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 새끼 문어의 진화
“솔직히 고백하죠. 8월 15일에 있었던 PTW의 3차 NE 컨벤션은, 제가 옵큘러스 VR 인수에 사용한 23억 달러를 휴짓조각으로 만들었습니다.”
저커버그는 PTW와 만난 자리에서, 인사가 끝나자마자 순순히 현재 상황에 고백하는 것으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저만큼 VR이 만들어낼 미래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별로 없고, 그만큼의 투자를 결심하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상혁은 짐짓 모르는 척 딴청을 부렸다.
회귀자인 자신은 이미 저커버그가 가상현실의 한 형태인 메타버스에 깊이 심취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에게 밝힐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게다가 PTW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될 것이란 상혁의 예상을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된 저커버그의 협상 방식은, 내심 상혁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했고.
민준은, 저커버그와 마주한 상혁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서로 상극인 타입이네.’
사실 IT업계에서는 예측 불허의 행동으로 유명한 상혁이었지만, 민준은 상혁의 돌발 행동이 모두 논리적 판단에서 나온 최적의 선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수십 수백 개의 정보를 취합하여 ‘결과적으로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 상혁이 일을 추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이번 딥 다이버의 발매와 관련된 사항만 해도 그랬다.
상혁은 언제나 ‘상대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놓고 협상에 나섰고, 그 때문에 SANY에서는 막대한 투자를 감행한 딥 다이버를 MS와 공유하는 계약에 사인해야 했으며, MS는 SANY가 감수해야 할 적자를 모두 자신이 감당하는 계약서에 사인해야 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PTW가 그 강력한 차세대 VR 장비를 경쟁사에 독점으로 제공할 것이 명확했기 때문에.
양사는 그 조건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말 그대로 ‘울며 겨자 먹기’로 사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상혁은 양대 콘솔의 밸런스를 중간에서 조정하는 중이었고.
만약 어느 한쪽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혹은 SANY가 도박에 나서지 않을 정도로 양대 콘솔의 균형이 팽팽한 상태였다면, 상혁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PTW는 신형 주변기기를 출시하며 단 1개의 게임에 대한 제작비만 투자하였지만, SANY가 4개의 게임에, 그리고 MS에서 추가로 5개의 게임에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하게 만드는 결과를 끌어냈다.
그 모든 게임의 QA 과정에 PTW가 개입하여, 전반적인 딥 다이버 게임들의 퀄리티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권한까지 얻어내면서.
그렇기에 민준이 생각하는 자신의 오랜 친구 상혁은, 세간의 평가와는 다르게 매뉴얼보다 더 매뉴얼스러운 인간이라 할 수 있었다.
단지 본인이 사용하는 매뉴얼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매뉴얼과 조금 다를 뿐.
반면에 지금의 저커버그가 보인 태도는 상혁처럼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는 데 필요한 최적의 프로토콜을 따르는 행동이 아니었다.
정말로 저커버그의 의도가 PTW의 딥 다이버에 대한 사용 권한을 얻어내는 거라면, 지금처럼 ‘실리콘 벨리에서 VR 관련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건 자신밖에 없다.’라고 어필하기보다는 상혁의 말대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칭찬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은 방식이었을 테니까.
그러나 눈앞의 젊은 CEO는, 그런 식으로 정해진 일련의 순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저는 VR 기술이 이끌어갈 미래가 앞으로 벌어질 미디어 전쟁의 핵심 방향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좁은 방 안에서 벗어나, 가상 세계가 제공하는 넓고 화려한 공간 안에서 또 하나의 삶을 영위하고, 그 안에서 경제 활동을 하며,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재미를 찾는 거죠.
마치 SF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가상 세계가 저희의 눈앞에 펼쳐지는 겁니다.
제가 옵큘러스사를 23억 달러에 인수한 이유도, 그런 미래를 읽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 말씀하시는 건 메타버스(Metaverse)의 개념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상혁이 말하자 저커버그가 웃으며 답했다.
“그 단어를 아십니까?”
“단어 자체는 1992년에 등장한 단어니까요.
그리고 2003년에 세컨드 라이프가 비슷한 경험을 유저들에게 제공하기도 했고요.”
“맞습니다. 저는 그런 형태의 가상 세계가 앞으로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을 끌어모을 가장 강한 미디어 형태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옵큘러스로는 이제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신 것일 테고요.
애당초 저희가 개발한 딥 다이버와는 다르게, 옵큘러스의 VR 기술은 하위 기술이니까.”
“다른 사람이 그 말을 했다면 절대 인정하지 않았겠지만, PTW에서 말하는 거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맞습니다. 옵큘러스 VR은 딥 다이버보다 구세대 기술이죠.”
“그래서, 페이트 북에서 저희 PTW에 원하는 게 정확히 뭐죠?”
“그게 무엇이든, 그쪽에서 제공할 수 있는 최선을 원합니다.”
저커버그가 말했다.
“인수제의를 받아들이신다면 그게 가장 최고겠지만, 경영 간섭을 피하려고 IPO도 하지 않는 회사니 그건 절대 안 받아들이실 것 같고, 지분투자나 기술 사용권 제공, 특허권 매각이나 MOU등 어떤 형태든 좋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딥 다이버의 사용권을 가져갈 수 있는 형태라면 무엇이든지.
PTW에서 허용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제공해 주실 수 있는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 그것에 합당한 대가를 지급하겠습니다.”
“만약 저희가 페이트 북과 함께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럼 당신은 제 생각보다 어리석은 인물이란 이야기가 되겠죠.”
“어째서죠?”
“제 제안엔 PTW에 디메리트가 되는 조건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저희가 바라는 것은, PTW에서는 관심도 없는 PC 시장에서의 딥 다이버 기술을 저희가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그리고 저희는 콘솔 게임 시장에는 간섭하지 않을 생각이고요.
순수하게 PTW가 지키고자 하는 영역을 존중할 것이고, 심지어 PTW에서 지분을 저희에게 판다고 해도 경영 간섭은 일절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 대가로 PTW는 어차피 진출할 생각이 없는 PC시장의 쉐어를 넘기는 대신 페이트 북의 막대한 자본력과 전 세계 수십억 명에 달하는 페이트 북의 회원 정보를 공유받을 수 있겠죠.
저희가 손을 잡고 할 수 있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생각해본다면, 이 제안을 거절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표현해도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요?”
“인스터그램을 인수할 때도 그렇게 이야기 하셨습니까?”
“예?”
상혁의 말에 저커버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러나 상혁은 그런 저커버그의 표정은 깔끔히 무시한 채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직원이 13명밖에 되지 않는 회사에, 10억 달러나 되는 돈을 제공하면서 경영 간섭은 전혀 하지 않겠다고 제안하셨냐고 묻는 겁니다.”
“지금 그 이야기가 왜···.”
“그 사람의 주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죠.
혹시 들어보셨나요? 여기 제 옆에 앉아있는 PTW의 CEO 이현주씨는 제가 고등학생일 때 아무 조건 없이 제자의 꿈을 위해서 게임 패키지 제작비를 빌려주신 분이죠.
그리고 옆에 있는 저희 CTO 김민준 씨는 중학생 시절부터 제 오랜 친구였고요.
PTW의 임원진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저희가 아주 작은 회사. 아니, 고등학교의 게임 동아리였던 시절부터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사람들이죠.
지분 1%도 가지지 않은 채로, 그냥 함께 일 하는 게 좋아서 같이 모여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저에게 말은 하지 않았어도, 제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죠.
그건 PTW가 성장하고 수많은 게임을 히트시키는 과정에서, 그들이 정말로 많은 이직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옆에 있는 저희 CTO민준은 제가 알고 있는 대형 이직 제안만 수십 건을 받았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다른 회사에 가면 지금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더 높은 위치로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 세계적인 대기업의 CEO이자 가장 혁신적인 SNS 플랫폼 중 하나인 페이트 북의 주인인 저커버그 씨에게 묻겠습니다.
지금 당신의 곁에는 누가 남아 있습니까?”
상혁의 말은 저커버그의 가장 아픈 부분을 찌르는 말이었다.
창업 동기부터 그가 인수한 인스터그램의 CEO까지, 저커버그가 회사를 경영하면서 그의 곁에 남아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대답을 못 하시는군요.”
“서로 가는 길이 다르면 함께 하지 못할 때도 있는 법입니다.”
“결과적으로 혼자만의 의견을 관철해왔기 때문에 모두가 떠났다는 것도 사실 아닙니까?
저희가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칩시다. 그럼 본인의 의사와 PTW의 의사가 충돌했을 때, 과연 당신이 PTW의 뜻을 존중해줄 가능성이 있을까요?”
“좋은 마음으로 초대를 하고 선의로 던진 제안을 이렇게 거절하는 방법도 있군요.”
“그 선의의 뒤에 기다리는 결과가 어떤 식의 파탄을 일으키는지, 그걸 가장 잘 보여준 건 저커버그 씨 당신입니다.”
“제안을 거절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좋을 대로 하시죠. 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PTW와 페이트 북이 함께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게다가 저는 적이 너무 많아서 런닝 할 때마다 경호원을 동원해야 하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현주는 깜짝 놀랐다.
상혁의 마지막 말을 들은 저커버그의 표정이, 보기에도 섬뜩한 표정으로 변했기 때문에.
현주가 본 저커버그는, 마치 역린을 잡아서 쥐어뜯긴 용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착한 사람 흉내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새로운 딜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저희 옵큘러스 리프트는 2012년에 개발자 킷을 공개했었죠.
그리고 개발 자체는 그 이상 오래되었고요.
저희가 보유한 VR 기술들은, 그 정도로 오래전부터 개발되던 기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관련 특허를 많이 보유하고 있죠.
저흰 PTW측이 저희 옵큘러스가 보유한 특허를 침해했다는 소송을 제기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 30억 달러, 혹은 그에 해당하는 PTW의 지분을 보상으로 요구할 거고요.
소송전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호의를 가지고 묻겠습니다.
지금까지 상혁 씨가 저에게 보여주신 수많은 무례는 깨끗이 잊고요.
상혁 씨. PTW는 페이트 북과 함께 VR사업을 진행하실 의사가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저커버그의 표정은 한없이 온화해 보였다.
조금 전까지 무섭게 상혁을 노려보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역으로 지금 저커버그가 짓고 있는 미소를 소름 끼치게 하고 있었다.
저커버그가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분노마저도 감출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 미소가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상혁은, 그런 저커버그의 섬뜩한 협박에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싱긋 웃으며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커버그 씨.”
“예.”
“대답을 드리기 전에, PTW에 대한 재미있는 정보를 하나 알려드리죠.
저희가 하드웨어 개발을 시작한 것은 딥 다이버의 개발보다 훨씬 이전의 일입니다.
저희의 첫 번째 주변기기는 딥 다이버가 아닌 그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발매된 코넥트였으니까요.
그리고 코넥트의 발매 과정에서, 저희는 엄청나게 많은 모션 인식 기술 관련 특허를 획득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특허 관련 문서를 모아둘 하나의 폴더를 만들었죠.
당시 그 폴더의 이름은, 새끼 문어(Baby octopus)였습니다.
문어처럼 여러 분야에 걸친 PTW의 특허들을 한곳에 모아둔 폴더라는 의미가 있는 이름이었죠.
그리고 4년이 지나고, 저희는 저희가 보유 중인 특허의 숫자를 생각할 때 ‘아기(Baby)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간에 폴더의 이름은 그냥 문어(Octopus)로 바뀌었죠. 그 후에 딥 다이버를 개발하면서, 저희가 보유중인 특허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모든 것이 새로운 기술이었고 모든 것이 저희의 독점적인 기술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모든 특허들은, VR장비를 개발하려면 무조건 필요한 특허들이었습니다.
저흰 그때 깨달았죠. 저희가 모아놓은 이 특허투성이 폴더가, 더 이상 문어같은 작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저희는 저희의 특허 관리 폴더에 새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저희 PTW에서 특허를 관리하는 법률 전문가 팀과 그들이 관리하는 특허 파일을 담아놓은 폴더를 합쳐서, 지금은 이렇게 부르고 있죠. 크라켄(Kraken)이라고요.”
“문어의 최종 버전이라는 의미입니까?”
“그런 이유도 있지만, 정작 저희가 특허 관리 부서의 이름을 그렇게 정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혹시 저커버그 씨는 현실과 게임에서의 점프가 가진 가장 기초적이자 근본적인 차이를 아십니까?”
“그런게 있나요?”
“현실에서의 점프는 공중에서 방향을 바꿀 수 없지만, 게임에서의 점프는 대부분 공중에서 방향 전환이 가능하죠. 마리오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요.”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었는 데 확실히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긴 하군요.”
“그리고 캐릭터가 공중에서 방향을 전환하는 기술에 대한 특허는 사실 넌텐도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랬습니까?”
“터치 스크린 UI에 대한 특허 상당수, 그리고 모션 인식 컨트롤러에 대한 기술 특허도 필수 특허들을 넌텐도가 가지고 있죠.
저희 PTW에서 개발한 게임들도 그런 식으로 넌텐도의 특허를 상당 부분 침해하고 있고요.”
“하지만 넌텐도는 그것에 대해서 따로 특허 사용료를 요구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렇죠. 사실 그들은 특허를 보유만 하지 쓰지는 않습니다.
남이 자신들의 기술을 쓰는 것도, 그것이 십자키 같은 넌텐도의 아이덴티티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텐도는 끊임없이 새 기술의 특허를 출원하고 있습니다.
그걸로 돈을 벌지도 않을 거면서요. 어째서 그런지 아십니까?”
“특허가 힘이기 때문이겠죠. 서로 특허전에 들어가면, 서로가 가진 특허의 우위가 승패를 가르게 될 테니까.”
“맞습니다. 아까 옵큘러스 리프트의 2012년에 프로토 타입이 공개되었다고 하셨죠?
저희는 코넥트 개발이 끝난 시점부터 VR 장비의 개발에 들어갔고, 그건 옵큘러스의 창시자인 팔머씨가 VR 기술의 개발에 들어간 것보다 훨씬 이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면, 저희쪽 특허가 그쪽 특허보다 먼저 나왔거나 더 중요한 특허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죠.
솔직히 말할까요? 저흰 페이트 북이 옵큘러스의 차세대 버전을 개발할 때 저희 기술을 쓰든 쓰지 않았든 X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겁니다.
저희 역시 넌텐도처럼, 특허를 보유만 하고 있을 뿐 그것에 대해 별도의 권한을 주장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협박을 하신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아까 이야기의 연장이지만, 저희가 특허 관리 폴더의 이름을 크라켄이라고 지은 것은, 언젠가 누군가 저희에게 특허를 가지고 싸움을 걸어왔을 때, 이렇게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크라켄을 풀어라!(Release the kraken!)’라고요.
말장난 같지만, 현실에서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다면 그건 참 멋진 일일 겁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는, 지금이 그때인 것 같군요.
겨우 6년 전부터 개발을 시작한 가소로운 VR 기술로 저희에게 특허전 운운하며 지분을 넘기지 않으면 소송을 걸겠다고 까부는 실리콘 밸리 최고의 찐따 새끼에게 본때를 보여줄 타이밍이.”
“저희 측에는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 존 카믹도 있습니다.”
“PTW에는 스컹크 웍스와 김민준이라는 괴물이 있죠.
그리고 스컹크 웍스에는 김민준 외에도 존 스캇이라는 전설의 프로그래머도 있고요.
물론 존 카믹 씨도 멋진 프로그래머지만, 그쪽이 가진 크라켄이 한 마리라면 이쪽은 모아둔 특허까지 포함해서 3마리의 크라켄이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한번 해봅시다. 누가 이기나.”
상혁의 협박은 적어도 저커버그의 협박보다는 효과적이었다.
실리콘밸리의 IT 업계 종사자들에게, 민준이나 존 스캇이 가진 명성 은 존 카믹에 비해 절대 밀리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특허 관련 분야에서, 현재의 PTW는 윈텔이나 IMB와도 싸워 이길 만큼 괴물 같은 특허를 보유한 특허 공룡이라 할 수 있었다.
‘뭐 이런 자식이···.’
저커버그는 당황했다.
누구도 그에게 딥 다이버가 그토록 오래전부터 개발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PTW는 음지에서 개발을 이어가는 스타일의 회사였고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회사였기에, 그것을 저커버그가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저커버그는 당연히 옵큘러스의 공개 이후에 딥 다이버 개발이 시작되었을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이 가진 VR 특허에 우선권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적어도 상혁이 딥 다이버 개발에 대한 진실을 그에게 말해주기 전 까지는.
그리고 지금, 저커버그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절대로 싸움을 걸어서는 안 될’ 상대에게 싸움을 걸었다는 사실도.
“워, 상혁 씨. 서로 오해가 있는 듯 합니다. 잠시 진정하시고 다시 이야기해 보시죠?”
저커버그가 당황하며 상혁을 제지하려 했지만, 상혁은 멈추지 않았다.
적어도 상혁에게 있어서는, 저커버그의 제안이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칼을 들이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야기요? 이미 이야기는 그쪽에서 자신의 힘을 믿고 저희에게 협박 카드를 사용했을 때 끝났습니다.
소송전을 언급하셨죠? 원하는 대로 해 드리죠. 아마 이 싸움의 끝에 옵큘러스엔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만.”
“조금 전엔 저희가 딥 다이버의 기술을 사용해도 괜찮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그쪽에서 특허를 가지고 건방지게 저희에게 시비를 걸기 전이고요.”
“소송 이야기는 대화 도중에 나온 실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원하신다면 엄청난 비용의 기술료를 지불 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다급한 저커버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상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상대를 엿 먹이기 위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상혁 본인이 말한 것처럼 단지 ‘그 대사’가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더 들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민준아?”
“응?”
상혁의 다음 말은, 민준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마치 이 대사가 하고 싶어서 근질거렸던 것처럼, 상혁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기 때문에.
“크라켄을 풀어!(Release the kraken!)”
상혁의 말을 들은 민준은 상혁이 어째서 특허 폴더 이름을 그렇게 지어야 한다고 우겼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인정했다.
현실에서 절대로 외칠 일이 없는 저 대사를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조금 더 멋진 일인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