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57화 (358/485)

357. NE 컨벤션의 의도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강력한 적을 상대하며 얻어낸 퀘스트 보상인 만큼, 콜라보를 통해 얻은 능력은 두 사람에게 그 강력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주었다.

일시적인 능력 공유가 끝난 이후에도, 서로가 상대의 능력을 부러워할 정도로.

능력 공유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격퇴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강했던 적을 피떡으로 만든 허먼은 아직도 자신의 손에 감겨있는 마력의 흐름을 느끼며 프라이에게 말했다.

“콜라보 겁나 세네.”

“사실상 속성 공격이 강점인 능력이니까요.

물리력이 받쳐주니 무서울 정도로 성능이 올라가는군요.”

“그래서, 어때? 마도 과학계열 장비를 사용한 소감은?”

“이 능력을 일시적으로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네요.”

그러자 허먼도 고개를 끄덕이며 프라이의 의견에 동의했다.

“내 생각에도 그래. 원래 내 장비는 대부분 물리 데미지의 타격 데미지가 대부분이니까, 거기에 마법으로 추가 속성이 들어가는 것은 나쁘지 않더라고.”

전투가 이어지는 동안, 아바론은 새 주인을 위한 서포터로서의 역할에 충실히 임했다.

허먼이 찢어놓은 상처 안에 피를 흡수하면 성장하는 마법 식물을 심어놓는다던가, 혹은 타격 데미지로 들어갔어야 할 로켓 펀처에 바람 속성 칼날을 휘감아 맞는 부위를 산산조각낸다던가.

하지만 무엇보다도 허먼을 만족하게 했던 것은, 마법이 가진 강력함보다도 마법이 전개될 때 느껴지는 특이한 신체 피드백이었다.

자신의 장비를 사용할 때 주로 느낄 수 있었던 ‘물리적’ 피드백과는 다르게, 마력이 몸을 휘감는 느낌은 ‘온도’를 통해 전달되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자신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처럼.

마력의 흐름은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차갑게 자신의 전신을 타고 흐르며 힘이 움직이는 경로를 피부로 체감하게 해 주었다.

허먼은 아직도 자신의 심장 쪽을 달구고 있는 뜨거운 감각에 의식을 집중하며, 조용히 강철로 둘러싸인 주먹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팔 근육의 움직임을 감지한 PRD가 자동으로 심장에서 주먹까지 이어지는 마력의 흐름을 구현하여 마치 심장에서 시작된 미지의 힘이 주먹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전달해 주었다.

그것은 보이지는 않아도 확실하게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마법’의 힘이었다.

“만약에.”

허먼이 말했다.

“만약 내가 이 게임을 새 캐릭터로 시작한다면, 내 선택은 무조건 마법사가 될 거야.

물론 나는 지금 캐릭터에 100% 만족하고 있지만.”

“마음에 드셨나 봐요?”

“단순한 능력의 강함 때문이 아니라, 전신에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이 짜릿하더라고.

뭔가 알 수 없는 힘을 내 의지대로 통제하는 느낌이랄까?”

“저도 그게 가장 마음에 들지만, 지금은 SF계열의 능력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마법 계열에서는 느끼기 힘든 짜릿한 손맛이 느껴지니까요.

아니면, 중량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적의 공격을 다이렉트로 쳐내는 과정에서, 적의 공격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것을 받아내는 내 능력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를 몸으로 체감하게 해 주는 능력이더군요.

게다가 마법만큼 전능한 느낌은 아니지만, 유틸성도 그리 나쁘지 않고요.

어쨌든, 지금 물리친 적이 이번 퀘스트의 끝은 아닐 겁니다.

정화자들이란 조직의 수장은 우리가 방금 물리친 카드케우스가 아니니까요.

아마도 그 위로 더 많은 적들이 있겠죠.”

“그리고 게임 안에 등장하는 빌런 조직도 겨우 정화자들만 존재하지는 않겠지.”

“맞습니다. 악으로 가득한 이 도시를 구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백 수천 시간을 더 쏟아야 하겠죠.”

“부담되나?”

“즐거워서 미칠 것 같습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소설을 발견했는데, 앞으로 읽을 분량이 수십 권이나 남아있는 기분이에요.

마음 같아서는 영원히 이 경험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 싶기도 하고요.”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지금은 적당한 때가 아닌 것 같군.”

“그런가요?”

허먼은 아쉬운 듯 쇼핑몰 안을 돌아보았다.

이따금 자신이 게임안에 있다는 것이 잊어버리게 만드는, 환상적인 가상공간의 내부를.

“솔직히 말해서, HC 101은 멋진 게임이야.

아마도 남은 컨벤션 기간 내내 이 세계 안에서만 돌아다녀도 엄청나게 많은 이야깃거리가 나오겠지.

그래픽은 압도적이고, 디테일은 일일이 세기도 어려울 만큼 섬세한 데다, 연출 역시 화려하고 시스템도 매력적인 게임이니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이번 컨벤션을 즐긴 모든 사람이 앞으로 두세 달 동안 떠들어댈 이야기지.

나도 이 세계를 떠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난 좀 더 큰 그림을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원래는 행사 종료 때까지 HC101만 플레이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생각이 바뀌신 건가요?”

“맞아.”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이 멋진 게임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이, 단지 우리가 앞으로 맞이하게 될 거대한 변화의 시작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거든.”

“그래요?”

“나머지 이야기는 일단 이 게임 월드에서 벗어난 이후에 하도록 하지.

컨벤션 행사장에서 보자고.”

그렇게 말한 허먼은 옵티머스에게 부탁해 자신의 캐릭터를 실험실로 소환시켰다.

그리고는 게임에서 로그아웃하여 HC101의 체험장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허먼은 그곳에서 프라이와 함께 근처의 카페로 이동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PRD로 구현한 세계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외형적으로는 매우 그럴싸한 아이스 티 두 잔을 시켜 놓고서.

“어차피 마시는 느낌은 구현 안 되어 있는데 아이스티는 왜···.”

“잔을 잡으면 차가운 느낌이 보기 좋고 어차피 공짜잖아.

빈 테이블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려니 가상공간이라도 좀 허전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게다가, 소리는 즐길 수 있고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허먼은 차갑게 얼음이 맺혀있는, 한눈에 보기에도 시원해 보이는 아이스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입을 향해 천천히 기울이자, 액체를 삼키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아이스티가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해도 아무 느낌이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보기엔 좋네요.”

“맞아. 엄밀히 말하면, ‘지나치게’ 보기에 좋지.”

“무슨 뜻입니까?”

“생각해봐. 만약 자네가 PRD 같은 장비를 만들어서 온도와 물리력 같은 피드백을 전달할 수 있게 했다고 가정해보자고.

그러나 음료를 마시는 느낌은 구현할 수 없었어.

그런 상황에서, 자네라면 아무 느낌도 줄 수 없는 음료를 마시는 행위를 위해 이토록 섬세한 디테일을 집어넣을 것 같나?”

“아뇨. 그건 자원과 시간의 낭비니까요.”

“그런데 PTW는 그렇게 했지. 내가 궁금한 건, 그 이유야.”

허먼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자 HC 101의 아바타에는 없었던, 컨벤션 전용의 가이드 팸플릿이 그의 손에 잡혔다.

“이전의 컨벤션에서, PTW는 뭐랄까, ‘발매하려는 게임’에 충실한 세트를 꾸며 왔었지.

TAW때 아예 르네상스 페어 수준의 중세시대 세트를 구현해 내고, 3차 NE 컨벤션 때는 한국에 우주 전함 내부를 완벽하게 구현한 세트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심지어 프랑스 행사에서는 자기들 게임도 아닌 구란트리스모의 신작 행사를 위해 서킷을 통째로 빌리기까지 하면서.

그렇기에 NE 컨벤션에 참가하는 유저들은, 행사장을 돌아다니면서 언제나 PTW가 발매하려는 게임 속 세계를 거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

자, 그럼 이번엔 4차 NE 컨벤션을 보자고.

PTW가 PRD라는 압도적인 성능의 장비와 기존 인터넷을 다 씹어먹는 초고속 인터넷을 새로 구축하면서까지 만들어낸 이 행사장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지?”

“이번 행사는 그냥 즐기기 위한 행사를 보여주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요?

가상의 스포츠카를 이용해서 벌이는 범퍼카 같은 특이한 어트렉션도 있었고, 전 세계의 유명 롤러코스터를 골고루 탈 수 있는 어트렉션도 있었죠.”

“그럼 그게 특정 게임과 관련이 있나?”

“HC 101 행사장은 관련 있었잖아요.

PTW는 이번 컨벤션에서 유저들이 즐길 수 있는 컨텐츠를 확실하게 두 파트로 나누고 싶었던 거죠.

PRD의 성능을 체감하면서, 미래의 가상현실이 어떤 형태로 전달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어트렉션 세션과, 그 기능을 활용해서 만들어진 게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체험 세션으로요.”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만 보기엔, 이쪽 세션이 좀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허먼은 가이드를 펼쳐 컨벤션 행사장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엔 수많은 사각형 부스가 펼쳐져 있는 공간이 있었다.

“혹시 지금 이 행사를 즐기고 있는 플레이어 위치를 가이드 맵에 표시할 수 있나?”

허먼이 말하자, 가이드는 맵 상에 수많은 붉은 점을 띄워 행사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허먼이 가리킨 자리는, 유저들의 숫자가 가장 적은 곳이었다.

그곳을 보며, 프라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먼이 가리킨 지점은, 이미 자신과 그가 함께 관람을 마친 지점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긴 시연 세션이잖아요? 좀 구경하다가 재미없어서 넘긴 곳 아니었어요?”

“맞아. 거기엔 PRD나 PRS를 가지고 체험할 수 있는 수많은 가상현실 시스템에 대해 체험할 수 있는 부스가 있었지.

용광로에 쇳덩이를 집어넣고 망치로 검을 만드는 시스템이라던가, 아니면 음식 재료를 가지고 가상현실 세계에서 요리를 만드는 시스템 같은 걸 체험하는 곳이었으니까.

물론 실총을 가상현실에서 쏠 수 있는 체험도 가능한 부스가 있긴 했지만, 난 거기에 별로 흥미가 느껴지지는 않았어.

어차피 그 부스에서 이루어지는 체험은, 현실의 그것을 가상공간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 뿐이었으니까.

약간 놀랍기는 해도 딱히 즐거울 건 없는 장소였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용광로에 쇠를 넣고 검을 직접 만들어보는 가상 경험은 매우 생소한 것이긴 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지루한 작업이기도 했으니까요.

이곳에 있는 수많은 다른 어트렉션들에 비해서, 그건 굉장히 재미없는 파트라고 할 수 있었죠.”

“맞아. 어차피 현실에서도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치는 경험은 충분히 할 수 있는 경험인데, 굳이 가상현실에서 거기에 시간을 써야 하나 싶은 기분이었지.

하지만 HC 101을 플레이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

HC 101이 제공하는 환상적인 경험도, 결국은 이 시연 세션에서 볼 수 있었던 경험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허먼의 말에 흥미를 느낀 프라이가 자세를 고쳐 잡았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결국 HC 101에서의 내가 하는 행동은, 장비를 소환해서 팔에 장착한 뒤 적을 타격하는 거잖아.

그건 엄밀히 따지면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때리는 것과 크게 창이가 없는 행동이지.

단지 복싱글러브보다 훨씬 묵직하고 강력한 강철 주먹을 달고, 샌드백 대신 괴물을 두들겨 패는 것일 뿐이야.

그래픽도, 몸에 느껴지는 피드백도, 타격받은 대상이 보여주는 리액션도 전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경험의 연장선에 있는 거지.

그럼 사실 시연 세션에 있는 대부분의 어트렉션은 여기 있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야.

거기 있는 대부분의 경험들은, 그곳이 아니라 HC 101의 세계 안에서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경험들이니까.

하지만 PTW는 굳이 그 화려한 경험들의 원본이 되는 체험들을 공간을 할당해서 유저들에게 보여주고 있지.

그것이 그리 흥미를 끌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러니까 허먼 씨의 말은, 시연 세션에 있는 어트렉션들을 통해 PTW가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한다는 건가요? 무엇을? 누구에게요?”

“지금부터 그걸 알아보러 갈 거야.”

허먼은 자신도 모르게 아이스티 잔을 들어 나머지 음료를 마셨다.

그리고는 아무런 느낌도 느껴지지 않는 것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텔레포터를 통해 시연 세션으로 이동했다.

그리고는 HC 101이나 다른 멋진 게임들 대신, 그곳에 있는 어트렉션에 집중하고 있는 유저들을 찾아가 질문을 던졌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허먼이 아바타를 통해서 말을 걸었기에, 상대는 자신에게 말을 거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먼도 마찬가지였기에, 허먼은 방송인의 신분이 아닌, 컨벤션을 즐기고 있는 평범한 유저의 입장에서 편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검을 만들고 계시는가 보죠?”

“예.”

허먼이 말을 건 상대는 아직은 검이라 부르기 모호한 쇳조각을 용광로에 집어넣고 그 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것은 허먼도 시도했던 체험이지만, 그리 흥미를 끌지는 못했던 체험이었다.

허먼이 생각하기엔 그런 경험보다 가치 있는 볼거리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에.

그러나 용광로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허먼이 말을 걸었음에도 용광로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가만히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재미있으신가요?”

허먼이 묻자 남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죠. 가상현실 안에서 이토록 리얼한 검 제작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요.”

“검 제작에 흥미가 많으신 분인가요? 혹시 도검 장이시라던가?”

남자는 대답 대신 용광로에 있는 쇳조각을 꺼내어 색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붕사가루를 한 움큼 집어 쇳덩이 위에 붓고는 다시 용광로 안에 집어넣었다.

허먼의 질문에 대한 남자의 대답은, 그 모든 작업이 이루어진 이후에 되돌아왔다.

“딱히 도검 제작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건 아닙니다.”

“그런데도 거기서 재미를 느끼시는 건가요?

저도 해봤지만, 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재미있는 과정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던데요?”

“혹시 처음에 한 번 시도하고 바로 그만두셨나요?”

“예.”

“결과물이 썩 좋게 나오진 않았겠군요.”

“그렇죠. 아무래도 초보가 시도하기엔 난이도가 좀 높았으니까요.

망치로 몇 번 두드리니 검신에 금이 가더군요.”

“그럼 재미를 못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숙련도가 필요하거든요.”

옆으로 비켜선 남자가 허먼을 향해 말했다.

“용광로 안을 보세요. 뭐가 보이시나요?”

허먼은 남자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리고는 불 속에서 달아오르는 쇳덩이를 보고 남자에게 말했다.

“주황색으로 빛나는 쇳덩이가 보입니다.

아직 검이라고 부르기엔 형태가 좀 덜 갖추어진 쇳덩이가요.”

“그렇죠? 지금 제 눈에는 저 쇳덩이가 가진 고유의 물성이 보입니다.”

“물성이요?”

“제가 처음에 겹쳐 넣은 두 종류의 금속이 어떤 형태로 겹쳐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달구어지고 있는지, 꺼내어 두들기기 좋은 최적의 타이밍에 얼마나 접근했는지가 시각적으로 보이고 있죠.”

“느낌이 그렇다는 겁니까?”

“아뇨, 그냥 시스템이 그렇게 보여주고 있다는 소리입니다.”

“여긴 게임 속 공간이 아닌데요?”

“맞아요. 여긴 게임 속 공간이 아니죠.

하지만 PRD로 만들어진 가상공간이긴 합니다.

그리고 PTW에서는, 이 가상공간 안에서 각 기술에 대한 시스템 보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샘플을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구현해놓았죠.

전 그 끝이 보고 싶어서 계속 검을 만들고 있는 거고요.”

“그러니까 이 시연 세션 안에 있는 어트렉션 자체가, 일종의 게임 존이라는 겁니까?

스킬 시스템이 적용된?”

“아마도 저희는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서 검을 만들고 있지만, 저쪽에서 샌드백을 두들기고 있는 제시라는 이름의 친구는 이 가상 세계 안에서 근력 상승이 주는 효과를 체험하고 있거든요.”

순간, HC 101의 세계가 아닌, 컨벤션 장소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던 거대한 타격음이 허먼의 고막을 때렸다.

놀란 허먼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서는 빼빼 마른 몸으로 가볍게 잽을 날리는 한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날리는 가벼운 잽을 맞은 샌드백은, 마치 타이슨의 진심 펀치를 맞은 것 같은 반응을 보이며 미친 듯이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저 친구는 아무것도 안하고 이틀째 샌드백만 두들겼죠.

샌드백이 주는 반동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면, 샌드백의 무게를 늘리면서요.”

“그럼 저건 일반 샌드백보다 훨씬 무거운 샌드백이겠군요.

무게가 얼마나 됩니까?”

“제가 마지막으로 체크 했을 때는 780Kg 짜리 샌드백을 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1톤 정도 될 것 같네요.”

“이틀 동안 샌드백만 두들긴 보상이 가벼운 잽으로 1톤짜리 샌드백을 날려버리는 거라면, 여기 있는 수십 개의 검을 만든 당신이 받은 보상은 뭐죠?”

허먼의 말에 남자는 조용히 바닥에 놓인 칼 하나를 집어 들어 허먼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과도처럼 보이는, 별로 강해 보이지 않은 작은 칼이었다.

“그게 지금의 검을 만들기 직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완성한 검입니다.

저쪽에 강철 기둥이 있으니 시험해보시죠.”

“과도로 강철 기둥을 베라고요?”

“절 믿고 한번 해 보세요.”

허먼은 남자의 말대로 20센티 두께의 강철 기둥 앞에 섰다.

그리고는 팔에 느껴질 반동에 대비하며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서걱-

그러나 그가 든 작은 과도는 철과 철이 부딪히며 내는 강한 반동을 돌려주는 대신, 마치 두부를 써는 듯한 미약한 진동만을 허먼에게 되돌려주었다.

그리고 허먼의 칼질은, 20센티 두께의 강철 기둥이 아무 저항 없이 썰려 나가는 황당한 결과를 보여주며 그를 당황하게 했다.

“황당하죠?”

“황당하네요.”

“이 세션에 있는 제 동료들도 거기에 빠진 겁니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현실과 똑같은 행동을 통해 현실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으니까요.

저희는 그것을 통해서 저희가 무엇을 해 낼 수 있을지를 파악하는 중입니다.”

그러자 허먼이 남자에게 다시 질문했다.

“지금 동료라고 하셨습니까?”

“예.”

“무슨 동료요?”

허먼의 질문을 들은 남자가 대답했다.

마치 당연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듯한 말투로.

“당연히 회사 동료들이죠. 저흰 게임회사 직원들이거든요.”

허먼은 그제야 이 공간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이 공간에서 체험을 반복하는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PTW가 어떤 의도로 이 공간을 배치하였는지도.

이후에도 시연 세션에 있는 여러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진 허먼은 프라이를 데리고 다시 광장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아까와 똑같이 아이스티 두 잔을 시킨 뒤, 프라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좋아. 적어도 한 가지는 명확해진 것 같군.

이번 컨벤션의 목적이, 단순히 PTW의 신작 게임을 공개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야.”

그러자 프라이가 고개를 허먼의 의견을 부정했다.

“글쎄요? 이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회사의 게임 컨벤션이고, 다른 게임회사 직원들이 그런 컨벤션에 참가하는 건 그리 보기 어려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프라이. 생각해봐.

시연 세션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회사의 게임 개발자였어.

그리고 그들은, 거기 있는 다양한 시스템을 테스트하면서 그걸 어떻게 자기 게임에 넣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고.

시연 세션이 재미없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그건 일반 유저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같은 업계 종사자들을 위한 공간이었으니까.”

“그 체험 존 자체가 거대한 B2B 존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난 그렇게 생각해. 내 생각을 말해 주지.

우선 난 이 공간 자체가, 통합된 하나의 엔진에 의해서 개발된 공간이라고 생각해.

아마도 그건 이전에 존 카믹이 언급했던 ‘리얼 엔진’일 가능성이 크겠지.

그리고 PTW는, 그 리얼 엔진을 이용해서 이 컨벤션 회장과 HC101같은 다른 게임 전부를 만들어낸 거고.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리얼 범퍼카 행사장에 있던 차량과, HC101 안에 있던 차량은 같은 알고리즘으로 구현된 차량이라는 거야.

우리는 HC101의 포탈을 타면서 다른 게임 속으로 옮겨간 거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닌 거지.

전부 같은 세계인 거라고.

단지 그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만이 다를 뿐.”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PTW는 어째서 그런 공간을 창조한 거죠?

그리고 왜 굳이 시연 존까지 만들어서 PRD로 가능한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걸까요?”

“바로 그게 이번 컨벤션의 핵심이기 때문이지.”

허먼이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번 컨벤션의 메인 타이틀은 PTW LAB의 게임이나 HC 101이 아니야.

그건 단지 부산물에 불과한 거지.

결국, 이 컨벤션에 있는 모든 어트렉션과 체험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단 한 가지밖에 없으니까.

아까 NE 컨벤션은 전통적으로 공개하고자 하는 게임의 테마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해준다고 했지?

난 이번 행사에서 그 전통이 깨졌다고 생각했어.

아무리 봐도 이 행사가 보여주고자 하는 테마를 찾을 수가 없었거든.

하지만 이제는 이해가 갈 것 같아.

PTW가 보여주려고 하는 게 뭔지.

이 ‘테마 없는’ 행사를 통해서, 그들이 뭘 공개하려고 하는 건지.”

“그게 뭐죠?”

프라이가 긴장된 표정으로 묻자 허먼이 미소지었다.

“글쎄. 이번 행사의 나는 단순한 관람객이니까, 자네에게 그걸 말해 주지는 않을 거야.

그럼 스포일러가 되어버릴 테니.

게다가 어차피 행사 마지막에 있을 쇼케이스에서 모든 게 공개될 예정이기도 하고.

아마 정답은 그때 공개되겠지.

우린 그때까지 남은 시간 동안 천천히 이 행사의 남은 게임들을 즐기면 되는 것이고.”

“글쎄요. 만약 허먼 씨가 남들보다 먼저 발견한 이번 행사의 비밀이 있는데, 그걸 방송에서 공개하지 않고 PTW에서 공개하는 순간까지 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국장님이 제 목을 조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비밀로 해야지.

공식적으로 나는 지금 방송인 허먼이 아니라 일반인 허먼이니까.”

“저도 프로듀서 프라이가 아닌 허먼씨의 지인 제이콥 프라이로서 질문드리는 겁니다.

딱히 방송 때문에 물어보는 게 아니라요.”

“이게 엄청난 특종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정보라 하더라도?”

“뭐, 공식적으로는 저도 휴가 중이니까요.

게다가 어차피 쇼 케이스까지 24시간도 남지 않았어요.

괜히 스포일러해서 김새게 만드는 것보다는, 그냥 즐기는 것도 이 행사를 즐기는 방법의 하나겠죠.”

그러자 허먼이 미소지으며 자세를 고쳐잡았다.

그리고는 프라이에게 귓속말로 자신의 생각을 말해 주었다. 그것은 프라이가 생각하기에도 황당함 그 자체인 아이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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