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 기간 통신망 사업 진출
“기간 통신망 사업에 진출하겠다니 지금 제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습니까?”
주용의 질문에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용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뭐, 당연히, 너무나 당연히 이미 알고 계신 사실이겠지만, 지금 말씀하신 게 기존 통신망 사업자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빌려서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말하는 거죠?”
“맞습니다.”
“그게 얼마나 큰 비용이 들어가는 사업인지 알고 계십니까?
단순히 무선 통신망만 엄청나게 깐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모바일 통신이야 기지국 설치 수로 커버할 수 있지만, 정작 그 기지국들은 무선으로 받은 데이터를 유선으로 처리한단 말입니다.
전국에 거미줄처럼 광케이블을 까는데 필요한 인력과 자본,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물론 그 수많은 기지국이 잡아먹는 막대한 전기세도 마찬가지고요.”
주용의 말은 이제는 삼정 파운드리의 최대 고객이라 할 수 있는 PTW에 대한 걱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한 치의 거짓도 담기지 않은 사실만이 담겨있는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기간 통신 사업이란 단순히 주파수 경매에 참여하여 주파수를 할당받고, 전국에 무선 통신망을 구축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괜히 고객들에게 40만 원대의 경품을 제공하면서 가입자를 끌어들이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용하던 서비스를 변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대부분은 경품을 받고 계약한 약정 기간에 묶여 있으니까요.
거의 2~3년에 한 번, 약정이 끝날 때만 그 고객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거니, 수십만 원대의 경품을 제공해서라도 어떻게든 끌어들이려는 거죠.
게다가 통신사들은 자신들이 잡고 있는 고객이 신규 통신사에 넘어가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쌓아놓은 자본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PTW의 수익성을 악화시켜 말라 죽게 하려고 할 텐데, 어떻게 3대 통신사의 압력을 버티실 생각입니까?
제가 알기로 심지어 PTW라도 그 정도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은 거로 알고 있는데요?”
“이전엔 그랬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 PTW에는, 사실 현재의 회사 규모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막대한 자금이 쌓여있으니까요.
또, 들어올 예정이기도 하고요.”
“그런가요?”
“저희가 딥 다이버의 생산 계약을 맺을 때, 저희가 건 조건은 딥 다이버를 적정 시장가의 절반 이하의 가격에 시장에 공급하는 거였습니다.
심지어 현재는 원가보다도 낮은 가격에 시장에 공급되고 있죠.
엄밀히 말하면, 딥 다이버 1대가 팔릴 때마다 SANY측엔 16만 원의 적자가 누적됩니다.
그리고 저희가 SANY측에 산업용 딥 다이버의 본격적인 생산에 앞서 우선적으로 공급해달라고 요청한 물량은, 5천만 대 수준이죠.”
“5천만 대에 16만 원이면···. 8조 원이군요.
그런 미친 계약을 SANY가 받아들였습니까?”
“산업용 딥 다이버는 게임용 딥 다이버보다 훨씬 비싸게 팔 수 있으니까요.
거기서 나오는 이득으로 손해를 충분히 보전할 수 있을 거라고 본 겁니다.
게다가 코넥트 때와는 다르게, 게이밍용 딥 다이버는 산업용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접근 권한이 완전히 막혀있죠.
반대로 산업용 딥 다이버는 게임용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접근 권한이 막혀있고요.
그러니 원가 이하로 공급되는 게임용 딥 다이버를 산업용으로 사용한다는 전략이 불가능하니, 산업용 딥 다이버의 수익이 엄청날 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그리고 그 적자 부담은, X-BOX에 딥 다이버를 지원한다는 조건으로 MS가 부담하게 되었으니 SANY측에서는 적자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5천만 대의 딥 다이버를 시장에 공급하고 나면, 이후엔 돈방석에 앉을 일만 남은 거죠.
그리고 그 돈방석의 절반은 저희 PTW의 차지입니다.”
“산업용 딥 다이버에 대해서는 라이선스 비를 받기로 하신 거군요?”
“그렇죠.”
“하지만 그건 이후에 들어올 수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지금 PTW에 필요한 것은 당장 전국에 광케이블을 매설하고 전신주에 통신선을 깔며, 수많은 무선 기지국을 설치할 기술자들을 고용하고 그들을 먹여 살리는데 필요한 막대한 자금입니다.
그리고 그건 지금 당장 필요하고요.”
“괜찮습니다. 거기 필요한 자금은 미 국방부에서 대줄 테니까요.”
상혁의 말을 잠시 곱씹던 주용이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말했다.
“워 다이버군요.”
“군용 장비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대한민국 군인들이 쓸 장비도 아니고요.
돈이야 썩어나게 많은 미국 국방성이니, 필요한 만큼 뜯어내야죠.”
“필요한 만큼이라면 얼마나···?”
“저희가 미국 국방성에 납품할 워 다이버의 가격은 대당 1만 달러입니다.
계약 물량이 300만대 수준이니, 총 300억 달러 정도의 매출 규모가 잡히는 거죠.
거기서 원가를 제외하더라도, 170억 달러 수준의 이윤은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건 SANY랑 나눠야 하는 수익이 아닙니까?”
“아뇨, 비록 워 다이버란 장비가 산업용 딥 다이버에 여러 센서를 추가해서 만드는 장비긴 하지만, 그 핵심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으니까요.
사실 원가를 제외하면 원래 저희에게 남는 이윤은 240억 달러 수준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워 다이버의 운영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과 전담 직원의 고용 및 육성, 데이터 센터와 중계소의 구축 비용 등을 제외하고, 170억 달러 정도가 남을 거라 예상하는 거죠.
게다가 이건 워 다이버 공급에 대한 수익만 계산한 거지, CRD로 발생하는 수익은 잡지도 않은 겁니다.”
“CRD요?”
“아, 그건 아직 미공개인 장비였는데, 깜빡했군요.
얼마 전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던 ‘더 락’ 쇼케이스를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죠. 분명 일반 부대 출신 병사들이, 워 다이버를 이용해서 한 달 정도 훈련을 받고 네이비실 대원들을 상대로 승리한 훈련이었죠?”
“사실 쇼케이스에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 병사들의 훈련을 위해 개발된 장비가 CRD입니다.
그건 대당 공급 가격이 20억이 넘을 거고요.”
“20억이면 훈련 장비치고는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저희가 그런 가격을 아무 부담 없이 부를 정도로, 군수 무기 시장은 거품이 심한 시장이니까요.
게다가 CRD 같은 장비는, 미사일 같이 한번 쓰고 날아가는 소모품이 아니기도 하고요.
미군으로서는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수백 수천조의 예산을 절약할 수 있는 투자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리고 테슬러에 공급할 산업용 딥 다이버에 대한 계약 건도 있고, 저희가 레벨 5 자율 주행 기술을 완성하고 테슬러에 넘기면 그 이후에 테슬러 자동차 1대가 팔릴 때마다 저희가 받을 수 있는 라이선스 비용도 있죠.
그런 모든 부수적 수입을 감안 했을 때, PTW가 1년에 사용할 수 있는 가용자금은 향후 3년간 연간 23조 수준이 됩니다.
그 이후엔 워 다이버의 기본적 공급이 완료되니 수익이 팍 줄긴 하겠지만, 그래도 망가지는 장비의 교체 비용을 포함해서 수익은 계속 발생하겠죠.”
“그 자금을 통신망 사업 진출에 투자하겠다는 겁니까?”
“맞습니다.”
“연간 23조의 투자라···.”
주용은 열심히 머릿속으로 주판을 굴렸다.
그리고는 상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은 하겠군요.”
“저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저희가 필요한 수준의 인프라 설비를 최대한 단시간에 대량으로 공급해줄 수 있는 업체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후보로 삼정 전자를 생각하고 있고요.”
“제품이 아니라 인프라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단순히 무선 단말기뿐만이 아니라, 전국에 새로 매설할 광케이블, 그리고 그 케이블을 매설하는 공사에 쓸 중장비, 전국에 새로 새울 기지국에 설치할 설비들까지 패키지로 공급해줄 수 있는 업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장비엔, PTW가 보유한 STC 기술이 적용되어 최소한의 전력을 소모하면서 최대한의 성능을 끌어내게 될 거고요.
스컹크 웍스에서 테스트한 바로는, 저희가 새로 설계한 장비들로 네트워크망을 구축했을 때, 기존의 광통신망이 낼 수 있는 최대 속도보다 최고 100% 이상의 속도를 보장할 수 있다는 테스트 결과가 나왔습니다.
3대 통신사의 기술력으로는, 그 어떤 수단을 써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가요.
저희는 그 장비들을 독점적으로 사용한 새로운 인터넷을 구축할 겁니다.
심심할 때마다 망 사용료 어쩌고 하면서 기업들을 협박하거나, 제대로 속도도 안 나오면서 숫자로 사기 치는 인터넷이 아니라, 정말로 ‘빛처럼 빠른’ 속도를 가진 새 인터넷을 말이죠.”
주용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걷기 시작했다.
상혁이 보여준 비전.
그것은 매우 강렬하고 매력적인 것임이 틀림없었지만, 반대로 삼정 전자 입장에서는 매우 위험한 도박을 강요하는 것이기도 했기에.
한참을 고민하던 주용이 상혁을 보며 물었다.
“이상혁 씨.”
“예.”
“3대 통신사에서는 자신들의 놀이판에 PTW가 뛰어드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PTW가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하늘이 내린 선물 같은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반대로 기업들 사이에서는 ‘생태계 파괴자’같은 이명으로 불리고 있기도 하니까요.”
“그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주용이 말한 것처럼, 상혁과 민준이 회귀 이후 벌인 독특한 행보는, 회귀 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에 상당한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전 세계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희대의 업무 솔루션 ‘워크 패스트’의 존재로 인해, 회귀 전엔 대기업으로 성장했어야 할 수많은 기업이 해당 영역에서의 사업진출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메신저 분야에서는 거의 괴물 수준의 점유율을 자랑했기에, 지금의 세계에는 코코아톡 같은 메신저 업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줌 같은 영상 회의 어플리케이션도 존재하지 않았고, 디스코드 같은 음성 통신 어플리케이션도 없었다.
그 모든 기능을, 워크 패스트만 있으면 얼마든지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일정 주기마다 반 독점법으로 제소될 정도로 막대한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워크 패스트가, 지금껏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수익성의 배제.
반 독점법은, 한 기업이 이윤 추구를 위해 시장을 독점하는 것을 막는 법이기 때문에 워크 패스트같은 영구 무료 프로그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은 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고객으로서는 매우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었지만, 언제나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다니는 실리콘 밸리 입장에서 보면 PTW는 깡패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원래는 돈을 받고 팔아야 하는 서비스를, 심지어 돈 받고 파는 서비스보다 높은 퀄리티로 공짜로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PTW가 통신 사업에 진출한다는 것은, 다른 통신사로서는 충분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사항이었다.
“상혁 씨가 말한 대로 PTW가 막대한 자금을 들여서 통신망 사업에 진출한다면, 어쩌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점유율은, 어쩔 수 없이 기존의 포화상태였던 타 통신사의 고객을 빼옴으로서 이루어질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걸 절대 좋아하지 않을 거고요.
게다가 삼정에서는 그 통신사들과도 사업을 하고 있죠.
PTW에 독점으로 장비를 공급하기 위하여, 나머지 통신사 전부와의 관계를 망가트리는 것은 삼정 입장에서는 큰 도박입니다.”
“그 통신사 3개를 합친 규모보다 저희가 더 많은 장비를 발주하게 될 텐데요?”
“발주 이후가 문제죠. 네트워크 장비 시장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PTW같이 시대를 초월한 기술력을 가진 업체라면 더 그렇죠.
PTW에서 개발한 네트워크 장비라면, 아마도 10년, 20년은 너끈히 현역으로 뛰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네트워크 장비 시장은 완전히 죽어버릴 거고요.
저희로서는, 조금 성능이 떨어지더라도 교체 주기가 더 짧은 기업과 손을 잡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이득을 안겨줍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모든 망 설비가 완료된 이후에, 추가적인 주문이 없을 것이 걱정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현재의 이득이 얼마가 되더라도, 장기적으로 시장 자체가 죽어버릴 수 있는 결정이 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상혁 씨가 요구하는 것은 단기간에 최대한의 장비를 공급하는 계약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공급 인프라에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게 될 텐데, 판매량엔 한계가 있죠. 그건 현명한 사업이 아닙니다.”
“3년간 60조 규모의 매출이 적다는 건가요?”
“저희가 잃어버리는 것을 고려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주용의 말을 들은 상혁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주용을 향해 말했다.
“옛날에,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TV에서 한 흑백영화를 본 적이 있었죠.
그 영화 속 주인공은, 말 그대로 절대 더러워지지 않고 절대 헤지지도 않는, 영원히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영화가 있었습니까?”
“아마 지금은 인터넷에서도 찾기 어려운 영화일 거예요. 흑백영화 시절에 나온 영화니까.
아무튼, 그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개발한 그 옷을 팔기 위해 열심히 의류업체를 찾아다녔죠.
자신이 만든 옷은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에 세탁이 필요 없고, 헤어지지 않기 때문에 한 벌만 가지고 영원히 입을 수 있다고 하면서요.”
“떼돈을 벌었겠군요.”
“아뇨. 그의 말을 들은 의류회사 사장들은, 그 옷을 개발한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 암살자를 고용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죠?”
“결국 자신을 죽이려는 의류회사의 암살자를 피해서 열심히 도망 다니던 주인공은, 막다른 골목에서 포위당하게 되죠.
그리고 그때 바람이 불어오더니, 주인공의 옷이 마치 물에 젖은 휴지처럼 산산 조각나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 옷은, 유통기한이 있는 옷이었던 거죠.
결국 주인공은 팬티만 입은 상태가 되고, 암살자들이 그런 주인공을 남겨놓고 돌아가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재미있을 것 같네요.”
“옛날 영화라 템포도 좋지 못하고 화질도 흑백영화라 엄청나게 안 좋으니 그리 재미있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튼, 이 영화의 내용에는 중대한 논리적 오류가 있어요.”
“그게 뭡니까?”
“실제로 절대 헤어지지않고, 빨지 않아도 영원히 깨끗한 옷이 있다고 치죠.
주용 씨라면 그 옷을 평생 입고 다니실 건가요?”
“아뇨. 옷에는 단순히 몸을 가리는 용도만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패션으로서의 의미도 있으니까요.
유행이 지나면 새로운 옷을 사겠죠.”
“맞습니다. 모나미 볼펜은 100원이란 싼 가격에 엄청나게 오래 쓸 수 있는 잉크가 들어있지만, 실제로 그 잉크가 바닥날 때까지 볼펜을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죠.
대부분은 잉크를 다 쓰기 전에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볼이 망가져서 새로 사게 되니까요.
그런 것처럼, 물론 주용 씨 말대로 저희가 개발한 장비가 타 업체에 비해 엄청나게 향상된 속도를 제공하게 되긴 하겠지만, 전 그렇다고 시장 수요가 완전히 전멸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인터넷 정액제 시장은 매우 커다란 시장이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높은 품질을 요구할 것이며, 경쟁 업에서는 PTW보다 높은 품질의 인터넷을 제공하기 위하여 기술 혁신을 거듭할 테니까요.
지금의 인터넷 속도가 거지 같게 된 이유는 하나입니다.
애당초 통신사들끼리 수준을 담합했기 때문이죠.
누군가 먼저 과감한 투자를 통해 독점적으로 어드벤티지를 누리려 한다면, 그들 역시 설비에 투자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장에서 끊임없이 신 장비에 대한 수요를 불러일으키겠죠.”
“하지만 그 장비를 PTW에 장비를 공급하는 저희에게 요청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도 저희의 경쟁사에게 비슷한 스펙의 장비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게 되겠죠.
물론 PTW가 투자하려는 금액이 적은 것은 아닙니다만, 실제 경쟁이 시작되었을 때 3대 통신사가 연합해서 투자할 금액에 비하면 규모에서 밀리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저희는 오직 PTW에게만 물건을 팔아야 하게 될 거고요.
게다가 저희는 통신사에 휴대폰도 공급하고 있죠.
그런 기존의 거래 관계를, 오직 PTW만을 위하여 끊기 위해서는 지금 말씀하신 것보다 더 큰 이익의 보장이 필요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주용은 상혁이 계획을 포기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미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의 인터넷 속도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단순히 더 빠른 인터넷을 보급하겠다는 이유로 완전 포화상태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너무나도 무모한 결정이었기 때문에.
그러나 상혁은 그런 주용의 우려에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대로, 현재의 대한민국의 초고속 인터넷 속도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이죠.
그리고 현존하는 게임들에 한정해서는, 그 속도로 플레이를 즐기는 데 딱히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려 하십니까?”
“지금은 괜찮지만, 앞으로가 문제이기 때문이죠.
아시다시피 저희 PTW가 목표로 하는 궁극의 게임은, 아마도 완전히 구현된 가상현실 게임이 될 겁니다.
PRD를 사용해서 현실감을 전달하고,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그대로 게임 속에서 구현하는 형태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현된 대규모 멀티플레이 환경에서, 플레이어들은 서로 교류하고 게임을 즐기며 가상 세계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는거죠.
문제는 그것을 위해서는 단순히 다운로드 속도만 높은 현재의 인터넷 환경보다 더 좋은 환경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정확히는 비 대칭형이 주류를 이루는 현재의 초고속 인터넷 망이 아닌, 업로드 속도와 다운로드 속도가 같은 대칭형 인터넷 인프라가 저희가 만들려는 가상현실 환경 구현에 필요한거죠.”
“그럼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기술을 제공하고 통신사들이 그것을 보급하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굳이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으면서요.”
“그건 싫습니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통신사라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세금으로 구축한 인프라를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민간이 멋대로 가져가면서 시작된 사업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투자는 쥐꼬리만큼 하면서 통신비는 엄청나게 올려놓았죠.
단통법 같은 개 같은 법을 밀어붙이기도 하면서요.
과도한 마케팅 비용이 소비자의 피해를 가중한다면서 그들이 절약한 마케팅 비용은, 결국 전부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
걔 네는 애당초 양심이 없는 놈들이에요.
만약 저희가 완전히 새로운 인터넷 장비에 관한 기술을 그들에게 제공한다면, 예.
아마도 그들은 그 장비를 전국에 보급할 수 있을 겁니다. 대신 그 대가로 저희 기술이 사용된 새로운 인터넷에 엄청난 가격을 붙이겠죠.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게이머들에게 더 싼 가격에 더 나은 인터넷을 공급하고 싶어 하시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PTW스러운 이유네요.
하지만 그것은 PTW가 추구하는 목표이지 저희 삼정이 추구하는 목표는 아닙니다.
저희가 이번 사업에 참여한다면, 최악의 경우 통신사로부터 휴대폰 판매에 대한 패널티를 적용받을 수도 있어요.
게다가 저희가 공급하는 통신 장비 계약도 전부 취소될 수 있죠. 그 리스크에 대한 비용은, PTW가 감당해줄 수 없는 수준일 겁니다.
그렇다고 그 손해에 대한 비용까지 전부 PTW에 제공하는 기기 가격에 포함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래서 저는 가급적이면 PTW가 통신 사업에 진출하는 것을 말리고 싶습니다.
그건 PTW에게도, 삼정에게도 매우 커다란 부담이 될 테니까요.”
“저희가 다른 회사에 같은 계약을 제안한다고 하더라도요?”
“겨우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시장에서의 장비 공급을 위해, PTW가 원하는 수준의 대규모 생산 설비를 만들 기업은 대한민국에 없을 겁니다.
시간이라도 넉넉하면 모르겠지만, PTW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대한민국 인터넷 시장을 장악하고 싶은 것 아닌가요?
그렇게 하려면 필요 이상으로 생산 인프라가 거대해질 필요가 있고, 그렇게 만든 거대한 인프라는 대한민국에서의 인터넷 망 구축이 완료되는 순간 버려지게 되겠죠.
누구도 그런 결과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상혁 씨. 욕심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가끔은 속도를 조절할 필요도 있는 겁니다.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추진하시죠. 우선 통신 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시고, 기존 인터넷 업체의 회선을 돈을 주고 빌려서 서비스를 구축하세요.
그리고 그 사이에, 천천히 PTW의 통신망을 구축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게 완료되었을 때, 그때 통신사들과 전쟁을 시작하시고요.
제가 볼 땐 그게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대한민국이란 작은 시장 때문에 그런 큰 리스크를 지는 건 위험하다는 의미시군요?”
“맞습니다. 저희에게도, PTW에게도요.”
주용은 간절하게 상혁이 생각을 바꾸기를 빌었다.
어찌됐건 지금 타이밍에 PTW와 다른 노선을 걷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상혁은, 그런 주용의 생각을 단박에 부정하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주용의 우려는, 기우에 불가하다는 말을.
“그렇다면 그건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주용이 묻자, 상혁이 미소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주용에게 말했다.
“저희는 똑같은 사업을, 전 세계를 상대로 할 생각이니까요.”
민준이 설계하고, 상혁이 수행하려는 PTW의 다음 스텝.
그것의 목적은 단순히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인터넷을 갈아엎는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전 세계의 인터넷 시장을 PTW가 ‘쓸어 담는’ 것.
그것이 PTW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