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워 다이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위치한 미 국방성 본청 청사.
그 건물의 특이한 구조 때문에 속칭 ‘오각형(Pentagon)’이라 불리는 건물 회의실에, 한 무리의 정복을 입은 군인들이 몰려 있었다.
누가 보아도 그들이 군대의 높은 사람들임을 한번에 알 수 있을 듯한 무리가.
그리고 그중 한 남자는 상혁도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허밋 브루스.
상혁이 EOD를 개발할 당시 고증을 위해 협력에 참여했던 718 EOD 팀의 중령이었던 그는 EOD의 개발에 협력한 공과 미군 훈련용 EOD의 도입 이후 줄어든 민간인 사상자 비율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별을 달 수 있었다는 것에 기뻐하는 남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승진보다는, 한명이라도 더 많은 미군 병사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기뻐하는 남자였지.
그 덕에 지금은 ‘별’을 달고 회의에 참석한 그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브루스.”
“채드 장군님.”
“오랜만이군. 아프가니스탄은 아직도 여전한가?”
“여전하죠. 물론 EOD를 이용한 훈련 도입 이후에 정말 많은 민간인과 미군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지만, 적과 민간인을 구별할 수 있는 기술이 적 저격수를 막아주지는 않으니까요.
적들은 점점 교활해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아예 무장 저항군도 EOD를 플레이한다고 하더군요.
저희가 쓰는 것 같은 군용 버전은 아니지만, 저희가 주로 무엇을 보고 자신들이 테러리스트인지 판단하는지를 학습해서 대응하겠다는 거죠.”
“효과는 있나?”
“점점 사망자 수가 늘고 있습니다.
분명 훈련 시뮬레이터로 학습한 바에 따르면 99% 민간인이 확실한 데, 기지 안에 들어와서 몸 안에 있는 폭탄을 터트리는 케이스도 생겼고요.
그래서 지금은 새 훈련 프로토콜의 개발에 대해 논의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펜타곤까지 불려온 게 불만이라는 소리처럼 들리는군?”
“뭐, 그렇죠. 무엇보다 이번 회의를 호출한 건 DARPA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해봐야 또 새로운 스마트 폭탄 기술의 소개 같은 거나 할 텐데, 저는 그런 데 관심이 없으니까요.”
“기술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도 있지.”
“전쟁의 승리를 끌어내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병사입니다.”
브루스가 말했다.
“우리의 기술은 우리를 전쟁에서 승리하게 했죠.
그러나 저희가 몰랐던 것은, 전쟁 이후에 있을 또 다른 전쟁에서는 저희가 가진 스마트 폭탄과는 전혀 다른 기술이 필요하다는 거였습니다.
PTW가 만든 EOD 같은 기술이요.
그것도 당시엔 몰래 숨어들려 시도하는 탈레반의 90% 이상을 제거할 수 있을 만한 혁신이었지만, 이제는 낡은 기술이 되어버렸어요.
저는 스마트 폭탄 같은 데 낭비할 예산이 있다면 PTW에게 예산을 주고 EOD의 속편이나 만들라고 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브루스의 상관인 채드 듀란트 장군은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말했다.
“아마 자네를 제외하면, 여기 모인 대부분은 자네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걸세.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네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네를 부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절 아프간에서 본국으로 소환한 것이 장군님이셨습니까?”
“그래. 자네의 예상과는 다르게, 이건 DARPA에서 소집한 미팅이지만 스마트 폭탄 같은 기술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모인 게 아니거든.
사실, 이 모임은 이 안건을 가지고 DARPA가 소집한 두 번째 미팅일세.
그리고 첫 번째 미팅 땐, 자네가 없었지.”
“그 말은 첫 번째 미팅에서 DARPA가 물을 먹었고, 장군님은 그게 마음에 안 들었으며, 그래서 찬성표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거군요.
하지만 약속은 드릴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무작정 내 의견에 찬성해달라고 부른 게 아니라는 건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자네 눈으로 보고 판단하게. 자네라면 100%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자네를 부른 거니까.”
“대체 뭘 만들고 있길래 아프간에서 작전 중인 지휘관을 부른 겁니까?”
브루스의 질문에 채드가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부르스를 향해 말했다.
“미래(Future).”
***
스티브는 주머니에서 위장약을 꺼내 삼키고 손수건으로 이마에서 흘러내리려는 땀을 닦았다.
자신의 계획에 힘을 실어줄 미국 장성들의 소집엔 성공했지만, 이 미팅은 이전에 한 번 소집했다가 이미 실패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스티브는 PTW와의 계약에 필요한 30억 달러의 추가 예산을 요구하기 위해 장군들을 불렀고, 그의 요청을 받아 모인 장군들은 그의 제안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자신들을 설득하려면,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가져오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지금은, PTW에서 만들어 준 그 ‘결과물’이 그의 손에 안겨져 있었다.
‘좋아. 스티브. 넌 할 수 있어.
아니, 성공해야 해.
이건 수많은 미군 병사들의 목숨을 구할 장비라고.’
스티브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결심을 다졌다.
그리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장군님들.”
스티브는 회의실에 들어가자마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는 허리를 피며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전 DARPA에서 슈퍼 솔져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스티브 오스틴이라고 합니다.
여기 계신 대부분의 장군님들께서는 이전에 진행한 회의에서 이미 들으신 내용이겠지만, 오늘 심사에 참여하신 분들도 계시니 간략하게 오늘 미팅의 개요부터 설명하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스티브의 설명은, 이전에 있었던 승인 심사에서 미군 지휘관들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던 이유와, 그 때문에 30억 달러가 아닌 기술 교환을 조건으로 걸기 위해 한국에 방문했던 일.
한국의 PTW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군들의 표정은,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안건’을 대하는 스티브의 태도가, 지나치게 저자세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스티브가 상혁이 말한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자, 결국 한 장군이 참지 못하고 스티브를 향해 외쳤다.
“그만!”
“예?”
“PTW라는 회사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EOD라는 게임을 제작하면서, 미군이 사용하는 훈련용 프로그램을 제작한 회사였죠?”
“맞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게임회사고요.”
“그것도 맞습니다.”
“겨우 한국의 게임회사 따위가 미군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미는 겁니까?
그리고 그걸 다 받아주는 이유가 뭡니까?”
“저희에게 필요한 기술을, 그들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 기술이 날아오는 적들의 총알을 막아주기라도 합니까?”
“아닙니다. 방탄 슈트 제작기술과는 관련이 없으니까요.”
“그럼 병사들이 인간을 초월한 괴물 같은 힘이라도 낼 수 있게 합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인공 근섬유 기술과도 관련 없으니까요.”
“그럼 대체 우린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군 병사들은 아프간에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저희가 DARPA에 요구한 슈퍼 솔져 프로젝트는, 그런 미군 병사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해달라는 의도로 시작된 것이고.
그런데 지금 스티브 씨는 게임회사에서 만든 장난감 따위에 너무 큰 대가를 제공하려 하시는군요.
양자 통신의 완성에 도달하는 모든 기술에 대한 상업적 사용권?
미국 정부의 양자 통신 개발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그 허무맹랑한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서 들어갈 예산이 도대체 얼마나 될지 계산은 해보셨습니까?”
“최소 300억 달러 정도가 들어갈 것으로 추정합니다.
물론 이건 최소 수치고, 그 이상 들어갈 수도 있겠죠.”
“CVN-73 USS 조지 워싱턴 호의 건조 비용이 70억 달러입니다.
지금 스티브씨는 항공모함 4대 가격이 넘는 금액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지난번에 제안하셨던 30억 달러도 금액이 커서 승인 거부되었는데, 그 10배가 넘는 금액이 최소라고 하시면서 그 금액이 통과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우선 금액의 상당수는 미 정부에서 지출하게 되겠지만, 대신 DARPA에서 추진하는 다른 프로젝트처럼 해당 기술에 대해 미국 정부는 그로 인해 개발된 기술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됩니다.
실제로 양자 통신의 상용화를 PTW에서 성공하게 된다면, 저희는 그들이 구축한 회선으로 지구 어느 곳에서나 딜레이 없는 통신망을 사용할 수 있게 되겠죠.
게다가 그 과정에서 PTW에 받아낼 수 있는 딥 다이버 기술은, 전 세계에서 오직 미군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되게 됩니다.
테슬러의 CEO 일린 모스크는 자동차 업계에서 해당 기술의 독점 권한을 얻어내는 대가로 스페이드 X의 지분 절반을 넘겼습니다.
그 지분의 미래 가치는···. 글쎄요. 저는 적어도 300억 달러 이상은 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리고 PTW는 저희에게, 저희가 쓸 수 있는 다른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 함께 참여하면서 자신들도 비용을 대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거고요.”
“일린 모스크가 그 기술의 사용권에 얼마를 지불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술의 가치는 사용하는 사람이 부여하는 것이니까요.
제가 궁금한 것은, DARPA가 그 정도 수준의 예산을 투입하자고 주장하면서까지 그 ‘딥 다이버’라는 기술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입니다.
이전 회의에서도 말했지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그 기술로 인해 미군에게 어떤 이득이 생기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하죠.
‘프로토타입’이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지난번처럼 ‘이런 게 있으면 이런 게 가능합니다.’라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할 거면, 회의를 종료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아마도 이후에 이어지는 회의는 시간 낭비가 될 테니까.”
“사실 저희가 한국에 간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저희가 한국에 가서 하려던 것은, 초기 연구 단계의 양자 통신 기술에 대한 자료를 넘기고 그 대가로 프로토타입 개발에 필요한 PTW의 협조를 구하는 거였죠.
그러나 PTW는 그런 저희에게 아예 자신들이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넘겨주었습니다.
아직 아무 계약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요.
오늘은 그 프로토타입을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기 위해 이렇게 회의를 소집한 겁니다.”
그렇게 말한 스티브는 양손으로 상혁이 건네준 딥 다이버를 들고 회의실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군들을 향해 외쳤다.
“이건, 미군 병사들을 위해 PTW에서 특별 제작한 딥 다이버입니다.”
“일반적인 딥 다이버랑 똑같이 생겼는데, 저게 군용이라고요?”
“외형이야 방탄재질로 바꾼게 아니니 똑같은 게 당연하죠.
하지만 이 안에 들어있는 ‘프로그램’은, 전 세계 유저들이 사용하고 있는 딥 다이버와 근본적으로 다른 물건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오로지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딥 다이버 프로그램. 그것의 결과물이 바로 이것이죠.”
그렇게 말한 스티브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상혁이 그에게 말해준 이 장비의 이름을 모두의 앞에서 공개했다.
“이건 ‘워 다이버(War-Diver)’입니다. 미군의 미래이자, 전쟁의 미래가 될 물건이죠.”
그것은 작전 지역에서의 감시 업무 수행을 위해 개발된 군용 코넥트와, EOD 개발 과정에서 미군의 협조에 대한 보상으로 개발했던 훈련용 EOD에 이어, PTW가 만든 3번째 군사용 프로그램이었다.
***
‘X발 진짜 저게 다 되는 거라고?’
스크린에 나오는 시연 영상을 보면서, 허밋 브루스 장군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전쟁을 다룬 미래 배경의 게임에서나 나올법한 장면이, 그의 앞에 있는 스크린에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에.
상혁이 스티브에게 넘긴 것은, 워 다이버의 프로토타입만이 아니었다.
상혁은 이 프로그램의 개발 목적이 미군을 설득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에 필요한 다른 것도 함께 스티브에게 넘겨주었다.
워 다이버 본체에 꽂혀 있는 작은 USB.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은, 현재 프로토타입 상태인 워 다이버를 전장에 투입했을 때 병사가 받을 수 있는 ‘메리트’에 대한 시연 영상이었다.
[작전 지역에 투입되는 병사들은, 언제나 장거리 저격의 위협을 받습니다.
워 다이버는 작전 수행 내내 주변 지형 데이터를 파악하고, 군사용, 민간용 위성 카메라의 데이터를 수신받아 이동하려는 지역의 저격 위험도를 %로 알려줍니다.
인간과는 다르게, AI는 방심하지 않으며 집중력이 떨어지지도 않죠.
워 다이버를 착용한 병사들은 이동하는 상태에서도 언제든지 워 다이버의 경고 메시지를 받고 긴장을 해야 할 지역과 긴장을 풀어도 되는 지역에 대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워 다이버는 병사가 타겟의 얼굴을 외우지 않아도 되게 해줍니다.
안에 있는 얼굴 인식 알고리즘이 작전 타겟의 용모를 정확하게 판단하여 병사들에게 알려주며, 수백 명의 사람이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지는 상황에서도 정확하게 타겟을 찾아 병사에게 그 위치를 알려줍니다.]
[워 다이버의 핵심기능 중 하나는 작전을 수행한 병사들의 경험을 다른 병사들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워 다이버를 착용한 병사가 작전에 참여했을 때, 워 다이버는 실시간으로 모든 지형과 적 정보를 기록하며 해당 데이터를 VR 시뮬레이터로 변환합니다.
이후에 다른 병사가 워 다이버를 착용한 상태에서 해당 VR 데이터를 사용하면, 그 병사는 작전에 참여한 병사가 투입된 곳과 동일한 형태의 가상 전장에서 작전 수행을 대리 체험할 수 있습니다.]
[워 다이버는 기존의 EOD가 수행하던 ‘적 식별’과정을 AI가 대신하게 해 줍니다.
마치 카지노에 설치된 슈퍼컴퓨터가 고객들의 동공이나 체온, 몸동작을 통해 사기꾼을 가려내는 것처럼, 수집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로 눈앞의 사람이 민간인인지, 아니면 몸 안에 폭탄을 숨기고 있는 테러리스트인지 판단하죠.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기기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여러 곳에 있는 워 다이버의 데이터를 하나로 묶어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는 판단입니다.
일반적으로 적들은 혼자서 움직이지 않고, 반드시 동료와 함께 움직이는 법이니까요.
워 다이버는 안에 달린 수많은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누가 테러리스트인지, 누가 알카에다 병사인지, 그리고 누가 민간인 조력자인지를 판단합니다.
그리고 거기엔 인간이 가지게 되는 편견이나 오해가 존재하지 않죠.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7살짜리 꼬맹이든, 보조 장치가 없으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늙은 노인이든, 워 다이버는 수집한 데이터를 통해 해당 인물이 감시자, 혹은 협력자일 가능성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 알고리즘은, 작전을 수행하면 할수록 전장의 데이터를 모아 학습하고 진화하며 워 다이버를 착용한 병사를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워 다이버는 저격을 옆에서 보조하는 감적수의 역할도 수행합니다.
워 다이버에만 추가된 별도의 센서가 작전 지역의 습도, 온도, 풍향, 풍속들의 정보를 수집하여 저격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제공하죠.
그리고 위성 사진이나 작전 지역의 지도 데이터를 활용하여 저격 이후에 탈출 가능성이 가장 높은 탈출 루트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줍니다.
작전 수행 중 사망률 0%.
그것이 워 다이버가 목표로 하는 진정한 ‘슈퍼 솔져’의 완성이기 때문에.]
상혁은 스티브에게 넘겨준 영상 속의 나레이션을 직접 영어로 더빙했다.
미군을 설득하는 데 필요한, 모든 설명의 대본을 본인이 직접 작성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풀어져 나오는 상혁의 목소리는, 상혁이 가진 특유의 설득력이 더해져 묘한 호소력을 전달해주고 있었다.
마치 PTW가 게이머들에게 게임을 소개할 때, 게이머들이 공통적으로 하게 되는 생각을 듣는이로부터 유도하려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상혁의 의도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영상을 보는 장군들 모두가, 영상을 보면서 상혁이 의도한 ‘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정말로 저런 물건이 있으면 끝내주겠다.’
그것은 마치 PTW의 게임 쇼케이스를 본 게이머들이 ‘정말로 저런 게임이 있다면 끝내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장군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 영상엔 하나의 목적이 더 숨겨져 있었다.
마치 세뇌라도 하는 것처럼, 기능의 소개마다 나오는 하나의 문장이 있었기 때문에.
[물론, 현재의 통신 기술 수준으로는 이 방대한 연산을 AI가 실시간으로 병사들에게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작전 지역에 AI 센터를 건설한다면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미국의 안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겠죠.
중국, 러시아, 심지어 동맹국까지, 미군 전체의 전투 경험의 에센스가 담긴 AI 데이터를 노리지 않는 세력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반드시 AI센터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미국 본토에 건설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데이터는 위성을 통한 광대역 통신을 통해 연결되어야 하고요.]
영상의 중간중간마다, 상혁은 전쟁을 위한 통합 AI의 필요성에 대해 어필하면서, 워 다이버의 정상적 구동을 위해서는 엄청난 빅 데이터의 교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듣던 스티브는 속으로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상혁은 끊임없이 ‘빅 데이터’와 ‘양자 암호’, ‘초광속 통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의 해법이 자신이 개발하려는 ‘양자 통신’이라는 것은 절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단지 상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객관성을 가장하며 ‘너희에겐 이런 기능이 있는 통신망이 필요해’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혁의 마법에 빠진 장군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저 모든 것을 실제로 동작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300억 달러라는 비용조차 지나치게 싼 것이라는 생각을.
그것은 브루스 장군을 아프간에서 미국으로 부른 채드 장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이번엔 승인이 날 것 같군.”
조용히 브루스에게 귓속말을 건네던 채드는 자신을 바라보는 브루스의 눈을 보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이, 마치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로 촉촉하게 젖어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미 워 다이버라는 장비가 추구하는 목표에 반해 마음속으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중이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병사들을 가장 사랑하는 지휘관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들의 목숨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 따위는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각오를 하며 살았죠.
그러나 오늘, 전 겨우 제 목숨 따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바보스러운 판단들을 해왔는지도요.”
“무슨 의미지?”
“지금까지 미군은 적군을 효율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쏟아부었죠.
쓰지도 못할 핵폭탄을 수천 개 쌓아놓은 상태에서요.
하지만 한발에 수백억짜리 스마트 폭탄을 몇십만 발 부어 넣는 것보다, 제겐 지금 본 저 기술이 더 효율적이고 위대한 기술로 보입니다.
적어도 저건, 적을 제거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온전히 미군 병사를 보호하기 위한 기술이니까요.”
“완전히 꽂혔군.”
“채드 장군님은 안 그렇습니까?”
브루스의 질문에 채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PTW라는 게임회사에서 ‘미군’을 위해 만들었다는 저 기술에서, 말 그대로 ‘병사들의 피해를 줄이고 싶다’라는 순수한 열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채드는, 오늘 이 미팅의 결과가 ‘승인’으로 결정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 모인 장군 중에서, 자신의 병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장군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채드가 브루스를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 자네까지 부를 필요는 없었을 것 같군.
다른 장군들도 이정도 기술이라면 300억 달러의 값어치를 충분히 한다고 생각할 테니.”
“아뇨,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승인 결과와는 상관없이, 수많은 미군의 생명을 지키게 될 기술에 한 표를 행사했다는 사실이 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만들 테니까요.
전 오히려 예산을 늘려서라도 최대한 빠르게 저 장비를 개발해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나도 그렇네.”
그렇게 말한 채드는 스티브를 향해 외쳤다.
“스티브?”
“예. 채드 장군님.”
“만약 이 모든 제안에 대한 승인이 난다면, 저 워 다이버란 물건 자체는 미군이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지?”
“그건 저희에게 달렸습니다. 일단 현재 있는 딥 다이버 부속의 내구도를 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크게 올려야 하고, 외부를 방탄재질로 교체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생산이나 개발 문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PTW는 단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이 모든 기능을 개발했고, 그게 겨우 절반의 기능만을 구현한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으니까요.
승인만 난다면, 개발 자체는 정말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이 프로젝트의 추진에는 다른 문제가 있죠.”
“그게 뭔가?”
“PTW가 져야하는 정치적 부담입니다.
PTW는 한국 회사이고, 한국은 전쟁 중인 국가니까요.
자신들이 만든 전쟁 기술을 한국군을 무시하고 미국에 독점적으로 제공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PTW는 대내외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겠죠.
그리고 이렇게 강력한 기술을 미군만이 독점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NATO 가입국들이 좋아하지도 않을거고요.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아예 미국 기업으로 만들어버리는 건?
미국에도 세계적인 대학은 많지 않나?
MIT든 칼텍이든 부지 좀 넓게 떼주고 이사 오라고 하는 건 어떨까?”
“저도 당연히 제안을 해보았지만, PTW에서 그걸 바라지 않습니다.”
“그럼 PTW에서 원하는 건 뭐지?”
“자신들이 이 기술을 ‘어쩔 수 없이’ 미군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는 이미지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PTW에서 원하는 것은 미국 정부에서 한국 정부를 협박하는 것입니다.”
“그건 외교적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나?
한국은 동맹국이야. 아무리 워 다이버의 기술이 탐난다고 해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어.”
“그렇죠. 그것에 대해서 PTW의 CCO 이상혁 씨는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뭐라고?”
채드의 질문에 스티브가 답했다.
“한국에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라는 속담이 있다고요.
해석하자면 자신들은 아예 워 다이버 개발을 포기해도 아쉬울 게 없으니, 기술을 가지고 싶으면 미국 측에서 진심을 보이라는 뜻입니다.”
“얼마나 목이 말랐는지 보여달라는 거군.”
“그렇죠.”
“그럼 결정은 난 거네. 난 저 매력적인 기술을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외교적 트러블을 고려하더라도, 저건 미군이 가져야 하는 기술입니다.
만일 저희가 아닌 다른 국가가 저 기술을 사용해 저희와 싸운다고 상상해보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기분이 드니까요.”
“그럼 결정된 것으로 하겠습니다.
스티브. PTW에 연락하게. 미군에서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PTW와 함께 저 기술을 대가로 PTW측이 원하는 양자 통신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전력으로 협력하겠다고.”
“국회에서 동의할까요?”
“거긴 내가 설득하지.
물론 오늘 자네가 보여준 영상은 내게 보내줘야 해.
최소한 상하원의 바보들도 저 영상속기술이 가진 가치를 모르진 않을 테니까.”
“백악관은요?”
“그것도 내가 설득하지. 솔직히 말하면, 미군도 답이 나오지 않는 아프간의 상황에 지쳐가고 있어.
어쩌면 저 워 다이버라는 장비가 우리를 아프간에서 승리로 이끌지도 모르지.
난 도람프 대통령도 그것에 동의할 것이라고 믿네.”
그토록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던 장군들이, 상혁이 건네준 영상을 보자마자 180도로 바뀐 태도를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스티브는 PTW에서 있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만약 이 모든 계획이 실패한다면, PTW는 양자 통신의 개발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해 스티브가 물었을 때, 그 질문에 대해 상혁이 했던 대답을.
그때 상혁은 자신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었다.
“실패요?”
“예.
결국, 저희도 미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PTW에 협력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계획의 승인 가능성은, 솔직히 말하면 그리 높지 않은 편입니다.”
“글쎄요.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지금의 저는 실패에 대해서 단 1%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어째서죠?”
“실패했을 때를 생각해서 고민할 여력이 있으면, 그 여력을 일을 성사시키는 데 쓰는 게 나으니까요.”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PTW의 전략은 All-In을 전제로 합니다.
실패가 두려워서 뭔가에 주저하기보다는,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는 거죠.
천억을 들인 게임에 실패 가능성이 있다면, 저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2천억을 투자하면 어떨까?’
그럼 리스크도 커지겠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안 돼요.
저희가 하는 것은, 도박처럼 보이지만 도박과는 다르니까.”
“다릅니까?”
“다르죠. 도박의 확률이란 건 기본적으로 단판 승부 대해서 랜덤한 확률을 가지니까요.
예를 들어 도박에서 100판이나 1000판을 한다면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겠지만, 보통 비즈니스라는 것은 단판 승부가 됩니다.
거기서 이번 패가 어떻게 나올지는, 솔직히 예측하기 어렵죠.
쉽게 이야기하면, 판돈 무제한인 포커판에서 딱 한판의 승부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신 돈을 쓰면 카드를 계속 뽑을 수 있게 해주는 특수한 포커 같은 거죠.”
“그건 더 이상 포커가 아닌데요.”
“맞습니다. 막말로 그런 상황이라면, 무조건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쉬가 나올 때까지 카드를 계속 드로우 하면 100% 이길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게임 개발을 그런 개념으로 봅니다.
물러서지 않고, 현재의 회사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포텐셜을 쥐어짜서 실패 확률을 제로로 만드는 거죠.”
“그러니까 그 말은···.”
“PTW가 참여한 이상 이 계획은 무조건 성공할 거라는 겁니다.
설득해야 하는 상대가 미군이든, 미 정부든, 미국 국회든, 무조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거니까요.”
그때는 상혁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상혁이 말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말의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것은 스티브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같은 편으로 있을 때 그토록 강력한 상대라는 것은, 반대로 적으로 두었을 때 무서운 상대라는 의미이기도 했기에.
‘그게 미국 정부가 아니라는 게 다행이군. 한국 정부만 불쌍하게 되었네.’
안타깝게도 PTW가 지금 하려는 것은 미국 정부라는 괴물을 끌어들여 한국 정부를 상대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장군들의 반응을 보아서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커 보였고.
스티브는 마음속으로 한국의 정부 관계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관련 자료를 정리했다.
채드 장군이 요청한, 미합중국의 대통령을 설득할 자료를 건네주기 위하여.
그리고 다음 날, 스티브는 TV 뉴스를 보라는 채드의 연락을 받고 TV를 틀어 뉴스를 보았다.
거기엔 수많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도람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을 향해 긴급 발표를 하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전 세계의 동맹국들이 저희 미국의 돈으로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습니다.
항상 피를 흘리는 것은 미국이었고, 돈을 쓰는 것도 미국이었으며, 그 빚을 갚는 것도 미국이었죠.
그리고 저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한국 정부에 요구할 생각입니다.
매년 한국이 미군에 내는 방위 분담금을, 현재 수준의 10배로 늘려달라고 말이죠.
예. 맞습니다.
더 이상의 안보 무임승차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받는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내게 될 것입니다.”
상혁의 ‘한국 정부를 압박해달라’라는 요청에 대한 도람프 미국 대통령의 대답.
그것은 한국 정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방위 비용’을 내라는 협박성 발언으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