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02화 (303/485)

302. 법정공방

“그러니까, 저쪽에서 노리는 건 저희에게 100억 달러를 뜯어내는 게 아니라, 단순히 존 카믹을 넘겨달라는 거라고요?

그것도 지금까지의 작업물이나 옵큘러스 리프트의 기술에 대한 사용권과 상관없이, 존 카믹이라는 프로그래머 한 명만 넘겨주면 된다는 거고요?”

“간단히 줄여 말하면 그렇습니다. 저커버그 씨.”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간 콜린스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저커버그를 만나 PTW가 가장 바라는 카드를 바로 오픈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움직임에 저커버그는 그가 예상한 반응을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세요.”

“변호사로써 충고하자면, 이것보다 좋은 조건은 없습니다.

그 어떤 회사도 100억 달러 대신 한 사람을 요구하지 않을테니까요.”

“콜린스 씨. 존 카믹은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그의 이름은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보다 더 가치가 있어요.”

“바로 그걸 알기 때문에 저쪽에서도 그걸 원하는 거죠.

이쪽에서 바라지 않는 쓰레기 같은 것만 원하는 바보는 없을 테니까요.

저커버그 씨. 세상에 쉬운 협상이란 없습니다. 심지어 상대가 이쪽에서 필요한 모든 카드를 쥐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고요.”

“그러니 무조건 항복해야 한다?”

“그렇게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이 상황을 역이용해야 한다는 거죠.”

“역이용?”

“이렇게 생각해보시죠. 지금은 노예제도가 있던 1800년대 미국이 아닙니다.

그러니 누구도 어떤 이에게 특정 직업을 선택하라 강요할 수 없습니다. 기업 정보의 보호라는 이유로 특정 직업을 선택하지 못하게 할 순 있어도.”

“그 말은···.”

“어디까지나 가정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시뮬레이션을 해보자는 거죠.

만약 저희가 존 카믹에게 걸려 있는 CNC (경쟁금지 조항 : Covenant Not to Compete)를 해지하는 조건으로 그쪽에 합의금을 10억 달러 수준으로 낮춰준다고 요구한다고 가정해보자고요.

그리고 정작 존 카믹의 이직은 그쪽의 능력에 맡겨둔다고 가정합시다.

만약 존 카믹이 이직을 결정하면, 그들은 10억 달러와 존 카믹을 받아가는 겁니다.

반대로 이직을 거절하면, 그들은 20억 달러를 받아가는 거죠. 그들로서는 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존 카믹이 하는거죠. 저희가 그에게 PTW로 이직하는 것보다 페이트 북에 잔류하는 게 이득이라고 설득할 수 있다면, 그리고 때가 왔을 때, 존 카믹이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채 20억 달러의 합의금을 받아가겠군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럼 가격을 더 낮춰도 되지 않을까요?  그쪽에서 바라는 카드가 존 카믹이라면, 그걸 대가로 좀 더 좋은 조건을 받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이직 시 10억 달러에 실패 시 20억 달러가 아니라 이직 시 5억 달러에 실패 시 10억 달러 수준으로. 그쪽에서 그렇게 간절히 존 카믹을 바라고 있다면, 저희가 어떤 조건을 걸어도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아뇨, 사실 그쪽에선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어차피 이번 협상은 그들에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협상이니까요.

이 모든 일이 일어난 발단은, 저커버그 씨가 그들에게 시비를 건 게 시작이었습니다.   일이 없었으면 애당초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겠죠.

그쪽에서는 ‘어차피’ 벌어진 협상이니 그나마 저희 측에서 얻어볼 만한 카드 정도라고 판단하고 있을 겁니다.

게다가 PTW는 언론 플레이에 능한 기업으로 유명하죠.  약 딜에 들어가는 저희의 리스크를 줄이려 시도하다 존 카믹도 얻지 못하고 그쪽에서 받는 돈도 줄었다고 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빌미로 저희쪽에서 고의적으로 실패할 내기를 걸었다고 지적할겁니다.

그러니 이쪽에서 실패해도 20억 달러라는 거금을 선사한다고 이야기한다면······.”

“저쪽에서는 설사 의심이 가더라도 20억 달러라는 거금을 받았으니 이쪽에서 짜고 친 고스톱이란 사실을 지적하지 못하겠군요.

배심원들은, 절대로 존 카믹에게 10억 달러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바로 그겁니다.”

“콜린스  . 이건 천재적인 발상이네요!”

“말씀드렸지만 저는 온전히 페이트 북의 편에서 생각하는 변호사입니다.  리고 이것이 페이트 북에게 최적의 결과라고 생각하고요.”

그 말을 들은 저커버그는 잠시 고민하다 콜린스를 향해 말했다.

“잠깐. 콜린스 씨. 이 모든 계획의 성공은, 결국 CNC라는 족쇄 없이 존 카믹을 붙잡아 놓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성립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더 천재적인 계획인 거죠. 만약 존의 마음이 변하더라도, 이쪽에서는 무려 10억 달러를 아끼게 되는 거니까.

그리고 어느 쪽으로 일이 흘러가든, 저희는 옵큘러스에 PTW가 보유한 모션 인식 관련 특허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최후의 승자는 저희가 되는 거고요.”

“당신 말은 ‘저희’가 아니라 ‘제’가 승리자가 된다는 의미겠죠.

좋습니다.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죠.”

“명을 받들겠습니다.”

일어서며 몸을 돌리는 콜린스의 귓가에 저커버그의 말이 들려왔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콜린스는 그가 이 계약에 단서를 달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재빠르게 지우며 고개를 돌려 저커버그를 바라보았다.

“뭐죠?”

“저는 이 모든 것이 도박처럼 흘러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도박이 아닙니다. 공정한 내기죠.”

“콜린스 씨. 전 제가 질 가능성이 50%인 도박은 하지 않아요. 못해도 70%, 되도록 100%인 겜블을 하려고 노력하죠.”

“설마 지금 이면계약에 대해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죠?”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리는 거죠.

그리고 당신은 저를 위하여 그 백도어를 만들어 두실 거고요.”

콜린스가 말한 이면계약.

그것은 CNC가 해제되더라도 존 카믹이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 못하도록 별도의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이 내기의 향방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든 간에, 존 카믹이 페이트북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도록.

“이면계약을 준비한 상태에서 상대에게 그런 협의안을 제시하는 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망행위가 됩니다.

그리고 그 법적 책임은, 그 계약을 알고도 협의안을 제시한 저와 저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저커버그 씨, 그리고 이면계약에 사인했으면서도 협의에 참여한 존 카믹 씨가 지게 되겠죠.

당신은 정말로 당신이 존경하는 프로그래머가 그런 부담을 안게 되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아뇨, 정확히 합시다. 저는 당신에게 이면계약을 추진하라고 부탁하지 않았어요.

단지 최악의 상황을 막아달라고 말했을 뿐이죠.

그걸 어떤 방식으로 만들지는 온전히 당신의 결정입니다. 적어도 1년에 수임료만 수천만 달러씩 받아가는 변호사라면, 클라이언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는 능력 정도야 있겠죠.”

“하지만 계약서에 사인해야 하는 존 카믹 씨는 100% 법적 책임을 지게 됩니다.”

“상관없습니다. 제게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작업물을 들고 페이트 북을 떠나지 않는 것뿐이니까.”

“그럼 제 법적 책임은 어쩌실 겁니까? 이 일이 밝혀지면 제 변호사 라이선스가 박탈되는 건 물론이고 제가 감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당신 사정이죠. 콜린스. 만약 당신이 앉아서 1년에 몇 마디 말 좀 던지고 서류 몇장 정리하는 거로 1년에 수천만 달러를 받아갈 것으로 착각했다면, 그 착각을 당장 바로 잡으라고 말해 주고 싶군요.

그리고 만약 당신이 거절한다면, 저는 이 일을 해줄 다른 변호사를 찾아갈 겁니다.

그 전에, 당신을 해고하는 게 먼저겠죠.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샌프란시스코의 수많은 IT 기업들에게 어째서 당신이 자신의 가장 큰 고객을 잃게 되었는지를 설명해야 할 겁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당신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하는 로펌은 얼마든지 있고 그중에 더러운 일을 감수해서라도 페이트 북을 고객으로 유치하고 싶은 로펌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자, 다시 물어보죠.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해고통보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이미 예상하던 결과였음에도 불구하고, 콜린스는 자신을 향해 이죽거리는 저커버그의 면상을 한 대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저커버그를 향해 말했다.

“당신은 당신 주변의 인물들이 어째서 당신 곁에 있으려고 하지 않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저를 떠난 인간들은 전부 저에게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콜린스 씨도 저에겐 그 쓸모없는 인간들의 하나가 되겠죠.”

콜린스는 대답하지 않고 회의실을 떠났다.

그리고 페이트 북의 본사 앞에 있는 자신의 차에 타고는, 휴대폰을 들어 국제전화를 걸었다.

이 모든 계약의 뒤에 존재하는, 또 한 명의 고객을 향해.

“예. 접니다. 콜린스. 상혁 씨 . 저커버그가 거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 상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건은 어떻게 되었나요?-

“상혁 씨가 예상한 대로, 굳이 이쪽에서 먼저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저커버그 씨가 이면계약을 돌려서 요구하더군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예측하신 겁니까?”

-간단하죠. 애당초 그 인간이 페어플레이하는 인간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옵큘러스의 사례만 보아도, 옵큘러스 인수에 돈을 그토록 많이 썼지만, 그 과정까지 엄청나게 돈을 퍼부은 제니웍스 측에는 소송전까지 벌이면서 돈을 내지 않으려고 했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 인간은 원래 그런 인간이에요.-

“덕분에 결전 카드가 생겼네요. 향후 진행방식은 어떻게 진행하시겠습니까?”

-최대한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있는 방향으로요.

저희가 오늘 얻은 결전 카드를 쓰기 전까지는, 저커버그는 절대로 저희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몰라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대포폰으로 전화를 걸고 있지 않습니까. 저쪽에서 미리 알 방법은 없을 겁니다.”

-좋습니다. 장소와 방식은 이전에 협의한 대로 추진하죠.-

통화를 마무리하려는 상혁에게, 콜린스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상혁 씨?”

-예.-

“지금 저희가 잡은 계획은, 오로지 존 카믹에게 걸린 CNC를 무력화하는 데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니 최종적으로 이직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존 카믹에게 부여되겠죠.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저희도 이면계약을 진행해서 존 카믹에게 이직에 대한 확답을 받아두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콜린스 씨.

사람은 물건이 아닙니다. 임의로 누군가가 사고팔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저는 이번 일이 성사되든 성사되지 않든, 존 카믹 씨가 자신이 돈에 팔려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최종 결정은 그가 그의 가치관에 따라 결정했으면 하는거고요.

그러니 그에게 족쇄가 되는 CNC를 해제하는 것으로 저희가 원하는 것은 끝입니다.

결과적으로 존 카믹이 이직을 결정하지 않게 된다 하더라도, 저희는 그의 의사를 존중할 겁니다.-

“고객의 의견이 그렇다면 저는 그 의견에 따라야겠죠. 하지만 이 말은 해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말이죠?-

“때로는 나쁜 놈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착한 사람도 나쁜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는 거죠. (Sometimes good guys gotta do bad things to make the bad guys pay.)”

- 선을 넘지 말라(Don't cross a line)는 말도 있죠.

콜린스 씨. 저는 단지 공정한 게임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저에게도, 당신에게도, 결과적으로 페이트 북에게도 나름의 이득이 되는 게임을 말이죠.-

“페이트 북은 적이지 않습니까?”

-딱히 그쪽이 이뻐서 그러는 게 아니라, 책잡힐 만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겁니다.

이후에 저희의 거래내용이 밝혀지더라도, 그 누구도 이걸로 시비를 걸 수 없도록.

그게 이후에 등장할 저희의 적이든, 아니면 콜린스 씨 당신이 되든 말이죠.-

상혁의 말에 콜린스가 놀라며 물었다.

사실 콜린스의 생각은, 존 카믹에게 또 다른 이면계약을 제시하고 이후에 뭔가의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자신을 지킬 수단으로 사용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콜린스의 생각까지도 모두 읽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단지 법정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사람일 뿐이라고요.

그런 드라마에서는 항상 과거의 문제를 가지고 변호사가 고객을 협박해서 원하는 것을 이루어내더군요.

콜린스 씨. 이후에도 저희와 계속 일을 하고 싶으시다면, 딱히 PTW를 위해 더러운 일을 해서 저희에게 이득을 안겨주겠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저희는 단순히 공정한 판만 깔아주시는 것으로 만족하니까.-

“그건 승리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 때문입니까?”

-뭐, 그렇다고 해 두죠.-

상혁이 휴대폰을 든 채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미국에 있는 콜린스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100% 승리하는 도박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런 상혁의 말을 들은 콜린스는, 저커버그와 이상혁,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를 깨달을 수 있었다.

***

“진행방식은 간단합니다. 우선 PTW가 보는 앞에서 저커버그 씨와 존 카믹 씨는 CNC의 효력을 무효화시키는 법적 서류에 사인할 겁니다.

그 이후에, PTW의 CEO인 현주 씨와 저커버그 씨가 존 카믹 씨의 이직 여부에 따라 보상액이 달라지는 협의안에 사인할 거고요.

그리고 양측 대표 임원들이 참여한 자리에서, PTW측은 공개적으로 존 카믹 씨에게 질문과 설명을 통해 이직을 제안할 겁니다.

질문은 총 5개이며 하나의 질문 당 존 카믹 씨의 답변, 그리고 그 답변에 대한 PTW의 추가적인 설명까지 3개의 과정을 하나로 묶어 한 개의 질문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존 카믹 씨가 PTW의 질문에 답하는 모든 대답은 계약상의 증언으로 처리되어 법적인 효력을 가집니다.

즉, 이 자리에서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존 카믹 씨는 자신이 생각하는 최대한 진실 된 대답만을 해야 한다는 소리죠.

양쪽이 모두 동의하면, 이 합의안대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페이트 북 CEO 저커버그 씨. 이번 합의안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받아들이겠습니다.”

“PTW의 CEO 이현주 씨. 이번 합의안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받아들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시간 절약을 위해 양측 대표가 모두 모였으니 바로 질의문답을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하여, PTW의 질문자는 누가 나서시겠습니까?”

“접니다.”

손을 들어 대답한 것은 민준과 더불어 PTW의 대표 프로그래머이자 전 세계 0.01%에 속하는 능력자인 존 스캇이었다.

그리고 그는, 회의실의 왼쪽 중앙에 서 있는 이번 협상의 당사자, 존 카믹에게 질문했다.

“솔직하게 답변 부탁드립니다.

존 카믹 씨. 당신은 PTW가 보유한 VR 관련 기술의 수준이, 당신이 다니고 있는 옵큘러스가 보유한 기술보다 압도적으로 월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커버그가 조금은 불쾌한 표정으로 존 스캇을 쳐다보았지만, 스캇은 X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존 카믹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존 카믹은, 어째서 그 질문을 하는 질문자가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괴물 프로그래머인지 그 이유에 대해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그가 만약 거짓으로 옵큘러스의 기술이 월등한 면이 있다고 둘러댄다면, 존 스캇은 그 즉시 자신의 전문성으로 거짓을 논파할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존 카믹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존 스캇의 질문에 답변했다.

“맞습니다. 해상도, 반응성, 모션인식의 정확도, 옵큘러스 VR에서는 그 구조상 절대로 지원할 수 없는 AR경험까지, 모든 부분에서 딥 다이버가 옵큘러스 VR을 앞서니까요.

하지만 가격대를 고려한다면, 저희도 나름의 강점을 가질 수 있게 될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게 지금 바로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시죠?

PTW의 딥 다이버는 이미 수천만의 유저를 확보하고 VR이 전달하는 놀라운 경험을 게이머들에게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옵큘러스VR이 앞으로 보여줄 경험보다 월등하고 뛰어난 것이고요.

그리고 그 사실은, 존 카믹 씨 본인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죠.

가장 멋진 VR 세계를 유저에게 선사할 회사가, 과연 지금의 페이트 북인지 아니면 PTW가 될 것인지를.”

“저희도 언젠간 그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PTW의 딥 다이버가 아니라, 페이트 북의 옵큘러스 VR을 통해서 말이죠.”

“전 이상입니다.”

“다음 질문자 나서주세요.”

그러자 저커버그가 손을 들어 콜린스의 진행을 제지했다.

그리고는 상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잠깐, 지금 이게 뭐하자는 겁니까? 단순히 이사진들 앞에서 페이트 북이란 기업을 모욕하려는 의도입니까?”

그러자 상혁이 저커버그를 보며 그의 질문에 답했다.

“보시면 아시지 않습니까? 이직제안을 하고 있잖아요?”

“세상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진행하는 이직제안이 어디 있습니까? 저는 단순히 금액이나 근속 조건에 관한 이야기가 오갈 거로 생각했단 말입니다!”

“그건 그쪽이 멋대로 오해한 거고요.

지금 이렇게 공개적으로 질문을 하고 설명을 하는 건, 오로지 이 이직제안을 투명하게 진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게 마음에 안 드시면, 아예 저와 존 카믹 씨가 1:1로 대화하게 해 주시죠.

길게도 필요 없습니다. 10분 정도만 주시면, 회의가 끝날 때쯤엔 함께 어깨동무하고 회의실을 나설 테니까. 어쩌실래요?”

상혁의 공격에 저커버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불만에 가득한 목소리로 이를 갈며 말했다.

“진행하시죠.”

그러자 콜린스가 말했다.

“그럼 다음 질문자 나서시죠.”

그러자 상혁을 제외한 PTW의 임원들이 차례대로 일어나 하나씩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반적인 이직제안에서 오가는 질문과는 전혀 다른 질문들이었다.

“전에 존 카믹 씨는 PTW 본사에 방문하신 적이 있었죠.

페이트 북이나 옵큘러스의 직원들이 더 행복하게 일하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PTW 직원들이 더 행복하게 일하는 것 같습니까?”

“PTW입니다.”

“페이트 북의 의사 결정 과정과 PTW의 의사 결정 과정. 어느 쪽이 작업자 개인의 의견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PTW입니다.”

“존 카믹 씨는 페이트북과 PTW, 두 회사 중 어느 회사가 VR 시장의 패권을 잡는 것이 유저에게 이로운 미래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PTW입니다.”

존 카믹은 PTW의 임원들이 자신의 눈을 보며 던지는 질문이, 마치 자신이 자신에게 하는 질문인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 모든 질문의 답이 하나로 귀결되는 것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면계약이 있으니, 모든 질문의 답이 PTW가 되더라도 나는 페이트 북에 잔류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존 카믹은 자기 생각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깜짝 놀라 속으로 외쳤다.

‘지금 내가 아쉬워하는 건가? 옵큘러스 개발을 위해 페이트북에 잔류하는 게, PTW로 이직해서 그들과 함께하는 것보다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런 기분이 든 이유가, PTW 임원들이 던진 질문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현재의 페이트 북에 가지고 있는 불만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존 카믹은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면계약이 없었더라면, PTW의 이직제안을 받는 것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더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콜린스는 마지막 질문을 위해 입을 열어 말했다.

“마지막 한 개의 질문만 남았군요.

질문자는 누가 나오실 겁니까?”

그는 그렇게 질문했지만, 당연히 마지막 질문자는 상혁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이 모든 판을 조종하고 준비한 것이 상혁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대로, PTW의 임원들이 나란히 앉은 자리에서 중앙에 있는 상혁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마지막 질문은 제가 하겠습니다.”

“하시죠.”

“존 카믹 씨. 먼저 이 자리는 법적 계약을 위해 준비된 자리라는 것을 미리 말씀해드립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까지 한 모든 답변과 앞으로 할 답변의 진실 여부가 계약 전체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것이므로 거짓을 말씀하시면 계약 자체가 취소됩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상혁이 말했다.

“이 자리에 오시기 전에, 존 카믹 씨는 이 질의응답의 내용과 관계없이 무조건 잔류하여 페이트 북에 남는다는 계약에 사인하신 적이 있습니까?”

상대가 대놓고 기망행위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상혁의 질문은 회의실을 순식간에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웅성거리는 가운데, 가장 먼저 소리친 것은 존 카믹이 아닌 저커버그였다.

“무슨 개소리를!”

“저는 존 카믹 씨에게 질문했습니다. 저커버그 당신이 아니라요.”

“상관없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지는 저의가 뭡니까!?”

“말이 안 되는지 되는지는 증거를 찾아보면 되겠죠.

참고로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건 기망행위이자 사기죄에 해당합니다.

애당초 가능성도 없는 내기를 걸어놓고 합의금을 줄이려고 페이트북 측에서 수작을 건 게 되겠죠.

그것을 지시한 사람이든, 그것을 알고도 이 내기에 응한 사람이든, 둘 중 누군가는 감방에 가야 할 거고요.”

“이 개자식! 애당초부터 노린 게 이거였지!? 함정을 파놓다니!”

“먼저 함정을 파둔 쪽은 그쪽 아닙니까? 저희는 단지 함정이 있는지 물은 것뿐입니다!”

“하지만 증거는 없잖아! 넌 절대 찾을 수 없을 거다!”

“그거야 법원에서 배심원들이 판단할 문제죠.

저희가 소송에 간다면, 전 존 카믹 씨를 증언대에 세울 겁니다.

그리고 그 계약 여부에 관해 물을 거고요. 증언대에서 거짓말을 하면 위증죄가 적용된다는 사실은 굳이 제가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죠?”

저커버그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아 상혁을 노려보며 말했다.

“원하는 게 뭐야? 날 그렇게까지 해서 감방에 집어넣고 싶다는 건가?”

“아니, 그게 목적이었다면 애당초 번거롭게 이런 자리를 만들 필요가 없었죠. 제가 바라는 건, 공정한 게임을 하자는 겁니다.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존 카믹 씨와 계약한 이면계약의 효력을 정지시킨다는 법적 문서에 사인하세요.

뒷수작없이, 순수하게. 그가 자신의 판단만으로 이후의 행보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제가 바라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거절한다면?”

“그럼 당신은 감옥에 가게 되겠죠.”

사실 상혁의 협박은 일종의 도박 수였다.

애당초 저커버그는 암시만 했을 뿐 직접 이면계약을 지시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실제로 감방에 가게 되는 것은 PTW를 도와준 콜린스가 가게 될 확률이 높았지만, 상혁은 저커버그가 지금의 혼란 속에서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데 도박을 걸었다.

그리고 상혁의 그런 노림수는 정확하게 적중했다.

암시만 했든 아니면 직접 지시를 했든, 그 이면계약서에 자신의 서명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사인하지.”

“콜린스 씨, 지금 이 자리에서 서류를 바로 준비해주실 수 있나요?”

“준비하죠.”

콜린스는 즉석에서 노트북을 열고 법적 효력이 있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작성이 끝나자 그것을 프린트하여 저커버그에게 사인하게 만들었다.

“후우. 이번 일이 끝나면, 다시는 PTW와 얽히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펜을 책상에 던지며 불쾌한 듯 말하는 저커버그를 보며 상혁이 말했다.

“저도 가급적이면 그쪽과는 얽히고 싶지 않아요.”

“그럼 이제 모두 끝났으니 존 씨의 이야기를 듣고 이 난장판을 끝냅시다.”

저커버그가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뇨, 아직 안 끝났습니다.”

“PTW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걸로 끝이죠! 이번엔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는 겁니까?”

“먼저, 개수작은 그쪽에서 먼저 부렸다는 것을 인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계약 조건은 애당초 1개의 질문에 1개의 답변. 그리고 이어지는 1개의 추가 질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전 아직 1개의 추가 질문을 하지 않았고요.”

“······어디 마음대로 해 보시죠.”

“좋습니다. 존 카믹 씨. 저커버그  씨가 저 계약서에 사인했다는 것 자체가 제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테니 그에 대해 답변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니 추가 질문에 대한 답변만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조금 전 질문 하나로 회의실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인물이 하나의 질문을 더 하겠다는 말에 존 카믹이 긴장한 표정으로 상혁을 보며 답하자, 상혁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여기 모든 법적 부담을 존 카믹 씨가 뒤집어쓸 수 있다는 위험을 알면서도 그런 식으로 이면계약을 들이민 회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깨부수고 당신의 발에 달린 족쇄를 풀어주려 노력한 회사가 있죠.

존 카믹 씨. 당신은 두 회사 중 어느 회사에 다니고 싶으십니까?”

존 카믹은 자신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는 저커버그를 바라보았다.

이면계약은 파기 되었지만, 그런데도 자신을 떠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CEO를.

그리고 미소지으며 자신을 보고 있는 상혁을 보았다.

모든 족쇄를 풀어준 채, 최종적인 결정권을 자신에게 넘긴 남자를.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PTW입니다.”

“저희 질문은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최종 이직 여부를 묻고, 이 협상을 마무리하도록 하죠.”

“더 물어볼 것도 없을 것 같지만 법적 절차이니 질문하겠습니다.

존 카믹 씨. 이제 당신의 이직을 막는 어떤 패널티나 계약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자신의 판단을 가지고 대답 부탁드립니다.

페이트 북의 자회사, 옵큘러스에 잔류하시겠습니까?

아니면 PTW로 이직하시겠습니까?”

“···이직 하겠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합의를 마치겠습니다. 페이트 북은 PTW에 코넥트의 모션 인식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한 대가로 10억 달러를 일시급으로 지불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PTW는 페이트 북의 기술 사용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이것은 현재까지 페이트 북측에서 무단으로 사용한 기술에만 적용되며, PTW의 새로운 특허에 대한 이용권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양사는 이 결과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저커버그가 마지못해 대답하자, 콜린스는 상혁을 보며 물었다.

“동의하십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죠. 동의합니다.”

“그럼 양쪽 당사자는 준비된 서류에 사인해주세요.”

페이트 북이라는 초거대 IT 기업과, 콘솔 게임 업계 최고의 개발사라는 PTW의 전쟁은, 그렇게 양측의 합의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사인을 하는 당사자나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그 결과가 ‘Win-Win’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페이트 북이 패배한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그것은 계약서에 사인하는 양측의 표정만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상대가 똥 씹은 표정을 하며 사인을 하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계약을 통해 10억 달러를 날려버렸다는 사실도.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존 카믹이 PTW에 합류하다니!’

고등학교 부실에서 시작된 자신의 꿈이 여기까지 이어져 온 것을 보며, 상혁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자신을 보며 쑥스럽게 미소짓는 존 카믹을 보자,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민준도 마찬가지였다.

존 스캇도 그렇지만 존 카믹 역시, 게임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서는 전설적인 존재였으니까.

민준은 날아간 10억 달러가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제 조금 더 내 꿈을 이룰 순간이 가까워졌군.’

민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계약서에 사인하는 남자를 보았다.

거기엔 무려 10억 달러를 아꼈으면서도,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표정으로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저커버그가 서류에 사인하고 있었다.

“존 카믹 씨. 이제부터는 PTW의 마스터급 직원으로 대해드려야겠네요.”

상혁은 그런 저커버그를 내버려 둔 채 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존 카믹은 얼떨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상혁이 내미는 손을 맞잡아 악수를 나눴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죠. 전설의 개발자와 함께 일하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이미 당신들도 저 못지않은 전설인걸요. 오히려 제 기대가 더 큽니다.

하지만 안타깝군요. CNC는 해제되었지만, NDA는 그대로니까요.

제가 지금까지 VR 쪽에서 작업한 작업물은 포기해야겠지요.”

“괜찮습니다. 존 카믹 씨는, 앞으로 저희와 더 큰 일을 하게 될테니까요.”

“더 큰 일이라고 하심은?”

상혁은 조심스레 저커버그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그에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존에게 말했다.

“사실 지금 저커버그가 사인하고 있는 계약엔, 함정이 하나 있거든요.”

“그게 뭡니까?”

“그건 나중에 알려드리죠. 여기는 그런 대화를 나누기엔 적당하지 않은 장소니까요. 어차피 그 함정은 나중에 자연스레 알게 될 거고, 지금은 그보다 급한 게 있으니까요.”

“급한 거라면?”

“게임 이야기를 해야죠. 저희가 10억 달러를 포기하며 영입한 당신과 함께,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해서요.”

씩 웃으며 미소짓는 상혁을 본 존 카믹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이, 늑대의 아가리에서 벗어나 호랑이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민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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