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60화 (361/485)

360. 평생 기억될 추억

영화에서와 똑같이, 바닥에서 솟아 나온 강철의 기계 팔들을 바라본 로벗트는 양팔을 벌려 기계들이 자신이 슈트를 벗기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깔끔한 양복 슈트를 입은 모습이 되어 팬들의 앞에 서서 말했다.

“스터크 엑스포 때와 90% 이상 흡사한 느낌이긴 한데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네요.

그때는 제 뒤에 아름다운 여성분들이 춤추고 있었죠.

혹시 지금 무대 뒤에서 댄서들이 대기 중입니까?”

능청스럽게 말하는 로벗트를 본 상혁이 미소 지으며 마이크를 들어 말했다.

“아뇨. 댄서

는 없습니다.”

“아쉽네요. 그것만 있으면 정확히 스터크 엑스포의 재현이 가능했을 텐데. 그래도.”

로벗트가 말했다.

“이게 멋진 행사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죠.”

미소 지으며 밝게 외치는 로벗트를 보며, 상혁은 속으로 감탄했다.

그는 대본을 넘겨주는 대신 그냥 알아서 연기해달라는 자신의 황당한 부탁에도 매우 능숙하게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드립의 황제라더니···.’

반짝이는 눈으로 로벗트의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하는 팬들의 모습을 보며, 상혁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

“설마 저 타이밍에 로벗트 다우니 주니어 씨가 등장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이론 맨의 팬들에게는 엄청난 선물이겠는데요?”

“물론 조금 아쉬운 건 가장 평가가 안 좋은 2편의 오마주를 했다는 거지만, 사실 2편에서도 스터크 엑스포에서의 등장 장면은 멋있는 장면이기는 했죠.”

수천만에 달하는 대부분의 PTW팬들이 딥 다이버를 사용하여 행사에 참여하고 있긴 했지만, 단일 컨벤션 사상 가장 큰 행사로 발전한 NE 컨벤션은 방송을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그 모습을 비추는 중이었다.

특히 행사 종료 마지막 1시간동안 진행되는 쇼케이스에 대한 주목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기에, 전 세계의 방송국들은 대부분 특별 방송을 편성하여 NE 컨벤션의 쇼케이스 장면을 송출하고 있었다.

그들이 현재 구할 수 있는, 그나마 전문가축에 속하는 인물들을 게스트로 삼아서.

그리고 그 게스트들은, 일제히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의 등장’에 대해 엄청난 찬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던 PTW의 쇼케이스.

거기서 등장한 것은 다들 마음속으로는 바라고 있었지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기대는 하지 못했던, 바로 ‘그’ 프렌차이즈의 등장이었습니다!”

진행자의 말에 옆에 있던 게스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겠죠.

마벌 프렌차이즈의 주인은 전 세계에서 저작권 관리에 가장 까다로운 그 회사인 데다, 단순히 라이선스를 따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아니, 엄밀히 말하면 PTW에서 슈퍼 히어로가 주제인 게임을 제작 중이라고 공공연히 밝히고 다닌 만큼, 꽤 많은 유저들이 어떤 형태로든 콜라보가 진행될 것이라고 예상은 했을 겁니다.

단지, 그게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의 콜라보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겠죠.”

“무슨 뜻입니까?”

“단순히 캐릭터나 세계관 라이선스를 빌려오는 것보다, 저런 식으로 가장 인기 있는 영화 프랜차이즈의 배우들 자체를 데려다 쓰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는 겁니다.

그냥 적당히 비슷하게 생긴 캐릭터 하나 만들어서 성우 하나 붙이고 ‘이게 아이론 맨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이미 출연료만 수백억에 달하는 배우들을 게임 안에 삽입하는 것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요.

물론 마벌에 지급해야 하는 라이선스 비용도 천문학적이겠지만 배우들의 출연료도 엄청나게 지급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팬들은 엄청나게 좋아하지 않을까요?

물론 코믹스 시절부터 원작의 히어로들을 좋아하던 수많은 팬들도 있겠지만, 현재의 마벌 프랜차이즈의 팬들은 영화를 통해 유입된 팬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을 테니까요.”

“좋아하겠죠. 문제는 그 ‘좋아함’이 없어도, 이미 HC 101의 판매량은 거의 확정적으로 천장을 찍을 거란 겁니다.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을 보면, HC 101은 굳이 콜라보를 하지 않아도 그 게임 자체가 게이머들로 하여금 PRD를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강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만약 게임이 그다지 매력 있는 게임이 아니었다면 마벌과의 콜라보는 꽤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원래는 적게 팔릴 게임이 시네마틱 유니버스 팬들에 의해서 더 팔리게 될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다르죠.

이미 잘 팔리는 게 확정된 게임에 마벌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팬들이 더 유입된다고 해서, 절대로 그 콜라보에 들어간 비용만큼의 판매량 증가는 기대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 말은 PTW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무리한 콜라보를 진행했다는 말입니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팬들이야 로벗트 다우니 주니어가 주인공이 아닌 아이론 맨 신작을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게이머들은 마벌 콜라보가 아니어도 HC 101을 미친 듯이 구매했을 테니까요.”

“그럼 왜 굳이 수천억의 손해를 감수하고 콜라보를 진행한 걸까요?”

진행자의 질문에 게스트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나도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팬 서비스겠죠. PTW가 언제 적자 신경 쓰고 게임 만들던 회사인가요?

어차피 라이선스 비용으로 나가는 것과 개발비 다 합친 것보다는 더 벌 테니, ‘적게 벌더라도’ 팬들이 더 좋아할 만한 선택을 한 걸 겁니다.”

게스트의 지적은 정확했다.

비록 마벌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팬들의 숫자가 엄청난 수준이긴 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매출 상승액은 PTW가 지불한 막대한 출연료와 라이선스 비용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영화 팬들이 게임을 더 구매해준다고 해도, 출연료를 합쳐 조 단위의 라이선스 비용을 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무리한’ 콜라보를 진행한 당사자인 상혁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크······. 1원 한 푼 아깝지 않다.’

눈앞에서 ‘아이론 맨’ 그 자체인 남자가 멋지게 썰을 푸는 모습.

그리고 그런 그를 동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수만 명의 반짝이는 눈빛들.

솔직히 말하자면, 비용적인 측면을 따지면 다른 게임회사가 하는 것처럼 원작의 라이선스만 따와서 자체 캐릭터로 콜라보를 진행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었다.

하지만 상혁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 모인 수많은 게이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영화에 나온 것과 ‘비슷한 느낌의’ 캐릭터와 함께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 나온 ‘아이론 맨’ 본인과 함께 싸우는 것일 테니까.

상혁은 그들의 그런 바람을 들어주고 싶었다.

비록 그들의 기쁨을 위해 필요한 비용이 얼마가 든다 하더라도.

상혁은 무대 위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는 로벗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저에게 말하는 겁니다.

‘당신을 아이론 맨으로 만들어드리죠.’

이상한 말이죠?

제가 아이론 맨인데, 절 아이론 맨으로 만들어주겠다니.

전 그 말이 조금 건방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가 트럭에 싣고 온 물건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죠.

거기엔 붉은색과 금색으로, 전 세계에서 오로지 저만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PRD가 실려있었으니까요.”

로벗트는 상혁이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이 집에 찾아온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고 있었다.

상혁은 적기를 기다려 로벗트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이미 하늘에서 떨어진 아이론 맨의 등장으로 올라갈 대로 올라간 유저들의 텐션을 생각하면, 이제야말로 이 쇼케이스의 ‘진짜’ 피날레를 유저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적기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재미있는 에피소드 감사합니다. 로벗트 씨.”

“게임 제작 과정에 참여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면 온종일도 이야기할 수 있는데요.”

“그건 따로 시간을 내서 자랑할 기회를 드리죠.

지금은 더 중요한 이벤트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고개를 돌려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HC101의 게임 플레이 안에 마벌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히어로들을 만나 함께 싸우고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퀘스트들을 개발해서 넣어놓았습니다.

비록 3일간의 컨벤션 기간 동안에는 그 기능이 잠겨 있었지만, 오늘 컨벤션이 종료된 이후로는 해당 봉인이 풀려 여기 계신 토디 스터크 씨나 다른 마벌 히어로들과 함께 빌런에 맞서 시민들을 구하는 멋진 체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예. 지금 무대에는 비록 마벌의 대표로 토디 스터크 씨만 나와 계시지만 게임 안에서는 나머지 히어로들도 모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콜라보를 성사시키는데 거의 게임 제작비 전체와 맞먹는 무지막지한 비용이 들어가긴 했지만, 저희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개발자이기 이전에 게이머로써, 최고의 히어로 게임이라면 응당 그 안에서 최고의 다른 히어로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이 맞습니까?”

상혁이 질문하자 수만 명의 관객이 동시에 소리 질렀다.

“Waaaaaaaaaaaaah!!!!!!!!”

“Yeeeeeeeeeeeeeeees!!!!!!!!!!!”

“조금이라도 빨리, 게임 안에서 마벌 히어로들과 싸우고 싶으십니까?!”

“Yeeeeeeeeeeeeeeeahhhhh!!”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이 행사의 피날레에 어울리는, 가장 완벽한 마무리가 될 이벤트를!”

허먼과 리차드는 다른 관객들과 함께 목청이 터질 것 같은 환호성을 지르려 했다.

그러나 관객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내기도 전에, 수만 명이 동시에 내는 압도적인 성량을 찍어누르는 듯한 거대한 굉음이 그들의 귓가에 들려왔다.

-콰아아아앙!!-

“어? X발 뭐야!?”

“뭐지?”

소리는 그들의 뒤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관객들은 일제히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장 저편의 광경을 보고는 사색이 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괴물?”

하늘 빛으로 반투명하게 번쩍이는 장벽에 가로막힌 수많은 괴물들이 지금이라도 장벽을 뚫고 달려들 것처럼 미친 듯이 배리어를 긁어대고 있었다.

눈으로 대략 짐작되는 숫자만 수천.

그리고 그 중간중간에는, 명백하게 중간 보스임을 암시하는 것처럼 다른 괴물들보다 월등히 체구가 큰 다양한 형태의 괴물들이 천천히 장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 저건?”

상혁은 행사가 시작되고 나서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로벗트를 보며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그에게 말했다.

“게임 안에서의 아이론 맨은 인공지능이 조종하는 게임 캐릭터죠.

팬들은 ‘진짜’ 아이론 맨과 함께 싸워보고 싶을 겁니다.

토디 스터크 씨.

저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세요.

저들이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손자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나는 진짜 아이론 맨과 함께 싸운 적이 있었단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PTW가 준비한 이번 행사의 ‘진정한 피날레’.

그것은 마벌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웅들과 함께 펼치는 게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초대형 전투 이벤트였다.

***

‘나보고 이 가상 세계 안에서 저것들과 싸우라고?’

로벗트는 저 멀리 보이는 괴물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들의 흉악한 모습은, 자신이 아는 아이론 맨의 능력만으로는 절대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은 위암감을 풀풀 풍기고 있었다.

‘뭐, 설마 내가 지는 그림을 그려놓지는 않았겠지.’

로벗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상혁에게 물었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이건 저에게도 평생 기억에 남을 행사가 될 것 같으니까.

근데 방금 제 슈트는 바닥에서 나온 장비들이 벗겨버렸잖아요?

어떻게 다시 호출하죠?”

상혁은 미소 지으며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꺼내 로벗트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방금 회수한 장비는 Mk-4 슈트잖아요?

그걸로 ‘저것들’을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아마 눈에 익은 장비일 겁니다.”

로벗트는 자신의 손에 들린 목걸이를 보았다.

그리고는 탄성을 터트리며 상혁에게 말했다.

“이건!?”

“맞아요. 영화에서는 소품이었지만, 그건 진짜로 동작하는 물건이죠.”

상혁이 로벗트에게 던져준 목걸이.

그것은 영화 ‘인피니트 워’에서 토디 스터크가 착용했던, 나노 슈트가 내장된 바로 그 목걸이였다.

“버젼은 Mk-50입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헉크 버스터도 소환 가능하니 참고하시고요.”

상혁의 말에 로벗트가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적이 있는 방향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광장에 모인 관객들은 영화에서 나왔던 바로 그 장면이 재현되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로벗트가 목에 걸린 목걸이를 가볍게 터치하는 순간, 수많은 나노 입자들이 목걸이에서 퍼져 나와 그를 ‘아이론 맨’으로 만드는 그 장면을.

그것은 수만 명의 관객들이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를 참지 못하게 만드는, ‘멋짐’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아이론맨이다아아아!!!”

“Waaaaaaaaaaaaaaaaaah!!!!!”

“Yeeeeeeeeeeeeeeahhhh”

“It’s Fucking Awesome!!!!”

하늘로 날아올라 적을 향해 돌진하는 아이론 맨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곧 자신의 차례도 올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들의 그런 예상처럼, 아이론 맨이 적들에게 도착한 순간 그들의 귓가에 일제히 음성이 울려퍼졌다.

그것은 그들이 HC 101에서 히어로로 활동할 때, 그들을 도왔던 ‘어시스트’들의 목소리였다.

[사용자 허먼.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 상황입니까?]

“딱 기다리던 타이밍에 말을 거는 군. 맞아.”

[원래대로라면 실험실 장비의 외세계 방출은 불가하지만, 한정적인 권한을 부여받아 일시적인 전송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장비를 전송할까요?]

“어떻게 하면 돼?”

[언제나처럼, 당신의 히어로 네임을 불러주세요.

그럼 실험실이 당신이 있는 차원 좌표로 장비를 전송할 겁니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게임을 플레이하며 자신이 직접 지정했던 히어로 네임을 읊조렸다.

“프라임.”

그러자 익숙한 무게감과 함께, 허먼은 자신의 아바타가 히어로로 변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동시에 변신하고 있는, 수만 명의 다른 히어로들의 모습과 함께.

그것은 장관이라는 표현 외에는 다른 표현을 붙일 수 없는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영화보다 이게 더 멋지네.”

하늘에서 지상에 있는 수만 명의 유저들이 일제히 히어로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로벗트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지금도 자신을 기다리는 자비스에게 말했다.

“자비스?”

[대기 중입니다. 주인님.]

“해야 할 일은 알지?”

[적들을 괴멸시키는 것 말입니까?]

특유의 기계적인 목소리로 답하는 자비스의 목소리를 들으며, 로벗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래서 전투를 준비하는 다른 히어로들의 몫이지, 자신의 역할은 아니었기에.

모두가 동경하는 ‘선배’ 히어로으로서, 그는 단순히 전투를 수행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펼쳐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걸로는 부족해.”

[무엇을 더 하시려는 건가요?]

“그냥 이기는 거로는 안 되지.

우린 오늘 전설이 되어야 해.

여기 모인 수만 명의 관객의 가슴속에, 평생 잊히지 않을 추억을 남겨주자고.”

[명령을 좀 더 구체화해주시기 바랍니다.]

“끝내주게 멋지게 싸우자는 소리야.”

그렇게 말하며, 로버트는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양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슈트는 정확하게 그가 기대한 동작을 수행했다.

그의 등에서 일제히 기계 파츠가 날아올라, 여러 개로 구성된 빔 발사기의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전투 개시.”

보기에도 엄청나 보이는 출력의 광선이 적들을 향해 날아가는 것을 보며, 로벗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이 행사가 끝나고 나면, 자신도 HC 101이라는 게임의 유저가 되어 있을 것 같다고.

그가 그렇게 생각할 만큼, PTW에서 개발한 가상현실의 세계가 너무나도 환상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프랜차이즈의 히어로의 빔 포화를 시작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후에 ‘원작 영화가 시시해 보인다’라는 평가를 받게 만들어, 마벌 관계자를 빡치게 만들었다는 전설의 전투가.

그리고 그 순간, 조용히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던 히어로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는 방패를, 누군가는 거대한 도끼를, 누군가는 활과 화살을 들고.

그런 그들의 앞에는, PTW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 웃는 얼굴로 그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순서가 되었나 봐요.”

서연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그러자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연에게 투덜거렸다.

“제게 로벗트 씨랑 같은 역할을 시켰어도 끝내주게 해냈을 텐데요.”

“알아요.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겁니다. 크리스 씨.

하지만 당신의 역할은 전투의 장을 여는 게 아니에요.

위기의 순간에, 멋지게 번개를 날리며 전장에 도착하는 거죠.

그것도 나름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서연의 말에 크리스가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도끼를 어깨에 걸쳐 메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요. 그런데 누굴 박살내면 되죠?”

“유저들의 힘으로 상대하기 버거워 보이는 적이라면 누구든지.

밸런스는 저희가 유동적으로 조절하고 있어요.

초반에 기세 좋게 시작된 전투는 조금 있으면 유저들의 열세로 변하게 되겠죠.

크리스 씨의 등장 순서는 바로 그때입니다.

가장 히어로다운 모습이 무엇인지를, 아이론 맨보다 멋진 모습으로 팬들에게 각인시켜주세요.”

“OK.”

순간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빛기둥이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이 ‘피날레’의 순간에, 또 한 명의 마벌 히어로가 등장할 차례라는 것을 알려주는 화려한 축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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