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 히어로 얼티밋 소서러
“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엄밀히 말하면 이 구역의 히어로는 저인데, 폼은 허먼 씨가 다 잡으시네요?”
“멋졌냐?”
“부정을 못 하겠다는 게 절 더 화나게 합니다.”
“아마 내가 협력자 역할이라 좀 더 멋있게 등장할 기회가 주어진 거겠지.
나중에 네가 날 돕게 되면 그때는 너도 멋지게 등장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하늘에서 떨어져 그 유명한 포즈를 하며 등장한 소감은 어때요?”
프라이가 쓴웃음을 지으며 질문하자, 허먼이 척하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최고지.”
“협력자 씨. 회포를 푸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적에게 집중해주시죠! 멋지게 등장해서 초라하게 뒈지고 싶으시지 않으면!”
순간 허먼의 합류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그리모어 아바론이 시전한 보호막이 깨져나가면서, 거대한 괴물이 두 사람을 덮쳐왔다.
허먼은 은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늑대처럼 생긴 괴물을 보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강철조차 종이처럼 찢어발길 듯한 거대한 발톱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힘차게 외쳤다.
“모드 변환 - 공격 강화!
소환 - 파일 드라이버!(Mode Change- Attack Enhancement! Summon Pile Driver!)”
순간 빛과 함께 소환된 육중한 형태의 기계 장갑이 허먼의 상반신에 장착되었다.
거대한 말뚝이 달린 권갑과 함께.
허먼은 오른 주먹에 달린 말뚝이 적의 발톱에 충돌하는 순간,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슛!(Shoot!)”
이어지는 광경은, 지금까지 고전하던 프라이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X발 어이가 없네.”
15미터 크기의 괴물의 팔이 발톱부터 터져나가며 폭발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건물을 뚫고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공격을 한 당사자인 허먼은, 그 모습을 보고 꽤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이걸 먹고 안 뒤진다고?”
파일 드라이버는 공격 상태의 1분이라는 출력 제한을 전부 사용하는 대신, 허먼의 현재 능력으로 줄 수 있는 데미지를 한번에 전부 쏟아붓는 능력이었다.
그것도 20배의 데미지 배율로.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필살기를 리스크를 감수하며 시작부터 썼음에도 불구하고, 괴물의 팔 하나만이 날아갔다는 사실에 허먼은 황당함을 금하지 못했다.
[공격 모드 출력 제한 오버. 모드 변환을 해제합니다.]
“이런 X팔!”
“아니, 허먼 씨. 방금 그거 뭐에요? 말도 안 되게 강한데?”
“내가 공격에 쓸 수 있는 전체 출력을 20배 데미지로 한 번에 주는 장비야.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공격이고.
원래는 한방에 전신이 가루가 돼야 했는데, 생각보다 저놈이 너무 강하다.”
“아, 패널티가 있는 능력이군요. 어쩐지 너무 강하다 싶었어요.
그게 일반 공격이었으면 완전히 밸런스 붕괴지. 암 암.”
“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으로 겨우 팔밖에 못 날렸는데 지금 밸런스 이야기가 나오냐?
워메 저놈 저거 재생도 하네?”
허먼은 자신이 박살 낸 괴물의 팔 부위에서 은색의 액체가 흘러나와 다시 팔의 형태를 갖추는 것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프라이가 끼어들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아니, 저도 저게 저 정도로 황당한 몬스터가 아니었으면 헬프 요청은 안 했을 겁니다.
세상에 마법 계열 히어로에게 마법 면역인 빌런을 내미는 건 무슨 심보래요?”
“너뿐만이 아니야. 반대로 내가 저놈을 상대했어도 헬프를 요청해야 하는 빌런이네.
난 단기 집중형 히어로라 저렇게 재생하는 적에 약하거든.”
“그럼 결국 저건 저희 각각의 힘으로는 잡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거군요.
이제야 의도를 알겠네.”
그렇게 말하며, 프라이는 허먼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럼, 협력할까요?”
그러자 허먼도 그의 손을 맞잡으며 입을 열었다.
“히어로 ‘프라임’이다. 계열은 과학계열. 메인 능력은 장비 소환과 변신이지.”
“히어로 ‘얼티밋 소서러’입니다.
계열은 마법 계열이고 마법서 그리모어와의 계약에 따른 능력을 사용합니다.”
“얼티밋 소서러?”
“아니, 허먼 씨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제가 히어로 능력을 얻을 때는 무지막지하게 뽕차는 상황이었다고요.
수천 년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고대 유적에서 봉인된 마법서를 깨우고 음지에서 인류를 구원하던 선대 마법사들의 의지를 이어받는 상황에서, 멋진 이름이 그거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어쩌겠어요?”
“그럴 거면 슈프림 소서러 같은 게 더 멋지지 않나?”
“아 씁. 듣고 보니 그렇네.
아바론. 혹시 히어로 네임 변경도 가능해?”
“피의 계약서에 적힌 이름은 변경할 수 없다.
분명 계약할 때 이후에 변경할 수 없다고 말했을 텐데?
어리석은 계약자여.”
“젠장.”
프라이가 입 달린 마법책과 티격대는 모습을 본 허먼이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어찌됐건, 우린 지금 저 녀석의 재생이 끝나기 전에 저 녀석을 무찌를 방법을 찾아야 해.
이미 내가 쓸 수 있는 최강의 공격 수단은 써 버렸고. 넌 뭐 없냐?”
“하나 있긴 한데···.”
“뭔데?”
“메테오(Meteor)요.”
프라이의 말을 들은 허먼의 머릿속에 문득 게임 속에서 보았던 뉴스가 떠올랐다.
집 거실 쪽을 지나가다가, 조금 재미있는 내용이 보이길래 눈여겨보았던 뉴스였다.
“TV에서 흘러가듯 나오던 뉴스에서 운석을 떨궈서 빌딩 채로 빌런을 박살 낸 히어로에 대한 뉴스를 봤거든?
난 그게 그냥 연출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너였구나?
그럼 이 세계 안에서 나오는 히어로에 대한 뉴스는 다른 히어로의 활동을 TV에서 틀어주는 건가?
흥미로운데···.”
“제가 뉴스에 나왔다고요?”
“정확히는 프라이 네가 나온 건 아니고 네가 박살 낸 빌딩이 나왔지.
희생자가 10명이었다고 엄청 뭐라고 하던데.”
“사람을 삼킬수록 강해지는 악당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거기 있는 인원들을 다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요.
젠장. 그때 그거 때문에 깎인 카르마 수치 복구한다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네 능력은 카르마 수치도 있냐?”
“서클, 마나, 카르마 수치에 따른 시전 주문 제한에 메모라이즈랑 퀵캐스트도 있는데요.”
“이거 히어로 능력에 따라서 기본 스테이터스도 전부 다른가 보네.
난 카르마 수치 같은 건 없거든.
대신 내 메인 스테이터스는 동기화율이라는 수치지.
그걸 투자해서 소환할 수 있는 장비의 종류가 늘거나 운용 효율, 운용 시간 같은 걸 늘릴 수 있어.”
“어? 재미있겠다. 어떻게 올리는데요?”
“그냥 히어로스러운 활동을 하면 올라가.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던가, 빌런을 물리친다던가.
경험상 지형지물의 파괴나 희생양의 수가 적을수록 획득하는 동기화포인트가 올라가더라.”
“나중에 그 능력 어떻게 얻은 건지 인트로 파트에서 허먼 씨가 고른 선택지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저도 새 캐릭터를 키우게 되면 허먼씨랑 같은 걸로 키워보게.”
“그보다 지금은 저걸 물리치는 게 먼저야. 메테오라···.
그거 쓰면 확실히 제거할 수 있어?”
“아뇨, 어려울 거예요.
제가 쓰는 메테오는 대상 영역에 있는 모든 타겟에게 균등한 데미지를 나눠서 주거든요.
근데 여기엔 지금 40명이 넘는 민간인이 있죠.
메테오의 데미지 범위는 1KM 정도고요.
그럼 데미지가 40등분으로 들어가니까 엄청 깎이죠.
전의 빌런은 사람을 더 먹기 전에 잡으려고 한 거니까 어찌어찌 잡았지만, 이건 무리일 것 같아요.”
“민간인도 데미지의 타겟이 되니까?”
잠시 고민하던 허먼이 프라이에게 말했다.
“아까 빌런에게 파일 드라이버를 먹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아마도 저 적은, 내가 가진 어떤 공격 수단으로도 잡을 수 없는 적일 거라고.
그리고 난 이곳에 등장했을 때 내 역할이 네가 잡지 못하는 적을 내가 한 방에 잡는 거라고 생각했지.
근데 지금 설명을 들어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이번 임무에서, 내 역할은 딜러 포지션이 아니야.
마무리는 네 역할이지.”
“하지만 메테오로는 저걸 잡을 수 없는데요?”
“그것도 맞아. 하지만 네가 메테오를 시전하기 전에 인질을 데미지 범위 밖으로 전부 꺼낼 수 있다면?”
“1㎞ 영역 안에 사방으로 퍼져있는 시민들을 전부 대피시킨다고요? 저 괴물의 공격을 피하면서? 허먼 씨. 그건 불가능해요.”
“내 가장 강한 능력으론 저 빌런을 잡는 게 불가능하지만, 너는 가능하지.
반대로 너로서는 저 시민들을 전부 구하는 게 불가능하겠지만, 난 가능해.”
허먼은 진지한 눈빛으로 도시의 저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겐 나머지 두 개의 모드 변환이 남아 있으니까.”
***
허먼이 세운 계획은 간단했다.
자신이 방어 모드와 민첩 모드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제한 시간 동안 괴물의 시선을 끌며 최대한 많은 시민들을 구한다.
그리고 그 사이 프라이는 보호막을 해제하고 그리모어와 함께 메테오 소환을 위한 마법진을 펼친다.
그것은 무려 1킬로 미터 안에 있는 40명의 민간인을 1분 안에 구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황당한 계획을 들은 프라이는 반대했지만, 허먼은 진지한 표정으로 프라이에게 말했다.
“프라이. 내가 이 게임을 하면서 느낀 유일한 팁은, 이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요구하는 것이 매우 단순하다는 거야.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말라는 거.
그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히어로의 모습이고, HC101이 내게 요구하는 히어로의 모습이야.
그리고 난 그걸 무너트릴 생각이 없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카드는 지금 이 방법뿐이고.
결국 이건 내가 얼마나 사람들을 전력으로 구해낼 수 있는지, 그리고 프라이 네가 얼마나 메테오를 빠르게 준비할 수 있을지의 승부라고.
이제 고민할 시간이 없어.
저 녀석이 재생을 완료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한 사람의 시민이라도 더 구해야 하니까.”
“젠장. 알았어요.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면 반박할 수가 없잖아요.
대신 이번 임무가 실패하면 허먼 씨가 저에게 술을 사야 할 겁니다.
제가 선물로 가져온 메이커스 마크보다 더 비싼 거로!”
“얼마든지. 그럼 가볼까?”
“게임을 시작한 지 6시간도 안 된 것 같은데, 이미 마음은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이시군요.”
“이 게임이 나를 그렇게 만들더라고.”
허먼은 앞으로 뛰쳐나가기 위해 스프린트 자세를 취하고는 프라이에게 말했다.
“그럼 간다! 내 신호에 맞춰서 시민들에게 걸린 보호막을 해제해!
3···. 2···.1···. 지금!”
단 1초의 유효시간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허먼은 첫발을 내딛으며 크게 외쳤다.
“모드 변환 – 민첩 강화!”
순간 마치 활시위에서 화살이 발사되는 것처럼 허먼의 몸이 빛과 같은 속도로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서포트 AI인 옵티머스가 설정한, 최단 거리로 첫 번째 시민을 구할 수 있는 경로를 향해.
그리고 그 순간, 프라이 역시 그리모어와 함께 초대형 주문의 캐스팅을 시작했다.
“아바론! 메테오 시전 준비. 모든 마법력을 서클에 집중해!”
“시민들에게 걸린 보호막 해제 완료! 운석 소환용 대마법 술식 ‘메테오’ 시전 준비!”
괴물의 신체는 아직 재생하는 중이었기에, 허먼은 재생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의 시민을 구하기 위해 최대한 강하게 땅을 박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신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첫 번째 시민의 허리를 감싸고는, 옵티머스가 표시해놓은 경계 영역 밖으로 몸을 날렸다.
“꺄아아아악!!!!”
영문도 모른 채 슈트를 입은 히어로의 몸에 안긴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허먼의 허리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팔에 들린 그녀의 체중이 전해지는 묵직한 느낌도.
그것은 단순히 X 버튼을 눌러 [인질 구출]을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살아있는 인간.
만질 수 있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뛰어다니는 느낌.
이 게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매력 중의 하나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하던 허먼은 고개를 저으며 옵티머스에게 말했다.
“옵티머스! 남은 시간은?”
[메테오 시전까지 57초. 남은 인질 수는 39명입니다.]
무려 3초 만에 한 명을 구해냈지만, 허먼에게는 시간이 모자랐다.
‘5초에 한 명이면 아슬아슬하게 구해도 12명이 한계인데···. 인원은 40명···. 작전을 잘못 세웠나?
일단 지금은 최대한 빠르게 할 수밖에 없어.’
PRD는 직접 신체를 움직여 게임을 진행하는 머신이다.
그 말은 허먼이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조이스틱을 기울이는 대신 그의 신체가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허먼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열심히 뛰어다녔지만, 시민의 전원 구출까지는 물리적으로 넘을 수 없는 시간의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빛처럼 영역을 가로지르는 허먼을 보며, 공중에 떠서 메테오를 시전하던 프라이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X나 멋있네.’
허먼의 능력을 보기 전까지, 프라이는 자신의 능력이 이 게임에서 가장 멋진 능력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의 공격이나 유폭으로부터 시민의 목숨을 지켜주는 보호막.
도망가는 범죄자의 다리를 묶는 바인드 주문.
유틸성에 특화된 그의 주문들은 그를 거의 전능한 존재로 만들어주고 있었기 때문에.
게다가 패널티가 있긴 하지만 그가 사용할 수 있는 궁극 주문 메테오는 게임 내에서도 손꼽히는 파괴력의 공격 주문이었다.
그러나 마법사라는 직업 특성상, 그는 고정된 위치에서 손을 휘둘러 주문을 시전하는 것이 메인 플레이였고, 허먼은 몸으로 뛰어다니며 플레이하는 것이 메인 플레이였다.
때로는 녹색 거인처럼 강력한 힘으로 적을 한방에 도륙내고, 때로는 붉은 번개처럼 도시를 뛰어다니며 시민을 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푸른 용사처럼 적의 공격을 멋지게 막아내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적을 박살내는 기분은 정말 끝내줄 것 같았다.
하지만 프라이는 그 능력이 가진 대가도 알고 있었다.
‘저렇게 뛰어다니면 다 구하기 전에 탈진할 텐데.’
게임 속의 캐릭터와는 다르게, 게이머의 현실 속 육체는 저런 격렬한 플레이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게이머들은 운동 부족이라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아마 현실 속의 허먼은 PRD안에서 헉헉대며 열심히 팔다리를 휘젖고 있을 것이었다.
자신의 팔다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
[남은 시간 23초. 남은 인질 수는 22명입니다.]
“X바아아아알!!!”
다음 인질의 위치를 향해 전속력으로 점프한 허먼은 본능적으로 이 작전이 성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이상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시민을 구하는 것밖에 없었기에, 허먼은 헉헉대며 계속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체력적으로 이렇게 힘든 미션은 처음인데.’
결국 20초를 양손에 들린 두 명의 시민을 경계 밖으로 집어 던진 허먼은 급하게 옵티머스를 호출했다.
이대로라면, 절대 나머지 20명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포인트를 쓸게.”
[지금 말입니까? 완전 소환을 위해 지금까지 1포인트도 안 쓰고 아껴두시지 않았나요?]
“닥치고 세팅 화면이나 열어.”
허먼의 말을 들은 옵티머스는 허먼의 앞에 반투명한 포인트 투자 UI를 펼쳐놓았다.
그리고는 허먼을 향해 말했다.
[현재 동기화 포인트는 2332포인트입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장비가 뭔데?”
[초 가속 신경 강화 장비. 포인트는 2200포인트입니다.
민첩 강화 모드용 유틸리티로 10초간 시간이 느리게 느껴질 정도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
[지금까지 모은 포인트의 대부분이 소진됩니다만, 괜찮습니까?]
“시민을 구해야지. 포인트는 다시 모으면 돼.”
[알겠습니다.
초가속 모드 개방 완료.
시동어는 ‘초가속 모드 개방’입니다.]
“어라? 허먼 씨 왜 안움직이지?”
멀리서 허먼을 지켜보던 프라이가 당황하며 말했다.
겨우 20초를 남겨두고, 허먼의 동작이 멈췄기 때문에.
그리고 이 피를 말리는 상황에서, 허먼은 더 이상의 구조를 포기한 채 가만히 자리에 서 있었다.
재생을 마친 괴물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먼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까지.
허먼은 가만히 서 있었다.
“허먼 씨!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아직 20명이나 남아 있다고요!”
‘설마 렉은 아니겠지?’
다급해진 프라이가 그런 황당한 생각까지 떠올리고 있을 때, 마침내 허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모드, 개방!”
거리가 멀어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프라이는 허먼이 외치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프라이는 자신이 태어나서 겪은 모든 경험을 통틀어 가장 황당한 경험을 겪게 되었다.
‘팔이···. 안 움직여?’
엄청나게 복잡한 마법 술식의 시전을 위해 복잡하게 움직이던 자신의 팔이, 마치 무언가에 속박된 것처럼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시간이 느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그것은 프라이의 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느려진건가?’
지금이라도 허먼을 덮칠 것 같은 괴물의 공격도,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숙인 시민들의 모습도.
심지어 괴물이 자리를 박차면서 바닥에서 튀어오른 돌조각들의 잔해도.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모두 제자리에서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단 한 명. 허먼의 몸을 제외하고.
“FuuuuuuuuuuuuucK!!!!!”
모두가 느리게 움직이는 상황 속에서, 프라이는 허먼이 빛과 같은 속도로 뛰어다니며 시민들을 구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단 10초의 남은 시간 동안 모든 시민을 구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젠장, 진짜로 멋진 장면은 다 가져가네.’
프라이는 와이어가 강제로 자신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상황에서 느린 속도로 남은 캐스팅을 시전했다.
그리고 마지막 시민인 여자아이를 품에 안은 허먼이 마치 미식축구선수 같은 포즈로 소녀를 감싸 안고 경계 밖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젠장, 진짜로 멋진 장면은 다 가져가네.’
하지만, 결국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것은 자신의 역할이니 거기에 만족하자고 생각하며, 프레이는 조용히 검지를 하늘로 치켜세웠다.
“존재에 닿는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라.
메테오(Meteor).”
프라이의 메테오는,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는 형태의 고전적인 주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주 공간에서 고속으로 이동하는 운석을 목표 지점에 바로 소환하는 주문이었다.
시전 시간 1분.
시전하는 도중에 다른 주문 사용 불가.
시전 이후 추가 주문 시전 불가.
시전시 범위 내 대상에게 균일하게 데미지 분산.
시전 도중 공격받을 시 캐스팅 취소.
엄청나게 많은 제약조건이 달린 주문이었지만, 그 위력만큼은 확실하게 보장된 주문,
메테오(Meteor)는 그 자신이 어째서 궁극 주문이라 불리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미친, 저게 메테오라고? 파일드라이버는 상대도 안 되네.”
마치 거대한 막자로 지형 자체를 갈아버리려는 듯한 운석의 밑에서, 거대한 괴물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명이 잦아들자, 메테오가 시전 된 공간엔 커다란 구 형태의 운석만이 남아 그 자리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히어로가, 시민을 구하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싸운 위대한 전투가.
그리고 그때, 사방에서 터져나온 박수 소리가 허먼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허먼이 탈진 직전까지 뛰어다니며 힘들게 구한, 도시의 시민들이 보내는 박수였다.
“으아아아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히어로가 시민을 구했다! 히어로가 시민을 구했다고!”
“희생자가 한 명도 없다니! 당신들은 진짜 영웅이에요!”
“프라임! 프라임! 프라임!”
물론 저 환호성은 모두 NPC가 내는 환호성이라는 것을, 허먼은 잘 알고 있었다.
생명도, 영혼도 없는.
단순히 미리 지정된 반응을 보이는 애니메이션일 뿐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이 전해주는 기분은, 탈진한 허먼으로 하여금 끝없는 만족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었다.
“팔다리 하나도 꼼짝 못 하겠지만, 기분은 좋네.
근데 이거 캐릭터가 탈진상태라서 PRD가 못 움직이게 하는 건가? 아니면 내 몸이 아예 안 움직이는 건가?”
그것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RPD는 대단한 장비였다.
그리고 그때, 허먼의 곁으로 날아온 프라이가 허먼에게 말을 걸었다.
“탈진?”
“어···.”
“캐릭터가 지치면 못 움직이게 와이어로 압력을 주던데, 그거에요? 아니면 몸이 지친 거예요?”
“몰라 나도. 아마 둘 다겠지.
지금 거의 종일 RPD를 사용했으니까, 몸이 지칠 만도 하고.”
“그럼 이제 쉬실 건가요?”
“일단 이 자리는 벗어나야지.”
“어떻게요? 걸어다니지도 못하시면서?”
그러자 허먼이 프라이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업어 인마.”
“예!?”
“업고 가라고. 네가 활동하는 본부까지 날 옮겨라.
업든, 아니면 전송을 하든, 마법의 양탄자에 태우든 알아서 하고.
어찌됐건 이 세계 안에 있는 침대가 있는 곳으로 날 옮겨.
만약에 이게 캐릭터가 탈진한 거라면, 침대에서 쉬고 나면 회복될 테니까.”
“그런거라면 간단하게 확인할 방법이 있죠.”
프라이는 팔을 휘저으며 외쳤다.
“힐(Heal).”
그러자 허먼은 자신의 몸이 녹색 빛에 휩싸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꼼짝도 안 하던 자신의 육체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감각과 함께.
허먼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프라이가 그 팔을 잡아당겨 도와주었다.
“아무래도 캐릭터 탈진이었나 보네요.”
“몸도 지쳤긴 해. 아예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데 아까는 정말 구분이 안 되더라고.”
“그 정도로 PRD가 대단한 장비라는 거겠죠.
어쨌든, 꽤 지치신 것 같은데 오늘은 이쯤 할까요?”
“아니, 일단 시선을 피해서 이동하고 변신을 풀자고. 그리고 카페든 집이든 가자. 할 이야기가 정말 많으니까.”
“좋아요. 프라임. 일단 이 자리를 빠져나가죠.”
허먼은 프라이가 자신의 손을 잡고 수인을 맺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빛과 함께 두 사람의 육체가 어딘가로 전송되었다.
“여긴···.”
생소한 풍경에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허먼을 보며, 프라이는 양팔을 벌려 환영의 자세로 그에게 말했다.
“어서 오세요. 마법사의 전당(Hall of sorcerer)에!
이곳은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고대 유적 지하의 제 아지트입니다!
그리고 제가 히어로 활동을 하는 히어로 본부이기도 하죠.”
프라이의 아지트.
그것은 허먼이 지금까지 플레이하던 게임과는 완전히 ‘별개의’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헤일러에서 툼라이더로 들어온 느낌이네.
어쨌든 좋아. 그럼 잠시 체력도 회복할 겸, 잠시 이야기 좀 하자고.”
“어떤 이야기를요?”
프라이가 묻자 허먼이 답했다.
“글쎄. 일단 이 미친 게임에 대해 우리가 파악한 정보를 좀 취합해 볼까?”
그리고 두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플레이를 토대로 HC101이라는 게임이 가진 ‘스케일의 크기’에 관한 격렬한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