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35화 (336/485)

335. 타이 브레이커

“다들, 바쁘신 와중에도 오늘 이렇게 모여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상혁이 회의실에 모인 멤버들에게 고개 숙이며 인사하자, PTW LAB의 헤드 치프인 존 카믹이 말했다.

“회사가 위기상황이라는데,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당연히 도와야죠.”

“존 카믹 씨는 2nd 레이블 준비 작업도 바쁘실 텐데 워 다이버 작업에도 참여하셨잖아요.

다시 또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상혁의 말대로, PTW LAB와 PRD에 대한 발표를 마친 존 카믹은 바로 자신이 맡은 PTW LAB의 런칭 준비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상혁의 부탁을 듣고 워 다이버 작업에 참여하면서 그 작업은 3개월 이상 보류되었고, 이제야 작업이 다시 궤도에 오르려는 순간, 상혁은 그를 다시 호출했다.

하지만 미안해하는 상혁과는 다르게, 존 카믹은 그것에 대해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VR이 게임의 미래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워 다이버 프로젝트의 참여 경험은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관심 없는 작업이었으면 제 쪽에서 정중히 고사했을 겁니다.

하지만 워 다이버는 말 그대로 앞으로의 VR 경험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프로젝트나 마찬가지였죠.

옵큘러스사에서 근무할 때, 저는 항상 제가 가장 뛰어난 VR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최고는 당연히 저라고 생각했고요.

그러나 워 다이버 작업에 참여하면서, 전 제가 얼마나 오만했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걷는 사이, PTW는 날아다니고 있더군요. 오히려 이번 프로젝트에서 제가 많은 것을 배운 느낌입니다.

그러니 저를 끌어다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한 것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전 나름 즐겁게 작업했으니까.”

“그렇게 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염치불구하고, 조금만 더 협력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이번 작업이 끝나면 바로 PTW LAB 런칭 준비에 들어가도 되겠죠?”

“약속드리죠.”

“좋습니다. 오늘 회의의 안건은 뭡니까? 제가 뭘 하면 되죠?”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우선, 준비한 영상들을 보시죠. 지수야?”

“네. 오빠.”

상혁이 지수를 바라보자 프로젝트 히어로의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지수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방에 있는 모두를 향해 말했다.

“지금부터 보여드릴 영상들은, 제가 개발팀과 함께 만든 프로젝트 히어로의 공개 영상입니다.

원래는 남은 개발 기간이 꽤 남아있기 때문에 공개일정에 여유가 있었지만, 현주 선생님께서 좀 더 이른 시일에 공개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셨죠.”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존 스캇이 손을 들며 물었다.

“잠깐만요. 지수 양.”

“예.”

“지금 영상‘들’이라고 하셨나요?”

“예.”

“그 말은, 영상이 여러 개라는 이야기입니까?”

“맞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된 거죠?”

스캇의 질문에 지수가 한숨을 쉬더니 조금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처음 프로젝트 히어로를 제가 맡게 되었을 때, 이상혁 CCO가 요구한 것은 꽤나 단순했습니다.

‘유저들이 상상할 수 있는 어떤 히어로라도, 유저들의 손으로 플레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거였죠.

그 말은 이 게임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이상혁 씨에게 이렇게 말했죠.

‘오빠, 맡겨만 주세요!’라고.

그리고 그런 저에게 상혁 씨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일 거야.’

그리고 실제 리드 프로듀서를 맡아 작업에 들어가면서, 저는 상혁 씨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몸으로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자유도.

게이머에겐 재미의 상징처럼 들리는 그 단어가, 개발자에겐 악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자유도라···.”

지수의 말을 곱씹는 존 스캇을 보며, 지수는 말을 이어나갔다.

“다들 아시다시피, 세상엔 수많은 히어로가 있죠.

어떤 히어로는 슈퍼 파워 없이 육체적 훈련과 수련만으로 악과 싸우기도 하고, 어떤 슈퍼 히어로는 빌런에 가까운 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며, 어떤 히어로는 존재만으로도 게임의 밸런스 자체를 무너트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히어로는, 모두 서로 겹칠 수 없는, 자신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죠.

그 말은, 저희가 한가지 방향을 강조할 때 다른 방향은 보여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거기에서 발생했죠.”

“그래서 트레일러를 여러 개 만들었다는 뜻입니까?”

“맞습니다.”

“그럼 전부 공개하면 되잖아요?”

“그럴 예정이긴 한데, 그래도 순서는 결정해야 합니다.

오늘 상혁 씨에게 부탁해서 여러분을 모은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고요.

우선 개발 1팀에서 준비한 프로젝트 히어로의 트레일러 영상 2개를 순서대로 보여드릴 겁니다.

그럼 그중에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 영상을 골라주시면 되고요.

각 영상의 길이는 3분 정도입니다.

전부 다 프로젝트 히어로가 가진 게임성을 대표하는 영상들이죠.

그럼 첫 번째 영상부터 보시겠습니다.”

지수가 프레젠터의 버튼을 누르자, 회의실의 조명이 꺼졌다.

그리고 동시에, 회의실 벽면에 설치된 거대 스크린에서 프로젝트 히어로의 트레일러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부탁이에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건장한 남성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비에 젖은 뒷골목 사이로 끌려가는 한 여성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강렬한 오프닝.

누가 봐도 곧 끔찍한 범죄가 시작될 것을 암시하는 듯한 영상과 함께, 첫 번째 트레일러가 시작되고 있었다.

[오 하나님···. 제발···.]

팔뚝만한 칼을 들고 있는 남자의 앞에서, 필사적으로 핸드백을 뒤집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스피커에선 다른 여성의 목소리로 들리는 나레이션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절망적인 상황에선 신을 찾는다.]

[항거할 수 없는 폭력 앞에서, 법의 감시가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선한 이들(Good People)이 의지할 수 있는 건 신의 존재밖에 없으므로.]

[하지만 그들은 곧 깨닫게 되지.]

[거기에 신은 없으며, 누구도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꽤 묵직한 분위기네.’

나레이션과 함께, 직접적인 폭력 장면을 컷으로 잘라 감추고 있기는 해도, 영상은 피해자인 여성이 범죄자에게 구타당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암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갑갑함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명확하게 보이는 영상이었다.

그리고 그 갑갑함이 끌어내려는 감정은 매우 명확했다.

‘누군가 저 여성을 도와줬으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그때, 여성의 목소리로 나오던 나레이션에 변화가 일어났다.

제 3자로 보이는 남성의 목소리로 나레이션이 변경된 것이었다.

[그러나, 신이 없어도, 희망은 있다.]

[폭력에 맞서, 사악함과 싸우려는 용기를 가진 자들이 있기에.]

[우리는 선한 이들의 수호자이며,]

[우리는 악에 맞서 싸우는 방패이다.]

나레이션의 목소리가 계속 변하며, 여러 가지 슈트를 입은 히어로들이 도시의 곳곳에서 다양한 빌런들과 맞서 싸우는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등에 있는 가방에서 수십 개의 드론을 발사하여 적을 농락하는 히어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수많은 총알을 염력으로 막아 되돌려 보내는 히어로.

마치 마법사처럼 마법진을 그리며 적들을 마법 로프로 속박하는 히어로.

그것은 프로젝트 히어로에서 생성 가능한 수많은 히어로 타입의 멋진 활약상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정의의 귀를 대신해 시민들의 비명을 듣고.]

경찰 무전기를 들고 히어로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사이드킥의 모습이나,

[정의의 주먹을 대신해 악을 응징한다.]

일반 감옥에는 가둘 수 없는 슈퍼 파워를 지닌 빌런들을 비밀 기지에 있는 수용소에 가두는 영상도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영상의 피날레는, 그렇게 등장한 수많은 ‘영웅’들의 정체성을 선언하는 나레이션으로 마무리되었다.

눈물로 젖은, 처음의 희생양이 되었던 여성에게 손을 내미는 히어로의 손을 보여주면서.

[우리는, 이 도시를 지키는 수호 천사(Guardian Angel)이다.]

영상이 그렇게 마무리되자, 지수는 다시 불을 켜고 멤버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 첫 번째 트레일러의 이름은 ‘우리는(We Are)’입니다.

게임 안에서의 플레이어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다양한 클래스의 전투적 특성을 보여주는데 집중한 영상이죠.

유저들은 이 영상을 통해서, 이 게임의 여러 면에 대해 알게 됩니다.

사이드킥의 존재라던가, 마법이나 과학기술, 초능력 같은 여러 가지 계열의 슈퍼 히어로를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거죠.”

그러자 평소부터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던 존 카믹이 입이 귀에 걸릴 듯한 미소를 지으며 지수에게 말했다.

“나쁘지 않은데요? 아니, 좋은 거 같습니다. 이대로 가도 되지 않습니까?

게임 자체의 특성도 잘 표현하고 있고, 무엇보다 영상을 보면서 ‘어? 나도 저런 히어로 한번 해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게 좋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지수가 묻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명, 이상혁을 제외하고는.

상혁은 조용히 지수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중이었다.

딱히 트집 잡을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자가 있는 영상도 아니었기 때문에.

액션은 화려하고 캐릭터는 매력적이었으며 음악은 웅장했다.

바로 게임을 키고 플레이를 하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좋은 영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좋은 트레일러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건, 더 좋거나 혹은 비슷한 수준의 다른 영상이 있다는 거겠죠?

그럼 두 번째 영상도 보는 게 좋을거 같습니다.”

존 스캇이 그렇게 말하자, 지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하죠.”

그리고는 프레젠터의 버튼을 누르며 두 번째 영상을 재생시켰다.

[이제 인정하자고. 이 도시가 X됐다는(Fucked up) 걸.]

비장미 넘치고 슬픈 템포로 시작되던 이전 영상과는 다르게, 두 번째 영상은 강렬한 전자 기타 소리와 함께 욕설이 담긴 나레이션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폭력! 오, 폭력 좋지.

이 도시에서는 돈보다도 폭력이 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경찰은 위험을 무시한 지 오래고.]

[치안은 붕괴되었지.]

[이제, 시민들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켜야 해.]

[초등학생도 총을 들고 다니는 게 당연한 곳. 그곳이 바로 시타델이라고.]

은행강도, 자동차 도둑, 경찰차를 기관총으로 습격하는 카르텔의 모습.

그 모든 것이 무너지기 직전의 도시를 보여주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이 도시가 가진 진짜 위험이 아니야.]

[진짜 위험은, 이곳의 악당들이 가진 ‘능력’이지.]

[X친, 내 말은, 총으로 잡을 수 없는 악당에게서 시민들이 무슨 수로 자신을 지키겠냐는 거야.]

[맨손으로 트럭을 집어 던지는 빌런 앞에서, 경찰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래. 진짜로 X 된 거지.

그래서 필요한 거야.]

[바로 너라는 존재가.]

영상의 방향 자체는 이전의 영상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이 도시엔 영웅이 필요하며, 플레이어가 바로 그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것.

다만 이전의 영상이 어두운 배경과 음악으로 비장미를 강조하는 영상이었다면, 지금의 영상은 스타일리쉬한 음악을 깔고 좀 더 가벼운 느낌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은데? 요즘 트랜드에도 맞고.’

영상을 보며, 존 카믹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수가 어째서 고민하고 있는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두 영상의 퀄리티가 비슷했기 때문에.

앞의 영상은 진지한 음악을 배경으로 유저에게 모티베이션을 불러일으키는 영상이었고, 뒤의 영상은 신나는 음악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보고 싶다’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영상이었다.

게다가 후반부로 가면서, 영상이 지향하는 바가 명확히 갈리자, 존 카믹은 지수가 어느 부분을 강조할지가 고민된다고 했던 말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개판인 도시를 구하려면, 말 그대로 엄청난 작업(Tremendous work)이 필요해.

그래. 뒤지게 많은 작업(Lot of work) 말이야.]

앞서 영상에서 중반부 이후의 영상이 각 히어로의 특성을 소개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면, 이번 영상에서의 중반부 이후 내용은 주로 플레이어가 게임 안에서 수행해야 하는 본거지 구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영웅이 되기 위한 특별 수업 101.

첫 번째로, 넌 네가 활동할 근거지를 구해야 해.

말하자면 박쥐 동굴 같은 거지.

어디든 괜찮아.

산속의 동굴? 저택의 지하?

마땅한 곳이 없다면, 부모님 집에 딸린 주차장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어느 장소를 선택하더라도 적들이 널 추적할 수 없게 하는 거야.

이 빌어먹을 도시에서는, 수단을 위해서 가족을 위협하는 것도 서슴지 않으니까.]

[둘째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해.

이 도시의 경찰은 법을 대신해 빌런을 응징하는 히어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경찰의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파악하고, 범죄자들의 정보를 빼돌릴 수 있는 정보망을 구축해야 하지.

경찰 부모님을 둔 친구는 좋은 옵션이 될 수 있어.

혹은 해킹에 자신이 있는 친구를 사이드킥으로 영입해도 좋고.

그 모든 선택은 네 차지야.]

[마지막으로, 자신을 성장시켜야 해.

이 도시엔 널 강하게 해줄 수많은 장소가 존재하지.

도장에서 무술을 배우거나, 실험에 미친 천재 교수님이 만든 주사를 맞거나, 아니면 네가 네 손으로 직접 도움이 될만한 물건을 만들던가.

다 싫다고?

그럼 군대 무기고라도 털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무기 개발 연구소가 바로 이 시타델 시티에 있으니까.

그건 도둑질 아니냐고?

이봐 친구. 가끔은 더 큰 대의를 위해서 작은 악을 감수할 때도 있어야 하는 거야.]

마치 선배처럼 친근하게 설명하는 나레이션을 따라 나오는 영상들은, 프로젝트 히어로에서 플레이어들이 자신만의 히어로 플레이를 즐기기 위해 구축해야 하는 다양한 게임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었다.

기지(Base)를 선정하고, 동료를 영입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능력을 강화하는 모든 과정을.

그리고 존 카믹이 보기에, 그것들이 가진 재미는 첫 번째 영상에서 보여준 것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아 보이는 것들이었다.

‘첫 번째 영상의 히어로 소개가 능력의 다양성을 강조했다면, 두 번째 영상의 핵심은 육성과 성장이로군.

둘 다 게이머가 환장하게 좋아하는 것들이지.’

그 사이에, 영상은 첫 영상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시간에 피날레 파트를 보여주고 있었다.

플레이어가 만들 수 있는 온갖 형태의 기지들, 그 안에 쌓여있는 수많은 장비와 수백 벌의 슈트.

하이파이브를 하며 작전의 성공을 축하하는 동료들의 모습.

그 모든 것이, 이 게임을 하면서 ‘유저가 가지게 될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게이머가 보기에 미친 듯이 ‘가지고 싶은’ 것임이 틀림없었다.

[이건 전부 네 거야. 어린 영웅.(This is all yours. Little Hero.)

네가 만들고, 네가 모아서, 네가 구축할 것들이지.

그리고 넌 이걸로 이 X된 도시를 구하게 될 거야.

모든 선량한 시민들을 위해.

그리고 정의를 위해.]

[그게 바로 히어로가 하는 일이니까.]

영상은 거기에서 끝났다.

그리고 다시 방이 밝아지자, 지수가 말했다.

“두 번째 영상의 제목은 나레이션에 나온 대로 ‘all yours’입니다.

주로 유저들이 게임 안에서 플레이를 통해 얻게 될 것들에 집중한 영상이죠.

전자가 다양한 능력을 통해 펼칠 수 있는 화려하고 개성 있는 액션에 집중한 영상이었다면, 이 영상은 좀 더 프로젝트 히어로의 시뮬레이션 및 RPG 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있어요.

이 게임이 단순히 히어로가 나오는 액션 게임이 아니라, 실제 히어로 활동을 위해 필요한 부수적인 준비에 대한 부분도 다루고 있다는 걸 강조한 거죠.”

지수가 자신의 말을 끝냈지만, 첫 번째 영상이 끝났을 때와는 다르게, 회의실은 침묵에 잠겼다.

첫 번째 영상을 볼 때만 해도 무조건 저걸로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 번째 영상을 보고나니 정말로 고민이 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건 이 게임이 강조하는 아이덴티티를 무엇으로 잡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첫인상은, 모든 유저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박힐 것이었고.

그렇기에 어차피 모든 영상을 차례로 공개할 예정이라 하더라도, 무엇을 먼저 공개하느냐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카믹 씨?”

지수가 묻자 카믹이 깜짝 놀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까 첫 번째 영상이 끝나자마자, 카믹 씨는 그 영상이 가장 좋을 게 확실하다며 그걸로 하자고 하셨죠.

두 번째 영상을 보고 난 이후에도 같은 생각이신가요?”

“난···.”

존 카믹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했다.

“솔직히 첫 번째 영상을 보았을 때, 저는 히어로를 다룬 게임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굉장히 멋진 트레일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트레일러를 보니 고민이 되는군요.

어째서 지수 씨가 두 영상 중에 어떤 것을 먼저 공개할지 결정하지 못했는지, 그 마음이 이해가 갈 정도로요.

둘 다 강점이 명확하게 존재하는 영상입니다.

그리고 두 영상을 보는 게이머의 첫 인상이 명백하게 갈릴만한 영상이기도 하고요.

첫 번째 영상을 본 유저들은 이 게임의 화려한 액션과 다양한 능력에 기대감을 가질 것이고, 두 번째 영상을 본 유저들은 이 게임에서 다루는 ‘히어로의 이면’에 대해 기대하게 되겠죠.

그건 히어로 매니아로서 둘 다 놓치기 아까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래서 결론은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전 전자를 고르겠습니다.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의 다양성이야말로, 이 게임이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재미라고 생각하니까요.”

“스캇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후자에 한 표입니다. 다양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다른 게임에서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집 차고를 개조해서 자신만의 히어로 베이스로 만드는 경험은, 다른 게임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경험처럼 보이겠죠.

두 번째 영상을 보면서, 전 도시를 돌아다니며 동료를 모으고 기지에 놓을 집기를 사서 설치하는 저 자신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충분히 즐거울 것 같았고요.

그러니 전 두 번째 영상에 한 표를 행사하고자 합니다.”

지수는 서연이나 현주, 성연과 민준, 민솔과 혁찬 등 다른 멤버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각각의 영상이 가진 독창적 개성만큼이나 명확하게 갈리고 있었다.

“50대 50이네요. 이걸 영어로는 타이 브레이커(Tie Breaker)라고 하던가요?

아직 의견을 말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상혁 오빠인데, 오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애당초 지수가 어떤 영상을 먼저 공개할지에 대해 가장 먼저 조언을 구한 사람이 상혁이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그녀에게 두 영상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들어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표가 절반으로 갈릴 상황에서, 최종 결정에 대한 한표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자, 상혁은 당황한 표정으로 지수에게 물었다.

“나도 결정하기 어려워서 투표로 하자고 한 건데, 또 나보고 결정하라고?”

“뭐, 그렇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오빠가 CCO잖아요. PTW라는 회사에서 나가는 모든 컨텐츠는 오빠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하고요.

그러니까 애당초 이건 오빠가 결정해야 할 운명이었던 거죠.

도망치지 말고 결정하세요.

‘We Are’인지, 아니면 ‘All Yours’인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상혁은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회의실에 모인 모든 멤버는, 그런 상혁의 결정을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상혁이 어떤 결정을 내리던, 그 결정을 따르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마침내 상혁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그런 모두의 기대를 단숨에 무너트리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나는···.”

상혁이 말했다.

“난 둘다 아니라고 생각해.”

“예?!!?!?”

민준을 제외한, 회의실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상혁에게 외치자, 상혁은 덤덤한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에 대해 밝혔다.

“지수가 말한 대로, 이 두 영상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아이덴티티는 확실히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유저들에게 크리티컬하게 매력적인 요소들이야.

그리고 난 그 중 어느 하나라도 배제되길 원하지 않고.

이 두 영상을 만들기 위하여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을 지수와 개발1팀 팀원들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난 지금의 두 영상보다 더 매력적인 시퀀스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그 말은···.”

“네가 이해한 것이 맞아.”

진지한 목소리로, 상혁이 지수에게 말했다.

“갈아엎자.”

그것은 회귀 이후로, 상혁의 입에서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그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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