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51화 (352/485)

351. 낯선 천장

[Hero Class 101의 체험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두 사람이 텔레포터를 이용해 도착한 가상 공간은 왠지 모르게 거대한 연구실을 연상하게 하는 실내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허먼은 연구실 중앙에 있는 거대한 포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명 처음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순간 대놓고 특정 영화를 연상하게 만드는 형태의 포탈을.

“저거 스타게이트 아냐?”

“그러게요. 엄청 닮았네요. 색은 좀 다르지만.”

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는 원형의 금속물체가 끊임없이 회전하는 가운데, 가운데 있는 빈 공간에서 빛나는 액체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끊임없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NPC로 보이는 여성에게 짧은 설명을 들은 유저들이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포탈 안으로 줄줄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저게 외부 행사장에서 돌아다니던 유저들을 죄다 빨아들인 신작 게임의 정체인가.”

허먼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유저들을 따라서 여성 NPC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고, 프라이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잠시 후 흰 가운을 입고 있는 여성 NPC의 앞에 설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혹시 PTW의 신작인 Hero Class 101을 체험하러 오셨나요?”

일반적인 게임에서 이런 식으로 NPC가 질문하는 것은 게이머를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었지만, 딥 다이버용 게임에 익숙한 유저들에게는 그리 생소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 AI 는 PTW가 자랑하는 핵심기술 중의 하나였기에.

허먼은 미소지으며 여성 NPC의 질문에 대답했다.

“예. 두 사람인데, 혹시 이 게임 멀티도 되나요?”

“지원은 하지만, 시작부터 같이 플레이는 하실 수 없습니다.

조금 플레이하다 보시면 멀티 구간이 오픈되는데 그때 원하는 유저의 월드와 사용자님의 월드를 연결할 수 있어요.

함께 하시길 원하시는 유저는 바로 뒤에 있는 분이신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게임 진행 중에 합류 가능한 구간에 진입하면 자동으로 월드 동기화가 이루어지도록 세팅해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며, NPC는 자신의 옆에 있는 기둥에 달린 스크린을 이리저리 터치했다.

마치 뭔가의 세팅을 하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보면서, 허먼은 NPC에게 조금은 분위기 깨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AI NPC죠?”

“예. 정확히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NE 컨벤션의 전체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통합형 커뮤니케이션 엔진, ‘이벤트 호스트’의 상호 작용 모듈의 일부입니다.”

“그럼 지금 그 터치하는 행동은 딱히 의미가 없지 않나요?

어차피 제가 동기화 요청을 한 순간, 이미 시스템에 적용이 되었을 테니까요.”

“사용자님이 말씀이 맞습니다. 사실 의미는 없는 행동인데, 분위기적인 연출을 위해서 사용자의 시스템 사용 요청이 있으면 여기 있는 시스템 패널을 조작하는 애니메이션을 재생하도록 설정되어 있지요.

그리고 지금, 세팅이 완료되었습니다.

앞에 보이는 포탈로 들어가시면, Hero Class 101의 체험판 플레이가 시작됩니다.

혹시 추가적인 질문 있으신가요?”

“초반 팁 같은 거라던가?”

질문하면서도, 허먼은 딱히 NPC가 게임에 도움이 되는 팁을 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기능이 엄청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정보를 AI가 ‘창조해서’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조금 전 무의미한 터치 애니메이션에 대한 질문도, 이미 그 질문을 할 것이라고 예상한 PTW측에서 답변을 미리 준비했기 때문에 대답할 수 있었던 질문이었다.

그러나 NPC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던 여성은, 그런 기습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미리 준비한 대답을 꺼내 허먼을 놀라게 했다.

“초반 팁이라···. 사실 어떤 선택을 하던 게임 플레이에 따라서 필요한 만큼 강해질 수 있는 게임이라 딱히 추천할만한 루트는 없습니다.

다만 본인이 좋아하는 게 있다면, 그것과 연결된 단서가 등장했을 때 최대한 따라가는 게 좋다는 정도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단서라면?”

“아이론 맨이 되고 싶으면 슈퍼 거미 연구소로는 가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저 세계 안에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엄청나게 많은 선택에 직면하게 되겠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선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히어로의 모습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HC 101은 그런 게임이니까요.”

“욕망에 충실하라···. 좋은 조언이네요. 어떤 식의 선택권이 주어질지 기대됩니다.”

“사용자님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하게 해줄 수 있는 경험이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월드 진입에 앞서, 한 가지 질문을 더 드리고자 하는데 괜찮을까요?”

“뭐죠?”

“게임 내에서 본인이 조작하실 아바타의 외형은, 현재 이용 중인 아바타의 외형을 그대로 사용하시겠어요?

아니면 게임 내에서만 사용할 별도의 외형을 따로 세팅하시겠어요?”

“연동도 되는 겁니까?”

“리얼 엔진으로 제작된 모든 게임은 통합 아바타 시스템(Unified Avatar System)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컨벤션 월드도, 리얼 엔진으로 제작된 세계이고요.”

그녀의 말을 들은 허먼은 HC101을 즐기기 전에, 아바타 세팅을 변경하기로 했다.

절로 고개가 돌아가는 미녀의 외형으로 컨벤션 행사장을 돌아다니는 경험도 즐거웠지만, HC 101 안에서는 본인의 성별에 맞는 아바타로 게임을 즐기고 싶었기 때문에.

“변경하겠습니다.”

“그럼 지금 즉시 이벤트 회장 입구에 있었던 커스텀 샵 내부로 전송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적용되는 것은 아바타의 체형이나 성별, 외모같은 신체적 특징만입니다.

게임 안에서는 게임 진행 상황에 따른 별도의 복장을 하게 되실 테니, 복장 세팅에 너무 시간을 쓰시는 것은 추천해 드리지 않습니다.”

“돌아올 때는?”

“커스텀 샵 내부에서 ‘세팅 종료’라고 외치시면 바로 이곳으로 다시 전송해드리겠습니다.”

허먼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허먼의 몸이 순식간에 행사 초반에 들어갔었던 커스텀 샵 내부로 전송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새 아바타의 세팅을 마친 허먼은 HC 101의 체험 존으로 다시 이동했다.

그렇게 변경된 허먼의 아바타는, 밝은 성격을 가졌을 것 같은 10대 백인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허먼을 보며 NPC 여성이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성별이 바뀌셨네요?”

“원래 성별로 돌아온 것뿐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본격적으로 체험을 시작해보시겠어요?

동료분은 바로 진입하셨습니다.”

“저 포탈로 걸어 들어가면 됩니까?”

“예. 게임 속에서의 자신의 이름을 저에게 말씀해주시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디폴트 네임은 아담 웹스터로 되어 있습니다.”

“허먼 멜빌로 부탁드립니다.”

자신을 도와준 NPC에게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한 허먼은 천천히 걸어가 포탈 앞에 섰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출렁이는 액체처럼 넘실거리는 ‘포탈’을 만졌다.

‘약간 액체 같은 느낌인데.’

실제로 자신이 액체를 만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허먼은 액체를 만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포탈에 손가락이 닿는 순간, 손끝에 있는 쿨러 유닛이 차가운 감각을 그의 손가락에 전달했기 때문에.

거기에 손을 물에 넣었을 때 느껴지는 수준의 미약한 수압까지 더해지면서, 허먼은 진짜로 물속에 손가락을 담근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진짜 신기하네.’

오늘 처음 체험한 PRD의 성능은 가히 경이적인 수준이었다.

원래부터 시야각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딥 다이버의 압도적인 시각과 청각 경험에, 온도와 압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더해지자 거의 현실과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가상 세계의 아바타가 입고 있는 헐렁한 옷이 피부에 스치는 감각조차, 매우 약한 압력을 통해 자신의 신체에 옷이 닿고 있음을 절묘하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절묘함을 넘어 거의 신기에 가까운 퍼포먼스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엄청난 퍼포먼스로 게임을 즐길 차례군.’

히어로가 되어 빌런과 싸우는 게임.

그 안에서 현실적인 수준을 넘어 상상 속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허먼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가 보자고.”

허먼은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힘차게 발을 내딧었다.

그가 지금까지 체험한 것보다 훨씬 대단할 게 분명한,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새로운 경험을 위해.

그리고 마침내, 포탈은 허먼을 그가 있던 가상 세계에서 또 다른 가상 세계로 전이시켜 주었다.

모든 게이머의 궁극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상으로 가득한 새로운 세계로.

***

‘미친 무슨 맨몸으로 워프타는 기분인데?’

포탈 안으로 들어간 허먼을 가장 먼저 덮친 감각은 ‘어지러움’이었다.

허먼의 신체가 마치 초광속 이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빛으로 가득한 기다란 터널을 미칠듯한 속도로 가로질렀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허먼은 몸이 뒤집히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감각을 느꼈다.

아마도 PRD가 현실 속 자신의 신체를 마구 뒤집고 있는 모양이었다.

위가 어디인지 아래가 어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느낌이 들 때쯤, 마침내 허먼은 몸의 떨림이 멈춘 것을 느꼈다.

그것도 완전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로.

허먼은 눈앞에 있는 천장의 형광등을 보며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엄청나게 유명한 대사를 내뱉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 천장이다.”

그때, 허먼의 침대 옆에 있는 작은 탁상시계가 삐비빅 하는 전자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마도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게 분명한 목소리가 허먼의 귓가에 들려왔다.

“허먼! 일어날 시간이야! 학교 가야지!”

‘학교?’

아마도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은 허먼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자, 자신이 설정한 아바타보다 훨씬 어린 체형의 작은 손이 보였다.

그러자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난 허먼이 방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 다가가 자신의 현재 모습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중학생···. 아니 초등학생인가?”

방에 있는 알록달록한 교과서와 작은 가방이 본인의 나이 대를 추정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허먼에게 꽤나 얼떨떨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왜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이지?’

지금처럼 자신의 신체가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이야기는, 이 황당한 게임이 오프닝도 없이 유저를 게임속 세계로 밀어 넣었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허먼의 궁금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곧바로 노크 소리와 함께, 조금 전 아래층에서 들렸던 여성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기 때문에.

“허먼? 아직 자니?”

순간, 허먼의 눈앞에 선택지가 등장했다.

[지금 바로 내려갈게요.]

[대답하지 않는다.]

[왜요?]

당연하게도, 패드나 컨트롤러가 존재하지 않는 PRD에서는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는 별다른 수단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허먼은 눈앞에 있는 대사를 그대로 읽었다.

“왜요?”

“왜긴, 학교 갈 시간인데 꾸물거리니까 그러지.

게다가 오늘은 네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의 시험이 있는 날이잖아.

빨리 가방 챙겨서 내려오렴.”

곧이어 방문에서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허먼은 책상을 향해 이동했다.

그리고는 책장에 꽂혀있는 교과서를 보며 말했다.

“좋아. 아까 NPC 아가씨가 말한 ‘힌트’가 이건가 보는군.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좋아하는 과목을 고르라는 거지?

왠지 펄아웃 3의 인트로 파트를 연상시키는데?”

인트로 파트에서 캐릭터의 유년기를 보여주며 캐릭터의 능력치를 정하는 시스템은 허먼에게 ‘펄아웃 3’의 인트로 파트를 연상하게 했다.

그리고 아마도, 거의 확실하게 지금 그가 가방에 넣는 교과서가 그의 능력치나 이후에 얻게 될 능력에 영향을 끼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어, 수학, 과학, 체육, 미술이랑 역사?

미술과 역사로 얻을 수 있는 히어로 능력이 대체 뭐야?”

그것은 허먼의 호기심을 강하게 끌었지만, 결과적으로 허먼은 과학책을 집어 들었다.

왠지 모르게 SF 계열의 장비를 사용하는 히어로가 되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가방에 ‘가장 좋아하는 과목’의 교과서를 넣은 허먼이 가방을 들고 문을 나서자, 눈 부신 빛이 그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허먼은, 문손잡이를 잡은 자세 그대로 어느새 학교의 락커 문을 잡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이, 범생이. 어제 말한 숙제는 가져왔어?”

그때, 한눈에도 양아치처럼 보이는 소년이 허먼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러자 허먼의 앞에 다시 한번 선택지가 등장했다.

[숙제? 무슨 숙제?]

[엿 먹어. 마이크. 네 숙제는 네가 알아서 하라고.]

[여기 있어.]

현재 자신의 캐릭터는 중학생이었지만, 현실의 허먼은 50살이 넘은 중년 아저씨였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풍채가 좋다고는 하지만 중학생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양아치의 협박은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허먼은 ‘거절’의 의미가 담긴 선택지를 고르기로 했다.

대신 조금 다른 뉘앙스를 담아서.

“남한테 숙제를 맡긴다고 네 성적이 좋아지지는 않아 마이크. 숙제도 스스로 못하는 네 나쁜 머리로는 그 사실을 이해조차 하지 못하겠지만.”

그러자 ‘마이크’라 불린 소년은 허먼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해석하려는 듯 눈을 위로 향하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엄청나게 분노한 표정으로 허먼을 향해 험악하게 윽박질렀다.

“너 뭐라고 했냐?”

[미안. 말이 헛나왔어.]

[뇌에 이어서 귀까지 맛이 갔냐?]

[선수필승]

허먼은 대답 대신 ‘선수 필승’이라는 선택지에 맞게 온 힘을 다해 상대의 복부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그 순간, 허먼은 자신이 잘못된 선택지를 골랐음을 알 수 있었다.

PRD의 근력 보정 때문에, 허먼의 현재 신체가 낼 수 있는 힘에 무지막지한 제약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하, 이제 별 가소롭지도 않은 놈이 개기네.”

온 힘을 다한 허먼의 주먹은 마이클의 복부에 닿는 순간 마치 벽이라도 친 것처럼 가로막혀버렸고, 마이클은 그런 허먼의 펀치를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고는 허먼의 복부를 향해 자신의 주먹을 날렸다.

“커헉!”

PRD를 통해 ‘타격’을 입은 것이 처음인 허먼은 그 생생함에 깜짝 놀랐다.

진짜로 배에 주먹이 꽂힌 것처럼, 맞은 부위에 강한 압력이 느껴짐과 동시에 몸이 강제로 구부러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현실의 신체에 데미지를 남길 정도는 아니었지만, ‘통증’을 인지하기엔 충분한 수준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허먼의 고통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악!”

정강이에 느껴지는 둔탁한 통증은 마이클이 허먼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허먼은 무려 10대의 펀치를 마이클이란 양아치에게 얻어맞아야 했다.

“아악! 이 어린놈의 쉐끼가!”

허먼은 발악하며 주먹을 휘둘렀지만, 마이클은 그런 허먼의 주먹을 비웃듯이 피하며 펀치를 날렸고, 허먼은 무력감을 느끼며 생전 처음으로 게임 속에서 얻어맞는 체험을 전신으로 느끼게 되었다.

허먼이 고른 선택으로 시작된, 기나긴 고난의 여정은 그 사건으로부터 이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개 같은 놈들아. 약한 애 괴롭히지 말고 나한테 덤벼라!”

현실에서의 자신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대사를 외치며, 허먼은 학교내의 양아치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때로는 희롱당하는 여학생을 구하기 위해.

때로는 단순한 저항감에서.

물론 그때마다 두들겨 맞아야 하긴 했지만, 허먼은 꿋꿋하게 버티며 모든 선택지에서 ‘정의’를 추구하려 애썼다.

그리고 허먼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이 언젠가 히어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예정된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허먼에게 있어서 지금의 과정은 이 세계에서의 자신이 살아갈 인생을 구축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허먼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캐릭터를 자신의 아바타로 만들고 싶었다.

그 과정은 허먼에게 있어서 굴욕적이고 아픈 과정이었지만, 재미있는 과정이기도 했다.

‘괴로운데 재밌다.’

생각보다 세밀하게 짜인 인트로 파트에서, 허먼은 인터렉티브라는 단어의 정의를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한 수많은 이벤트를 겪었다.

과학 경진대회에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개의 스케치 중 멋들어지게 생긴 로봇의 그림을 골라 미니 로봇을 만들어 우승하기도 하고, 미래의 꿈에 관해 묻는 선생에게 ‘히어로’라고 답하기도 하면서.

허먼은 자신이 생각하는 영웅의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인트로 파트를 꼼꼼하게 진행해 나갔다.

그리고 그런 허먼에게, HC101은 마침내 그가 히어로의 능력을 얻게 되는 ‘각성 이벤트’의 선택지를 내어놓았다.

“허먼. 슬프지만 너희 외할아버지가 실종된 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너도 발명가인 외할아버지는 알고 있지?”

천재 발명가지만 괴짜로 알려져 혼자 외롭게 살고 있던 외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인트로 파트에서 몇 번 언급된 이야기였기에, 허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고 있죠. 제가 존경하는 분이니까요.”

“아마 전 세계에 아버지를 존경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야.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 정말 기뻐하셨을 텐데···.

어디로 사라지신 것인지 모르겠구나.”

“제가 찾아볼까요?”

“이미 경찰도 수색을 반쯤 포기한 데다 워낙에 신출귀몰하신 분이니 네가 찾는 건 어려울 거야.

대신 외할아버지 집에 가서 청소를 좀 해주렴. 6개월이나 집이 비어있었으니 엉망일 테니까.”

“그렇게 하죠.”

허먼은 왠지 이 이벤트가 자신의 ‘각성 이벤트’일 것 같다는 직감을 강하게 느꼈다.

청소를 부탁하는 어머니가, 자신의 손에 작은 열쇠를 쥐여주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실종되기 직전에, 아버지가 내게 부탁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확신이 들면, 너에게 이 열쇠를 주라고.

내 생각엔 지금이 그때인 것 같구나.”

“이건···.”

“네 외할아버지의 지하실 열쇠야.

지금까지 자신 외에는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은 곳이고.

내가 어릴 적엔 거기에 시체가 있다는 소문도 돌았단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아버지는 그럴 분이 아니시지.

중성자 폭탄이라도 숨겨놓으셨다면 모를까.”

허먼은 손에 쥔 열쇠를 꾹 쥐었다.

그리고 청소년기 파트에서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었던, 비밀의 지하실을 향해 이동했다.

이전에 몇 번이고 힌트를 찾아서 뚫어보려고 했지만, 절대 진입할 수 없었던 ‘그 지하실’로.

그리고는 두근대는 심장을 필사적으로 진정시키며 지하실 문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

무슨 능력이 주어질까.

인트로 파트 내내 천재 과학자이자 발명가라고 언급되었던 인물의 비밀 지하실인 만큼, 분명 자신이 히어로가 될 수 있는 엄청난 비밀이 묻혀있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아이론 맨 3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했던 엄청난 실험실이 눈 앞에 펼쳐질지도 모르고, 어쩌면 사람을 근육질의 거인으로 만드는 비밀의 기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착용한 사람을 슈퍼 히어로로 만들어주는 엄청나게 강력한 파워 슈트가 있을 수도 있고.

체험장에 있던 여성 NPC는 자신에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선택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허먼은, 그녀의 조언대로 인트로 파트 내내 과학 계열 선택지만 골랐으니 분명 SF 관련 능력이 주어질 것이라 확신했다.

과학을 좋아하며, 심심풀이로 작은 로봇을 만들 만큼 뛰어난 두뇌를 지녔지만, 매일같이 학교에서 두들겨 맞는 SF 오타쿠를 히어로로 만들어줄 엄청난 능력이 주어질 거라고.

그리고 그런 허먼의 기대감을 부추기기라도 하듯이, 평범한 금속 문처럼 보이던 외할아버지의 지하실 문은 열쇠를 집어넣자마자 육중한 기계음을 내며 푸르스름한 빚을 내기 시작했다.

[마스터키 인식 완료.

제1 잠금장치 해제.

마스터키 사용자 인증 개시.

인증 확인.

협박이나 납치에 의한 강제 인증 여부 확인.

주변 환경 스캔.

사용자에게 적대적 대상 존재하지 않음.

사용자의 자격 인증 절차 개시.

뇌 내 스캔을 실시합니다.]

‘자격 인증?’

순간 스피커에서, 허먼이 지금까지 골랐던 선택지들의 대사가 허먼의 목소리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대사들은, 언제나 부당한 압력에 직면했을 때 허먼이 선택했던 대사였다.

[“개 같은 놈들아. 약한 애 괴롭히지 말고 나한테 덤벼라!”]

[내가 고작 네 덩치 때문에 쫄만한 사람으로 보이냐?]

[똑바로 들어. 난 히어로가 될 남자라고.]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엔 조금 오글거릴수도 있는 대사였지만, 허먼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대사들이야말로, ‘이 세계’의 자신이 선택한 자신만의 가치관이었기 때문에.

현실의 자신과는 다르게, 이 세계의 자신은 영웅이 될 사람이었다.

절대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도 절대 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비록 현실의 자신은 그렇게 할 용기가 없을지라도, 이 세계에의 자신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허먼의 생각에 동의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허먼의 목소리를 재생하던 스피커에서 AI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자격’ 인증 완료.

사용자에게 본 실험실의 주인이 될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사전에 입력된 프로토콜에 따라, 실험실 권한을 현재의 마스터 키 소유주에게 이전합니다.

권한 이전 절차 개시.

권한 이전 완료.

게이트를 오픈합니다.]

마치 SF 영화의 네비게이터가 할 법한 대사를 읊어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허먼은 정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리고 그런 허먼의 앞에서, 지하실의 문이 좌우로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허먼은 HC101이 자신에게 부여한 능력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바로 정면의 위치에, 무려 10미터 크기의 거대한 기계 갑옷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허먼의 기대를 충분히 넘어설 만큼 멋진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실험실(The Laboratory)’의 새로운 사용자 허먼 멜빌을 환영합니다.

당신에게 이전된 권한에 따라, 현재 시각 이후로 이 실험실에 있는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실험실에 대한 설명에 앞서, 사용자 허먼에게 현재 대기 중인 제1 절차의 수행을 요청합니다.]

“제 1절차?”

[현재 사용자의 눈앞에 있는 자가 기동형 AI 로봇의 호출명을 정해주십시오.

해당 로봇은 본 실험실의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다차원 경계 영역을 통과하여 사용자의 호출을 받아 사용자의 신변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요컨대 이 로봇의 이름을 정해달라는 소리지?”

이름을 부르면 차원을 넘어 자신에게 달려오는 10미터 크기의 로봇.

허먼은 그 로봇에게 마땅한 이름을 단 하나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허먼이 생각하기에, 그보다 완벽한 이름은 없을 것 같아서.

“옵티머스.”

허먼의 입에서 그가 앞으로 수없이 부르게 될 이름이 튀어나왔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옵티머스 프라임이다.”

기나긴 인트로 파트에서, 수없이 많은 ‘가상의 구타’를 견디며 허먼이 얻어낸 능력.

그것은 이름만 부르면 차원 너머에서 대기하던 10미터 크기의 로봇을 소환해 적을 쓸어버리는 ‘소환형’ 능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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