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 Take my money
“하하하···. 설마 진심은 아니시겠죠? 제발···. 제발 농담이라고 해 주시면 안 될까요?”
허먼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하자, 상혁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죄송하지만 진실입니다. 그리고 오늘 TV쇼에 출연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안타까운 사실을 유저 여러분께 전달하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까지 상혁 씨는 30분 내내 PRD가 얼마나 멋진지, 그리고 PRD로 플레이하는 HC101의 플레이가 얼마나 환상적인지 열심히 설명하시지 않았나요?
솔직히 말하면,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저는 심장이 두근거려서 하루라도 빨리 상혁씨가 말한 경험을 저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시청자들 대부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고요.
다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겠죠.
‘닥치고 내 돈 받아가! (Shut up and take my money!)’
그런데 정작 PRD의 정식 서비스는 오직 한국에서만 이루어진다고요?
만약 오늘 방송에서 상혁씨가 시청자분들이 이해할만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아마도 PTW 홈페이지엔 폭동 수준의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겁니다!”
사실 허먼은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상혁이 PRD의 정식 서비스가 오로지 한국에서만 이루어질 것이라고 발표한 순간부터, 이미 PTW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분노한 팬들의 게시물에 의해 실시간으로 난장판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X발 약주고 병주냐? 하지도 못하게 할 거면 왜 그렇게 떠든 거야?
이미 내 뇌는 PRD 전용 게임들을 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저 오늘부터 PTW 팬 그만둡니다.]
[1차 NE 컨벤션도 미국에서 했었고! 솔직히 PTW는 위치만 한국에 있지 돈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벌어가잖아!
당연히 한국보다 미국 서비스가 우선 아냐?!]
↳ 빌어먹을 아메리카 양키놈들아 너희만 게이머냐?
지금 유럽 게이머들 무시함?
↳ 어차피 1개 국가만 서비스 할 수 있다면 미국이 먼저라는 거지 다른 나라에서 서비스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잖아.
↳ 그러니까 거기서도 너희가 1순위라고 확신하는 게 양키스럽다는 말이라고.
↳ 여긴 미국 유저들을 위한 게시판이야. 그게 불만이면 어딘지는 몰라도 너희 나라 게시판으로 꺼져!
같은 시각, 반대로 1순위 서비스 지역으로 선정된 한국의 콘솔 게이머들은 집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하하하! 봤냐?! 양놈들아!? PTW는 한국 회사라고!]
[본사가 있는 국가에서 가장 먼저 테스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결정입니다.
저희 한국 콘솔 게이머들은 PTW의 결정을 지지합니다.]
[지금 들은 것만으로도 3천만 원 값어치는 충분히 하는 물건이다.
나는 차 한 대 살 돈이라 생각하고 구매할 의향 있음.]
↳ 그래도 3천은 좀 부담되지 겨우 게임기인데.
↳ 장난하냐? 하루 차 몇 시간이나 탄다고?
나는 지금도 딥 다이버 게임 아니면 플레이하지도 않는다고.
PRD로 하는 게임 경험은 그거보다 몇십 배는 끝내주겠지.
그럼 그건 내게 또 하나의 다른 삶이 될 것이고.
말하자면 가상 세계에 있는 아파트 입주권 같은 거지.
그런 개념으로 보면 3천만 원이 비싼것도 아니지 않나?
↳ 그래도 부담되는건 사실임. 솔직히 코넥트나 딥 다이버처럼, 지금까지 PTW에서 발매한 말도 안 되는 가격의 디바이스들을 생각하면 적어도 납득 가능한 수준의 가격은 아니지 않아?
↳ 그건 해봐야 콘솔 게임기 크기 수준의 작은 디바이스들이었고, 이건 크기 자체가 거실에 들어갈지 의문인 거대 머신이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지.
안에 들어간 부속품 가격만 생각해도 토할 정도인데, 아마 그거 팔아도 PTW의 이윤은 마이너스일걸?
적자 보는 걸 감안해도 도저히 3천만 원 이하로 내릴 수 없다는 거겠지.
그리고 적어도 게임용 주변기기에 있어서라면, PTW가 발표한 가격은 거의 절대적인 숫자다.
심지어 중국에서 카피 제품을 만들어도 절대 그 가격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지.
발매한 지 10년 넘은 코넥트가 아직도 중국산 염가 제품이 없는 걸 보면 알 수 있음.
들어가는 기술은 터무니없이 비싼데, 시장에 공급되는 가격은 터무니없이 낮으니까.
그러니까 더 싸질 것을 기대하지는 말자고.
↳ 니가 말한 건 생산자의 입장이고. 난 딥 다이버 살 때도 마누라한테 1년 동안 집안일 내가 다 한다고 약속하고 샀단 말이야.
대체 어떻게 하면 3천만 원짜리 머신을 사야 한다는 설득을 할 수 있을지 감도 안 잡힌다고.
↳ 게이머에게 결혼은 사치라는 걸 아직도 모르는 게이머가 있었군.
↳ 난 중고를 노려볼래.
분명 발매되자마자 ‘남편이 멋대로 이상한 물건을 사 왔어요.’라면서 중고로 처분하려는 물건이 무조건 나올 테니까.
그렇게 게시판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와중에, 상혁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런 ‘처참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부분의 유저들이 생각하고 있던 ‘돈’과는 상관이 없는, PTW로서는 어쩔 수 없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저희가 대한민국에서만 PRD의 서비스를 하기로 한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여러분들도 납득하실 수 있는 이유일 테고요.”
“혹시 돈 때문이라면 장비의 단가가 올라가더라도 사람들은 납득할 겁니다.”
“안타깝게도 돈 때문은 아닙니다. PTW는 지금 창사 이래로 가장 자금 사정이 넉넉한 시기를 보내고 있거든요.”
“그럼 무엇 때문이죠?”
“문제는 PRD라는 장비로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필요한 인터넷 속도가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 중인 인터넷 속도보다 훨씬 높다는 데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매우 빠른 속도의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지만, 그 대한민국의 인터넷 회선조차 저희가 사용하려는 대역폭을 완전히 지원하지는 못하고 있죠.
그래서 저희가 PRD의 서비스를 개시하기 위해서는, PRD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데이터 패킷을 처리할 수 있는 거대한 연산 센터와 거기에 직접 연결된 세계 최고 수준의 중계 기지국이 필요합니다.
기존 인터넷 회선이 아니라, 아예 PRD 전용으로 새로 구축된 새로운 인터넷 망이 필요하죠.
저희는 그것에 필요한 모든 장비의 설계와 양산에 필요한 계약을 해둔 상태이지만, 그런 인프라는 단순히 돈만 있다고 글로벌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가요?”
“그렇죠. 저희가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각 국가에의 핵심 안보에 직결되는 인터넷 사업에 진출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걸 시도하는 건 말 그대로 현재의 인터넷을 놔두고 완전히 새로운 인터넷 망을 다시 구축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미국만 해도 그렇죠. 미국의 면적은 한국의 98배 정도입니다.
그 넓은 땅에서, 단순히 미 동부와 서부를 연결할 광 케이블을 직선으로 까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죠.
그리고 미 중앙 정부는 물론 그 케이블이 통과하는 모든 주의 허가를 받아내야 할 것이고요.
케이블의 생산, 공급, 각 케이블의 중계 지점마다 설치될 기지국의 관리.
어떻게 안정적으로 전력을 수급할 지에서부터 세금 문제까지.
그건 저희 같은 일개 게임회사가 건드리기엔 너무나 커다란 문제입니다.
게다가 통신망 같은 기간 산업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안보를 이유로 타국 업체의 진출을 막고 있죠.
비록 저희가 완전히 새로운 초고속 인터넷을 위한 기술과 장비, 자본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각 국가에서 인터넷 사업을 할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현지 통신사의 협력을 받아야 하고요.”
“그럼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MS는 PTW에서 개발한 코넥트의 양산과 보급에 참여하면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이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SANY 역시 앞으로 딥 다이버를 통해 엄청난 이득을 올릴 예정이고요.
본격적인 협력 관계가 구축되기 전인 테슬러 조차도, PTW와 공급 계약을 체결한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주가가 5배로 뛰었어요.
전 세계의 어떤 통신 업체도 PTW와 함께 일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미국에 있는 버라이즌이나 AT&T 같은 거대 통신사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그렇죠.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저희가 바라는 것은, 그들이 저희에게 유리한 계약을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저희가 지금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는 모든 국가를 돌면서 그 수많은 통신사들과 계약으로 씨름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래서 저희는, 저희와 함께 PRD를 위한 ‘새 인터넷’을 공급할 통신 사업자를 고를 권한을, 바로 유저 여러분들께 드리려고 합니다.”
“유저에게요?”
허먼은 상혁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자 상혁은, 얼빠진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허먼을 보며 미소지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바로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 저희의 신형 통신 장비에 대한 구체적인 스펙과 공급 가격, 그리고 망의 크기별로 설치에 필요한 최소 인프라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PTW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각국의 통신 사업자들은, 저희가 제공한 스펙을 보고 자신들이 해당 장비를 공급받아 가입자들에게 제공할 통신 서비스의 가격을 공개적으로 공시하면 됩니다.
언제까지 어느 지역에 어느 수준의 통신망을 갖출 것이다.
그리고 월 가격은 얼마가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저희가 제공한 양식에 따라 입력하면, 유저들이 공개된 내용을 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사업자를 투표로 고르는 거죠.
만약 버라이즌이 유저분들에게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하게 된다면, 거기 투표하시면 됩니다.
AT&T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면, 거기에 투표하시면 되고요.
그건 생각보다 구체적인 견적 발표가 될 겁니다.
사람들은 서비스의 가격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서비스의 공급 속도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가격을 조금 더 올리더라도 초기 투자 비용을 올려서 최대한 빠르게 망 구축을 완료하겠다던가, 혹은 조금 늦게 망 구축이 되더라도 가격을 낮춰서 월 비용을 줄이겠다던가, 조건은 얼마든지 걸어도 좋습니다.
중간에 상대가 건 조건을 보고 변경하는 것도 가능하죠.
결과적으로 유저가 가장 만족할 수 있는 계약을 제시하는 통신사가, 저희가 제공하는 새로운 인터넷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그것도 독점적으로 말이죠.”
“지금 전 세계의 통신사들을 모아 놓고 줄 세우기를 하겠다는 겁니까?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요?
그들은 이미 미국 통신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굳이 새 인터넷이 아니어도,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기존 인터넷 망으로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거고요.”
허먼이 부정적인 견해를 펼쳤지만, 상혁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허먼에게 답했다.
그들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좋은 이유를,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받아들일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8월에 있을 4차 NE 컨벤션까지, 저희가 공급할 수 있는 장비 수량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게 그리스가 되든, 독일이 되든, 아니면 미국이 되든.
결과적으로 저희 장비를 받아서 운 좋게 한국과 동시에 서비스를 오픈할 수 있는 국가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 이후엔, 먼저 계약이 된 다른 국가의 공급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겠죠.
오직 가장 빠른 속도로 유저에게 가장 납득 할 만한 서비스 가격을 제공하는 업체만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PRD 서비스를 개시할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전 세계 통신사를 상대로 한 선착순 계약이니까요.
저희와 가장 먼저 계약하는 업체가, 앞으로 수십 년간 전 세계를 지배할 새 인터넷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냉혹한 시장 논리에 의해서, 도태된 생물은 결국 진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멸종하게 되겠죠.”
그렇게 말한 상혁이 카메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카메라 정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상부에 보고하고 간부 회의든 담당자 회의든 열심히 열어보세요.
게이머들이 만족할만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 때까지 발바닥에서 땀이 나게 뛰란 말입니다.”
유저들에게 결정권을 맡기는 공개 입찰.
상혁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PTW 홈페이지 게시판은 다시 한번 뒤집히기 시작했다.
[ㅋㅋㅋㅋ 대박이네.
저걸 저렇게 떠넘길 줄이야.]
[무슨 경매인갘ㅋㅋㅋ 상대방보다 천원이라도 낮춰서 불러야 겨우 이기겠는데?]
[어차피 저런 식이면 독점권 때문에 초기 투자금이 얼마든 따내는 순간 주가 폭발함.
계약 못 따내는 순간 주가 폭락할거고.
목숨 걸고 달려들어야겠네.]
↳ 심지어 글로벌 동시 입찰이라 빨리 안 움직이면 몇 년 대기해야할지도 모름.
시간제한까지 걸렸으니 레알 똥줄 탈 듯.
[저 오늘부로 PTW 팬 다시 시작합니다.]
[춤춰라. 광대들아. 춤추라고.]
[통신사들이 재롱떠는 모습 좀 구경해보자.]
허먼은 PD를 통해 급하게 중간 광고를 내보내고 타블렛으로 PTW 홈페이지 게시판 반응을 점검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상혁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유저들의 여론이 반전된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게임회사가, 팬들에게 욕먹는 사태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는 방송이 나가지 않는 동안 상혁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상혁 씨.”
“예.”
“한국은 이미 서비스가 결정되어 있었죠?
한국에도 통신사가 여럿 있었을 텐데, 어째서 한국에서는 같은 방식을 사용하지 않은 건가요?”
“자유 시장 경제에 익숙한 허먼 씨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한국에서 그런 방식은 통하지 않으니까요.”
“어째서죠?”
“그들은 담합의 달인들이니까요. 한국 통신사들이 만약 이 방송을 봤다면, 그들은 그 즉시 단체로 만나 서로 상의를 진행했을 겁니다.
그리고 누구 한 명만 남고 다 죽는 꼴을 보느니, 단체로 입찰을 포기하던가 아니면 합자 법인을 세워서 지분을 나눠 가지겠죠.
혹시 단통법이라는 법안을 아십니까?”
“그게 뭐죠?”
“2014년 10월 1일부터 한국에서 시행된, 개 쓰레기 법안입니다.
정확한 이름은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라고 하죠.
기본적으로 그 법은, 각 통신사들이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지원금의 상한을 법으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그 법 덕분에,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휴대폰을 구매할 때 통신사로부터 최대 30만원 이상의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되었죠.
그 전에는, 가게만 잘 고르면 최신 휴대폰도 100만 원 가까운 지원금을 받아서 공짜로 살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전 국민이 30 만원 이상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그나마도 통신사끼리 담합하면서 30만원 전부를 받을 수는 없게 되었죠.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법을 이렇게 부릅니다.
‘전 국민 호갱법’이라고.”
“자유 시장 국가에서 기업간의 경쟁을 법으로 금지한다고요? 뭐 그딴 어처구니 없는 법이···.”
“덕분에 그 법 이후 통신사들은 조 단위 이상의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었어요.
기업의 로비는 때때로 그런 결과를 만드는 법이죠.
저는 저희가 구축하려는 새로운 인터넷에 그런 더러운 담합이 개입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인터넷은 삼정과 함께 만든 새 법인을 통해 제공될 예정이고요.
거기다 이 개자식들은, 틈만 나면 인터넷 기업들에 망 사용료를 내라고 주접을 떨어대죠.
전 저희가 구축할 새 인터넷에 대한민국의 통신사가 손가락 하나도 대지 못하게 할 생각입니다.”
“기존 인터넷 망과 완전히 분리된 인터넷을 구축할 생각이란 말씀입니까?”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되겠죠. 특정 중계 지점을 통해 구 인터넷 망과 연결이 되긴 하겠지만, 새 인터넷은 완전히 별개의 물건입니다.
그것은 해킹 불가능한 양자 암호 기술로 안전하게 보안 된 환경에서 검열이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이상적인 인터넷이 될 거고요.
아직 거기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지만, 저희는 언젠가 기존의 인터넷을 새 인터넷이 대체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 모든 건, 물론 게임을 위해서겠죠?”
“그렇죠. 물론 인터넷 검열을 강화하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껄끄러운 존재가 되겠지만, 저는 신경 안 씁니다.
어차피 저희의 새 인터넷은 워 다이버와 연동되는 기술이라 미국 국방성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까요.”
“결국, 전부 연결된 거군요. 그럼 혹시 다른 국가보다 미국 통신사에서 빠르게 유저들이 이해할만한 서비스를 제시하게 된다면, 4차 NE 컨벤션에 맞춰서 미국에서 서비스가 개시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있죠. 물론 이 넓은 미국 땅 전체에 즉시 서비스를 구축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동부와 서부의 주요 도시 몇 곳에서 시범적으로 서비스를 개시할 수는 있을 겁니다.
이미 대한민국의 서비스에 필요한 장비 외에도, 일정 크기 이상의 새 인터넷 통신망 구축을 위한 여유분의 장비를 주문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한 달 안에만 계약 체결이 된다면 아마 가능할 겁니다.
그 모든 비용을 미국 현지의 통신사가 감당한다는 전제하에서요.”
“알겠습니다. 광고가 끝나가는군요. 나머지는 쇼에서 이어서 이야기하시죠.”
순간 광고가 종료되었다는 사인을 PD가 보내자, 허먼은 카메라를 향해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광고 시간 동안 제가 상혁씨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 더 들었습니다.
만약 미국의 통신사에서 최대한 빠르게 유저들의 허락을 받아낼 수만 있다면, 어쩌면 4차 NE 컨벤션 기간에 맞춰서 미국에서도 PRD의 서비스를 개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말이죠.
이제 배턴은 여러분께 넘어왔습니다.
여러분. 빨리 통신사 홈페이지에 가서 글을 남겨주세요.
적어도 PTW가 위치한 대한민국을 제외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인 미국에서 RPD의 두 번째 서비스가 이루어지기를 강력하게 희망한다는 글을 남깁시다.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야 합니다.
우린 정말 이것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품고 있고, 이것을 정말로 원한다는 사실을 말이죠!
우리가 모두 함께한다면, 우린 해낼 수 있습니다!”
PTW 팬들로 가득 차 있는 객석의 방청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소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허먼은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대한민국에 이어서 PRD의 서비스가 개시되는 두 번째 국가가, 제발 미국이 될 수 있기를.
그렇게 마음속으로 빌던 허먼은 문득 한 가지 의문을 떠올리며 상혁에게 질문했다.
PTW가 구축하려는 새 인터넷이 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3만 달러에 육박하는 PRD의 가격을 생각하면 수요가 지나치게 적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상혁 씨. 저는 광고 시간 동안 잠시 PTW의 홈페이지에 공시된 새 인터넷의 개요에 대해 읽어보았습니다.
그건 처음부터 끝까지 PTW에서 개발한 새 장비로 연결된 완전히 새로운 인터넷과, 그렇게 구축된 유선 망과 연결된 또 다른 5G 무선 인터넷이 포함된 개념이더군요.
제가 이해한 것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비록 새 인터넷이 PRD를 위해 개발되는 것이긴 하지만, RPD의 제한된 수요만을 위해 사용하기엔 성능이 지나치게 뛰어나니까요.
저희는 남는 회선 용량을 기존 5G 인터넷 대비 두 배 이상의 속도를 가진 새 무선 인터넷에 사용할 생각입니다.
굳이 번거롭게 새 인터넷과 기존 통신 서비스를 함께 이용할 필요 없이, 모든 통신 서비스를 하나의 서비스로 묶어서 제공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럼 통신사로서는 굳이 PRD 유저만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구축할 필요는 없겠네요?
어차피 5G 무선 인터넷 망을 구축하는 김에, RPD용의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하는 셈이 될 테니까요.”
“가능하죠.”
“그렇다면 통신사 입장에서는 더욱 메리트 있는 계약이 될 수 있겠군요.
어차피 3만 달러에 육박하는 PRD 유저들의 숫자는, 초반엔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요.”
허먼은 당연히 새 인터넷에 포함된 5G 무선망이 PRD의 적은 수요를 커버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혁은 고개를 저으며 그런 허먼의 의견을 부정했다.
“아뇨, PRD 유저의 숫자가 적지는 않을 겁니다.”
“예? 3만 달러나 되는 장비인데요?
물론 그것이 주는 경험이 정말로 끝내줄 거라는 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게이머에게 3만 달러는 정말 큰 돈입니다.”
“그야 최고 사양의 PRD를 기준으로 하면 그렇겠죠.
단순히 오브젝트를 만지는 것을 넘어서, 유저의 몸을 뒤로 날려 보내거나 허공을 날아갈 수 있게 해주는 체험을 위해서는, 유저의 몸을 공중에 띄워주기 위한 추가 장비가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단순히 가상 현실의 오브젝트를 만질 수 있게 하는 데는, 현재의 PRD 수준의 거대한 장비가 필요 없습니다.
물론 최고 사양의 PRD가 주는 경험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저렴한 가격에 비슷한 체험을 전달할 수 있는 장비를 제공한다면 PRD 유저의 숫자는 엄청나게 증가할 테니까요.”
“그거야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상혁의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깨달은 허먼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상혁이 그런 말을 꺼낼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스쳤기 때문에.
그리고 상혁은, 그런 그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미소로 그에게 말했다.
“맞습니다. 이론적으론 그렇죠.
그리고 저희 PTW는, 그 이론을 현실로 만드는 회사고요.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저희 PTW의 자랑인 스컹크 웍스의 새 유산을 공개합니다.
3만 달러라는 엄청난 가격이 아닌, 그럭저럭 저렴한 가격에 비슷한 경험을 제공해 줄 새 장비를 말이죠.”
상혁이 버튼을 누르자, 마치 SF 에 나오는 기갑병을 연상하게 하는 슈트의 디자인이 스튜디오의 스크린을 통해 공개되었다.
일단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비싸 보이긴 하지만, 적어도 PRD보다는 저렴할 것 같은 디자인의 멋진 슈트가.
“이 장비의 이름은 PRS(physics realization suit)입니다.
스컹크 웍스에서 얼마 전에 완성한 장비이며, 단독적으로 입고 게임을 즐기거나, 혹은 PRD와 연동하여 게임을 즐길 수도 있는 장비죠.
단순히 물리적 압력만을 전달하던 PRD와는 다르게, PRS는 통증과 온도 같은 다른 감각들도 함께 전달합니다.
그것으로 받을 수 있는 현실감은 특정 조건에서만큼은 PRD 이상이라고 할 수 있죠.
여러분은 이 장비를 입고, 가상의 모닥불 앞에서 불을 쬐거나 눈보라치는 빙벽을 타며 소름끼치는 추위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가상 현실에 존재하는 물건들을 만질 수도 있고요.”
상혁이 버튼을 누르자, 슈트의 옆에 같은 질감과 색을 가진 다른 장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여러 개가 조립되어 한 세트를 이루는 장난감의 부속처럼 보였다.
“첫 번째 보조 장비의 이름은 PRD Low입니다.
이건 PRS의 다리 쪽에 연결하여 좀 더 원활한 걸음걸이와 계단을 오르는 등의 고저 차를 구현하죠.
그리고 두 번째 보조 장비의 이름은 PRD Middle입니다.
이건 허리와 등 쪽에 케이블로 연결되어 PRS에서 전달되는 힘의 세기를 강화하고, 몸을 공중으로 날리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죠.
마지막 보조 장비의 이름은 PRD High입니다.
이건 어깨와 팔에 연결되는 장비로 PRS와 함께 사용했을 때 완벽한 물리적 피드백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장비입니다.
각각의 보조 장비의 가격은 8천 달러로, 3개의 장비와 PRS를 모두 가지고 있으면 PRD가 전달해주던 감각을 거의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PRS 만으로도 꽤 만족할 만한 VR 경험을 제공 받을 수 있고요.
저희는 PRD의 비싼 가격을 이런 모듈화를 통해 각 개인의 주머니 사정에 맞춰 제공하는 것으로 해결할 예정입니다.”
“확실히. 그런 방식이라면 처음엔 PRS만 구매하고 여유가 되는 대로, 혹은 좀 더 욕심이 나는 대로 추가 장비를 구매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겠네요.
게다가 이 슈트의 디자인은 정말이지 너무 멋져 보입니다.
그냥 마네킹에 걸어서 집 벽에 놔둬도 멋진 장식이 될 것 같은 느낌이고요.”
“단순히 멋진 게 아닙니다.
내부 재질은 땀과 염분으로 인한 부식을 막기 위해 IP 69등급으로 완벽한 방진 방수를 제공하며, 냉각 기능이 제공됨으로써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게임을 오래 즐길 수 있고, 이전의 슈트 일체형으로 제작되었던 PRD에 비해 안에 다른 옷을 입고 위에 걸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세탁도 좀 더 간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죠.
물론 좀 더 세밀한 감각 전달을 위해서는 몸에 달라붙는 쫄쫄이를 입어야 해서 조금 쪽팔릴 수는 있겠지만, 어쩌겠어요?
멋진 게임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상혁이 너스레를 떨자 허먼은 생각했다.
설사 쫄쫄이가 아니라 알몸이 되어야 한다고 했어도, 자신은 저 슈트를 입고 게임을 하고 싶을 거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허먼은 상혁을 향해 물었다.
PRS와 함께 사용할 나머지 장비들의 가격은 상혁이 공개했지만, 가장 중요한 PRS의 가격은 말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현재 방송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수천만의 유저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보였다.
“만약 지금 제가 물어보는 정보를 4차 NE 컨벤션에서 공개하실 거라고 말씀하시면 전 상혁 씨의 목을 조를지도 모릅니다.
닥치고 빨리 불어!
라고 하면서요. 그 점을 감안하시고, 진지하게 제 질문에 답해주세요.
어쩌면 제가 오늘 한 모든 질문보다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한 질문일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상혁 씨.”
“예.”
“PRS의 예상 가격은 얼마입니까?”
“아마도 시청자분들이 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 그거겠죠?”
“그렇죠.”
“그리고 제가 그걸 비밀로 한다고 하면 당장 허먼 씨가 제 목을 조를지도 모르고요.”
“진심으로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럼 말씀드려야겠네요.
PRS의 가격은, 소비자 가격 기준으로 1600달러 수준입니다.
정확히는 1500달러 후반대인데, 편의상 1600달러라고 하죠.”
막상 ‘나오면 사고 싶다’ 정도의 생각만 들게 만드는 3만 달러라는 가격에서, ‘반드시 사야 한다’라는 생각이 나오게 만드는 1600달러라는 가격대로의 점프.
그것은 PTW의 게시판에 오늘 방송이 시작된 이래로 가장 격렬한 반응을 끌어내기에 충분한 발표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