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갓겜 제작법-300화 (301/485)

300. 악마의 변호사

페이트 북의 변호인을 맡은 그래그 콜린스는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로펌인 콜린스&그레이의 대표였다.

그가 원래 뉴욕에 있던 본인의 로펌을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한 것은, 그는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샌프란시스코야 말로 뉴욕과 대등하게 성장할 수 있는 법적 분쟁의 핫 플레이스가 되리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성격 급한 젊은 CEO들이, 미국 반대편에 위치한 뉴욕의 로펌에서 자신들의 변호사가 날아오는 것을 기다리기 싫어할 것이란 그의 판단은 정확히 적중했다.

로펌의 성지인 뉴욕에서도 유명세를 떨치던 메이저 로펌이 샌프란시스코로 본사를 이전했다는 소식은 실리콘밸리의 많은 경영인들이 그와 계약하게 했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그가 페이트 북의 대표 변호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전문 분야가 특허권 분쟁 관련 소송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그와 계약을 하기 이전에 제니웍스와의 분쟁에서 패배한 저커버그는 그때까지 페이트 북의 변호를 담당하고 있던 뉴욕의 대형 로펌을 해고하고 콜린스와 새로 계약했다.

“후우···. 여기가 PTW 본사인가? 진짜로 대학교 안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콜린스는 눈앞에 있는 건물을 보며 깊게 심호흡했다.

그에게 있어서도 이번 합의의 성사 여부는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페이트 북 같은 대기업의 변호를 맡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회사의 이름값이 올라가기 때문에.

만약 이번 합의를 성사시키지 못하면 안 그래도 인정사정없는 것으로 유명한 저커버그가, 그와의 계약을 연장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 가볼까.”

4600만 원짜리 이태리 수제 양복의 넥타이를 정돈한 그는 힘차게 PTW 건물 본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페이트북과 자신의 로펌.

두 회사의 미래가 걸린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서.

***

“콜린스&그레이의 게리 콜린스입니다. 현재는 페이트 북을 변호 중이며, 이전에 있었던 소송전에 관해 대화하기 위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아, 당신이 콜린스 씨군요. MS 변호사인 클래시 씨에게 이야기 들었습니다. 특히 IT 계열 특허 관련 소송 및 협상이 전문이시라고요?”

“맞습니다.”

“그럼 나름 그쪽 분야에서는 전문가이실 테니 저희가 어떤 대답을 드릴지도 잘 알고 계시겠군요.”

갑자기 부실로 찾아온 콜린스에게, 상혁은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저희는 그쪽에서 어떤 조건을 걸든간에 응할 생각이 없습니다. 법정에서 뵙죠.”

“상혁 씨. 저는 당신이 저커버그 씨와 나눈 대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저커버그 씨에게 들어서 알고 있죠.

확실히 말하지만, 저커버그 씨는 그날 상혁 씨에게 가했던 협박성 멘트에 대하여 깊은 후회와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죄송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절 보낸 거고요.”

“저커버그 씨와 후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데요? 단순히 붙으면 저희가 이길 것을 뻔히 아니 몸을 사리는 것뿐이겠죠.”

“적어도 제가 본 저커버그 씨의 눈빛은 진짜 반성하는 눈빛이었습니다. 여기 계신 임원분들이 믿어줄 지는 의문이지만.”

그렇게 말하며, 콜린스는 한 부의 파일을 내밀었다.

“첫 번째 협상안입니다. 협상의 결과와는 별개로 저커버그 씨는 순수하게 지난날의 무례에 대한 사죄를 위해 1천만 달러를 조건 없이 PTW측에 제공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저희가 개발 중인 옵큘러스 VR에 PTW가 보유 중인 모션 인식 기술을 사용하는 대가로 10억 달러를 지불하려 합니다.

정확히 현재 시세로는 한국 원화 기준 1조 1285억 원 정도 되는 금액입니다.”

“엄청난 금액이군요.”

상혁은 파일을 펼쳐보지도 않은 채 콜린스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무조건 소송전으로 가는 것은 PTW측 입장에서도 좋은 것이 아닐 텐데요?”

“그래서 그쪽에서 쓸 수 있는 카드가 뭐가 있죠? 절대적으로 유리한 건 이쪽인데, 굳이 저희가 양보해야할 이유를 모르겠네요.”

“1조 1천억에 달하는 현금은 그 대가가 되지 못한다는 겁니까?”

“굳이 염가형 VR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를 두는 것보다는, 상대가 출시할 장비를 반병신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저희에게 장기적으로 유리할 테니까요.”

콜린스는 상대가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기 위한 위협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PTW가 VR 시장에 페이트 북이 진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인지 알아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상혁의 표정이나 눈을 아무리 보아도, 그는 지금 상대가 말하는 것이 어떤 의도에서 나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싱긋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상혁의 미소를 아무리 뚫어지게 바라보아도,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콜린스는 결국 잠시의 침묵 뒤에 양손을 들며 항복 의사를 표했다.

“졌습니다. 어떻게든 협상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시도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불가능하겠군요. 원하는 조건을 말씀해 보시죠.”

“드높은 명성에 비해서 포기가 너무 빠른 것 아닙니까?”

“만약 상대가 PTW가 아니었다면 쉽게 상대가 가능했겠죠.

대부분의 기업은 주식을 매입하여 이사진을 교체하거나 거래 중인 은행을 압박하여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PTW는 주식 공개도 하지 않았고 빚도 없지 않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저희가 쓸 수 있는 카드가 없으니 상대의 말에 따를 수밖에요.”

“저희가 기존에 특허를 다루던 방식을 패턴으로 제시해서 페이트 북에만 악의적으로 시장 진입을 방해하려 한다고 주장하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상혁이 법정까지 이 문제를 끌고 오면 그 카드를 쓰겠다고 생각하던 콜린스는 상혁이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질문했다.

“아시고 계셨습니까?”

“그거 말고 그쪽에서 저희에게 반격할 수 있는 카드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만약 법원에서 그렇게 주장하신다면, 저희는 페이트 북의 인스터그램 인수와 옵큘러스 인수 후의 소송전을 언급하며 페이트 북이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덕 기업이라고 법정에 어필할 겁니다.

저희는 그런 악덕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쪽에서 먼저 걸어온 싸움에 대응한 정의의 사도처럼 이야기할 거고요. 배심원들이 어느 쪽 편을 들어줄지 기대되네요.”

“의외로 법정 싸움에 대해서 조금 알고 계시는 것 같네요? 혹시 변호사 출신입니까?”

“아뇨, 그냥 법정 드라마를 너무 열심히 본 오타쿠 같은 놈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설마 실제 법정에서 그런 드라마틱한 싸움이 벌어질 거라고 오해하고 계시는 건 아니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뭐 그렇죠. 하지만 드라마같은 판을 벌여놓은 다음 언론 플레이를 통해서 저커버그 씨를 천하의 개새끼로 만들 수는 있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유저에게 싼 값에 멋진 기기를 공급하기 위해 막대한 이익을 포기한 PTW에, 페이트 북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 같은 식으로.”

“변호사라기보다는 마케터 같은 느낌의 싸움을 하는 스타일이시군요.”

“마케터가 아니라, 기획자입니다.”

콜린스는 잠시 법정에서 실제로 그런 싸움이 벌어지는 상황을 떠올렸다.

지금 자신의 앞에서 미소짓고 있는 저 무시무시한 인간이 입을 열때마다 다음날 신문 1면에 그 모든 발언이 대문짝처럼 실리는 상황을.

그리고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한 것이었다.

“절대 소송까지 가게 해서는 안 되겠군요.”

“말했지만 저희가 바라는 건 법원에 가는 거라니까요?”

“아뇨, 그건 아닐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굳이 저희가 쓸 전략을 딱 집어서 이야기하며 자신이 어떤 카드로 대응할 거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으셨을 테니까요.”

콜린스의 말을 들은 상혁이 웃으며 쇼파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는 커피를 홀짝이며 그에게 말했다.

“듣던 만큼은 하시는군요.”

“단지 경험이 많을 뿐입니다. 정말로 싸움에서 이기길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가 뭔지 숨기려고 하는 법이니까요.

자신의 칼이 얼마나 대단하고 강력한지 자랑하는 사람은 오히려 그 위협을 통해 싸움을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저희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을 것이다?”

“PTW는 지금까지 코넥트 관련 기술이 다른 곳에서 사용되는 것에 따로 제약을 두지 않았죠.

게다가 4천억이나 주고 인수한 Live2D 기술도 무상으로 더 쓰기 편하게 고쳐서 배포했고요.

제가 아는 PTW는, 적어도 경쟁자가 시장에 진입조차 못 하게 틀어막아서 점유율을 유지하는 회사는 아닙니다.”

“그것도 잘 아시는군요. 하지만 그쪽의 조건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정말로 옵큘러스의 시장 진입을 막겠다는 협박은 진심이었습니다.”

“단지 저커버그 CEO가 기분을 나쁘게 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요? 그렇다면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아뇨, 사업을 하다 보면, 자신이 절대적 우위에 있다고 믿거나 혹은 자신이 가진 돈만 믿고 상대에게 싹수없게 구는 멍청이들은 얼마든지 볼 수 있죠.

매번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상대의 인생을 밟아놓았다면 제 주변엔 적밖에 남지 않을 겁니다.

원대한 꿈을 가진 현명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적보다는 아군이 많은 게 그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고요.”

“그럼 페이트 북 역시 PTW의 든든한 아군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처럼 서로 원하는 것을 두고 싸우는 상태가 아니라, 두 업체가 손을 잡는다면 그 시너지는 엄청날 겁니다.”

“누가 변호사 아니랄까 봐 약간의 틈새만 보여드렸는데 득달같이 달려드시네요.

콜린스 씨. 저희의 목표는 단순히 시장에서 강력한 위치를 독점적으로 차지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PTW에서 진정으로 바라는 게 뭔지 이야기해주시죠. 제가 이뤄드리겠습니다.”

“소송 상대방과 계약을 맺는 것은 변호사 윤리 위반 아닙니까? 이해상충(COI: Conflict of Interests)법에도 저촉될 거고요.”

“그럼 페이트 북은 다른 로펌에 줘 버리죠.”

“예?!?”

차마 상대 회사 변호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혁이 깜짝 놀라자, 콜린스가 이야기했다.

“솔직히 저희가 페이트 북과 계약한 것은, 이번 사건이 있기 훨씬 전의 일입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다면 절대 페이트 북과 계약하지 않았을 거고요.

아마 그건 다른 로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혁 씨라면 CEO가 주둥이 몇 번 잘못 놀렸다고 1조 원짜리 협상안을 들고 상대방에게 빌러 가야 하는 변호사의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게다가 손에 협상을 이끌어 갈 만한 카드 하나도 없는 상태로?

그런 건 패전 처리 전문 로펌이나 하는 겁니다. 저희같이 언제나 승리하는 로펌이 하는 게 아니라요.”

“엄청나게 솔직하시네요.”

“상대하는 사람에 따라 전략을 바꿔야 좋은 변호사니까요.

자, 저는 솔직하게 제 마음을 밝혔습니다. 만약 PTW측에서 허락만 해 주신다면, 이번 협상을 통해서 페이트 북을 털어내고 PTW측의 변호사로 계약할 의사가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페이트 북은 현재의 저희 고객이고 PTW는 미래의 고객 후보쯤 되는 거죠.

만약 제가 이번 협상에서 양쪽이 만족할 만한 거래를 끌어낼 수 있다면, 저희 로펌과 계약을 해 주시겠습니까?”

“저커버그 씨는 싫어할 텐데요?”

“미래 고객을 위해서 현재 고객을 배신하겠다고 하시는 겁니까?”

“아뇨, 분명 말했지만 ‘양쪽이’ 만족할만한 거래를 끌어낼 수 있다면 기회를 줄 거냐고 물은 겁니다.

PTW만 만족스럽고, 페이트 북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결과가 아니라요.”

“오호라.”

상혁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콜린스 씨의 말은, 이번 협상에서 콜린스 씨가 양측의 정확히 중간에 서고 싶다는 뜻입니까?

페이트북 측에서는 그쪽이 납득할 만한 최소한의 대가를 내게 하고, 저희 쪽에서는 저희가 페이트 북 측에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요?”

“바로 그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제안엔 문제가 있습니다.”

“뭐죠?”

“제가 뭘 믿고 당신에게 저희가 원하는 카드를 오픈합니까?

그렇게 저희 쪽에서 원하는 것을 알아낸 다음, 페이트 북 편에 서서 그걸 틀어막고 협상을 유리하게 진행하지 말라는 보장이 어디 있나요?”

“없죠. 그리고 똑똑한 변호사라면 그런 짓도 서슴치 않게 할 거고요.”

“당신은 똑똑한 변호사죠.”

“아뇨, 저는 단순히 똑똑한 게 아니라 천재적인 변호사입니다. 그리고 상혁 씨가 말하는 걱정거리를 덜어낼 좋은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 변호사죠.”

그렇게 말하며, 콜린스는 가방에서 파일을 꺼내 상혁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이번 협상에서 양측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게 되었을 경우, 콜린스가 소속한 로펌이 페이트 북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PTW의 새 대표 변호사가 된다는 계약이 적혀 있었다.

그것을 받은 상혁은 황당하다는 웃음을 지으며 콜린스에게 물었다.

“여기 온 순간부터 당신이 노리고 있던 것은 페이트 북이 아니라 PTW였군요?”

“손해가 크냐 작의냐의 문제일 뿐, 이번 싸움에서 페이트 북의 패배는 확정적이니까요.

저는 패배자의 편에 서 있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콜린스가 상혁을 보며 미소 지었다.

“페이트 북보다는 PTW쪽 변호인이란 타이틀이, 저에겐 훨씬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PTW의 팀원들은, 그런 콜린스의 미소를 보며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미소가 조금 닮은 것 같다.’라고.

***

“그러니까, PTW측에서 진짜로 원하는 것은 페이트 북의 CTO 존 카믹이라는 거군요?”

“가능하겠습니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상혁이 자신이 바라는 카드를 솔직하게 오픈하자, 콜린스는 완전히 PTW의 편에 서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그가 알고 있는 페이트 북의 내부 정보를 아는 대로 풀어주면서.

“아시다시피 저커버그는 주변인을 품고 가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죠.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이 역으로 소송을 걸어오거나 혹은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경험을 많이 겪게 되면서, 저커버그 씨는 핵심 인력의 이탈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심리적 타격을 입히는지 경험적으로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존 카믹 씨는 저커버그가 어릴 때부터 존경하던 인물이기도 했고요.

그가 가진 소유욕과 집착은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커버그가 존 카믹 씨를 영입할 때, 그는 존 카믹 씨의 이탈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해 뒀습니다.

CNC, NDA, 기간이 명시된 전속 계약, 그리고 위약금 조항까지 계약서에 전부 포함되어 있죠.”

그러자 뒤에서 콜린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서연이 지수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지수야, CNC는 뭐고 NDA는 뭐야?”

그러자 서연의 귓속말을 들은 상혁이 대신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CNC는 경쟁금지 조항(CNC : Covenant Not to Compete)을 말하는 거고 NDA는 비밀유지계약 (NDA: Non-Disclosure Agreement)를 말하는 거야.

전자는 퇴사나 이직을 통해서 같은 분야의 경쟁 회사에 취업할 수 없다는 조항이고, 후자는 내부에서 본인이 취급한 정보에 대해 타사에서 유출할 수 없다는 계약이고.”

“아, 보안 유지 서약 같은 거 말하는 거예요?”

“응.”

“그건 우리 회사도 있잖아요. 매년 연봉에 보안 유지 서약에 대한 대가를 추가로 받지 않나?”

“맞아. 둘 다 회사에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인정되는 법적 계약이거든.

기본적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도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니까, 그걸 막으려면 그에 합당한 대가도 따로 지급해야 한다는 거지.”

상혁은 콜린스도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영어로 서연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콜린스는, 상혁의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습니다. 페이트 북에서는 그 조건을 성립하기 위해 매년 존 카믹이 받는 연봉의 10%를 추가로 그에게 지급하기로 계약했죠.

그리고 이직 시에는, 그가 가진 최신 기술들이 유효성을 잃어버리게 될 것으로 판단되는 2년 동안, 경쟁 업체에 취업하지 못하는 대신 퇴사 시에 받고 있던 연봉의 80%를 매년 지급하게 되어있고요.

그건 전부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이고, 존 카믹 씨도 확인하고 동의한 사항입니다.”

“그럼 단순히 존 카믹 씨만 설득해서 저희 쪽으로 이직을 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죠. 저커버그 씨가 그 모든 조항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이직이 가능합니다. 존 카믹 씨를 설득할 수 있느냐 없냐는 그 이후의 이야기고요.

게다가 이쪽에서 CTO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저커버그는 모든 협상 카드를 회수할 겁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카드가 존 카믹이라는 것을 바로 눈치챌 테니까요.”

“저희가 아예 합의금 대신 존 카믹의 이직을 요구한다면요?”

“저커버그는 거기 얹어서 추가로 딥 다이버의 특허 사용권까지 요구할 만한 인간입니다.

아니면 MYOM의 PC판 서비스를 페이트 북을 통해서 하게 해달라고 한다던가.”

“하늘이 뒤집혀도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저도 잘 압니다. 그러니 이번 협상의 최대 키 포인트는, 어떻게든 이쪽이 존 카믹을 원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저쪽에서 알아서 내놓게 하는 것이 되겠죠.”

“벌써 저희가 ‘이쪽’이고 페이트북은 ‘저쪽’이 된 겁니까?”

“저쪽 가면 반대로 이야기할 거니까 괜찮습니다.

제가 말한 것처럼, 저는 이번 협상에서 양측이 만족할 만한 딜을 끌어내는 게 목적이니까요.”

“그 말은, 여기 있는 동안은 완전히 저희의 아군이라는 뜻이겠군요?”

“맞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아까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계약서를 샌프란시스코 변호사 협회에 제출하시는 순간, 저는 변호사 라이선스를 박탈당하고 감방에 가게 될 겁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이렇게 양쪽의 입장을 동시에 대변하려 한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그 결과는 똑같이 일어나겠죠.

그러니 제가 만약 PTW를 속이고 페이트 북에 유리한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계약서를 변호사 협회에 제출하세요.”

“차후에 계약이 마무리되고 나서 페이트 북에서 당신이 중간에 중재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걸게 된다면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어째서죠?”

“프로그래머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조 단위의 보상을 포기하는 회사가 있을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콜린스가 말했다.

“하나 묻겠습니다. 만약 존 카믹이 이직하는 대가로, 그가 옵큘러스에서 개발한 모든 코드와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작업물을 포기해야 한다면, PTW에서는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당연히 받아들이죠. 저희가 필요한 것은 존 카믹이 만든 결과물이 아니라 존 카믹이라는 개발자 자체니까요.”

“그가 이제까지 해 놓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할 수 있을 것에 가치가 더 있다고 보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누구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 자체보다는 그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나 기술에 더 가치를 두는 바닥이니까.

그러니 PTW에서 존 카믹씨를 영입한다 하더라도 PTW가 얻을 수 있는 건 그가 만든 수많은 작업물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만들 작업물의 가능성이 되는 거죠.

그건 다른 사람이 볼 때 절대 수십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는 물건입니다.”

“콜린스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저는 고용주가 부여하는 가치만큼의 가치가 그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PTW가 존 카믹이라는 사람에게 기대하는 값어치가 수십억 달러라면, 그건 적어도 PTW에게는 수십억 달러의 값어치가 있다는 의미라고요.”

“그리고 콜린스씨는 저희에게 그 수십억 달러 사나이를 가져다주시겠다는 거죠?”

“바로 그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상혁의 질문에 콜린스가 미소지었다.

그리고는 상혁을 보며 말했다.

“우선은 이쪽의 ‘제시안’을 저커버그 씨에게 통보해야죠. 그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금액으로요.”

“얼마 정도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금액이 되겠습니까?”

“50억 달러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이쪽에서 제정신으로 요구하는 금액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 그냥 100억 달러로 맞추죠.”

“그건 그냥 A4용지에 ‘거절’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서 답신하는 거랑 같은 건데요?”

“원래 목적이 그거잖아요? 그리고 그걸 받아들었을 때 저커버그의 표정이 궁금하기도 하고요.”

“아예 VR 사업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100억 달러를 내느냐의 양자 택일 상황으로 몰고 가겠다는 거군요?”

“맞아요. 이쪽에서는 어떤 대가를 받더라도 협상에 응할 의사가 없음을, 금액으로 확실하게 밝히는 겁니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100억 달러짜리 협상안. 그걸 받으면 저커버그는 뭐라고 할까요?”

상혁의 질문에 콜린스는 자신이 아는 저커버그란 인물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씩 웃으며 상혁에게 말했다.

“아마도 ‘이 빌어먹을 X끼들이 진짜 쳐 돌았나?!’ 라고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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