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 전설의 프로그래머
상혁과 민준이 회귀한 이후로 PTW를 세워 여러 가지 일을 진행하면서, 세상은 상혁이 기억하는 회귀 전의 세상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PC 게임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이던 국내 콘솔 유저의 수가 300만을 넘어간 점이라던가, 그로 인해 무려 한국에서 100만 판매를 넘긴 (물론 그게 전부 PTW의 게임이긴 했지만) 콘솔 게임이 등장한 점이라던가, 게임 스트리머들이 가장 자주 방송하는 게임이 광산크래프트나 우주 크래프트 방송이 아닌 OGC가 된 것은 상혁이 기억하는 회귀 전의 지구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변화 중에는, 원래는 현재인 2017년에 등장하지 않았어야 할 너튜버가 미리 두각을 보인다거나, 혹은 원래는 PC게임 리뷰를 주로 하던 스트리머가 콘솔 게임 스트리밍을 하는 등의 변화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다루는 기기는 항상 최첨단을 달리는 채널.
하지만 헬스장에 가면 런닝머신 1단도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주인장이 운영하는 채널.
기드모입니다.
오늘은 지금 가장 핫한 멀티미디어 기기죠.
‘딥 다이버’를 가져왔습니다.
미리 말하지만 이 기기는 제가 사비로 샀으며 제작사인 SANY에서 협찬받거나 빌려온 기기가 아닙니다.
뭐, 어차피 빌려준다고 했어도 하나 사려고 마음먹었으니까 별로 크게 타격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무엇보다 딥 다이버는 성능에 비해 가격이 미친 듯이 싼 기기로 유명하니까요.
그럼 이제부터 한국의 자랑이죠. PTW가 개발하고 SANY에서 생산 판매 중인 새로운 게이머용 멀티미디어 기기, 딥 다이버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회귀 전 상혁이 좋아하던, 음향기기를 주로 다루는 IT 너튜버가 딥 다이버의 리뷰를 진행하는 것을 보면서, 상혁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게이트의 주선으로 LA에 있는 페이트 북의 CEO, 저커버그를 만나기 위해 워싱턴에서 LA로 날아가는 중에, 한국에서의 딥 다이버 출시 반응이 궁금해서 너튜브를 뒤지던 중에 발견한 방송이었다.
다른 대부분의 IT 리뷰어와는 다르게,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텐션으로, 그러나 재치있는 멘트로 재미있는 방송을 진행하는 그의 방송이 상혁의 흥미를 끌었다.
[우선 음향기기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 채널이니까, 그리고 이 기기에 헤드셋 기능이 붙어있기 때문에 음향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우선 공개된 스펙을 보면 양쪽 헤드셋 파트에 SANY의 70mm 알루미늄 코팅 액정 폴리머 다이나믹 드라이버가 탑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운드 튜닝에 PTW의 음향 전문가와 SANY의 헤드셋 제작팀이 참여를 했다고 하고요.
그래서 그런지 40만 원대의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고급 헤드셋의 사운드를 발라버리는 소리를 들려주고 있어요.
일단 이게 음악 감상을 위해 만들어진 기기는 아니지만, 소리 자체는 매우 훌륭하게 들립니다.
특히 게임 용도로 만들어진 거라 그런지 폭발음 같은 강한 저음역의 울림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저음이 강조된 느낌의 사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음악을 들을 때 딱 듣기 기분 좋은 느낌의 사운드이기도 하지만, 이 장비의 진가는 영화를 볼 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지원하는 시네마 모드를 활용하면, 사용자가 커스텀 가능한 가상의 거실에서 70인치 대형 TV를 보는 느낌으로 영화 감상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게, 사용자가 그렇게 만들어진 가상 거실의 환경을 커스텀 할 때 가상 TV의 위치나 스피커를 종류, 위치를 커스텀 할 수 있어요.
전 그 기능을 가지고 노는데 리뷰 시간의 상당량을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가상의 방 안에서 스피커의 종류나 위치를 바꾸면, 헤드셋에서 들리는 소리의 느낌이 바뀌었거든요.
그게 저한테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재미있는 기능이었습니다.
가상 거실 안의 우퍼를 커다란 거로 바꾸면 저음이 늘어나고, 수많은 가상 스피커 안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스피커를 찾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물론 간단하게 미리 세팅된 음향 세팅을 불러올 수도 있었고요.
흔히들 덕질의 끝은 부동산이라고 하죠.
원래 자기 집 거실에 그런 식으로 스피커 세팅을 갖추는 건 절대 싸게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옆집에서 항의가 날아올 수 있으니 거실에 흡음재도 설치해야 하고, 스피커 가격도 만만치 않은 데다 애당초 70인치 크기 정도의 대형 TV를 가진 거실을 가진 집을 구해야 한다는 점도 있죠.
하지만 딥 다이버는 ‘가상환경’이라는 세상에서 그 모든 것을 사용자에게 공짜로 제공합니다.
제가 사는 곳이 좁은 고시원 방이든, 아니면 2평짜리 원룸이든 그건 상관이 없어요.
딥 다이버를 쓰는 순간, 저는 고급 단독 주택에나 있을 듯한, 정원이 보이는 커다란 가상 거실에서 70인치 가상 TV를 보며 사람 키만한 가상 스피커의 사운드로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 경험은, 그것이 실제와 얼마나 흡사하던 매우 값진 경험이라 할 수 있죠.
실제로 그 느낌을 받으려면 부자인 친구 집에 놀러 가거나 아니면 제가 부자가 되어야 하니까요.
이게 설사 게이밍기기가 아니라 단순히 영화 감상용 기능만 있다 하더라도, 이건 충분히 40만원 값어치 이상을 하는 기기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전달해주는 가상 거실의 환경도, 실제로 제가 비슷한 집을 가진 지인 집에서 경험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요.]
“저거 돈 안 준 거 맞아? 돈 주고 시켜도 저 정도로 호평은 잘 안 해줄 것 같은데.”
옆에서 상혁의 노트북을 같이 보고 있던 현주가 묻자 상혁이 답했다.
음향 기기 전문 리뷰어가 저정도로 호평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 SANY가 딥 다이버에 쏟아부은 노력이 얼마인지 상혁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SANY야 원래 음향기기 쪽에서 유명한 브랜드이기도 하고, 이번 프로젝트에는 저희 PTW 사운드 팀에 있는 마스터 클래스 엔지니어들이 전부 참여했으니까요.
평소에도 수천만 원짜리 스피커나 수백만 원짜리 헤드셋으로 음악 듣는 게 취미인 황금귀들이 자기들이 가진 욕망을 그대로 투영했으니 성능이 좋을 수밖에 없죠.
솔직히 말하면 저도 음악 감상을 즐기는 편이지만 저는 막귀라서 별 차이는 크게 못 느꼈지만.
어쨌든 성연씨도 자기가 평소에 쓰는 헤드셋보다 딥 다이버의 소리가 더 취향에 맞는다고 이야기할 정도니 사운드 성능은 최소 100만원짜리 헤드셋 수준의 성능은 나온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물론 음향기기라는 건 항상 호불호가 갈리는 면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가상 거실의 스피커 커스텀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개인 취향에 맞출 수 있으니까요.”
“하긴 나도 테스트 하려고 그걸로 영화 보는데 진짜 홈 시어터로 보는 기분이긴 하더라.”
상혁은 현주와 대화하기 위해 잠시 멈춰 두었던 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그러자 영상 속의 리뷰어가 리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다음은 화질이죠. 기기의 디자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딥 다이버란 장비는 디스플레이 파트가 아예 없는 장비입니다.
처음 보면 당황하게 되는데, 원래 스크린이 달려 있어야 할 부분에 두꺼운 유리 렌즈만 달려 있어요.
그러나 이 장비를 머리에 쓰는 순간, 화면이 없는 이 장비에 화면이 생겨납니다.
신기하죠?
원리를 알아보려고 설명서를 뒤져보니까, 대략적인 구동 방식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더라고요.
정확히 딥 다이버는, 이 투명한 유리판 안의 수많은 반사판을 이용해서, 영상 신호를 수백 개의 작은 광선으로 만들어 안구에 그것을 직접 쏘아주는 방식으로 동작한다고 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건지 짐작도 가지 않지만, 일단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은 매우 훌륭해요.
SANY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스펙에 따르면 이 기기의 해상도는 최대 8K 수준의 해상도까지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아직 4K 영상도 보급되기 전인데 8K가 무슨 소리냐 라고 하실 수 있는데, 사실 이게 풀 8K 해상도가 아니에요.
저희가 어떤 물체를 볼 때, 저희가 집중적으로 보는 부분이 있고 그냥 주변에 있는 부분이 있죠.
딥 다이버는 동공의 위치를 파악해서 현재 사용자가 보고 있는 부분에 해상도 성능을 집중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해상도를 조절해서 흐릿하게 표현하거나 저해상도로 구현하게 되어있죠.
그런데 그게 사실 의미가 없는 게, 시선 변화에 따른 반응이 너무 빨라서 아무리 눈깔을 열심히 돌려도 해상도가 낮은 부분을 볼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냥 보는 입장에서는 8K해상도 수준이라 봐도 별 차이가 없는 겁니다.
물론 해당 화면을 방송으로 송출할 때는 그런 편법의 이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8K 신호로 방송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아직 인류의 기술이 그 정도 수준엔 도달하지 못했나 봅니다.
그냥 사용자가 보는 느낌이 8K정도 해상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는 거죠.
그래도 그 결과물은 매우 훌륭합니다.
저는 이 장비를 테스트 하는 동안 어떻게든 화질에 대한 트집을 잡아보려고 계속 노력했지만, 결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색감, 해상도, 시야각, 밝기, 게다가 안경을 쓰든 안 쓰든 사용자의 시력에 맞춰 초점을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점까지.
솔직히 안경을 쓰지 않고도 내 눈으로 진짜 또렷한 영상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장비의 장점 중 하나라고 봅니다.
게다가 이 만듦새를 보세요.
40만 원대 기기의 완성도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좋은 재질을 쓰고 있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애당초 이 기기가, 40만원대 장비가 아니기 때문이죠.
SANY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이 장비의 한국 출고가는 46만 7천원입니다.
그리고 이 장비의 생산 원가는 68만 9천원이라고 밝혔고요.
그러니까 한 대 팔 때마다 SNAY는 22만 2천 원의 손해를 감수하는 겁니다.
단순히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모든 기기에는 마진이란 게 붙죠.
그러니까 실제 46만 7천 원 짜리 장비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그 장비의 생산 단가는 20만 원에서 30만 원대로 형성됩니다.
그래야 한 대 팔아서 10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의 이윤을 남기죠.
그리고 그 마진율은 보통 기기가 비싸면 비쌀수록 크게 잡습니다.
장비가 비싸면 판매량이 줄어들테니, 개발비나 생산비 등의 여러 요소를 고려하면 마진율을 조금 더 높게 잡는 게 좋으니까요.
그러니까 원래 68만 9천 원짜리 생산 단가를 가진 장비라면, 실제 시장 가격은 100만 원대는 잡아야 정상입니다.
못해도 90은 잡아야죠.
그 말은 실제로 이 기기를 구매하는 저희는 이거 한 대를 구매할 때마다 30만원씩 버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입니다.
미친 거죠.
길가다 휴대폰 매장을 보면 이렇게 쓰인 현수막을 자주 볼 수 있죠.
‘우리 사장님이 미쳤어요.’
예. 이 장비를 만들어서 이 가격에 팔겠다고 한 PTW나 SANY는 진심으로 미친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 장비를 사는 저희는 그 ‘미친 짓’의 수혜자가 될 것이란 사실입니다.
최종적으로 평가하겠습니다.
PTW에서 개발하고 SANY에서 판매 중인 신형 멀티미디어 주변기기 딥 다이버.
먼저 가성비는 10점 만점에 10점 주겠습니다.
둘째로 착용감은 10점 만점에 9점 드립니다.
셋째로 화질은 10점 만점에 10점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소리는 10점 만점에 10점 드리겠습니다.
평소 언젠가는 자기 집 거실에 수백만 원짜리 스피커 시스템을 갖추고 홈 시어터로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금전적인 문제로 포기하고 계시던 분들은 백 퍼센트 만족하실 거고요, 만약 당신이 PS를 가지고 있는 유저라면 200% 만족하실 겁니다.
너무 칭찬만 한 것 같은데, 제가 필사적으로 이 장비를 일주일 내내 착용하면서 발견한 유일한 단점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지원하는 기능이 너무 뛰어나서 느끼지도 못했던 단점이지만, 계속 장비를 사용하다 발견한 단점이 하나 있는데, 그건 기존 VR영상을 딥 다이버에서 재생하면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기존 저성능 VR이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된다는 겁니다.
사실 그건 PTW나 SANY의 잘못은 아니긴 합니다.
애당초 그 VR영상들이, 딥 다이버용 영상이 아니기 때문이죠.
딥 다이버는 VR기기 최초로 인간의 시야가 닿는 모든 부분을 커버하는 270도 시야각을 지원하는 장비입니다.
그럼 영상도 거기 맞춰진 포맷이 있어야 재생할 수 있겠죠.
단순히 좌우로 나뉜 VR기기용 영상이 아니라, 전용 장비로 촬영된 영상이 있어야 딥 다이버에서 제대로 된 감상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것은 없습니다.
SANY측에서는 이미 전용 카메라의 개발에 들어갔다고 하고요, 그때까지는 딥 다이버 자체가 그 카메라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하니까.
야외 방송을 자주 하시는 분들은 딥 다이버를 쓰고 현장에 가시면 다른 딥 다이버 사용자가 방송 진행자와 동일한 시야를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진심으로 추천할 만한 장비를 리뷰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매달 PTW가 이런 장비를 개발해주면 제 삶이 매우 편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요.
다음에도 재미있는 장비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금까지 기드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협찬이나 광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리뷰어의 극찬에 가까운 찬사를 받으며.
그리고 상혁은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애당초 리뷰어가 말했던 것처럼, 딥 다이버란 기기의 정상적인 시중 가격은 100만원대의 장비에 걸맞은 것이었기에.
그리고 그것은, LA에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매우 쓰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무려 2.5조원이란 거금을 지불하고 차세대 VR장비라 평가받던 옵큘러스 VR을 인수한 그에게 딥 다이버의 존재는 뼈아픈 것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3차 NE 컨벤션에서 딥 다이버의 실체가 공개되자마자 주가가 폭락한 것은 MS의 주식이 아니라 페이트 북의 주가였기 때문에.
“차라리 헤지펀드 측에서 페이트북에 공매도를 걸었으면 떼돈을 벌었을 텐데.”
현주도 그것을 알기에 상혁에게 그렇게 말하자,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애당초 3차 NE 컨벤션이 시작되기 직전에 공개된 것은 저희가 새 주변기기를 발표할 것이란 사실 뿐이었으니까요.
그게 VR기기가 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죠.
그걸 알았으면, 헤지펀드 측에서도 MS보다는 페이트 북의 주가 하락에 베팅했을 거고요.”
“그럼 이번 미팅은 윌 게이트 CEO가 MS의 주가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서 SANY에 찾아왔던 것처럼, 저커버그 CEO가 페이트북의 주가 하락 방어를 위해서 우리를 만나고 싶어하는 걸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크죠.
딥 다이버가 발매된 순간에, 아마도 옵큘러스 VR의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개발하던 모든 것을 쓰레기통에 처박아야겠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리고 그걸 2.5조원이나 주고, 게다가 그것 때문에 소송까지 감수해야 했던 저커버그는 그보다 더할 거고요.”
“그 말은 상혁이 너는 이번 미팅에서 아마도 인수 제의가 오갈 거로 생각하는 거야?”
“아마도요. 저커버그는 탐욕적인 인간이에요.
그리고 자신이 욕심낸 것에는 엄청나게 집착하는 인간이고.
게다가 VR을 이용한 메타 버스 구축은 그가 지금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원대한 비전이기도 하죠.
저희가 자신의 꿈을 시궁창에 박아버린 이상, 저커버그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두 개밖에 없어요.”
“두 개? 한 개가 아니라?”
“특허로 소송을 걸 수도 있으니까요.”
“인수 제의를 하고, 안먹히면 소송을 건다고?
그건 관계를 깨부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아니야?”
“제가 아는 저커버그란 인간은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숴버리겠다고 생각할 만한 소시오패스니까요.”
“그럼 만약에 진짜로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해?”
“뭘 어째요. 저희는 코넥트때부터 쌓아온 엄청난 관련 특허를 보유 중이에요.
특히 이번 딥 다이버는 개발 기간만 8년이 넘었고요.
그쪽에서 가진 특허가 뭐든 간에, 저희가 그쪽 특허를 침해한 것보다 그쪽에서 저희 특허를 침해한 게 더 많을 거예요.
그러니 걱정할 필요는 없죠.
만약 저쪽에서 시비를 걸어오면, 회사채로 매장해버리면 그만이니까.”
“그게 가능해?”
“사실 저희가 딱히 시비를 걸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 실리콘 밸리의 기업 중에 PTW가 보유 중인 특허에 안 걸리는 기업은 거의 없어요.
그만큼 저희는 IT 관련 필수 특허 중 상당량을 보유 중이니까.
물론 저희도 타사의 특허를 침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긴 하죠.
그건 뭐랄까, IT업체들의 암묵적인 협약 같은 거예요.
애당초 서로가 가진 특허를 침범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개발이 불가능하니, 그냥 입 닫고 넘어가는 거죠.
거기서 누군가가 시비를 걸면, 그때부터는 매우 유치한 싸움이 시작되는 거고요.”
“유치한 싸움?”
“네가 가진 특허랑 내가 가진 특허 중에 뭐가 더 상대방에게 필수적인지 비교해서 따져보자 라는 싸움이요.”
“뭐, 어느정도는 알겠어.
요컨대 저쪽에서 시비를 걸어도 우린 절대 지지 않는다는 거지?”
“그렇죠. 그리고 아마 이번 미팅에는 존 카믹이 참가할 겁니다.
그쪽의 CTO 자격으로요.
저쪽의 움직임이야 안 봐도 비디오죠.
가장 먼저, 저희를 칭찬해서 잔뜩 비행기를 태우겠죠.
자신도 PTW의 오랜 팬이라며, 3차 NE 컨벤션이 정말 멋졌다느니 하는 표현을 써서 저희 기분을 좋게 만들려고 할 겁니다.
상대가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고 믿게 만들기 위해서요.
그리고 그 후에 저커버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VR 기술에 대한 비전을 설명하겠죠.
그리고 거금을 제시하며 저희에게 자신의 꿈에 동참하라고 제시할 겁니다.
저희가 거절하면, 그때부터는 애원과 설득, 그리고 마지막으로 협박이 오가겠죠.”
“존 카믹은 그때 나서겠네?”
“그렇죠. 아마도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 특허 중에, 딥 다이버가 침해한 것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기술에 대해 언급할 겁니다.
전설의 프로그래머인 만큼, 분명 어느 정도 합리성 있는 추론을 들고 와서 기술적인 면으로 저희를 압박하려 하겠죠.”
“그럼 우린 어떻게 해?”
“뭐 저쪽에서 존 카믹을 데려오면 저희도 저희 카드를 내밀어야죠.
전설의 프로그래머는, 저쪽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며, 상혁은 조용히 건너편에 앉아 있는 민준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그때 민준은, 입에서 침까지 흘리며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그 순간, 민준은 아슬아슬하게 턱을 받치고 있던 손이 미끄러지면서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상혁과 현주의 시선을 보며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나? 왜? 뭐?”
그것은 잠시 후 있을 거대 기업 간의 협상에서, 상대방이 보유한 전설의 프로그래머와 대적할 유일한 카드와는 거리가 먼 얼빠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상혁은 알고 있었다.
저 프로그래밍 밖에 모르는 순수한 소꿉친구가, 그의 마음속에 거대한 야수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특허전을 걸어올 확률은 그리 높지 않지만···.’
상혁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번에 미국에 오고 나서부터, 헤지펀드를 상대하거나 백악관에 불려가는 등 재미있는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번에도 상혁은, 뭔가의 사건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상대는 그 소시오패스 저커버그였으니까.
‘재미있겠다.’
그렇게 상혁의 생각을 담은 채로, 비행기는 LA공항을 향해 천천히 선회하며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