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01화 (302/485)

301. 노림수

샌프란시스코의 대형 로펌인 콜린스&그레이는 30대 초반의 젊고 야망 넘치는 변호사인 그래그 콜린스와,  안정을 추구하는 50대의 연륜 있는 변호사, 아서 그레이를 네이밍 파트너로 두고 있는 로펌이었다.

그리고 지금, 오랜 경험과 연륜으로 무장한 또 한 명의 네이밍 파트너 아서 그레이는 자신의 동료에게 미친 듯이 화를 내는 중이었다.

“자네 진짜 정신 나갔나? 25억 달러짜리 합의안을 들고 가서 100억 달러를 요구하는 답장을 가져왔다고?”

“뭐 어쩌겠습니까? 그쪽에서 그렇게 나오는데.”

“그것도 못 막을 것 같으면 당장 변호사 자격증을 반납해야지!! 자네도 이 요구가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것인지 잘 알고 있지 않나!”

“진정해요. 아서. 아직 합의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죠.”

“시작이고 뭐고 다른 로펌들이 알면 비웃음 사기 딱 좋은 일이란 말일세!

어떻게든 제시된 가격에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라도 보여야 할 것 아니야!”

“아서, 상대는 PTW에요. 그들은 저와의 미팅이 있기 일주일도 채 되기 전에 뉴욕의 헤지펀드 6개를 한 번에 주저앉혔어요.

그것도 SEC를 등에 업고 있는 헤지펀드를. 100억 달러는 그들과의 합의로 헤지펀드들이 입어야 했던 손해에 비하면 새 발의 피밖에 안 되는 금액이고요.”

“젠장,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는 거지? 저커버그는 뭐라고 하던가?”

“당신도 저커버그를 아시지 않습니까? 당연히 ‘이 빌어먹을 X끼들이 진짜 쳐 돌았나?’라고 했죠.”

“미치겠군.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계약한 최대 고객이야. 그런 그가 그렇게 말했다는 건 우리에게 적신호라고.”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말이야, 지금 상황이 알아서 한다고 굴러갈 상황이 아니란 거라고!”

“아서, 2009년에 있었던 도요타 사건 기억해요?”

“페달 게이트 말인가? 기억하지.”

“그때 문제가 된 것이 3개였죠. 하나는 ES360 모델에 RX400H 장판을 끼워 파는 바람에 장판에 액셀 페달이 끼면서 차가 안 멈추는 문제가 있었고, 추가로 액셀 페달이 노후화되면 자동으로 올라오지 않고 계속 내려간 상태로 유지되는 문제가 있었고요.

마지막이 도요타에서는 끝까지 숨기려고 했지만, 결국엔 밝혀진 ECU 문제였죠.

결국 긴 소송에서 도요타가 기소유예에 합의한 금액이 12억 달러였어요.

문제는 그겁니다. 당시 사고를 냈었던 렉서스 운전자가 무려 고속도로 순찰대 경찰관이었어요.

운전의 베테랑이 가족을 태우고 음주운전을 했을 리도 만무하고, 운전 도중에 911에 전화해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녹취한 통화 내역도 있었죠.

그때 도요타가 했던 대응도 기억하십니까?”

“기억하지. 당시 미국 변호사 중에 그 사건에 관심이 없던 변호사는 없었을 테니까.

내 기억으로는 분명 ECU 결함을 숨기기 위해 NASA와 NHTSA의 엔지니어들을 도요타에서 매수하려 했던 것 같은데?”

“그거 말고도 페달을 제작한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기려 한 거랑, 매트 문제로 시선을 돌리려 하기도 했었죠.

그때도 도요타의 변호사들은 본인이 할 수 있는 데미지 컨트롤을 위해 최선을 다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1000만대에 가까운 대규모 리콜과 12억 달러의 벌금이었죠.”

콜린스의 말을 들은 그레이의 표정이 심각하게 어두워졌다.

그가 아는 콜린스가 도요타 이야기를 꺼냈다는 건, 이번 사안도 그 정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합의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에.

“자네는 이번 합의가 도요타사태 수준이라고 보는 건가?”

“가장 큰 문제는 그겁니다. 페이트 북의 CTO 존 카믹이 옵큘러스 VR을 개발할 때 자신이 사용한 모션 인식 기술이 PTW의 것임을 명확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집어넣었다는 거죠.

배심원 중 누구도 그것이 우연히 겹쳤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애당초 관련 기능의 소스코드 자체가 코넥트의 모션 인식 관련 코드를 개조해서 집어넣은 거니까요.”

“하지만 PTW는 기술 저작권에 그리 깐깐한 회사가 아니지 않나?

기본적으로 Live2D나 커뮤니케이션 엔진도 자유롭게 사용하게 허가해줬잖은가.

코넥트의 개조나 기술도용도, 솔직히 말하면 수없이 많은 곳에서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그걸로 소송을 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그럼 그걸 패턴이라고 주장해서 공공재처럼 배포되는 기술이라고 오해했다고 주장하면 되지 않겠나?”

“문제는 그렇다고 PTW가 모든 프로젝트를 오픈 소스로 진행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일례로 STC같은 경우는 확실하게 보안을 지키면서 컨소시엄에 협력한 업체들이나 협력사에만 제공했죠.

그리고 명확히 말하면 코넥트에 사용된 모션 인식 관련 기술들에 대해서는 PTW가 오픈소스라고 선언한 적이 없고요.”

“이쪽에서 멋대로 그렇게 오해했다는 말이지?”

“그렇죠. 그리고 설마 ‘그’ 존 카믹이 그걸 모르고 작업했다고는 누구도 믿지 않을겁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는 어쩔 생각이야?”

“도요타의 변호인단이 했던 짓을 그대로 해야죠.”

“어떤 걸?”

“모든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요.”

“자네, 설마···.”

“맞습니다.”

콜린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인수합병 이전의 존 카믹이 책임져야 할 일이니까.

그럼 전 이만 저커버그를 다시 만나러 가야할 것 같습니다. 미팅이 잡혀있거든요.”

“좋아. 어찌 되었건 우리가 고객사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게 하라고.”

“아서, 지금까지도 그런 일은 없었지만,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콜린스를 그레이가 불러 세웠다.

“콜린스?”

“예.”

“설마 지금 작전에 모종의 꿍꿍이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세요?”

“그럴 사람으로 보이네.”

“믿음이 없으시군요. 그럼 다른 대책이라도 있으세요?”

“그건 아니지만···.”

“그럼 그냥 제가 하는 걸 지켜보고 계시죠. 샌프란시스코 최고의 클로저(closer : 협상 전문가)가 어떻게 일을 진행하는지 보여드릴 테니까.”

넥타이의 매무새를 다듬으며, 콜린스는 사무실을 나섰다.

자신이 소속한 로펌의 최대 고객이자, 세계 굴지의 거대 기업을 운영하는 CEO, 저커버그를 만나기 위해.

***

“그러니까, 이 모든 책임을 CTO인 존 카믹에게 돌리겠다는 겁니까?”

“그게 최선입니다. 금액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쪽에서는 협상에 응할 생각이 없어요.”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차라리 100억 달러를 내는 한이 있어도.”

“문제는 이쪽에서 100억 달러의 협상에 응하는 순간 상대가 말을 바꿀 거라는 겁니다.

100억 달러라는 금액은, 단순히 간을 보기 위한거니까요.

이쪽에서 자신들이 보유한 특허에 얼마의 가치를 부여하면서까지 VR 사업에 뛰어들고 싶어 하느냐를 보려는 거죠.”

“그럼 저희가 100억 달러의 합의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저쪽에서 금액을 더 올릴 거라는 말입니까?

PTW의 특허는 100억 달러의 가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저희가 만들 VR기기에 심각한 하자가 발생하는 건 사실이죠.

그러니 목줄은 저쪽에서 쥐고 있는 겁니다.”

“젠장! 그렇다고 존을 희생양으로 만들 수는 없어요!”

콜린스는 잠시 자신이 저커버그가 아닌 다른 사람과 대화 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가 아는 저커버그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사람을 감싸고 도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저커버그의 이어지는 말은, 콜린스로 하여금 그가 대화하고 있는 상대가 역시나 저커버그임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메타버스의 구현을 위해서는 PTW의 특허도 필요하지만, 존이 만든 수많은 코드도 필요합니다. 전 지금 존을 놓아줄 수 없어요.”

“놓아주라는 게 아니라, PTW의 상대를 존에게 시키라는 겁니다.

저커버그 씨, 그들은 게임 제작자들이에요. 그리고 존 카믹이란 이름은 게임 제작자들에겐 전설의 용사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죠.

그들이 당신에게는 악감정을 품고 있을지 몰라도, 존에게는 심한 말을 하지 못할겁니다.

존이 그들을 설득하게 해 주세요. 그럼 저와 존이 그들이 적당한 금액의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협상하겠습니다.”

콜린스의 말을 들은 저커버그가 소리쳤다.

“젠장,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럼 뭐가 문제죠? 협상에서 상대에게 부드러운 반응을 끌어낼 만한 사람을 내보내는 것은 매우 유효한 협상전략입니다만?”

“문제는 저쪽이 보유한 VR 기술이 존이 만든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데 있습니다.

콜린스 씨. 존 카믹 같은 사람은 돈 때문에 뭔가에 뛰어드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비전을 구현할 방법을 찾는 거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가 페이트 북을 선택한 거고요. 하지만 PTW와 존을 만나게 둔다면 그의 생각은 변할 겁니다.

페이트 북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자본으로 상대의 특허를 우회하며 용쓰는 것보다, 이미 개발이 완료되어 보급까지 시작된 프로젝트에 합류하는 것이 그의 꿈을 이루는 데 더 적합한 방법으로 보일 테니까.”

“인재를 빼앗길까 봐 걱정된다는 겁니까?”

“꿈을 빼앗길까 봐 걱정된다는 겁니다.”

“좋습니다. 그 우려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하고 있으니, 그 사태는 제가 책임지고 막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어차피 CNC도 있고 NDA도 걸려 있는 고용 계약이지 않습니까?

저커버그 씨. 제가 예전에 존 카믹 씨의 고용 계약에 대해 조언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그때 해당 계약의 법적 효력을 원하면 그 계약만을 위한 추가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고 하셨죠.”

“맞습니다. 그리고 IT업체가, 자사의 핵심적인 비밀을 보호하려는 이유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법원이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 만큼 그것의 효력을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존 카믹 씨에게 걸려 있는 계약은 정확히 그 조건에 맞아 떨어지고요.

회사 측에서 추가 비용을 내지 않았으면 모를까, 애당초 돈을 받고 이직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정상적인 계약이니 법적으로 효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협상에 존을 내보내세요. 존은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과거의 당신의 지인들과는 다르게.”

“제가 존을 믿어도 된다는 이야기입니까?”

“전 그런 감성적인 접근 방법을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법이 그를 지켜줄 거란 소리죠.”

“좋습니다. 존을 넘겨드리죠. 함께 한국으로 떠나세요. 그리고 어떻게든 합리적인 협상안을 도출해오세요.”

“양보하실 수 있는 최대한의 라인을 말씀해 보시죠.”

“저희가 지급해야 하는 대가는 관계없이, PTW측에서 받아올 수 있는 최대한의 조건을 받아오셨으면 합니다.

단순히 PTW가 보유한 모션 인식 특허에 대한 사용권을 받아오는 것뿐만 아니라, 딥 다이버에 사용된 어떤 기술이든 저희 옵큘러스 VR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추가적인 대가를 지급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주세요.”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죠.”

그렇게, 저커버그의 허가를 받아낸 콜린스는 페이트 북의 CTO 존 카믹을 데리고 한국으로 떠났다.

그 여행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서, 저커버그에게는 철저하게 숨긴 상태로.

그리고 그렇게 한국에 도착한 두  사람은 바로 PTW 본사로 향해 미팅을 진행했다.

어차피 잠은 비행기 안에서 실컷 잤으니, 최대한 이 일을 빠르게 마무리 하고 싶어서였다.

“페이트 북의 자회사 옵큘러스의 CTO를 맡고 있는 존 카믹입니다.”

“드디어 뵙는 군요. 저는 PTW의 CEO 이현주, 그리고 이쪽은 CCO인 이상혁과 CTO인 김민준이에요.”

“알고 있습니다. 잡지나 TV에서 자주 나오신 분들이니까요. 특히 최근 미국 신문 1면은 거의 PTW 관련 기사로 도배되어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기사 중에는, 저희 옵큘러스에 대한 특허권 분쟁 소송 기사도 있었고요.”

말 안에 가시를 박아둔 듯한 존의 말에 콜린스가 중재를 나섰다.

“워, 존 카믹 씨. 인사가 끝나자마자 그렇게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시는 겁니까? 미팅에도 순서란게 있는 법입니다.”

“전 그런거 모릅니다. 단지 이 모든 사태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싶을 뿐이죠.

아, 물론 PTW측에 악감정은 없습니다. 애당초 모든 사태의 원인은 저희 CEO의 부주의한 발언에 있으니까요.”

“저커버그 씨가 평소에도 속을 많이 썩이시나 보죠?”

“말도 못 할 정도입니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시죠. 함께 커피나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오, 그 유명한 커피를 제가 먹게 되는 겁니까?”

“유명한 커피요?”

“모르셨습니까? 업계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인데.”

“무슨 이야기죠?”

“PTW의 CCO는, 게임 제작이 아니라 바리스타를 했어도 대박을 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죠. 저도 소문으로만 들은 거지만.”

“과장된 소문입니다. 그냥 커피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PTW의 게임도 그냥 게임일 뿐인데 게이머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전 커피도 그렇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게임이란 매체에 기대하는 것 이상의 결과물을 당연한 듯이 내놓는 PTW라면, 분명 커피도 제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의 맛이 있겠죠.”

“절 긴장시키려는 게 목적이라면 성공하셨네요. 최대한 맛있게 뽑아서 드리겠습니다.”

일행은 훈훈한 분위기에서 부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존 카믹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PTW의 ‘임원실’이자 ‘동아리 방’인 부실에 들어서자마자, 이 회사의 특별함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임원들이 쓰는 방이라기보다는 학교 동아리 같은 느낌의 방이네요.”

“저희는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시작한 회사니까요. 그때 모인 멤버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함께 일하고 있죠.”

“그래도 회사 규모가 커진 만큼 인력이 분산되게 되지 않습니까? 서로 참가한 프로젝트도 다를 거고요.”

“뭐, 그래서 다들 담당 부서에도 자리가 하나씩 있습니다.

여기는 요즘 거의 임원 회의 아니면 쉬는 용도로 쓰이는 방이죠.”

“확실히 쉬기엔 좋을 것 같네요. 훈훈한 분위기도 들고.”

그렇게 말하며, 존은 상혁이 건네준 따뜩한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놀란 눈으로 상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듣던 것 이상인데요? 진짜 맛있습니다.”

그러자 서연이 가슴을 펴며 자랑스러운 듯 존에게 말했다.

“그렇죠? 상혁 오빠가 만든 커피는 우리 회사의 숨은 자랑거리라고요.

무려 고등학생 때부터 매일 커피를 뽑아댔으니까, 경력만 20년 가까이 되는 바리스타인 거죠.”

“20년이나요?”

“뭐 대충 제 게임 업계 경력하고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부럽습니다. 지루한 회사 생활에서, 이런 요소들은 삶의 작은 행복이 되는 법이니까.”

존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옵큘러스, 아니 저희 페이트 북 측에서는 저희가 개발 중인 옵큘러스 VR에 PTW가 보유한 특허를 사용하기를 원합니다.

사실 이미 적용되어있죠. 이건 솔직히 말하면 CEO 저커버그 씨의 잘못이 아닌, 제 잘못입니다.

저는 당연히 써도 될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먼저 그 부분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상혁이 웃으며 존에게 답했다.

“사실 존 씨의 판단은 틀린 게 아니었습니다.

저희도 저커버그 씨가 따로 저희를 불러서 협박하지 않았다면, 옵큘러스에서 저희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문제 삼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럼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릴 수 없겠습니까?

원래의 상황처럼, 저희가 PTW의 기술을 사용해도 되었던 상황으로요.”

“아쉽지만 그건 안됩니다. 존 씨.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요.”

“무슨 뜻입니까?”

“분명 존 씨도 저희가 언론에 보도한 자료를 보셨겠지만, 저희는 지금까지 저희의 기술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코넥트와 동일한 기기를 코넥트와 같은 가격으로 출시하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굳이 기술 일부를 가져다 써도 저희에겐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저희가 페이트 북에게 특허 사용권을 허가한다면, 저희는 공개적으로 저희의 모든 기술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선례가 될 수 있다는 거군요.”

“그러니 이번 일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거죠.”

“그럼 기존에 코넥트의 모션 인식 기술을 가져다 쓴 다른 업체에도 책임을 물으실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예?”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희는 기술을 가져다 쓴 것에 대한 안 좋은 선례를 만들지 않으려고 페이트 북 측과 싸움을 벌인 것이 아닙니다.

몰상식하게 남의 기술을 가져다 써 놓고 적반하장으로 저희에게 시비를 건 업체를 응징하려는 게 목적이죠.

설사 그 상대가 저희보다 몇배는 덩치가 큰 페이트 북 같은 대기업이라도, 저희를 건드리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려는 겁니다.

일종의 본보기라고 보셔도 좋고요.”

“그건 저희에게 너무 가혹한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PTW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기술을 가져다 쓴 것은 온전히 제 판단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커지면 제가 회사 내에서 져야 할 책임이 얼마나 커질지 모르시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은 존 씨의 얼굴을 봐서 용서해달라는 이야기입니까?”

“전 PTW가 생기기 훨씬 이전인 1993년에 개발한 ‘듐’을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돌렸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게임 업계 전체의 발전을 위한 선택이었고요.

전 PTW가 특허권에 대해 딱히 까다롭게 굴지 않고, Live2D나 커뮤니케이션 엔진의 SDK를 공개하는 행동들 역시 저와 같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좀 더 유저에게, 세상에 좋은 방향을 가려고 하는 마음이 PTW에도 존재한다고 믿으면서요.

그 모든 것이 제 착각이었다면, 좋습니다. 제게 책임을 물으시죠.

다만 미래의 가치가 될 수 있는 페이트 북의 VR 사업을 망치는 결과 만큼은 막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존 카믹의 호소력있는 발언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콜린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의 발언은 콜린스 씨가 조언해주신 건가요?”

“예?”

상혁은 ‘어떻게 알았지?’라는 표정을 짓는 존을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은근슬쩍 저희가 이 협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속이 좁은 것처럼 포장하는 게 프로그래머 적인 발상이라기보다는 변호사의 화법에 가까운 것 같아서 물어본 겁니다.”

“분명 콜린스 씨가 조언을 해준 것은 맞지만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은···.”

“뭐, 괜찮습니다. 사실 단순한 본보기를 삼기 위해서 특정 기업을 타겟으로 잡고 두들겨 패는게 그리 온당한 처사는 아닐 수 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시죠. 자신의 회사의 규모와 자본을 믿고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되는 회사를 협박하려는 건 온당한 처사였을까요?”

상혁의 질문에 존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상혁은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남이 열심히 전력으로 지원한 프로젝트를 강제로 뺏어가는 건 정당한 행위입니까?”

“제니웍스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닙니다.”

“저희가 페이트 북을 타겟으로 잡은 건, 단순히 저커버그 씨가 저희에게 시비를 걸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쪽이 정상적으로 기업운영을 해 왔다면 저희도 어느정도의 타협안을 받아들이면서 일을 진행했겠죠.

하지만 저커버그 씨는, 죄송하지만 CEO로써의 재능은 뛰어날지 몰라도 인간적인 면에서는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닙니다.

그건 그가 인스터그램이나 제니웍스를 대하는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죠.

한국에는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미친 개에게는 매가 약이다.’

적어도 누군가는 저커버그 씨에게 그의 회사가 아무리 크더라도 상도덕을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어요.”

“그 매가 PTW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싸움으로 인해 피해를 볼 유저들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딥 다이버는, 물론 그 성능에 비하면 말도 안되는 가격의 장비이긴 하지만 가격 자체가 절대 싼 장비는 아닙니다.

만약 페이트 북의 자본으로 옵큘러스가 개발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면, 저희는 좀더 싼 가격에 VR의 대중화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겠죠.

상혁 씨. VR이야말로 미래입니다.

상혁 씨는 단순한 본보기를 위해서 미래의 유저들에게 그 미래를 빼앗아가시겠다는 겁니까?”

업계에서나 게이머들 사이에서나, PTW가 항상 유저의 이득을 최선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존은 그 부분을 자극했고, 상혁은 그런 존에게 이렇게 답했다.

“그 미래를 굳이 왜 최악의 인간이 좌지우지하는 회사에 떠넘겨야 합니까?”

“예?”

“상상해보세요. 존 씨의 말대로, 저커버그가 통제하는 VR세계의 미래를.

유저들이 뭘 하나 볼 때마다 광고 팝업이 뜨고, 가상 세계 속의 모든 오브젝트가 현실의 회사가 광고하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을.

가상 세계 속 NPC가 종교 권유하듯 펩시를 권하고 음식은 무조건 맥도날드의 신메뉴를 먹어야 하는 상황을.

안 그래도 드라마에서 PPL 나오는 것도 짜증 나 죽겠는데,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에서까지 광고로 도배된 세상을 봐야 합니까?

그게 올바른 미래의 VR이라고 보세요?”

“지금 페이트 북과 옵큘러스보다는 PTW가 미래의 VR세계를 더 멋지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저희가 그렇게 하려면 한 사람이 더 필요하니까.”

“한 사람이요?”

“과거 평면밖에 없던 세계에 입체감을 부여해 세계의 벽을 넘어선 사람.

FPS라는 장르를 창조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간 사람.

그리고 지금은 최악의 CEO 밑에서 또 다른 세계의 벽을 넘기 위해 노력 중인 사람 말입니다.”

“그건···.”

“맞아요. 존 카믹 씨. 저는 바로 당신을 말한 겁니다.”

상혁은 깊게 심호흡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게임 개발자 중 한명이자,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도전자 중 한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존 카믹 씨. 제가 페이트 북에 원하는 것은, 당신이 페이트북을 나와 PTW에서 VR이 만들어 낼 새로운 세계를 함께 열어가는 겁니다.”

상혁의 말을 들은 존은 잠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상혁이 내뱉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는 경악에 찬 목소리로 그를 향해 외쳤다.

“지금 저에게 PTW로 이직하라고 제안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저는 PTW보다 더 큰 페이트 북소속의 CTO입니다!”

“그리고 그 페이트 북은, 자기보다 훨씬 작은 저희 PTW에 맞아 뒤지기 직전이죠.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누가 더 강하냐가 중요한 거지.”

“제가 설마 그것을 원한다고 해도, 제 계약이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전 CNC와 NDA, 두 계약조건 모두에 동의했고 그 대가도 받았으니까요.”

“그건 제가 처리해드리죠.”

콜린스가 나서며 말했다.

“그 문제라면, 제게 계획이 있으니까.”

그리고는 상혁을 보며 씨익 미소지었다.

그것은 민준이 영입한 존 스킷에 이어, 또 한 명의 슈퍼 프로그래머 영입을 위한 상혁과 콜린스의 노림수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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