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양자통신
앤서블(Ansible)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1966년 어슐러 르 귄의 SF소설에 등장하는 단어로, 빛의 속도를 능가하는 속도로 서로가 정보를 전달하는 초광속 통신을 말하는 단어였다.
다시 말하자면, 공간적 거리에 관계 없이 '동시'에 통신이 가능하도록 해 주는 기구가 바로 앤서블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니가 발견한 파일은 바로 그 앤서블에 관련된 개발 정보를 담은 문서였고, 대니는 당연히 그 정보에 PTW가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이 기술의 구현이 가능하다면, 말 그대로 ‘핑’에 관계없는 게임 플레이가 가능해질 테니까.
‘관심을 안 보일 리가 없지.’
빛보다 빠른 정보의 전달.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존재가 바로 빛의 속도이긴 하지만, 게임 업계에서 그 속도는 그리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는 속도였기 때문에.
대니는 급하게 파일을 복사하고 해당 파일의 외부 반출에 필요한 수많은 서류에 사인한 후, 파일을 가지고 펜타곤을 나섰다.
그리고는 자신의 상관 스티브가 있는 버지니아 주 알링턴을 향해 미친 듯이 차를 몰기 시작했다.
자신이 발견한 이 ‘최적의 카드’를, 보란 듯이 스티브 앞에 내밀기 위해.
***
“그래서.”
마치 보물찾기 게임에서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대니를 향해, 스티브가 말했다.
“그 많은 1급 기밀 자료 중에, 자네가 고른 게 이거란 말이지?”
“맞습니다. 끝내주는 카드 아닙니까?”
그러나 대니얼의 상관, 스티브는 건네받은 서류를 보며 그가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지금 자네 제정신인가?”
“엥? 멋지지 않습니까? 진짜로 가능하다면, 렉 없는 게임 플레이가 가능해지는 기술이라고요?
빛보다 빠르게 정보 전달이 가능하단 말입니다!”
“그게 ‘가능하다’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이건 하다못해 프로토타입 제작도 해보지 못한 연구치 않은가?!
PTW가 바보도 아니고, 이런 현실 가능성도 없는 카드에 낚여서 그 귀중한 기술을 교환하자고 나서지는 않을 거란 말이야!”
“하지만 제가 국방성 자료실을 죄다 뒤졌어도 이거보다 PTW에서 탐낼만한 연구 자료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쪽에 무기 개발 관련 자료를 준다고 해도 그쪽에서는 전혀 기뻐하지 않을 거고요!”
스티브는 다시 서류를 살펴보았다.
거기엔 복잡한 수식으로 가득한 실험 결과와 함께, 빛보다 빠른 통신인 앤서블(Ansible)의 구현을 위하여 어떤 연구가 추가로 진행되어야 할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것을 한참 노려보던 스티브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대니얼을 향해 말했다.
“양자 통신? 솔직히 난 이 파일을 봐도 내용이 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대충 개요만 봤는데 터무니없는 내용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겠더군.
그래도 상부에 우리가 거래 카드로 PTW측에 내미려는 게 뭔지는 설명해야 하니까, 자네가 나한테 이게 뭔지 쉽게 설명해주겠나?”
“양자 역학의 세계에서 쉽다란 단어는 쓰기 어려운데요?”
“그렇다고 자네도 물리학자는 아니잖아.
머리가 굳은 군인도 이해할 수 있을 수준으로, 최대한 쉽게 설명해줘.
그럼 내가 그걸 그대로 외워서 앵무새처럼 국장님께 보고할 테니까.”
“그럼 차라리 제가 국장님께 설명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자네 같은 싸이코를 국장님과 대화하게 했다간 우리 부서가 날아갈 수도 있어.
정말로, 아주 가끔이라도 좋으니까 가끔은 잔말 말고 제발 내가 부탁하는 대로 해주게.
아니면 내가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나?”
“50대 남성 상관이 하급자에게 무릎 꿇는 풍경은 살면서 보기 힘든 모습이긴 하겠네요. 조금 당기는 데요?”
“바로 그래서 내가 국장님과 자네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거야!”
스티브가 화를 내자 대니얼은 양손을 들어 올리며 그를 진정시켰다.
“워, 워. 화내지 마세요. 방금 제 말은 어디까지나 농담이었으니까.
원하시는 게 초등학생도 이해하기 쉬울 정도의 설명이라면, 그렇게 해 드리죠.
어디 보자···. 스티브 씨. 우선 현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통신 기술’의 속도 한계가 빛의 속도인 건 알고 계시죠?”
“해저 광케이블을 통해서 보내든, 아니면 인공위성을 거쳐서 보내든, 광자나 전자, 파장을 이용해서 보내는 정보라면 기본적으로 빛의 속도보다 빠를 수 없지 않나?”
“바로 그겁니다.”
“하지만 빛은 아주 빠르잖아.”
“아주 빠르지만, 만족할 큼 빠르지는 않죠.”
그렇게 말한 대니얼은 책상에 놓여있는 마커를 뽑아 들고 유리로 된 스티브의 사무실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동그란 도형을 그려놓고 얼룩같이 보이는 그림을 채워놓았다.
“설마 그게 지구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맞는데요?”
“일단 설명이 끝나면 거기 적은 건 자네가 다 지우고 가야 한다는 사실은 제쳐두더라도, 그림 실력이 절망적이라는 말은 꼭 해주고 싶군.”
“뭐, 그럼 이렇게 하죠.”
그렇게 말한 대니얼은 동그라미 안에 마커로 ‘지구(Earth)’라고 적어놓았다.
그리고 그 동그라미의 위와 아래에 작은 삼각형을 하나씩 그렸다.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돕니다.
그 말은 빛이 지구 반 바퀴를 도는 데는 15분의 1초가 필요하다는 말이죠.
그걸 초로 계산하면 0.0667초 정도 됩니다. 그건 1초를 100프레임으로 나누면, 약 6.7프레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소리고요.”
“그 정도면 거의 동시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문제는 일반적으로 정보의 교환이 다이렉트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해저 케이블을 보죠. 광 케이블은 기본적으로 굴절률이 다른 두 매질을 이용해서 빛을 전달합니다.
말하자면 양쪽이 거울로 된 복도에 빛을 쏴서 빛이 지그재그로 튕겨 나가면서 목표 지점에 도달하게 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요.”
대니얼은 평행선을 긋고는 그 안에서 지그재그로 교차하는 선을 그렸다.
“딱 봐도 직선보다는 훨씬 거리가 멀어 보이죠?
이번엔 위성을 통해서 정보를 보낸다 가정합시다. 지구에서 쏘아진 광선은, 바로 지구를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가지 않죠.
먼저 우주에 있는 위성을 향해 정보를 쏩니다. 그리고 위성은, 그걸 받아서 지구에 있는 기지국에 보내고요. 이것도 직선은 아니죠.”
“그래서?”
“게다가 도착한 정보는 보통 기지국이나 통신사 서버 같은 데이터 처리를 위한 중간 과정을 거치면서 속도가 더욱 느려집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게이머와 미국 게이머가 원활한 플레이를 하기 힘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죠.
안 그래도 물리적 거리가 있는데, 그사이에 수많은 장벽까지 존재하니까요.”
“그럼 자네가 가져온 양자 통신이란 기술을 사용하면 그걸 극복할 수 있다고?”
“그렇죠. 기본적으로 이 연구에서 다루는 기술은, 얽힘 상태의 양자가 가진 양자 역학적 특성을 사용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거니까요.”
“쉽게 설명하라고.”
“간단히 말하면 빛보다 빠른 통신이 가능하게 만드는 연구라는 겁니다.”
대니얼이 말했다.
“서로 얽힘 상태에 있는 두 양자는 한쪽 양자의 스핀이 결정되면 다른 양자의 스핀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고 하죠.
마치 이미 그렇게 결정되어있던 것처럼, 완벽하게 동시에 상태가 결정되니까요.”
“그럼 한쪽에서 양자의 스핀 상태를 조절하는 것으로 반대편에서 빛보다 빠르게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고?”
“아뇨, 그건 아닙니다. 사실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지만, 이 결 맺음이라는 건 일회용이거든요,
한쪽에서 스핀 상태를 확정하기 위해 개입하는 순간, 양자 중첩 상태가 해제되어버리면서 그 정보는 쓸모가 없어져 버립니다.
대신 그 특성을 이용해서 해당 정보를 누군가가 보았는지는 알 수 있죠.
누군가 해킹을 위해서 중간에 데이터를 받아 열어보는 순간, 양자 중첩이 붕괴하여버리니 절대 풀 수 없는 암호를 만들 수 있고요.
양자 암호 통신이 바로 그런 특성에 기반을 둔 기술입니다.”
“하지만 자네가 말하는 건 양자 암호가 아니라 양자 통신 아닌가? 그리고 지금 자네 입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거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이 연구는 그 방법에 대해 제시하고 있습니다.”
대니얼이 가져온 파일.
거기엔 중국 연변 대학과 하얼빈 기술 연구소에서 2015년에 시험한 ‘물리적 입자 이동이 없는 상태에서의 정보 전달 실험’에 기초한 연구 자료가 담겨져 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광자나 전자를 포함한 어떠한 정보의 전달도 없는 상태에서, 제어원자(control atom)의 상태 변화를 통해 반대쪽에 있는 상대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실험이었다.
“해당 실험에서, 연구자인 Zhang 씨는 이렇게 말했죠.
‘이론적으로 상기 장치를 이용하여 은하 내 인터넷 또는 은하 간 인터넷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라고.
이 연구는 그 가능성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을 찾기 위한 연구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전달한 정보도 서버나 기지국을 통과해야 하지 않나?
게임 서버에서도 연산은 해야 할 거고, 통신사 서버에서도 데이터 처리는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최종적으로, 싸구려 랜 케이블을 통해서 컴퓨터에 들어갈 거고.
그건 양자 통신이 아니지 않나?”
“물론 이 ‘빛보다 빠른 통신’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두 곳의 양자 통신 중계소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겠죠.
그리고 거기서 받은 정보는 다시 우리가 사용하는 디지털 정보로 변환되어 일반적인 통신 속도의 제약을 받을 거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은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어째서?”
“적어도 현재의 물리 법칙으로 강제되는 ‘6.7프레임의 벽’은 뚫을 수 있을 테니까요.”
게이머만큼 속도에 민감한 존재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니얼은 이 기술의 구현 가능성 유무와는 상관없이 PTW가 이 제안에 강한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스티브는, 만약 그것이 정말로 가능하다면, 진짜로 PTW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나만 묻지.”
스티브가 말했다.
“난 지금도 이 연구가 허황되고 말도 안 되는 이상을 추구하는 연구라고 생각하고 있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희망만이 담겨 있는 쓰레기라고 말이야.
하지만 대니얼. 천재인 자네가 볼 때는, 이 연구에 단 0.1%의 실현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생각된다는 거지?”
“0.1%는 너무 높게 잡은 것 같고, 0.000001%정도는 되겠죠.
애당초 이 연구 자체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완전히 무시하는 내용이니까요.
하지만 PTW라면 그 0.000001%의 가능성에도 관심을 보일 겁니다.
이것이 성공했을 때 얻어낼 수 있는 결과에는, 그 정도의 실패 확률을 감수할 수 있는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럼 좋네. 이걸 가지고 거래를 해도 좋을지, 상부를 설득해보도록 하지.
하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말아. 애당초 이 기술이 자네 말대로 실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고, 그 결과물이 자네 말대로 세상을 바꿀만한 물건이라면, 위에서도 그걸 가지고 거래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
일단 허가가 떨어지든 말든 ‘말이라도 해 보자.’라고, 스티브는 생각하고 있었다.
대니얼의 말대로 정말로 이 연구가 그렇게 중요한 연구라면, 미 국방성에서는 절대 그것을 대가로 한 거래를 허가하지 않을 것이었기에.
그러나 우려를 안고 펜타곤에 연락한 스티브가 들은 답변은, 걱정하던 그를 바보처럼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뭐? 그걸로 거래가 가능할 것 같다고? 그럼 줘버려!”
“예?”
“애당초 그 연구 자체가 중국에서 실험에 성공했다니까 맞대응 차원에서 이쪽에서도 연구비를 지원한 거였고, 성과도 별로 없어서 추가 연구도 중단된 상태였네.
다음 스텝으로 가는데 엄청나게 많은 투자를 요구했거든.
어차피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펜타곤 자료실 구석에 파묻혀있다가 폐기될 프로젝트였어.
그런 쓰레기 프로젝트로 당장 사용 가능한 딥 다이버 같은 기술을 얻어낼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지.”
“그, 그렇습니까?”
“생각해보게. 애당초 양자를 원하는 상태로 제어하는 데 필요한 필수 조건이 절대 영도 수준의 극저온이야.
아니면 온도 상승의 허용 범위를 올리기 위해서 압력을 대기압의 수천 배로 높이던가.
어느 쪽이든 쉬운 건 아니고, 단순히 온도를 그렇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거대한 장비가 필요하지.
그런데도 얻어낼 수 있는 건, 단순히 지금도 멀쩡하게 굴러가는 통신 시스템보다 ‘미세하게’ 빠른 정도의 전달 수단이고.
지구에서 화성까지 정보 전달에 15분이 걸리는 NASA에서라면 관심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거기서도 우주에 양자 통신을 위한 설비를 구축할 수 없다는 데 동의했네.
그러니 그건 현재 시점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연구지.
오히려 그걸로 정상적인 거래가 가능할지가 의문일 정도로.
차라리 좀 더 현실 가능성이 있는 다른 프로젝트를 검토하는 게 어떻겠나?”
대니얼의 평가와는 대조적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극단적으로 저평가하는 국장의 말에 스티브는 골이 지끈거리는 감각을 느꼈다.
그러나 스티브는 자신의 머리에서 느껴지는 두통은 싹 무시한 채로, 태연하게 국장에게 말했다.
“아뇨, 이걸로 하겠습니다.”
“중요한 거래가 실패할 수도 있을 텐데?”
“전 대니얼의 판단을 믿으니까요. 그의 사회성은 빵점이지만, 적어도 그의 천재성은 진짜입니다.”
“좋아. 이번 일은 어차피 자네의 책임이니까. 자네가 대니얼의 판단을 믿는 것처럼 나도 자네의 판단을 믿지.
해당 거래에 관한 승인 절차는 이쪽에서 진행해 주겠네. 자네는 거래 준비에 집중하게.”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스티브는 대니에게 연락하기 위해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전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저으며 서랍 문을 열었다.
“두통약부터 먹어야지.”
대니얼은 그에게 있어서 국장에게 ‘진짜 천재’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이긴 했지만, 그가 겪고 있는 만성 두통의 원인이기도 했기 때문에.
손에 든 알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스티브는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대니를 향해 피곤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다. 대니얼. 그래. 승인됐으니까 PTW엔 자네가···. 아니 됐어. 내가 연락하지.
자넨 자료나 준비해. 그쪽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네가 될 테니까.”
대니얼은 대답 대신 수화기 건너편에서 ‘Yeeeeeahhh!!’하고 소리질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스티브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아, 난 진짜 천재들이 너무 싫어.”
그것은 미국에서도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있는 DARPA의 책임자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황당한 발언이었다.
***
“오, 여기가 그 유명한 ‘부실’이군요?”
대니얼은 PTW에 도착한 직후부터 마치 투어를 온 관광객처럼 흥분하며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스티브는, 그런 대니를 보고 이번엔 위장약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한국으로 향하는 15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대니얼이 그를 계속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PTW가 얼마나 대단한 회사냐면···.”
“PTW에서 보유한 STC라는 것은···.”
“스컹크 웍스 멤버들은 전설이에요!”
“전 이번 여행에서 제 딥 다이버도 가져왔다고요. 가면 개발자들에게 사인받아야지!”
결국, 어떻게든 12시간 정도를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참아내던 스티브의 인내심은, 대니얼의 PTW 찬양이 13시간에 접어드는 순간에 완전히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젠장! 대니! 우린 지금 비즈니스를 하러 가는거지 디즈니랜드에 가는게 아니라고!”
그러자 대니얼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스티브를 바라보아 그를 더 빡치게 만들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저희가 가는 곳은 디즈니랜드가 아니죠.”
“그럼 왜 디즈니랜드에 처음 가는 11살짜리 내 딸처럼 흥분하고 있는 건데!?
아니, 내 딸을 처음 디즈니랜드에 데려갈 때도 자네처럼 흥분하진 않았어!
사람이 잠도 못 자게 12시간 동안 괴롭히지는 않았다고!”
“그야 저희가 가는 곳은 디즈니랜드가 아니라 PTW니까요!
IT 개발자들의 성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프로그래머들이 모여 있는 곳!
코넥트! 딥 다이버! STC! 콘솔 부스트! PRD!
마치 게임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위한 게임을 만드는 것 같이 보이는 곳!
그러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게임을 만드는 곳!
그곳에 방문하면서 흥분하지 말라니 그건 무리라고요!”
“그렇게 PTW가 좋으면 당장 DARPA를 그만두고 PTW로 가던가!
자네 정도면 만세 부르면서 받아줄 테니 제발 가주면 안 될까?”
“에이, 그건 아니죠. 아무리 저라도 취미와 업무를 구분할 줄은 안다고요.”
“젠장, 그럼 직장 상사를 12시간 동안 비행기에서 괴롭히는 게 자네 업무라고?”
“저희가 가는 곳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알아주셨으면 해서요.”
“자네와 같이 가는 게 아니었다면 나도 즐거운 기분으로 갔을 거야.
나도 다른 대부분의 미국 아버지처럼 내 딸과 MYOM을 플레이하기 위해 두 대의 X-BOX와 두 대의 코넥트, 그리고 대형 TV 두 대를 할부로 지른 남자니까.”
“그런데 왜 그리 똥씹은 표정이세요?”
“자네가 내 속을 긁어서 그런 거라고 했잖아!”
“아뇨, 스티브 씨는 비행기에 타기 전부터 그런 표정이었어요.
저는 단지 그런 스티브 씨의 기분을 돌려보려고 PTW 이야기를 한 것뿐이고요.”
“사람의 기분을 바꾸는 데는 최악의 방법이군.”
“즐거운 곳에 가면서 그곳이 왜 즐거운지 설명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요.”
결국, 12시간 동안 이어진 대니얼의 괴롭힘이 자신에 대한 호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안 스티브는 피곤한 표정으로 대니얼에게 말했다.
“좋아. 화를 낸 건 사과하지. 내가 걱정하는 건, 아직도 이 거래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였어.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상대의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뭔가를 할 때는 상대의 표정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좀 봐줬으면 좋겠어.
자네가 입을 열 수록 상대방 표정이 안 좋아진다는 건, 자네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멈춰야 한다는 의미지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도 좀 알아두고.”
“알겠어요.”
“어찌됐건 내 생각을 해준 건 고맙게 생각하네. 나중에 공항에 도착하면 기념품이라도 하나 사주도록 하지.”
“전 11살 먹은 당신 딸이 아닌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대니얼은 스마트폰으로 ‘한국 특산품’을 검색하며 무엇을 사달라고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스티브는 마침내 대니얼에게서 해방되어 잠을 잘 수 있었다.
잠을 자기 전과 마찬가지로, 대니얼이 끊임없이 비행기에서 자신의 귀에 대고 떠드는 악몽을 꾸면서.
스티브의 이번 출장은, 그렇게 최악의 컨디션인 상태에서 시작되게 되었다.
“혹시 어디 아프신가요?”
상혁의 질문에 스티브가 애써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식은땀도 흘리고 계신데요?”
“같이 온 직원이 좀 통제 불능이라서요. 능력은 정말 좋은 친구지만, 보통천재들은 사회성이 좋지 않다고들 하죠.”
그렇게 말한 스티브는, 순간 상혁 역시 업계에서 천재 소리를 듣는 사람 중의 한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급하게 자신의 말을 수습했다.
“아, 물론 저 친구가 매우 특이한 거지 제가 아는 천재들은 대부분 매우 정상적인 친구들입니다.”
그러나 상혁은 그가 염려한 부분과는 전혀 다른 부분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천재‘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좀 대단하네요. 역시 DARPA라고 해야 할까요?”
“원래 그런 집단이니까요. 세간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NASA가 천재들이 모인 이미지로 다뤄지고 있지만, 사실 진짜 천재들이 모여있는 곳은 저희 DARPA라고 할 수 있죠.”
“하시는 말씀에서 소속된 집단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분명, 말로는 저기 있는 분에 대해 불평하고 계시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저분을 좋아하고 있는 것도 느껴지고요.”
그러자 스티브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상혁에게 말했다.
“제가요? 대니얼을?”
그리고는 저 앞에서 민준에게 딥 다이버를 내밀며 사인해달라고 부탁하는 35살짜리 어린이를 보며 다시 말했다.
“절대 아닙니다. (Hell No.)”
상혁은 그런 그를 미소로 부실로 안내하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이 사람 왠지 민준이랑 닮은 것 같아.’
그러면서 상혁은, 어쩌면 DARPA라는 기관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부실에 들어갔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연구기관 중의 하나인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DARPA)’에서, PTW에 제안할 카드가 무엇인지에 대해 듣기 위해서.
그리고 스티브는, 그런 상혁에게 대니얼을 앞세워 DARPA에서 준비한 카드를 내밀었다.
상대성 이론을 초월하여, ‘빛보다 빠른 통신’을 가능하게 할 잠재력을 지닌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러니까 이 프로젝트에서, 기본적으로 양자 통신은 ‘릴레이(Relay)’라 부르는 통신 기점 사이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그 개수는 최소 2개 이상으로 이루어지며, 각각의 릴레이마다 서로와 연결된 결 맺음 상태의 양자를 보유하게 되죠.
그리고 제어원자(control atom)를 통제하는 것으로 서로의 릴레이에 있는 쌍극자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으로 통신을 진행합니다.
물론 그것을 실현할 수 있게 하려면 초전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극저온, 고기압 상태의 설비를 유지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들어가는 설비의 크기는 어마어마하죠.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이 연구는 말 그대로 빛보다 빠른 통신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기술을 낳게 될 겁니다.
말 그대로,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랙 없는 게임 플레이가 가능하게 되는거죠.”
대니얼의 프레젠테이션은 스티브의 우려를 한 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매우 훌륭하게 진행되었다.
비전문가가 들어도 이해하기 쉬우면서, 연구에 포함된 전문성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도록.
그리고 상혁은, 그런 대니얼의 발표를 매우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어린아이의 눈빛으로.
“···이상입니다.”
이윽고 마침내 설명을 마친 대니얼이 마커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며 두근대는 마음으로 상혁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정작 입을 연 것은, 상혁이 아닌 민준이었다.
상혁만을 의식하고 있던 대니얼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민준이야말로 이번 발표를 들으며 상혁 이상으로 흥분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민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니얼을 향해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했다.
“저거, 진짜로 실현 가능성이 있습니까?”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펜타곤에서는 비용 대비 효율이 좋지 않아서 추가 연구를 포기했지만요.”
“그럼 만약 이 기술을 넘겨받는다고 해도, 나머지 연구 예산은 저희 쪽에서 지불하게 되겠네요?”
그러자 스티브가 끼어들어 민준의 질문에 답했다.
“아뇨. 그 부분에 있어서라면, 현재 미구현인 기술을 가지고 구현된 기술을 거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DARPA의 연구 예산을 투입해서 연구를 지원할 예정입니다.
당장 예산이 확정된 올해는 힘들고, 지원 예산은 내년에 편성되겠지만요.”
“얼마 정도나?”
“그건 저희 쪽에서 받을 수 있는 라이선스의 수준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만일 PTW 측에서 미 국방성에서 원하고 있는 수준의 권리를 보장해 주신다면, 연간 10억 달러 이상의 지원은 수월하게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원하시는 수준의 라이선스가 어느 수준이죠?”
“딥 다이버 기술의 군사적 사용에 있어서, 오로지 미군에서만 그 기술을 독점적으로 사용하게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엄청난 부탁이네요. 저희는 한국 기업입니다. 당연히 그런 거래에 응하게 되면 엄청난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될 거고요.”
“그 부분은 미국 정부에서 해결해드릴 겁니다.
절대로 PTW측을 한국 정부가 압박할 수 없도록.”
“흠···.”
고민에 빠진 민준을 대신해, 이번엔 상혁이 질문을 던졌다.
“구현에 필요한 기술 수준이 현재 인류가 보유한 기술 수준을 넘어서는 것 같은데, 상용화까지는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습니까?
딥 다이버는 지금 당장이라도 미군에서 도입하는 순간 슈퍼 솔져 프로젝트 구동이 가능한 기술이죠.
반면에 지금 제안하신 기술은 가능성만을 품고 있을 뿐 상용화는커녕 프로토타입 개발에 필요한 기초 실험도 되어 있지 않네요.
물론 저희는 게임 개발사로서 랙없는 게임 플레이가 얼마나 멋진 것인지 잘 알고 있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너무 험난해 보입니다.
게다가 저희 쪽에서 한 해 R&D에 투자하고 있는 비용은 이미 더 늘리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고요.
PRD의 개발부터 STC의 개선, 이번에 확보한 스타링크 프로젝트에 필요한 기술 개발 비용이나 저희가 개발하는 게임 개발에 필요한 비용 역시 천문학적인 수준입니다.
그 금액은, 정확히는 밝히기 어렵지만 적어도 DARPA에서 1년에 쓰는 예산보다는 훨씬 크죠.
거기에 희박한 현실화 가능성만 믿고 양자 통신에 투자하라는 제안은 저희 쪽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네요.”
“그, 그렇습니까?”
“상식적으로 누가 봐도 그렇게 대답할 겁니다.”
그러나 대니얼은 PTW의 그 ‘비상식’에 배팅을 건 상황이었다.
다른 기업에서 전부 거절할만한 조건이라도, PTW라면 받아들일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러나 상혁의 대답은 차가웠고, 그 대답을 들은 대니얼의 뜨거운 피는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자신이 무엇을 시도한 것인지,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오, 맙소사. 내가 지금 무슨 제안을 시도한 거지?’
당장 수십 수백조의 가치를 가진 기술을 달라고 하면서, 성공 가능성조차도 담보할 수 없는 카드를 내밀었다.
대니얼은 도대체 자신이 왜 그런 판단을 내린 것인지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혁은, 그런 대니얼을 바라보다 자신의 팔을 건드리는 움직임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제정신이야? 지금 쟤네가 양자 통신을 가져왔잖아! 양.자.통.신!’이라는 문장을 이마에 쓴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민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