께 서서히 그 거체를 광장의 바닥에 뉘었다.

그 모습은 유저들에게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쓸쓸한 모습이었다.

그들 인생에서의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당당하게 1위로 꼽을만한 이벤트가, 이제 종장에 접어들었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그것은 유저들에게도, 그리고 이벤트를 뜨겁게 달구었던 업벤져스 멤버들에게도 묘한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캡.-

“스터크?”

-즐거운 축제의 마무리가 이렇게 조용하게 끝나면 안 되지.

여긴 캡의 역할이 필요할 때야.-

캡틴 어메리카의 배우.

크리스 에벗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거대한 괴수의 등을 타고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기엔 분화구처럼 보이는 상처와 함께, 전투 도중에 그가 집어던진 묠니르가 놓여 있었다.

그는 방패를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그 망치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가상의 물체임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묠니르를 집어드는 듯한 무게감이 그의 손바닥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진짜.’

크리스는 속으로 떠올렸다.

‘PRD를 만든 회사는 괴물이군.’

대본도 없이 전장을 뛰어다니며 괴물과 맞서 싸우느라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지만, 크리스는 만약 PTW에서 다시 한번 이벤트를 한다고 해도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그 대가가 0원이라고 해도.

오늘의 경험은 그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으니까.

‘즐거운 경험엔, 그에 맞는 화려한 마무리도 필요하겠지.’

깊게 심호흡을 하며, 크리스는 손에 든 망치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시스템을 통해 모두에게 전달되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Everyone.)”

모두가 침을 삼키며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것을 느끼며, 캡틴이 소리쳤다.

“우리의 승리입니다아아아!!!(Our victory!!!!!!!!!)”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X발 우리가 이겼다고!”

“PTW! 봤냐! 우리가 너희를 이겼다아아아!”

“이게 바로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다아아아!!!”

“PTW는 PRD의 생산량을 2만배로 늘려라아아아아!!!”

순간, 캡틴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채널에 있는 5천 명의 유저만이 아닌, 7000개가 넘는 채널에 흝어진 3500만의 유저가 동시에 소리를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굳이 그의 귀로 듣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이었다.

***

“오빠, 종료 시각 지났는데···.”

“그냥 잠시 저대로 즐기게 놔둬.

가장 행복한 순간일 텐데, 굳이 방해할 필요는 없잖아.”

상혁은 승리에 젖은 유저들의 환호성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이미 공지했던 이벤트 종료 시간을 꽤 지난 시각이었지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유저들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전혀 모르는 타인과 함께 부둥켜 안고 기뻐하는 유저들의 모습을 보며, 상혁은 조용히 눈가를 훔쳤다.

그리고는 투명화를 풀고 무대 위에 서서히 착지했다.

하지만 유저들은 상혁의 등장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괴물이 쓰러진 곳은 광장의 무대와 정 반대 방향이었기 때문에.

상혁은 관객들의 시선을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돌릴 필요성을 느꼈다.

“업벤져스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지금 무대로 복귀 부탁드립니다.”

상혁의 무전을 들은 멤버들은 마치 승전 퍼레이드라도 벌이는 것처럼 유저들의 사이를 당당하게 가로질러 무대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상혁에게 악수를 청하며 상혁의 뒤에 나란히 정렬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3500만의 시선을 느끼며, 상혁은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원래는 이 이후에 중대 발표를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에.

상혁은 여기 모인 모든 관객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행사의 끝을 맞이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원래는···.”

상혁이 말했다.

“원래는 전투 이벤트 이후에, PTW의 이후 계획에 대한 쇼케이스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투가 생각보다 길어지기도 했고, 다들 너무나도 진지하게 이벤트를 즐겨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승리의 여운에 잠긴 상태에서 저희 회사의 이후 계획 등에 대해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건 분위기를 죽이는 행동이 되겠죠.

오늘 이벤트는 이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번 행사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저희가 여러분께 하려고 했던 설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즐겁게 이벤트를 즐기는 거니까요.

그런 이유로, 원래 오늘 발표 예정이었던 쇼케이스 내용은 홈페이지를 통해 따로 공지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가슴속에 품은 승리의 성취감을 안고, 집에 돌아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미 흥분한 관객들은 상혁이 뭐라 하든 환호를 보낼 생각으로 가득했기에, 상혁이 행사종료를 선언했음에도 미친듯한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열광적으로 그들의 기분을 표현했다.

미친 듯이 함성을 지르며 즐거워하는 유저들을 보면서, 상혁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 환호에 대한 보답으로 가장 중요한 정보 1가지를 알려주었다.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하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최종 협상이 결렬되어 이벤트에 참여는 하지 못했지만, HC101에 콜라보로 등장하는 히어로는 마벌의 히어로만 있는 게 아닙니다.

DC의 히어로들도 게임 안에서 만나보실 수 있죠.

이벤트 출연 계약은 결렬되었지만, 게임 안에 출연시키기 위한 라이선스는 계약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니 DC 팬분들께서도 아쉬워하지 마시고 게임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HC101 안에서라면, 여러분은 진짜 히어로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다시 한번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들으며, 상혁은 조용히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3500만의 관객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여러분같이 진지하고 열정적인 게이머와 같은 시대를 살 수 있다는 것은 저희들에게 가장 큰 영광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즐거워하시는 만큼, 저희들도 즐거워하는 여러분을 보며 행복감에 젖을 수 있었으니까요.

개발자는 게이머를 보며 행복해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저는, 한 명의 게임 개발자로서 여러분들 같이 가장 열정적이고 멋진 팬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저희가 제공하는 ‘즐거움’을 만끽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가 고작 ‘게임’이라고 말하는 것을 이토록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여러분들만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존재들이니까요.

함께 힘냅시다! 앞으로도 계속 세상을 즐거운 게임으로 가득 채울 수 있도록!”

상혁이 다시 고개 숙여 인사하자, 지금까지 있었던 환호 중 가장 큰 환호성이 관객들 사이에서 터져나왔다.

집에서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대부분이 옆집에서 소음공해로 신고당했을 정도의 거대한 함성이.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엔 옆집에 들르는 자신의 목소리를 신경 쓰는 게이머는 한 명도 없었다.

자신들에게 인생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 개발자가, 자신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반대로 그들이 개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Heeeell Yeeeeeeeeeeaaaaah!!”

“X바아아알! 사랑한다! 미친! 사랑한다고오오!!”

“P!!!!T!!!!!W!!!! P!!!!T!!!W!!!!!!!”

“내 인생에 다른 게임회사는 이제 필요없어요오오!”

“PRD 판매량만 더 늘려줘어어어!!”

그렇게.

수많은 전설은 남긴 4차 NE 컨벤션은 유저들의 눈물 젖은 함성과 함께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단일 컨텐츠 역사상 최대 동접자 수 3823만.

행사 준비에 들어간 비용만 1조 7천억.

행사 기간 연차 신청자의 폭주로 판교와 실리콘 밸리를 3일간 마비시킨 이벤트.

이벤트에 참여한 유저의 99%가 PTW의 신작 게임인 HC101을 구매하면서 게임 역사상 처음으로 달성하게 된 발매 첫날 판매량 3400만이라는 대기록.

그것은 전설을 넘어 ‘신화’라는 이름으로 기록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역사상 최고의 게임 이벤트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멋진’ 이벤트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토록 수많은 이슈를 낳은 4차 NE 컨벤션의 후폭풍이,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PRD가 만들어 낼 게임판의 변화는, 유저들이 3일간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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