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8. 일석삼조
상혁은 자신을 찾아온 외교부 직원들에게 ‘어딜 오라 가라야 바쁘면 지가 직접 오라 그래.’를 시전하지는 않았다.
단지 김준영 장관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는 외교부 직원들의 말을 듣고는, 조용히 가방을 챙긴 뒤 현주와 함께 그들의 뒤를 따랐을 뿐이었다.
매우 ‘협조적인’ 태도로.
게다가 상혁은 부실에 있는 멤버들이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려 자료 파기를 할 수 없게 하기 위한 외교부 직원의 감시 여부에도 순순히 동의했다.
“의미는 없겠지만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시죠.”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PTW 본사를 나선 상혁과 현주는 이윽고 자신들을 태우러 나온 외교부 차량을 타고 종로구 사직로에 있는 외교부 건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김준영 장관을 만날 수 있었다.
“외교부 장관 김준영입니다.”
“PTW의 CCO 이상혁입니다. 여기 계신 여성분이 저희 회사 CEO인 이현주 씨고요.”
“두 분에 관한 이야기는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죠. 일단 앉으시죠.”
중앙에 있는 소파로 두 사람을 안내한 준영은 손수 믹스 커피를 타서 두 사람에게 건네고는 자신도 종이컵에 커피를 타서 건너편에 앉았다.
그러자 상혁은 자신의 앞에 놓인 작은 종이컵을 집어 들고 준영을 향해 말했다.
“그래도 그쪽에서 불러서 온 손님인데 믹스 커피라뇨.”
“제가 좋아합니다. 그리고 커피값도 소중한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거니까요.
물론 볼품없어 보인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장관이 직접 손으로 탄 커피라면 희소가치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상혁은 대답 대신 종이컵에 든 커피를 홀짝였다.
그리고는 준영을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맛있네요.”
“적절한 물의 비율이 비결이죠.”
“그래서,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일개 게임 회사의 임원인 저희를 부른 이유는 뭡니까?
임원실에 외교부 직원까지 상주시키면서요.
일단은 저희도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해 드리긴 했지만, 저희에게 그럴 의무가 없다는 건 잘 아실 텐데요?”
“저희 측 요구에 협조해 주신 것에 대해서는 먼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희도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죠. 일단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이번 안건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였으니까요.”
“국가 안보라···.”
상혁이 준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외교부에서는 PTW가 미국 정부와 모종의 거래를 하려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다른 짐작 가는 이유도 많을 텐데 가장 먼저 그것에 대해 언급하시는 건, 저희의 추론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로 보아도 될까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실 작정이시죠?”
상혁의 질문을 들은 준영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상혁을 보며 말했다.
“최근에 도람푸 대통령이 한국 측에 기존에 내던 방위 분담금의 10배를 요구한 건 알고 계시죠?”
“저도 뉴스는 보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저희 외교부에서는 그 요구의 이면에 PTW에서 개발한 군사용 기술이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방위 분담금 협상에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카드가 될 거로 생각하고 있고요.”
“만약 그런게 존재한다고 가정한다고 쳐도, 그건 저희가 만든 기술인데, 왜 대한민국 정부가 숟가락을 얹겠다는 겁니까?”
“상혁 씨. 대한민국은 전쟁 중인 국가입니다.
그리고 미군에게 있어서 그토록 가치 있는 기술이라면, 대한민국 군대에게도 가치 있는 기술이겠죠.
전쟁 중인 국가에서 그런 귀중한 기술이 해외에 유출되지 않도록 막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거야 그쪽 생각이죠.”
“협조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까?”
“가정이니까요. 편하게 이야기해 보자는 겁니다.”
“좋습니다. 먼저 말씀드리지만, 현행 ‘대외무역법’은 국가 안보를 전략물자 수출 관리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지정 권한은 대통령령으로 결정할 수 있고요.
그러니 PTW에서 만든 기술이 무엇이든 간에, 저희는 합법적으로 그 기술에 대한 수출 관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협박입니까?”
“가정입니다.
‘그렇게 할 수도 있다’라는 의미지, 그렇게 하겠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 가정은 모두 ‘PTW에서 만든 군사 기술’이 PTW에 존재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애당초 저희가 그런 물건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수출 관리를 걸 수 있는 ‘대상’이 없어질 테니까요.
그게 기술이든, 물건이든 말이죠.”
“하지만 실제로 PTW라는 회사에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은 할 수 있겠죠.”
“아뇨,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때, 상혁의 옆에 있던 현주가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단순한 정황 증거만 가지고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PTW 서버 내부에 들어있는 자료들은 전부 최고 등급의 보안 체계 안에서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 데이터를 외부인이 확인하는 일은, 지금까지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없을 거고요.”
“지금 대한민국 정부에 그정도 권한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유나 방법은 만들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준영의 협박에도 현주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대한민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제 소송에 휘말리게 되겠죠.”
“국제 소송이요?”
“PTW 서버 내부에서 관리하는 데이터엔 글로벌 기업과 계약으로 묶여있는 데이터들도 있습니다.
저희가 테슬러와 체결한 레벨5 자율 주행 기술 수출에 대한 계약을 모르시지는 않겠죠?
게다가 MS에서 생산 및 배포 중인 코넥트의 데이터, 그리고 SANY가 생산과 배포를 맡은 딥 다이버에 대한 데이터, 해당 장비의 관련 어플리케이션 최적화를 위한 STC의 데이터도 PTW 서버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어느 하나라도 중간에 유출되었을 경우 협력사에 치명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데이터들이죠.
PTW의 핵심 자산들이기도 하고요.
설사 상대가 대한민국 정부라고 해도, 그런 기업의 핵심 자료들을 단지 정황 증거만을 가지고 내놓으라고 할 권리는 없습니다.
만약 무리하게 PTW에 대한 압수수색을 신청한다면, 저희는 협력사를 통해서 해당 자료가 가진 잠재 가치에 대해 보상해달라는 국제 소송을 제기할 겁니다.”
“절대 내부 자료는 보여줄 수 없다, 이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그게 국가 안보에 관련된 사항이라고 해도 말이죠?”
“예.”
“저희는 대한민국의 국정을 운영하는 행정부입니다.
PTW가 앞으로 진행하시려는 사업에 빛을 드리워드릴 수도, 반대로 그림자를 드리워드릴 수도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죠.”
그렇게 말하며, 준영은 현주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현주가 흔들림 없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결국은 양손을 펼쳐 보이며 백기를 들었다.
현주가 말한 협력사를 통한 국제 소송.
그것은 ‘있을지도 모르는’ 물건의 확인을 위해 감수하기엔 너무나 큰 부담이었기 때문에.
“좋습니다. 사실 맞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유 시장 경제를 표방하는 정부에서 아무리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도 그 정도 리스크를 질 수는 없죠.
그러니 PTW에 대한 내부 서버 조사는 깔끔하게 포기하겠습니다.”
“좋은 판단입니다.”
“다만 눈앞에 닥친 문제에 대한 협조를 구하고 싶습니다.
위력에 의한 압력 행사가 아니라, 순수하게 대한민국 정부를 도와달라는 의미로요.”
“강제가 아닌 호의를 요구하시겠다는 겁니까?”
“애당초 오늘 만남의 목적이 그것이었으니까요.
사실, 진짜 목적은 대화를 통해 쓸만한 증거를 잡아 그것을 기반으로 PTW 내부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를 얻어낼 생각이었지만, 모든 대화가 가정하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이니 그건 불가능할 것 같군요.
그러니 이번엔 다른 방법을 쓰겠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인상안을 주장하며 대한민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죠.
여기서부터는 가정입니다. 저희는 그 인상분 대신 미국 정부가 원할만한 기술을, 대한민국의 한 게임 회사가 가지고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런 회사를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이번엔 상혁이 그의 질문에 답했다.
“글쎄요. 게임 회사에서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죠.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이 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녹음부터 중단하시는 게 어떨까요? 슬슬 화가 나려고 하거든요.”
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밑에서 녹음기를 꺼내 상혁에게 건네주었다.
상혁이 직접 안의 데이터를 삭제할 수 있도록.
그리고는 방 안에 있는 CCTV를 향해 외쳤다.
“영상 녹화도 중단하게.”
그렇게, 모든 녹화 행위를 중단한 준영이 상혁을 보며 사과했다.
“먼저 사과드리겠습니다. 워낙 급박한 사항이라서 욕심이 좀 과했군요.”
“안보와 관련된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예민하게 구는 건 일반적인 일이니 이해하겠습니다.”
“이제 이 방에서 이어지는 대화는 저와 두 분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저희가 추가로 녹화를 몰래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건 증거물로서의 가치가 없는 데이터가 되겠죠.
그러니 편하게 묻겠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데이터를, PTW에서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자 상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있었죠.”
“있었다는 과거형인데요?”
“말 그대로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가져오기도 했고요.”
상혁은 PTW에서 가져온 가방을 준영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안을 열어본 준영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상혁을 향해 물었다.
“이게 뭡니까?”
“가루가 된 하드디스크는 처음 보시나 보군요.”
“그러니까, 이 가루 안에 미국에서 요구하는 기술에 대한 데이터가 들어있었다는 겁니까?”
“그게 유일한 원본이자 사본입니다.
확실하게 말씀드리는 거지만, PTW 서버 내부 전체를 뒤져도 관련 자료는 절대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애당초 모든 개발이 철저하게 오프라인 상태에서 제한된 장비를 이용하여 진행되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모든 데이터가 담긴 유일한 디스크는 보시다시피 가루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PTW는, 그런 기술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그런 기술을 보유하고는 있지 않은 상태죠.”
준영은 할 말을 잊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리한 반응이 아니었다.
유일한 협상 카드가 될 거라고 생각한 물건이, 눈앞에서 가루가 되어 있었으니까.
그의 머릿속에 가득한 걱정은, 단지 앞으로 미국 정부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어···.”
“어?”
“어째서 이런 짓을 하신 겁니까? 지금 본인이 한 행동이 무엇인지 알고는 계신 겁니까?”
“그걸 묻기 전에, 본인이 하려던 행동을 되돌아보시죠.
멀쩡하게 가만히 게임 만들고 있던 사람들을 이곳까지 불러서, 허락도 받지 않고 녹취를 시작하고, 수출 관리 운운하며 협박을 한 쪽은 그쪽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 데이터가 우리 쪽에 남아 있었다면, 그것을 근거로 관련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도 있었겠죠.
저희는 그런 위험의 싹을 제거한 것뿐입니다.”
“저희가 어떻게 나올지 알고 계셨다는 겁니까?”
“대한민국 정부는 안보와 관련된 문제로 몇 번이고 국민을 희생시킨 역사가 있으니까요.”
“저희 정부는 다릅니다.”
“정권이 다른 거지, 정부가 다른 건 아닙니다.
대통령이 바뀌면서 공무원 전체가 다 물갈이되기라도 했나요?”
“그건 아니지만···.”
“그럼 그냥 그건 지금까지 있었던 똑같은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정부에게 안보를 이유로 이리저리 휘둘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고요.”
“하지만 지금의 판단으로 인해 대한민국 정부는 막대한 부담을 껴안게 되었습니다.
10배의 분담금이면, 2018년까지 계약이 유지되는 상황이니 2019년부터는 매년 10조 원 이상을 내야하는 상황이 되겠죠.
그리고 그 모든 돈은 국민들의 세금에서 나오게 될 거고요.
상혁 씨가 바라는 것은, 그런 결과인 겁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저희는 게이머에게 친화적인 기업이고, 대한민국 국민 역시 저희의 고객들이니까요.”
“그런데 왜 이런 짓을···.”
“저희가 이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로서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죠?”
“만약 저희가 이 데이터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이걸 가지고 미국 정부와 딜을 하게 허락해 드린다고 가정합니다.
그럼 야당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미국에서 그 정도로 간절히 원하는 군사 기술을, 분담금 조금 줄이겠다고 팔아넘겼다는 비난을 받을 텐데요?
반면에 애당초 그런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비난은 피할 수 있겠죠.
제가 한 행동은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데이터를 파괴한 것이지 대한민국 정부를 돕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도람푸 대통령의 의중도, 대한민국 정부와 척을 지겠다는 것이 아니고요.”
“무슨 의미죠?”
“지금 도람푸 대통령이 요구한 분담금 10배라는 주장은, 순수하게 이번 사태로 인한 모든 어그로를 미국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겁니다.”
준영은 상혁의 말대로 머릿속에서 이후의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시뮬레이션해보았다.
그리고는 머릿속에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고 미소를 지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예.”
“이후에 미 정부는 미국의 안보 증가를 위해 PTW가 가진 특정 기술에 대해 미군과의 공동 개발을 요구할 겁니다. 맞죠?”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준영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군사적인 메리트가 있는 기술일 테니 많은 동맹국, 그리고 적대국인 중국이나 러시아의 많은 비난을 받겠죠.
그리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려 할 겁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로서는, 미국에서 요구하는 분담금을 존재하지 않는 기술의 개발을 허용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핑계를 댈 수 있겠죠.
게다가 그 기술은, 공식적으로는 아직 개발도 되지 않은 기술이기에 아무런 가치를 주장할 수 없을 테고요.
그러니 이 형태는 도람푸 대통령이 한국을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넘기게 되는 상황처럼 보이게 되겠군요.”
“그렇죠.”
“하지만 그것에 대해 비난을 하려고 해도,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왜 넘기냐에 대한 비난을 할 수는 없을 테고요?
비난의 주체가 대한민국 야당이든, 아니면 중국 정부나 러시아 정부든 간에.”
“바로 그겁니다.”
준영은 비로소 모든 퍼즐이 풀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중간에서 일이 ‘이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상혁에 대해 감탄했다.
“천재적이네요. 하지만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럼 애당초 그런 기술을 개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진행해도 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왜 굳이 자료를 만들어서 파기하는 행동을 한 거죠?”
그러자 상혁이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게 얼마나 매력적인 기술인지 눈으로 보지 못했다면, 도람푸 대통령이 지금같이 나서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건 그쪽에서 정치적인 리스크를 모두 안고 가는 행동입니다.
한국 정부야 야당이나 국민들에게 ‘10배의 분담금을 종전 수준으로 깎았습니다’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도람푸 대통령은 해당 기술을 공개하기 전엔 괜히 동맹국에 10배의 방위 분담금을 요구했다가 가능성만 받고 막대한 금액을 깎아준 허당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테니까요.
물론, 완성된 기술이 공개되는 순간 그 모든 비난은 찬사로 바뀌겠죠.
도람푸 대통령이 바라는 것은 바로 그런 그림입니다.”
“win-win이라는 거군요. 그럼 그 거래 과정에서, PTW가 얻게 되는 이득은 뭡니까?
지금 들은 것만으로는, 미국 정부는 기술을, 한국 정부는 분담금 협상 타결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게 되겠지만, PTW가 얻는 것은 없어 보이는데요?”
“아뇨 저희도 얻는 건 있습니다. 저희가 이번 계획의 대가로 얻어내는 건, 저희가 만들려는 기술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니까요.
미국 전역의 연구 기관들과 DARPA, 그리고 미국 국방성에서 저희의 차세대 기술에 대한 연구를 지원할 겁니다.
그리고 그 기술의 상업적 이용 권한은 저희 PTW가 가지게 될 거고요.”
“혹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면 그 기술이 뭔지 물어도 될까요?”
“아뇨. 묻지 마세요. 애당초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기술이니까요.
수십 년을 쏟아붓고도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큰 연구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어째서 그런 연구를 시도하시는 거죠?”
“성공만 한다면,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기술이니까요.”
상혁이 말했다.
“저희 회사가 존재하는 목적이자 유일한 이유는, 세상에 더 나은 게임을 선보이는 것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개발하고 어떤 사건에 얽히든, 저희의 목적은 언제나 똑같죠.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서라면, 저희는 저희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이용할 겁니다.
그건 테슬러가 될 수도, SANY나 MS같은 기업이 될 수도, 때로는 대한민국 정부나 미국 정부가 될 수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애당초 저희는 게임 말고는 아무 관심이 없어요.
이번 일도 순수하게 게임 개발을 위해 추진한 일일 뿐이죠.”
“미국 정부에 군사 기술을 개발해서 넘기는 행위도 말입니까?”
“그것도 그 기술의 정체를 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그건 한국군에게는 하등 쓸모가 없는 기술이니까요.”
“예? 어째서입니까?”
“애당초 그 기술의 목적은 분쟁 지역에서 병사들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입니다.
하지만 한국군은 기본적으로 경계 업무를 수행하는 군대고, 수비 전략을 기본으로 하는 군대죠.
게다가 기술의 가격 자체도 굉장히 비싼 기술이고요.
제가 아는 대한민국 군대는, 침대 하나 바꾸는데 6조원 이상 쓰면서 수통은 아직도 6.25 때 수통이 남아 있는 군대입니다.
심지어 새 수통이 창고에 있는데도 전쟁 때 보급할 거라고 아끼면서 똥 만드는 군대고요.
그런 군대에서, 병사들의 생존율을 올리겠다고 대당 수백만 원짜리 개인 장비를 지급할 것 같습니까?
방탄복은커녕 침낭도 제대로 지급 안 하면서?”
“···틀린 말이 아니라 부정은 못 하겠군요.”
“그러니 이번 건은 그냥 제가 짠 계획대로 따라 주시죠.
애당초 한국 정부에서 필사적으로 지켜봤자 의미도 없는 기술이니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제 2019년부터 새 방위비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걸 조건으로 10년간 동결도 추진할 수 있지 않겠어요?
지금의 도람푸 대통령이라면, 그 조건도 쉽게 받아들일 겁니다.
그리고 그건 순수하게 이번 정부의 공이 되겠죠.”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저희 정부 입장에서도 손해는 전혀 없을 것 같으니까요.
게다가 말씀하신 대로라면 중국 정부에게도 할 말이 있을 것 같고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술을 유출하지 말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테니까.
솔직히 말하면, 감탄이 나오는 전략입니다.
아마 외교부에서 이 그림을 직접 그렸다 하더라도 그 정도 수준으로 그리지는 못했을 것 같네요.
실제로 저희는 PTW가 개발한 기술을 손에 넣어서 미국 정부와 협상을 할 생각만 하고 있었으니까.”
“정말로 그렇게 진행되었다면, 주변국에서 가만있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야당에서도요.”
“맞는 말입니다.”
그렇게 미소짓던 준영은 뭔가가 생각난 듯 상혁에게 물었다.
“혹시 상혁 씨.”
“예.”
“대한민국 정부를 위해서 일해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상혁 씨 정도의 능력자라면, 분명 정부에서도 환영할 텐데요.
게이머 팬들도 엄청나게 보유하고 계시고···.”
그러자 상혁이 마치 바퀴벌레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준영에게 말했다.
“제가요? 정부에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정부와 함께 일하시면 게이머들에게 유리한 정책에 힘을 보태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이번 사태는 순수하게 저희가 미국 정부와 저희에게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움직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겁니다.
저희가 이번 정부를 호의적으로 생각해서 발생시킨 사태가 아니라요. 그러니 선은 넘지 말도록 합시다.”
그렇게 말한 상혁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조만간에, 현 정부와 저희가 대놓고 대립할 일도 생길 거고요.”
“PTW가? 정부와? 어째서죠?”
“그건 때가 되면 아실 겁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아마 저희와 정부는 박 터지게 싸우게 되겠죠.
외교부와는 관련이 없는 사항이 될 테니, 되도록 멀리 피해있는 걸 권장해 드립니다. 어차피 저희가 이길 테니까.”
“혹시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저희 외교부에서 PTW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어떤 사항 관련해서 트러블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서라도 알려주시죠.
상혁 씨의 말 대로 저희가 피하려고 해도, 피할 게 뭔지는 알아야 피하든 말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상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준영을 향해 말했다.
“그 가방은 선물로 드리죠. 나중에 PTW와 정부가 한판 붙게 된다면, 그때 그 가방을 보면서 생각하세요.
저희가 어떤 식으로 싸우는 존재들인지.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현재 정부에서 추진 중인 HTTPS 검열 관련 기술의 원천 특허를, 저희 PTW에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마도 다음 싸움은, 그쪽에서 일어날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한 상혁은 현주와 함께 장관실을 나섰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준영은, 그들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HTTPS 검열?’
그게 어떤 의미인지, 외교부 소속인 그로써는 알기 어려웠기에, 그는 곧 생각하는 것을 관두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오늘 얻어낸 놀라운 성과를 대통령께 보고하는 것이었으니까.
잘 하면 향후 10년 간 방위 분담금 인상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대통령께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를 상상하며, 준영은 기쁜 표정으로 밖을 향해 외쳤다.
“지금 당장 청와대를 연결해! 아니, 차를 준비해! 내가 직접 가서 보고하지!”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이상식 정부에서 얻어낸, 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외교적 과업 ‘1호’가 될 보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