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06화 (307/485)

306. 부시 크래프트의 목적

민준은 존 카믹이 자신을 찾아와 프로젝트 기획서를 내밀자 그것을 훑어보고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 프로젝트요? 기억납니다. 메인 진행은 제가 하지 않았지만, 코드 짤 때 저도 참여했으니까요.”

“그럼 이건 역시 스컹크 웍스에서 작업한 게 맞군요.”

“프로젝트 책임자 란이···. 비어 있군요. 저를 제외한 스컹크 웍스 멤버들이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죠.”

“혹시 왜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는지도 알 수 있을까요?”

존 카믹의 질문에 민준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기억을 되짚었다.

그리고는 존에게 말했다.

“제 기억으로는 이 프로젝트의 원형이 아마 가상 공간에서 자유롭게 형태를 바꿀 수 있는 오브젝트를 구현하는 거였을 겁니다.”

“원형이 있습니까?”

“있죠. 비록 8세대 콘솔에서는 돌릴 수 없는 물건이긴 하지만.

처음에 저희가 구현하려고 했던 건, VR 공간에서 사람이 직접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점토와 같은 물성을 가진 3D 오브젝트를 만드는 거였으니까요.”

자신이 체험판 프로토타입보다 더한 무언가를 구현하는 게 목적이었다는 민준의 말에 존 카믹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비현실적인 시도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미친 짓을 시도했단 말입니까? 대체 어떻게 구현하려고?”

“뭐, 초창기엔 무식한 방법으로 구현했죠. 입자 형태의 무수히 많은 구조물을 만들어서, 각각의 입자에 일정량의 점성을 부여하고 한 덩어리로 붙였습니다.

진짜 점토처럼, 자유롭게 뭉개고 늘리면서 모양을 만들어 최종적으로는 필통 형태로 빗을 수 있는 3D 오브젝트를 만드는 게 목적이었죠.”

“그게 지금의 딥 다이버가 가진 연산 성능으로 구현 가능합니까?”

“당연히 안되죠. 하지만 PTW에는 랜더링 센터가 있지 않습니까?

애당초 초기 버전은 처음부터 랜더링 센터의 연산 성능을 전제로 하고 만든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민준은, 이 해괴한 프로젝트의 발단부터 결말까지에 이르는 과정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혹시 완전히 현실과 같은 물성을 가지도록 구현된 가상의 점토가 있다고 가정할 때, 존씨는 가상의 점토와 현실의 점토가 가지게 될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민준의 질문에 존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같은 물성이라는 것은 물질의 성질이 완전히 같다는 걸 말하는 거죠?”

“예.”

“그럼 아마도 ‘반발력’이겠죠. 가상의 물체는 반발력을 가질 수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은 작용과 반작용 같은 물리 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유저가 점토의 형태를 조작하려고 손가락으로 점토를 누르면, 점토는 유저의 손에 반발력을 전달하죠.

하지만 가상세계 속의 유저의 손안에는 반발력을 전달할 ‘실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한 민준은 왼손을 들어 손바닥을 세우며 존의 앞에 내밀었다.

“제 손바닥이 점토 덩어리라고 생각하고, 한번 세게 후려쳐 보세요.”

“예?!”

“설명을 위한 거니 이유는 묻지 마시고.”

존은 민준이 시키는 대로 마치 가로로 하이파이브를 하듯 민준의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맞췄다.

그러자 민준이 입을 열어 존에게 다시 요청했다.

“더 세게요.”

“아플 텐데요?”

“상관없으니 본인이 칠 수 있는 가장 강한 힘으로 제 손바닥을 쳐보세요.”

존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민준이 있는 작업실이 울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가 ‘짝!’하고 울려 퍼졌다.

물론 당연하게도, 민준은 존 카믹이 두껍고 큰 손에 얻어맞자마자 다른 손으로 맞은 손을 부여잡고는 신음소리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그건 민준의 손을 전력으로 후려친 존도 마찬가지였다.

“으으···. 개 아프네···.”

“뭘 증명하려는 건진 몰라도 때린 쪽도 맞은쪽도 둘 다 아프다는 건 증명이 된 것 같네요.”

“중요한 건 그겁니다. 현실에서는 반발력이란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 씨가 제 손바닥을 치는 순간 존 씨의 손이 움직이는 속도가 줄어들었죠.

이건 VR로 구현 된 가상세계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경험입니다.”

민준이 말했다.

“반발이 느껴져야 할 곳에서 손이 허공을 가르는 경험은 VR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숙제라고 할 수 있죠.

부시 크래프트의 원본 프로젝트는 바로 그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아직도 통증이 느껴지는 손을 주무르며 민준이 말하자, 존이 질문했다.

“잠깐만요. 민준 씨. 만약 VR세계에서의 반발력 구현이 목적이었다면, 부시 크래프트는 완전히 실패작 아닙니까?

심지어 원본 프로젝트에서 완벽한 가상 점토를 구현했다 하더라도, 가상 점토가 손바닥에 반발력을 전달할 순 없을 테니까요.”

“그렇죠. 현실에서 유저가 반발력을 느끼려면, 실제로 물리적인 힘이 가해져야 하니까.”

그렇게 말한 민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서 저희가 그 목적을 위해 개발 중인 다른 장비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마도 개발이 완료되는 순간, 진정으로 인류를 가상현실의 세계로 데려갈 수 있을 완전히 새로운 장비를 말이죠.”

***

“아니 미친 저게 뭡니까!?”

민준을 따라 연구동으로 이동한 존 카믹은 민준이 보여준 장비를 보고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민준이 소개한 신 장비는 매우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를 더욱 충격에 빠지게 만든 것은, 지금도 그 장비를 누군가가 테스트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단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할 것 같은 그 장비를.

민준은 그런 존의 반응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뭐, 지금 버전에서는 모양새가 안 좋은 건 인정하죠.”

존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민준을 바라보다가 다시 장비를 향해 눈을 돌렸다.

거기엔 대체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알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괴상한 형태의 기계 장치가 작동하고 있었다.

‘이걸 대체 무슨 모양이라고 설명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모양이로군.’

존은 어째서 민준이 자신을 끌고 직접 연구동까지 이동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눈으로 그 장비를 보고 있는 자신도, 이 광경을 말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생각할 만큼 장치는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고치(Cocoon)?”

자신도 모르게 존이 중얼거린 소리를 들은 민준은 무릎을 치며 존에게 말했다.

“오! 듣고 보니 그렇네요. 고치같이 생겼죠? 앞으로 누가 물어보면 고치같이 생긴 장비라고 설명해야겠어요.”

“그 전엔 뭐라고 설명하셨습니까?”

“지금처럼 그냥 설명 안하고 끌고 와서 보여줬습니다.”

“이해가 가는군요.”

사용자를 원형으로 둘러싼 수많은 작은 장비들에서 뻗어 나온 선들이,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입고 있는 검은색 슈트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방으로 실을 뿜어내고 있는 검은색 애벌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땐 바늘인 줄 알았습니다. 검은색 바늘이 가운데 있는 사람을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바닥이 피바다가 됐겠죠. 사용자와 연결된 저 검은 선들은 탄소 섬유로 만들어진 일종의 ‘인조 근육’입니다.

수천 가닥의 인조 근육들과 그것을 통제하는 수천 개의 모터가, 가상 환경에서 유저가 받아야 할 물리적 피드백을 정확하게 전달하죠.

부시 크래프트의 프로토 타입은, 바로 저 장비를 가지고 가상 점토를 만지기 위해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고요.”

“가까이 가서 봐도 될까요?”

“좋죠. 여러분! 잠시 테스트 정지를 부탁드립니다.”

민준이 박수를 치며 소리치자 가운데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검은 슈트의 사나이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머리에 쓴 딥 다이버를 벗으며 민준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딥 다이버를 벗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검은빛으로 반짝이는 수천 개의 섬유 가닥이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다.

“민준 씨 오셨습니까?”

“예. 기기 상태는 어때요?”

“여전하죠. 동작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여전히 수없이 조정을 거쳤어도 저희가 설정한 입력값과 실제로 느껴져야 하는 반발력의 차이가 생각보다 자주 느껴지네요.”

“원래는 현실의 물리 현상이 전달해줘야 하는 반발력을 인조 근육을 컨트롤 해서 구현하는 장비니까요.”

“예.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제 옆에서 제 몸을 더듬고 계신 이분은 누구시죠?”

테스트를 하던 스컹크 웍스 멤버의 말대로, 존 카믹은 어느새 장비 가까이 다가가 이곳저곳을 더듬으며 장비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대충 어떤 방식으로 이 기계가 동작하는지 파악 완료한 존 카믹이 고개를 들며 테스터에게 인사했다.

“아, 실례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전 존 카믹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페이트 북에서 PTW로 이직했습니다.”

“아, 당신이 10억 달러의 사나이시군요?”

“예. 그리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조금만 더 장비를 자세히 살펴봐도 될까요?”

존 카믹의 말을 들은 테스터가 고개를 끄덕이자, 존은 다시 슈트에 코가 닿을 정도로 얼굴을 들이대며 장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슈트를 입고 있는 테스터에게 자신이 파악한 것이 맞는지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등 쪽에 달린 플라스틱 백팩에도 모터가 들어있나요?”

“예.”

“외부 모터의 기능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등에 연결된 유닛 안에 들어있는 모터는 기본적으로 손가락이나 발가락 등의 자잘한 움직임을 컨트롤 합니다.

여기 보시면 손등을 따라서 장갑 안에 인조 근육이 숨어 있는데, 반발력이 필요할 때는 손 등 쪽에 있는 실을 당겨서 손가락이 안으로 덜 굽어지게 하는거죠.”

“외부 모터에 연결된 선들은요?”

“그건 팔이나 다리 등의 큰 부위에 대한 반발력 피드백을 수행합니다.

예를 들어 가상 공간에서 벽이 있으면, 실제로 벽이 있는 제한 구역까지 손을 뻗을 수 있을 정도로만 줄을 풀어주고 그 이상은 잠가 버립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을 써서 팔을 뻗으려고 해도 팔을 더 뻗을 수 없게 되는 거죠.

그것과 손바닥을 강제로 펴게 만드는 백팩 유닛의 움직임이 합쳐지면, 실제로 벽을 만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미친!”

‘가상의 사물을 만질 수 있다’라고 말하는 테스터의 말에, 존 카믹은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마치 VR이 지향할 종착역처럼 들렸기 때문에.

“현실과 얼마나 흡사합니까?”

“안타깝게도 완벽하게 현실처럼 구현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리 개방된 공간이라도 이 슈트를 입고 있으면 20분 만에 땀범벅이 되는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촉감이나 온도감의 재현이 불가능하죠.

하지만 그런 단점을 제외한다면···.”

그는 존이 듣기 원하는 답을 해 주었다.

“예. 이 장비는 테스트하면서 수없이 착각에 빠질 정도로, 대단히 현실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그 순간 존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만세를 외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

“조지 마틴입니다. 스컹크 웍스 내부에서 체감형 VR 장비에 대한 개발을 맡고 있습니다.”

슈트를 벗고 샤워를 한 남성이 자신을 소개하자, 존이 악수를 하며 말했다.

“제 소개는 아까 했지만, 다시 하도록 하죠. 존 카믹입니다.”

“그 이름이면 뭐 더 소개는 필요 없겠네요.”

“글쎄요. 저도 PTW라는 회사에 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세상은 넓네요. 제가 모르는 곳에서, VR관련 기술을 이토록 진지하고 깊이 있게 연구하는 회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특히 방금 본 장비는 정말로 상상 이상의 장비였습니다. 인공 근육을 구현해서 가상의 물체가 주는 반발력을 구현하다니요!

지금 당장이라도 테스트해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습니다! 혹시 회의가 끝나면 제가 저 장비를 사용해봐도 되겠습니까?”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장비의 사용요청을 하는 존을 보며, 마틴은 안타깝게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습니다.”

“예?! 어째서요?”

“완성된 장비가 아니라서 위험하기 때문이죠.”

마틴은 그렇게 말하며 장비가 놓여 있는 연구동의 한쪽에 쌓여있는 부서진 인체모형을 가리켰다.

그것은 가뜩이나 기괴한 외형의 장비와 더불어 이 연구동을 마치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실험실같이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이 장비는 그 자체가 인간이 느껴야할 반발력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장비입니다.

그리고 그런 강제적인 힘을 구현하기 위하여, 굉장히 강성이 높은 탄소 섬유를 초 강력 모터에 연결해 놓았죠.

그리고 저희가 이 장비의 테스트를 위해 마네킹에 슈트를 입히고 한 첫 테스트에서, 이 괴물 같은 장비는 마치 꽈배기처럼 마네킹을 쥐어 짜버렸어요.

저기 쌓여있는 인체 모형들은, 저희가 적당한 강도를 테스트하는 동안 희생된 희생양들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인체모형이 부서지지 않을 정도의 강도를 찾아서 세팅이 완료되었을 때, 저 장비가 제 다리를 부러트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오작동이 나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를 높여 놨지만, 혹시 모를 위험은 항상 산재하고 있죠.

테스터의 신체 조건이 바뀌는 것 만으로도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으니, 지금 진행되는 모든 테스트는 제가 직접 수행하고 있고요.

그러니 존 카믹 씨가 아무리 부탁하더라도 테스트를 시켜드리는 건 무리입니다.”

마틴은 딱 잘라서 존의 부탁을 거절했지만, 존은 각오에 불타는 눈으로 다시 한번 그에게 말했다.

“만약 제가 인간 꽈배기가 될 수 있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그에 따른 모든 법적 책임을 지겠다고 해도 안 되겠습니까?”

“그래도 안 됩니다. 페이트 북과의 기술료 분쟁에서 무려 10억 달러를 포기하고 데려온 세계 10대 개발자가 VR 장비 테스트 하다가 팔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면 아마 상혁씨가 제 목을 조를 겁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죠. 같은 장비를 제가 하나 더 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장비의 세팅은, 처음부터 존 카믹씨의 체형과 몸무게에 맞게 세팅을 맞춰놓겠습니다.

그러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돌발상황에 대한 리스크는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2달 정도? 인체모형 세팅부터 다시 하면서 모터 강도를 조절해야 하니 그 정도는 걸릴 겁니다.

지금부터 부속을 주문하고 조립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고요.”

“지금 있는 장비를 제 체형에 맞춰서 세팅할 수는 없는 겁니까?”

“가능하죠. 그런데 카믹 씨. 그 계획엔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뭐죠?”

“첫째는 일단 그렇게 해서 절약할 수 있는 시간이 오로지 장비 조립에 들어가는 시간뿐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그렇게 되면 그건 존 카믹씨의 전용 장비가 아니라 제가 다시 개발에 써야 하는 장비이니 한번 테스트하고 나서 원상복구 해야 한다는 거죠.

카믹 씨. 저는 당신이 VR 관련 기술에 얼마나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당신이기에 이 장비를 한번 써보고 나면 절대 포기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잘 알죠.

그럼 차라리 전용 장비를 하나 맞춰드리는 게 카믹 씨를 위한 일 아닐까요?”

완벽한 마틴의 논리에 카믹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당장 저 장비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그보다 아예 자신의 전용으로 저 장비를 쓸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이 더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존은 결국 새 장비를 제작해주겠다는 마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고마움을 담아 그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직 제 손에 들어온 건 아니지만, 아마도 이건 제가 PTW에 입사한 이후 받은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네요.”

그러자 마틴이 웃으며 존에게 질문했다.

“그건 그렇고, 신규 레이블 런칭 건으로 한창 바쁘실 텐데 여기는 어쩐 일이시죠? 민준 씨까지 데리고?”

“바로 그 신규 레이블 문제로 온 겁니다. 신규 레이블의 런칭 타이틀로, 마틴씨가 개발한 부시 크래프트 서바이벌을 런칭하고 싶어서요.”

“그건 말 그대로 만들다 만 게임인데요? 솔직히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게다가 그 게임은 애당초 이 장비의 사용을 전제로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아마 가상 공간에서 허공에 손을 휘젓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경험을 제공해주지도 못할 거고요.”

“아뇨, 저는 설사 허공에 손을 휘젓는 플레이만 제공하더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저만해도, 민준 씨가 이 장비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원래부터 부시 크래프트 서바이벌, 그러니까 BCS가 허공에 손을 휘적이며 플레이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게임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다른 수많은 프로젝트를 제치고 BCS를 PTW LAB의 런칭 타이틀로 제공하고 싶은 겁니다.”

“흠···.”

그러자 고민에 잠긴 마틴을 존이 더 강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설사 BCS가 지금 이 장비를 전재로 개발된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저는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노멀 VR 게임으로 그 게임을 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전 세계의 수많은 딥 다이버 유저들이 BCS를 즐기면서 허공에 손을 휘적거리는 상황을.

그 상황에서 만약 이 장비의 상용화가 완료되서 발매된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어?! 저 갓겜을 이제 만지면서 플레이할 수 있다고!?’

라고요. 미친 듯이 흥분될 것 같지 않습니까?”

“장비 이전에, 컨텐츠를 먼저 풀어놓고 그 이질감으로 인해 생겨난 목마름을 풀어준다는 거군요.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확실히 그 이유는, 런칭 타이틀로 준비가 갖춰질 때까지 제가 제작에 참여할 충분한 이유가 되겠네요.”

“그럼 함께하시는 겁니까?”

“예. 다만 저는 기술적인 부분에서만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BCS는 원래부터 이 장비의 테크 데모로 제작된 게임이었기 때문에, 게임적인 요소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니까요.”

“그건 걱정 안해도 될 겁니다. 여기는 PTW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게임을 잘 만드는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죠.”

그렇게 말하는 존의 목소리에는, 놀랍게도 자신이 입사한 지 2주밖에 안 된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마치 누가 들으면 창립 때부터 PTW와 함께한 사람이 할 법한 말투로.

그러자 민준은 그런 존을 보며 씩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PTW라는 회사를 사랑하게 되는 데, 기간은 상관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세상에 이런 미친 회사가 어디 있습니까? 가상의 물건을 만져보겠다고 저런 괴물같은 장비를 만들질 않나, 그걸 테스트하겠다고 렌더링 센터가 필요한 시뮬레이터를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서 발매할 생각도 없는 게임까지 만드는 회사가요.

민준 씨.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전 게임 개발자입니다. 그리고 게임 개발자가 이런 프로젝트들로 가득한 회사를 보고도 애사심을 가질 수 없다면, 그건 제대로 된 개발자가 아니라는 소리일 겁니다.”

목소리에 열정을 듬뿍 담아 열변을 토하는 존 카믹을 보며, 마틴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분명 민준의 제안을 받아 PTW로 이직했을 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저런 기분을 느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타사에서 PTW로 이직해온 직원들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직원에게 마틴은 자신이 언젠가 다른 직원에게 들었던 말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언젠가, 존 카믹 역시 이후에 들어올 다른 직원들에게 그런 기분을 느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마틴은 존을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Hey! John!”

자신을 부르는 마틴의 외침에 존이 그를 돌아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언젠가 그가 존 카믹과 같은 말을 하고 있었을 때, 다른 직원이 그에게 해주었던 말을.

“Welcome to PTW”

흔하디흔한 마틴의 그 인사가, 그 인사를 들은 존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고 있었다.

그것은 외부 출신인 존 카믹이 단 2주 만에 완전히 PTW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한마디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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