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40화 (341/485)

340. 이상적인 형태의 게임

“그럼 먼저 저희가 준비한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게일이 꺼낸 것은, 모장 스튜디오에서 준비 중인 한 게임의 기획서였다.

올해 9월 29일에 공개할 예정이었던 게임의 기획서를.

그러나 회귀자인 상혁은 그 기획서를 보기도 전에, 공개도 되지 않은 그 게임의 정체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광산 크래프트 던전스···.’

그것은 광산 크래프트의 그래픽과 세계관을 차용한 액션 RPG 게임이었지만, 원작과는 다르게 시장에서 썩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한 게임이었다.

물론 이전에 나온 외전 작인 ‘광산 크래프트 : 스토리모드’같은 망작 수준의 괴작은 아니었지만, ‘광산 크래프트 던전스’는 광산 크래프트라는 IP를 활용한 게임치고는 굉장히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많이 받은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이거 광산 크래프트 개발자 도치도 엄청 혹평했던 게임이었는데···.’

상혁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게일은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VR 환경에서 협동플레이로 즐기는 광산 크래프트의 RPG 버전에 대한 기획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이번 기획의 핵심은 전투와 파밍이라는 RPG의 핵심 재미를, 광산 크래프트라는 IP를 활용하여 캐주얼한 느낌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묵직해지고 거대해지는 여타 RPG와는 다르게, 친구들과 가볍게 젠가라도 하는 기분으로 뭉쳐서 패드를 잡고 RPG를 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거죠.

눈에 익숙하고 매력적인 광산 크래프트의 그래픽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최신의 물리 엔진과 광원효과를 적용해 기존 광산 크래프트보다 진일보하고 깔끔한 그래픽을 보여줄 생각입니다.

그 안에서, 플레이어들은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 친구들과 적을 물리치고, 수많은 아이템을 바꿔가며 캐릭터를 성장시켜 보스에게 도전하겠죠.

게다가 광산 크래프트에서 익숙했던 수많은 아이템이 장비로 등장할 겁니다.

낚시대를 던져 몬스터를 끌고 온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게일의 설명을 들으며, 상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게임의 기초 베이스는 지금 시점에서 이미 다 결정된 상태 같은데···. 그럼 이대로 놔두면 회귀 전 상태의 광산 크래프트 던전스가 완성되어 출시되겠지?

물론 플랫폼이 딥 다이버로 변경되긴 하겠지만···.’

그것은 상혁이 허용할 수 없는 선이었다.

적어도 딥 다이버로 출시되는, 그리고 상혁이 좋아하는 ‘광산 크래프트’의 IP를 달고 출시되는 게임이라면, 지금 기획서에서 파악되는 게임보다는 훨씬 좋은 게임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상혁은 기획서를 꼼꼼하게 훑어본 뒤, 그것을 내려놓고 게일을 향해 말했다.

“게일 하워드 씨.”

“예.”

게일이 눈을 반짝였다.

자신이 가져온 기획에 대한, 상혁의 평가가 기대되었기 때문에.

게일이 아는 상혁은 현재 세계에서 손꼽히는 게임 개발자였다.

그리고 그런 개발자에게서 자신이 만든 게임을 피드백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게임 개발자에게 있어 흥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아직 발매도 되지 않아 게임에 대한 확신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개발자라면 더더욱 그렇고.

그러나 상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게일의 기대감을 단숨에 무너트리는 말이었다.

“흠···. 이건···.”

“이건?”

“게일. 솔직히 말하면, 광산 크래프트를 사랑하는 대부분의 유저들은 이런 형태의 RPG가 광산 크래프트라는 IP를 가지고 출시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게일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광산 크래프트 던전스의 기획은 그가 보기에 꽤 괜찮은 수준의 RPG 같아 보였기 때문에.

“상혁 씨. 물론 기획서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에 무리가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이건 단순히 기획이고, 어떤 대단한 게임이라도 기획서만으로는 완성될 게임이 가진 매력의 10%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상혁 씨 정도의 개발자라면 기획서만 보아도 완성된 게임의 매력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고요.”

‘아니, 난 완성된 게임을 이미 봤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건데요?’

상혁은 그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굳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회귀자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서는, 이미 이 기획의 완성된 버전을 자신이 플레이 해 보았다고 말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상혁은, 평소에 하던 대로 논리적 설득을 통해 게일의 생각을 바꾸려 시도했다.

“좋아요. 게일. 당신도 PTW에서 OGC에 광산 크래프트의 개조 버전을 집어넣은 건 알고 있죠?”

“그렇죠. 심지어 지금은 OGC를 통해서 광산 크래프트 서버에 접속하는 유저가 자바 버전 클라이언트 접속자 수와 비슷한 수준이니까요.”

“OGC에 광산 크래프트를 탑재할 때, 저희가 살리려고 노력한 부분은 단 하나였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광산 크래프트 고유의 매력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OGC의 AI들과 플레이어가 협력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새로운 플레이 플로우를 집어넣는 거였죠.

저희는 광산 크래프트에 몬스터 훈타에 나오는 거대 몬스터 사냥 개념을 집어넣었지만, 그렇다고 광산 크래프트의 기본을 져버리진 않았어요.”

“그럼 지금 제가 가져온 기획은 광산 크래프트의 기본을 져버리는 기획이라는 겁니까? 그건 좀 터무니없는 비판 같은데요?”

“게임 제목부터가 ‘광산 크래프트’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어요.

근데 대체 채광은 어디에 팔아먹었죠? 건축과 채광 없는 광산 크래프트를 광산 크래프트라고 할 수 있나요?

솔직히 인정합시다.  게일 씨. 당신도 이게 단순히 디아블로식 핵&슬래시 액션 RPG에 광산 크래프트 스킨만 씌운 게임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요?”

“그게 뭐가 나쁘죠?

광산 크래프트의 네모진 그래픽은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걸 활용해서 인기있는 RPG의 시스템을 차용한 게임을 만드는 것은 그리 나쁜 아이디어는 아니라고 봅니다.”

“밥 로퍼가 FPS에 PRG를 더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테마의 MMORPG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도, 사람들은 많은 기대를 했었죠.

하지만 그 결과로 헬 게이트가 열렸다는 사실은 개발자라면 모두 기억하고 있죠.

단순히 맛있는 것 두 가지를 섞는다고 또 다른 맛있는 게 나오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건 조화하려는 두 매력의 시너지가 잘 맞아야 한다는 거죠.

광산 크래프트의 심플한 디자인은 화려한 이펙트로 수많은 몬스터를 쓸어버리는 시원한 느낌의 핵&슬래시와는 맞지 않아요.”

“그건 의견의 차이일 뿐입니다. 저는 광산 크래프트의 가장 큰 매력이, 바로 그 심플한 그래픽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상혁 씨. 광산 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 채광이나 조합, 빌딩은 유저에게 가장 큰 재미를 주는 시스템이지만, 반대로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유저에게는 진입 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어디에 묻혀있는지도 모르는 다이아몬드를 캐기 위해서 수백 수천 개의 자갈을 캐는 것은, 누군가에겐 즐거울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지루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전 단지 광산 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 지루함을 빼고, 좀 더 RPG라는 컨셉에 맞는 게임을 만들고 싶을 뿐이에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사랑할 테죠.”

“저는 채광이 모든 사람에게 재미있는 컨텐츠라고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단지 사람들이 광산 크래프트라는 IP에서 기대하는 핵심적인 재미가, 이 게임에서는 빠져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죠.

중요한 건 채광이나 빌딩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게이머에게 전달하는 의미입니다.

게일 씨. 광산 크래프트는 샌드박스 게임이에요.

그건 단어 그대로, 모래로 가득한 나무박스 같은 게임을 말하는 거죠. 저희는 그 모래를 가지고 성을 지을 수도, 두꺼비 집을 만들 수도, 아니면 그냥 깊은 구멍을 팔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죠. 게이머들은 그 안에서 모험을 봅니다.

광산 크래프트를 키고, 새 맵을 생성할 때 유저가 받는 느낌을 상상해보세요.

컴퓨터가 맵을 생성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면서, 두근대기 시작하는 그 마음을 떠올려보자고요.

이번 맵의 시작 위치는 어디가 될까?

눈 덮인 고원?

산꼭대기?

아니면 사막 한가운데?

용암이 흐르는 갈라진 절벽 위?

유저가 상상에 잠겨있는 사이, 광산 크래프트의 엔진은 절차적 생성 규칙에 따라 매번 다른 맵을 생성해내죠.

그리고 그 안에 유저를 밀어 넣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유저가 바라는 지형은 굉장히 심플한 지형이에요. 자신이 집을 지을 수 있는 넓은 평지가 근처에 있고, 자재를 조달할 수 있는 바위산과 숲이 근처에 있고, 물을 구할 수 있는 웅덩이가 가까이 있는 그런 이상적인 공간이죠.

하지만 컴퓨터는 언제나 그런 이상적인 공간에서 멀리 떨어진 위치에 유저를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면서, 유저는 결정해야 합니다.

새 맵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좋은 자리가 나올 때까지 맵을 탐색할 것인지.

우선은 좀 더 둘러보고 결정할 수도 있죠.

유저는 맵을 둘러보면서, 우선 맨 손으로 나무를 캐서 나무 곡괭이를 완성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돌을 캐 돌 도끼를 만들고, 그걸로 나무를 더 캐서 집을 지을 준비를 하죠.

밤은 곧 다가올 것이고, 그 안에 빠르게 집을 지어야 생존 가능성이 올라가니까요.

사실, 밤을 보내는 가장 편한 방법은 침대를 만드는 겁니다.

하지만 침대를 만들려면 양털이 필요하고, 양털을 깎으려면 철 주괴 두 개가 필요하며, 그걸 만들려면 철광석을 캐서 돌로 만든 화덕에 넣어 녹일 필요가 있죠.

첫날에 하기엔 좀 부담스러운 작업이기에, 대부분 첫날엔 흙으로 집을 짓고 횃불을 달아 조명을 만들어 그 안에 숨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좀비와 스켈레톤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죠.

밤은 깁니다.

자연스레 유저는 생각하게 되죠.

‘아, 내일 아침까지 밖에 못 나갈 텐데, 그럼 그냥 집 아래를 파볼까?’

그리고 석탄이나 철광석이라도 조금 벌어볼까 하는 생각에 흙으로 만든 집의 지하를 파던 유저는 곧 생각지도 못한 곳에 위치한 동굴에 빠져 크리퍼를 만나 시체가 됩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유저에게 의미하는 것이 뭐겠어요?”

“스트레스요?”

“모험입니다. 게일 씨. 모험이요. 누구도 자신이 뻔히 아는 세계를 탐험하고 싶지 않아 해요. 유저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를 탐구하고 그 비밀을 깨우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정의하고 싶어 합니다.

현실에서는 될 수 없는, 또 다른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거죠.

저는 광산 크래프트가 RPG로 변화한다면, 바로 그런 모험이 가득한 세계를 유저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미리 꾸며놓지 않은, 절차적 생성 과정에 의해 만들어진, 개발자도 어떤 세계가 될지 알 수 없는 정신 나간 세계를, 유저와 친구들이 함께 탐험하며 모험을 해 나가는 경험.

그것이 광산 크래프트의 팬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광산 크래프트 RPG의 모습일 테니까요.”

게일은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오해했는지 깨달았다.

“그러니까, 상혁 씨가 주장하는 건 이 게임에 채광과 빌딩을 넣자는 게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본질을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자는 거군요?”

“바로 그거죠.”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광산 크래프트가 하던 것처럼, 절차적 지형 생성 알고리즘을 통해서 새 게임을 만들 때마다 유저가 예측할 수 없는 구성으로 새로 만들어져야 하고요?”

“맞습니다. 광산 크래프트의 엔진은, 완전히 랜덤으로 지형을 생성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규칙을 따르죠.

사막 지형을 생성할 때는 어느정도의 최소 크기가 있어야 한다던가, 어떤 호수의 가장자리엔 점토 지역을, 어떤 호수의 가장자리엔 모래사장을 배치할지를 결정하고, 특정 지형에 배치되는 나무들의 종류를 결정하며, 각 지형의 기후에 따라 거기에 배치할 생물군을 결정합니다.

저는 같은 방식을 이 새로운 게임에도 도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리 정해놓은 알고리즘에 따라서, 엔진이 왕국과 도시의 형태를 결정하고, 그 안에 배치될 NPC들을 결정하며, 몬스터와 던전을 배치하고 그 안에 필요한 퀘스트를 만들어내는 거죠.

방을 생성한 호스트조차도,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때 이 맵에서 어떤 모험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유물을 캐고, 유적을 탐험하고, 지도를 그리며 진정한 ‘모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저는 그것이 광산 크래프트의 ‘RPG 버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채광 대신 유물을 캐고, 빌딩 대신 유적 조사가 들어가는 거군요.

흥미롭네요. 물론 그 모든 알고리즘을 구현해야 하는 것은 저희 직원들이니 작업량 자체가 엄청나게 부담되긴 하겠지만, 확실히 지금 저희가 기획한 버전보다는 훨씬 광산 크래프트다운 게임이 될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럼 그쪽으로 다시 기획을 잡아보죠.

개발자들에게 새 프로젝트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아이디어를 모아서 기획을 다시 잡아 오도록 하세요.

저희 쪽에서도 아이디어를 모아서 새로운 제안서를 준비할 테니, 다음에 양쪽에서 모인 아이디어를 합쳐서 구체적인 기획 방향을 잡으면 될 겁니다.”

“그렇게 하죠. 다만 말씀하신 형태의 게임을 만들려면, 개발 기간이나 비용이 확연히 증가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버그도 엄청나게 많이 생길 수 있고요.”

“PTW에는 전체 업계를 통틀어 가장 거대한 규모의 QA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은, 여타 회사의 QA 팀과는 차원이 다른 전문가들로 구성되어있죠.

버그가 걱정되신다면, 저희 쪽 QA 팀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코드 수정에 필요한 인력들도 저희가 지원해드릴 거고요.”

“좋습니다. 그럼 저희 쪽에서도 기존 기획은 완전히 갈아엎고 새로운 게임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다시 아이디어 회의를 진행해보죠.

원래는 광산 크래프트의 그래픽 스타일을 빌려 적당한 수준의 액션 RPG를 만들 생각이었지만, 명백하게 PTW에서 그것을 바라지 않는 것 같으니까요.”

“굳이 해보고 싶으시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지금 기획안 그대로의 게임을 딥 다이버로 출시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됐습니다. 훨씬 재미있어 보이는 방향이 제시되었는데, 마이너에 불과한 기존 게임의 기획을 고집하는 것도 문제가 있죠.

해봅시다. 새 게임.

딥 다이버에 어울리는, 그리고 광산 크래프트라는 IP의 명성에 어울리는 완전히 새로운 RPG의 제작을요.

말하고 보니 흥분되는군요.

절차적 생성 법칙으로 만들어지는 판타지 세계라니. 솔직히 개발자라면 누구나 어렴풋이 상상은 했을 겁니다.

다만 만들만한 엄두가 안 나서 시도를 못 했을 뿐이죠.”

그때,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숀 케일이 대화게 끼어들었다.

그가 알고 있기로, 이미 비슷한 시도를 한 개발사가 있었기 때문에.

“실례지만 절차적 생성에 따라 월드가 만들어지고, 그 월드를 탐험하는 게임이라면 이미 노 맨즈 스카이가 있지 않았나요?

그리고 그 전이라면, 스포어도 비슷한 시도를 했었고요.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모두가 그 비전에 동의하며 엄청난 비용을 클라우드 펀딩에 투자했지만, 그 결과물은 썩 만족스럽지 못했죠.”

노 맨즈 스카이는 헬로 게임즈에서 2016년에 출시한 SF 어드벤쳐 게임으로, ‘무한대의 행성 수’를 자랑하며 야심차게 개발에 들어간 게임이었다.

인류가 살고 있는 우리 은하의 수백 배에 달하는 행성의 숫자.

노 맨즈 스카인는 그 모든 행성에 각각의 생태계와 환경, 개성적인 생물이 등장하며, 플레이어는 그 모든 행성을 돌아다니며 자원을 수집하고, 추락한 우주선을 조사하며 행성별로 기지를 건설할 수 있다고 광고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오픈된 게임은, 행성의 숫자만 엄청나게 많을 뿐 게임안에서 컨텐츠라 부를만한 부분이 거의 없고, 있더라도 지루한 반복 플레이만을 요구하도록 구성되어있어 엄청난 실망감만을 불러일으킨 망작이었다.

그 수준은 스팀에서의 유저 평가 중에, ‘A mile wide but an inch deep(무대는 넓지만 깊이는 얕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였다.

결국 개발자가 사과하며 초기에 약속한 모든 것이 구현될 때까지 무료 패치를 진행하는 것으로 나름 괜찮은 게임이 되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수많은 게이머들이 게임에 흥미를 잃어버린 이후였다.

그리고 손 케일은 그것에 대해 언급한 것이었다.

“절차적 생성은 무한대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잘 풀린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광산 크래프트조차도 맵은 절차적으로 생성하지만 그 안의 컨텐츠는 전적으로 유저의 행동에 맡기고 있고요.

컴퓨터는 재미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단지 미리 입력된 알고리즘에 따라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뿐이죠.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시겠어요?”

그러자 상혁이 숀에게 말했다.

“물론 저희가 단순한 형태의 지시형 퀘스트를 만드는 NPC만 생성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짜고, 스킨만 다르지 전부 비슷한 형태의 마을만 구성할 수 있는 지형 생성 툴을 만들고, 전부 비슷한 형태에 색깔만 다른 몬스터를 맵에 뿌리게 만든다면.

예. 아마도 저희는 노 마인즈 스카이 같은 게임을 만들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건 지나치게 절차적 생성이란 과정 자체에 집착하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말 그대로, 개발자가 해야하는 노력을 컴퓨터가 대신 해주길 바랄 때 생기는 문제란 말이죠.

저희는 광산 크래프트의 새 RPG를 그런 식으로 개발하지 않을 겁니다.

단순히 컴퓨터가 랜덤하게 무언가를 만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죠.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왕국의 공주가 던전을 지키는 보스에게 납치당했다는 퀘스트를 생성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지만, 실제로 이 퀘스트에는 바리에이션을 줄 수 있는 수많은 포인트들이 존재하죠.

납치당한 것은 공주가 될 수도, 왕비가 될 수도, 혹은 왕국이 건립될 때부터 있었던 왕국의 보물일 수도 있습니다.

납치를 수행한 대상도 드래곤이 될 수도, 아니면 리치가 될 수도 있고 혹은 이전에 왕국에서 일하던 마법사가 될 수도 있겠죠.

해당 보스를 잡는 방법에 대한 바리에이션도 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리치를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 던전 깊은 곳에 있는 라이프 베슬을 제거하는 것이라면, 유저들은 파티를 나눠서 리치를 유인하며 나머지 멤버들로 하여금 라이프 베슬을 파괴하는 계획을 세울 수도 있겠죠.

아니면 전설로 내려오는 생명의 검을 만들어 리치의 심장에 찔러넣을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을 수행하려면 생명의 검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것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를 사냥이나 발굴을 통해서 구할 필요가 있겠죠.

또는 마을의 땅굴 전문가를 데려다가 라이프 베슬이 있는 위치까지 아예 굴을 파는 작전을 짤 수도 있고요.

그렇게, 퀘스트의 형태나 보스의 종류에 따라 미리 정해놓은 바리에이션을 맵에 적당히 뿌려놓게 만들 수도 있을 거고요.

제가 말하는 ‘랜덤’은 단순히 컴퓨터가 만들 수 있을 수준의 단순한 퀘스트를 맵에 흩뿌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유저로 하여금 이번 모험에서 그들이 만나게 될 시련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는 의미의 ‘랜덤’을 말하는 거죠.

그리고 그 수많은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유저는 나름의 노하우를 얻게 될 겁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와 플레이하는 전혀 새로운 세션에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오, 이번 보스는 언데드 보스인 리치로군.

그건 내가 전에 잡아봤어.

그러니 내가 어떻게 잡는지 알려주지.’

그러나 그 유저는 곧 깨닫게 됩니다. 이전에 플레이했던 세션에선 생명의 검을 조합하여 리치를 물리쳤지만, 이번 세션에는 그 생명의 검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NPC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요.

그럼 다른 방법을 통해서 깨야 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방식을 배우게 되겠죠.

그게 제가 생각하는 모험이고, 새로운 광산 크래프트 RPG가 추구하는 형태의 모험입니다.”

“그 모든 방법론에 대한 데이터는 전부 사람이 만들어야할 텐데요?

작업량이 엄청날 겁니다. 데이터의 양도 장난이 아닐 거고요.

절차적 생성이란 건 어디까지나 인간이 할 수 없는 수준의 방대한 작업을 기계적인 방법으로 구현하는 데 필요한 겁니다.

지금 상혁 씨가 말하는 방식은 무식하게 비효율적인 방법이고요.”

그러자 상혁은 단호한 목소리로 숀 케일의 의견에 반대를 표했다.

“아뇨, 게임에서의 모든 시스템은, 하물며 그 수단이 절차적 생성방식이라 하더라도, 오로지 재미를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겁니다.

개발자의 노가다를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요.

적어도 저희 PTW에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 물론 그 많은 퀘스트를 만들고 모든 변수를 파악해서 집어넣고 그 수많은 조합을 미리 구성해서 만들어 넣으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 노력이 필요할겁니다.

그리고 게임의 용량도 어마어마하게 커지겠죠.

하지만 유저들은 그 게임의 용량이 곧 재미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출시할 게임의 용량이, 심지어 광산 크래프트같은 스타일의 그래픽을 쓰고 있음에도 150Gb가 넘는 용량을 자랑한다면, 아마도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젠장, 분명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그래픽을 생각하면 용량이 이렇게 클 이유가 없는데?

이 미친놈들이 대체 뭘로 이 용량을 가득 채운 거야?’

그리고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감탄에 찬 목소리로 외치는 겁니다.

‘아, 이놈들이 그 큰 게임 용량을 전부 여기에 퍼부었구나!’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건, 개발자로서 행복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적어도 ‘이 빌어먹을 게임은 용량만 100Gb가 넘는데 그 용량을 대체 어디에 쓴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같은 반응보다는 훨씬 낫겠죠.”

“광산 크래프트 원본의 용량이 10Gb도 안 되는데, 외전을 100Gb짜리 게임으로 만든다고요?”

“안될 게 뭐 있습니까? 저는 적어도 RPG라는 장르를 달고 나오는 이상은, 광산 크래프트의 이번 신작이 원작을 압도하는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게임이 아니라면, 딥 다이버로 출시하게 둘 생각도 없고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게일 하워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제 대충 제가 원하는 수준이 어떤 수준인지 아시겠죠?

만일 머장 스튜디오에서 저희가 목표하는 수준에 도전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저희는 가장 악랄한 헬스트레이너보다 더 악랄하게 머장 스튜디오를 푸쉬해 드릴 겁니다.

저희가 원하는 수준의 퀄리티가 아니라면 모든 결과물의 적용을 거부하는 한이 있더라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와 함께 PRG의 역사를 바꿀만한 새 게임을 만드실 생각이 있다면.

원작인 광산 크래프트가 게임 업계에 미친 파급력 이상의 폭풍을 몰고 올 게임을 만드실 생각이 있다면, 지금 제 손을 잡으시죠.”

그리고는 도발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방문을 걷어차고 이 자리에서 도망치시던가요.”

그런 말을 듣고 뒤로 물러설 만한 게임 개발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물며 전 세계에서 게임을 가장 잘 만든다고 알려진 PTW에서,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도망친다면, 그건 두고두고 업계에서 놀림거리가 될 것이 분명하기에.

게일은 상혁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할 말입니다. 당장 내일부터 하드하게 밀어 부쳐드리죠.”

상혁은 나머지 멤버들을 향해 말했다.

“3차 NE 컨벤션을 위해 구성한 컨소시엄에 참여한 개발사들은, 모두들 자신들이 가진 한계를 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게이트 씨는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을 제게 보낸 것일 테고요.

만일 딥 다이버라는 체감형 머신이 가진 놀라운 성능에 기대서, 적당히 본인들이 가진 IP를 VR용으로 포팅해서 출시할 생각이었다면 당장 이 방에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아니라, 정말로 본인들이 가진 IP의 한계를 넘어서, 정말로 역사가 될만한 게임을 만들 각오가 되어있다면, 여기에 손을 포개 올리시고요.”

그러자 나머지 멤버들도 게일의 손을 붙잡고 있는 상혁의 손 위에 자신들의 손을 포겠다.

마치 뭔가의 의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상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작게 미소짓고는, 만족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사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전에 있었던 컨소시엄의 이름은 ‘VR 원정대(Fellowship of the VR)’였죠.

그러나 이미 그 원정대가 VR 시장에 대한 모험을 끝마친 상황에서, VR 원정대란 이름은 어울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MS 진영에서, X-BOX를 위한 딥 다이버용 게임을 개발하는 이번 컨소시엄의 이름은 다른 이름으로 할까 합니다.”

“어떤 이름이 좋으시겠어요?”

“글쎄요. 헤일러부터 플라이트 시뮬레이터, 광산 크래프트에 포르자 시리즈까지.

이번 컨소시엄에 참여한 여러분들이 가진 IP가 가진 무게는 엄청나죠.

그리고 사람들은 그 IP와 딥 다이버의 결합에 대해 엄청난 기대를 품을 겁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여줘야 할 거고요.

그러니 이번 프로젝트의 이름은, 저희가 하려는 목적을 잘 보여주는 이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잠시 고민하던 상혁이 입을 열었다.

“이매진 브레이커(Imagine Breaker). 이번 컨소시엄의 이름은 이매진 브레이커입니다.”

“상상을 부순다는 의미로군요. 멋진데요?”

‘사실 중2병 라노벨의 주인공 능력에서 따온 이름인데요.’

상혁은 굳이 거기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미소를 지으며, 이매진 브레이커라는 단어를 중얼거리고 있는 중년의 남성들을 향해 말했다.

“입에서 내뱉은 말은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인간의 의지는 결과를 불러오는 법입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이상을 더 자주 언급할수록, 저희가 하려는 이상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겠죠.

저희는 유저들의 상상을 깨부수고 기대를 넘어선 무언가를 보여줄겁니다.

누구도 본 적 없었고, 누구도 이 IP에서 이런 포텐셜이 나올 것이라 기대하지 못했던 멋진 결과물을 내놓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의 이매진 브레이커입니다. 다들 동의하십니까?”

그러자 게일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동의합니다!”

“나머지 분들도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그럼 힘차게 외치고 시작합시다.

제가 앞 단어를 선창하면 나머지 분들이 뒷 단어를 따라 외치는 겁니다!

우리의 목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Hell Yeaaaaaaah!”

“Imagine!”

“Breaker!!!!!!!!”

“Yeaaaaaaah! We can do it!!!!!”

“Yeaaaaaaah!”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회의실이 떠나가도록 소리 지르는 중년 남성의 무리를 보며, 상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게임 개발자는 나이 먹어도 죄다 마음속에 중2병이 가득 차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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