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39화 (340/485)

339. 오스카상 노리기

사실 기간 통신 사업에 뛰어들자는 아이디어는 상혁의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단지 민준이 자신을 찾아와 현존하는 인터넷 서비스보다 더 빠른 회선의 보급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뿐.

상혁이 게임을 만들면서 필요한 것들을 민준이 개발하여 제공하는 것처럼, 민준이 새로운 기술을 보급하는데 필요한 인프라를 준비하는 것은 상혁의 몫이었다.

민준은 개발에 필요한 일에는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덕분에 민준이 원하는 수준의 대칭형 초고속 인터넷망을 구축하는 임무는 온전히 상혁의 몫이 되었다.

비록 최근의 회사 운영으로 인해 넉넉한 자금력이 준비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 사업 진출은 PTW 입장에서도 큰 리스크를 안을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 리스크를 기존 통신망 사업과 완전히 별개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극복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저희가 하려는 것은, 통신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전체 네트워크가 대칭형으로 구성된 새로운 초고속 인터넷 망을 구축하는 것이죠.

우선, 저희는 전국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광 통신망을 구축할 겁니다.

그리고 각 지점에는 PRD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네트워크 패킷을 감당할 수 있는 중계 서버를 둘 거고요.

그리고 그 중계 지점을 중심으로 유저들이 일정 금액을 내고 PRD를 즐길 수 있는 일종의 ‘풀 다이브 체험방’을 만들 겁니다.

거기서는 기존의 통신 회선이 아닌, PTW가 제공하는 새로운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 최적의 환경에서 PRD 전용 게임을 할 수 있게 되겠죠.

그리고 저희는 그 수를 점차 늘려가며 주변 지역으로 확장해나갈 겁니다.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공급을 늘리는 거죠.”

“그러니까 스텝 바이 스텝으로 천천히 확장해나간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PRD는 비싼 장비죠. 게다가 일반 가정집의 거실에 놓기에는, 그 크기가 너무 크고요.

PTW에서는 저희가 운영하는 센터를 통해서 풀 다이브 VR 체험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이 경험이 주는 가치가 수천만 원 이상의 값어치를 할 것이라고 고객들이 믿게 하려는 겁니다.

그렇게 실제 경험을 통해 풀다이브 VR 게임의 매력을 전파한다면, 점차 집에서도 그 경험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수천만 원을 내고 기꺼이 자신이 집에 전용 PRD를 설치할 거고요.

물론 그 전용의 RPD에도 기존 통신망이 아닌 PTW에서 제공하는 VR 전용 통신망이 필요하게 되겠지만, 그렇게 설치되는 회선은 완전히 새로 구축하는 것이 아닌, 기존에 구축한 중계 지점에서 연결되기 때문에 그만큼 비용이 절약될 테죠.

전국에 PC방과 초고속 인터넷이 공급되던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때의 수요는 우주 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끌어냈고, 사람들은 PC방에서의 게임 플레이를 거쳐 자신들의 가정에 초고속 인터넷을 끌어왔죠.

저희는 같은 과정을 VR에서 구현하려는 것뿐입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굳이 5G 주파수는 필요 없는 것 아닌가요?”

“저희가 새로운 인터넷을 만들려는 건 유저에게 최적의 VR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이지만, 앞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VR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저희의 새로운 네트워크는 앞으로의 3, 40년을 고려한 용량으로 만들어질 것이지만, 실제 초기 사용자는 그리 많지 않겠죠.

그래서 초반엔, 예. 꽤 엄청난 양의 처리 용량이 남아돌 겁니다.

저흰 그걸 5G 통신망 구축에 돌리려는 거고요.

게다가 유저들에게 제공할 좋은 핑계거리가 필요하기도 하고요.”

“핑계거리?”

“정말로 하드코어 게이머가 아니라면, 단순히 VR만을 위한 통신 서비스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할 유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건 초기의 초고속 인터넷망도 마찬가지였죠.

실제 돈을 내는 부모님 세대들은 인터넷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당시 많은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은 케이블 TV와 초고속 인터넷을 하나로 결합하여 묶어 파는 서비스 모델을 선택했습니다.

그런 서비스는 인터넷을 쓰지 않는 부모님 세대에도 꽤 도움이 될 수 있었으니까.

저희는 저희의 남는 대역폭을 활용하여 구축할 5G 서비스가, 그 당시의 케이블 TV 역할을 해 줄 거라 기대하고 있는 거죠.”

“어차피 비싼 휴대폰 요금은 내야 하니까, 거기에 덤으로 VR 통신 서비스를 얹어준다는 거군요?”

“그렇죠. 적어도 나이든 게이머들에겐, 아내에게 등짝 스매쉬를 좀 덜 얻어맞을 좋은 핑계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전국에 설치될 PRD 체험방이 저희의 PC방이자 기지국이 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현된 완전한 가상현실이 마음에 드는 ‘돈 많은’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저희의 네트워크망을 완성해주겠죠.

어느 정도의 망 보급이 완료되고 나면, 각 중계 지점을 통해 기지국과 가정집을 연결하는 비용이 크게 줄어들 겁니다.

그때는 저희가 목표로 하는 VR의 대중화를 이룰 수 있게 되겠죠.”

“그러니까 결국, PTW에서 하려는 것은 기간 통신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에 VR 체험방을 설치하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이후엔 그걸 글로벌 레벨로 확장하는 거고요?”

“그렇죠. 하지만 저희가 직접 무선 통신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한국에서만입니다.

해외에서는 현지 통신사와의 협력을 통해 작업을 진행하려 하는 거고요. 그 과정에서 꽤 많은 장비 수요가 발생할 겁니다.”

“중국산 염가 장비를 대체할 수 있는 수요가 될까요?”

“장비의 성능이 차원이 다르니까요.

비슷한 성능의 장비라면 가격으로 밀어붙일 수 있겠지만, 저희 장비는 STC에 의한 설계를 기반으로 해서 성능이 월등하게 뛰어납니다.

그렇다고 가격이 더 비싼 것도 아닐 거고요.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에 구축되는 5G 인터넷망이 저희의 장비로 교체되게 되겠죠.

저희는 지금의 해저 케이블이 담당하고 있는 대륙 간 통신을 스페이드 X와 협력해서 개발할 새로운 네트워크 데이터 전용 위성인 ‘릴레이’를 통해 대신하고, 인접 국가나 도시별 연결을 스타링크의 위성 인터넷망을 통해 대체하고, 도시 내부에서의 로컬 연결을 PRD 센터용 네트워크로 대체할 겁니다.

그건 완전히 새로운 인터넷이 되겠죠. 기존의 통신사와는 다르게, 저희는 망 보급 수준에 따라 신규 설치비나 망 이용료를 적절한 수준으로 계속 조정할 예정이니까요.

게다가 트래픽 이용료라는, 인터넷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개소리에 대해서도 떠들지 않을 거고요.

이미 이용자들에게 고가의 요금을 받아먹고 있으면서, 데이터 트래픽이 크다는 이유로 인터넷 사업자에게 추가로 요금을 받겠다는 건 도둑놈 심보입니다.”

“그리고 저희 삼정에게는 그 새로운 인터넷을 위한 장비 일체를 패키지로 주문하시려는 거군요?”

“그렇죠.”

“거기엔 PRD의 생산도 포함됩니까?”

“안타깝게도 PRD의 생산은 테슬러에서 맡기로 되어 있습니다.

PRD라는 장비의 생명은 모터이고, 테슬러는 전기 모터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는 업체니까요.”

“그건 좀 아쉽네요.”

“새로운 인터넷의 장비 일체를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정도로 만족하시죠. 그것만 해도 삼정에게는 엄청난 이윤을 벌어다 줄 겁니다.”

상혁의 말을 들은 주용은 머릿속으로 주판을 굴렸다.

그리고는 상혁을 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저희 측 전문가들을 파견해서 조율해보죠.

그 새로운 인터넷이라는 물건을 만들려면, 할 일이 산더미 같을 겁니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 PRD 센터를 세울만한 부동산도 알아봐야 하고, 광케이블이나 무선 기지국 설치 작업에 필요한 엔지니어도 확보해야겠죠.

거기에 AS 관련 인력도 확보해야 할 테고요. 만약 매설 작업이 필요하다면 관할 구청의 허가도 받아야 합니다. 엄청난 작업이 되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주용이 상혁을 바라보자, 상혁이 마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죠. 엄청난 작업이 되겠죠.”

“고생하시겠네요.”

“고생하겠죠.”

주용은 그렇게 말하는 상혁의 눈빛이, 매우 부담스럽다고 생각했다.

마치 빨리 뭔가를 말하기를 기대하는 눈빛으로, 상혁이 입을 다물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상혁은 주용을 압박하듯 다시 물었다.

“고생이 참 많겠죠?”

“그렇겠네요.”

“······.”

“고생이 많을 것 같다고요.”

“그러니까요···.”

주용이 자꾸만 고개를 돌리며 상혁의 시선을 회피하자, 상혁은 목소리에 힘을 주며 주용을 압박했다.

“그건 저희같이 ‘돈만 많은’ 게임회사가 감당하기엔, 매우 번거롭고 귀찮은 일일 겁니다.

물론 모든 작업이 완료되고 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 과정까지 너무 큰 노력이 들어갈 테니까요.”

“그렇죠. 기간 통신 사업 진출이란 절대 작은 작업이 아니니까요.”

“그렇죠···.”

“누가 대신해줬으면 좋겠는데···.”

“···.”

“아아, 누가 대신해줬으면 좋겠는 데에에에···.”

“······.”

결국 주용은 한숨을 쉬며 상혁을 바라보았다.

애당초 자신을 찾아온 시점에서, 상혁이 모든 과정을 삼정에게 떠맡기려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 ‘새로운 인터넷’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장비 일체의 보급 외에도, 귀찮은 부분은 삼정이 대신 맡겠습니다.

PTW가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게임 개발이란 본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요.”

“그럼 저희는 삼정에서 보내는 영수증만 결제해드리면 되겠군요.”

“상혁 씨가 ‘패키지’라는 단어를 언급했을 때, 저는 상혁씨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닌가요?”

그러자 상혁이 씩 웃으며 주용에게 말했다.

그의 말은, 상혁이 바라는 바를 정확하게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맞습니다. 사실 제안을 해 주지 않으셨다면 제가 부탁하려고 했었죠.

PTW에는 세계에서 게임을 가장 잘 만드는 개발자들이 잔뜩 있지만, 전신주에 올라타 인터넷 선을 설치할 줄 아는 직원들은 없으니까요.”

“전국에 초고속 인터넷망의 보급이 마무리되면서, 각 통신사에서는 자신들이 데리고 있던 설치 인력을 대량으로 해고했죠.

은퇴한 전문가들을 다시 고용해 일자리를 맡길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상혁이 말했다.

“정말로 삼정에서 보내는 청구서만 저희가 결제하면 됩니까? 새 인터넷의 지분 절반이라든지, 그런 별도의 요구는 없는 건가요?”

“없습니다. 애당초 저희가 투자할 테니 지분 일부를 달라고 해도 상혁 씨는 거절하실 거 아닙니까?

애당초 타협 불가능한 조건을 굳이 내밀어서 시간을 끌 필요는 없죠.

저희는 새 인터넷이 PTW에서 만족할 수 있는 형태로 구축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희에게 적절한 선의 이윤을 붙여 요금을 청구할 거고요.

구축과 관리는 저희가 하겠지만, 소유는 온전히 투자자인 PTW의 소유가 될 겁니다. 그 정도 조건이면 만족하시겠죠?”

그러자 상혁이 입에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만족합니다.”

“그럼 다음 회의는 구체적인 견적이 나오면 계약서를 가지고 진행하게 되겠군요.

일차적으로 국내 주요 도시에 PRD센터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에 필요한 비용을 계산해보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저희 쪽 CTO인 민준을 파견해드리죠.

구체적으로 필요한 망의 형태와 PRD 센터의 개수에 대해서라면 실무자인 민준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해당 작업에 필요한 실무자를 민준 씨와 연결해드리죠.”

주용이 자리에서 일어나 상혁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새 인터넷을 위해.”

그러자 상혁도 씩 웃으며 주용의 손을 잡고 말했다.

“새 인터넷을 위해.”

그것은 이후에 ‘PTW NET’이라 불리게 되는, 완전히 새로운 인터넷의 시작을 의미하는 악수였다.

***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X-BOX 본사는 처음이시죠?”

주용과의 미팅을 마친 상혁은 계약 내용에 대해 민준에게 전달한 뒤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윌 게이트가 그에게 요청한, X-BOX용 딥 다이버 전용 게임 개발을 위한 컨소시엄 구성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오늘은 그와 관련된 1차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워싱턴 주 킹 레드먼드에 위치한 X-BOX 게임 스튜디오에서.

상혁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윌 게이트가 직접 딥 다이버를 위해 준비한 최강의 정예 군단이었다.

“ACES 게임 스튜디오 딥 다이버 파트장 마이클 젠킨스입니다. 주력 프로젝트는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머장 스튜디오의 게일 하워드입니다. 이번에 윌 게이트 씨로부터 직접 딥 다이버 프로젝트 참여를 부탁받아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대부분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상혁이 아는 인물들도 섞여 있었다.

머장 스튜디오에서 파견나온 게일 하워드처럼.

그는 이전에 OGC 내부에 ‘광산 크래프트’를 탑재하는 과정에서 PTW 본사로 찾아와 기술 지원을 해 주었던 인물이었다.

상혁은 구면인 그의 손을 잡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머장 스튜디오에서도 참여합니까?”

“현재 X-BOX진영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중에, 아니 앞으로 진행할 프로젝트를 합쳐 가장 거대한 컨소시엄이 될 예정이니까요.

주력 스튜디오인 저희가 빠질 순 없겠죠.”

“그럼 353 인더스트리 쪽 분들도 오셨겠군요.”

현재의 X-BOX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헤일러’시리즈의 개발사인 반지 소프트가 MS에서 독립하면서, MS는 반지 소프트의 일부 개발인력을 흡수하여 오로지 헤일러 시리즈를 위한 스튜디오를 새로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353 인더스트리였고, 상혁은 머장 스튜디오가 참여한 이상 353 인더스트리도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혁의 예상대로, 다른 인물들의 뒤에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들며 상혁에게 말을 걸었다.

“353인더스트리 딥 다이브 파트 담당자 숀 케일입니다.

이번엔 헤일러 시리즈의 딥 다이버 버전 참여를 부탁받아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에 샌드박스, FPS까지 나왔으니 다음은 레이싱인가요?”

“Turn 10 스튜디오의 스튜디오 헤드 앨런 하츠만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상혁이 직접 딥 다이버에 어울리는 개발사를 골라 SANY에 중계를 요청했던 이전 컨소시엄과는 다르게, 이번의 컨소시엄은 전적으로 윌 게이트의 주도 아래 참여사가 선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상혁은 그것에 대해 따로 불만을 느끼지는 않았다.

어차피 여기 모인 개발사 중 어느 하나라도 이름 없는 스튜디오가 없었고, 상혁이 좋아하지 않는 게임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개발자들과 함께 딥 다이버용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혁은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재미있겠다.’

두근대는 마음을 속으로 감추며, 상혁은 모여있는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미소지으며 그들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PTW의 CCO 이상혁입니다. 이번 컨소시엄의 헤드를 맡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오히려 나머지 멤버들이 마치 꿈이라도 꾸는 표정으로 상혁을 바라보았다.

여기 모인 멤버들은 모두 3차 NE 컨벤션을 통해 공개된 이전 컨소시엄의 결과물을 직간접적으로 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컨소시엄을 통해서, PTW는 간담 게임 역사상 역대 최고 기대작이라 평가받는 게임을 내놓았고, 죽다 못해 관짝에 묻혀있던 프랜차이즈인 아머드 코아를 살려내었으며, 스페이드 컴뱃 역사상 최고 히트작 리스트를 갱신하고 구란투리스모라는 게임을 바닥부터 재설계해냈다.

특히 아머드 코아 같은 경우는 시리즈 최대 판매량이 30만장을 넘기지 못했던 중소 레이블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예약 주문 수량만 1300만을 넘기는 기적의 매출 증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여기 모인 멤버들은 이후에 벌어질 ‘PTW 매직’에 대해서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IP가, 딥 다이버란 신기술을 만나 어떻게 변화할지가 너무나도 기대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모두가 개발자로서 나름의 이상을 가지고 이 컨소시엄에 참여하였기에, 머릿속으로 나름의 이상적인 VR 경험에 대해 구상해놓은 상태였다.

“사실 MS 산하의 다른 개발사에서도 이번 컨소시엄에 참가하고 싶다는 요청이 무지막지하게 몰려들었습니다.

STC에 흥미를 가지는 개발사들도 많았고, 딥 다이버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개발사도 많았죠.

여기 모인 4개 업체는 그런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나름의 비전을 인정받아 게이트 씨가 선정한 업체고요.”

MS 담당자인 크리스가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래 보이네요. 사실 조금은 의도적으로 구성된 대척점의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PS 진영에서 발표한 딥 다이버의 구성에 MS의 개성을 담아 대항하겠다는 의지랄까요?

아마도 스페이드 컴뱃의 대항군으로 선정된 게임이 플라이트 시뮬레이터겠죠.

구란투리스모야 당연히 포르자 시리즈가 상대하려는 것일 테고요.

그럼 남은 건 간담 게임과 아머드 코아의 딥 다이버 버전인데, 그에 대항하는 대항마로 MS에서는 광산크래프트와 헤일러 시리즈를 고른 건가요?”

“그건 조금 다릅니다. 저희가 이번 컨소시엄에 참가하면서 받은 요청은, 저희가 보유한 기존 IP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IP를 개발해달라는 요청이었기 때문이죠.”

“단순히 광산 크래프트의 딥 다이버 버전을 만들려는 건 아니라는 거군요?”

“맞습니다. 물론 광산 크래프트의 IP 자체를 활용하긴 할 테지만, 문제는 광산 크래프트가 딥 다이버 같은 체감형 VR 장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죠.

딥 다이버로 광산 크래프트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은 처음엔 즐거울지 몰라도, 순식간에 질려버릴 만한 경험이 될 겁니다.

곡괭이를 3시간쯤 휘두르고 있으면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겠죠.

그래서 저희는 딥 다이버에 어울리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려 합니다.

광산 크래프트가 가진 특유의 그래픽 스타일을 따라가면서, VR 경험에 어울리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거죠.

그 구체적인 형태는, 이번 컨소시엄을 통해 PTW의 도움을 받아 완성해볼 생각입니다.”

“원하시는 게 뭔지 알겠습니다. 그럼 헤일러 스튜디오도 마찬가지인가요?”

“저희는 좀 다릅니다. 저희에게 게이트 씨가 원한 것은, 딥 다이버를 통해 헤일러가 제공하는 유저 경험을 확장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이번 컨소시엄에서는 헤일러 시리즈의 기본에 충실한 게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싶습니다.”

“나머지 업체들도 원하는 것을 말씀해 보세요.”

상혁이 말하자 다른 참가자들도 자신들이 생각하는 프로젝트 결과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상혁은 대체로 이번 프로젝트가 기존 IP의 경험을 이어가는 3개의 프로젝트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만들려는 1개의 프로젝트로 이루어져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게이트 씨스러운 발상이군. 3개는 안전빵으로, 1개는 도전적으로 가겠다는 건가.

어떤 방향이든 3개는 기본적으로 재미가 확보된 게임들이니 큰 문제는 없을 거고, 결국 이번 컨소시엄의 메인은 완전히 오리지널 게임이 될 광산 크래프트의 신작이 되겠네.’

생각을 정리한 상혁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저희 PTW를 중심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라고 해도, 저희는 어디까지나 VR 개발에 대한 노하우가 조금 더 있는 업체일 뿐이니까요.

각 게임의 개발은 각 개발사가 책임지고 담당하는 게 낫겠죠.

이전 컨소시엄에서도, 저희의 역할은 각 게임이 충분한 재미를 가지고 딥 다이버의 성능을 100%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에도 그렇게 할 생각이고요.

그러니 각 담당자분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딥 다이버용 게임의 구체적인 기획을 저희 측에 전달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것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기술 지원을 해 드리겠습니다.

그 모든 지원에 대한 대가로, 여러분들은 한 가지만 약속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뭡니까?”

Turn 10 스튜디오의 앨런 하츠만이 상혁에게 묻자, 상혁이 답했다.

“여러분들이 이전까지 어떤 식으로 개발했든 간에, 딥 다이버용 플랫폼으로 발매되는 게임의 최종 퀄리티에 대한 결정은 PTW에서 합니다.

그리고 저희는, 딥 다이버를 가진 게이머들이 게임을 구매할 때 어떤 게임을 고르던 후회 없는 선택을 하게 되길 바라고 있고요.

그러니 여러분이 개발할 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게 어떤 게임이든 간에, 적어도 ‘이 버전이 지금까지 이 시리즈가 가졌던 모든 버전 중에 가장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버전이다.’라는 확신이죠.

그것만 전제된다면, 저희는 여러분들이 만드는 게임에 기술적 지원을 제외한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을 겁니다.”

“쉽게 말하면 저희가 만든 시리즈 중에서도 역대 최고의 시리즈가 되어야 한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아, 단 한 업체를 제외하면 그렇죠.”

그렇게 말한 상혁은 고개를 돌려 머장 스튜디오의 담당자 게일 하워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씩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다른 업체들과는 다르게, 머장 스튜디오에서는 기존 IP를 활용한 오리지널 게임을 개발할 생각이라고 하셨죠?

그럼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 많이 관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존의 안정된 재미가 약속되어있는 다른 프로젝트와는 다르게, 오리지널 프로젝트엔 리스크가 동반되니까요.”

그러자 오히려 게일이 더 적극적인 목소리로 상혁에게 어필해왔다.

“저희도 바라는 바입니다. 사람들은 머장 스튜디오를 오로지 광산 크래프트로만 기억하죠.

저희는 저희가 그보다 뛰어난 다른 게임들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광산 크래프트는 압도적으로 매력적인 IP죠. 그걸 누르고 새로운 게임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건, 디카프리오가 얼굴이 아니라 연기력으로 증명받고 싶어서 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될 겁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결국엔 디카프리오 씨도 오스카상을 탔으니까요.”

잔뜩 기대감에 부푼 표정으로, 상혁이 게일을 바라보았다.

“좋습니다. 게일 ‘디카프리오’ 하워드 씨.”

그리고는 입술을 핥으며 게일에게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게임 이야기를 해보죠. 광산 크래프트가 가진 독특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오스카 상을 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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