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 차세대 전투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는 전 세계에 있는 미군 기지 중에서도 가장 적은 사람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군사기지가 존재한다.
AREA 51.
다른 이름으로는 ‘외계인 고문장’이나 ‘UFO 연구소’라 불리는 그곳은, 실제로는 위성이나 항공 사진을 통해서도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미 공군의 극비 프로젝트들을 연구하는 곳이었다.
그곳의 존재에 대해서는 꽤나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미 정부가 AREA 51의 실체를 인정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2013년 CIA의 355페이지짜리 기밀문서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미 정부에선 AREA 51의 존재조차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실제 AREA 51의 존재를 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후에도, AREA 51의 삼엄한 보안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촬영 불가, 접근 불가, 출입 불가, 취재 불가, 비행 불가.
근처 사막에서 카메라만 들고 다녀도 무장한 경비원이 다가와 경고할 정도로 삼엄한 경비를 유지하고 있는 AREA 51은, 역설적으로 그 삼엄한 보안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게 되는 특이한 운명을 지닌 기지였다.
비록 냉전이 끝난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꽤 멀어져 있긴 했지만.
그리고 지금.
도람푸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와 미국 정부 간의 협약을 발표한 지 정확히 두 달이 지난 시기에, 그 ‘AREA 51’에서 한 무리의 군인들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시작되려 하기에 자신들을 이 비밀기지로 부른 것인지, 도저히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표정을 하면서.
그들은 상혁이 요구한 대로, 특수부대 소속이 아닌 일반 미 육군 부대 소속 중에서 가장 피지컬이 우수한 사람들만을 모아 만든 ‘예비 정예 병력’이었다.
“OK Listen Up!(좋아, 주목!)”
그 순간, 브리핑 룸으로 한 군인이 들어오며 소리치자 방 안의 병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절도있는 모습으로 정면을 향해 차려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방 안에 들어온 군인이 조용히 방안을 한번 둘러보고는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난 너희들의 훈련을 돕기 위해 파견 온 네이비실 소속 존 로스 대위다.
아마도 너희들 모두 내 얼굴을 알고 있겠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할 인원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너희 전부를 내가 뽑았으니까.”
마치 ‘너희들은 당연히 내 얼굴을 기억할 거다’라고 말하는 로스 대위의 말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그가 선발 과정에 참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이 한번 보면 잊어버리지 못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는 얼굴에 새겨진 커다란 흉터와 하얗게 물든 왼쪽 눈으로 꿈에 나올까 두려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들 자리에 앉도록.”
로스 대위가 말하자 병사들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대위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오늘 이곳에 모인 이유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들 알다시피 이 AREA 51은 민간인은 물론 군인 중에서도 매우 극소수의 인원만이 출입 가능한 지역이다.
아마 미국 국민의 99.99%는 이 땅의 근처도 밟아보지 못하겠지.
그리고 이곳이 그토록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 미군의 극비 프로젝트들을 연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외계인을 고문하는 곳이 아니라.
그러니 너희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왜 너희들이 뽑힌 것인지. 어째서 이런 용도로 육성된 별도의 특수부대를 쓰지 않는 건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마 잠시 후에 들어올 민간인이 나 대신 설명을 해줄 것이다.
그러니 이어지는 브리핑에선, 절대 눈 하나 깜짝하지 말고 모든 내용을 집중해서 듣도록.
어쩌면 이번 훈련은, 너희들의 인생을 바꿀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병사들은 문 저편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병사들은 모두가 머릿속으로 한 가지 의문을 떠올리고 있었다.
대체 AREA 51에, 그것도 민간인까지 불러서 미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프로젝트가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리고 등장하는 ‘민간인’을 보는 순간, 그들은 이번 프로젝트가 어떤 프로젝트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브리핑 룸의 문을 열고 등장한 민간인.
그의 정체는 최근 미군과의 합작 프로젝트로 미 전역을 시끄럽게 뒤집어 놓았던 대한민국 게임 개발사의 CCO, 이상혁이였기 때문에.
“안녕하세요. ‘민간인’ 이상혁입니다.”
상혁은 병사들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로스 대위에게 말했다.
“다들 체격이 좋아 보이네요?”
“말씀하신 조건에 맞췄습니다. 아마도 피지컬만 따지면 네이비실에 밀리지 않을 겁니다.
정신력이나 전투 경험은 비교할 수 없겠지만.”
“괜찮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바로 그 부분을 커버하기 위한 프로젝트이니까요.
그럼 예정된 공개 행사까지의 시간이 촉박하니, 바로 브리핑을 시작해도 될까요?”
상혁의 말에 로스 대위가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물러서자, 상혁은 방 전면에 있는 스크린의 왼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
“다들 2달 전 미국을 뒤집었던 뉴스를 기억하실 겁니다.
대한민국의 게임회사 PTW와, 미국의 DARPA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뉴스를요.
오늘 여러분을 이곳에 모은 이유는, 그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테스트해줄 군인이 필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중앙에 있는 스크린에 DARPA의 로고와 PTW의 로고가 출력되었다.
“게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올해 8월 15일에 있었던 3차 NE 컨벤션에서 PTW는 ‘딥 다이버’라는 AR과 VR 겸용 장비를 발표했습니다.
저희는 순수하게 게임을 위한 목적으로 이 장비를 개발했지만, DARPA에서는 이 장비가 가진 군사적 포텐셜에 관심이 있었죠.
그래서 3달 전, 그러니까 9월 말쯤에 DARPA측에서는 저희 PTW에 하나의 제안을 던졌습니다.
그것은 DARPA에서 추진 중인 슈퍼 솔져 프로젝트에, PTW가 참여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러자 화면이 전환되며 딥 다이버의 디자인이 화면에 출력되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상혁의 설명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태를 바꿔가며 점점 다른 형태의 장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DARPA와 PTW간에 이루어진 구체적인 거래 내역은 극비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알려드릴 순 없지만, 저희는 그 거래를 받아들였고, 원래 게임용으로 개발된 딥 다이버를 전투용 개인 장비로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량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외피는 방탄 소재인 케블라 외피로 변경되었고, 눈앞에 있는 고글의 재질도 방탄 소재의 유리로 바뀌었습니다.
게다가 원래부터 가격대비 고성능이었던 장비의 성능도, 공급 단가를 늘리게 되면서 좀 더 강화되었죠.
원래 딥 다이버의 생산 원가는 1000달러 수준이었지만, 신형 장비는 3000달러 수준의 부속을 장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개조 과정에서 딥 다이버를 어떤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내열, 내한, 난연 성능을 강화하고 방수 처리를 하였으며 착용감을 개선하고 내구성을 강화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미군의 신형 전투 장비, ‘워 다이버’입니다.”
그것은 귀를 덮는 형태의 통신 헬멧처럼 보이지만, 눈앞에 유리 고글이 위치한 특이한 형태를 가진 장비였다.
그러나 그 특이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군용이구나’라는 느낌을 팍팍 전달하는, 소위 말하는 ‘택티컬’한 디자인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저희는 전신 체감형 VR 장비의 개발도 진행하고 있었죠.
물리 구현 장비(physical realization device)라는, 굉장히 사무적인 이름의 장비를요.
저희는 줄여서 PRD라고 불리는 이 장비 역시, 군용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이건 좀 쉬웠는데, 그래도 미군 전체에게 배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워 다이버에 비해서, 이건 훈련용 장비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함께 쓸 수 있는 장비였습니다.
덕분에 가격을 좀 더 올릴 수 있었죠.
물론 덕분에 대당 가격이 10억이 넘어가게 생기긴 했지만, 뭐 그래 봐야 F22 한 대 가격이면 370대를 사서 뿌릴 수 있는 수준이니까, 문제는 되지 않을 겁니다.
아무튼, PRD가 전투용으로 개조되는 과정에서 추가된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모터의 반응 속도가 총탄에 피격당했을 때의 신체적 피드백을 전달할 수 있는 수준으로 향상되었고, 부상 상태에서의 신체적 데미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슈트에 압력 파츠가 추가되었죠.
이건 슈츠 내부에 있는 수천 개의 ‘버블’이라 불리는 에어 포켓에 바람을 불어넣어 사람의 몸에 압력을 전달합니다.
그와 더불어서, 총을 맞은 자리에 적당한 세기의 전기적 충격을 전달함으로써 지속적인 통증을 구현하죠.
저희는 이 개조를 통해, PRD가 실제로 총 맞은 것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체에 부상을 남기지 않는 수준에서 최대한의 데미지를 전달할 수 있게 개조했습니다.
원래 PRD에는 부상 부위에 따라 강제적으로 신체 행동에 제약을 주는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저희가 한 것은, 거기에 통증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여러 장치를 추가한 거고요.
이 모든 개조의 목적은, 여러분이 전투현장에 가지 않고서도 완벽한 VR 환경에서 전투 경험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겁니다.”
조금 전, 워 다이버를 소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화면에 띄워진 PRD의 모습이 천천히 다른 무언가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완성된 물건의 모습은, PRD의 두 배 크기쯤 되는 거대한 장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희는 이 장비를 전투 구현 장비(Combat realization device), 통칭 CRD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궁금해하는 것은 장비의 스펙이 아니라, 장비의 목적이겠죠.
지금부터 저는 여러분께 그것을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존 로스 대위가 소리쳤다.
“왼쪽 벽에 보면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박스가 있을 것이다.
그 안에 있는 워 다이버를 착용하고 각자 자리에 앉도록!”
로스 대위의 지시대로 병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왼쪽 벽에 쌓여있는 종이상자를 열었다.
그리고는 그 안에 있는 워 다이버를 꺼내 머리에 쓰고 자리에 앉았다.
상혁은 미소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마지막 병사가 자리에 앉자 다시 입을 열었다.
“무게가 꽤 무거울 겁니다. 통상의 방탄 헬멧 무게가 1.1kg 정도 하는데, 이건 장비 무게만 2.5kg이니까요.
뭐, 그래도 아예 착용하지 못하는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애당초 러시아군에서 쓰던 STSh-81 SFERA 헬멧도 2.5kg이었고, К6-3 헬멧은 3.6kg이었으니까.
단지 그 헬멧들은 방탄 성능을 위해 무게가 올라갔지만, 이건 무게는 늘었는데 방탄 성능은 종전의 방탄모와 비슷한 수준이죠.
사실 더 안 좋은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터리팩이 있는 정수리 쪽을 관통당하면 불이 붙는 문제가 있는데, 그쪽은 애당초 총알이 맞으면 빗겨 나가는 각도로 잡혀 있어서 큰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 판단합니다.
고개를 90도로 숙이고 정수리로 총알을 막으려 하지 않는 이상은 아마 99% 안전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튼, 여러분께 워 다이버를 시연시켜드리기 전에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혹시 여기 3차 NE 컨벤션 영상을 보신 분 계신가요?”
상혁의 질문에 절반 정도의 병사가 손을 들었다.
그것을 보며 상혁은 EOD의 발매 이후 PTW가 미군 내에서 가지는 인지도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게임에는 별 관심 없을 것처럼 보이는 병사들조차, 드문드문 손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상혁은 마음속으로 살짝 감사를 표하며 그들에게 물었다.
“그때, 그러니까 딥 다이버의 최초 공개 때, 진행자가 했던 행동을 기억하시나요?”
“손가락을 튕기니 세상이 변했죠.”
“예. 맞습니다. 그때의 행사에선, 딥 다이버를 배포한 가이드가 손가락을 튕기면 딥 다이버가 기동 되면서 착용한 유저의 시야를 변경하도록 세팅이 되어있었죠.
일부러 허술하게 만든 내부 세트가, 딥 다이버의 AR 보정을 받아서 완전히 완성되어있는 우주 전함의 내부로 변하는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서요.
오늘 제가 여러분께 보여드릴 경험도 비슷한 경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때의 PTW가 유저들을 우주 전함 안으로 데려갔다면, 오늘 저는 다른 곳으로 여러분을 데려가려고 한다는 것만 다를 뿐이죠.”
그렇게 말한 상혁은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려 ‘딱’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그 순간, 워 다이버를 착용한 모든 병사들은, 자신의 몸이 거대한 감옥의 중앙 복도로 순간 이동한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알카트라즈 교도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Alcatraz Prison.).
이곳은 영화 ‘더 록’의 고향이자 누구도 탈출한 적이 없다는 최고 등급 교도소였고, 지금은 관광지로 변해버린 천혜의 요새죠.
그리고 여러분이 앞으로 한 달간, PTW가 구현한 수많은 미군 특수부대들을 상대로 하루 3~4번씩, 총 100번의 격렬한 방어전을 치를 가상 공간이기도 합니다.”
충격에 빠진 병사들의 귓가에 상혁이 다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그들은 순식간에 AREA 51구역에 있는 브리핑 룸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에는, 여전히 미소를 지은 상태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상혁이 서 있었다.
“일단 여러분이 한 달간 지내실 곳에 대해 보여드렸으니, 나머지는 CRD를 사용한 가상 투어로 진행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지금부터 그 공간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테니까요.
그럼 존 로스 대위님의 통제를 따라 테스트 쳄버로 이동 부탁드립니다.”
상혁이 말을 끝내자 로스 대위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전원 워 다이버를 착용한 상태로 날 따라오도록!”
그리고 그들은, 잠시 후 스크린으로 보았던 거대한 CRD 30대가 나란히 늘어서 있는 거대한 테스트 룸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
“나머지 설명은 내부 투어를 하면서 진행하죠.”
상혁은 병사들과 똑같이 워 다이버를 착용하고 CRD에 탑승한 뒤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병사들은 서 있는 자세 그대로 상혁과 함께 가상의 알카트라즈로 이동하게 되었다.
상혁은 그 안에서, 마치 진짜 알카트라즈를 걷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앞장서 걸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CRD를 사용하면, 기본적으로 현실과 거의 흡사한 경험을 가상 공간을 통해 체험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제자리에서 걸으면서도, 완벽하게 가상 공간에서 걷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거죠.
여러분은 이 가상의 알카트라즈에서, 벽을 만지고 총을 쏘며 물건을 넘어트려 엄폐물을 만들고 문에 못을 박아 통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의무실에서 붕대를 찾아 상처 부위에 감을 수도 있고 코너에서 깨진 유리를 이용하여 상대의 위치를 파악할 수도 있죠.
여기 있는 모든 물건은 만지고, 부수고, 위치를 바꾸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모든 물체가 고유의 무게와 재질에 따른 강성, 고유의 소리를 가지고 있죠.
무거운 철제 캐비닛을 옮기려 한다면 그에 맞는 큰 소리가 날 것이고, 깨진 유리를 밟으면 유리가 으스러지면서 나는 소리가 날 겁니다.
그리고 총을 맞으면, 실제로 총을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맞은 부위의 움직임이 통제되는 경험을 하게 되겠죠.
물론 그렇다고 다치게 되는 건 아니지만, 전투의 리얼함을 살리기엔 충분한 아픔일 겁니다.”
그러자 상혁을 따라가던 한 병사가 손을 들며 질문했다.
“가상 공간에서 총에 맞아 죽게 되는 경우는 어떻게 됩니까?”
“그 경우는 즉시 통증 피드백이 중지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됩니다.
시뮬레이션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공격에 대해, 시뮬레이터는 그 모든 데미지를 계산하고 적합한 피드백을 전달하죠.
만약 피격당하는 병사가 해당 공격으로 인해 사망에 준하는 데미지를 받게 되리라 판단 되면, 시뮬레이터는 피드백을 중단하고 해당 병사의 접속을 해제합니다.
그리고 해당 병사의 피격 모션은 AI가 수행하게 되죠.
그러니 게임 같은 느낌으로 총에 맞으면 빛나는 가루가 되어서 흩날린다든가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총에 맞은 유저 본인은 현실로 나오게 되지만, 그 유저의 캐릭터는 가상 공간에서 총에 맞아 죽게 되니까요.
저희는 그 ‘가상의 사망’을 구현하는데 꽤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총탄이 경동맥을 스쳐서 피가 분수처럼 품어져 나온다던가, 아니면 50구경 대물 저격 총에 머리를 맞아서 머리가 통째로 날아간다든가 하는 그래픽 연출 같은데요.
솔직히 PTSD 생겨도 할 말 없을 정도의 구현도긴 한데, 어차피 이건 게임이 아니라 훈련용 시뮬레이터니까 별문제는 되지 않겠죠?”
“그러니까 시각적이나 청각적으로는 거의 현실과 똑같다고 받아들여도 될까요?”
“PRD라면 그렇겠지만 CRD는 조금 다릅니다.
이건 화학적 디퓨저도 추가되어있거든요.”
“그게 뭡니까?”
“바로 이런 거죠.”
상혁이 손가락을 튕기자, 주변의 냄새가 바뀌었다.
아니, 냄새가 바뀌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 경험을 하고 있는 병사들에게는, 단순히 냄새가 아니라 ‘공기’ 그 자체가 변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AREA 51이 위치한 지역은 사막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사막 지역에는 사막 특유의 건조한 모래 냄새가 나게 마련이었다.
혀를 내밀면 텁텁하게 느껴질 것 같은, 흙 맛이 느껴지는 것 같은 건조한 냄새가.
그러나 지금 병사들이 맡은 공기는 그런 사막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샌프란시스코 앞바다 한가운데 있는 알카트라즈의 냄새.
약간 습한 듯한 바다 비린내와 함께, 오래된 콘트리트 건물 특유의 퀴퀴한 곰 내가 함께 느껴지는 바로 그 냄새였다.
“CRD에 탑재된 전자식 디퓨저는 해당 현장의 냄새를 실감 나게 재현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고정된 냄새가 아니라 변화하는 전장의 냄새 그 자체를 구현하죠.
여러분이 이 가상 공간에서 총을 쏘면, CRD는 여러분의 코에 화약 냄새를 쏴 줄 겁니다.
여러분의 동료가 피를 분수처럼 품으며 쓰러진다면, CRD는 여러분에게 비릿한 피비린내를 맡게 해 줄 거고요.
그리고 그 향기는 방향성을 가지고 구현됩니다.
조금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냄새가 나는 방향을 따라 다친 적을 추적할 수 있을 정도죠.
현재의 CRD로 구현하지 못하는 오감은, 미각과 촉각뿐입니다.”
“나머지는 현실과 완전히 동일하다는 뜻입니까?”
“저는 90%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완벽할 순 없으니까요.”
“가상 현실로 이런 게 가능하다니···.”
“근데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이건 군용이니까 이 정도로 현실성을 높일 수 있었던 겁니다.
애당초 이 모든 피드백에 대한 막대한 연산을 처리하기 위해서, 현재 미국에 있는 PTW의 렌더링 센터가 전력으로 연산을 수행하고 있죠.
겨우 30명의 훈련을 위한 컴퓨팅 성능으로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연산 지원이 지금 이 시각에도 실시간으로 수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밟고 있는 땅바닥 하나하나, 여러분이 맡은 냄새 하나하나가 전부 최상위급 슈퍼컴퓨터 이상의 연산 능력을 동원해서 구현한 거니까요.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여러분은 말 그대로 지금 이 순간 전기 잡아먹는 괴물이 된 거죠.”
“그렇게까지 해서, 저희에게 뭘 시키시려는 거죠?”
“아까도 말했지만, 여러분은 이곳에서 총 100회의 전투를 수행하게 될 겁니다.
이곳, 영화 ‘더 록’의 배경이 된 장소인 알카트라즈에서, 영화 속 게릴라와 똑같이 VX 생화학 로켓을 지키는 역할로 이곳을 지키게 되는 거죠.
그리고 저희 PTW에서 각 군의 최 정예 특수부대의 자문을 받아 구현한 AI들과 싸우게 될 겁니다.
특수 화기 전술 조(Special Weapons and Tactics; S.W.A.T.)부터 그린베레, 델타포스, 75 레인저 연대, 미 육군 특전단(SFG) 요원까지, 미국이 자랑하는 최정예 요원들의 침투 방식과 공격 루트, 전투 기술을 갖춘 AI가 여러분을 공격하겠죠.
여러분은 이 가상의 알카트라즈에서 방어 진지를 갖추고 그 AI들을 상대로 싸우시면 됩니다.”
상혁의 말을 들은 병사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가상의 AI라지만, 상혁이 언급한 부대들은 전 세계 최고의 실력을 지닌 최강의 부대들이었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이 제로인 승부였기에, 병사 중 한명이 상혁에게 물었다.
“혹시 AI의 전투력이 실제 병사들보다 약한가요?”
“아뇨? 실제 AI끼리 벌어진 전투에서, 자문에 참여한 특수부대 요원들 전부가 AI의 상황 판단들을 보고 자신들도 그 상황이면 정확하게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확인해주었습니다.”
“그럼 게임처럼 저희 측의 체력이나 방어력이 향상하는 보너스 같은 게 있습니까?”
“그렇게 버프를 줄 거면 처음부터 체력이 좋은 여러분을 뽑지 않았겠죠.
여러분. 여기서 벌어지는 건 어디까지나 훈련일 뿐입니다.
1달 후에 벌어질 최종 시연은, 이렇게 워 다이버와 CRD를 통해서 훈련받은 여러분이 실제 알카트라즈에서 마일즈 장비를 가지고 네이비실 요원들을 상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거고요.
그건 가상 공간에서의 훈련이 아닙니다. 실전이죠.”
“저희가 한 달 후에 네이비실 요원들하고 실제로 싸운다고요?! 그것도 현실의 알카트라즈에서!?”
경악하는 병사의 외침을 들은 상혁은 태연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아니면 훈련은 뭣 하려 하겠어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입니다! 저희는 일반 보병이란 말입니다!
아무리 최신 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훈련한다고 해도, 네이비실 같은 최정예 특수부대와 싸워서 이길 리가 없지 않습니까?!”
“통상적으로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시죠.
그 네이비실 요원들은, 작전 당일까지 이번 훈련 장소가 알카트라즈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당일 바로 도면만 보고 작전 지역에 투입돼야 하는 상황인 거죠.
반면에 여러분은 알카트라즈의 창문 하나, 돌멩이 하나까지 완벽하게 파악한 상태에서 작전에 투입될 겁니다.
그것도 미군 최정예 특수부대‘들’이, 작전에 들어갈 때 어떤 경로로 침투하고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수십 번 넘는 싸움을 통해 파악하고 복기한 상태로요.
혹시 현대전의 가장 큰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뭐죠?”
“아무리 최정예 요원이라도, 급소에 총 맞으면 공평하게 다 뒤진다는 겁니다.
네이비실이 쏘는 총알이라고 더 아프게 나가는 게 아니고, 여러분이 쏘는 총알이라고 더 덜 아프게 나가는 게 아니란 말이죠.
결국, 유리한 위치에서 적이 언제 오는지 알고 있으면 일반 병사라도 특수 부대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총을 통해 발생하는 물리적인 데미지는 서로 같으니까요.
게다가, 같은 장소에서 100번의 전투 경험을 쌓는 것은 웬만한 특수부대도 하지 못 하는 일입니다.
적어도 알카트라즈라는 공간에 한정한다면, 여러분은 100번의 전투를 거친 괴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도 현실과 완벽하게 똑같이 구현된 가상 전장에서 100번의 싸움을 거친 괴물이죠.
게다가, 여러분에게는 네이비실에는 없는 매우 큰 메리트가 하나 더 제공되었습니다.
이 전투의 승패를 뒤집을, 압도적인 성능의 전투 장비가요.”
병사는 상혁이 ‘제공될 것이다’가 아닌, ‘제공되었다’라고 말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제공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제공될 것이다가 아니라요?”
“예.”
“그게 네이비실 특수요원들을 잡을 수 있는 강력한 장비고요?”
“그렇죠.”
“저흰 그런 걸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만?”
그러자 상혁은 질문을 던진 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뭘 받긴요. 지금도 머리에 쓰고 있는 그걸 받으셨잖아요.”
“그거라면, 워 다이버 말씀입니까?”
“예.”
“이건 훈련용 장비가 아닌가요?”
“단순히 훈련용 장비였다면, 저희가 굳이 내구성과 방탄 성능 개선에 그토록 애쓸 필요가 없었겠죠.
워 다이버는 훈련 보조 기능이 갖춰진 전투 지원 장비입니다.
이건 인간의 오감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초감각을 착용자에게 선사하는 장비죠.
여러분은 이 워 다이버를 착용한 상태로, 알카트라즈에서 네이비실을 상대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한 상혁은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아마도 오늘 손가락을 튕기는 건 이게 마지막이 될 것 같군요.
잘 보세요. 미군이 병사들을 위해 제공하려 하는 ‘차세대 전투’가 무엇인지.
지금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상혁은 손가락을 힘차게 튕겼다.
그러자 그 순간, 워 다이버는 착용한 병사들의 눈앞에 자신이 가진 모든 잠재력을 아낌없이 풀어놓았다.
‘X친 이게 뭐야!? 진짜로 전투 중에 이 모든 정보를 보면서 싸우는 거라고?’
워 다이버가 병사들에게 보여준 ‘전투 시야(Combat Vision).’
그것은 그것을 본 ‘일반’ 병사들로 하여금 이 정도면 ‘네이비실’하고 싸워도 자신들이 이기겠다고 확신하게 만들, 괴물 같은 성능을 지닌 물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