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52화 (353/485)

352. 히어로 트레이닝

드디어 능력을 얻은 허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바로 강력한 빌런들 앞에서 옵티머스를 소환해 화려한 전투를 벌일 수는 없었다.

히어로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사전 작업이 필요했기에.

하지만 허먼은 그 ‘사전 작업’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본인이 키우는 ‘아바타’가 히어로인 것이지, 그것을 조작하는 허먼 본인이 히어로는 아니었으니까.

그런 그에게, 그가 ‘옵티머스’라 이름 붙인 AI는 순서대로 허먼이 해야 할 것들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현재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옵티머스라는 로봇을 다루기 위해서는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누구를 만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준비해야 하는지.

그 모든 과정은 허먼으로 하여금 진짜 히어로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는 것 같은 체험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본인이 다룰 수 있는 능력에 익숙해지는 겁니다.

먼저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넓은 공터로 이동해주십시오.

실험실이 좁은 편은 아니지만, 전투 훈련을 감당할 정도의 넓이는 아니니까요.]

허먼은 인트로 파트에서 스쳐 지나가듯 방문했었던 폐공장을 떠올렸다.

건설사 부도로 벌써 2년 넘게 방치 중이라고 했던 그 장소를.

“짐작 가는 데가 있어.”

[그곳은 충분한 넓이를 가지고 있는 곳입니까?]

“내가 알기로는 그래.”

[좋습니다. 지금 바로 사용자의 스마트폰을 강제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순간 허먼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허먼이 그것을 꺼내자, 해킹이라도 당한 것처럼 미친 듯이 시스템 메시지를 띄우며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스마트폰의 화면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과정이 종료되자, 멋들어진 로고를 배경으로 블루 프린트 형태의 도시 모양 3D 조형이 회전하고 있는 화면이 등장했다.

[지금부터 사용자가 실험실 외부에 있을 때의 연락은 해당 디바이스를 통해 실시하게 됩니다.

아무에게도 노출되지 않는 장소에 도착한 후, 스마트폰을 사용하여 저를 호출해주시기 바랍니다.]

허먼은 지하실을 나서 폐공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옵티머스에게 배운 대로 스마트폰에 깔린 전용 앱을 통해 옵티머스를 호출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오, 드디어 10미터짜리 거대 로봇이 소환되는 장면을 보는 건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허먼이 바라는 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옵티머스가 허먼의 소환을 거부했기 때문에.

[현재의 동기화 수준으로는 옵티머스 본체의 완전 소환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사용자 신체의 보호를 위한 기본 훈련을 진행하겠습니다.]

‘젠장. 어쩐지 1레벨 때부터 10미터 짜리 로봇을 소환하는 건 지나치게 밸런스 붕괴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긴 했어.’

허먼은 속으로 투덜대며 옵티머스의 지시에 따랐다.

그런 허먼에게, 옵티머스는 ‘필살기’에 해당하는 로봇 소환 대신 좀 더 일상적으로 쓸 수 있는 히어로 기술에 대해 안내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기능은 변신입니다.

‘실험실’의 내부에는 현재 인류가 가진 기술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위험한 기술들이 가득하므로, 사용자는 실험실의 존재를 숨길 필요가 있습니다.

손가락의 형태를 스마트폰에 띄워진 그림처럼 바꾼 뒤, 시동어를 외쳐 위장 장비를 소환하십시오.

기본 시동어는 ‘변신(Transform)’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사용자의 의사에 따라 변경할 수 있습니다.]

“그대로 할게.”

허먼이 ‘변신’이라 외치자, 허먼은 눈부신 빛과 함께 반투명한 유리막이 시야를 가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개를 숙여 자신의 팔다리를 바라보니, 마치 기계 갑주처럼 생긴 무언가가 전신을 감싸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게 히어로 슈트야?”

[정확한 명칭은 ‘신체 보호형 신변 위장 장비(body protection type camouflage equipment)’입니다만, 편하게 히어로 슈트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뭔가 기계가 잔뜩 달려 있는데?”

[해당 장비는 신체 보호 및 위장의 목적 외에 신체 능력의 강화 및 다양한 유틸리티 기능을 포함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다차원 조정 기술을 통해 실험실에 세팅한 다양한 장비들을 호출하는 것입니다.

시스템 명령어 ‘소환’ 및 ‘출력 변환’으로 슈트의 다양한 기능이 사용할 수 있나 일부 장비는 사용자와 실험실의 동기화 수준에 따라 사용 여부 및 시간이 제한됩니다.

빠른 적응을 위해서는 직접 체험해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뭐부터 할까?”

[강화된 신체 능력에 적응하는 것부터 시작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강화되었다고 해도, 딱히 감이 안 잡히는데. 그냥 약간 무거운 옷을 걸친 느낌이고.”

[현재 사용자가 걸치고 있는 장비의 무게는 324kg입니다.

강화된 신체 능력 때문에 그 무게를 인지하지 못할 뿐이죠.

그럼 본격적인 훈련을 위해, 실험실에 있는 트레이닝 장비들을 소환하겠습니다.

시스템 명령어 ‘트레이닝 프로그램 소환’을 사용해주십시오.]

“트레이닝 프로그램 소환.”

허먼이 옵티머스의 말을 따라 하자, 폐 공장의 사방에서 거대한 기계 로봇들이 빛과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를 연상하게 하는 육중함을 가진 장비들이었다.

[방금 소환된 트레이닝 더미들은 2톤에서 12톤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인치 두께의 강철로 만들어진 철판을 메모지처럼 구겨버릴 수 있는 출력도 가지고 있죠.

정확히 10초 뒤부터, 그 더미들이  사용자를 공격하기 시작할 겁니다.

강화 신체의 사용법을 몸으로 터득하면서, 전투의 흐름을 느끼도록 하세요.]

“뭐!? 미친. 시작부터 전투라고!? 나 싸움 할 줄 모르는데?!”

[행운을 빕니다.]

“이런 미친!!!”

허먼은 말을 더 이어갈 수 없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를 포위하고 있던 강철의 기계들이 그에게 날카로운 기계 팔을 휘두르기 시작했기에.

허먼은 그 기세에 눌려 발에 힘을 주어 뒤로 점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허먼은 뒤로 몸을 날리는 순간, 옵티머스가 말한 ‘신체 강화’가 어떤 의미인지 깨닫고는 입에서 욕설을 내뱉었다.

최대한 빠르게 피하려고 힘껏 뒤로 점프하자마자 그의 몸이 레이저처럼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갔기 때문에.

결국 허먼은 폐공장의 콘크리트 기둥에 몸을 처박았고, 기둥은 굉음과 함께 처참하게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그때, 이전과 똑같은 덤덤한 말투로 옵티머스가 허먼에게 말했다.

[신체 보호형 신변 위장 장비, 그러니까 ‘히어로 슈트’는 민첩 강화 모드에서 인간 신체 능력의 100배 이상의 출력을 제공합니다.

그건 최대 30층 높이 정도의 주거용 건물을 점프 한 번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정도의 신체 능력입니다.

우선은 슈트에 가하는 근육의 압력에 따라 어느 정도의 기동이 가능한지를 파악하며 적의 공격을 피하도록 합시다.

훈련 시간은 1분입니다.]

허먼은 1분이란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이고 콘크리트 기둥과 벽에 처박히기를 반복하면서, 민첩 상태에서의 신체 사용법을 익혀나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데미지를 입고 있었다.

트레이닝 더미에게 맞아서가 아니라, 너무 빠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사방에 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슈트의 보호를 받고 있다 하더라도, 투포환 같은 속도로 단단한 콘크리트에 몸을 던지는 행위는 허먼을 만신창이로 만들기에 충분한 데미지를 입히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분이 지났을 때, 허먼은 다리를 감싼 갑옷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이번엔 같은 색의 빛이 몸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민첩 강화 모드의 트레이닝을 종료합니다.

이번 훈련으로 인해 입수한 동기화 포인트는 32포인트입니다.

다음은 방어 강화 모드입니다.

방어 강화 모드는 히어로 슈트의 출력을 특정한 에너지장으로 만들어 전신에 두르게 해 줍니다.

민첩 강화 모드에서도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에너지 장 자체는 유지 되지만, 목숨을 보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되죠.

그건 최대 300KM의 속도로 콘크리트 벽과 충돌하거나, 50구경 대물 저격총의 데미지를 약간의 통증 정도로 상쇄하는 방어력입니다.

반면에 방어 모드는 10인치 두께의 강철판을 뚫는 대전차 미사일의 데미지도 무시할 수 있는 방어력을 제공합니다.

특히 주먹부터 팔꿈치까지의 구간은 나머지 신체 부위보다 방어력이 3배 이상 강한데, 지금부터는 그 기능을 테스트할 겁니다.

트레이닝 더미의 공격을 몸이 아니라 팔로 막으려 시도해보세요.

행운을 빕니다.]

옵티머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허먼은 자신을 둘러싼 거대 기계들이 일제히 자신을 향해 기계 팔을 휘둘러 대는 모습을 보았다.

그 흉악한 공격에 대해서, 허먼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팔을 휘두르는 것뿐이었다.

“X발···. X발···. X바아알!!”

문제는 적의 숫자는 8이 넘는데, 허먼의 팔은 단 두 개라는 점이었다.

허먼은 몇 번이고 뒤쪽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맞아 날아가면서, 아까보다 더 만신창이가 된 느낌을 받았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이유 모를 분노와 함께.

그리고 마침내 1분이 지나자, 옵티머스는 히어로 슈트의 마지막 모드에 대해 설명했다.

[방어 강화 모드의 트레이닝을 종료합니다.

이번 훈련으로 입수한 동기화 포인트는 48포인트입니다.

다음은 마지막으로, 공격 강화 모드의 훈련을 하겠습니다.

앞서 이어진 훈련을 통해 예상하셨겠지만, 공격 강화 모드는 사용자의 공격력을 강화하는 모드입니다.

이 모드에서, 사용자는 1분이란 제한 시간 동안 ‘실험실’에 있는 모든 무장을 자유롭게 ‘소환’하여 적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지금 소환 가능한 장비 리스트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순간 반투명한 홀로그램과 함께 허먼의 눈앞에 수많은 장비의 모습이 등장했다.

다련장 미사일부터 레일건으로 추정되는 SF느낌의 거대 발사기.

손잡이만 있는 막대처럼 생긴 물건부터 수박만 한 강철 주먹이 달린 기계 글러브까지.

허먼은 그 중 기계 글러브의 홀로그램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뭐야?”

[뒤쪽에 있는 사출구로 강한 압력의 제트 기류를 뿜어내어 펀치의 속도를 증가시키는 장비입니다.

주먹의 정권에 해당하는 부위엔 운석에서 추출한 파괴 불가능한 특수 금속이 박혀 있습니다.

50인치 두께의 특수 합금 블록을 가루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제공합니다.]

“저걸로 하지. 다른 건 몰라도, 일단 2분 동안 날 두들겨 팬 저 빌어먹을 로봇들은 다 부숴버리겠어.”

[시스템 명령어 ‘소환’과 함께 장비 이름을 외치시면 필요한 부위에 자동 장착됩니다.

해당 장비의 이름은 ‘로켓 펀쳐’입니다.]

“소환! 로켓 펀쳐!”

강철의 주먹을 달고 트레이닝 더미를 노려보는 허먼에게, 옵티머스는 이전의 트레이닝과 같은 ‘행운을 빕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분노를 이해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번엔 다른 멘트를 허먼에게 전해주었다.

[신나게 스트레스를 풀어주세요.]

그러자 허먼은, 이어지는 1분간 옵티머스의 말을 ‘충실히’ 이행했다.

“으하하하하!!! 가루가 되어라! 빌어먹을 쇳덩어리 들어!”

조금 전까지 자신을 두들겨 패는 5미터짜리 강철 괴물이 주먹 한 방에 산산이 조각나는 모습은 10년 묵은 체증이 한방에 사라지는 느낌을 전달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얻은 능력의 강력함도 전신으로 체감하게 하고 있었다.

그것은 허먼이 알고 있는 ‘PRD 이전의 게임’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감각이었다.

-콰아아앙!!!!-

내지른 주먹이 육중한 강철과 충돌하는 순간, 팔을 타고 전신에 전해지는 짜릿한 반발력.

강철이 찢어지는 굉음과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굵은 스프링.

풍압에 의해 생성된 바람이 몸을 스쳐나갈 때마다 전신에 느껴지는 시원한 느낌.

그것은 단순히 ‘새 스킬을 얻어서 사용한다’라는 감각과는 본질적인 레벨에서 차원이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전 트레이닝 더미의 파괴를 확인.

구동 가능한 추가 더미 없음.

공격 트레이닝 완료까지 걸린 시간은 23초입니다.

이번 훈련을 통해 72포인트의 동기화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기초 트레이닝 완료를 축하드립니다.]

“기초? 이게 기초라고?”

[조금 전 상대하신 트레이닝 더미의 수준은 레벨 1입니다.

현재 실험실에 있는 트레이닝 더미는 레벨 5까지 존재합니다만, 현재 사용자의 수준으로는 레벨 1이 한계이니 더 이상의 트레이닝은 진행할 수 없습니다.]

“그럼 그 동기화 포인트 인가 뭔가는 어떻게 버는 거야?

그리고 애당초 동기화 포인트라는게 뭔데?”

[동기화 포인트는 실험실의 AI. ‘옵티머스’가 사용자를 주인으로 인정하는 레벨의 수준입니다.

옵티머스의 창조자는 옵티머스가 세계를 지키는 열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옵티머스를 개발하였으며, 진정한 히어로의 자격을 가진 자에게만 그 사용권을 부여하도록 설정했습니다.

물론 그 창조주의 존재는 사용자 허먼씨의 외할아버지이지만, 당신에게 자격이 없었다면 옵티머스는 당신이 창조주의 외손자라 하였더라도 절대 실험실의 사용 권한을 이전하지 않았을 겁니다.

일부 권한이 이전된 지금도, 저는 사용자가 이 힘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에 걸맞은 사람인지 지속적으로 검증하고 확인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히어로 활동을 하면서 내가 진정한 히어로라는 걸 증명하면 된다는 거지?”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그럼 다음 스텝은 뭐야?”

화면에 나온 지문을 따라 대사를 연기하는 허먼에게 옵티머스가 답했다.

[다음 스텝은, 아마도 허먼 씨의 윤리관과는 맞지 않는 명령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제 창조주는 커다란 선을 위해서 가끔은 작은 악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던 분이었으니까요.]

“어? 대체 뭘 시키려고?”

[실험실로 돌아가서, 거기 있는 해킹용 USB를 입수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경찰청 본사에 있는 특별 보안 서버에 꽂아 넣어야 합니다.]

“그거, 범죄 아냐?”

히어로 활동을 위해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개발한 AI ‘옵티머스’.

그가 자신의 새 주인에게 내린 두 번째 명령은, 특수한 보안으로 지켜지고 있는 경찰청 서버를 직접 방문해서 해킹하라는 지시였다.

***

‘즐겁다.’

게임을 진행하며, 허먼은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화면에 나오는 대사를 그대로 따라 읽는 것에 조금의 오글거림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것도 게임을 진행하면서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마치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레 표현하는 수준으로 대사를 읖어가면서, 허먼은 HC 101에 갖춰진 수많은 ‘디테일’들에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쩐지 학교 동창 중에 경찰서장 딸이 있더라니.’

HC 101은 목표와 함께 반드시 힌트도 제공하는 게임이었다.

‘경찰청 해킹’이라는 목표의 힌트는, 바로 허먼이 인트로 파트에서 만났던 허먼의 학교 동창 클레어였고.

허먼은 그녀를 설득해 히어로 활동의 동료로 합류시키고, 그녀에게 허먼 대신 경찰청에 있는 특별 보안 서버의 해킹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허먼과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의 열렬한 신봉자인 클레어는 허먼이 보여준 실험실을 보자마자 자신이 경찰청 서버를 해킹해주겠다고 선언했다.

허먼이 외할아버지가 남긴 유산.

‘실험실’의 장비들을 그녀가 연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을 걸어서.

그래서 현재 허먼은 그녀에게 실험실을 맡긴 채로 도시를 누비며 히어로 활동을 하는 중이었다.

자신과 함께 멀티플레이를 진행하기로 했었던, 프라이의 존재는 까맣게 잊은 채.

그리고 그것은 프라이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마법밖에 못 쓰는 영웅한테 마법이 안 통하는 빌런을 내미는 미친 게임이 어디 있어!?”

그러자 프라이가 손에 든 책의 표지에 있는 사람 모양의 입이 프라이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여기서는 철수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공격 수단으로는 저 괴물을 상대할 수 없다.”

“시민들은 어떻게 하고!”

“공격은 통하지 않지만 반대로 상대의 공격도 우리의 마법을 뚫을 순 없다.

일단 보호 결계를 걸어서 시간을 벌자!”

프라이는 허공에 책을 집어 던졌다.

그러자 허공에 떠오른 책의 페이지가 빠르게 넘겨지며 마법진이 새겨진 페이지가 등장했고, 거기에서 초록색의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X발 아무리 생각해도 ‘저걸’ 상대할 힌트는 없었던 것 같은데.”

프라이는 욕을 하면서도 팔을 휘두르며 마법의 캐스팅을 시전했다.

그것도 단순히 수인을 맺어서 빠르게 사용하는 ‘퀵 캐스트’가 아닌, 정식 영창을 통해 펼치는 ‘소서리’계열의 주문을.

그것은 프라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보호 주문이었다.

“시전을 멈춰라! 공격이 온다!”

그때, 몸을 숨긴 프라이의 위치를 감지한 괴물이 프라이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프라이는 급하게 몸을 날려 괴물을 피해 달아나야 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입에서 욕설을 퍼부으면서.

아 씹 이런 개 X망겜! 나중에 PTW에 항의할 거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자꾸 지껄이지 마라! 지금은 전투에 집중해!”

“닥쳐! 주둥이 달린 책 주제에 나에게 뭐라고 하지 마!”

“겨우 마법 반사 능력만 있는 잔챙이 상대로 고전하는 애송이 마법사 주제에 위대한 그리모어를 모욕하지 마라!”

“그 위대하신 그리모어 님도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잖아!!”

마법 계열의 히어로를 정확히 카운터 하는 빌런의 등장.

그것은 지금까지 화려하게 히어로 활동을 이어오던 프라이의 자존심을 상처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프라이를 따라 허공을 가로지르던 그리모어가 뭔가를 인지한 듯 프라이에게 말했다.

“잠깐, 지금 현재 시대의 기술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차원 계열의 통신 전파가 감지 되었다.

잘하면 간섭 마법을 통해 통신에 개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어로 말해 영어로.”

“다른 히어로가 근처에 있는 것  같다.”

순간 프라이는 그것이 체험장 입구에서 만났던 NPC가 말한 ‘멀티플레이’ 이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다차원 통신망의 연결에 해킹 시도가 감지되었습니다.

방어를 시도합니다···.

해킹에 사용된 프로토콜 해석 불가.

방어 실패.]

[젠장, 더럽게 뚫기 힘든 방어진이네. 제말 들립니까?]

“뭐야 이건?”

[알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존재의 개입입니다.

아마도 인간이 ‘마법’이라 부르는 계열의 능력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쪽은 인간이 ‘과학’이라 부르는 계열의 능력 같은데? 수준은 훨씬 높지만.]

[칭찬 감사합니다만, 이 통신 라인은 보안 라인입니다.

추적해서 말소하기 전에 자진 퇴거를 요청합니다.]

[잠깐만, 그렇게 까칠하게 굴지 말아요. 그쪽도 어차피 사람들을 구하고 있는 히어로 아닙니까? 제 동료도 마찬가지랍니다.]

‘동료?’

순간 허먼의 머리속에 그것이 다른 히어로와의 접점이 되는 멀티플레이 이벤트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만. 옵티머스. 반격 중지하고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무래도 저쪽에 도움이 필요한 히어로가 있는 모양이니까.”

[네트워크 보안 모듈의 분석을 중지합니다.

침입자님. 원하는 것을 말씀해주십시오.]

[저는 프레스토리아 마법부의 C-23 외차원 관리자. 타입 ‘그리모어’.

이름은 ‘아바론’입니다.

제 부하이자 똘마니인 마법사 제이콥 프라이와 마법 오염 정화 활동을 수행 중에 현재 상대하기 어려운 수준의 적을 만나 도주 중입니다.]

“제이콥 프라이?”

[아직 견습 마법사인 애송이지만 죽게 둘 수는 없습니다.

혹시 여유가 되신다면 도움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아바론의 말을 들은 옵티머스는 왠지 모를 불쾌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남의 보안 네트워크를 멋대로 침입해서 도와달라고 하는게 마법사들의 방식입니까?]

[긴급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부분은 사과드리죠. ‘마음이 없는’ 인공 지능 씨.]

[사용자에게 구원 요청의 거부를 요청합니다.

알 수 없는 원시 기술의 사용자들은 세계 질서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입니다.]

[지금 그 말을 하는데 들어가는 전기도 전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건 아시는지?]

[죄송하지만 제 동력원은 소형화된 상온 핵융합로입니다.

그러니 환경오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만 싸우고 어디로 가야 할지나 말해줘요.”

[요청에 응하시는 겁니까?]

“내가 아는 사람이거든.”

[그렇다면 이해하겠습니다.

원시 기술의 사용자는 도움이 필요한 곳의 좌표를 불러주십시오.

사용자 허먼을 그 위치로 전송하겠습니다.]

[어차피 마법사가 사용하는 좌표 체계는 인간이 기술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사용자의 위치를 알려주면 내가 포탈을 열도록 하죠.]

[그게 함정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죠?]

“함정 아니라고. 내가 아는 사람이라니까?”

그렇게 말한 허먼은 통신망에 침입한 아바론에게 요청했다.

“지금 바로 갈 테니, 포탈을 열어줘요. 옵티머스? 내 위치를 전송해줘.”

[전송했습니다.]

[지금 바로 포탈을 열죠.]

그때, 허먼은 자신의 앞에 뜬 선택지 중에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바론에게 말을 걸었다.

“잠깐, 혹시 포탈 출구를 20미터쯤 상공에 놓을 수 있습니까?”

[가능은 한데 그럼 도착하자마자 허공에서 추락하게 될 텐데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하죠.”

허먼이 말을 마치자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 나온것과 비슷한 형태의 포털이 허먼의 앞에 등장했다.

포털 너머에서, 열심히 괴물을 피해 도망치고 있는 프라이의 모습과 함께.

허먼은 씩 웃으며 포탈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러자 허공에 발을 디딘 신체의 자세가 무너지며 공중에서 추락하는 것 같은 느낌이 허먼을 덥쳤다.

그러나 허먼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프라이에게 멋진 등장을 보여주기 위한 자신의 계산이었기 때문에.

지면을 바로 앞에 앞둔 상태에서, 허먼은 힘차게 시스템 명령어를 외쳤다.

“변--------신!”

그 순간 공중에서 허먼의 신체가 눈 부신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육중한 기계 갑옷에 둘러싸인 허먼의 육체가 지면과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앙!!!”

프라이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에 놀라 도주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흩날리는 먼지구름 속에서, 번쩍이는 슈트를 입은 채 엄청나게 멋진 포즈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히어로의 모습을 발견했다.

“허먼···씨?”

허먼은 자신이 보기에도 지금의 자신은 끝내주게 멋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프라이를 향해 말을 걸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히어로’의 모습에 걸맞게, 목에 잔뜩 힘을 주면서.

“여, 오래 기다렸지?”

그것은 그 유명한 ‘히어로 랜딩’포즈를 한 채 20 미터 상공에서 바닥에 착륙한 과학계열 히든 클래스.

‘변신 소환사’가 전투에 합류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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