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화성에 갈 남자
상혁의 드립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좋은 분위기에서 시작한 협상은,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진지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상혁이나 일린 모스크, 두 사람 모두 수십조가 걸린 거래에 첫 만남에서 생겨난 화기애애한 감정을 끌고 올 타입의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게다가 이번 협상에서는, 서로가 상대에게 원하는 바가 명확하게 갈리고 있었다.
물론 테슬러 측에선 PTW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오픈한 상태였지만, PTW는 테슬러에게 자신이 원하는 카드를 오픈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테슬러 측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오직 자신들과 PTW가 손을 잡았을 때 가져올 빛나는 미래에 관해 설명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역할은, 일린 모스크가 데려온 테슬러의 CFO, 자크 커그헌이 맡게 되었다.
“테슬러의 CFO, 자크 커그헌입니다.
우선 저희가 준비한 자료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혹시 스크린과 연결된 PC를 쓸 수 있을까요?”
상혁은 자크를 위해 민감한 자료가 담긴 내부용 PC의 연결을 해제하고 별다른 내용이 없는 PC를 스크린에 연결해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일런 모스크가 상혁을 보며 물었다.
“그런 작업을 직접 하시네요?”
“기본적으로 이 부실 내부에서 이뤄지는 잔 작업은 PTW 임원들이 직접 합니다.
전 PC 세팅과 커피 담당이죠.”
“아···. PTW의 커피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꽤 유명하더군요. 저도 맛볼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죠. 자크 씨가 자료를 준비하는 동안, 제가 커피를 내어 드리겠습니다.”
“그 유명한 PTW의 CCO가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게 되다니, 나중에 기자들 앞에서 자랑해야겠습니다.”
모스크의 말을 들으며 커피를 내리던 상혁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제 커피 맛이 좋다는 풍문엔 그런 부분이 적지 않게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커피숍에서 전문 바리스타가 내리는 커피가 맛있는 건 당연한 거지만, 커피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타는 커피는 비슷한 맛만 나도 훨씬 대단하게 느껴지는 법이니까요.
의외로 특별한 레시피 같은 건 없어요.”
상혁은 부실에 있는 모든 멤버들의 커피를 준비해서 한 잔씩 돌렸다.
그리고는 자신도 커피잔을 잡고는 자리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자크를 향해 말했다.
“식기 전에 한 모금 하시고 시작하시죠.”
자크 역시 상혁이 타준 커피 맛이 궁금했기에, 그는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커피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갔다.
그리고는 깊게 향을 들이마시고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향이 놀랍네요.”
“매일 아침 새로 볶은 원두를 쓰니까요.
매년 커피 추수철이 되면, 저는 각 생산지의 그해 기후를 검토해서 가장 맛있는 원두가 어느 산지의 원두일지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후보들을 주문해서 가장 괜찮은 원두를 찾고, 그 원두 맛에 어울리는 로스팅 시간을 찾아서, 맛있는 커피가 나오는 분쇄도를 찾을 때까지 테스트를 반복하죠.”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죠?”
“그냥 맛있는 커피가 좋아서입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PTW는 저희가 고등학생 때 만든 동아리에서 시작된 회사입니다.
1998년부터, 저희는 게임을 제작하기 시작했죠.
지금은 전국 어디서나 커피숍을 찾을 수 있지만, 당시엔 맛있는 커피숍을 찾으려면 꽤 발품을 팔아야 했죠.
그래서 돈이 좀 벌리길래 그냥 겉멋으로 에스프레소 머신을 좀 비싼 물건으로 고른 게 시작이었습니다.
좀 더 편하게, 제가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요.
그런데 팀원들이 자꾸 커피 맛이 좋다 좋다 하니까 실망하게 하지 않으려고 점점 노력하게 되더군요.
요즘엔 저보다 맛있게 뽑는다는 커피숍 이야기를 들으면 거기 가서 맛을 보고 이기려고 노력할 정도입니다.
취미가 집착되어버린 거죠.
아무리 철야를 반복해서 피곤에 절어 있어도, 아침에 출근하면 본능적으로 커피를 볶을 정도로.”
“저희도 지금은 아침에 출근해서 커피 향이 가득한 부실에 앉아 모닝커피를 나누며 한담을 나누는 게 삶의 작은 즐거움입니다.
전날 좀 늦게 자거나 피곤해서 출근하기 싫은 날도, 아침의 그 시간을 생각하면 기분 좋게 출근할 수 있거든요.”
서연이 웃으며 말하자, 일린 모스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요. 회사가 즐겁게 느껴지는 것만큼 직원에게 최고의 복지는 없을 테니까요.
게다가 이 정도 맛이라면 저도 매일 출근하고 싶은 기분입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맛이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래 조건을 깎아드리지는 않을 겁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요.”
“그건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희도 오늘의 협의를 위해, 저희가 준비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준비해왔으니까요.”
그렇게 말한 일린 모스크는 자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작하세요.”
그러자 자크가 자신이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실행시키며 준비해온 것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만한, 매우 화려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프레젠테이션이었다.
“먼저 저희가 PTW측에 원하는 것은 보내드린 제안서에 있던 것처럼 자동차 업계에서 딥 다이버 사용을 독점적으로 테슬러 만이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로 인해 PTW가 잃어버릴 커다란 시장 규모에 대해서는 저희도 잘 알고 있기에, 저희는 그 대가로 테슬러 지분의 5%를 PTW측에 지불하고자 합니다.
수량으로는 156만 7천 주이며, 어제 PTW의 기자회견 이후 상승한 주식 가격인 주당 87.5달러 수준으로 계산하면 금액으로 1억 3천7백11만 2천 500달러의 가치가 있는 주식입니다.”
그것은 한국 돈으로는 1500억에 가까운 금액이었지만, 딥 다이버의 독점 사용에 대한 대가로는 매우 적은 금액이라 할 수 있었다.
자크는 그 부분에 대해 상대가 지적하기 전에 먼저 선공을 날렸다.
“물론 PTW가 딥 다이버의 독점 해제로 벌어들일 이득을 고려하면, 이 수준은 절대 높은 금액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테슬러는 이제 떠오르기 시작하는 기업이죠.
앞으로 이 5% 주식의 가치는 미친 듯이 오를 것이고, 그 미래가치를 생각하면 결코 나쁜 거래가 아니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자크의 발언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마치 시장 바닥에 좌판을 깔아둔 장사꾼처럼 들리는 발언을.
“죄송하지만 저흰 현금만 받습니다.”
현금.
문제는 현재의 테슬러 역시 현금 흐름에 있어서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자크는 포기하지 않고 설득을 이어나갔다.
“단순히 다른 자동차 업체들보다 저희와 먼저 미팅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테슬러의 주가는 15%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만약 독점 계약이 현실화된다면, 거기서 얼마나 오를지를 상상해보세요.
이건 절대 나쁜 거래가 아닙니다.”
“지금 주가에서 300%가 증가해도 5억 달러 아닙니까?
지금 말씀하시는 건 한시 독점이 아닌 영구 독점입니다.
5억 달러 받고 팔기엔 수지가 맞지 않는데요.”
“테슬러의 주가는 이후엔 더 오를 겁니다. 엄청나게.
지금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후회할 정도로요.”
상혁은 ‘나도 알아, 너희 주식 미친 듯이 오르는 거.’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을 꾹 참으며, 상대가 주장하는 미래가치를 뻔뻔한 표정으로 평가 절하했다.
“만약 한 업계에서의 독점 사용 권한에 대한 문제라면, 업계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희는 50억 달러 이하로는 이야기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애당초 산업용 딥 다이버의 판매에 대한 수익은 SANY와 함께 5:5로 나누게 계약이 되어 있어요.
저희가 50억 달러를 받아도 SANY와 반으로 쪼개면 25억 달러죠.
단순히 주식의 미래가치만 두고 거래를 하시려던 거라면, 다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폭스바겐, GM, BMW, 토요다, 형대 자동차.
현금을 수백억 달러 단위로 쌓아두고 저희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상대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것은 조금 전까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기에, 자크는 속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는 PTW의 성향과, 지금의 상혁이 말하는 태도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뭐야, 돈엔 관심 없는 거 아니었어?’
그가 사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PTW는 아마존과 마찬가지로 극미래 지향적인 기업이라 할 수 있었다.
당장 벌 수 있는 수조 원보다도, 미래에 수십조로 돌아올 가치가 있는 일에 투자하는 기업.
회사가 벌어들인 막대한 이윤 대부분을 기술 투자와 사원 복지로 전부 써버리는 기업.
단 한 사람의 영입을 위해서, 1조 원이나 되는 보상금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기업.
그가 사전 조사를 통해 파악한 PTW는 그런 회사였다.
지금 상혁이 말하는 것처럼, ‘당장 돈다발을 가져와 내 앞에 쌓아놓던가, 아니면 꺼져’라고 말하는 회사가 아니라.
이것은 그가 상정한 상황과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우선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시기 전에, 제가 준비한 다른 자료를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준비한 것은, 단순히 지분 제공만이 아니니까요.”
당황한 자크는 급하게 슬라이드를 넘기며 자신이 준비한 다른 카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우선 얼마 전 TV 쇼를 통해 공개하신 PRD라는 장비에 대해서, 저희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강한 흥미를 느꼈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수많은 ‘모터’들에 대해서요.
아시다시피 테슬러는 전기 자동차를 생산하는 회사고, 그 안에는 엔진 대신 모터가 들어갑니다.
저희가 보유한 전기 모터에 대한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죠.
만약 저희와 함께하시면, 저희는 그 부분에 관한 기술 지원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아예 PRD의 생산 자체를 SANY나 MS가 아닌, 테슬러에서 생산해드릴 수도 있죠.
저희가 전 세계에 전기 자동차 판매를 위해 마련한 유통망을 통해, PRD의 유통을 책임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코넥트와 딥 다이버를 생산할 때 PTW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아예 원가 이하에 장비를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그것은 테슬러가 이번 협상을 위해 준비한 히든카드였다.
PRD의 가격이 아무리 최적화를 해도 수천만 원 이상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보급가를 낮출 수 있을 거라는 제안만큼 PTW가 원하는 조건은 없을 것이었기 때문에.
자크는 다른 조건이 다 맞지 않아도 이 조건 만큼은 먹힐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혁도, 이번엔 흥미가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크의 말에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건 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네요.”
“그럴 거로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PTW가 추구하던 방향을 보면, 아마도 이 제안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테니까요.”
“보이는 것으로는 그렇게 보이겠죠.”
“예?”
“테슬러가 좋은 CFO를 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상혁이 말했다.
“좋은 장사꾼의 조건은, 내 이득을 마치 상대의 이득인 것처럼 잘 포장하는 능력에 있죠.
그 부분에서 자크 씨는 상대를 치밀하게 분석하여 상대가 원할만한 카드를 제대로 준비해오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현명한 사람은 그런 거래에서 내 이득보다 상대가 얻는 이득을 먼저 생각한다는 겁니다.
방금 하신 제안은, 얼핏 들으면 테슬러에서 손해를 감수하면서 PRD의 생산과 보급을 대신 맡아서 해준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저희가 독점적으로 보유한 기술로 만들어진 장비의 생산 및 유통 권한을 테슬러에서 가져가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현금이 아니라 주식 양도를 이야기하신 것도 의도는 명확하죠.
지금까지 저희는 아예 회사를 통째로 사면 샀지 지분 일부를 받고 함께 협업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저희는 지금까지 오랜 기간 함께한 SANY나 MS의 주식도 단 1주 조차 가지고 있지 않죠.
이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만약 저희가 그런 관례를 깨고, 테슬러의 주식을 받았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요?”
“···함께 손을 잡은 파트너처럼 보이겠죠.”
“자크 씨는 자크 씨가 다니는 테슬러라는 회사의 미래가치가 엄청나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만,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저희가 보유한 기술이나 IP가 보유한 가치가, 절대 테슬러가 가진 미래가치에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게다가 지금 당장의 현금은 저희가 테슬러가 가진 현금 흐름을 압도하죠.
테슬러가 지금 도약을 시작한 기업이라면, 저희는 이미 콘솔 게임 시장에서 날아다니고 있는 기업이니까.
그러니 미래가치나 협업을 통한 시너지 같은, 얼핏 듣기엔 이득처럼 들리는 사탕발림은 그만둡시다.
거래는 서로가 가진 ‘물건’을 가지고 하는 것이고, 지금 현재 저희가 가진 물건의 가치는 테슬러가 가진 물건의 가치를 압도하고 있으니까요.
한쪽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더 가치 있는 물건을 가지고 있을 땐, 어느정도의 손해도 감수하셔야죠.”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의 테슬러의 현금 흐름은 그렇게 유동적이지 못합니다.
그걸 알고 계시면서도 먼저 협상에 응하셨다는 건, 저희에게 바라는 게 돈이 아니라는 의미겠지요?
저희가 절대로 PTW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현금을 낼 수 없다는 것은 PTW 측에서도 잘 알고 있으시니까요.”
“맞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건 현금이 아닙니다.
그러니 현금다발을 가진 다른 업체보다 테슬러와 먼저 협상을 진행하려 한 거죠.”
“그렇다면 이 협상은 저희가 제공할 수 있는 것들을 늘어놓는 것보다, PTW측에서 저희에게 원하는 것을 듣는 것이 더 빠르겠군요.
그리고 그것을 서로가 제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자크의 말에 상혁이 다시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일린 모스크를 향해 말했다.
“역시, 좋은 CFO를 뽑으셨군요.”
상혁의 말을 들은 모스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상혁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PTW측에서 테슬러에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솔직히 말하면, PRD 생산과 유통에 관한 손해를 감수하겠다고 한 것조차 저희에겐 큰 도박이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대가를 바라신다면, 저희에게 지불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군요.”
모스크의 질문에 상혁이 대답했다.
“적어도 저희가 원하는 것을 지불할 능력이, 테슬러에는 없습니다.”
그리고는 모스크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일린 모스크 씨에겐 있죠.”
“그게 무슨 말입니까? 테슬러는 제가 가진 자산 중 가장 큰 자산입니다.
테슬러가 지불할 수 없는 대가라면, 그것보다 작은 다른 자산들로는 더 힘들겠죠.”
“하나 있죠. 현재 가치는 테슬러보다 작을지 몰라도, 미래가치는 테슬러보다 더 큰 기업. 바로 스페이드 X가요.”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민준이 자신에게 얻어달라고 요청한 요구 조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스타링크 시스템의 대역폭에 대한 우선 처리권과 앞으로 발사할 스타링크 시스템에 PTW의 데이터를 전용으로 처리하는 설비를 추가해달라는 요구를.
그것은 일린 모스크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상장도 하지 않은 주식의 50%라니, 지금 말씀하신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조건입니다!”
흔히 알려진 대로, 경영권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지분 보유량은 51%였다.
그리고 상혁이 50%를 달라고 요구한 것은, 말 그대로 현재의 스페이드 X라는 회사의 ‘절반’을 뚝 떼어서 달라고 요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것은 테슬러가 PTW에 바라는 것이 아무리 크다 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하다못해 49%까지라면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이해라도 하려고 노력해보겠습니다마는, 대놓고 절반을 달라는 건 너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최소한 상식적으로 납득 가능한 수준의 요구를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먼저 미래가치 운운하면서 저희의 핵심 자산을 날로 먹으려는 제안을 던진 것은 테슬라 측이죠.
그 제안을 받았을 때 테슬러 측이 얻게 될 막대한 주가 상승에 관한 이야기는 쏙 빼고요.
먼저 그쪽에서 원하는 카드를 오픈했으니, 저희도 솔직하게 원하는 카드를 오픈한 것뿐입니다.
그게 받는 것에 비해 너무 과도한 요구라고 생각하신다면, 이제부터 조율을 해 나가야겠죠.”
“조율의 방향이 지분율의 조정이 아니라면, 협상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아뇨. 그건 확정입니다. 저희도 저희가 확보한 지분에 대한 방어권 정도는 확보해야죠. 그래서 절반인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제가 자금 확보를 위해서 주식을 파는 순간 회사를 통째로 빼앗기게 됩니다.
어떤 바보도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겠죠.”
“그 부분에 대한 해결은 간단합니다.
50%에 대한 조건을, 양사가 보유한 지분의 합에 대한 50%로 맞추면 되죠.”
상혁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은 일린 모스크가 상혁에게 물었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자금 확보를 위해서 비상장 주식을 판다고, 그걸 무조건 한쪽에서 지불할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만약 일린 모스크 씨가 스페이드 X의 자금 확보를 위해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 주식의 10%를 판매한다고 하면, 그중에 절반은 저희 지분에서 빼서 파시면 됩니다.
반대로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식을 다시 회수하려면, 무조건 산 주식의 절반은 저희에게 돌려주시면 되고요.
그런 식으로 양사가 보유한 주식의 합이 무조건 5:5로 나뉘도록 조정하는 겁니다.
이건 반대로 저희가 시장에서 스페이드 X의 지분을 확보해도 같은 식으로 돌아가고요.”
“그러니까, PTW에서 스페이드 X의 주식을 살 때도 PTW가 산 주식의 절반은 제 것이 된다는 이야기입니까?”
“바로 그겁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수익실현이 아니라, 그 누가 오더라도 저희가 가진 권리를 방어할 수 있는 권한이니까요.”
“듣도 보도 못한 계약 방식이네요.”
“원래 저희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을 많이 합니다.
적어도 이렇게 하면, 일린 모스크 씨가 강제로 저희가 얻어낸 권한을 박탈하거나 저희가 일린 모스크 씨의 경영권을 빼앗을 일은 없겠죠.”
“외부 의결권을 포섭해서 제 자리를 노리는 경우는 어떻게 됩니까?”
“양측의 의결권은 무조건 하나의 의견만을 따를 수 있도록 강제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도, 스페이드 X가 보유한 51% 이상의 지분은 무조건 하나의 의견만 따라가는 거죠.
그러니 저희가 외부의 주주들을 모두 포섭하더라도, 모스크 씨가 저희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으면, 저희는 의결 권한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모스크 씨도 저희의 동의 없이는 중요 의제를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없고요.”
“말 그대로 ‘방어’만을 위한 수단으로 쓰시겠다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쳐도, 스페이드 X라는 회사의 미래가치를 감안 했을 때, 지금의 거래는 저희에게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심지어 딥 다이버의 독점권에 PRD의 독점 생산 권한까지 넘겨 주신다고 해도요.
PTW측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적어도 그 두 가지 카드의 값어치보다는 스페이드 X의 미래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방금 그 제안을 듣자마자 제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당장 회의실을 박차고 미국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별다른 추가 제안이 없다면, 저는 그렇게 할 겁니다.
커피는 정말 맛있게 잘 먹었지만, 커피값의 대가로는 너무 큰 손실이니까요.”
일린 모스크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실제로 스타링크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동작하게 된다면, 초고속 인터넷망이 없는 전 세계의 고객들이 스타링크의 잠재 고객들이 되는 거니까.
그들에게 매달 일정 수준의 금액만 받아도, 스페이드 X가 매달 얻게 될 현금의 양은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일린 모스크를 보며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모스크 씨는 오늘 이 계약에 사인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실 겁니다.
그것도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요.”
“스페이드 X의 지분 절반을 달라는, 이 황당한 조건에 제가 사인을 하고, 그것도 즐거운 기분으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요?
제 생각엔 PTW가 가진 그 어떤 기술도 스페이드 X의 지분 절반의 가치는 없습니다.
대체 뭘 믿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모스크의 말에 상혁이 답했다.
“왜냐하면, 오늘 저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테슬러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레벨 5’의 자율 주행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업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혁이 말한 ‘레벨 5’의 자율 주행.
그것은 자동차가 운전자 없이 완전히 혼자서 이동할 수 있는 레벨의 자율 주행 단계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협상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싱긋 웃는 상혁을 보며, 일린 모스크는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상혁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것은 정말로 스페이드 X의 지분 절반의 값어치를 능가하는 카드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그러나 자율주행 차량의 개발에 대해 그 누구보다 깊은 이해를 가진 모스크는, 반대로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AI가 사람을 대신하여 운전대를 잡는다는 것.
그것엔 단순히 AI가 도로에서 사고가 났을 때의 책임을 지는 것을 넘어서, 그 어떠한 사고도 0% 확율로 발생할 수 있게 만드는 ‘미친 AI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에.
모스크는 자동차 업체도 아닌 PTW에서 그런 기술을 보유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설마요. 농담이시겠죠. 자율 주행 차량의 ‘레벨 5’가 농담 같습니까?
그게 가능하게 하려면 진짜로 사람, 아니 사람 이상의 주행 사고가 가능한 AI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빨래 틀에 널어놓았다가 바람에 날려 도로에 떨어진 자켓이 단순한 옷가지인지, 아니면 술 취해서 도로에 누워있는 노숙자인지, 엄청나게 빠르게 움직이는 차 안에서 카메라와 센서에만 의지한 상태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도로는 전쟁터입니다. 진짜로 상상을 뛰어넘는, 온갖 예측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죠.
단순히 시각 정보만으로도 그 모든 것을 구분하고 파악하는 인간의 뇌가 아니라면, 컵과 컵 그림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AI가 그 사고들을 100% 피해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만약 가능하다면요?”
“그럼 제가 스페이드 X 지분의 절반을 드리죠.
거기 더해서, 스타링크 시스템에 PTW의 데이터 중계만을 위한 추가 위성을 더 배치하겠습니다.
요구하신 것처럼, 전 세계 인터넷이 데이터 지옥에 떨어져도 PTW 의 게임만큼은 끊기지 않도록 말이죠.”
그러자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보여드리죠. 저희가 코넥트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가, 저희의 AI를 어느 수준으로 만들었는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모스크는 마치 홀린 것처럼, 상혁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상혁과 함께 연구동에 있는 테스트 쳄버에 들어가서, 무려 한 시간을 그 안에서 상혁과 큰 목소리로 싸우며 경악에 찬 비명을 질러대었다.
일린 모스크는 그 이후에도 상혁이 그 안에서 무엇을 보여주었는지, 그리고 PTW에서 보여준 자율 주행 기술이 실제로 지금 당장 레벨 5의 자율 주행이 가능한 수준이었는지는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 테스트 쳄버에서 나온 일린 모스크가 상혁이 내민 계약서에 말없이 사인했다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리고 그렇게 계약서에 싸인한 일린 모스크는, 조금 전까지 절대 50%의 지분을 넘기는 일은 없을 거라고 소리지르던 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테스트 쳄버에서 나온 이후로 마치 상혁과 영혼의 베스트 프랜드라도 된 것처럼, 상혁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이제 스페이드 X의 절반은 PTW의 것입니다.
제가 스페이드 X를 만든 이유는, 스타링크 시스템에 대한 비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화성에 가고자 하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저는 지금 그 꿈의 절반을 PTW에 넘겼습니다.
그 말은, 이제 화성에 가고 싶다는 제 꿈도, 절반은 PTW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제가 화성에 가는 순간이 온다면, 저는 여러분들같이 유쾌하고 유능한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네요.”
그러자 상혁이 일린 모스크를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가 PTW에 도착한, 첫 만남의 순간처럼.
“좋죠. 갈 수 있으면 같이 갑시다. 화성!”
“이제 우리는 한배를 탔으니까요!
같이 갑시다! 화성!”
“화성 갈끄니까아아아!!”
“갈끄니까아아!!”
“나중에 기자회견 할 때 한국어로 외쳐주시면 더 기쁠 거 같네요!”
“시키지 않으셨어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덕분에 테슬러는 이제 전기차 업체가 아니라 전 세계 자동차 업체를 선도하는 최고의 자동차 업체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외쳐달라면 얼마든지 외쳐드려야죠!
화성, 갈끄니까아아!!!”
“화성 가즈아아아아!!”
“가즈아아아!!”
“오케이. 이제 이 기쁜 소식을 전 세계에 알릴 영광은 모스크 씨에게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약속드린 기술 이전을 위한 준비를 하도록 하죠.
‘테슬러 전용’ 딥 다이버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하고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일린 모스크는, 자크를 데리고 자신이 타고 왔던 리무진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마치 인사라도 되는 것처럼, 상혁을 보며 양팔을 벌려 외쳤다.
“화성, 갈끄니까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