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03화 (304/485)

303. 호러블, 테러블

[옵큘러스의 CTO 존 카믹. 페이트 북과 PTW의 전쟁 끝에 10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아 PTW로 이적하다.]

[존 스캇과 존 카믹, 두 천재 프로그래머 컬렉션을 완성한 PTW가 보여줄 새로운 미래는?]

[PTW가 무려 1조 원 대신 받아온 단 한 명의 프로그래머 존 카믹.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인가?]

[PTW와의 특허 분쟁을 돌파하는 데 성공한 페이트 북과 옵큘러스. 그들이 딥 다이버의 포효를 뚫고 VR 시장에 안착할 확률은?]

[PTW와의 소송전으로 폭락하던 주가를 반등시키는 데 성공한 페이트 북.

그러나 그 대가로 CTO를 넘겨준 판단은 과연 옳은 판단이었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PTW와 페이트 북 사이의 ‘빅 딜’은 언론의 엄청난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며 양사에 유저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 유명한 존 카믹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콘솔 게임 개발사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듣고 흥분하지 않을 게이머는 없었기 때문에.

[분명 엄청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밑그림이겠지.]

↳ 상대는 ‘그’ PTW니까, 분명 엄청난 계획의 일부일 거야.

↳ 나도 동의. 아무 계획도 없이 1조 원이란 거금을 포기하진 않았을 테니까, 분명 존 카믹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발휘해서 이전에 ‘듐’이 했던 것처럼 게임 업계의 역사를 바꿀 물건을 준비하지 않을까?

↳ 내 생각은 조금 다름. PTW는 굳이 존 카믹이 아니었어도 이미 게임 업계의 역사를 바꿀만한 업적을 몇 번이나 이루어 냈음.

심지어 최근에 발매한 딥 다이버도 그럴만한 물건이었고.

게다가 존 카믹은 영입했지만 그가 작업한 VR 기술에 대한 이전은 받지 않았다던데?

그럼 존 카믹이라는 인간만 받았다는 건데 거기에 1조라는 금액은 좀 과하지.

↳ 맞음. PTW에는 굳이 존 카믹이 아니어도 CTO 김민준이나 존 스캇 같은 괴물 프로그래머들이 즐비한데, 굳이 거기에서 프로그래머인 존 카믹이 합류한다고 다이나믹한 변화를 기대하긴 힘들다고 봄.

차라리 1조를 더 뜯어내서 그 돈으로 자기들이 하려는 거에 투자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런 식으로, 커뮤니티의 의견은 반으로 갈리고 있었다.

‘기존 작업물의 사용권이 없는 상태에서 존 카믹 때문에 1조를 포기한 것은 너무 큰 투자다.’라는 의견과, ‘존 카믹은 그럴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인간이다’라는 의견으로.

그러나 새 마스터 클래스 직원의 값어치에 대한 논쟁과는 별개로, 커뮤니티 이용자들 대부분이 동의하는 의견이 있었으니, 그것은 PTW가 존 카믹의 영입을 통해서 무언가를 할 생각일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PTW의 모든 행보엔, 지금까지 항상 무언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무언가’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무언가’의 핵심이 될 것이라 모두가 예상하는 PTW의 새 멤버 존 카믹은, 그 시각 PTW 본사에서 업무 적응을 위해 힘쓰는 중이었다.

그가 보기에, PTW의 데이터 서버는 마치 보물창고 같은 공간이었다.

하나같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자랑하는 수많은 알파 빌드의 게임들, 단순히 ‘이게 될까?’를 시험하기 위해 작업해 놓은 수많은 코드들과, 명백하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쌓여있는 수많은 실패의 흔적들.

그것은 PTW의 수많은 직원들이 회사의 역사와 함께 쌓아올린 유산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존 카믹은 자신의 흥미를 끄는 여러 VR 프로젝트도 발견할 수 있었다.

“딥 다이버용 공포 게임이 있네요?”

워크 패스트의 유명한 기능 중에는, 윈도 탐색기보다 수십 배는 강혁한 기능을 가진 폴더 뷰어(Folder Viewer)라는 기능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폴더의 이름만으로 정보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폴더 자체에 연관 문서 링크나 태그, 메모 등을 추가하여 폴더 위에 마우스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프로젝트 개요와 진행률, 가장 최근에 업로드된 관련 문서와 워크 패스트 메신저 기능과 연동된 최신 회의록 등을 볼 수 있는 애드온이었다.

물론 전 세계가 무료로 사용하는 워크패스트인 만큼 존 카믹 역시 옵큘러스에서 그 기능의 강력함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기에, 그는 폴더 뷰어를 통해 대략적인 프로젝트으 개요를 빠르게 파악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마우스 커서를 올려놓은 폴더 위에는, ‘딥 다이버용 VR 공포 게임(프로토 타입)’이라는 프로젝트 개요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작업 진행 상황란에는, 특이하게도 중단(Pause)이 아닌 봉인됨(Sealed)이라는 상태가 부여되어 있었다.

“근데 왜 정지가 아니라 봉인이죠?”

존 카믹의 질문에 그의 업무 적응을 위한 가이드역을 맡고 있던 존 스캇이 입을 열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중단된 게 아니라 봉인되었다는 의미죠.”

“프로젝트를 봉인하기도 합니까? 무슨 저주받은 마법같은 것도 아닌데.”

“사용자에게 위험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할 수 있죠.

존. 당신도 알다시피, VR게임이 가진 특유의 현장감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게임 장르가 공포 장르에요.

저희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공포 게임을 딥 다이버로 하면 어떤 느낌인가를 테스트 하려 했죠.”

“···그래서요?”

“저 해상도의 현재 수준의 VR로도 까무러치게 무서운 VR 공포 게임을 ‘그’ 딥 다이버로 플레이한다고 생각해보세요.”

“·········VR 컨텐츠 특징 상 직접 해보기 전에는 장담 못하겠지만 무섭긴 하겠네요.”

“그냥 무서운 정도가 아니라, 프로토 타입을 테스트하던 테스터 10명 중 3명이 도저히 못 하겠다고 테스트를 포기했어요.

그래서 프로젝트가 봉인된 거죠. 괜히 출시했다가 어딘가의 누군가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태를 막고 싶어서요.”

“그 정도로 무섭다니 오히려 더 흥미가 가는데요? 지금 해볼 수 있습니까?”

“사실 봉인은 그냥 진행 상태를 표시하는 태그일 뿐이고 딱히 파일에 접근 불가능한 건 아니니 실행 가능한 빌드로 테스트는 가능하죠.”

“그럼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옵큘러스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성능을 가진 딥 다이버로, 공포 게임을 하면 어디까지 무서워질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존 카믹이 눈을 반짝이며 말하자, 존 스캇은 한숨을 쉬고는 그에게 말했다.

“관련 문서 폴더에 보시면 테스트 사전 동의서가 있을 거예요. 거기 인적 사항을 입력하시고 전자 결제 시스템에 업로드하세요.”

존은 그가 시키는 대로 동의서를 찾아 작성했다.

그리고는 마우스 옆에 있는 지문 인식 패드에 검지를 스캔하여 전자 결제시스템에 업로드했다.

“업무 프로세스가 전부 워크 패스트로 처리되는 건 언제 봐도 인상적이군요.”

“애당초 출시되는 신규 기능의 대부분이 저희 사내에서 테스트를 거쳐서 개선되어 나가니까요.

혹시 쓰다가 불편한 부분이나 자주 쓰는데 찾기 어려운 메뉴 같은 게 있으면 사내 게시판에 적어주세요. 아마도 1주일 안에 다시 업데이트된 버전이 올라올 테니까.”

“시장 점유율 1위는 단지 무료서비스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거군요.”

“가장 이상적인 업무 프로그램은 실무자들이 쓰기 좋은 프로그램이니까요.”

“그런데 동의서 내용이 왜 이러죠?”

카믹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을 바라본 스캇이 미소지었다.

거기엔 직원들이 장난으로 적어놓은 동의 항목들이 빼곡이 적혀 있었다.

[기저귀를 차지 않고 테스트를 수행 중 바지에 소변을 지렸을 때 팀원들이 그것을 놀리는 것에 동의함.]

[테스트 현장엔 반드시 CPR(심폐소생술 :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을 할 줄 아는 인원이 동반되어야 함.

이 규칙을 어기고 테스트 수행 중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 PTW에 책임이 없다는 것에 동의함.]

[본 프로토타입의 테스트는 불면증, PTSD, 공황장애, 대인 기피증 등의 심각한 심적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며 테스트하는 인원은 그 모든 사항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듣고도 테스트에 임했음에 동의함.]

[테스트 중 지나친 공포심으로 딥 다이버를 집어 던져 생기는 기물 파손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PTW측에서 부담하는 것에 동의 함.]

그 외에도 수많은 항목이 있었지만, 대체로 문서 자체가 테스터에게 겁을 주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엄청나게 과장된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그 문장을 본 카믹은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의 옆에 있는 스캇에게 물었다.

“직원들이 장난기가 넘치네요.”

그러나 스캇은, 그런 카믹을 단 1%의 장난기도 섞이지 않은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에게 말했다.

“장난 같아요?”

***

‘와 씨. 이건 진짜로 장난이 아닌데?’

딥 다이버 자체는 존 카믹도 출시된 그 날 웃돈까지 내고 입수하여 테스트한 적이 있었다.

어찌됐건 VR 기기를 개발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개발 중인 장비보다 압도적인 성능을 보유한 경쟁사의 장비를 테스트하지 않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테스트를 해본 존이 내린 결론은 경쟁사의 이 신 장비가, 자신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성능의 영역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었다.

해상도, 프레임 레이트, 모션 인식의 정확도나 아이트래킹의 반응성.

사운드 유닛이 보여주는 정위감이나 해상도.

배터리 유닛 덕분에 꽤 무거운 무게에도 불구하고 더 가벼운 VR 장비보다 훨씬 쾌적하게 느껴지는 완벽하게 잡힌 무게 중심.

‘완벽’이라는 단어를 형태를 가진 물건으로 구현하면 바로 이 물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장비가 바로 딥 다이버였다.

그리고 그 수많은 강점 가운데서도, 존 카믹이 가장 높게 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디스플레이 파츠 없이 망막에 직접 영상을 투영하는 딥 다이버의 구동 방식 때문에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었던 ‘시야각’이라는 강점이었다.

‘옵큘러스도 시야각이 타사 장비에 비해 좋은 편인데···.’

단순히 ‘시야각’이 넓다는 것과 아예 시야각이라는 개념 자체를 넘어 망막 전체를 커버하는 화상신호를 보여주는 것은 차원이 다른 감각을 전달해준다.

보는 이로 하여금, 디스플레이 파츠에서 비춰주는 ‘영상’이 아니라, 아예 공간 자체를 바꿔버린 듯한 현장감을 전달해주는 것이 ‘딥 다이버’의 시야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시야각이란 강점은, 공포 게임이란 장르에서 자신이 가진 강점을 20000% 발휘하고 있었다.

“와, 진짜 내가 게임 안에 들어온 기분이네요.”

그러자 카믹이 착용한 헤드셋에서 무전기 소리처럼 들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게임에 집중해요. 존.

그렇게 방심하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괴물에게 잡히면 바지에 오줌을 싸게 될 테니까.

호버 부츠(hover boots)의 느낌은 어때요?-

스캇이 언급한 호버 부츠는 PTW에서 개발 중인 또 다른 주변기기 중 하나였다.

“미칠 것 같이 좋습니다. 저는 360° 트레드밀 같은 걸 사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걸 숨겨놓았을 줄은 몰랐네요.

어째서 이걸 딥 다이버랑 같이 공개하지 않았죠?”

“이 장비의 전기 소모량이 에어컨의 30배쯤 되니까요.”

VR이 가진 딜레마 중의 하나는, 유저가 앞으로 걸어가면 유저의 몸도 함께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현실에서는 당연하지만, VR컨텐츠에 있어서는 커다란 장벽이었다.

일반적으로 유저가 게임을 하는 공간의 넓이는 매우 한정적인 데 반해 게임 속 공간은 매우 넓어서, 유저가 마음대로 걸어나가면 벽과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하니까.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수많은 업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제자리에서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었다.

러닝머신처럼 360도로 회전하며 유저가 걸어간 거리만큼 유저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장비도 있었고, 아니면 미끄러지듯 걸어가게 만들어 제자리에서만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장비도 있었다.

그리고 PTW가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도입한 방식은, 충격적이게도 전자석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신발과 발판에 달린 엄청나게 강력한 전자석을 통해서 유저의 몸을 공중에 살짝 띄운 뒤, 공중에서 이동하도록 만드는 방법.

그것이 현재 존 카믹이 착용하고 있는 ‘호버 부츠(hover boots)’의 작동 원리였다.

“확실히, 전자석을 이용하면 반발력의 세기를 조정해서 계단이나 오르막도 구현할 수 있으니까 기발하긴 한데, 전성비 문제가 있긴 하겠네요.”

-그래서 테스트 챔버 밖에서는 못 씁니다.-

“하아, 진짜 아쉬운데 이거···.”

카믹이 아쉬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PTW의 호버 부츠는 아예 신발을 통해서 지면의 상태가 전해주는 느낌까지 그대로 전달하는 장비였기 때문에.

호버 부츠는 현재 그가 플레이하고 있는 심해 기지 곳곳에 있는 물 웅덩이를 밟을 때, 물이 튀며 찰박이는 느낌까지 발에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집중하세요. 이 게임은 2인의 협조가 중요하니까.-

현재 두 사람의 존이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은, 아이러니하게도 ‘딥 다이브’라는 프로젝트 네임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었다.

1만 미터의 심해에 위치한 수중 기지에서, 정체 불명의 심해 괴물의 습격을 받아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의 게임.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최대 5인의 파티를 이루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최소 플레이 인원이 2명은 있어야 했다.

한명이 현장에 나가서 괴물을 피해 기지의 기능을 복구하는 동안, 한 명은 통제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현장에 나가 있는 파티원에게 원격으로 서포트를 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플레이는 단순히 눈앞의 적을 피해 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공포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존. 당신의 위치에서 200미터 근처에 생체 반응이 있어요. 아직 당신을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지만, 주변 사물을 넘어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젠장, 거치적거리는 게 너무 많다고요.”

-존. 제가 말했지만 괴물은 음파로 위치를 탐지해요. 그러니까 목소리를 줄이세요.-

스캇의 말에 카믹은 억지로 목소리를 낮추며 컨트롤러를 입가로 가져갔다.

현실에 있는 그의 손에 들린 것은 VR 조작용 컨트롤러였지만, 게임 속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무전기였기 때문에.

“조작 패널에 접근하려면 앞에 있는 무너진 철제 캐비닛을 치워야 해요.

그리고 그럼 반드시 소리가 나겠죠. 존. 혹시 괴물이 이쪽으로 진입하는 통로의 게이트를 닫을 수 있겠어요?”

-아까 말했지만 그러려면 3레벨 보안키를 당신이 얻어야 해요.

그리고 지금 복도로 나가면 아무리 조용히 이동해도 무조건 괴물에게 들킬 거고요.-

“제 행운을 시험해보죠. 보안 키 위치는 알고 있어요?”

-지금 말해줘도 잊어버릴 테니 복도로 나가면 가이드 해 줄게요.

게임 시작할 때 말했지만, 당신이 내는 목소리 말고 무전기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괴물의 가청 주파수를 넘어서는 소리로 재생된다는 설정이니까, 딱히 문제는 없을 거예요.

단, 발소리만 조심해요.-

“롸저 댓.(Roger that.)”

카믹은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복도로 나섰다.

발 앞에 놓여있는 상자를 넘기 위해 크게 다리를 벌리면서.

그리고 조심스레 그가 발을 내딛자, 철제 바닥에 신발이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헉, X발.’

그 순간, 카믹이 숨을 집어삼켰다.

그가 보고 있는 복도의 바로 저편에, ‘그것’이 보였기 때문에.

심해 생물을 연상하게 하는 매끈하게 번득이는 피부.

몸에서 뚝뚝 떨어트리고 있는 물.

숨을 쉴 때마다, 조금씩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아가미.

그리고 심해의 1만 미터의 수압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진 기지의 두꺼운 아크릴 방벽을 뚫어낸 강철같은 손톱.

인간과 심해어의 중간쯤 위치하는 형상을 가진 그것은, ‘그르륵’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를 연신 토해내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들키면 X된다.’

카믹은 다른 손에 든 컨트롤러를 조심스레 얼굴 앞으로 가져갔다.

그것은 괴물이 감지할 수 있는 사운드 레벨을 측정할 수 있는 게이지가 달린 특수 장비였다.

‘이 게이지가 붉은색으로 가면 적이 알아차린다고 했었지.’

그 순간부터, 존 카믹은 마치 달팽이가 기어가는 속도로 조심스레 괴물의 반대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발꿈치 뒤쪽부터 천천히 지면에 대면서, 체중이 분산되어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걸으며.

그러나 게이지가 얼마나 섬세한지, 그가 조금만 체중 조종에 실패해도 게이지가 순식간에 노란색 영역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뒤통수에서 들리는 괴물의 ‘그르륵’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겁나게 무섭죠? HAHAHAHA!-

그 순간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약 올리는 듯한 스캇의 외침에 카믹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을 뻔했다.

“제발 닥쳐요! 좀!”

-말했잖아요. 제 목소리는 괴물에게 들리지 않는다고.

그리고 저도 플레이 해봐서 잘 알아요. 그 구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면 무전기로 떠드는 상대가 얼마나 개새끼처럼 생각되는지도 잘 알겠군요.”

-아니까 약 올리는 거죠.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존. 어? 잠깐만.

존. 음파(Wave)가 옵니다!-

‘이런 X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존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는 부서진 문의 뒤편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스캇이 언급한 음파(Wave).

그것은 괴물이 먹이를 찾기 위해 주기적으로 발산하는 레이더 같은 파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면, 몸을 숨길 수 있는 커다란 물체의 뒤로 즉시 이동해 야했다.

무려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뭐 이런 X같은 게임이···.’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게이지를 필사적으로 바라보며 부서진 문 뒤로 존이 도착하는 순간, 괴물이 몸을 구부렸다.

그리고는 몸을 뒤로 활짝 젖히며 정말 귀로 듣기 끔찍한 소음을 내뱉었다.

“구롸롸롸롸롸롸롸라!!!!!!”

마치 무언가를 탐색하는 것처럼 360도로 방향을 돌리며 이리저리 소리를 내뱉던 괴물이 존이 숨은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고막을 찢을 듯이 울리던 소리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그리고 존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그 순간, 그 괴물이 자신을 향해 도약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젠장! 존! 들켰어요! 뛰어요!-

“나도 안다고 X바아아아아알!!!!”

그 순간 존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친 듯이 괴물의 반대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소리를 죽이려 하던 움직임과는 전혀 다른, 최대한의 속도를 내기 위한 움직임으로.

그러나 자신이 내는 소음은 존에게 전혀 들리지 않고 있었다.

그보다 더 큰 소리로, 육중한 생명체가 철제 바닥을 울리며 거리를 좁히는 소리가 그의 뒤통수에서 울리고 있었기 때문에.

-쾅.쾅.쾅.쾅.쾅.쾅!-

“으아아!! 온다!! 온다고요!”

-거기서 왼쪽으로 꺾어요!-

“오래 못 버틴다고! 게이트를 닫아요!”

-보안 레벨 때문에 닫을 수 있는 게이트가 한정적이라고요! 그리고 한번 닫은 게이트는 부서지면 두 번 다시 못써요!

아까도 도망치다 당신이 3개는 해 먹었잖아!-

“으아아아아아아아!!!”

-다음 코너에서 오른쪽! 5m만 더 가면 주방이 있으니 거기 들어가요!

통과하자마자 주방 문을 차단할 테니까!-

“젠장! 여기서 살아나가면 이 게임 만든 새끼를 죽여버리겠어어어!!”

그때, 존 카믹이 언급한, ‘그 게임’의 개발자 미야모토 카렌이 테스트 체임버(test chamber)라고 쓰여있는 문 앞을 지나가다 존 카믹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또 한 명의 희생자가 호기심을 못 이기고 지옥 입구에 머리를 들이밀었나 보네.”

그러나 그녀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그것은 지금 테스트 체임버 안에서 미친 듯이 울면서 도망치고 있는 남자가 그녀의 스승, 미야모토 히게루와 비견되는 개발자, 존 카믹이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사실을 그녀가 알았더라면 자신이 만든 게임이 세계적인 개발자의 눈에 눈물이 맺히게 했다는 사실에 매우 감격했겠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그녀로서는 단순히 ‘또 한 명의 공포 게임 매니아가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게임 만든 X끼 죽여 버릴 거야아아아!!”

다시 한번 챔버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들으며, 카렌은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렇게, 존 카믹은 자신이 이직한 새로운 회사의 첫날을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채로 보내고 있었다.

PTW가 어째서 VR 장비인 딥 다이버로 공포 게임을 출시하지 않은 것인지, 그 이유를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Fuuuuuuuuuuckkk!!!!!! (X바아아아아아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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