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17화 (318/485)

317. 감성팔이 전략

상혁이 순전히 자신을 놀리기 위해 그런 괴상한 말투의 한국어를 가르쳐주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일린 모스크는, 정말로 미국에 돌아가서 펼친 기자 회견에서 상혁이 가르쳐준 말투 그대로 ‘화성, 갈끄니까아아아~’를 시전했다.

덕분에 그 모습을 라이브로 지켜보던 상혁과 민준은 10분 동안 부실 바닥을 굴러다니며 배를 잡고 웃어야 했다.

웃다가 지칠 만하면 일린 모스크가 ‘화성, 갈끄니까아아~’를 다시 시전했기 때문에.

그러나 상혁이 기대한 것 수준으로 일린 모스크의 괴상한 한국어는 생각보다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안타깝게도 일린 모스크의 발표 내용이 사람들이 그 괴상한 말투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테슬러와 PTW 사이에서 오고간 계약 하나하나가, 업계의 미래 판도를 바꾸기에 충분한 내용을 지니고 있었다.

“앞으로, 자동차 생산과 관련된 사업에 한정하여, 오직 테슬러 자동차 제작에 관련된 회사만 산업용 딥 다이버를 제품 제작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PTW와의 계약이 성립되자마자 SANY에 연락하였으며, 게이머용 딥 다이버의 보급이 끝나는 즉시 산업용 딥 다이버의 첫 번째 공급 물량을 저희 테슬러가 받을 수 있도록 예약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수량은, 현재 돌아가고 있는 테슬러 공장의 전 노동자들과, 앞으로 확장할 공장의 노동자들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약 20만대 분량의 공급 규모입니다.

그 말은, 앞으로 테슬러 공장에 대한 뉴스가 나올 때 저희 노동자들이 산업용 딥 다이버를 착용하고 AI의 보조를 받아 매우 높은 퀄리티로 자동차를 제작하게 될 모습을 보게 될 것이란 소리죠.”

그러자 기자들이 미친 듯이 손을 들어 질문을 시도했고, 모스크는 그중 한 명을 지목해 질문을 받았다.

“CNN의 제프 하디 기자입니다.

딥 다이버가 가져올 놀라운 생산성의 혁신을 고려하면, 겨우 20만대 공급을 위해 독점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데요.

테슬러는 미래 작업자가 사용할 분량까지 끌어모아서 20만대를 주문했지만, 폭스바겐은 지금 당장 20만, 토요타도 30만 이상의 수량은 바로 주문 가능합니다.

다른 기성 자동차 업체들도 마찬가지고요.

수백만 대를 팔 기회를 포기하고 오직 테슬러에게 독점 기회를 제공한 이유가 뭡니까?”

“그것을 설명하기 전에, 저희가 얻어낸 다른 것들에 대해 더 설명해야 할 것 같군요.

저희가 20만대의 딥 다이버를 주문한 이유는, 단순히 테슬러 자동차 생산 노동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20만대는 너무 많죠.

저희는 얼마 전 PTW에서 공개한 가상 공간에서의 물리법칙 구현 장치, 속칭 PRD(Physical Reality Device)의 생산과 보급에 대한 독점적 권리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이번에 예약한 물량 중 10만대는, 바로 PRD를 생산하는 라인의 노동자를 위해 투입될 것입니다.”

공개되자마자 ‘VR 산업의 미래를 바꿀 기술’이라 평가받았던 PRD의 생산과 공급 권한마저 테슬러가 받았다는 이야기에, 기자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지금 들은 것만으로도, PTW가 테슬러에 제공한 기술이나 권한의 가치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일린 모스크는 거기에 더불어 더욱 충격적인 소식까지 알려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건 아마도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사항이겠지만, 저희는 PTW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레벨 5’수준의 자율 주행 기술에 대한 이전을 약속받았습니다.

현재 해당 기술은 기술적으로는 완성되어 있으며, 지금은 최적화 작업 중에 있죠.

그들이 그 기술의 최적화를 완료하게 되면, 앞으로 테슬러의 자동차는 ‘레벨 5’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상태로 발매되게 될 것입니다.”

일린 모스크는 더 이상 기자 회견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도저히 질문을 참을 수 없던 기자들이 폭발적으로 그의 이름을 연호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자들의 외침은, 마이크를 잡은 일린 모스크의 목소리를 완전히 묻어버릴 정도의 크기로 뜨겁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모스크 씨! 모스크 씨!”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PTW에서 그런 엄청난 기술을 독점으로 제공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대체 무엇을 대가로 지급하신 겁니까?!!!”

개중 성격 급한 일부 기자들은 허락도 받지 않고 큰 목소리를 앞세워 아예 질문을 던지고 있었고, 모스크는 그런 기자들을 손짓으로 진정시키려 노력한 뒤 한 기자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러자 마이크 소리조차 묻어버릴 듯한 기자들의 외침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모두가 큰 소리로 떠들어 다른 기자의 질문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것보다는, 잠깐이라도 조용히 하여 그 기자가 질문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이득이었기 때문에.

“팍스 뉴스의 에릭 모너한입니다.”

“질문하세요.”

질문하려던 그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주변의 시선이,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않으면 널 반으로 찢어버릴 것이다.’

그것은 오늘 같은 대형 기자 회견에 처음 나온 신입 기자에게는 커다란 압박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는 것을 보며, 그는 마이크를 들고 물었다.

자신이 평소에 가장 궁금해했던, 바로 그 질문을.

“진짜로 PTW의 커피가 그렇게 맛있었습니까?”

“야 이 X놈의 X끼야!!”

“이런 X 친 놈이!?”

“지금 그게 이 상황에서 나올 질문이냐?! 기자 회견이 장난이야?!”

순간 터져 나온 엄청난 야유를 들으며, 모스크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숨을 고르며 애릭을 향해 말했다.

“하하하! 설마 그 질문이 나오리라고는 진짜로 생각도 못했습니다.

당신, 마음에 드는 군요. 우선 답변부터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에 든 질문을 하신 대가로, 한 개의 질문을 더 하게 해드리죠.”

에릭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모스크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했고, 모스크는 그런 에릭을 바라보며 마이크를 들어 말했다.

“원두의 질? 로스팅?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제가 PTW에서 먹은 커피는 제가 먹어본 커피 중에 가장 맛있게 느껴지는 커피였습니다.

이 정도면 답변이 이루어졌을까요?”

“예. 감사합니다.”

“그럼 추가 질문을 하세요.”

에릭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질문을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어디 보자. PTW는 미래 수십 수백조가 될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그것도 몇 마리나 테슬러 측에 선물했지.

그게 만약 게이머를 위한 결정이었다면, 무상으로 그 기술들을 제공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회사지만, 테슬러는 게임 관련 기업이 아니야.

그럼 그와 비슷한 값어치를 가진 뭔가의 대가를 얻어냈다는 건데···

테슬러에 그 정도 가치를 가진 카드가 있었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엘런은 모스크를 향해 질문했다.

“PTW가 그 모든 것을 제공하는 대가로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지나치게 스트레이트한 질문이군요.”

“주어진 기회를 잡았을 뿐이죠.”

“죄송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아니라, PTW가 자신들이 그 대가로 무엇을 받았는지 공개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저희야 당장 이 뉴스가 퍼지는 지금도 엄청나게 주가가 폭등하고 있지만, 유한 회사인 PTW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앞으로 진출하려는 분야에 대한 정보가 노출되는 디메리트 외에는 아무런 이득이 없으니까요.

제가 본 PTW는, 안에 핵미사일을 몇 개나 숨겨두고도 겉은 움막처럼 위장한 고도로 전략적인 회사였습니다.

누구도 그들이 어떤 잠재력을 가졌는지 모르고, 누구도 그들이 어느 수준의 기술을 가졌는지 모르죠.

그들이 그토록 정보를 쉽게 노출하는 회사였다면, 월가의 헤지펀드 5개가 그들과 관련된 이슈에 배팅했다가 한번에 망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테슬러는 PTW에게 한가지 선물을 더 받은 셈이 되겠군요.”

“그게 뭡니까?”

“공매도나 하고 다니는 탐욕스러운 월가의 머저리들이 더는 테슬러 주식에 손대지 못할 거란 소리죠.

이제 저희 뒤엔 PTW가 있으니까.”

“비즈니스 계약이 아니라 마치 동맹이라도 맺은 느낌으로 말씀하시는군요.”

“하하하! PTW의 이상혁 CCO와 저는 화성으로 묶인 사이입니다!

우린 함께 화성, 갈끄니까아아~!”

“아까부터 계속 그 알 수 없는 한국어를 외치시는데 그건 이상혁 CCO가 알려준 건가요?”

“예. 화성에 갈 것이다.라는 의지를 담은 한국어라며 제게 알려준 말입니다.

말할수록 혀에 착착 달라붙네요.

아무래도 이 구호를 테슬러의 파이팅 슬로건으로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럼 다음 질문받겠습니다!

그쪽에서 열심히 손들고 계신 기자분? 질문하세요.”

“시카고 트리뷴 소속 기자 샘 킴입니다.

조금 전, PTW에서 이미 ‘레벨 5’의 주행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가능합니까?

다른 문제는 다 제쳐두더라도, 노인과 아이의 딜레마 같은 문제는 해결할 수 없지 않나요?

AI에게 누굴 죽일지 결정할 권한을 줄 수 없다는 건, 기술의 정교함을 넘어 윤리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사항이니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 상혁은 PTW의 AI가 노인과 아이 딜레마 문제를 결정짓는 알고리즘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적어도 제가 듣기엔 가장 윤리적인 AI의 선택 결정 방식이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 부속된 질문이니 추가 질문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PTW가 자율주행의 윤리적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식은, 도대체 어떤 방식입니까?”

그것은 상혁이 일린 모스크를 데리고 갔던 테스트 쳄버에서, 모스크가 상혁에게 했던 질문과 동일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일린은, 그때 상혁이 자신에게 해 주었던 대답을 그대로 전달해주었다.

“우선, 이상혁 CCO는 저에게 인류가 AI에게 운전대를 완전히 맡기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이 2가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세상의 그 어떤 인간 드라이버도 따라갈 수 없는, 초 고감각 고성능의 자동 주행 AI였죠.

그들은 LiDAR 센서와 적외선 센서, 초고해상도의 고속 프레임 카메라와 주변 차량의 타이어 상태까지 확인할 수 있는 초 민감형 마이크를 활용해 ‘스파이디 센서’라고 불리는 기술을 개발해 냈습니다.

그것은 주변 차량에서 발생하는 차량 트러블부터 주차된 차량의 뒤에서 도로를 향해 튕기는 공의 소리까지 모든 정보를 슈퍼 히어로의 수준으로 감지해내죠.

그렇게 모인 정보를, 그들은 인간의 판단 능력을 훨씬 상회하는 초  고성능의 자율주행 AI에 제공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그 어떤 드라이버보다도, 가장 사고를 잘 피할 수 있는 AI를 만들어낸 겁니다.

이상혁 CCO는 그런 AI의 가상 주행 데이터를 저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언하건대 이 AI가 피할 수 없는 사고는 세상의 그 어떤 드라이버도 피할 수 없는 불가피한 사고가 될 겁니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드라이버도 이 AI만큼 사고 피해를 줄이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의 주행 반응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고요.’

그가 제게 보여준 영상은, 그것을 확신하게 하기에 충분한 기술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도저히 인간의 주행이라고 볼 수 없는 놀라운 주행 능력을, PTW의 자율주행 AI가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그럼 나머지 하나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그건 바로 AI가 선택한 희생의 ‘합리성’입니다.”

모스크가 말했다.

“물론 PTW의 자율주행 기술은 애당초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수준의 주행기술을 통해 노인과 아이 딜레마 같은 상황에 처하는 것 자체를 회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PTW는 강제적으로, 혹은 예측할 수 없는 사고로 인해 그런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PTW의 자율주행 AI는 사용하고 있는 연산 칩셋의 한계점까지 코어를 돌려 충돌 시뮬레이션을 수행합니다.

그 시뮬레이션의 목적은 단 하나죠.

‘두 사람의 희생양 중, 어느 희생양의 사고 후 생존 가능성이 더 큰가.’

미래를 보지 않는 이상, 우린 어떤 사고에서 100% 사람이 죽을 거라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시속 300㎞로 질주하는 차량에 7살짜리 아이가 치이면 99.9999999% 확률로 사망자가 나오겠죠.

그런데도, 아주 작은 확률의 오차는 존재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몸의 자세가 충돌 시에 아주 약간의 충격을 더 흡수할 수 있는 자세를 하고 있다거나, 대상의 반사 신경이 다른 희생양보다 조금 더 좋을 것으로 예상한다거나.

PTW의 AI는, 어떤 상황에서건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되는 결과를 끌어내는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설사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결과가 되더라도, 최소한 시도는 한다는 거죠.

자율주행 기술에 있어서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법적으로 그 어떤 존재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최소한 자율주행차량의 제작사가 ‘세상 그 누가 나섰더라도, 이것이 최선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죠.

만일 PTW의 레벨 5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테슬러 차량이 사고에 휘말리게 된다면, 저희는 법정에서 이렇게 주장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사고였습니다.’라고.”

기자들은 충격받았다.

만약 그런 기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일린 모스크가 PTW에게 얻어낸 권한은 도저히 측정 불가수준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기에.

그것은 굳이 자동차 업계에 한정 짓지 않더라도, 구골이나 아마죤 등 자율주행 기술에 관심 있는 수많은 업체가 돈을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원할만한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서 일린 모스크의 기자 회견을 지켜보고 있던 상혁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화성 아저씨 말 잘하네.”

스크린을 통해 일린 모스크의 기자 회견을 지켜보던 상혁이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며 중얼거리자, 현주가 말했다.

“뭐, 페이펄부터 이번에 우리가 지분 50%를 확보한 스페이드 X까지, 각자 분야도 다른 수많은 대기업을 지금 수준까지 끌어올린 사람이잖아.

말재주가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아니지.”

“뭐 그건 그렇죠.”

현주는 상혁이 앉은 소파의 옆자리에 앉아 함께 기자 회견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상혁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기자들은 PTW가 이번 거래에서 손해를 보았다는 쪽으로 기자 회견을 끌고 가려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겠죠? 저희가 이번에 넘긴 기술은 향후 인류 미래의 100년을 책임질 중요한 가능성을 품은 핵심기술이니까요.”

“나도 그게 좀 의아했는데, 물론 상혁이 네가 스페이드 X의 스타링크 시스템이 PTW에 필요하다고 설명해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번 거래는 우리 쪽 손해가 너무 큰 게 아닌가 싶어.

내가 생각하는 상혁인 항상 미리 준비해놓고 때가 되었을 때 터트리는 타입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번 협상은 조금 너무 빠르게 진행한 게 아닌가 싶은데, 혹시 이유가 있다면 들을 수 있을까?”

“딱히 숨기려는 건 아니니 설명해드리는 거야 어렵지 않죠.”

상혁은 자세를 고쳐잡으며 현주에게 말했다.

“이번 거래를 조금 급한 느낌으로 무리하게 진행한 이유는, 이후에 있을 더 큰 거래에서 우위를 잡기 위해서예요.”

“더 큰 거래?”

“DARPA요.”

“아, 맞다. 안 그래도 DARPA측에서 연락이 와서 그거 알려주려고 온 거였는데.”

“미팅을 미루자는 내용이죠?”

“어? 벌써 확인했어?”

“아뇨. 확인하지는 않았어요.

아마도 저희 쪽에서 테슬러를 끌어들였으니, 저쪽에서 그렇게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테슬러와의 거래가 DARPA와의 만남에 영향을 끼친다고?”

“저희는 한국의 작은 게임회사죠.

물론 이제는 작다고 하기는 애매할 정도로 커져버리긴 했지만.

아무튼, DARPA측에서 저희에게 연락한 타이밍을 보면, 그쪽의 의도는 명확해요.

코넥트 때는 멋대로 남의 장비를 마개조해서 자기들 무기에 사용하던 조직이, 갑자기 협력요청을 해온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그건···.”

상혁을 말을 듣고 있던 현주가 말했다.

“자기들 능력을 벗어났구나. 딥 다이버는 STC 기술이 들어갔으니, STC가 없으면 제대로 된 성능의 응용프로그램을 만들기 어려워서 그런 거 아냐?”

그러자 상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기본적으로 하드웨어 성능만 오파츠급 장비였던 코넥트와는 다르게, 딥 다이버는 안에 들어간 프로그램을 최적화시키는 STC라는 기술이 들어갔죠.

그게 2017년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연산 성능의 다른 장비보다 저희 딥 다이버가 그래픽이나 처리속도가 매우 뛰어난 이유고요.”

“그래서?”

“DARPA는 기본적으로 국방부에 납품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정부 기관이에요.

그리고 미국의 방위 산업은, 기본적으로 언제나 한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죠.

‘우린 좋은 장비, 너흰 구린 장비.’

미국은 그들로서는 엄청나게 구형인 F16을 넘기면서도 ‘절대 함부로 분해하지 마라’, ‘개조 금지’같은 무지막지하게 쪼잔한 조항을 덕지덕지 붙여서 팔아넘겨요.

하물며 딥 다이버를 통해서 그들이 만들려는 건, 앞으로 전쟁사를 바꿀지도 모를 슈퍼 솔져 프로젝트죠.

딥 다이버를 착용한 병사들이, 전장에서 온갖 정보를 빠르게 전달받으며 일당백의 전투력을 내게 만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중요한 기술을, 아무리 동맹국이라지만 한국의, 그것도 주변의 영향을 언제라도 받을 수 있는 일개 게임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다는 건 굉장히 거슬릴 수 있는 문제죠.”

“그럼 DARPA가 원하는 건 딥 다이버 기술의 군사적 이용에 대한 독점권한이야?”

“아뇨, 그 정도 수준이 아닐 겁니다.

그쪽에서는 아마도 STC 자체를 원하고 있을 거예요.

딥 다이버 자체는, 양산품인 딥 다이버를 사서 뜯어고쳐 구현할 수 있겠지만, STC는 저희가 보유한 AI 센터에서 돌아가는 일종의 프로그램이니까요.

STC를 넘겨받지 않으면, 앞으로 DARPA에서 만드는 딥 다이버용 전투 프로그램을 저희가 받아서 STC로 돌려서 딥 다이버에 업데이트해줘야 해요.

그건 보안적으로 엄청나게 껄끄럽겠죠.

미국의 최신 군사 작전용 프로그램을 한국의 게임사에 대신 패치해달라고 넘기는 꼴이니까.”

“그런데 그거랑 테슬러 랑은 무슨 상관, ···아!”

상혁에게 말하던 현주의 눈이 커졌다.

“이번 거래로 인해 STC의 시장 가치가 생기는구나.”

그러자 상혁이 웃으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

“맞아요. 기본적으로 시장 가치가 정해져 있지 않은 어떤 물건의 가격을 결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물건을 마켓에 내놓는 거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동전이 있다고 할 때, 그 물건의 감정가는 측정하기 어렵겠지만, 비슷하게 전 세계에 단 하나만 있는 다른 동전의 경매 가격으로 어느정도 추정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STC는 그럴만한 물건이 아니고, 게다가 저와 민준은 그럴 마음도 없었죠.

그래서 테슬러에 자율주행 기술의 권한을 넘긴 거예요.

그건 STC 기술이 있어야만 동작하는 기술이니까.

말하자면 저희가 테슬러에 넘긴 자율주행 기술보다는, 그 기술을 쓰기 위해서 테슬러가 빌려 쓰게될 STC기술의 가치를 평가받으려고 한거죠.”

“하지만 3차 NE 컨벤션 때 발매된 게임들도 전부 STC 기술이 들어갔잖아?

지금도 패치 데이터를 우리 쪽에 보내서 업데이트하고 있고.”

“그건 게임 관련 작업이었으니까 저희 쪽에서 공짜로 쓰게 해준 거고, 오히려 DARPA쪽에서 그걸 빌미로 가격을 후려치거나 독점 사용을 강요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저희가 테슬러에 요구한 게 있으니까요.

만약 미국의 안보 어쩌구 하는 개소리 하면서 STC나 저희가 보유한 다른 기술들을 멋대로 가져가려고 해도,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겠죠.

만약 그쪽의 요구 때문에 저희가 테슬러와 맺은 거래에 문제가 생기면, 그 위약금은 전부 DARPA가 지급해야 할 테니까.

이번에 미팅을 미루자고 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을 겁니다.

그쪽 입장에서는 쉽게 가려고 했겠지만, 그들이 생각하던 것보다 그들이 사려는 기술의 가치가 엄청나게 뛴 기분이었을 테니까요.

게다가 그 기술을 구매한 업체는 미국의 대기업이죠.

한국의 게임회사를 압박하려고 미국의 대기업에 손해를 끼치는 상황을, 그들은 감당하고 싶지 않을 거예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 같아?”

“첫째로, 원래 저희와 미팅을 진행하기 위해서 상부에 요청했던 예산 수준을 어마어마하게 올려서 다시 요청하겠죠.”

“그리고?”

“그리고 까일 겁니다.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국방 예산을 많이 쓰는 국가이긴 하지만, 그만큼 큰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승인을 통과해야 하니까.

나머지는 DARPA 직원의 역량에 달렸죠.

화려한 말빨과 언변으로 상부의 허락을 받아내서, 저희와 협상이 아슬아슬하게 가능한 수준의 금액을 마련할 수 있으면 다시 연락할 거에요.”

“그렇지 못하면? 포기할까?”

“절대 포기는 안 할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 그렇다고 정부 기관이 국회를 상대로 로비를 할 수 있을 리도 없잖아?”

“돈 다루는 부서에서는 가끔 로비도 할 걸요?

그런데 DARPA는 보유한 기술에 비해서 그렇게 엄청나게 돈을 많이 쓰는 기관은 아니에요.

한 해 예산이 3~4조 정도니까.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인터넷을 개발한 집단이란 걸 생각하면 적다고 할 수 있죠.

문제는 국회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거예요.

매년 3~4조씩 잡아먹는 부서에서, 갑자기 ‘게임회사가 보유한 기술을 빌려 써야 하니 올해는 10조만 더 주세요.’ 라고 한다고 생각해봐요.

미국 국회에서 이뻐하겠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

“돈으로 안 되면 인정에 밀어부쳐야죠.

저희 PTW는 미군에 우호적인 회사로 유명하니까.

‘미군을 위해서 용단을 내려주십시오’ 같은 감성팔이 펼치면서 열심히 설득해야죠.”

“그 감성팔이에 당해줄 거야?”

“제가요?”

상혁은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안 되죠.”

***

상혁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때, 미국 버지니아 주 알링턴에 있는 DARPA 빌딩에서는 상혁의 말대로 테슬러의 발표와 동시에 미팅 계획을 취소하고 후속 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골머리를 쥐어 짜내도 현 상황에 대한 특별한 타계책은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들은 상혁이 말한 것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 어려우니, 일단 감성에 호소해보기로.

“EOD라는 게임을 보면 PTW는 미군이란 조직에 극히 호의적인 회사일 겁니다.

그러니 미군의 생명을 위해서 조금만 양보해달라는 식으로 이야기해봅시다.”

대니의 상관인 스티브 오스틴이 말하자, 대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설마 그게 정말로 먹힐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먹히지 않을까?”

“그걸로 포기하는 돈이 10만 달러나 100만 달러 수준이면 그것도 좋겠죠.

그냥 기부하는 셈 치면 되니까.

하지만 이건 10억, 20억 달러 가치를 가진 기술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어쩌면 100억 달러가 될 수도 있고요.

그 정도 금액에 감성을 들이대는 인간은 없어요.”

“그럼 어쩌라고? STC가 없으면 슈퍼 솔져 프로젝트도 없다며?

하지만 국회에서는 절대 100억 달러를 내주지 않을 거란 말일세!”

“그걸 타 내는 게 스티브 씨의 일이지 않습니까!”

“야 이 자식아, 그렇다고 1년 예산의 2배가 넘는 금액을 기술 협력 비용으로 신청하냐?!”

결국 스티브는 대니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천재 엔지니어니까 괴팍한 면도 있을 수 있지’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참아왔지만, 그것도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자 대니는 자신의 말은 그런 의도가 아니라며 갑갑하다는 표정으로 스티브를 향해 말했다.

“돈에 욕심이 없는 인간들을 설득하려면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돈을 들고 가야죠!

무려 미군의 미래가 걸린 기술입니다!

10억 달러로 살 수 있다면 엄청 싼 거라고요!

아마 살수만 있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는 그 10배를 주고서라도 살 거란 말입니다!”

“그건 절대 아니야. 거기도 그 예산을 다루는 게 군인이라면, 절대 게임회사에 그 정도 돈을 쓰지는 않을걸?”

그렇게 말하는 스티브의 목소리에는, 군대라는 경직된 조직에 대한 회의감이 담겨 있었다.

그라고 이 기술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러나 전장을 벗 삼아 삼아온 나이든 군인들에게, 시대를 초월하는 최첨단 IT 기술의 가치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었다.

하다못해 시제품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보통 예산을 타내려면 그게 청사진이든 시제품이든 구체적으로 어떤 장비를 만들려는 건지 상부에 보여줘야 한단 말일세.

그런데 지금 우린 그 시제품을 만들기 위한 기술을 사려고 100억 달러를 달라고 하는 거란 말이야.

그게 윗분들 귀에 어떻게 들릴지 생각해봤나?”

“그럼 윗분들이 바라는 건 뭡니까?”

“딥 다이버 수준의 성능은 안 나와도 되니까, 비슷한 기능을 가진 미군 자체 장비를 개발하라는 이야기를 하시던데?”

“아니, 그게 가능하면 진즉 했죠!

2차 대전 탱크 정비사한테 A1 탱크를 개조하라고 하면 그게 됩니까?!”

“말했지만 윗분들은 보여주기 전엔 모른다니까.

우린 딜레마에 빠진 거야. 예산을 타려면 시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시제품을 만들려면 예산이 필요한 상황인 거지. 참 X 같군.”

“X발···.”

그때, 조용히 중얼거리던 대니가 고개를 번쩍 들며 스티브에게 말했다.

“잠깐만요.”

“어?”

“시제품이 있으면, 예산을 타 낼 수 있는 겁니까? 확실하게?”

“아마도. 그 시제품이 자네가 말한 ‘이상적인 슈퍼 솔져’ 프로젝트에 100% 부합한다면 예산은 나올걸세.

그걸로 인해 엄청난 전투력 상승이 발생할 테니까.”

“그럼 그 정도는 어떻게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가능하다고?! PTW의 도움 없이?”

“아뇨. 대전제를 함부로 고치지 마세요.

딥 다이버용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STC는 필수입니다.

그건 절대 변하지 않아요.

진짜로 엄청나게 구린 프로그램을 돌리려는 게 아니라면.”

“그러면?”

“시제품이 필요하면, 그 시제품 제작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면 되죠. PTW 측에요.”

“뭐?!”

“굳이 기술을 사서 저희가 시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PTW쪽에 시제품 제작 자체를 도와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 이후에 예산이 승인이 나면, 돈은 그때 주겠다고 하고요.”

“그게 먹힐 거 같나?”

“그냥은 안 먹히겠죠.

하지만 저희는 DARPA입니다.

PTW만큼 엄청난 황금 카드들이 즐비하지는 않아도, 저희도 나름의 카드가 있어요.”

“우리가 가진 카드?”

“기술이요.”

대니가 말했다.

“PTW만큼 기술지향적인 게임회사는 없죠.

저희가 가진 기술 중에는, 분명 그들이 탐내는 기술도 있을겁니다.

PTW가 겨우 스타링크 시스템의 지분 절반을 위해서 그 수많은 특혜를 테슬러에 넘겨준 것을 보세요.

저희가 가진 기술도 절대 만만하지 않습니다.

분명 거래 가능한 카드가 있을 겁니다.”

“기술을 주고 기술을 받는 거군.”

“그렇죠. 대신 그렇게 하려면 스티브 씨가 미팅에 저를 데려가셔야 합니다.”

안 그래도 사람 속 긁는 게 장기인 대니가 PTW와의 미팅에 참여하겠다고 하자, 스티브가 펄쩍 뛰며 대니에게 물었다.

“자네는 왜!?”

그러자 대니는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스티브를 향해 말했다.

“혹시 저희가 개발 중인 프로젝트 리스트 전부 다 설명하실 수 있으세요?”

“···여권이나 찾아놔.”

자신에게 선택의 권한이 없음을 깨달은 스티브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대니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도, 보고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산 계획에도 없던, 뜬금없이 100억 달러를 달라는 터무니없는 요청은 아니었지만, 기술 거래 역시 상부에 보고가 필요한 사항이었기 때문에.

스티브는 쓰린 속을 손으로 문지르며, 조용히 투덜거렸다.

“젠장, PTW고 대니고 죄다 답을 정해놓고 상대방에게 행동을 강요하는군.

이게 무슨 협상이야. 협박이지.”

그렇게 말하는 스티브의 투덜거림엔, 사무실에서도 대화하기 싫어서 일부러 피해 다니는 대니얼과 무려 12시간을 함께 비행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듬뿍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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