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 게임의 법칙
“그럼 저희 쪽에서 먼저 합의안을 제시하겠습니다.
저희 헤지펀드 측은 현재 MS에서 보유 중인 주식 중 2억 주 가량의 주식을 정상가(Regular price)의 200% 가격에 인수하려 합니다.
물론 주식을 보유 중인 게이트씨가 허락하신다면 말이죠.”
먼저 협상의 포문을 연 쪽은 현재 아쉬운 상황에 처해 있는 헤지펀드 측이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은 윌과 미리 이야기하여 이번 협상의 결정 권한을 넘겨받은 상혁이 내놓았다.
대놓고 수작을 부리는 상대방에 대한 강렬한 비난을 섞어서.
“정상 가격(Regular price)이니 200%니 괴상한 단어 쓰면서 조건을 후려치지 마시죠.
지금 그쪽에서 주장하는 건, 현재 게이트씨가 보유 중인 주식을 폭등 하기 이전의 종전가(Old price)의 두배 가격에 사겠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은 무려 그때보다 7배나 오른 주식을 말이죠.
그건 1/3가격도 되지 않습니다.”
“저희는 이 자리가 협의를 위한 자리라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협의라는 게 어느 한쪽이 호구 잡히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죠.”
“좋습니다. 아쉬운 건 저희 쪽이니까.
그럼 종전가의 3배 가격은 어떻습니까? 이번 거래 한 건으로 MS측에선 무려 400억 달러 이상의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합의가 가능한 금액이 아닐까요?”
그러나 상혁은 브라운이 내놓은 두 번째 합의안도 단칼에 거절했다.
“개소리하지 마시죠.
종전가도 결국은 말장난입니다. 당신들이 하는 말은 결국 현재 시세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대량의 주식을 팔아달라고 요구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희 펀드는 망합니다.
어차피 지금 제안한 보상안대로 협의가 진행돼도 망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저희도 어느정도의 메리트가 있어야 협상에 참여한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저희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최소한의 자비심을 보여달라는 겁니다.”
“월 스트리트 출신 금융인이 자비심을 논하다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군요.
돈 벌겠다고 죽은 사람에게도 미친 듯이 대출해주다 전 세계를 금융위기에 몰아넣고 세금으로 구제해달라고 노래 부를 때도 자비심을 외치셨겠죠?
그러면서 대출을 갚지 못하게 된 서민들의 재산을 뺏을 때는 일말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았을 테고요.
X까세요. 당신들은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습니다.
지금 이 자리는, 당신들의 시체를 태우고 남은 금이빨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지 당신들을 살리려고 마련된 자리가 아닙니다.”
상혁의 말을 들은 브라운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애당초 이들에게 자신들을 구제해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이들은 말 그대로 싸우러 온 것이었다.
심지어 이 자리를 준비해 ‘중재’를 하겠다고 선언한 대통령이 빤히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브라운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도람프를 향해 구원요청을 보냈다.
“대통령 각하께서는 이 자리가 중재를 위한 자리라고 하셨죠. 하지만 저들은 중재안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저들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도람프 대통령은, 갑자기 이 순간에 그 유명한 본인의 똘기를 자랑하는 듯한 말을 꺼내어 브라운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예?!”
“저는 자리를 마련했을 뿐입니다. 아무리 제가 미합중국의 대통령이라도, 누군가에게 강제로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헐값에 팔라고 강요할 순 없는 겁니다.
미국은 자유 시장 경제에 의해 굴러가는 나라니까요.”
“하지만 대놓고 죽으라는 협상안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최소한의 살 구멍은 만들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건 지금부터 월가의 금융인인 당신이 만들어가야죠.
미리 말해두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흡사 서브 프라임 사태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국가 차원에서의 구제 금융은 절대 없을 겁니다.
월가가 싼 똥은 월가에서 치워야 하니까.”
“그럼 저희는 협상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적어도 저희가 이해할 만한 수준의 조건을 상대가 제시하기 전까지는.”
브라운은 최후의 수단으로 넌지시 협박성 발언을 던져 보았지만, 상혁에게는 그것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상혁은 어차피 이 자리가 아니라면 상대방이 그 많은 양의 주식을 숏 스퀴즈를 통해서 엄청난 가격에 매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의 ‘절대 갑’은 MS였고 헤지펀드는 ‘절대 을’일 뿐이었다.
“그럼 협상은 여기서 결렬이군요. 도람프 씨. 콜라 잘 마셨습니다.”
상혁이 딱 잘라 말하자, 브라운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윌 게이트를 향해 물었다.
“이분은 원래 협상을 이런 식으로 합니까?”
“뭐, 대체로 그렇습니다. 애당초 확실하게 우위에 설 수 있는 카드가 없으면 그런 상황이 나오게 만드는게 PTW의 협상 스타일이니까요.
저희도 그것 때문에 원래 SANY가 부담했어야 할 딥 다이버의 적자를 전부 저희가 부담하는 계약서에 사인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 계약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애원하는 건 당신들이 아니라 제가 되었을 테니까.”
“그럼 칼자루를 쥔 쪽에서 원하는 조건을 말씀해주시죠.”
그러자 상혁이 게이트에게 다가가 귓말로 뭔가를 말했고 게이트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상혁에게 다급히 답했다.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이 어느정도 조율을 마치고 나자, 상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브라운에게 이쪽에서 원하는 조건에 대해 말했다.
“저희가 원하는 조건은 현재 시세 그대로 MS가 공매도 방어를 위해 구매한 주식 1억 주를 그쪽에 넘기는 겁니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조건입니다.”
“그럼 마켓에서 사시던가요. 그쪽에서 주식을 매수하려는 냄새만 풍겨도, 주가는 지금보다 더 오를 테니까.
저희는 그때 팔아도 됩니다. 오히려 지금 조건은 후하다고 할 수 있는 거죠.”
상혁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미 그들이 얼마를 공매도하던 패닉셀을 유도할 수 없는 시점에서, 그들이 주식을 매수하는 순간 미친 듯이 주가가 오를 것은 확정된 사실이었으니까.
차라리 시세대로 지급하더라도 추가적인 상승분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상혁의 제안이 그들에게는 자비처럼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브라운은 상혁의 제안 안에 담겨있는 무서운 함정을 눈치채고는 상혁을 향해 물었다.
“잠깐만요, 방금 1억주라고 하셨습니까?”
“맞습니다.”
“저희가 요구한 것은 2억주였는데요?”
“그건 MS에서 이번 공매도 방어를 위해 구매한 주식 수량보다 많은 양입니다.
아마도 1억 4천만 주에서 2억 주로 늘어난 것은, 그쪽에서 딥 다이버의 판매 중지 뉴스를 뿌리면서 주가 하락을 위해 추가로 베팅한 공매도 분량 때문에 늘어난 거겠죠?
저희가 거기까지 커버할 의무는 없다고 봅니다만?”
“그럼 하다못해 1억 4천만 주라도 넘겨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말했지만 MS가 주가 방어를 위해 구매한 수량이 정확히 1억 주였고, 저희는 그것을 종전 상태로 돌리겠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왜 굳이 게이트씨가 보유한 주식을 추가로 더 팔면서 그쪽 사정을 봐줘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럼 저희는 나머지 1억주를 어디서 구하란 말입니까?”
“당연한 이야기지 않습니까? 마켓에서 구매하세요.”
“종전가의 10배가 될지 20배가 될지 모르는 가격에 말입니까?”
“그건 공매도라는 도박의 실패에 따르는 자연스러운 패널티입니다.
그리고 주식 시장에서 지켜야 할 마땅한 규칙이고요.
가지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팔았으니 약속한 때가 오면 갚아야죠.
지금 MS의 주식을 비싼 가격에 산 사람들은, 전부 당신들이 그런 주식 시장의 약속을 지킬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산 겁니다.”
“그럼 저희 펀드는 전부 망합니다.”
“어차피 이번 사태에 숟가락을 얹으려 시도한 시점에서 당신들은 진겁니다.
단지 적게 망하냐 크게 망하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자비를 보여달라고 하셨죠?
방금 전 시가에 MS 주식 1억 주를 넘겨드리겠다고 한 것이 저희의 자비입니다.
그 이상은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가 판을 키워서 머니게임에 들어간다면? 그럼 MS측에서도 손해가 클 텐데요?”
“그럼 저희는 저희가 가진 모든 IP를 사용해서 MS를 지원할 겁니다.
매일 아침 신문에 X-BOX전용의 새 게임을 PTW가 개발한다는 뉴스가 뜰 것이고, 매일 저녁 뉴스에 PTW가 보유한 기술의 사용권을 MS가 취득했다는 뉴스를 아나운서가 떠들 겁니다.
주식 시장은 인간의 광기를 반영한다고 하죠.
비록 PTW라는 회사가 규모 면에서는 다른 게임회사에 밀릴지 몰라도, 적어도 저희는 사람들의 열광을 얻어내는 데는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쪽에서 PTW나 MS 본사에 핵가방 테러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저는 언론 플레이에서는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죠.
제 말이 허풍인지 궁금하시다면, 한번 해보세요.
참가한 헤지펀드 수를 늘리고, 월가의 모든 자본을 끌어들여서 공매도에 나서보시죠.
팔면 팔수록 주가가 오르는 기적이 뭔지 그대로 보여드릴 테니까.”
상혁의 공격적인 언사에 브라운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노려보며 폭풍처럼 말을 쏟아놓는 상혁의 발언은, 마치 헤지펀드에 원수라도 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PTW가 MS를 위해서 그 정도로 나선다는 겁니까?
이유가 뭐죠? PTW에서 MS 지분이라도 가지고 있나요?”
“이유야 간단하죠. 전 당신들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상혁이 말했다.
“저희는 게임회사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기술을 개발하고, 사람을 키워 사람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회사죠.
정상적인 회사는 그런 겁니다. 투기판 같은 주식 시장에 돈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남의 돈을 착취해서 재산을 불리는 회사가 아니라요.
물론 그렇다고 제가 월가를 무너트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저는 저나 제 주변 사람을 건드는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게 당신들 같이 더러운 금융 사기꾼들이라면 더 그렇고.”
“상혁 씨의 말에서 악의가 느껴지네요. 저희는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투자를 진행하는 금융사입니다.”
“도박하다 수틀리면 구제 금융 신청하는 게 합법적인 범위 안의 행동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받은 돈으로 성과급 잔치 벌이는 게 합법적인 행위입니까?
뭐, 그게 전부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게 옳은 일이라고 한다면, 제가 월가의 금융 자본에 악의를 가지고 대응하는 것도 불법은 아니니까요.
제가 당신들을 싫어하는 게 꼬우십니까?
꼬우면 PTW에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회수하라고 하세요.
아, 그렇게 할 순 없겠네요. 저희 회사는 빚이 0원이니까.”
“하하하하하하!!!”
상혁의 말에 웃음을 터트린 것은, 지금까지 조용히 상혁의 말을 듣고 있던 미합중국의 대통령, 로날드 도람프였다.
그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이 떠나갈 듯이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상혁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월가 양복쟁이를 이렇게 시원하게 두들겨 패는 사람은 처음 보는군요.
이상혁이라고 했지?
난 당신이 마음에 듭니다.”
“분명 대통령 각하도 월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죠.”
“맞습니다. 저도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인이지만, 적어도 저는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파는 일을 하니까요.
하지만 저 자식들은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만 움직여서 돈을 벌죠.”
도람프의 말을 들으며, 상혁은 속으로 생각했다.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인데······.’
그렇지만 그것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상혁이 아는 도람프는, 자신이 보유한 빌딩의 가격이 내려갔다고 세금으로 구제해달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이 방에서 상혁의 편을 들어 줄 가장 강력한 아군이기도 했고.
그리고 그 아군은, 상혁의 예상대로 상혁의 편에 서서 사태를 정리하려 하고 있었다.
“브라운 씨.”
“예.”
“제가 봤을 때 이 상황은 완벽하게 당신들의 패배입니다.
깔끔하게 인정하고, 상대의 제안을 받아들이세요.”
“하지만···.”
“아니면 진짜로 MS 주식 2억 주를 시장에서 전부 사겠습니까?”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사태 수습에 들어가는 자본은 온전히 현재 참여한 헤지펀드의 자금이어야 합니다.
모회사에 들어가 있는 연기금에 손을 대면, SEC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펀드에 투자한 자본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반드시 투자사 측에 소송을 걸어올 겁니다.”
“그건 그쪽 사정이죠. 당신이 방금 말하지 않으셨습니까? 모든 투자는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요.
그럼 그에 대한 리스크도 당신들같이 어리석은 헤지펀드 매니저를 믿은 투자자가 온전히 져야겠죠.”
그러자, SEC 국장인 조지 벤자민이 대통령을 향해 말했다.
“지금의 해결 방식엔 문제가 있습니다.”
“뭐죠?”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가를 조작하는 것은 위법입니다.
현재 MS가 새로 취득한 주식 1억주는 아직 현금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만, 만약 지금 오간 제안대로 종전가보다 7배나 오른 가격에 MS가 1억주를 팔게 되면 그건 딥 다이버의 X-BOX지원이라는 내부 정보를 이용하여 사전에 주식을 매수한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그건 문제가 되지 않죠.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SEC 국장이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까.”
상혁이 말하자 벤자민이 상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해당 사건을 조사할 권한은 SEC에게 있죠?
그리고 지금 게이트씨는 자신의 의도가 아니라 상대의 요청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예상 시세보다 싼 가격에 주식을 파는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SEC 국장인 벤자민 씨가 보았죠.
그렇다면 애당초 SEC관계자가 눈으로 본 사항에 대해서 조사할 이유도 없고, 혐의를 제기할 이유도 없는 거 아닌가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대로 정리하도록 합시다. MS에서는 공매도 대응을 위해 3차 NE 컨벤션 직전에 구매한 주식 1억주를 현재 시세에 맞춰 헤지펀드측에 팔도록 하고, 헤지펀드 측에서는 나머지 공매도 분량에 대해서 주식 시장에서 주식을 조달하여 갚는 것으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모 회사가 가진 다른 자본이 투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양측은 이에 동의합니까?”
브라운은 자신과 함께 백악관에 찾아온 다른 헤지펀드 대표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차라리 지금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상혁이 말한 대로 머니 게임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출혈이 적다는 것을.
그렇게 서로 눈빛을 교환한 브라운은 결국 고개를 떨구며 힘없이 말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게이트 씨?”
“저희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럼 이 자리는 이대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헤지펀드 입장에서는 절망적인 마무리겠지만, 너무 좌절하지는 마세요.
사업가로서의 충고지만, 가장 어두운 날에 진정한 빛이 비치는 법이니까.”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까지 이어진 이번 공매도 사태는, 그렇게 헤지펀드 측의 완전한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상혁은, 백악관을 나서서 게이트가 준비한 리무진에 타자마자 게이트의 질문을 받았다.
“상혁 씨.”
“예.”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조금 전 조건을 협의할 때, 제게 귓속말로 판매하는 주식의 양을 1억주로 한정하고 싶다고 하셨죠.
어차피 구매가의 7배나 되는 가격에 파는 것이기에 양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저희가 실제로 구매한 양은 1억 2천만 주였습니다.
게다가 제가 보유한 주식의 양을 감안하면 2억주 전부를 넘길수도 있었고요.
굳이 시장에서 나머지 1억주를 구매하게 만든 이유가 있습니까?”
게이트의 질문에 상혁이 웃으며 답했다.
“뭐 그렇게 하는 방법도 있긴 했겠죠.
하지만 전에 보여드렸다시피, 현재 MS 주식엔 전 세계의 많은 개미 투자자들의 자본이 물려있습니다.
어떤 이는 적금을 깨서 사기도 하고, 어떤 이는 보유중인 다른 주식을 팔고 MS 주식을 사기도 했죠.
그들이 믿는 것은 하나였어요.
상대가 규칙을 지킬 것이라는 것.
공매도를 한 만큼, 마감일이 되면 반드시 사서 갚아야 할 거고, 그럼 자신이 구매한 주식의 가격이 반드시 오를 거라고 믿은 거죠.
그런 상황에서 게이트 씨가 모든 공매도 분량을 커버해주시면 그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주가가 떨어지고 손해를 보게 되겠죠.”
“전 그 수익을 개인 투자자들도 나눠 받을 수 있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자비심인가요?”
“단지 세상엔 이따금 힘있는 자들도 약속을 지킨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죠.”
“하지만 이번 사태로 MS만 막대한 이득을 벌게 되었군요.
PTW는 그 많은 지원을 해주셨는데도 얻게 된 게 없고요.
마침 이번 협의로 엄청난 자금을 제가 벌게 되었는데, 혹시 PTW에서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거기 제가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는 외부 자본은 받지 않는 원칙을 세우고 있습니다.
남는 돈이 고민이시라면, SANY와 재협상을 추진해주시면 감사하겠군요.”
“재협상을요?”
“저는 게이트 씨가 딥 다이버 계약에 참여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SANY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적자 폭을 감안해서 게이밍용 딥 다이버의 선 공급량을 5천만대로 제한해두었죠.
그 정도 수준의 적자를 감수하고 나서, 산업용 딥 다이버 생산으로 적자를 메꿀 수 있도록.
하지만 저는 가급적이면 그 양이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좀 더 많은 게이머가 딥 다이버를 통해 새로운 게임을 접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수량은 X-BOX생태계에도 도움이 되겠죠.”
상혁의 말에 게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제가 히라이 사장에게 연락하겠습니다.
산업용 딥 다이버의 생산을, 게임용 딥 다이버의 생산이 1억대 이상 된 이후로 늦춰달라고요.
그에 따라 필요한 자금은 제가 이번 협상으로 마련한 자금에서 지불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거기에 추가로 저희 쪽에서도 딥 다이버와 X-BOX전용 타이틀 개발을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하겠습니다.”
“컨소시엄을요?”
“MS에도 좋은 퍼스트 파티는 많으니까요.
SANY에서 이번에 했던 것처럼, MS가 개발비를 전액 지불하고 개발비 회수가 끝난 이후의 이득은 전부 개발사가 가질 수 있게 하는 형태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규모는, SANY에서 이번 3차 NE 컨벤션을 위해 지출한 금액보다 큰 금액이 되겠죠.”
“개발사에게도, 게이머에게도 좋은 일이겠네요. 게이트 씨. 돈 쓰는 방법을 잘 아시는군요?”
“PTW를 보면서 생각한 겁니다. 어떻게 돈을 쓰는 것이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건지, 이제 조금 더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멋진 게임이 나오길 기대하겠습니다.”
“아뇨, 기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
“상혁 씨. 많은 퍼블리셔들이 단순히 돈만 있으면 멋진 게임이 나온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저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PTW를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진짜로 멋진 게임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개발자들이 멋진 게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열정을 불어넣는 것이라는 걸요.
그리고 저는 그런 PTW의 열정이 있었기에, 3차 NE 컨벤션에 참여한 게임들이 그토록 멋지게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개발사들이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죠.”
“그들이 평소에 하던 것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게 만든 것은 PTW였고요.
상혁 씨. 저는 이번 MS에서 구성할 컨소시움에도 PTW가 참여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X-BOX전용 게임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단순히 중간 검토자로써의 역할만 해주셔도 좋습니다.
저는 PTW에서 저희가 보유한 퍼스트 파티가 멋진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에 따른 비용은, 당연히 저희쪽에서 전부 지불할거고요.”
그렇게 말하는 게이트의 눈에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자신이 가진 게임기에서도, 3차 NE 컨벤션에서 공개된 것 같은 멋진 게임이 나오길 바라는 간절함이.
그리고 상혁은, 순수한 마음으로 멋진 게임이 나오길 바라는 그의 눈빛을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게이트가 지금 하고 있는 눈빛은, 그가 만든 게임 콘솔인 X-BOX를 사용하는 모든 유저들의 염원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게이트에게 답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그러자 게이트는, 자신의 무릎을 짝 소리가 나게 때리며 크게 기뻐했다.
평소의 그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볼 정도로, 게이트의 행동은 평소 그의 행동과는 다른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하하! 오늘은 엄청나게 기쁜 날이네요! 갑자기 엄청나게 커다란 돈이 들어오질 않나, 거기에 PTW가 X-BOX 진영의 컨소시엄에 참가하겠다고 이야기하기까지!
오늘이 제 생일인가요?”
“제가 알기로는 아닙니다.”
“뭐, 상관없습니다. 저에겐 생일보다 기쁜 날이 바로 오늘이니까.
그리고 그건 전부 PTW의 덕이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단순히 저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그럼 이제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예. 돌아가는 중에 일본에 들러서 딥 다이버의 수급 상황을 체크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그럼 부탁하는 김에 한 가지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게이트의 말을 들은 상혁이 물었다.
자신이 알기로, MS에서 PTW에 더 요구할 만한 것은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이어지는 게이트의 말은 MS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전혀 다른 회사의 이름을 상혁에게 꺼내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시기 전에, 한 사람을 더 만나주셨으면 합니다.”
“누구죠?”
“당신과 마찬가지로 VR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엄청나게 많은 관심을 가진 남자죠.”
그렇게 말한 게이트가 꺼낸 이름은, 상혁도 잘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게이트가 언급한 이름은, 이미 지금 시점에서 MS의 CEO인 윌 게이트에 전혀 밀리지 않는 젊은 사업가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마크 저커버그. 페이트 북 CEO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