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54화 (355/485)

354. 현생포기 게임

허먼은 프라이의 아지트에서 회의를 진행하려다 두 사람이 식사도 잊은 채로 16시간 이상 게임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일단 식사부터 하자. 이번 컨벤션은 이전과는 다르게 중간에 행사가 쉬는 타임이 없으니까, 체력이나 수면 시간 조절은 유저가 알아서 해야 해.”

그러나 허먼의 말을 들은 프라이도, 말을 꺼낸 당사자인 허먼도 쉽사리 게임에서 로그아웃하지 못하고 있었다.

딥 다이버를 벗고 PRD에서 내리는 순간, 지금 자신이 있는 세계가 현실이 아닌 가상이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시스템 UI까지 호출해놓고 로그아웃 버튼에서 손가락을 가만히 멈추고 있던 프라이는 한숨을 쉬며 허먼에게 말했다.

“이거, 나가는 순간 제 몸은 이 멋진 고대 유적이 아니라 허먼 씨의 차고에 있게 되겠죠?”

“그렇겠지. 그래도 식사는 해야 해.

이 세계가 아무리 멋지더라도, PRD가 영양공급까지 해주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앞으로 더 게임을 하고 싶다면 영양을 섭취하고, 조금이라도 잠을 자 두자고.

PRD에서 나오면 내 아내가 네 몫으로 차려둔 음식 접시를 들고 거실로 와.

같이 식사하면서 이야기나 하지.”

“알겠습니다.”

프라이는 대답을 해놓고도 허먼을 빤히 바라보고 가만히 서 있었다.

“왜 안 나가나?”

“지금 제 게임 월드와 허먼 씨 월드가 동기화되어있는 상태잖아요?

이 상태에서 허먼 씨가 로그아웃하면 허먼 씨 아바타는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요.”

“나도 그게 궁금해서 지금 너 먼저 보내려는 거 안 보이냐?”

“아, 그런 거였군요?”

“네가 먼저 나가면 내가 확인하고 어떻게 되는지 말해줄게.”

“쩝.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컨벤션 첫날에 PRD 쓰게 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판이니.”

그렇게 말한 프라이가 허공을 손가락으로 찌르자, 프라이의 아바타가 순간적으로 반투명하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허먼은 프라이의 아바타를 만지려고 시도했지만, 허먼의 손은 프라이의 몸을 뚫고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로그아웃 도중에 데미지를 안 받게 하려고 이렇게 처리한 건가?

하지만 내가 로그아웃했을 때 다른 플레이어가 내가 못 보는 곳에서 내 월드를 돌아다니는 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러나 허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프라이의 그리모어인 아바론이 허먼에게 경고음을 날렸다.

“방문자. 이 공간은 오직 얼티밋 소서러가 나와 연결되었을 때만 유지가 가능한 공간이다.

얼티밋 소서러에게서의 마력 공급이 끊긴 지금, 이 월드를 더 유지하긴 어려울 듯하니, 지금 바로 아지트로 보내주마.”

[아쉬워서 불러놓고 일 끝나니 돌려보낸다는 겁니까?

마법사들의 손님 대접은 형편없군요.]

“너도 반대의 경우였으면 보안이 어쩌고 권한이 저쩌고 핑계 대면서 돌려보냈을 거잖아. 이 빌어먹을 인공 지능체야.”

[그 발언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 하겠습니다.

사용자님. 검증도 되지 않은 원시적 기술에 정신이 오염되기 전에 실험실로 소환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전송이벤트 자체는 강제였는지, 옵티머스는 허먼의 허락도 받지 않고 허먼을 실험실 공간으로 워프시켰다.

그곳에서 허먼은 지금까지 자신의 히어로 활동을 열심히 서포트 해준 AI 옵티머스에게 가볍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게임에서 로그아웃했다.

그리고는 거실에서 음식 접시를 든 채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프라이에게 말했다.

“호스트가 로그아웃하면 호스트 월드에서 강제로 추방당하네.”

“아, 그래요?”

“아무래도 내가 없는데 혼자 남이 내 퀘스트 깨고 그러면 좀 그래서 그런 것 같은데.

사실 이런 부분은 실험할 여지가 많은 것 같아.

함께 전투하다가 한쪽이 인터넷 접속이 끊기면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고.”

“나중에 확인해볼까요?”

“아니, 그건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정식 발매 이후에 천천히 알아보지 뭐.

지금 내가 가장 궁금한 건, 인트로 파트에서 나랑 어떻게 다른 스토리 라인을 탔길래 마법사 능력을 얻게 되었느냐는 거야.”

프라이는 자신이 기억하는 인트로파트에서의 선택지들을 읊어주었다.

그러자 허먼이 엄청나게 충격받은 표정으로 프라이를 향해 말했다.

“처음에 교과서 고르는 파트 빼고 전부 다 다른데?”

“그래요?”

“어. 자네는 역사 교과서를 골랐고, 바로 이어지는 파트가 수업 파트였다고 했지?

내 것은 쉬는 시간의 라커 앞에서 나한테 시비 거는 불량배들한테 두들겨 맞는 파트였어.”

“완전 다르네요.”

“그렇지, 나는 천재 과학자인 외할아버지 집 지하에 있는 비밀 실험실에서 능력을 얻었거든.

근데 프라이 자네는 고고학 전공인 교수를 따라 고대 유적을 조사하다가 사고에 휩쓸리면서 능력을 얻게 되었다면서?

그건 아예 별개의 게임이라고 보아도 좋을 만큼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이야기인 거지.”

“초반부 스토리가 갈리는 건 드래곤 에이지 1편하고 비슷하네요.

대신 그건 선택보다는 시작할 때 고른 캐릭터 설정에 따라서 이야기가 갈리는 거지만요.”

프라이가 언급한 명작 RPG ‘드래곤 에이지’에서는, 플레이어가 시작할 때 고른 종족과 신분에 따라 초반 스토리가 완전히 다르게 갈리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분할된 루트를 지나서, 모두가 같은 스토리를 타게 되는 공통 루트에 진입하게 될 때까지.

그리고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MMORPG에서도 사용된 방식이었다.

“월드 오브 와크래프트도 그렇지.

그것도 시작 종족에 따라서 초반 시작 위치랑 퀘스트가 다르잖아.

근데 그 두 게임과 HC101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봐야 해.

이건 중간에서 합쳐지는 방식이 아니니까.”

“그래요?”

“애당초 내가 자네가 진행 중인 퀘스트에 헬퍼로 합류했을 때, 난 그런 형태의 마법 생물이 이 게임에서 존재하는지도 몰랐거든.

내가 지금까지 상대하던 빌런들은 대부분 SF계열 빌런들이었으니까.”

“제가 히어로 활동할 때는 SF 계열 빌런은 안 보이던데요?”

“그러니까 플레이어 능력에 따라서 나오는 빌런도, 퀘스트 형태도 전부 다르게 구현된 게임이 HC101이라는 거지.

물론 그렇게 만들려면 능력의 계열별로 그 많은 퀘스트 라인을 전부 다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어.

게다가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한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동안 게임 리소스의 대부분이 낭비된다는 문제도 생기고.

내가 헬퍼로 합류하지 않았다면 아마 내 퀘스트에는 계속 SF 계열 빌런들만 등장했을 텐데, 그럼 마법 생물계열의 빌런이나 카르텔 계열의 빌런을 만드는데 들어간 리소스는 그냥 낭비하는 게 되잖아?”

“엄청 비효율적인 개발 방식이라는 거군요.

그런데 왜 PTW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HC101을 개발했을까요?”

“그게 훨씬 재미있으니까.”

허먼이 말했다.

“UI부터 능력을 강화하는 방식, 빌런을 상대할 때의 요령이나 익숙한 전투 패턴등이 능력에 따라서 전부 다른 게임이라면, 한 캐릭터를 키우고 나서 다른 캐릭터를 키울 때 완전히 새로운 다른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들겠지.

그 부분을 감안하면, 이건 ‘올드스크롤: 하늘 림’의 게임 플레이와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아.

그것도 시작은 똑같은 퀘스트에서 시작하지만, 마법을 배울 때는 마법 아카데미에서, 도둑질을 할때는 도둑 길드에서, 암살을 할때는 암살자 길드의 퀘스트 라인을 따라가며 게임 플레이가 이루어지지.

단지 HC101의 경우는 그 스케일이 무지막지하게 클 뿐이고.”

“아, 맞다! 스케일!”

그 순간, 프라이가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혹시 허먼 씨도 월드 안에 있는 소품들 직접 다뤄 보셨어요?”

“어떤 거?”

“아무거나요. TV도 좋고, 체스도 좋고, 스마트폰도 좋고.

안에 있는 거 아무거나.”

“아···.”

HC101을 플레이하는 유저를 가장 크게 경악하게 만드는 요소는, 자신의 몸으로 펼치는 초인적인 능력도, 도무지 얼마나 큰 스케일로 만들어져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스토리 라인도 아니었다.

게임을 시작한 유저들을 가장 경악하게 만드는 요소. 그것은 게임 안에서 유저가 만질 수 있는 모든 오브젝트가, ‘실제로 조작할 수 있는’ 오브젝트라는 점이었다.

“게임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도 보고 유튜브도 접속할 수 있던데요.

TV도 TV 채널 그대로 나오고요.

9시 뉴스에서 건물 때려 부수는 괴물이 나오는 것만 빼면요.

심지어 게임 속에 있는 스마트 TV로 넷플릭스 로그인이 가능했어요.

겨우 게임 하나 만들려고 그 모든 것을 구현했다고 보기엔 지나치게 디테일하더라고요.”

“아마 그건 리얼 엔진에서 자체적으로 지원하는 기능일 거야.”

“엔진에서요?”

“생각해봐. PRD로 구현된 가상 세계 안에서, 유저는 모든 3D 오브젝트를 실제로 만지고 조작할 수 있잖아?”

“그렇죠.”

“그런데 그게 그냥 모양만 그럴싸하고 실제로 동작하지 않는 모델링 덩어리라면 현실감이 깨지지 않겠어?”

“그렇, 겠죠? 아마도?”

“그러니 현실에서 존재하는 대부분의 사물에 대한 구동 방식을 미리 엔진에 넣어둔 거겠지.

그 복잡한 결과물을 HC 101에서만 사용한다면 엄청난 낭비가 되겠지만, 다른 게임에서도 돌려쓴다고 가정하면 차라리 처음 만들 때 제대로 만드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막말로 HC101에서 히어로 능력을 제외하고 퀘스트만 싹 갈아엎으면, PRD 버전 GTA도 만들 수 있을걸?

그것도 기존 GTA보다 훨씬 디테일하고 리얼한 버전으로.”

프라이가 생각하기에 허먼의 말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프라이가 PRD를 통해 체험한 HC 101의 월드는 허먼의 말 이상으로 현실에 가깝게 구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완전히 현실과 똑같은 ‘또 하나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PTW의 집착이 이루어낸 결정체였다.

“난 이번 컨벤션을 체험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PTW가 진정으로 목표하고 있는 건, PRD와 리얼 엔진이라는 두 가지 도구를 통해서 개발자가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현실을 만드는 거라고.

그 세계 안에서, 개발자가 농구공과 농구 코트만 가져다 놓으면 그게 바로 NBA 2K의 PRD 버전인 거고, 총과 탱크를 가져다 놓으면 그게 모든 워페어의 PRD 버전인 거지.

리얼 엔진 안에서, 개발자들은 더  이상 코드를 헤집으면서 원하는 걸 구현하려고 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냥 리얼 엔진으로 만든 맵 안에 리얼 엔진이 현실과 똑같이 구현한 물건을 가져다 배치만 하면 될 테니까.”

“그건 진짜 꿈같은 이야기네요.”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HC101이 가진 방대한 스케일은 설명이 안 되지.

저건 개발자가 일일이 바닥부터 만들만한 물건이 아니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맵과 캐릭터, 퀘스트를 만들 수 있는 완성된 툴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개발된 물건이지.

그리고 난 PTW의 기술력이라면 리얼 엔진을 그 정도 레벨에 근접하게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해.

걔넨 진짜 게임에 미친 놈들이니까.

PTW야 말로 ‘고작 게임 하나 만들려고 그렇게까지 한다고?’ 같은 말이 통하지 않는 회사지.”

말을 이어가던 허먼은 갑자기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미간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하아···. 젠장···. 내가 게이머라는 사실이 이토록 행복하다고 느낀 건 처음이야.”

“눈물이 날 정도인가요?”

“적어도 나한테는 그래.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개발되면서 게임도 많이 발전했지.

하지만 옛날 게임들에도 강점은 있었어.

거긴 모험이 있었거든.

매번 똑같은 비슷한 장르의 게임들이 아니라, 시리즈가 새로 나올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게임이 되는 게임들.

이따금 게임을 시작하면 그 게임의 장르 자체에 대해서 이게 무슨 시스템의 게임인가를 하나하나 탐구해야 했던 게임들.

대항해시대를 하면서 게임이 가진 물가 조정 시스템에 대해 익히고, 도시마다 상점이 보이면 새벽까지 시간을 보내서 비밀 상점에서 뭐 파는지 확인하고.

자네 대항해시대 2에서 옷토 스피노라로 플레이할 때 술집에서 에스파냐 해군 사령관하고 결투하는 이벤트가 있는 거 아나?

거기서 결투를 거절하면 캐릭터 이름이 ‘겁쟁이 제독 스피노라’가 된단 말이지.

내가 어릴 적, 새로운 게임들은 언제나 날 설레게 하곤 했어.

그것들은 언제나 날 바다의 제독으로, 위대한 군주로, 문명의 지도자로, 도시의 주인으로, 용감한 전쟁 영웅으로 만들어주었지.

게임 안에서만큼은, 난 무엇이든 될 수 있었어.

그리고 지금.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히어로가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체험할 수 있었지.

내가 쓸 수 있는 3개의 제한 시간을 다 썼음에도 적을 무찌르지 못했을 때, 상식적으로는 도망쳐야 하는 상황에서도 적 앞에 달려들게 되는거야.

그리고 젖먹던 힘까지 다 끌어내서 상대의 주먹을 막아내는 거지.

10시간 넘게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지칠 대로 지친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데도 물러설 수가 없었어.

내 등 뒤에, 10살짜리 어린 꼬마아이를 안고 벌벌 떠는 엄마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그 전에 능력은 다 쓰셨다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하셨어요?”

“미친 듯이 소리쳤지.

‘내가 막고 있는 동안 빨리 도망쳐!’라고.

그리고 두 사람이 도망치는 것을 보면서, 난 미소로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었어.

비록 전투 불가 패널티를 먹어야 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내가 구한 거니까.”

“그렇죠. 그냥 게임을 하고는 다르죠.

실제로 만져진다는 건, 그리고 내 힘으로 직접 적을 상대한다는 건 다른 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을 전해주니까요.

저도 비슷해요.

마법사 계열은 적을 힘으로 직접 상대하지는 않지만, 마나가 소진될수록 주문을 펼치는 동작에 제약이 걸리죠.

마나가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는, 간단한 주문 하나 쓰려고 정말 온 힘을 다 끌어 써야 해요.

양팔을 있는 대로 잡아끄는 PRD의 힘을 느끼면서,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왜 이렇게 플레이어를 힘들게 만들지?

왜 이렇게 플레이어를 지치게 하지?

그러나 좀 더 플레이해보니 알겠더군요.

HC101의 개발자들이, 직접 전투 계열 능력이든 간접 전투 계열 능력이든, 어째서 플레이어의 힘을 써서 능력을 사용하게 설계했는지를요.”

“그건 아마도 플레이어가 ‘자신의 힘’으로 시민을 구해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프라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허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두 사람이 식사를 마친지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지금은 다음의 할 일을 처리할 차례였다.

“맞아. 결국 이 게임에 대한 모든 토론은 하나로 귀결되지.

그 주제가 스케일이든 현실성이든, 아니면 스토리의 역동성이든.

게임이란 매체를 평가할 수 있는 모든 평가 기준에서 HC101은 단 하나만 제외하면 모든 분야에 100점 만점에 1만 점을 줘도 부족함이 없는 게임이라는 거.”

“단점이 있긴 한가요? 저 게임에?”

“하나 있긴 하지. 3천만 원짜리 PRD가 없으면 그 환상적인 경험을 제대로 체험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난 확신하고 있어.

PRD를 써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한 번이라도 써본 사람이라면 그 경험의 가치가 3천만 원 이상이라는 데 동의할 거라고.”

그렇게 말하며, 허먼이 프라이에게 물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반박해보시지.”

그러자 프라이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저건 3천만 원이 아니라 3억이라고 해도 지불할 가치가 있는 물건이에요.

단순히 HC101이 너무 멋진 게임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PRD는 저 이후에 나올 게임들도 전부 갓겜으로 만들어줄 완벽한 머신이니까요.”

“그래. 그러니까 빨리 한숨 자러 가자고. 4시간만 눈 좀 붙이고 바로 또 히어로 활동을 하러 가야지.”

“출근은요?”

“연차 낸다 그래.

X발 지금 출근이 중요해?

내가 아직 로봇을 소환 못 했는데!

그렇게 출근하고 싶으면 자네 혼자 하던가!

난 3일째 마지막에 있을 쇼케이스까지 무조건 연차야.

그리고 그 뒤 하루 더 쉴거고.”

“4일을 쉰다고요? 하루는 왜 더 쉬는데요?”

“내 몸이 그 정도로 격한 플레이를 못 버틸 거 같아.

아마 3일째 마지막 쇼케이스가 끝나고 나면, 응급실로 실려 가야 할걸?”

“···무리는 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자러 가자고. 솔직히 지금은 자는 시간도 아까우니까.”

그렇게 말하며 허먼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방 안에서 깨끗한 옷 한 벌을 꺼내 프라이에게 던지며 말했다.

“속옷은 새것이야. 나머지는 자네 사이즈엔 좀 크겠지만. 대충 입어.

어차피 위에는 PRS를 입을 테니까.

일단 샤워부터 하고 잠좀 잔 다음 바로 게임 하자고.”

프라이는 허먼이 시키는 대로 샤워를 마쳤다.

그리고는 온몸에 밀려드는 엄청난 피로감을 느끼며 소파 위에서 그대로 기절했다.

그리고 정확히 4시간 후, 프라이는 단 4시간만 자고 다시 게임을 하겠다는 허먼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매는 자신의 어깨를 허먼이 미친 듯이 흔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프라이를 깨우는 허먼의 표정은, 새로 구한 게임을 밤새 플레이하고도 눈뜨자마자 컴퓨터를 켜던 어린 시절 그의 얼굴과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으어어어···. 저는 조금만 더 잘게요···.”

프라이가 저항하자 허먼은 ‘그’ 유명한 말을 읊으며 프라이를 깨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싸대기라도 때려서 깨우겠다는 각오가 느껴지는 눈빛으로.

“야, 그 레벨에 잠이 오냐? 당장 못 일어나?”

“레벨 없는 게임이잖아요······.”

“그럼 그 서클에 잠이 오니? 빨리 일어나.

오늘 플레이는 종일 HC101만 할 거니까.

계열이 다른 히어로 둘이 같이 멀티할 때 특별 보상이 나오는지 확인해야지.

어쩌면 협력 보상으로 니가 낄 수 있는 마력으로 돌아가는 ‘마도 과학 장비’ 같은 게 나올지도 모르잖아!

아니면 내 장비에 마법 인첸트가 된다던가!”

그 순간 프라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허먼의 말을 듣는 순간, 화려하게 빛나는 기계 장갑을 입고 마법을 시전하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에.

그것은 피곤함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기엔 너무나도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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