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50화 (351/485)

350. 미녀와 데이트

“저, 이제 해리 버터가 술집에서 다이애건 앨리로 이동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마치 꿈속을 걷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프라이에게, 허먼은 손에 든 팸플릿을 펼치며 씩 웃어 보였다.

본격적으로 투어를 시작한 허먼은 눈 앞에 펼쳐진 수많은 인파의 무리 속에서 자신의 직장 동료인 제이콥 프라이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러나 그런 허먼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는데, PTW에서 이 수많은 무리 중에서 함께 컨벤션을 즐길 동료를 찾는 과정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미리 준비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현재도 허먼의 손에 들린 ‘가상의’ 가이드 팸플릿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놀이공원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팜플렛같이 보였지만, 실제로는 현실에서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마법같은 물건이었다.

자신이 현재 조종하고 있는 아바타의 주머니속에 들어있던 팜플렛은, 처음엔 스마트폰 정도의 휴대하기 쉬운 사이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팜플렛의 양쪽 귀퉁이를 잡고 쭉 잡아당기자, 그것은 순식간에 신문 정도의 크기로 변화했다.

거기엔 허먼이 현재 있는 테마파크의 공중 조감도 같은 형태의 지도와 함께, 허먼이 딥 다이버에 로그인해놓은 워크 패스트 계정과 연동된 인물들의 위치가 그려져 있었다.

잠시 조감도를 보며 투어 순서를 정한 허먼은 잡고 있던 팜플렛의 양쪽 귀퉁이를 안으로 밀었다.

그러자 팜플릿은 성냥갑 정도의 크기로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허먼은 그것을 주머니 안에 넣으며 프라이에게 말했다.

“현실에도 이렇게 자유자재로 사이즈 조정이 가능한 스마트폰 같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

“가상 공간이니 가능한 가상의 팸플릿이잖아요.

그리고 그거 쓸때마다 주머니에 넣으실 필요 없어요.”

“그건 무슨 소리야?”

“이렇게 된 다고요.”

프라이는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서 허먼이 가진 것과 똑같은 팸플릿을 꺼내고는 그것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러자 바닥에 떨어진 팸플릿이 빛나는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졌고, 프라이는 다시 주머니에서 같은 모양의 팸플릿을 하나 더 꺼내어 허먼에게 보여주었다.

“혹시 잃어버리면 어쩌나 싶어서 한번 테스트해봤는데, 무한대로 생성되더군요.

꺼내서 편하게 보고, 그냥 아무 데나 집어던지면 돼요. 그럼 주머니에 하나 더 생기니까.”

“젠장, 저 모습을 보니 진짜로 이곳이 가상현실 공간이라는 게 느껴지네.

우선 이동하자고. 오늘 우리가 봐야 할 필수 어트렉션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허먼이 가장 먼저 프라이를 데려간 곳은, 행사 진입로의 입구에 있는 아바타의 모양을 바꿀 수 있는 ‘커스텀 샵’이었다.

“제대로 즐기려면 캐릭터 모양부터 잘 잡아야지.”

신기하게도, 커스텀 샵의 내부는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밖에서 볼 때는 작은 옷 가게 크기 정도로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웬만한 박람회 수준의 넓이를 자랑하는 내부 공간이 그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VR 공간의 특성을 엄청나게 알뜰하게 활용했네.

외부와 내부가 이렇게 크기가 다르면 외부 건물의 크기가 굳이 클 필요가 없지.”

그 안에서는 먼저 도착해 있는 수많은 유저들이 자신의 아바타의 복장을 수정하고 있었다.

마음에 드는 복장을 입은 마네킹 앞에 가서, 마네킹이 입고 있는 복장을 터치하는 행동을 통해.

그러면 순식간에 본인이 조작하고 있는 아바타의 복장이 마네킹의 그것으로 변경되었다.

“탈의실도 필요 없네.”

커스텀 샵 내부의 마네킹들은 판타지 컨셉의 복장부터 일상복까지 다양한 복장을 입고 있었고, 각 복장의 테마에 따라 군집을 이뤄 배치되어 있었다.

그 안에서 허먼은 어렵지 않게 자신이 입고 싶은 복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

“뭐야, 자네는 갑옷을 입고 행사를 즐기려고?”

“뭐 어때요. 평소에 이런 옷 입을 기회도 없을 텐데.

그러는 허먼 씨도 인디아나 존스 같은 복장을 하고 계시잖아요.”

“권총이랑 채찍도 포함인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 권총 쏠 수 있어요?”

“아니, 총알이 없어.”

프라이는 문득 뭔가가 생각난 듯 허먼에게 물었다.

“허먼 씨. 지금 우리는 서로를 만질 수 있는 상태잖아요?

제가 허먼 씨의 몸에 손을 대면, 그에 맞는 압력을 PRD가 허먼 씨의 신체에 전달하니까요.”

“그렇지.”

“그럼 제가 지금 허먼 씨의 싸대기를 날리면, 아니, 딥 다이버를 쓰고 있는 머리 쪽엔 아무것도 없으니 싸대기 말고 복부에 펀치를 날리면 어떻게 될까요?

단순히 만지는 수준의 압력이 아니라, 실제로 통증이 느껴질 수 있는 물리적 압력을 행사하면요.”

“어?”

그것은 황당한 질문이었지만 듣는이에게 엄청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기도 했다.

“당장 해보자.”

허먼이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깍지를 끼며 말하자, 프라이가 주먹을 쥐고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는 허먼의 명치를 향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으로 주먹을 날렸다.

“으아악!”

순간 프라이의 팔 전체가 반투명해지며 허먼의 아바타를 뚫고 지나갔고, 프라이는 균형을 읽고 허먼의 뒤쪽 바닥에 엎어졌다.

“안되네.”

“예. 그리고 허공에 시스템 메시지가 뜨네요.

[행사장 내부에서 유저 간의 폭력적인 상호작용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데요?”

“그럼 아마 여성 유저의 특정 부위를 만지는 것도 막혀 있겠네.

프라이 자네가 여성이었다면 그것도 테스트해봤을 텐데.”

그러자 프라이는 허먼이 지금까지 태어나서 들어본 말 중에 가장 황당한 말을 꺼냈다.

“여성이 되면 되죠.”

“뭐??!”

“저쪽에 아바타 성별 전환하는 부스도 있어요.”

“이런 미친. 오늘 행사에서 여성 아바타한테 말 걸었다간 흑역사 생길지도 모르겠는데.

어쩐지 여성 유저가 너무 많다 했어.

저 중에 절반 이상은 죄다 넷카마일 거야.”

“게다가 PTW의 음성 변환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니 목소리로 구분도 불가능하겠죠.”

“조심하자고. 하지만 테스트는 하고 싶어. 그러니까 잠시 기다려.”

허먼은 엄청나게 진지한 표정으로 프라이에게 말했다.

“난 예전부터 여자가 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고.”

그리고 잠시 후, 허먼은 프라이가 입을 떡 벌릴 정도로 엄청난 미인 아바타를 생성해와서 그를 벙찌게 만들었다.

***

“젠장, PTW는 성인 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너무 엄한 것 같아요.”

“아직도 그 소리야?”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 정도는 만지게 해 줘도 되잖아요.”

“내가 못 만지게 한 게 아니잖아. 시스템상 막혀 있는 거지.”

“저도 허먼 씨에게 불평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시스템을 만든 PTW에 불평하는 겁니다.

아마 여기서 저희같이 실험한 대부분의 유저들은 엄청나게 실망했을 것요?”

“난 즐거운데.”

그렇게 말하는 허먼의 아바타는 여전히 미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싱긋 웃는 미소를 보는 순간, 심장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 그 모습을 본 프라이는 한숨을 쉬며 ‘미녀’ 버전의 허먼에게 말했다.

“하아···. 젠장···. 이런 미인하고 볼거리로 가득한 행사장을 걸어 다니는데 전혀 기쁘지 않다니.”

“안 기뻐?”

“여자 말투 흉내 내지 마세요. 목소리도 여성으로 바꾸셔서 진짜 미녀처럼 보이니까.”

“난 즐거운데.”

“그럼 저도 성별 바꾸고 오게 해 주시던가요.”

“그건 안 돼. 난 결혼했고 미녀 아바타가 된 자네와 돌아다니면 왠지 가상의 바람을 핀 느낌이 들 것 같단 말이지.

그것도 안엔 남자가 들어있다는 걸 뻔히 아는 상태로.”

“젠장. 다음 행사는 어디에요?”

“글쎄. 일단 아바타 복장 변환은 끝났으니까 본격적으로 여러 가지 좀 둘러보고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때?”

“이번 컨벤션에서 공개 예정인 PTW 신작 부스로 바로 가는 게 아니었어요?”

“HC 101?”

“예.”

프라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허먼이 말했다.

“맛있는 건 가장 나중에 맛봐야지.

그리고 난 일단 HC 101을 시작하면 행사 종료까지 거기서 나오지 않을 거야.

그럼 나머지 행사는 다 놓치게 되겠지.

물론 입장 제한이 없으니까 나머지 이틀 동안 다른 행사를 돌아볼 수도 있겠지만, 우린 하루만 연차를 냈잖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라고.

만약 행사가 끝난 후 PTW가 컨벤션 진입을 막아버리면 우리가 이번에 놓친 어트렉션을 두 번 다시 즐기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게다가 HC101은 오늘부터 정식 발매니 앞으로 즐길 수 있는 날이 얼마든지 남아있지.”

“근데 딱히 땅을 빌려서 벌이는 행사가 아니잖아요.

4차 NE 컨벤션이 끝났다고 굳이 컨벤션 진입을 막을 필요가 있을까요?”

“주변을 둘러봐. 이 엄청난 인파가 동시 접속을 할 수 있게 처리하면서, 이 넓은 공간을 전부 제어하는데 얼마나 많은 서버 용량과 네트워크 대역폭이 필요할지를 상상해보라고.

잘은 모르겠지만 이거 하루 여는데도 아마 엄청난 비용이 소모될걸?

예상 수익은 아예 0인데도 말이지.”

“그 말에 동의합니다. 그럼 일단 나머지 어트렉션부터 돌아봐야겠군요. 뭐부터 볼까요?”

그러자 허먼이 웃으며 주머니에서 팜플렛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여성 아바타의 가녀린 손가락으로 지도의 한쪽을 가리켰다.

“번지 점프. PRD로 체험할 수 있는 번지 점프가 얼마나 현실적일지 한번 확인해보자고.”

***

PRD를 이용해서 가상 공간을 돌아다니는 것은, 두 사람에게 마치 진짜로 존재하는 테마파크를 돌아다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것도 테마파크의 가장 짜증 나는 요소 중 하나인 ‘줄서기’와 ‘장거리 이동’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제거한 상태로.

그들은 VR 행사장 곳곳에 위치한 텔레포터를 통해 원하는 곳으로 바로바로 이동할 수 있었고, 원하는 어트렉션을 이용하기 위해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은 매우 즐거운 경험이었다.

“젠장, 이게 상시 운영이면 디즈니랜드는 문 닫아야겠네요.

옆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비명 지르는 허먼 씨의 존재를 제외하면, 진짜로 완벽한 경험이었어요.”

특히 롤러코스터를 좋아하는 프라이에게 있어서 PTW가 준비한 가상 롤러코스터는 가히 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대로 모양이 변하는 롤러코스터라는 건, 그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궁극의 롤러코스터 그 자체였기 때문에.

“한 번 더 탈까요? 아직도 25개가 더 남았는데.”

4차 NE 컨벤션의 롤러코스터는 입구에 있는 키 오스크를 통해 타고 싶은 롤러코스터를 정하면, 미리 준비되어있는 롤러코스터로 행사장을 돌아볼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었다.

단순히 재질이나 시스템만 다른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종류별로 아예 코스 자체가 다르게 설계된 롤러코스터가 무려 30종.

그것은 서로 다른 차원에 있는 30개의 롤러코스터를 번갈아 타는 듯한 경험을 전달해 주었다.

“일단 종류별로 다 타긴 했는데, 한 번 더 탈까요?”

“안 돼. 실제 중력으로만 느낄 수 있는 낙하감이 없어서 그나마 부담이 덜하긴 하지만, 그래도 VR 롤러코스터를 30번 이상 타기엔 내 몸이 못 버틸 것 같아.

솔직히, 종류별로 다 타보고 싶다는 욕심만 아니었으면 진즉에 그만뒀을 거야.”

“아쉽네요. 전 종일 이것만 타도 즐거울 것 같은데. 그럼 다음은 어디로?”

“리얼 범퍼카라는 코스가 있던데. 아까부터 그게 뭔지 엄청 궁금하더라고.”

“그럼 가보죠.”

허먼은 프라이를 데리고 텔레포터로 이동했다.

그것은 은은한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는 금속 원반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 위로 올라서서, 허먼은 텔레포터 옆에 있는 키 오스크에 차량 두 대가 서로 충돌하고 있는 이미지를 선택했다.

그러자 텔레포터의 색이 주황색으로 변하며 음성 안내를 시작했다.

[리얼 범퍼카 어트렉션으로 이동을 실시합니다.

현재 이동 대상은 두 사람입니다.

3···. 2···. 1···. 텔레포트 스타트]

그렇게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한 두 사람은 곧바로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이 어트렉션의 이름이 어째서 ‘리얼 범퍼카’인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미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어트렉션이었기 때문이었다.

“X발 살다 살다 내가 내 눈으로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가지고 범퍼카 찍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두 사람이 텔레포트 된 장소는 어트렉션 행사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관중석 근처였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엄청난 굉음과 먼지를 일으키며 서로 전속력으로 충돌하는 슈퍼카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수리비와 부상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오로지 게임 속에서만 가능한 그런 풍경이.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아깝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저게 진짜였으면 수백억은 우습게 깨지겠는데.”

“그러게요.”

“하지만 나쁘지는 않아. 저런 형태를 통해서, 가상현실에서 슈퍼카를 몰 때의 조작감을 느끼면서 PRD를 통한 물리적 피드백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번지 점프와 롤러코스터에 이어서 이번엔 차량 운전인가요?

PTW는 이번 컨벤션에서 PRD로 가능한 게 어떤 것인지 확실히 보여주려는 것 같네요.”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야. 사실 지금 우리가 지금까지 본 어트렉션은 전부 PRD 전용 어트렉션이거든.

아마 PRD 없이 PRS만 있는 유저는 이 어트렉션에 진입도 못 할걸?”

“그랬어요?”

“어. 뭐랄까. 롤러코스터를 탈 때는 의자에 앉은 채로 전신을 조작해야 하잖아.

그리고 PRD는 그걸 전부 몸에 연결된 와이어를 통해서 해결하고 있고.

사람을 통째로 공중에 띄워서 움직이게 하는 거지.

실제로 우리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습은, PRD 밖에서 보기엔 줄에 고정된 채로 공기 의자에 앉아 붕붕 회전하는 모습처럼 보일 거야.

우리가 지금 만지고 있는 키 오스크도, 우리가 올라탄 텔레포터도, 우리가 들어갔던 건물들도, 사실은 전부 진짜가 아니니까.”

“그렇네요. 시각적으로 너무 리얼하게 보이고, 실제 롤러코스터 좌석에 탄 것처럼 워낙 단단하게 몸이 고정되다 보니 저도 그 사실을 깜빡했어요.

맞아요. 저희가 지금 보고 있는 건 진짜가 아니죠.”

“하지만 굳이 그걸 인식하는 건 VR 세계를 접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겠지? 우린 이 모든 걸 즐기면 될 뿐이야.

물론 PRS만 가진 유저들은 손가락 빨면서 이런 멋진 경험들을 바라보기만 해야겠지만, 이번 컨벤션에는 PRS만 가지고도 즐길 수 있는 어트렉션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예를 들면요?”

프라이가 묻자 허먼은 다시 팸플릿을 꺼냈다.

그리고는 지도의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길게 터치했다.

그러자 팸플릿은 마치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처럼 해당 어트렉션의 소개 영상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영상엔, 다양한 무기를 들고 거대한 공룡과 맞서 싸우는 판타지 용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일반 전투 체험 에리어는 PRS로 경험할 수 있어.

하지만 PRD로 하면 더 즐겁게 즐길 수 있겠지.”

“그렇네요.”

“그러니까 결국 이 행사의 목적은, 딥 다이버만 가진 유저나 PRS만 가진 유저에게 이렇게 호소하는 거지.

진짜 끝내주는 경험을 하고 싶으면 RPD를 사라고.

부러워만 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다른 유저들이 즐기고 있는 경험을 자신의 손에 넣으라고 말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 경험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3만 달러가 필요한데요?”

“그래서, 지금까지 자네가 본 것들은 3만 달러의 가치가 없었나?”

허먼의 말을 들은 프라이가 고개를 저었다.

“넘치죠. 3만 달러도 싼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우리가 있는 위치가 이제 겨우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거야.

우린 아직 PTW가 PRD 전용으로 만든 ‘게임’들을 플레이하지도 않았고, 단순히 PRD의 성능을 전달하기 위한 ‘체험존’만 돌아다니고 있었을 뿐이니까.

일단 대충 그 모든 체험을 마치고 나면, 우린 마침내 PTW에서 개발한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건 정말 끝내주는 경험이 될 거고.”

“빨리 해보고 싶네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참아. 기나긴 기다림 끝에 플레이하는 HC101은, 진짜로 끝내주는 게임일 테니까.”

“확신하시나요?”

“2만% 확신하고 있지. 그러니 지금은 현재를 즐기자고.

PRD라는 장비로 할 수 있는,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체험을 즐기기 위해서.”

그렇게 두 사람은, 정말로 PTW가 준비한 모든 어트렉션을 한 번씩 전부 체험함으로써 이 행사를 100% 만끽하기로 결심했다.

***

허먼의 말대로, PTW는 이번 컨벤션을 통해 PRD와 PRS로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기로 작정한 것처럼 미친 듯이 많은 어트렉션을 행사장에 배치해 놓았다.

그리고 허먼과 프라이는, 그 모든 어트렉션을 한 번씩 돌아보면서 PRD와 PRS가 가진 근본적인 차이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장비가 가진 격차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도.

물론 PRS를 지원하는 어트렉션의 재미가 PRD 전용 어트렉션에 비해 엄청나게 떨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PTW에서는 PRS, 심지어 딥 다이버만을 가진 유저들도 충분히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어트렉션을 준비해놓았기 때문에.

그것은 딥 다이버만 가지고 있는 유저들까지 모두가 즐겁게 행사를 즐기고 있을 수 있는 수준의 어트렉션 들이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PRS나 PRD와 결합하면 몇 배로 커질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허공에 빈 팔을 허우적대는 것보다, 손으로 만져지는 가상의 검을 휘두르는 것이 훨씬 즐거운 법이고, 타격을 받은 부위에 단순히 타격감만을 느끼는 것보다 실제 물리력의 영향을 받아 몸이 뒤로 날아가는 것이 훨씬 즐거운 법이기 때문에.

그것은 아예 체험하지 못했다면 모를까 한 번이라도 체험했다면 절대 이전 수준의 경험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강력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젠장. 진짜로 빚이라도 내야겠어요. 수준 차이가 너무 나네.”

“그 정도로 심해?”

“아예 다른 체험을 하는 기분이에요.”

무려 2대의 PRD를 집에 구비한 허먼과는 다르게 PRS만 먼저 구매한 프라이는 같은 어트렉션을 PRS만 가지고 체험했을 때 어떤 느낌인지 느끼고 싶어 했다.

그래서 프라이는 잠시 PRD를 끄고 PRS만 구동한 상태에서 PRS를 지원하는 어트렉션을 체험해보았고, 지금은 다시 PRD로 돌아온 상태였다.

“우선 피드백 수준이 완전히 달라요. PRD로 경험하는 체험은 현실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지만, PRS만 가지고 즐기는 어트렉션은 그 한계가 명확하네요.

굳이 따지면 PS2와 PS4 게임의 차이 수준이에요.”

“그럼 딥 다이버만 가지고 하는 건 아타리 수준이겠네.”

“물론 평생 아타리 게임기만 가지고 논 사람은 PS4가 얼마나 멋진지 모르겠지만요.

PTW가 이번 컨벤션에서 ‘체험’에 집중한 이유를 잘 알겠네요. PRD는 괴물입니다.

아마 이 플랫폼으로 나오는 모든 게임은 엄청나게 재미있을 거예요.”

“그 정도 자신감이 있었으니, ‘Game Changer’같은 대담한 캐치프레이즈를 걸 수 있었겠지.

그나저나 이제 슬슬 체험은 다 마무리한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게임존으로 이동할까?”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던 프라이는 뭔가를 깨달은 듯 허먼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묘하게 느껴지는 위화감에 대해서.

“그런데 허먼 씨. 이벤트 초기에 비해서 사람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지 않아요?”

그러자 허먼이 주변을 둘러보다 프라이에게 말했다.

“그러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수가 확 줄었는데?”

그리고는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 겨우 새벽 3시야.  아직 아침이 되려면 멀었는데. 설마 졸려서 자러 간 건가?”

“이 미친 행사를 두고 자러 간다고요? 전 내일 설사 핑계 대고 연차 낼 건데요.”

“자네 지금 자네가 진행하는 쇼의 호스트에게 그 말을 하는 건 자각하고 있는 건가?”

“허먼 씨는 그럼 출근하실 건가요?”

프라이의 질문을 들은 허먼이 씩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절대 아니지. (Hell no.)”

“아마 내일 저녁 뉴스에 톱 뉴스가 뜨게 될 겁니다.

실리콘 밸리 역사상 가장 많은 무단결근을 기록한 날로요.”

“하긴, 안 그래도 오늘 대부분의 IT기업에서 연차 신청자가 너무 많아 그냥 하루 쉬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MS와 구골, SANY 미국 지사도 오늘 휴일일걸?”

“PTW가 여러모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군요.

어쨌든 그러니 아마 자러 간 건 아닐 겁니다.

솔직히 참가자 일부가 자러 갔다고 해도, 이 정도로 돌아다니는 사람 수가 차이 날 이유는 없고요.”

“그럼 실제로 유저들이 지금 어딘가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건데···. 그 말은···.”

“특정 어트렉션에서 사람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되겠죠.

돌아다니면서 하나라도 더 체험하는 것보다, 그것 하나만 플레이하는 게 더 값지다고 생각하게 할만한 뭔가가요.”

“역시 HC 101인가?”

“그렇겠죠. PTW LAB도 있긴 하지만, 이번 행사의 백미는 역시 HC 101이니까요.

게다가 그건 딥 다이버나 PRS만 가진 유저도 플레이 가능한 존이기도 하고요.”

“에피타이저는 다 먹었으니 본 요리를 먹을 때라는 이야기로군.”

그렇게 말한 허먼은 프라이를 향해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것은 아름다운 여성 아바타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진지하다기보다는 귀엽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도 가지. 이제 때가 되었어.”

“HC 101인가요? 전 허먼씨가 PTW LAB의 게임들을 먼저 돌아보고 마지막에 보자고 할 줄 알았는데요.”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지.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어.

이 정도로 사람들을 붙잡고 안 놓아줄 만한 게임이라면, 그만큼 엄청난 게임이란 소리니까.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난 1분이라도 그 게임을 더 하고 싶다고.”

“저도 동의합니다.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를 맛볼 수 있겠네요.”

그렇게 말한 프라이는 자신의 팔꿈치를 허먼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마치 미녀를 에스코트하려는 신사 같은 모습으로.

“가실까요?(Shall we?)”

그러자 허먼이 조종하고 있는, 아름다운 미녀 아바타가 싱긋 웃으며 프라이의 팔을 감았다.

그것은 이미 본인들의 원래 성별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전형적인 VR 중독자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렇게 팔짱을 낀 채로 다정하게 텔레포터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달려가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꾹 참고 있었던 이번 행사의 메인 타이틀을 두 눈, 아니 온몸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Hero Class 101.

그것은 행사가 시작된 이후로 체험하러 들어간 유저를 단 한명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있는 블랙홀 같은 게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