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 최고의 쇼
“X바아아아아아아알!!”
또 한 마리의 집채만 한 괴물을 박살 낸 허먼은 괴성을 지르며 다음 타겟을 찾아 헤맸다.
흥분이 너무 고조된 나머지 약간의 두통마저 느껴지는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그는 전신의 혈액이 머리로 쏠리는 듯한 감각마저 느끼고 있었다.
“다덤벼어어어어어!”
‘The Iron man’.
토디 스터크가 자신과 함께 싸우고 있다는 사실.
그것은 이곳에 모인 수천 명의 유저들의 전투 의지를 불타오르게 하기에 충분한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이 전장 자체를 설계하고 제작한 PTW의 직원들은 엄청나게 바쁘게 전장의 상황을 컨트롤 하고 있었다.
“422번 채널 6시 방향에 몬스터 증원 부탁드립니다.”
“246번 채널 2시 방향 몬스터 능력치 너프하겠습니다.
잘못하면 전멸하겠어요.”
각자의 눈앞에 여러 개의 화면을 띄워놓고 전장의 전투 밸런스를 조정하는 직원들.
다양한 능력과 강함을 보유한 유저들이 쾌적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전투를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 PTW의 직원들은 각자가 가진 능력을 총동원하여 이번 이벤트에 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직원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민준은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미친, 3500만 명이 동시에 참여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겠다는 것 자체가 미친 생각이었어.”
물론 그렇다고 민준이 실제로 3500만 명의 유저를 한 공간에 모두 밀어 넣은 것은 아니었다.
애당초 PTW의 기술력으로도 그 정도의 동시접속을 처리할 만한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데다, 애써 구현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전투의 진행이 불가능한 수준일 게 뻔했기 때문에.
그래서 민준은 내부 성능 테스트를 거쳐 최적화를 통해 뽑아낼 수 있는 최대 인원인 5천 명 수준으로 각 유저들을 그룹별로 분리했다.
그렇게 나눠진 7085개의 채널.
단 한 사람에 불과한 로벗트 다우니 주니어를 7천개 이상의 전장에 동시 투입하기 위해, 민준은 기상천외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 전체 채널의 유저가 아이론 맨과 함께 싸우고 있는 거 맞지?”
“예.”
뒤에서 민준의 작업을 바라보던 현주가 묻자, 민준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상태로 대답했다.
그러자 현주는 민준에게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다시 물어보았다.
이전에 민준이 설명해주었었지만,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뭐더라? 전에 말했던 원리가···.”
“슈뢰딩거의 아이론 맨이요.”
“어 맞아. 그거.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별건 아니에요. 결과적으로 7천 개 이상의 채널에서 전투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지만, 그 전투의 모든 요소는 각 유저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단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거든요.
자신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 그리고 그냥 보기만 할 수 있는 요소.
예를 들어 제가 아이론맨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투하고 있다 쳐요.
그럼 저에게 아이론 맨의 존재는 그냥 동영상 같은 존재가 되는 거죠.
실제 현재의 ‘진짜’ 로벗트 씨는 2552번 채널에서 전투를 하는 중이지만, 그런 아이론 맨의 모습은 전체 채널에 동시에 투사되고 있는 거죠.
결과적으론 한 명의 아이론 맨을 7085개로 복사해서 전체 채널에 비춰주는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1번 채널의 전장 상황과 2552번 채널의 전장 상황의 차이에서 오는 위화감이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2552번 채널의 아이론맨이 몬스터를 공격하기 위해 빔을 쏜 공간에, 1번 채널엔 몬스터가 없을 수도 있잖아?”
“그렇죠. 그래서 만든 게 스턴트 AI니까요.”
민준이 말했다.
“예를 들어 2552번 채널의 아이론 맨의 전투로 인해 타 채널에 위화감을 줄 수 있는 수준의 격차가 벌어지리라 판단되면, AI가 자동으로 원본 아이론 맨을 한순간에 AI로 변환시킵니다.
그리고 그 채널에 맞는 전투를 수행하게 하죠.
그러면서 원본 채널의 전투와 상황을 맞출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전투 상황을 조정하다가 합류 가능한 시점에 AI에서 다시 원본 아이론 맨으로 바뀌는 거예요.
이건 단순히 유저 입장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전투에 참여한 로벗트씨에게도 적용되죠.
실제로 현재 로벗트 씨는 본인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 채널을 넘나들면서 AI로 구현된 자신과 교체되고 있어요.
조금 전엔 722번 채널에서 싸우고 있다가도, 잠시 후엔 864번 채널에서 싸우게 되는 거죠.
결과적으로 유저도 로벗트 씨 본인도 자신의 곁에서 싸우고 있는 아이론 맨이 다른 채널에서 복제되어 투영된 존재인지, 아니면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대체된 AI인지, 아니면 진짜 로벗트 씨 본인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전투가 진행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7천 개가 넘는 전장에서 동시에 전투하고 있지만, 그건 투영된 영상이나 AI, 혹은 로벗트 씨 본인일 수 있다는 거네?”
“그렇죠. 하지만 투영된 영상은 실제 전장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니까 실질적으로는 AI로 대체되어있는 채널을 제외하면 나머지 채널 전체의 로벗트 씨는 진짜나 다름없는 존재라고 봐야겠죠.”
“말 그대로 슈뢰딩거의 아이론 맨이구나.”
“뭐, 중요한 건 유저가 자신이 진짜로 아이론 맨과 함께 싸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니까요.
이게 유일한 방법이었죠.
물론 저거 만들려고 스컹크 웍스 멤버들이 엄청나게 고생하긴 했지만···.”
민준이 코드로 가득한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려 전장을 비추고 있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렇게 행복해하는 유저들의 표정을 보니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겠지? 아무리 슈뢰딩거 같은 존재라고 해도, 저기서 게임하고 있는 유저들은 아이론 맨과 함께 싸우고 있다고 믿고 있을 테니까.”
“DC 히어로들도 참전시킬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마지막까지 협상이 되지 않은 게 아쉽네요.”
원래 상혁이 그렸던 게임은, 아이론 맨이 전투를 개시하고 그 뒤를 이어 공중을 날아온 배트카가 멋지게 전투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DC측도, 마벌 측도 세계관 붕괴 등의 이유로 합동 콜라보 이벤트에 대해 탐탁지 않아 했기 때문에 궁극의 콜라보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뭐, 그래도 업벤져스 1기 멤버는 전원 캐스팅했으니 역대 최고의 이벤트가 되긴 할 겁니다.
문제는 참전하는 게스트가 늘어날수록 현재 유지 중인 중첩 상태에서 위화감이 발생할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건데, 그건 어떻게든 되겠죠.
그렇게 시뮬레이션을 많이 했으니까.”
PTW의 전 직원이 참여한 최종 보안 테스트에선, 테스트에 참여한 직원 누구도 어느 채널의 전투가 진짜 게스트가 참여한 전투인지 맞추지 못했었다.
민준은 시스템에 대해 파악이 된 직원들조차 맞추지 못한 트릭을 유저들이 파악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저 난장판인 전장 한가운데서, 자신과 스컹크 웍스가 심혈을 기울인 시스템의 허실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에.
민준이 그렇게 확신할 만큼, 그가 설계한 스턴트 AI들은 완벽에 가깝게 전투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어느 한 명 빠짐없이, 자신의 인생 최고의 전투를 보여주기 위해 미친 듯이 싸우게 할 정도로.
그들이 그토록 전투에 몰입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아이론 맨이 내 전투를 보고 계셔!!!’
적어도 히어로물의 팬들에겐, 그것 이상의 이유는 전혀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제, 그 흥분을 몇 배 이상으로 만들어줄 시간이 찾아왔다.
“지금부터 2차 웨이브를 시작합니다.”
민준이 말하자 상황실에 있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일제히 전장을 비추고 있는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
“영화판의 업벤져스 멤버들만 있었다면 5분 안에 전멸했겠네.”
양팔에서 생성된 미사일을 쏘아내면서, 로벗트가 중얼거렸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수천 명의 히어로들이 각자의 능력을 총동원해서 괴물들과 싸우고 있었지만, 좀처럼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벗트는 그것이 더 좋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전장을 날아다니며 자신이 위기에 처한 유저들을 구해줄 때마다, 자신 역시 진짜 히어로가 된 기분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또 한 명의 히어로를 포위하고 있는 괴물들을 향해 미사일을 날리며, 자비스에게 음성으로 지시를 내렸다.
“자비스? 나노 인젝터(Nano Injector)를 준비해.
슬슬 슈트에 내장된 나노 머신들의 양이 줄어드는 게 느껴지니까.”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등에서 사출되는 미사일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보면서, 로벗트는 자비스에게 나노 머신을 보급하는 파츠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PTW에서 그에게 히어로 같은 멋진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영화판에서보다 더 강력한 능력을 갖춘 슈트를 제공해주긴 했지만, 상향된 능력의 슈트를 가지고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적들이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젝터 결합 완료.]
순간 로벗트의 등 쪽에서 둔탁한 충격과 함께 미세한 압력이 자신의 전신을 감싸기 시작한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빔 공격 같은 에너지 계열의 공격이 아닌 미사일 공격같은 소모성 공격으로 소진된 나노머신을 보충하기 위해 준비된 보조 파츠가 자신의 슈트에 합체되는 감각이었다.
조금 전보다 살짝 무거워진 몸의 움직임을 느끼며, 로벗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다시 위기에 처한 유저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리려다 공중에서 그대로 멈춰섰다.
언제 생겼는지 모를 거대한 포탈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사용한 어떤 무기로도 잡을 수 없을 것 같이 생긴 거대한 네발 괴수가 등장했기 때문에.
그것은 ‘집채만 하다’라는 단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빌딩만 하네.’
대 배우답게, 시나리오 없이도 대충 이번 이벤트의 연출 흐름을 파악하고 있던 로벗트는 PTW가 어째서 그 거대한 괴물을 전장에 투입한 것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아는 한 히어로의 가장 임펙트 있는 등장을 위해서, 가장 좋은 희생양이 될만한 괴물이 바로 그 괴물이었기에.
새 몬스터의 등장에 위압되어가던 전장의 분위기가 크게 변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헉크다!”
누군가의 외침보다 더 빠르게 시작된 엄청난 폭음.
적진의 반대편에서 시작된 폭음은 마치 기관차와 같은 속도로 무언가가 빠르게 전장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유저들은, 하늘로 날아가는 3층 건물 크기의 괴물들을 보면서 그들과 함께 싸우기 위해 다가오는 존재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마벌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힘’이란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존재만이 저런 괴력을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
“헉크가 온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비산하는 적들 사이에서 거대한 녹색 거인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절대 쓰러트리지 못할 것 같은 거대 괴수의 아구창에 강력한 펀치를 꽂아 넣었다.
마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날 때나 볼 수 있을 법한, 공간을 찢어발기는 충격파와 함께.
괴수의 거대한 몸이 녹색 거인의 정 반대 방향을 향해 걸레짝처럼 날아가 버렸다.
“저건 확실하게 영화판보다 센 거 같은데요?”
공중에 떠 있는 SF 틱한 비행기 안에서, 아래를 바라보던 붉은 머리 미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녀의 옆에 서 있던 혁찬이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말했잖아요. 멤버 전원이 영화판보다 더 강력한 능력치로 전투에 참여하게 될 거라고.”
“헉크나 아이언맨이야 그야말로 슈퍼파워를 가진 히어로니 그렇다 쳐도, 제가 받게 될 건 뭐죠?
전 전투 능력이 뛰어난 것 말고는 별다른 슈퍼 파워가 없는 히어로인데요?”
“그래서 암살자에 어울리는 장비로 준비해드렸습니다.”
혁찬은 옆에 놓여있는 두 자루의 단검을 집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마치 에너지가 감도는 것 같은 형광색 빛이 검신을 감싸고 있는 SF틱한 느낌의 단검이었다.
“이 검에 스치기만 해도 20미터 이하 크기의 몬스터는 무조건 일격에 죽습니다.
신체 능력도 진짜 블랙 위도우에 걸맞게 버프 해드렸으니, 전장을 누비며 적들을 암살해주세요.
가급적이면, 최대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밌겠네요.”
그녀는 혁찬을 향해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녹일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성이 혁찬에게 물었다.
“그럼 나는?”
“이글 아이 씨가 가진 활은 사거리 무제한에 30미터 두께의 생체 표적을 관통하고 아무데나 쏴도 적의 심장을 자동으로 추적해서 날아갑니다.
화살을 꺼내보시겠어요?”
남자는 혁찬의 말대로 등에서 화살을 꺼냈다.
그러자 혁찬이 화살 아래쪽에 그려진 4줄의 선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원하는 선에 손을 대면 화살의 기능이 변합니다.
붉은색 선을 만지고 화살을 쏘면 강철도 녹이는 대형 폭발이 화염과 함께 터져 나올 거고, 노란색은 어디든 박혀서 빠지지 않는 와이어를, 푸른색은 관통과 함께 상처 부위를 드릴처럼 벌려버리는 화살이 나갈 거고 녹색은 근처에 있는 유저들을 회복시키는 회복 구름을 형성할겁니다.
직접 맞춰도 데미지 대신 체력을 회복시켜줄 거고요.
업벤져스 멤버중에 유일하게 힐링 능력을 부여받은 멤버시니 전장에서 적절하게 싸워주세요.
그리고 캡.”
혁찬은 가장 안쪽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옆에는 별이 그려진 커다란 방패가 놓여져 있었다.
“당신이 목소리는 아무리 멀리 떨어진 유저에게도 다이렉트로 전달될 겁니다.
그리고 방패가 대부분의 데미지를 흡수하는 건 물론이고, 던진 방패에 충돌한 적들이 뒤로 튕겨 나가게 될 거고요.
신체 능력도 10미터 크기의 괴물 정도는 펀치 한 방으로 묵사발 낼 수 있을 정도로 강화되었으니 전투엔 지장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저것’도 있고요.”
캡틴은 자신의 옆에 놓여있는 ‘망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어 들며 말했다.
“좋네요.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었지만, 지금 이게 훨씬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뭐 그렇죠. 뭣보다 팬들이 즐거워할 테니까요.
그러니 즐기시면 됩니다.
저희 PTW 개발팀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히 만든 ‘업벤져스’의 능력을요.”
캡틴은 망치를 빙빙 돌리기 시작하면서, 조용히 전장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다른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 말대로입니다.
이미 저에겐 이것이 단순한 이벤트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저들은 우리를 배우가 아닌 진짜 히어로로 생각하고 있죠.
그리고 PTW에서는, 저희가 진짜 히어로가 될 기회를 준 거고요.
그러니 즐깁시다.
수천만 명에게, 죽을 때까지 기억에 남을만한 최고의 쇼를 선사할 수 있도록.”
캡틴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장을 향해 뛰어내리자, 나머지 두 사람도 캡틴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혁찬은, 그런 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개 부럽다. 나도 직원만 아니었으면 저기 끼어서 함께 싸우는 건데.”
모두가 부러워하는,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에서 다니는 대가는, 정작 본인은 자신이 제작한 그 이벤트에 유저로서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X발?!? 업벤져스 멤버가 전부 참여하다니!?! 대체 출연료만 얼마를 지불한 거야?!”
허먼은 정확히 PTW가 배우들의 출연료로 얼마를 지급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PTW가 이번 한 번의 이벤트를 위해서 지출한 비용이 자신의 상상을 넘어선 금액일 것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의 곁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히어로들은, 현재 지구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배우들이었으니까.
이번 NE 컨벤션이 가상의 공간에서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허먼은 속으로 안도했었다.
사실 NE 컨벤션은 참가하는 게이머들에겐 세계 최고의 게임쇼 중 하나였지만, PTW입장에서는 낮은 입장료만 받고 엄청난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이번 행사를 세트제작비가 들지 않는 가상 공간에서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허먼은 드디어 PTW가 NE 컨벤션에서 매번 보던 적자를 벗어날 방법을 찾았구나 하며 기뻐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이번 이벤트에 참여한 배우들의 몸값과 마벌에 내야 했을 라이선스비를 합치면, 역대 NE 컨벤션의 모든 비용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내야 했을 테니까.
유저들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수조 수천억을 지불하는 회사.
그리고 지금의 자신은, 그 회사가 준비한 모든 것을 100% 즐기는 중이었다.
“크웨에에에에엑!!”
허먼은 자신의 뒤에서 자신을 덮치려던 20미터 크기의 괴물이 뻥 뚫린 가슴을 부여잡은 채 천천히 쓰러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서 자신을 보고 미소짓고 있는 이글 아이의 모습도.
허먼이 고개를 돌리자, 전장 저편에서 영문도 모른 채 발목을 붙잡고 줄줄이 쓰러지고 있는 괴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괴물들의 사이를, 마치 체조라도 하는 듯한 날렵한 움직임으로 빠르게 누비고 있는 작은 여성의 모습과 함께.
그리고 그 순간, 허먼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평생 들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위대한 히어로의 목소리가.
“2시 방향 방어선이 무너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혹시 여력이 남는 히어로들은 그쪽으로 지원 부탁드립니다.
조금만 버텨주시면 됩니다.
저도 갈 테니까요.”
적어도 이 전장에 있는 사용자 중엔, 무려 ‘캡틴’의 명령을 무시할 만한 유저는 없었다.
허먼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2시 방향을 향해 뛰어가며, 현재도 자신을 서포트하고 있는 AI, 옵티머스에게 외쳤다.
“옵티머스!”
[명령 대기 중입니다.]
“남은 장비는?”
[현재 대부분의 장비가 자동 수복 중입니다.
선택하실 수 있는 옵션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젠장. 광역 공격이 가능한 무기는?”
[전부 소진되었습니다.]
“젠장, 프라이와 통신 연결해.”
[연결했습니다.]
옵티머스가 동료인 프라이와 통신을 연결하자, 허먼은 귓가에 손을 댄 채로 소리를 질렀다.
“프라이!”
-예?-
“젠장. 지금 어디야?”
-아바타 샵 근처에서 싸우는 중인데요?-
“거기 위험해?”
-아뇨. 대충 정리될 것 같습니다. 헉크가 다 박살 내는 중이라서.-
“그럼 당장 2시 방향으로 튀어와. 롤러코스터 입구 있는 쪽으로.”
-왜요?-
“여기 진짜 미친 듯이 위험하다.”
허먼의 말대로, 그가 도착한 2시 방향의 전장은 거의 붕괴되기 직전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의도적으로 전황을 불리하게 만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러나 허먼은 그런 불리함이 PTW의 의도적인 진행에 의한 것임을 눈치채고 프라이를 부른 것이었다.
“분명히 마지막 히어로가 여기서 등장할 거야.
아니면 여기가 뚫려서 우리가 전멸하던가.”
-미친, 일단 여기 상황이 정리되면 바로 갈게요!-
통신을 마친 허먼은 바로 전투에 합류했다.
그러나 캡틴이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밀리고 있던 전장의 상황은 히어로 몇 명이 합류한다고 해서 역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으아아아악!”
또 한 명의 유저가 괴물의 입안에서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을 보며, 허먼은 주먹에 땀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물론 이 세계에서 죽는다고 해도 현실의 자신이 죽는 것은 아니었지만, 5분의 재생 패널티는 지금 상황에서 너무 큰 리스크였기 때문에.
아직 한 번도 죽지 않은 허먼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미리 죽어서 부활한 프라이를 통해 캐릭터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전달받은 상태였다.
‘이 중요한 전투를 영화관 같은 공간에서 스크린으로 지켜보고 싶지는 않아.’
물론 이벤트 자체는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으니 그리 큰 패널티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투에 참여한 유저의 입장에서 그것은 엄청난 패널티였다.
업벤져스 멤버들과 함께 싸울 수 있는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스크린으로 전장을 바라본다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유저들로 하여금 이벤트의 내용을 놓치지 않게 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이벤트에 참여하도록 만들기 위해 PTW가 준비한 ‘최소한의 패널티’였다.
***
“저리 꺼져!”
손에 들린 드릴을 괴물의 머리에 박아넣으며, 허먼은 필사적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리고는 쓰러지는 괴물의 시체 위에서 가쁜 숨을 내쉬었다.
“젠장. 얼마나 버텨야 나오는 건데?”
이미 ‘이쯤이면 충분히 위기 상황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간 그는 조금이라도 빠르게 마지막 히어로가 전투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허먼의 주변에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유저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애간장이라도 태우려는 것처럼, 기대하고 있던 마지막 히어로가 등장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PTW에서는 약이라도 올리려는 것처럼 허먼이 있는 지역의 몬스터 스폰 비율을 점점 올리고 있었다.
캡틴의 부탁을 받고 합류한 유저들이 전력으로 싸워도 심하게 밀린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두 마리를 죽이면 세 마리가 달려들고, 세 마리를 죽이면 네 마리가 들려드는 상황에서, 허먼은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꼈다.
‘살고 싶다’라는 강한 욕망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과 함께.
“으아아아악!!”
순간 왼팔에서 느껴지는 강한 압박에 허먼은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신체에 상처를 남길 정도의 통증은 아니었지만, 피로에 절어있는 근육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한 통증이었기 때문에.
허먼은 지금이라도 자신의 팔을 절단하려는 것처럼 물어뜯는 네발 괴수의 머리에 다른 손에 장착한 드릴을 박아 넣었다.
그리고는 쓰러지는 괴수의 뒤편에서 그를 잡아 찢기 위해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세 마리의 다른 괴수를 보았다.
자신을 향해 벌려진 커다란 이빨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허먼은 자신도 모르게 허공을 향해 소리 질렀다.
“X나 늦네!!!! X바아아아알!!!!!!!”
그리고는 눈을 질끈 감고 첫 번째 게임 오버를 기다렸다.
-파지지지지직!-
그때.
허먼이 모든 것을 놓고 포기하기 직전.
다른 유저들도 전멸을 직감하며 모두가 전의를 상실하기 직전에, ‘그’가 등장했다.
전장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뇌전의 줄기를 뿜어 대면서.
그것은 다른 히어로가 모두 합류한 상황에서도 PTW가 마지막까지 대기시키고 있던 히어로.
그리고 이번 이벤트에서 전투력 관련 버프를 가장 많이 받은 히어로.
‘토르’의 등장이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아무도 내 멋진 등장을 보지 못 할 뻔했네.”
크리스는 자신이 등장하며 내뿜은 뇌전의 폭발이 몬스터들을 풍선처럼 터트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근처에 쓰러져 있는 한 유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내가 늦었습니까?(Am i late?)”
그러자 그 유저가 크리스의 손을 붙잡고 일어나며 말했다.
“아뇨. 정말 멋진 타이밍이었습니다. 전 진짜 1초만 늦으셨어도 사망할 뻔했거든요.
저보다 먼저 죽은 유저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들이 죽어서까지 시간을 벌어주었기에 제가 여기 등장할 수 있었던 겁니다.
만약 이곳의 히어로들이 전멸했다면, 전 다른 곳에서 등장했을 테니까요.”
토르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난 유저, 허먼은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1초만 먼저 죽었어도, 자신은 저승 대신 마련된 극장에서 스크린으로 토르의 등장을 보아야 했을 테니까.
마음속으로 마지막까지 버티게 해준 하늘에 감사하며, 허먼은 다시 전투 자세를 취하고 토르에게 말했다.
자신이 평생 눈앞의 상대에게 이 말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말을.
“아직 적이 남아있습니다.
함께 싸우시죠.
천둥의 신이 어떤 존재인지, 저 괴물들에게 보여줍시다.”
그러자 토르는 어린애만 한 크기의 거대한 도끼, ‘스톰 브링어’를 등에 메고는 허먼을 향해 마주 웃어 보였다.
그리고 허먼이 지금까지 들어본 토르의 대사 중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게 될 대사를 날렸다.
“팝콘처럼 튀겨버리죠. (Let's make it like popcorn.)”
전장의 벼락. 천둥의 신은 그렇게 이번 행사의 게스트 중 마지막 주인공으로 전투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