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파급효과
보는 것만으로도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PTW의 신기술들.
그리고 지금까지 발매하던 게임보다도 더 실험적인 게임들을 전문으로 다루는 레이블을 만들겠다는 존 카믹의 발표는 의외로 팬들의 마음속에 의문을 심어주었다.
팬들이 생각하는 PTW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개발사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물리법칙 수준의 복잡한 마법 이론으로 사용자가 직접 자신만의 마법을 창조할 수 있는 게임인 MYOM, 그리고 FPS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총을 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EOD, 현재도 광산 크래프트를 제치고 전 세계 스트리머들의 방송용 게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OGC.
굳이 PTW의 대표작들만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PTW의 게임들은 언제나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게임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굳이 새 레이블이 필요한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먼은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제가 알기로는, PTW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도전적인 개발사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IP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속편을 만들지 않고 항상 새로운 장르와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데 도전해오지 않았습니까?
굳이 새 레이블까지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자 존 카믹은 상혁이 생각하는 현재의 PTW가 가진 딜레마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도 상혁에게 듣기 전까지는, 그게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문제점을.
“아시다시피 PTW는 1차 NE컨벤션 이후로 자사의 게임들을 자체 컨벤션을 통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사는, 마지막 행사였던 3차 NE 컨벤션을 기점으로 전 세계 10만 명의 관객이 동시에 참여하는 글로벌 행사가 되었죠.
단돈 20달러의 티켓 가격을 받는 행사에 PTW가 인당 수백 수천 달러를 지불하여 행사를 준비하는 것은, 지금은 딱히 비밀도 아닙니다.
그건 이따금 진행하는 슈퍼볼 광고 외에는 어떤 광고도 집행하지 않는, PTW만의 독특한 홍보 방식이죠.
하지만 어느 새부턴가, 상혁은 사람들이 PTW에 너무 거대한 기대를 안고 있다는 부담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4차 NE 컨벤션에서 공개된 게임중에, 방금 제가 보여드린 ‘딥 다이버’같은 게임이 있다면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만일 당신이 공포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유저라면 말입니다.”
“적어도 이번 신작 중의 하나는 내가 손도 못 대겠다는 생각이 들겠죠.
실제로 저도 스튜디오에서 보여주신 영상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건 내가 하긴 너무 무서운 게임이라고. 제가 PTW의 게임들을 너무나 사랑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 무서운 공간 안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요.
남이 들어가서 비명 지르는 건 즐겁게 보겠지만요.”
“바로 그겁니다. 허먼 씨. 게임이라는 게 무조건 최고의 그래픽과 스케일을 가지고 장시간의 플레이 타임을 가진 게임만 좋은 게임이 되는 건 아닙니다.
어떤 게임은 심플하게 만들어야 더 하고 싶은 게임들도 있고, 어떤 게임은 대중성을 포기하더라도 확실하게 해당 장르의 본질에 집중하는 게 중요할 때도 있죠.
그건 마치 매운맛 요리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매운맛을 즐겨 먹는 사람들조차 삼키는 순간 자신의 식도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매운 음식은, 대부분이 사람들에게 ‘이걸 먹으라고 만든 거야?!’라는 생각이 들게 하겠지만 반대로 극한의 매운맛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가치가 있는 요리가 되겠죠.
PTW LAB는, 그런 한계를 벗어던지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대중성이 없어도 좋다.
전 세계의 극소수를 위한 게임이라도 상관없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생각하던 PTW스러운, 그러니까 스케일 크고 항상 콘솔 성능의 한계를 초월해 사는 순간부터 몇천 시간의 즐거움을 보장하는, 그런 깊이 있는 플레이가 없어도 좋다.
플레이 타임이 5분짜리인 게임이라도, 아니면 전체 용량이 100mb밖에 되지 않는 도트 게임이라도, 그것이 세상의 어느 누군가는 ‘인생 갓겜’이라고 부를 만한 게임이라면, 개발해서 출시하겠다는 거죠.
PTW LAB의 목표는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언가 ‘색다른 것’, 혹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을 원할 때, 언제나 PTW LAB의 레이블을 보고 게임을 구매하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하는 거죠.”
존은 이후의 방송에서, PRD를 이용하여 플레이하는 전용 게임인 부시 크래프트 서바이벌 (BCS)를 소개하며 방송을 마무리 지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게임이 가진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인 ‘간편함’이란 개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단순히 클릭 몇 번으로 만들 수 있는 게임 내의 무기와 도구들을, 유저가 직접 재료를 구해 칼로 깎아서 만들어야 했고, 인벤토리의 아이템을 꺼내는 것도 전부 현실과 똑같이 가방 속에서 꺼내야 하는 게임이었다.
거기에 PRD와 연동된 ‘BCS’는, 인벤토리로 사용하는 가방의 무게가 증가하면 해당 신체 부위에 무게감이 느껴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마치 불편한 자체를 컨셉으로 한 게임처럼.
말 그대로 현실 속의 야생 생존을 그대로 게임으로 만든 듯한 영상을 보면서, 허먼이 질문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영상을 보면서 그냥 산속에 칼 한 자루 들고 가는 거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제가 지금 말한 것은, 그만큼 게임이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리얼하다라는 의미에서 말한 것이지 게임이 재미없어 보인다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전 오히려 딥 다이버보다 이쪽에 흥미가 갑니다.
실제 신체에 가해지는 위협을 배제하면서 야생에서의 생존을 체험하는 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다만 조금 더 게임적인 요소가 있었으면 하는 기분이 들긴 합니다.”
“게임적 요소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확실히 존재합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죠.
우선, 실제 야생에서는 BCS처럼 게임에 적합한 템포로 먹을거리나 도구에 적합한 재료가 발견되지 않습니다.
종일 돌아다녀서 야생 딸기 한 줌을 구하는 게 고작일 때도 있죠.
게다가 BCS엔, 제가 말씀드렸던 스테이터스 강화 개념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BCS안에서는, 유저가 맛있는 것을 먹고 컨디션 관리를 잘하면 게임 안에 설정된 캐릭터의 근력이나 민첩성이 증가하죠.
현재 개발 중인 버전이라 단언해드리기는 어렵지만, 저희는 RPG적인 요소를 게임에 많이 넣을 생각입니다.
생존 지식 레벨이 올라가면 먹을 것의 출현 빈도수가 올라간다던가, 혹은 배탈 같은 상태이상에 걸리면 실제로 배 부위에 압박감이 느껴지게 한다던가, 힘을 올리면 좀 더 강한 야생 동물도 사냥할 수 있는 식으로요.
아, 그리고 물론 협동을 통해 생존하는 좀비 모드도 들어가겠죠.
능력치를 올려 전투력을 키우고, 친구들과 굵은 나무를 지면에 박아 바리케이트를 직접 만들어 좀비의 침투를 막고, 베이스 캠프를 만들고 식량과 물을 구하기 위해 탐색을 하게 될 겁니다.
그 생존 배경은 야생이 아니라 도심 한가운데가 될 수도 있고요.
소방서를 뒤져 물을 구하고, 경찰서를 뒤져 총을 구할 수도 있겠죠.”
“조금 전에는 작은 스케일을 추구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스케일에 제한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건 아래로 제한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위로도 제한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지나치게 가벼워서 PTW의 게임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게임이 있다면, 반대로 지나치게 무거워서 적합하지 않은 게임도 있는겁니다.
전 그런 제약을 모두 벗어던진 게임들을 PTW LAB에서 출시하려고 하는 거고요.”
“아, 그럼 소위 블록버스터 타이틀이라 불리는 대형 작품들도 PTW LAB에서 출시 될 수 있는거군요?”
“말씀드렸지만 저희에게 한계는 없습니다.
한계를 부수려고 만든 레이블이 바로 PTW LAB니까요.”
“하지만 블록버스터 타이틀의 제작비는 천문학적입니다. 메인 프로젝트가 아닌 서브 프로젝트에 그 정도의 예산을 할당해주는 겁니까?”
허먼의 질문에 존이 답했다.
상혁이 말한 레이블을 존재하게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존의 질문에 상혁이 했던 대답을.
“예. 그래서 PTW LAB만을 위한 별도의 예산을 할당해 놓은 겁니다.
그리고 그 자금은, 저커버그 씨가 PTW에 합의금으로 넘겨주었던 바로 그 15억 달러의 현찰이 될 겁니다.”
무려 1조 5천억에 달하는 거금.
상혁은 그것을 자신이 1조 원을 포기하고 데리고 온 사나이에게, 한 푼도 남김없이 그대로 안겨주었다.
***
“적어도 오늘 방송으로 1억 달러는 건진 것 같네.”
지구 반대편의 한국에서 존과 허먼이 진행하던 TV쇼를 지켜보던 민준이 상혁에게 말했다.
그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이번 TV쇼 출현은 확실한 홍보 효과를 기대할만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러자 상혁은, 만족한듯한 민준의 말에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뭐 홍보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겠지만···.”
“뭐 걸리는 거 있어?”
“호버 부츠나 옥토부츠는 그렇다 쳐도, PRD의 공개는 조금 이른 감이 있지.”
“기대감이 너무 커질까 봐 그런 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PRD의 개발은 스컹크 웍스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고, 거기 멤버들은 적어도 유저의 기대를 실망하게 할만한 사람들이 절대 아니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야. 내가 걱정하는 건, 이 장비에 기대를 걸면 안 되는 사람들이 이 장비에 기대를 걸게 되는 걸 걱정하는 거라고.”
“무슨 의미야?”
“금방 알게 될 거야. 어쩌면 단순히 내 기우일 수도 있으니까.”
상혁의 우려는, 같은 시각에 허먼과 존이 TV쇼를 진행하고 있던 미국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
미국 버지니아 알링턴에 있는 DARPA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은, 비록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세상의 어느 대기업보다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존재 중의 하나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의 원형인
‘ARPANET’을 개발한 곳이, 바로
DARPA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곳에서는 현재 미국의 차세대 보병 프로젝트인 ‘슈퍼 솔져’ 프로젝트를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상혁이 SANY와 함께 미친 듯이 초반 공급량 확보에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물량 부족 사태가 현실화되어가고 있는 ‘딥 다이버’를 연구실 한쪽에 왕창 쌓아놓고서.
얼핏보면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마치 딥 다이버를 착용하고 게임을 하며 쉬는 것처럼 보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들이 생각하던 슈퍼 솔져 프로젝트의 ‘완성형’을 딥 다이버에서 발견했기 때문에.
‘슈퍼 솔져 프로젝트’의 개발 멤버인 대니얼 브라이언은 팀 내에서 통칭 ‘대니’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항상 제대로 감지 않은 기름기 줄줄 흐르는 더벅머리에, 옷은 지독하게 체크무늬 남방만을 고집하는 전형적인 ‘개발자’.
그리고 대니는, 요즘 딥 다이버란 기계에 푹 빠져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병사용 개인 디스플레이의 모든 것을, 이 장비는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는 요즘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하루종일 딥 다이버를 쓰고 일하는 중이었다.
딥 다이버에 탑재된 노이즈 캔슬링 기능 때문에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아 집중이 더 잘되는 이유도 있었고, 필요하면 딥 다이버를 쓰고 있는 상태에서도 상대를 바라보며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게다가 조금 특이한 성격을 가진 그에게 누군가가 말을 거는 상황은 좀처럼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딥 다이버를 쓴 채로 밥을 먹는 기행을 반복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뭔가를 열심히 테스트하던 그를 찾아온 것은 그의 직속 상관이었다.
그리고 그는, 딥 다이버를 쓴 채로 허공에 열심히 손을 젓고 있는 대니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말을 걸기 전, 수없이 고민한 듯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로.
“대니, 혹시 이거 봤나?”
대니는 옆에서 부르는 소리에 딥 다이버를 터치해 모드를 AR로 전환 시켰다.
그리고는 딥 다이버를 벗지 않은 채로, 자신의 직속 상관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뭔가 보여주고 싶을 때 ‘이거’라고 말하는데, ‘이거’라는 단어만 듣고 그게 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그거 가지고 시비 거는 사람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다들 그런가 하고 넘어간다고.”
“모두가 그런가 하고 넘어갈 때, 넘어가지 않는 남자가 되는 것이 제 꿈이었습니다.”
“젠장, 이래서 내가 자네한테 말 걸기 전에 10분 동안 고민한 거야.
자네 뇌구조는 외계인처럼 돌아가니까.”
“저희 월급은 소중한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데, 무려 10분이나 그런 쓸데없는 고민에 쓰셨다고요?
나중에 감사팀에 보고하겠습니다.”
“닥치고 이거나 보라고.”
그의 상관이 다가와 타블렛 PC를 내밀자, 대니가 투덜거렸다.
“만약 지난번처럼 너튜브에 올라온 남자가 사고로 사타구니 맞는 동영상 모음집이면 저 화낼 겁니다?”
“그땐 자네를 웃기는데 100달러가 걸린 내기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나도 두 번 다시 그런 거 안 해!
이건 업무 관련 영상이니까 닥치고 보기나 하라고!”
결국, 그의 상관은 대니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니는 그런 그의 분노는 깨끗이 무시한 채, 상관이 들고 있는 타블렛 PC로 시선을 옮겼다.
거기엔 신 장비를 공개하고 있는 존 카믹과 허먼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처음 3차 NE 컨벤션에서 딥 다이버의 공개 영상을 보았을 때, DARPA의 슈퍼 솔져 프로젝트 개발팀 소속이었던 대니는 큰 충격에 빠졌다.
현실의 시야를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그 위에 완벽한 3D 개체를 출력할 수 있는 딥 다이버의 AR 기술.
그리고 그 상태에서 장비의 교체 없이 바로 시뮬레이션 모드로 들아가 가상 공간 안에 사용자를 밀어 넣을 수 있는 VR 기술.
그 모든 것이 그가 원하던 이상적인 개인 장비의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그 목표를 위해 연구하던 결과물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어질 정도였다.
게다가 딥 다이버는 가격조차 미친 듯이 싼 장비였고.
그런 이유로, 대니는 딥 다이버라는 장비를 보자마자 3일 동안 철야를 해서 작성한 제안서를 상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그 보고서엔, 굵은 글자로 이런 제목이 적혀 있었다.
[미 육군 차세대 보병 프로젝트를 위한 AR 전투 보조 장비의 외부 기술 도입에 관한 보고]
그가 올린 보고서를 받아든 대니의 직속 상관은, 그의 눈 밑에 짙게 깔린 다크서클을 보며 그에게 말했다.
“자네, 이거 올리기 전에 잠은 잤나?”
“보고서나 검토해주십시오. 이 안건이 통과되면, 저희가 병사들을 위해 개발하던 개인 디스플레이 관련 기술은 전부 쓰레기통에 쳐 박아야 할 테니까.”
어느 한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성이 부족한 면을 보여주는 것은 그리 보기 어려운 것이 아니었기에, 그의 상관은 투덜대지 않고 자신의 손에 들린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내용을 읽고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이게 민간에서, 그것도 게임 따위나 하려고 나온 장비라고?”
“예.”
“설계한 곳도 게임회사고?”
“그것도 맞습니다.
그냥 게임회사가 아니라, PTW죠.”
“그게 그냥 게임회사랑 뭐가 다른데?”
“다르죠. 그곳은 바로 코넥트를 개발한 그 회사니까.”
“아!”
DARPA 내부에서, 코넥트는 꽤 유명한 장비였다.
엄청나게 낮은 가격대에 비해 안에 들어간 기술은 거의 오파츠 수준으로 뛰어난 장비였기 때문에.
그리고 DARPA에서는, 산업용 코넥트의 케이스를 군사용으로 개조시켜 영상이나 거리 인식이 필요한 다양한 장비에 탑재할 수 있는 군용 장비로 만든 사례가 꽤 있었다.
현재 미군에서 사용하는 경계 초소 무인 감시 시스템이나, 최신형 전차에 들어가는 능동파괴체계(APS)에도 코넥트의 부속이 들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사실 대안이 따로 없었다.
비슷한 기능을 하는 장비를 개발하던 협력사들이, 코넥트의 출시 이후로 모션 인식 기술에 대한 투자를 중단해버렸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싼 가격에, 성능은 몇 세대나 앞선 장비가 있는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기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뭔가 개발하려고 하면, 관련 특허가 전부 PTW에 있어서 절대 좋은 결과는 얻지 못할 상황이었고.
그래서 현재의 DARPA에서는 아예 MS 측에 코넥트의 부속을 다이렉트로 공급받아 군용 장비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PTW가 또 하나의 군침 도는 신기술을 공개한 상황이었고.
PTW는 이전과 똑같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기술을,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공개했다.
그리고 그 기술은, 그들이 그토록 개발을 위해 노력하던 슈퍼솔져 프로젝트의 개발 진척도를 몇 년은 앞당겨 줄 기술이었다.
대니의 상관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니에게 말했다.
“좋아. 바로 상부에 보고해서 딥 다이버를 공수해오지.
일단 뜯어서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해보자고.”
“활용도야 이미 보고서에 적어뒀지 않습니까?
저격수가 감적수(저격수 옆에서 저격에 필요한 정보를 파악해 전달하는 병사) 없이 단순히 딥 다이버를 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적과의 거리나 풍향 같은 데이터를 적을 지켜보는 가운데서 그대로 볼 수도 있고, 임무에 참여한 병사들의 시야를 작전실에서 그대로 공유받을 수도 있고, 아예 작전 지역을 100% 구현한 가상 공간에서 대 테러 훈련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혁명, 그 자체라고요.
단지 아쉬운 건, 만화나 소설에서 나온 것처럼 장비를 쓰는 것만으로도 촉감이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풀 다이브까지는 구현이 안 되었다는 거죠.”
“그래도 연구할 가치는 있지 않나?”
상관의 질문에 대니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는 수십조를 퍼부어도 만들기 힘든 장비가 민간에서 나왔습니다.
그것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싼 가격에.
그걸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건 머릿속에 뇌가 들어있지 않은 거겠죠.”
그 말을 들은 대니의 상관은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천재란 것들은 조금 맛이 간 놈들이 많은 것 같다고.
***
그런 일이 있은 지 한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상관이 그에게 보여준 영상 속의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때 그가 유일한 단점으로 지적했던 부분에 대한 해결책을, PTW는 ‘이미’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니의 상관은 바로 그 점을 알려주려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그때 자네가 유일하게 이 장비의 단점으로 지적했던 게 바로 딥 다이버 만으로는 현실의 감각을 그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거였지.
그런데 영상을 보니 이미 그 기술은 PTW가 가지고 있는 것 같군.”
“그렇네요. 이런 미친 회사 같으니.”
“좋은 거 아닌가? 저쪽에서 이미 우리가 개발해야 할 기술을 대신 개발해 준 상황이지 않나.
그럼 코넥트 때처럼 감사히 쓰면 되는거지.”
“거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이번엔 코넥트처럼 안돼요.”
“무슨 말이야?”
“이 딥 다이버라는 장비가, 생각보다 골치 아픈 장비라는 이야기입니다.”
대니가 말했다.
“코넥트는 물론 세대를 몇세대 앞선 기술을 가진 장비긴 했지만, 그건 순전히 하드웨어가 뛰어난 장비였어요.
그러니 그 좋은 하드웨어로 돌릴 소프트웨어만 만들면 군용으로 간단히 전환할 수 있었죠.
저는 딥 다이버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 빌어먹을 장비는 외부 프로그램으로 돌리려면 절대 원하는 성능이 나오질 않아요!
애당초 해상도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괴물인데 그 높은 해상도를 상대적으로 저 성능인 칩셋으로 굴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그러자 그의 상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자네 같은 기술자와 다르게 난 그냥 군인이야.
그리고 나라의 명령을 받아 여기 파견 나와서 자네가 하는 외계어를 듣고 있는 사람이고.
내가 자네 말을 알아듣기를 원한다면 유치원생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하라고.”
“요즘은 유치원생도 제가 한 말 정도는 다 알아들어요.”
“난 그 요즘 사람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쉽게 다시 설명해 드리죠. 기본적으로 딥 다이버가 엄청나게 고성능의 장비라는 건 잘 알고 계시죠?
그런데 문제는, 안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들이 그 고성능 장비로도 돌리기 무리일 만큼 어마어마한 연산량을 요구하는 물건이란 말입니다.
그건 마치 트랙터 엔진을 페라리에 실은 것 같은 겁니다.
엔진 성능이 차체 성능을 못 따라가는 거죠.
하지만 그런 경우가 없는건 아니고, 이 바닥에서는 흔한 경우니까 그게 문제인 건 아닙니다.”
“그럼 뭐가 문제라는 거지?”
“페라리에 트랙터 엔진을 달았는데 차 속도는 페라리 수준으로 나오는 게 문제죠.”
“엥?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아마도 STC 때문일 겁니다. 트랙터 엔진을 미친 듯이 마개조해서, 페라리 속도가 나오도록 강제로 조정한 거라고 생각하면 되죠.
문제는 STC는 PTW 내부에서 절대 외부로 돌리지 않는 프로그램이라는 겁니다.
저희가 원하는 수준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STC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고요.”
“그럼 자네 말은···.”
“예.”
대니가 말했다.
“PTW에 연락해서 협조를 요청해야겠습니다.”
그러자 그의 상관이 곤란한 표정으로 대니를 보며 말했다.
“자네 혹시 신문은 보나?”
“아뇨.”
“그럼 좀 보게. 요즘은 자네가 좋아하는 PTW 관련 뉴스가 심심하면 1면을 도배하니까.
아무튼, 얼마 전에 페이트 북과 PTW 사이에 분쟁이 좀 있었지.
코넥트의 모션 인식 관련 특허 분쟁 말이야.
그리고 결과는 페이트 북의 완패였어.
저커버그가 15억 달러와 존 카믹을 PTW에 넘겨주는 것으로 합의를 봤지.”
“그래서요?”
“문제는 우리도 지금까지 PTW에서 만든 코넥트를 멋대로 개조해서 군용 장비에 집어넣고 있었다는 거야. 허락도 받지 않고.”
“그런데요?”
“만약에 그쪽에서 그걸 가지고 시비를 걸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만든 장비에 들어간 라이선스료까지 전부 지불해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남의 기술을 썼으면 당연히 돈을 내야죠.
그리고 더 원하는 기술이 있으면 그것도 돈을 주고 사 오고요.
상대방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돈을 낸다.
그건 인간 사회의 당연한 상식 아닌가요?
맨날 저한테 상식이 부족하다고 하시면서, 이런 상식은 납득하기 어려우세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국방부에 예산을 타내면서 라이선스 관련 비용은 아예 신청도 안 한 게 문제라는 거야.
사실 그럴 만도 했어. 우리가 뛰어들기 전에도, 이미 수많은 민간 업체에서 코넥트를 커스터마이징한 장비를 팔고 있었지만 PTW는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때는 PTW는 라이선스비를 요구하는 회사가 아니니 필요 없다고 해놓고 지금 와서 라이선스비가 필요하다고 하면 아마 국방 장관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내 목을 조를 거야.”
“그건 국방부 문제죠. 제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단지 STC가 없으면 슈퍼솔져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없다고 기술적인 견해를 말씀드리는 것뿐이고요.
거기에 조금 전 보여주신 PRD도 탐이 납니다.
그게 있으면, 진짜로 전장에 가지 않고 실제 총도 쏘지 않으면서 완벽한 전투 훈련이 가능할 테니까.
국방부 돈 많잖아요?
쪼잔하게 굴지 말고 방위비에서 좀 떼다 쓰라고 하세요.
그리고 아마도 PTW에서는 미군 측에 코넥트의 라이선스 비용을 요구하지 않을 겁니다.”
“어째서?”
“기본적으로 EOD때 서로 협력한 사례가 있잖아요.
그리고 EOD는 현존하는 FPS 게임 중 가장 미군의 고충과 삶을 잘 표현한 게임입니다.
그래서 미군들이 꼽은 가장 좋아하는 게임 1위에도 꼽힌 거고요.
아마 긍정적인 답변이 올 테니 상부에 요청해보세요.”
그렇게 말한 대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리는 자신의 상관을 다시 불러 세우며 말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뭔가?”
“PTW를 상대할 때는 무조건 자세를 낮춰야 해요.
‘너는 일개 게임회사고, 나는 무려 미국의 장군이다’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절대 좋은 꼴은 못 볼 겁니다.
평소에 대학 연구팀에서 기술 탈취하듯이 ‘미국의 보안을 위해’ 운운하면서 그들을 대하면, 진짜로 프로젝트 엎어야 할 수도 있어요.”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애당초 일개 게임 회사가 DARPA보다 더 좋은 기술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실제로 발생하고 있지 않습니까?
PTW에 대해서는 무엇도 예단하면 안된다는 걸, 저는 방금 깨달았습니다.”
“방금? 아까 그 영상을 보고 말인가?”
“예. 그들이 지금 개발해서 테스트하는 PRD라는 장비요.
그것도 딥 다이버와 마찬가지로 지금 기술보다 수십 년은 앞선 장비니까요.
어쩌면 진짜로 지하에 외계인이라도 감금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일단 이야기는 해 보지. 절대 고자세로 요청하지 말라고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대니의 상관은 작업실을 나섰다.
그리고 대니는, 여전히 딥 다이버를 뒤집어쓴 채로 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PRD라···.”
그리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미친놈들이 대체 뭘 하려는 건지, 이젠 짐작도 가지 않는군.”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의 입가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감이 담긴 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